All Chapters of 동쪽에 핀 연꽃 : 서녀무사전: Chapter 11 - Chapter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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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은혜는 갚으셔야죠 2

“뭐라?” 겸과 영도의 목소리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저하께서도 보셨지 않습니까? 소인이 오라버니의 검을 날려버리는 모습을요.” 연화가 허공에 검을 휘두르는 시늉을 하자, 영도가 칼집을 움켜쥐었다. 연화는 멋쩍은 듯 손을 내저었다. “검술이며 무술이며, 실력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마 기대 이상일 겁니다.” 겸은 당황스러움에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실력은 분명 인상 깊었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성별과 출신. 그게 걸림돌이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뭇거리는 사이, 영도가 먼저 나섰다. “이보시오 낭자. 궁에는 엄연한 체계가 있소. 세자저하시라 해도 궁에 함부로 누군가를 들일 수는 없단 말이오. 하물며 여인을...” “소인도 그게 억울합니다. 시험을 보고 싶어도 여인은 응시조차 할 수 없습니다. 지난 무술대회에 몰래 참가하려다 아버님께 들켜 열흘동안 방에 갇혔었다고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둘 사이에 다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자 겸이 둘 사이를 막아 나섰다. “잠깐.” 서로를 겨누던 시선이 모두 겸에게 향했다. “좋다. 그대 말대로 한 번쯤 세자 권한을 발휘해 보는 것도 괜찮겠군.” “정말이십니까?” “저하!” 영도가 다급히 말렸지만, 겸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남아일언중천금이라 했지 않으냐.” “감사합니다! 저하!” “하지만 조건이 있다. 내 옆에 있는 영도와 대련하여 그대가 이겨야 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의가 없도록 말이다.” 연화는 잠시 고민했지만, 별것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하. 자신 있습니다. 지금 하면 될까요?” 칼을 뽑으려는 연화를 겸이 제지했다. “지금은 곤란하네. 적당한 장소와 때를 내가 정하지. 그때 다시 기별하겠다.” “네! 반드시 기별해 주십시오. 그날까지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저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잔뜩 흥분하여 얼굴이 상기된 연화를 보자 새어 나오는 웃음을 누르며, 점잖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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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연꽃은 피는가 1

“정식으로 영도 나리와의 겨루기에서 이긴다면 받아주시겠다고 약조하셨습니다.”“영도와 대련을…?”홍양은 그제야 사태의 전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영도라면 백전불패 무사가 아닌가. 아무리 우리 연화가 특출 나다 하더라도 영도를 이기는 것은 무리지… 흠… 저하의 의중을 알겠구나.’그 의도를 인지하고 안도한 홍양은 억지로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래… 저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이 아비도 더는 말릴 수 없겠구나.”“정말요? 정말 허락하시는 거죠?”“그럼. 단, 조건이 있다. 대련에서 네가 지면, 그땐 이 아비의 뜻을 따라 혼례 준비를 하거라.”“혼례요? 하지만… 마땅한 혼처도 없다 하셨잖아요?”“살림이 넉넉한 상인의 자제로 알아보라고 했다. 곧 좋은 인연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걱정 말거라.”연화는 혼인 이야기엔 진절머리가 났지만, 굳이 지금 언쟁을 벌일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괜히 아버님과 실랑이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내가 이길 건데, 문제없어.’“예, 그리하겠습니다.”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눈빛으로 대답했다.“잘 생각하였다.”“하지만 소녀가 반드시 이길 것이니, 혼처는 천천히 알아보셔도 됩니다!”자신감에 찬 연화의 말에 홍양은 애써 웃음을 지었지만, 어쩐지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대체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아니, 아무리 연화라도… 영도를 이길 순 없을 거야. 암.’홍양은 늘 연화를 어떻게 설득해 시집보낼까 고심해 왔다.이번이 오히려 계기가 되어 줄 것이다.​​겸과 영도는 모처럼 동궁전을 벗어나 활쏘기와 격구로 기분을 풀고 있었다.그런 그들 앞에 대전의 내시가 헐레벌떡 달려왔다.“세자 저하, 주상 전하께서 급히 찾으십니다.”“아바마마께서…?”겸은 뜻밖의 부름에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최근 몇 달간 왕은 자신의 문안도 받지 않았고, 마주 보기도 꺼려왔다.그렇게 이렇게 갑자기? 그렇다고 어명을 따질만한 일은 아니다.“알았다. 곧 환복하고 뵈러 가겠다 전하거라.”내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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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연꽃은 피는가 2

영도는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예? 정말이십니까? 벌써 한 달이나 지나 잊으신 줄 알았습니다.”“잊고 있었지. 하지만 문득 그 아이를 시험해보고 싶어졌어. 내 곁에 둘 수 있을 만한 아이인지…”겸은 아련히 창밖을 바라보았다.어딘가로 달아나는 구름이 마치 자신처럼 느껴졌다.더 이상 달아나기만 할 수는 없다.“그 아이는 내게 모든 걸 바치겠다고 했다. 그 말이 자꾸 맴돌아.”“하지만… 여인입니다. 저하께서 여인이 호위무사라니요. 분명 내외의 반발이 클 것입니다. 아니, 불가능한 일입니다.”“그러니 네가 필요하다. 너와 대련을 해서 이길 실력이라면, 누구도 토를 달 수 없겠지.”영도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그 여인에게 제가 질 거라 생각하십니까?”겸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하하. 천만에. 너만 한 무사는 전국 팔도에서 구하긴 어렵지. 다만, 나는 보고 싶은 거다.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결과는 그다음 문제다.”​주군의 명이었다.영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겸이 지금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에, 자신이 겸을 지키기로 다짐한 자라면 따라야 한다."예. 저하. 명 받들겠사옵니다."​영도는 빠른 걸음으로 연화에게 가고 있다.‘이제 완연한 봄이군. 여름도 금방 오겠어.’바람은 살랑였고 햇살은 부드러웠다.바쁜 걸음에도 기분 좋은 날씨에 발걸음이 가벼웠다.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홍양대감의 집 앞에 도착했다.영도는 익숙하게 무거운 대문을 세차게 두드렸다.​"안에 누구 없느냐?"잠시 후, 삐걱이며 열린 대문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흘러들었다.그 빛을 등지고 한 여인이 천천히 다가왔다.문 사이로 흘러드는 빛이 너무 눈부셔, 영도는 무심코 눈을 가늘게 떴다.마침 지나가던 구름이 햇살을 가리자 그녀의 얼굴이 또렷하게 드러났다.맑고 단정한 이마, 나긋하게 흐드러진 잔머리, 고운 살결 위에 귀여운 주근깨..곱고 담백한 색의 저고리와 치마.그 모습은 마치, 물속에서 막 피어오른 연꽃 같았다.​단단한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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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연꽃은 피는가 3

“아… 아니… 조금 낯설어서... 그럼 다음에 뵙지요.” 영도는 상기된 표정이 들킬까 두려워, 서둘러 대문을 열고 성큼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기, 제가 배웅을…” 연화가 서둘러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따라나섰지만, 영도는 이미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연화는 자꾸만 치솟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했다. 웃고 있는 연화를 향해 막둥어멈이 다가와 물었다. “뭐가 그리 즐거워요? 입이 귀에 걸려 있네요?” “어멈, 어멈. 나... 곧 아버님 품을 떠나게 될지도 몰라.” “아까 그 잘생긴 나리랑 드디어 혼례라도 하시려는 거예요?” “아니, 아니. 혼례는 아니고… 더 고귀하신 분과…” “다른 분이요?” “아… 아니… 아무튼, 잘되면 그때 말해줄게. 히!” 언제 봐도 기분 좋아지는 연화의 미소를 보고 막둥어멈은 더 묻지 않았다. 연화가 저리도 즐거워하는데, 그것이면 족하지!​닷새 후, 약속의 날이 다가왔다.푹 자야 최상의 몸상태로 대련을 치를 텐데... 도저히 설레는 마음에 잠이 쉬이 들지 않았다. 겨우 느지막이 잠이 들었지만, 얼마 안 가 다시 눈이 떠졌다. 밖을 보니 아직 닭도 울지 않은 짙은 새벽이었다. 연화는 잠을 청하기를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입궁 준비를 했다. 가볍게 몸을 풀고, 단정하게 소세를 한 후 환복까지 마쳤지만 아직도 아침은 오지 않았다. 홍양도 이른 아침 눈이 떠니긴 마찬가지였다. 멀찍이 그녀를 지켜보다, 이내 묵직한 한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벌써 채비를 마친 것이냐?" 홍양을 발견한 연화의 얼굴에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그 모습에 한숨은 깊어졌다. “연화야… 아비와 한 약속, 잊지는 않았겠지?” “그럼요. 걱정 마셔요. 그럴리는 없겠지만... 소녀가 이기지 못한다면, 아버님 뜻을 따에 것입니다." “그래. 부디 몸 상하지 않게 조심하거라.” 마침, 동궁전의 내관이 도착했고, 연화는 큰 절을 올린 후 경쾌한 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처음 밟는 궁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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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사내가 되겠습니다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은 일격이었다.철컥.영도의 검이 튕겨나가며 하늘로 치솟다, 땅에 떨어졌다.그리고 정적.아무도 예상 못한 결과에 대련장은 침묵으로 얼어붙었다이 침묵을 깰 수 있는 단 한 사람, 겸의 목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결론이 난 것 같군.”겸, 영도, 연화.셋이 마주 앉자 어색한 기류가 형성되었다.누구도 잘못한 사람이 없었지만, 모두가 잘못한 것만 같은 이상한 기류였다.“흠... 사실… 네가 정말 영도를 이길 줄은 몰랐다.”“예. 소인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결과이오니…” 연화는 슬쩍 영도의 눈치를 살폈다.영도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저하, 이런 결과를 보여 송구합니다.”절망석인 그의 말에 연화는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겸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생각보다 복잡한 감정이 가슴을 헤집었고, 머리는 혼란스러웠다.이 상황을 어떻게 풀 것인가.세자의 곁을 여인이 지킨다?이 나라의 관습과 질서를 거슬러야 하는 일이다.그럼에도 그는 약속을 어기고 싶지 않았다.방법... 방법이 없을까...?“동궁전의 병사들, 궐 안의 무사들. 모두 사내들이지. 그들 속에서 그대는… 버틸 수 있겠는가?”"어찌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겠습니까?"연화의 시선이 단단히 그의 눈에 고정되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소녀가… 사내인 것으로 해두시지요.” 예상치 못한 말에 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사내라... 그것이… 가능한 일이냐?”“지금 이곳에서 소인이 여인임을 아는 이는 세자 저하와 영도 나리 두 분뿐입니다.두 분만 눈감아 주신다면,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것입니다.""...""소인에게는 익숙한 일입니다. 걱정 끼쳐드리지 않도록, 완벽한 사내로 살아가겠습니다.”연화의 확고한 태도에 겸은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그러나 그 안도감 속에도 복잡한 마음이 뒤엉켜 있었다.‘일은 저질렀지만…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감정에 휩쓸려 무심코 허락한 약조였다.그녀의 실력을 직접 보았고, 사람됨에도 의심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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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사내가 되겠습니다 2

연화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여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진짜, 진짜 그의 허락이 떨어졌다.어두웠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며 미소가 번졌다.그가 바라본 겸은 빛을 두른 듯 영화로워 보였다. 연화에게 그는 그야말로 구세주였다.그녀는 땅에 이마가 닿도록 엎드리며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감사의 절을 올렸다.“감사합니다, 저하!”잠자코 곁을 지키던 영도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저하, 그것은 아니 될 말씀입니다. 어찌 여인이...”그 순간, 겸의 단호한 목소리가 그를 끊었다.“내가!”영도는 그 호통에 입을 닫고 고개를 숙였다.자세를 고쳐 잡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충분히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정이다. 이 일에 더 이상 언급하지 마라.”겸의 단호한 명에 영도는 한 걸음 물러섰다.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단 한 번의 방심이, 실수가 겸을 곤란하게 만들었다.그리고 자기 자신도 곤란함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시선은 연화에게로 옮겨졌고,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매서웠다.그럼에도 연화는 개의치 않았다. 가슴은 터질 듯 벅차 있었고, 정신마저 아득해질 정도였다.그러니 영도의 표정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연화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호위무사다운 자세로 허리를 곧게 세웠다.“세자 저하, 결코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그래. 나도 잘 부탁한다.”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서 그녀를 보며 웃을 수 있었다.“저하께서는 소인의 인생을 구하셨습니다. 그러니 소인 또한 저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격앙된 목소리, 환하게 상기된 얼굴. 겸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어설프게 호위무사를 흉내 내는 그녀의 모습이 퍽 귀엽기까지 했다.“흠, 그래...”“소인의 모든 것을 저하를 위해 바치겠습니다!”“알았다 하지 않았느냐.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싱글벙글 웃는 연화와, 세상을 잃은 것 같은 영도를 보자 현실의 무게가 다시금 겸의 어깨를 짓눌렀다. 들리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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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궁 적응기 1

입궁한 지 벌써 이레가 지나가고 있다. 연화는 새벽같이 일어나 궁으로 등청을 해, 바로 서고로 향했다. 궁의 법도를 익히기 위해 매일 한 척이 넘는 책을 읽어야 했다. 세자익위사들과 마주치지 않게 하기 위한 영도의 배려이기도 했다. 하지만 적막한 서고 안에서 오롯이 혼자 시간을 견뎌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대체 뭔 놈의 법도가 이리 많은 건지… 칼 쥐는 법도 잊겠다…’ 호위무사라 하여도 실제 검을 휘두를 일은 극히 드물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와 ‘예법’, 그리고 ‘입’이었다. 실수를 해도 곤장을 맞고, 말 한마디 잘못해도 귀양을 가는 곳이 궁이었다. ​그럼에도 연화는 이따금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자니 온몸이 뻐근하고, 눈꺼풀이 천근같이 내려앉지만, 그녀는 지금 살아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 *** ​ 정자에 앉아 서책을 읽던 겸이 영도에게 물었다. “연이는 지금 어디 있지?” “서고에서 서책을 보고 있을 것입니다.” “쉽지 않을 거야. 혼자서 그 많은 궁도를 익혀야 하니 말이다. 네가 보기엔 어떠하더냐?” “생각보다 영특한 듯합니다. 그날 할당된 서책들은 모두 깨우칩니다.” “그래? 머리도 영특하다… 흠… 어느 정도 인지 궁금하구나. 내가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 서고로 가자.” ​ 겸은 영도와 함께 동궁전 서고로 향했다. 동궁전의 서고는 겸과 관리인들 외에는 드나드는 사람이 거의 없다. 창을 열면, 연못 위에 정자가 떠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 주위로 멋들어지게 늘어진 버드나무들이 둘러져 있다. 봄이면 벚꽃이 피고, 여름이면 서고의 벽을 타고 능소화가 개화한다. 가을이면 배롱나무가, 겨울이면 동백꽃이 만발하는 아름다운 정원을 품고 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이 때로는 독서를 방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집중하기 위해서 오히려 서고를 피하기도 했다. 최근이 그랬다. 정자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정자 위에 올라앉으면, 궁궐의 어느 각도에서도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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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궁 적응기 2

다음날,연화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서고가 아닌 후원으로 향했다.그곳에는 이미 궁녀들과 내관들이 사냥준비에 여념이 없었다.연화가 내관에게 다가가 물었다.“원래 사냥 가는데 이렇게 인원이 많이 필요합니까?”“오늘은 근교로 가는 것이라 평소보다 간소화한 것입니다.”연화는 내관의 말에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주위를 더 둘려봤다.쭈뼛쭈뼛 주위를 서성이던 연화가 낑낑대며 수레에 짐을 싣고 있던 궁녀에게 다가갔다.“도와 드리겠습니다.”연화를 슬쩍 본 궁녀가 얼굴이 붉어지며 화들짝 놀랐다.“괘… 괜찮습니다. 나리.”그녀의 만류에도 연화는 궁녀들의 짐을 날라 수레에 싣었다.다그닥 다그닥-말발굽소리에 고개를 들자, 겸과 영도가 후원으로 들어오고 있었다.연화는 재빠르게 다가가 겸의 손에 쥐어진 고삐를 건네받았다.“저하.”“마침 잘 왔다. 어찌 네 말인 줄 알고 건네받은 것이냐?”“네?”“입궁선물이 늦었다. 네가 궁에서 쓸 말이다.”연화가 놀란 눈으로 겸과 말을 번갈아 바라봤다.탄탄한 근육 위로 난 털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고 눈이 또렷하며, 코가 반질 거렸다.말주제에 고상하기기 말도 못 했다.말은 연화가 제 새 주인인 줄도 모르고, 콧방귀를 뀌며 푸우-푸우- 침을 튀겼다.건방져 보이는 게 누가 봐도 명마였다.“어… 어찌 이 귀한 것을…”감동에 눈물이 찔끔 날 지경이었다.집에서는 아버지와 오라비들의 말을 빌려 타야만 했던 서러웠던 나날들이 스쳐갔다."영도야, 이 녀석 퍽 연과 닮지 않았느냐?"영도는 대답 없이 혼자 낄낄 웃어댔다.연화가 그런 영도에게 눈을 흘겼다.“설마, 말을 타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예? 그럴 리가요!”“그래? 그럼 우리 먼저 말을 타고 출발하자. 잘 따라올 수 있는 거지?”“저하, 혹 소인이 저하보다 빨리 달리면 불충입니까?”“뭐? 하하하. 내가 이겨도 너는 영도에게 혼날 것이고, 져도 혼날 것이니, 불충인 것으로 하자.”영도가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오며, 내관을 향해 먼저 출발하겠다고 통보했다.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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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궁 적응기 3

겸과 영도는 연화가 사라진 자리를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저하, 시간이 너무 지체되는 듯싶습니다.”“그래. 아무래도 첫 사냥에 내가 무리한 걸 시킨 건 아닌지 걱정되는구나.”“소인이 가 보겠습니다.”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겸이 활을 챙기며 말했다.“같이 가자.”두 사람은 서둘러 연화가 사라진 숲을 향해 달렸다.초조하던 마음이 불안으로 거칠게 뛰기 시작하자 발걸음은 더 빨라졌다.그때였다.두 사람 앞에 낑낑거리며 걸어오는 연화가 보였다.“연아!”겸이 연화를 향해 달려가자, 영도가 바로 뒤를 따랐다.“저하!”겸을 향해 몸을 돌린 연화는 온몸이 땀으로 범벅되어 있었다.그리고 그녀의 손에 멧돼지 한 마리가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너!”“멧돼지를 잡았습니다! 어찌나 무거운지 끌고 오느라 시간이 늦었습니다.”겸은 연화의 손에 끌려온 멧돼지를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토끼나 여우 한 마리 정도 잡아 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저 크고 무거운 것을 지고 올 줄이야.“멧돼지를 네가 잡은 것이냐?”이 짧은 질문 한 마디에, 기다렸다는 듯 연화가 무용담을 쏟아 놓기 시작했다.뒤를 도니 멧돼지가 자신을 향해 콧바람을 내뿜다가 달려드자, 저도 모르게 활을 들어 쐈더니, 그냥 쐈는데도 멧돼지 눈에 명중을 했다나.“호랑이굴에 들어가도 정시만 차리면 된다지 않습니까? 진짜더라고요. 눈을 딱! 맞고 비틀거리는데도 달려오더라고요. 그래서 한 발 더 쐈지요. 역시나 명중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제야 주춤하는데, 그때는 좀 무섭더라고요. 안 죽을까 봐.”듣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제 할 말만 하는 연화를 두 사람이 기가 막히다는 듯 쳐다봤다.“그래서 한 발 더 쐈습니다. 그러더니 쓰러지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는데, 후… 다리에 힘이 풀리지 뭡니까? 그래도 정신을 차려야 하지 않습니까? 빨리 이 놈을 저하 앞에 던져놓으려고…”“알았다. 알았어. 숨이나 좀 쉬거라.”헐떡이며 말하는 연화의 말을 겸이 끊어냈다.“그래. 잘했다. 잘했어.”연화의 얼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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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어떤 삶을 살고 계신겁니까?

나동그라진 병사가 벌떡 일어나려 하자, 연화는 재빠르게 그의 어깨를 짓누르며 짧게 말했다. “끝났소.” 주변이 조용해졌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병사 하나가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왔다. “흥. 놈 하나 이겼다고 우쭐대지 마.” 그는 민첩한 몸놀림으로 연화에게 다가오며 낮은 자세로 다리를 걸었다. 연화는 그 발목을 넘기듯 피한 뒤, 뒤로 돌아 들어가 상대의 팔꿈치를 꺾었다. “크윽!” 연화는 힘을 덜어 그의 팔을 바닥에 누르자 비명이 새어 나왔다. “어떻소? 아직 덤빌 힘이 남았나?” “아! 아! 아파! 놔!” 아직 덜 정신을 차렸나 보네. 연화는 한 번 더 꺾인 팔을 내리눌렀다. "그만! 그만! 내가 졌어!" "할 말이 그게 다야?" "잘... 잘못했소. 내 오해, 오해했나 보오. 그러니 제발 놔주시오. 너무 아파..." 그제야 연화는 힘을 풀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에 뭍은 흙을 툭툭 털고 옷깃을 여미며 두 사람을 차례로 바라봤다. “이 정도면… 믿어주시겠소?” 그 순간, 뒤편에서 겸과 영도가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무슨 소란이냐?” 영도가 바닥에 뒹구는 두 병사를 노려봤고, 연화는 자연스럽게 자세를 고쳐 겸 앞에 섰다. 바닥에는 여전히 숨을 몰아쉬는 병사들이 몸을 주무르고 있었다. 그들은 겸을 발견하고 나서야 어기적 일어나 인사했다.​ 연화가 겸에게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저하. 단순히 실력을 증명하는 자리였습니다.” 영도는 연화를 향해 의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참말이냐?” 연화는 단호히 대답했다. “예. 소인의 제안이었습니다. 그들 역시 이를 받아준 것뿐입니다.” 겸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다 믿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겸의 눈이 두 병사를 훑고는 다시 연화에게 향했다. “… 상처는 없느냐?” “없습니다, 저하.” 영도는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두 병사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검이 아니라 다행이지. 검 들었으면 둘 다 손 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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