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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지만 너는 인질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181 - チャプター 190

195 チャプター

EPISODE 179

신랑 측 귀빈석.에구치는 특유의 차갑고도 정제된 눈빛으로 홀로 서 있었다.식장 안을 훑던 그의 묵직한 시선이 입구 쪽을 향하고, 요스케의 단단한 팔에 살포시 팔짱을 낀 채 들어서는 유진을 발견한 순간 딱 멈추어 섰다.동시에 요스케의 고개도 돌아갔다.허공에서 두 남자의 날 선 시선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순간.찰나였지만 으스러질 듯한 압박에 유진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옆에 선 요스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세상 그 어떤 적 앞에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렉스의 제왕.절대 군주 같던 남자의 날카로운 시선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잔뜩 긴장해 관자놀이에 푸른 핏대가 선 그의 옆모습이 안쓰러울 만큼 위태로워 보였다.하지만 유진은 일부러 아는 척하지 않았다.굳이 과거의 인연을 의식하거나 흔들리는 나약한 태도를 보여 남편의 가슴에 불안을 더해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지금 자신의 곁을 지키는 이 서툴고 질투 많은 남자가 자신의 온 세계이자 전부라는 사실을 요스케 그 자신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유진은 평소보다 한층 더 차분하고 우아하게 걸음을 옮겼다.그리고 기어이 에구치와 유진의 시선이 공중에서 똑바로 부딪쳤다.류 요스케와 단단히 팔짱을 낀 채, 유진은 시선을 피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에구치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한때 자신의 절망 속 구원이 되어주었던 사내.그러나 이제는 완벽한 타인이자 언니의 지인일 뿐인 그를 향해, 유진은 가장 품격 있고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그 미소는 에구치에게 던지는 가장 완벽하고 단호한 작별 인사였다.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그녀의 눈인사에 먼저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쪽은 에구치였다.그 찰나의 눈 맞춤만으로도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이제 서유진이라는 여자의 세계에는 자신이라는 존재의 잔재조차 단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그의 심장이 툭 소리를 내며 깊고 어두운 바닥으로 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우린…… 정말 끝이 났구나.]유진을 향해 고정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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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80

유진은 요스케의 손을 잡고 웅성거리는 연회장을 빠르게 빠져나왔다.복도 구석, 무거운 호텔 비상계단 철문을 밀고 어둠 속으로 들어섰다.결혼식이 한창인 웅장한 볼룸 바로 위층. 객실 층으로 연결되는 깊고 차가운 비상계단.희미한 센서등마저 이내 툭 꺼지며 짙은 어둠이 두 사람을 집어삼켰다.유진은 망설임 없이 요스케의 두 뺨을 매끄러운 손으로 감싸 안았다.질투로 붉게 달아오른 그의 짙은 눈동자에 자신의 시선을 단단히 고정시켰다.“나 딴 사람들 시선 같은 거…… 날 어떻게 보든 상관없어요. 난 스위스에서 당신을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오직 당신밖에 안 보이니까. 그러니까 한눈 팔지 말고 나만 봐요.”자신만을 바라보는 아내의 모습에도 그는 불안했다.그녀를 너무 사랑해서 어떤 것도 뺏기지 싫었다.그때 유진이 먼저 까치발을 들어 긴장으로 굳어 있던 그의 얇은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그 달콤하고도 도발적인 자극에, 참아왔던 욕망의 도화선에 붉은 불꽃이 튀었다.두 사람은 순식간에 겉잡을 수 없이 뜨거워졌다.요스케는 낮고 거친 신음을 내뱉으며 유진의 가느다란 허리를 가차 없이 끌어안았다.그러고는 그녀의 몸을 거칠게 밀어붙여 차가운 콘크리트 벽면에 내몰았다.쿵 하는 충격음과 함께 유진의 등 뒤로 단단한 벽이 닿았다.요스케는 양팔로 그녀의 머리 옆 벽을 짚어 완전히 가둬버렸다.그리고 숨 쉴 틈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유진의 입술을 집어삼키며 거칠고 진한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실크 드레스 너머로 드러난 하얀 쇄골과 목선 위로 젖은 입술이 오르내렸다.찍어 누르듯 남겨지는 열기에 유진의 입에서 가쁜 숨이 터져 나왔다.잠시 입술이 떨어지자, 거칠게 맞부딪히는 숨소리가 차가운 계단실을 가득 채웠다.어둠 속에서도 두 사람의 눈동자는 서로를 갈구하며 붉게 일렁이고 있었다.“하아…… 유진아…… 안 되겠어. 나 진짜…… 지금 당장 너 안고 싶어. 널 갖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요스케의 낮게 떨리는 목소리에는 이미 이성이 한 톨도 남아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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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81

비상계단의 어둠 속에서 숨 막히는 격정을 치러낸 후.식장으로 돌아온 요스케와 유진의 시선에는 정말로 그 어떤 타인도 들어오지 않았다.방금 전까지 요스케의 심장을 잔인하게 옥죄던 에구치의 존재감도, 수많은 하객들의 웅성거림도, 두 사람의 철옹성 같은 세계 앞에서는 한낱 먼지에 불과했다.유정의 결혼식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은은한 클래식 현악 선율이 식장을 가득 채웠다.메인 원형 테이블에 단정하게 앉은 유진.하지만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는 여전히 비상계단에서의 적나라하게 뜨거웠던 열기로 달아올라 있었다.유진은 테이블보 아래로 은밀히 손을 내렸다.요스케의 단단한 허벅지 안쪽을 슬며시 쓸어내리며, 그에게 쉴 틈 없는 유혹의 온기를 보냈다.요스케는 잔뜩 가빠진 호흡을 내쉬며 유진의 손목을 붙잡아 제지하려 했으나, 이미 그녀가 온몸으로 뿜어내는 치명적인 열기에 정신없이 빠져들고 있었다.“너… 날 얼마나 더 미치게 만들 생각이야?”요스케가 턱근육을 단단하게 악물으며,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경고하듯 속삭였다.“너 자꾸 이러면…… 우리 유정이 결혼식 끝까지 못 보고 나가야 하는 수가 있어. 내 인내심 시험하지 마.”“그럼 어떻게 해요? 난 아직 당신이 너무 필요하다는데? 내 몸이 자꾸 당신을 달라고 울어요.”유진은 나긋나긋하게 미소 지으며, 요스케의 재킷 주머니 속으로 자신의 가녀린 손가락을 부드럽게 밀어 넣었다.그리고는 무언가를 슬쩍 집어넣은 뒤 손을 뺐다.“뭐야?”요스케가 호기심으로 미간을 살짝 좁히며 자신의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넓은 손안에 잡히는 것은 기묘할 정도로 부드럽고 얇은 작은 레이스 조각이었다.“나 어떻게 해요, 요스케? 나 너무 젖어버려서 입고 있을 수가 없어요.”“뭐…?”순식간에 주머니 속 레이스 조각의 정체가 유진이 입고 있던 붉은 레이스 팬티라는 것을 알아차린 요스케의 얼굴이 평생 본 적 없을 만큼 당황함과 열기로 붉게 달아올랐다.요스케의 시선이 가차 없이 유진의 하반신으로 향했다.지금 자신들의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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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82

요스케의 거친 숨결이 유진의 입술을 지독하고 진하게 집어삼켰다. 기분이 묘했다. 열 여섯. 스위스 기숙사 앞, 요스케가 데려다 주던 그 차 안에서의 설렘이 생각났다. 처음으로 이성에 대한 설렘과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그때. 그 소녀로 돌아간 것처럼 가슴이 파르르 떨렸다. 갑자기 얌전해진 유진. 심지어 자신을 살짝 밀어내기까지 했다. “너…… 나 또 골탕 먹이려는 거야?” “그게 아니라……” 유진이 살짝 수줍은 듯이 시선을 낮게 내리며 우물쭈물 거렸다. “갑자기 심장이 너무 뛰어서……” “뭐? 어디 아픈 거야?” 요스케의 표정이 순간 사색이 된 채 유진의 이마부터 손으로 짚었다. 그러자 유진이 그제야 그를 빤히 바라봤다. “나 안 아파요. 그냥 당신이 너무 좋아서……” 갑작스러운 그녀의 고백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놀라 숨조차 쉬지 못했던 그의 숨통이 터진 듯, 그가 훅 하고 한숨을 쉬다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가 유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너 사람 심장 떨어지게 하는 방법도 아주 가지가지다. 너 이렇게까지 안해도 나 너한테 미쳐 있는 거 몰라? 그만 괴롭혀. 이러다 나 심장병 걸리겠다.” “에이…… 당신 그 정도로 약골 아니잖아요.” 그러자 그가 유진의 손목을 확 낚아채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렸다. 쿵쿵 거리는 거친 심장 박동이 손바닥을 타고 그대로 척추까지 그대로 전해지며 야릇한 전율로 퍼져나갔다. “이래도 못 믿겠어?” 유진은 잠시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기억했다. 자신이 얼마나 이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었는지. 그 스위스의 차 안에서 그가 자신의 첫 사랑이 되어주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랬는지. “나…… 당신이랑 첫 키스 하고 싶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요스케는 알 수 없는 수수께끼를 받은 것처럼 유진을 빤히 쳐다봤다. “스위스에서도 제주도에서도 당신이 내 첫 키스를 망쳤으니까…… 이제 제대로 해주세요. 내 첫 키스.” 그제야 그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그리고 아주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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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83

통창 너머로 도쿄 스카이트리가 그들의 정사를 붉게 내려다보고 있었다.그날 밤 두 사람은 최고의 황홀경을 경신했다.아이들의 울음소리도, 가문의 무거운 의무도 완전히 차단된 완벽한 낙원 속에서.요스케는 밤새도록 유진의 몸 구석구석을 자신의 입술과 존재감으로 각인하듯 탐닉했다.유진 역시 요스케의 지독한 소유욕을 자신의 유연한 몸으로 전부 받아내며 그를 쾌락의 구렁텅이로 이끌었다.“하아…… 넌 진짜 요부야. 날 죽이려고 작정한 악마야……”요스케는 유진의 몸 가장 깊은 곳에 자신의 닻을 내린 채, 몇 번이고 절정에 오르면서도 결코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널 못 놓겠어. 너에게 중독돼서……. 네 몸에서만 이렇게 있고 싶어.”유진은 사정의 여운으로 파르르 떨리는 요스케의 단단한 등 줄기를 두 팔로 꽉 끌어안으며, 그의 귓가에 숨 가쁘게 속삭였다.“빠져나가지 마요. 그냥 이대로 내 안에 묶여서 평생 살아요…”절정이 끝난 후에도.요스케의 신체는 유진의 따뜻하고 좁은 내벽 안에 진득하게 물려 있었다.두 사람은 서로의 몸에 단단히 묶인 채로 한 치도 떨어지지 못했다.서로의 살결에서 풍기는 땀 냄새와 절정의 야릇한 체향, 그리고 서로의 심장 박동 소리만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오직 서로만을 향한 지독한 중독증과 소유욕으로 완성된 도쿄의 밤.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영혼과 육체를 완벽하게 구속한 채,세상에서 가장 황홀하고 안전한 낙원의 깊은 잠 속으로 함께 들어갔다.*도쿄 스카이트리의 붉고 푸른 네온 불빛이 유리창 끝을 타고 은하수처럼 하얗게 흘러내리는 아사쿠사 러브하우스의 3층 욕실.은은한 천연 아로마 로즈메리 향이 수증기와 함께…다정하게 번지는 커다란 자쿠지 욕조 안 뜨겁게 찰랑이는 물결 사이로,조금 전까지 한 치의 자비도 없이 격정적인 사투를 치러낸 두 사람의 지친 나신이 실타래처럼 나른하게 엉켜 붙어 있었다.요스케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채…자신의 품 안으로 아기 고양이처럼 부드럽게 파고든 사랑스러운 유진을 터질 듯이 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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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84

“어머니. 준이랑 하나 좀 봐주세요.”렉스 회장의 도쿄 최고급 초호화 저택 거실.통화 버튼을 누른 유진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했다.그녀의 시선 끝에는 거실 카펫 위에서 소란스럽게 움직이는 두 아이가 있었다.아들 준, 딸 하나.이제 제법 말문이 트이고 뛰어다니기 시작한 세 살배기 쌍둥이들은 요스케의 날카롭고 매혹적인 눈매와 유진의 우아하고 맑은 이목구비를 그대로 빼다 박은 인형 그 자체였다.게다가 엄마의 머리를 고스란히 닮아, 이미 벌써 또래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수학 교재를 가지고 노는 천재들이기도 했다.“또? 너희 부부 아주 대놓고 상습범이구나?”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요스케의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짐짓 짜증이 섞여 있었다.하지만 유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대꾸했다.“네. 지금 보낼게요, 어머니.”“너 이러려고 내가 그렇게 싫다고 번거롭다고 하는데도, 굳이 굳이 우리 집 옆집으로 이사 온 거지?”“죄송합니다, 어머니.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해서 그래요.”유진이 생긋 웃으며 사과하자 바로 깊은 한숨이 액정화면 너머에서 들려왔다.“그냥 유모를 24시간 입주시켜서 쓰라니까? 왜 사서 고생을 해?”“아이들 금방 크잖아요. 저는 아이들이 커가는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서 그래요. 제 욕심인 거 아는데…… 조금만 더 제 손으로 해보고, 정말 안 되면 그때 도움 받겠습니다.”“아주 내 말에 바로 ‘네’ 하고 물러서는 법이 없지, 너는? 기어코 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려고 기를 쓰고 말이야.”“제가 좀 욕심이 많죠? 그러니까 어머님께서 저 좀 많이 도와주세요.”“애! 나 내 친아들인 요스케도 내 손으로 직접 안 키웠어. 그런 내가 이 나이에 쌍둥이를…… 진짜 내가 못 살아!”말은 그렇게 빽빽하게 퉁명거려도, 어머니는 옆집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이미 거실 한가운데에 최고급 간식과 장난감을 세팅해 둔 채 손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할머니이-!”문이 열리자마자 준이와 하나가 날쌔게 거실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준이는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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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85

제주의 푸른 바다를 정면으로 마주한 KL 리조트의 가장 은밀하고 화려한 프라이빗 풀빌라.오랜만에 서유진의 생일을 맞아 찾은 제주에는 기분 좋은 시끌벅적함이 가득 찼다.리조트 잔디밭을 헤집고 다니던 유진과 요스케의 쌍둥이 준과 하나, 그리고 유정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까지.세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빌라 전체를 따뜻하게 채웠다.“엄마, 우리 수영하러 나가도 돼요?”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유진의 허락을 기다렸다.유진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들의 환호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다 금방 사라졌다.순식간에 부부의 눈 앞에서 사라진 아이들.요스케와 유진은 잠시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오랜만에 제주.두 사람에게 이곳은…… 감회가 남달랐다.유진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울컥 눈물이 났다.그리고 요스케가 그녀를 자신의 단단한 품으로 가득 끌어안았다.이곳에서의 비참했던 두 사람의 첫날 밤.그 밤을 기점으로 두 사람의 인연이 완전히 어긋났었다.그 비참했던 기억에 두 사람은 아주 오랜만에 서로를 다시 아프게 바라봤다.그리고 그때 차마 하지 못했던 진심의 고백을, 요스케가 먼저 꺼냈다.“사랑해. 넌 내 유일한 사랑이고 운명이야. 그때도 지금도 난 여전히 미치도록 너만을 원해.”“그때 나도 당신만을 기다렸어요. 당신이 나에게 먼저 와주기를, 나를 구원해 주기를. 당신은 내 첫 설렘이자 나의 마지막 사랑이에요. 나의 운명, 사랑해요.”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영원을 맹세하며, 서로의 숨결을 뜨겁게 나누며 한동안 서로의 품에서 떨어지지 못했다.밤이 깊어 아이들을 모두 침실에 재우고 난 뒤.야외 테라스의 파이어플레이스에는 오직 부모들만이 남았다.붉은 장작불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불꽃을 튀겼고, 네 사람의 잔 위로 묵직한 레드 와인이 채워졌다.처음에는 양가의 사업 이야기와 현안들이 오갔지만, 밤이 깊어지고 불빛이 아득해질수록 대화는 자연스럽게 옛날 이야기로 흘러내렸다.“유진 씨는 여전하네. 와인 딱 두 잔에 역시나 기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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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86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 사이로,요스케가 유진을 향한 맹목적인 애정이 고스란히 담은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거기다가…… 장난으로라도 밀당이라도 못해. 그 순간 유진이 바로 찬 바람 쌩쌩 불어. 국물도 없어. 그럼 나만 피 마르고 생고생이야.”오유정의 나직한 웃음소리가 스며들었다.“하기사, 얘 그런 쪽으로는 눈치가 없어서, 누가 조금만 밀당을 하거나 차갑게 굴어도 자기를 싫어하는 줄 알고 지레 겁먹고 발을 빼는 애긴 하죠.”유정의 말에 요스케는 미간을 슬쩍 좁혔다.“아니…… 유진이 학교 다닐 때 인기 많지 않았어? 도대체 왜 그렇게 눈치가 없어? 이 얼굴에, 이 몸매에.”“인기가 많았다……고는 할 수 없죠.”“뭐? 이 외모로? 아니, 남자들이 학교 다닐 때 서유진을 가만히 놔 뒀다고?”“일단… 너무 예쁘잖아요. 말 그대로 여신이니까. 그리고 막말로 어디 조금이라도 만만하거나 쉬운 구석이 있어야 남자들이 들이대고 비벼 볼 텐데. 이 미모에 고등학생 때 이미 6개 국어에 능통했죠. 공부는 맨날 전교 1등에, 못하는 게 없었으니까 웬만한 남자들은 감히 접근도 못 했어요.”그때 유진의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요스케가 조심히 손가락으로 쓸어 넘겼다.그의 손길은 지독하리만큼 다정했다.유정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살짝 지었다.“거기다 잘난 남자들은 일단 센 척하면서 밀당부터 하잖아요? 근데 유진이는 남자가 조금만 밀당하면, 바로 겁먹고 도망부터 갔으니 아예 시작도 못하고 무슨 역사가 일어나겠냐고요. 게다가 유진이 그때 완전 파파걸이었잖아요. 서 회장 눈 밖에 안 나려고 한눈팔 시간도 없었어요. 공부 봉사활동 학교 특홣 활동 외에는 아무것도 안 했으니까. 완전 모범생 그 자체. 제가 말했잖아요? 우리 유진이는 새하얀 도화지였다고.”그때 요스케는 과거의 기억 한 자락이 떠올라, 슬그머니 도끼눈을 뜨며 유정을 쳐다봤다.“아닌데…… 그럼 그때 그 제노바 왕실 그놈은 뭐야?”“아! 맞다, 앤디……!!!”유정이 손뼉을 탁 치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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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87

“사실 유진이가 그때 그렇게 힘들어했던 건…… 서 회장 때문이었지, 류짱 때문만은 아니긴 했죠. 아우, 서 회장 진짜 생각만 해도 싫어.”유정이 붉은 와인을 목 뒤로 넘기며 진저리를 쳤다.유진의 유년 시절과 스위스 시절을 지옥으로 몰아넣었던 근원은, 결국 서 회장이었다.유정은 문득 궁금하다는 듯 턱을 괴고 요스케의 시선을 정면으로 응시했다.“근데… 왜 서 회장은 그대로 뒀어요? 류짱 성격에 그냥 가만히 두고 볼 사람이 절대 아닌데?”유정의 날카로운 질문에 순간 정적이 감돌았다.요스케의 눈동자가 깊고 어두운 심연처럼 가라앉았다.자신의 무릎 위에서 쌔근쌔근 잠든 유진의 뺨을 만지던 그의 손가락 끝에, 찰나의 힘이 들어갔다.도쿄의 지하 세계와 정재계를 피로 물들이며 왕좌를 지켜온 요스케였다.그에게 서 회장 하나를 소리 소문 없이 짓밟아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솔직히……”요스케의 목소리가 낮게 밤공기를 서늘하게 얼렸다.“찢어 죽이고 싶은데 참는 거야.”“……!”“그래도 그 악마가 아니었으면 유진이가 내 손을 잡지도 않았을 테고, 나한테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 인간이 유진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였기 때문에 결국 나한테 온 거니까.”이내 유진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에는 지독하리만큼 깊은 연민과 사랑이 묻어났다.“그리고 내가 서 회장을 파멸시키면, 유진이 마음이 편하겠어? 아무리 악마 같은 인간이라도, 한때는 서유진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했던 유일한 아버지인데. 내가 그 악마 때문에 손에 피를 묻히면 유진은 평생 죄책감에서 살아야 해. 난 내 아내가 더 이상 과거 때문에 우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스케의 잔혹한 본능을 누른 것은 다름 아닌 서유진을 향한 배려였다.유정은 안타까움이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아우, 암튼 그냥 착해 빠져서…… 멍청이. 나 같았으면 확 복수해 달라고 류짱 들들 볶았을 텐데, 얘는 왜 이렇게 미련한지 몰라.”요스케는 화제를 돌리려 애써 유정을 떠보았다.“그럼…… 그 앤디란 놈 말고는 진짜 더 없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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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88

일주일로 예정된 유럽 출장의 겨우 셋째 날이었다.세계적인 정재계 인사들이 총출동한 ‘파리 기업인의 밤’ 연회장.불빛이 화려하게 부서지는 리츠 호텔의 대연회장 테이블 위에는 미슐랭 셰프가 심혈을 기울여 내온 최고급 디너 정찬이 서빙되어 있었다.트러플과 진한 버터 향이 가득한 스테이크가 코앞에 놓였지만, 요스케는 와인 잔만 만지작거릴 뿐 정찬에는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주변의 외국 기업인들이 그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왔으나, 요스케의 머릿속은 온통 전혀 다른 이질적인 풍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아… 유진이가 집에서 해줬던 그 칼칼하고 맑은 소고기국에다가, 알싸한 마늘 소스 듬뿍 올려서 먹고 싶다. 거기에 푹 익은 갓김치 한 점 올리면 딱인데.]요스케는 포크를 내려놓으며 속으로 깊은 한숨을 삼켰다.[이런 느끼한 버터 덩어리 스테이크 말고, 지난 주말에 제주에서 유진이가 입에 넣어주던 그 고소한 잣소스 너비아니 구이가 미치도록 그리운데…… 배는 고픈데, 입맛이 아예 없네.]시차 적응도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줄줄이 잡힌 숨 막히는 미팅 스케줄.요스케는 완전히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화려하지만, 지독히도 넓고 쓸쓸한 호텔 방으로 돌아왔다.지독한 두통과 피로감 속에서, 그는 오직 숙면을 취하겠다는 일념으로 욕실 서랍에 넣어둔 수면제 한 알을 꺼내 물과 함께 삼켰다.그리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하지만 특유의 포근한 거위 털 침구도, 방 안을 은은하게 채우는 최고급 아로마 향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뒤척이면 뒤척일수록.품 안에 들어와야 할 유진의 부드러운 살결과 달콤한 살 냄새의 부재가 그의 신경을 날카롭게 깨웠다.겨우 얕은 잠과 가위에 눌리기를 반복하다가 요스케는 결국 새벽녘에 눈을 완전히 떠버렸다.땀에 젖은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린 그가 협탁 위의 휴대폰을 확인했다.도쿄는 지금 막 정오를 지나고 있을 시간이었다.요스케는 참지 못하고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신호음이 채 두 번을 울리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그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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