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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품안의 자식

“그래. 심지어 합궁일 때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시더니 안 오시는 거야.”“바쁘셔서 그런 거 아냐? 신혼에 독수공방이 웬 말이야?”“뭐, 그런 것도 있겠지만... 혹... 마음에 둔 여인이 있으신 게 아닐까?”“에이, 설마. 대전 나인들이 그러는데 정말 전하께서는 나인이고 상궁들에게 눈길 한 번 안 주신다던데? 일만 하신대.”“그럼 대체 왜 그러시는 거지? 아니, 이렇게 젊고 고운 색시를 매일 밤 기다리게 하시는 게 이상하지 않아?”“정말 일 때문이실까? 여인도 멀리하시고... 흠... 합리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말이야... 아!! 설마...”“설마 뭐? 뭔데!”궁금함에 재촉는 궁녀와 달리, 다른 궁녀는 말하기를 망설이는 모양새셨다.“아니야.”“뭐야? 뭐가 아닌데? 사람 궁금하게. 놀리냐?”“아, 글쎄 아니라니까. 별거 아니니까, 이제 가자. 상궁마마한테 들킬라. 흐흐.”나인들의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연화는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혹여, 그것이 자신 때문일까. 걱정이 되면서도 미묘하게 안심도 되는 자신의 이중성에 머리를 쥐어뜯었다.어찌 되었거나, 궁녀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연화가 홍양대감과 함께 입궁했다.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궁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저번에 봤을 때 영 안색이 좋지 않더니, 이제는 괜찮은 것이냐?”“예, 아버지. 며칠 잠을 못 잤더니 몸살기가 있었나 봅니다.”“몸살이 온 건 쉬라는 몸의 신호 아니냐? 일도 좋지만 몸을 먼저 챙겨야지.”“걱정 마세요. 보세요. 지금 건강하지 않습니까?”연화는 어깨를 펴고 보란 듯 팔을 위아래로 흔들었다.“허허. 그래, 뭐든 알아서 잘하는 아이니 잔소리는 그만해야겠구나.”"아버님...""왜 그러느냐?""전하께서 국정운영에 몹시 버거우신 모양입니다.""그러하시겠지...""아버님께서 조금만 힘을 보태주시면 안 될까요?""흠… 글쎄다.. 쉽사리 대답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생각을 좀 해보자꾸나."대화를 나누며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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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갈 길을 가소서.

연화가 돌아왔을 때는 부원군 대감이 와 있었다.“부원군께서 좌의정 자리에 앉아 주셨으면 합니다.”“전하, 부디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혹시라도 있을 청탁이나 권력이 집중될까 염려되옵니다.”“부원군께서는 그리하실 겁니까?”“예? 그럴 리가요, 전하. 여식을 중궁전으로 보냈을 때에는 그 모든 걸 내려놓아야 가능한 것이 아닙니까?”“그러니 말입니다. 부원군께서는 그런 분이 아니시니 관직에 나오시라 청을 드리는 겁니다.들으셨겠지만 아직 과인이 부족하여 국정을 운영하는 데 걸림돌이 많습니다.제가 온전히 국정 운영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외척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우려하여 중전의 친정은 보통 관직에 나서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하지만 지금의 겸은 단단한 ‘자신의 편’이 간절했다.다행히 겸의 곁에는 권력에 욕심 없는 강직한 선비들이 있다.하지만 그만큼 그들을 관직으로 부르기란 더 쉽지 않은 일이었다.부원군 역시 선대왕 시절 영의정까지 올랐지만, 세력에 밀려 반강제로 낙향한 인물이었다.그 덕에 여식을 중전으로 들일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겸의 진심이 느껴졌고, 부원군은 그가 나라를 잘 이끌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한참을 망설였지만, 결국 겸의 청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전하, 소인에게 관직을 내려주신다면 충성을 다해 전하와 나라를 위해 일하겠습니다.”“고맙습니다, 장인.”겸은 홀로 앉아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그림들을 다시 떠올려보았다.이원익 대감만 승낙해 준다면, 생각했던 판이 완성될 터였다.겸이 깊은 생각에 잠긴 사이, 연화는 낮에 들은 나인들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그리고는 겸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야겠다고 결심하며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전하.”연화의 부름에 겸이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미소가 스며들었다.“그래, 할 말이 있느냐?”“예.”“말해보거라.”“가례 이후 중전마마와 합궁을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는 것이 사실이십니까?”생각지도 못한 연화의 질문에 겸은 당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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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합궁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원망과 결단이 보였다.“ 네 말대로, 앞으로는 모든 일의 우선은 내 나라와 백성이 될 것이다. 너를 위해서라도 진짜 왕이 되겠다. 약속하마.”그를 바라보는 연화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각자의 역할에 몰두될수록 멀어지는 자신들의 처지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다.“전하께서는 성군이 되실 겁니다. 소인의 온몸과 마음을 다 바쳐 도울 것입니다.”“그래, 알았다. 알았어. 이 또한 내가 사랑하는 너의 모습이니 받아들여야겠지.”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 애잔한 미소가 피었다.“네가 웃으니 좋다.”겸은 밝아진 연화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입을 맞추었다.“연화야… 나는 요즘 너를 보면 왜 이렇게 불안한지 모르겠구나.너는 늘 내 곁에 있는데 왜 네가 멀어지고 있다고 느껴지는 걸까?”연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으로 뱉어 내면 사실이 될 것 만 같아서.그저 말없이 그에게 입술을 맞추고 그의 품에 파고들며, 그 불안을 잠재울 뿐이었다.그렇게 그들의 밤이 또 지나가고 있었다.*** 다음 날, 제조상궁이 합궁일을 알려왔다.“삼일 후입니다, 전하.”“그래… 알겠네. 준비하도록 하시오.”“전하, 혹시 이번에도…”어렵게 잡은 합궁일마다 사라져 버리는 왕을 두고, 제조상궁은 피가 말랐었다.“이번에는 꼭 갈 것이니 걱정 말게.”제조상궁의 얼굴에 안도와 기쁨이 떠올랐다. 이번엔 진짜 일 것 같았다.합궁일이 되자, 겸은 중궁전으로 향했다. 그가 걷는 걸음이 어쩐이 속도가 나지 나지 않는 것 같았다.제조상궁은 또 일이 엎어질까 그의 옆에서 동동거리며 그를 재촉하고 나섰다.한편, 연화는 혹여 겸이 신경 쓰일까 염려되어 영도와 교대일을 바꿔 집으로 향했다.늦은 밤, 막내 오라비의 문을 벌컥 열고는, 칼자루를 던졌다.몸을 혹사하고 싶었다. 머릿속의 잡념을 떨쳐내고 싶었다.땀이 나도록 아무 생각이 나지 않도록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결국, 오라비가 땅에 드러누우며, 항복을 외치고 나서야 칼집을 내려놓았다.이마에는 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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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후궁 1

중전의 마음은 어쩐이 외롭고 서글펐으며, 몸도 아려오기 시작했다.중전으로서의 가장 큰 임무는 후사를 보는 일.그 의무를 마쳤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다.그간, 자신을 짓누르던 마음의 짐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도 같았다.하지만 물밀듯 밀려오는 쓸쓸함은 어쩔 수 없었다.‘괜찮아. 무언가를 바란 것이 아니었잖아. 내 할 일을 했으니 된 것이지.’중전은 올라오려는 외로움을 꾹 눌러 담고 자기 자신을 다독였다.긴장이 풀려서인지 갈증이 밀려왔다.“김상궁, 물을 좀 내오게.”물을 내놓는 상궁의 얼굴이 싱글벙글이었다.“중전 마마, 주상 전하께서 나가시면서 중전 마마의 몸을 잘 살피라 소인에게 당부하고 가셨습니다.”“그런가?”“예, 마마. 참으로 다정하지 않으십니까?”“그러한가…”왕은 중전을 대할 때 거칠지도, 무례하지도 않았다.오히려 조심스럽고 공손한 태도였지만, 그 마음이 온전히 자신에게 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중전은 느낄 수 있었다.마음은 두고, 몸만 자신 곁에 있는 듯한 불편한 기분에 그녀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김상궁, 회임 여부는 얼마나 지나야 알 수 있는 것이냐?”“정확하진 않지만, 빠르면 보름, 늦어도 석 달 안에는 알 수 있습니다. 그동안 옥체를 소중히 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회임할 수 있으시니까요.”“알겠네.”중전은 김상궁에게 물러가라 지시하고, 다시 이불속으로 몸을 눕혔다.쓸쓸한 밤이었다.***우의정은 아침 일찍 마당을 서성이고 있었다.‘가마가 올 때가 되었는데…’오늘은 우의정의 여식이 입궁하는 날이었다.며칠 전, 우의정은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었다. “대감 오셨습니까?”“부인, 옥주를 데리고 들어오시오.”잠시 후, 우의정 앞에 그의 부인과 여식 옥주가 자리에 앉았다.“옥주야, 드디어 네가 혼례를 치르게 되었구나.”“예? 대감! 어느 댁 자제입니까? 그리 미루고 미루시더니 얼마나 대단한 댁 자제이기에 이리 갑작스럽게 혼례를 올리라 하십니까?”“허허, 부인. 대단한 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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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후궁 2

입궁일 아침이 되었다.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옥주는 아침 일찍 일어나 곱게 단장을 하고 가마를 기다렸다.가마꾼들이 들어오자 옥주는 밖으로 나섰고, 그녀를 본 모든 사람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여식을 보고 입이 귀에 걸린 우의정이 다가왔다.“마마, 이리도 고우십니다.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온 줄 알았습니다. 전하께서 얼마나 좋아하실까요? 자, 자, 어서 서두르세요. 궁으로 들어가는 겁니다.”“가마가 정말 화려하네요, 아버지. 궁에 들어가면 이 가마를 매일 탈 수 있겠지요?”“그럼요. 이제부터 궁 안의 모든 것이 마마의 것입니다. 하하하.”옥주는 부모를 향해 큰절을 올리고 가마에 올라탔다.  흔들리는 가마 안에서, 옥주는 설레는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사실 그녀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오랫동안 편지를 나누고 정을 나누었던 정인.하지만 그와의 혼인은 그녀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았다.그는 몰락한 양반가의 가난한 도령에 불과했다.그를 품고 가기에 그녀의 야망은 너무 컸다.잊어야 했다. 마음을 다잡은 옥주는 주상 전하가 어떤 분 일지 궁금해하며, 어젯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소문에 따르면, 주상은 넓은 어깨와 등을 가진 듬직한 체형에, 인상은 부드럽고 온화하며 귀티가 흐른다고 했다.한번 본 사람들은 그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고 하던가.그가 미소 지어주면 그 모습에 황홀에 빠져든다는, 다소 전설 같고 과장된 이야기들도 있었다.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조차 뭇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만큼 충분한 매력이 있다는 뜻일 터.옥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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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후궁 3

그녀의 일그러진 표정에 우의정과 부인은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그래서 아버지께서 매번 들어오는 혼처마다 퇴짜를 놓으셔도 기다렸어요. 그런데... 그런데 이게 뭔가요? 신랑도 없는 혼례라니요... 제가 왜 이런 혼례를 해야 하나요?”옥주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철없는 딸이 무슨 행동을 할지 몰랐던 우의정은 급히 옥주를 달래서 자리를 떠나야 했다.“일단, 일단 마마 방으로 드시지요. 이쪽으로 오세요.”처소로 돌아온 옥주는 여전히 화가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자리에 앉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앙 다문 턱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마마, 궁은 원래 외로운 곳입니다. 인내해야 할 일도 많지요. 지금은 전하께서 너무 바쁘셔서 마마 혼자 책봉을 치르셔야 했지만, 걱정 마십시오. 주상 전하께서 마마를 보시면 분명 마음을 빼앗기실 겁니다. 못 보셔서 그럴 겁니다.”“정말 그럴까요, 아버지?”“그럼요. 오는 길에도 모든 이가 마마의 용모를 칭찬하느라 어찌나 입들이 바쁘던지요. 입을 쩍 벌리고 다물지를 못하더라니까요.”“그래도요 아버지. 전하께서 계속 찾지 않으시면요? 소녀를 봐야 빠지시든 뭘 하든 하실 거 아닙니까?”“마마. 걱정 마십시오. 이 아비가 직접 전하를 찾아뵙고 말씀드릴 것입니다.”“정말이지요?”“그럼요, 마마. 그리고 이것 좀 드십시오. 아침부터 한 끼도 안 드시지 않았습니까?”계속 심술이 나 있던 옥주는 앞에 놓인 다식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그래. 필시 전하께서 나를 보면 반하실 거야. 전하의 총애를 받으며 살 수 있어. 조금 기다리는 것이 뭐 어렵다고. 이제 하루밖에 안 되었잖아.’옥주를 달래고 나온 우의정도 심기가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빨리 입궁시키라 닦달하던 왕이, 코빼기를 내비치기는커녕 일언반구조차 없다니…우의정은 임금이 있는 대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주상 전하, 우의정 대감 드셨습니다.”“드시라 해라.”우의정은제 심기를 감추고, 겸에게 인사한 후 자리에 앉았다.“전하, 소신의 여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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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독수공방

옥주는 예고 없이 들이닥친 임금을 보고 까무러칠 뻔했다.상황에 놀라고, 시선을 사로잡는 그의 용모에 또 한 번 놀랐다.거대한 용포자락을 휘날리며 들어온 그는 마치 단단한 성벽과도 같았다.자그시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저… 전하… 소첩, 정가 옥주 인사드립니다.”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뒷짐을 진 채 어질러진 방과 그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정 귀인이 배가 많이 고팠나 보군. 내가 수라를 이쪽으로 보내라 했소. 첫날이니 말이오.”“예? 전하, 찬이 이리도 부실한데요… 어찌 이런 수라를 드시나이까…?”“지금은 상중이고, 전쟁과 기근으로 굶고 있는 백성이 많으니, 당연히 왕인 내가 먼저 솔선수범해야 하지 않겠소? 밥상의 가짓수를 줄이라 명한 것은 과인이요.”“소… 소첩은 그것도 모르고…”제가 벌인 소동과 그에게 남긴 자신의 첫인상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런, 낭패가 있나. 그녀는 고개를 들 지 못한 채 제 발끝만 바라보았다.“그대도 왕실이 일원이 되었으니, 응당 그리 해야 할 것이요. 할 수 있으시겠소?"“지당한 말씀이십니다. 전하. 소첩이 미처 알지 못하여… 미리 알려주셨다면 이리 화를 내지 않았을 텐데요.”“나인이 말을 막은 건 귀인 같던데?”“예? 아니, 그것이…”겸은 물을 흠뻑 뒤집어쓴 나인을 보며 말했다.“괜찮으냐?”물에 젖은 생쥐처럼 방구석에 앉아 있던 나인은 자리에 엎드리며 대답했다.“예? 괜찮습니다, 전하. 소인이 금방 치우겠습니다. 젖으실까 염려되옵니다.”“물 잔이 깨진 듯하니 조심하거라.”그의 시선이 비산 한 물 잔의 잔해들에 흩어지자, 연화가 나인의 곁으로 다가가 깨진 물 잔을 함께 주웠다.“괜찮습니다, 나리. 제가 하겠습니다.”“다치니 물러나 있으시오.”연화는 물을 뒤집어쓴 채 몸을 떨고 있는 나인을 뒤로 물리고, 흩어진 물 잔을 치우기 시작했다.그 모습을 겸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그의 입가가 가늘게 경련하는 것을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었다.연화가 다칠까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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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좌천

“아니, 신은 그런 뜻이 아니오라…”“됐네.”그때 마침 편전의 문이 열리고, 모두의 시선이 그 문으로 향했다.그 문으로 홍 양과 이원익이 들어오고있었다.대신들과는 달리, 겸은 반색을 하며 그들을 맞이했다.“아! 때마침 오셨군요. 앞쪽으로 오십시오.”편전 안이 웅성거리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대신들의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겸은 자신의 앞에 선 두 사람을 향해 이야기했다.“하… 과인이 여기 있는 대신들에게 인사를 단행하라며 며칠째 얼마나 들볶였는지 말도 마십시오. 두 분을 보니 이제야 한숨 돌리겠습니다.”홍양과 이익환이 겸의 앞에 예를 갖춰 인사를 했다.고개를 끄덕이는 겸의 표정이 한 껏 들뜬 듯 보였다.“자! 모두들 들으시오. 그대들이 그리도 바라던 인사 발표를 해야겠소. 도승지는 교지를 들고 앞으로 나오라.”마치 기다렸다는 듯, 준비된 인사 교지에 신료들은 어리둥절하며, 얼빠진 모습이었다.그 정신없는 틈에도 우의정이 급히 한 걸음 나와 임금을 향해 말을 했다.“전하, 아무리 주상 전하시라도 인사를 마음대로 단행하실 순 없습니다.”“아까는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그대 옆에 있는 좌의정이 말하던데? 그리고 인사 단행은 관례상 왕과 신하들이 함께 정했던 것이지, 엄연히 왕의 권한이 아니겠소? 또한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니만큼 문제가 없을 듯한데?”“전하, 그렇지만…”겸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그의 말을 막아섰다.그리고 교지를 손에 들고 흔들어 보이며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자, 자. 이 교지 안에 그대들의 이름이 있을까? 없을까? 그대들의 발언을 들어보고 이 안의 내용을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자, 과인에게 발언하고 싶은 대신들 있으시오?”겸의 반 협박에 대신들은 서로 눈치만 보기 바빴다.“없는것 같으니. .. 도승지, 인사 교지를 읽으라.”“예, 전하.”도승지가 임금에게 건네받은 교지를 들고 대신들 앞에 섰다.“정1품 영의정에 이익환 정1품 우의정에 정태륜 정1품 좌의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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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회임

울분에 차 꺽꺽 거리는 딸자식의 모습에 우의정은 그녀를 달래기 위해 목소리를 낮췄다.“전하께서 아직 마마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셔 그렇습니다.전하께서 마마를 자세히 보신다면, 분명 마음을 빼앗기실 겁니다.곧 마마의 생신이니, 그날이 기회입니다. 그날 전하의 마음을 꼭 사로잡으셔야 합니다.”우의정이 다가가 살포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씩씩거리던 정귀인의 숨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생일연회를 해주실까요?""그럼요! 당연하지요! 그때가 기회입니다. 마마가 돋보일 기회요!"“예, 아버님. 그럼 노력해 보겠습니다.”한편 겸은 회의를 마친 후, 영의정 이익환과 부원군(좌의정), 홍양을 따로 불렀다.“대감들께서 이렇게 들어와 계시니, 과인이 마음이 든든합니다. 이익환 대감, 과인의 뜻을 따라주어 참으로 고맙소.”오랜만에 입궐한 영의정 이익환은 아직 관복에 익숙하지 않은 듯, '예'하며 간단한 대답만 할 뿐이었다.이를 본 홍양이 대신 입을 열었다. “영의정께서 어찌나 고사를 많이 하시는지, 설득하는 데 꽤나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전하와 같으시니, 결국엔 전하의 뜻을 따르시기로 하셨지요.”“고맙습니다, 영의정.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도록 과인에게 조언을 아끼지 말아 주시오.”“전하, 소신이 기억하는 전하께서는 정의롭고 따뜻하며 넓은 혜안을 지니신 분이셨습니다.그런 분께서 임금 자리에 오르셨으니, 나라를 살피고 일으키는 일에 기꺼이 힘을 보태겠습니다.또한, 이 자리에 함께한 신의겸 부원군과 홍양 판서께서도 함께하시니, 소신의 결정이 어렵지는 않았습니다.”“고맙습니다, 대감. 모두 이렇게 과인과 뜻을 함께 해주시니 참으로 든든합니다.앞으로 과인은 세력에 관계없이 나라에 도움이 되는 충신은 계속 등용할 것이며,그렇지 못한 자들은 가차 없이 내쫓을 것입니다.관직이 힘의 상징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라를 위한 일꾼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이로써 그의 왕국이 순조롭게 세워지고 있었다.대신들을 물리고 나서도 겸은 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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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냉정과 열정 사이

겸은 연화의 표정을 지그시 살펴보았다.기쁨도, 서운함도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담담한 표정이었다.“그래. 사실 어떤 기분일지 상상도 하지 못하였는데, 막상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꽤나 좋더구나.”“그럼요, 전하. 더 많은 왕자와 공주님들이 태어나셔야 왕권이 더 단단해질 것입니다.”이렇게 둘만 있는 한 공간에서도 그녀는 그에게 거리를 두는 듯 보였다.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별안간 든 불안한 마음에, 그는 그녀를 채근하지 않았다.“그래, 알았다. 그러니 그, 잔소리 좀 그만하거라.”“예, 전하.”연화가 겸을 향해 살짝 웃어 보였다.그 잠깐의 미소에 언제 그랬냐는 듯 서운한 마음이 몽글몽글 내려앉았다.“연화야.”“예, 전하.”“오늘 중전의 회임 소식을 듣고 나서 이런 상상을 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나는 자꾸만… 멈출 수 없는 상상에 빠지곤 해."“……”“너와 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다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그를 바라보던 반듯한 눈빛이 흔들리며, 고개를 내저었다.“전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중전마마의 회임은 축복이고 상이지만, 저는 아닙니다. 그것은 불행이자 벌이 될 것입니다. 저는 싫습니다. 싫습니다. 전하.”온몸으로 거부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예상했던 반응이었고, 꿈꿔왔던 상상은 무너져 내렸다.“그래, 네가 그리 말할 줄 알았다. 그만 화내거라. 그냥… 생각만 해본 것이야.”“전하, 혹여라도 소인으로 인해 전하께 곤란한 일이 생긴다면, 저는 살 수 없습니다. 제 마음을 이해하시지요?”“그래, 안다. 수없이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나 또한 네가 잘못될까, 너를 더는 욕심내지 않는 것이다. 너야말로 내 마음을 헤어리 기는 하는 것이냐?”알고 있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통제하고 있는지.하지만 연화는 대답하지 않았다.겸은 잠시 고개를 떨구고, 그녀와의 벌어진 시간차를 메꾸고자, 천천히 차를 들어 올렸다.“연화야, 너는 잘 지내고 있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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