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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연꽃은 피는가 3

Autor: 지은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5-17 12:40:52

“아… 아니… 조금 낯설어서... 그럼 다음에 뵙지요.”

영도는 상기된 표정이 들킬까 두려워, 서둘러 대문을 열고 성큼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기, 제가 배웅을…”

연화가 서둘러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따라나섰지만, 영도는 이미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연화는 자꾸만 치솟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했다.

웃고 있는 연화를 향해 막둥어멈이 다가와 물었다.

“뭐가 그리 즐거워요? 입이 귀에 걸려 있네요?”

“어멈, 어멈. 나... 곧 아버님 품을 떠나게 될지도 몰라.”

“아까 그 잘생긴 나리랑 드디어 혼례라도 하시려는 거예요?”

“아니, 아니. 혼례는 아니고… 더 고귀하신 분과…”

“다른 분이요?”

“아… 아니… 아무튼, 잘되면 그때 말해줄게. 히!”

언제 봐도 기분 좋아지는 연화의 미소를 보고 막둥어멈은 더 묻지 않았다.

연화가 저리도 즐거워하는데, 그것이면 족하지!

닷새 후, 약속의 날이 다가왔다.

푹 자야 최상의 몸상태로 대련을 치를 텐데...

도저히 설레는 마음에 잠이 쉬이 들지 않았다.

겨우 느지막이 잠이 들었지만, 얼마 안 가 다시 눈이 떠졌다.

밖을 보니 아직 닭도 울지 않은 짙은 새벽이었다.

연화는 잠을 청하기를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입궁 준비를 했다.

가볍게 몸을 풀고, 단정하게 소세를 한 후 환복까지 마쳤지만 아직도 아침은 오지 않았다.

홍양도 이른 아침 눈이 떠니긴 마찬가지였다. 

멀찍이 그녀를 지켜보다, 이내 묵직한 한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벌써 채비를 마친 것이냐?"

홍양을 발견한 연화의 얼굴에 들뜬 기색이 역력했다.

그 모습에 한숨은 깊어졌다.

“연화야… 아비와 한 약속, 잊지는 않았겠지?”

“그럼요. 걱정 마셔요. 그럴리는 없겠지만... 소녀가 이기지 못한다면, 아버님 뜻을 따에 것입니다."

“그래. 부디 몸 상하지 않게 조심하거라.”

마침, 동궁전의 내관이 도착했고, 연화는 큰 절을 올린 후 경쾌한 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처음 밟는 궁궐의 길.

궐 안은 연화가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크고 화려했다.

"구중궁궐이라..."

떡 벌어지는 입을 다물길이 없었다.

궁녀들과 내관들이 분주히 오가는 길목마다 정갈한 장식과 정원이 이어졌고, 연못엔 물결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연화는 그 모든 풍경을 새삼스럽게 받아들이며 고개를 살짝 들었다.

집안에서만 살아온 연화에게 이곳은 낯선 장소였지만, 동시에 감출 수 없는 설렘과 긴장으로 가슴이 뛰었다.

오늘 이곳에서 자신의 인생을 건 대련이 있다.

연화의 입과 눈은 이내 단단하게 굳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목적을 잊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아름다울수록,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또렷해졌다.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이야.'

내관을 따라 궁의 동쪽으로 들어가니, 이미 그곳에는 대련장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주위를 세자익위사 군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호기심 어린 눈빛과, 경계의 눈빛들이 그녀를 향하지만 그것까지 신경 쓸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머지 않아 영도가  연화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안녕하셨습니까? 나리.”

영도를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그런데 어쩐지 영도의 표정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으며, 경직된 것 같아 보였다.

하물며 그녀와 눈도 잘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했다.

'긴장하셨나?'

영도는 상기된 얼굴이 들킬까 그저 짧게 목례만 할 뿐이었다.

영도가 연화의 앞에 마주 서 자세를 꼿꼿이 하자, 곧 겸이 나타났다.

그이 등장에 모두가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연화도 눈치껏 그들을 따라 조용히 허리를 굽혔다.

겸은 대련장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입을 열었다

“무술대회를 열었으나, 나는 아직도 내 곁을 지킬 호위무사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우연히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기에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결과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니,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그 결과가 어떻든, 절대 이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라.”

“예!”

우렁찬 함성소리와 함께 곧 두 사람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영도는 칼을 높이 쳐들었지만, 그녀를 보자 눈과 마음이 흔들렸다.

대련을 앞둔 검객이 아니라, 여인을 바라보는 사내의 눈이었다.

첫 검은 그의 머뭇거림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역시나, 연화는 결코 물러섬이 없었다.

칼을 쥔 손끝이 유연하고 단단했으며, 몸놀림은 춤을 추듯 매끄러웠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더 강하게 그녀를 밀어붙였다.

확실히 힘에 있어서는 부족했다.

하지만 그것을 상쇄할 빠르고 정확한 몸놀림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경험에 당황스러웠다.

'이런 식의 대련은 처음이다.'

누구 하나 물러섬 없이 둘은 팽팽히 맞섰다.

흙먼지가 일고,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후원을 울렸다.

쉽게 끝나지 않을 모양이다.

이어지는 대련은 누구도 쉽게 승패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치열했다.

연화는 빠르고 정확한 수비로 영도의 강공을 받아내었고, 그럴수록 영도는 점점 흔들려 갔다. 

‘왜 쓰러뜨릴 수 없지? 정말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냐?’

자신을 향한 비난은 날 선 검이 되어 그녀를 향했다.

칼끝이 그녀에게 향할 때마다, 그녀의 단단한 눈동자가 시야를 파고들었다.

그녀의 집중력, 끈기, 단호한 의지는 영도를 흔들고 어지럽혔다.

연화 또한 지쳐가고 있었다.

이 대련에서 이기기 쉽지 않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영도의 칼은 생각보다 더 매서웠다.

지난번 영도와 대련했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영도가 휘두르는 공격을 매번 간신히 빠져나갔지만, 검이 한 번씩 부딪칠 때마다 몸이 휘청거렸다.

연화는 그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욱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길어지는 싸움에 잠시 숨을 고르며, 서로 멀찌감치 떨어졌을 때였다.

그 순간, 벚꽃을 실은 봄바람이 불어와 연화의 잔머리가 흩날렸고, 그 자리에 햇살이 그녀의 이마에 닿았다.

그 모습이, 영도에게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발그레 웃던 고운 얼굴, 단아하고 고고한 자태.

심장이 뛰었고, 시선이 흔들렸다.

그러자 칼을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렸고, 그가 다시 집중하려는 찰나, 연화가 먼저 그를 향해 칼을 뻗었다.

“하압!”

‘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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