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선우현을 마주했던 시간은 고작 10분 남짓이었으나, 그의 기세에 눌려 한동안 넋을 놓고 있었다.차준호가 사람을 시켜 호화로운 도시락까지 보내주었건만, 나는 제대로 된 감사 답신조차 보내지 못한 채 멍하니 선우현이 주고 간 명함 끝자락만 만지작거렸다.차진철 회장은 물론, 차준호조차 모르게 내 앞에 나타난 선우현.그가 사라진 뒤에도 여운처럼 남은 긴장감에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신 과장님, 점심 안 드세요?”옆에서 나정아가 물어올 때까지도 깊은 시름에 빠져 있던 나는, 그제야 번쩍 정신을 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아······, 먹어야죠.” “오늘도 혹시······ 대표님이랑 드세요?” “아뇨, 오늘은 도시락 먹으려고요.”점심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와중에도 영양가 없는 고민으로 시간만 흘려보낸 꼴이었다.뒤늦게 확인한 사내 메신저 창에는 수많은 알림이 깜빡이고 있었다. 보고서를 잘 전달받았다는 최기범의 메시지, 그리고 단연 시선을 사로잡는 차준호의 푸념까지.[신하늘, 감히 아침도 같이 안 먹고 사라지다니. 괘씸하네.]일개 직원과 달리 한가한 대표님은 더 쉬라는 의미였다고 가벼운 답장을 뒤늦게 보낸 뒤, 가슴 한구석의 찜찜함을 꾹 눌러 덮었다.파티션 너머로 나정아의 시선이 내 책상 옆에 놓인 고급 보온 백으로 향해 있었다. 연일 배달되는 정갈한 디저트와 요리에 내심 기대를 품은 눈치였다.“우리 어서 식사하러 가요.”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정아의 눈동자가 반짝였다.“얏호! 매일 보신하는 기분이에요. 카페테리아로 가요!”아이처럼 밝게 웃는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는 나도 모르게 머리 위층에 있을 차준호를 떠올리며 천장을 흘끗 올려다보았다.
밤의 장막이 걷히고, 여명의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프라이빗 공간의 창을 타고 스며들었다.지난밤, 서로를 탐하며 모든 것을 터뜨릴 듯 열정을 포개고 난 뒤에야 우리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지독했던 고된 여정의 끝에서 찾아온 잠은 꿀처럼 달콤하고 안락했다.하지만 아침이 되어 창가로 흐릿하게 흘러드는 백색광에 눈이 적응해 가자, 어젯밤의 밀도 높은 열기는 아침의 민망함으로 변해 차가운 이성을 깨워냈다.나는 잠든 차준호를 깨우지 않은 채 욕실로 향했다. 물소리 사이로 생각을 조용히 정돈했다.그러고 보니, 대체 무슨 정신으로 회사 사옥 한복판에서 이런 낯 뜨거운 거사를 치른 것일까.조만간 허기찬이나 서진원이 출근할 것이고, 아래층에는 주말이어도 많은 직원들이 회사를 누빌 터였다.‘대표님이 변했어.’어젯밤 이곳에서 차준호와 입술을 겹치고 서로의 옷가지들을 하나씩 은밀하게 거두어낼 때마다, 시간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흘러갔다. 그 강렬한 열기 앞에서 과거의 메마르고 건조했던 관계는 모래성처럼 무너졌다.나를 가득 품어 오던 그의 아주 작은 손길 하나조차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애틋함을 머금고 있었다.드디어 우리도 평범하고 평온한 연인이 된 것일까.‘살다 보니 정말 별일이 다 있네. 피임까지 하지 말자니.’입가에 번지는 나지막한 실소가 공기 중으로 산산이 부서졌다.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여전히 베개 깊숙이 얼굴을 묻고 잠든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평소의 견고한 철벽을 완전히 벗어던진 채,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무방비했다. 아마 나를 지키고 이 판을 짜느라 그 역시 며칠 동안 단 한순간도 편히 잠들지 못했을 것이었다.항상 먼저 깨어나 나를 내려다보던 건 차준호였는데, 이렇게 먼저 일어나 그를 지켜보는 것은
CH-컴퍼니 대표실 한편 리모델링을 한 은밀한 이곳에 정제된 침묵이 찾아왔다.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뜨거운 감정이 울컥 솟구쳐 올랐다.3월 1일.모든 미련을 털어내고 차준호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려 떠나겠노라 단단히 마음먹은 이후로, 내 마음은 잔잔한 호수처럼 유지하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다.하지만 그가 매일매일 던진 수평선 너머의 파문은 지나치게 거대했다.그리고 오늘 드디어 역대급 거대한 물보라를 그가 일으켰다.“신하늘, 놀란 거야? 나는 너랑 닮은 아이를 원해.”차준호의 입에서 이런 명제가 흘러나올 줄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성인 남녀가 밤을 지새우고 체온을 섞다 보면 자연스레 수순처럼 따라오는 일이라 해도, 늘 철벽을 세우고 거리를 둔 차준호가 나를 향해 건넨 그 말은 내 영혼을 송두리째 흔들었다.나는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 다만 오늘은 이성도, 계산도 아닌 오롯이 본능에만 이끌리고 싶었다.이번에는 그에게 주도권을 내주지 않겠다는 듯, 그의 묵직한 입술을 내가 먼저 집요하게 덮쳐버렸다.거세게 요동치는 심장 소리가 귀가에서 사정없이 울려댔고, 시야는 이미 아득한 열감으로 일렁였다.내가 세워둔 서늘한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걸까. 기한으로 정해둔 날이 이제 겨우 일주일도 남지 않았는데.지금 이 순간만큼은 눈을 감은 채 차준호라는 남자를 오롯이 내 품에 가두었다. 그에게 안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 손을 뻗었다.참으로 알 수 없는 게 인생이었다.이래서 일단은 견디며 살아보아야 하는 건가.차준호의 목을 끌어 안은 채, 열기를 더욱 돋우며 밤은 그렇게 깊어져 갔다.***같
23층에서 25층, 익숙한 비서실을 지나 대표실로 향하는 길.“대표님, 참 가지가지 대단도 하시네요.”어느새 나는 차준호의 단단한 손에 이끌려 조용한 복도를 걷고 있었다. 게임 개발실이 위치한 층을 벗어나자 고요한 침묵만이 감돌았다.명절 직후의 주말인 데다 다른 부서 직원들은 연차를 몰아 쓴 덕에 사옥 안은 적막했다.“지난주에 대표실을 좀 리모델링했거든.”비서실을 지나자, 허기찬 대신 서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대표님, 요청하신 자료는 메신저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전 이만 퇴근하겠습니다.”“그래, 고생했어.”나를 대신해 정식 비서 자리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총무과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나은 대우를 해주겠지. 그래도 여자 비서가 아니라 다행스러워하는 나 자신에게 허무한 콧웃음이 흘러나왔다.차준호가 나를 이끌고 들어간 곳은 대표실 안쪽 프라이빗 공간이었다.예전에 무심코 본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확연히 달랐다.은은하게 깔린 간접 조명 아래, 세련된 소파와 미니바가 보였고, 그 옆으로 널찍한 킹사이즈 침대가 자리했다.원래 한남동 저택이나 호텔 스위트룸에 비하면 소박한 수준인 데다가 서재 같던 공간이 원룸처럼 꾸며져 있어 색다른 기류가 흘렀다.설마 나 때문에 호텔로 돌아가지 못하는 날이면 이곳에서 밤을 보내기 위해 이 판을 짜둔 걸까.황당함에 말을 잊은 나를 보며, 그가 입꼬리를 짓궂게 올려 세웠다.“차나 한잔할까. 내가 이제야 건강 좀 챙겨볼까 하고 술은 좀 줄였거든.”어느새 차준호는 미니바 앞에서 익숙하게 찻주전자를 꺼냈다. 나는 묘한 기분에 할 말을 잃은 채 털썩 소파에 몸을 묻었다.
인천국제공항 출국장 프리미엄 라운지.세나는 물끄러미 포털 사이트에 도배된 기사들을 천천히 훑어 내렸다. 옆에 서 있던 나나가 부러움 섞인 한숨을 흘리며 말을 보탰다.“와, 신 비서님 진짜 대박이다. 이제 그냥 우리나라에서 제일 핫한 여자가 되어버렸잖아?”다른 멤버들도 감탄사를 터뜨리며 휴대전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반면, 옆자리에 앉은 하나는 떨리는 입술을 바짝 깨물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사람 인생 진짜 알 수 없네. 와, 말이 안 나온다. 쳇!”“진짜 신 비서님은 완벽한 워너비야.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다 가졌지?”두나의 말대로 신하늘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였다.단순히 명예나 부, 혹은 차준호라는 남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배경 때문이 아니었다.풍파를 겪어도 남자의 달콤한 호의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강단 있게 밀어붙이는 신하늘의 독보적인 기개와 단단함은 같은 여자가 보아도 눈이 부실 만큼 멋졌다.“김희주는 이제 완전 나락으로 떨어지겠네. 풋, 하하!”눈치 없이 깔깔거리는 나나를 보며 하나의 눈빛이 오싹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하나는 이내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하지만 말이야······ 사람이 모든 걸 다 가졌을 때가 가장 위기도 빨리 오는 법이지.”기이할 정도로 광기가 번들거리는 하나의 눈빛에, 세나는 순간 본능적인 경계심을 느꼈다.상황대로라면 신하늘을 질투하고 미워해야 마땅한 쪽은 자신이어야 했다. 하지만 세나는 이상하게도, 거대한 파도에 맞서 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신하늘을 속으로 깊이 응원하고 있었다.
JW엔터테인먼트 사내 식당.주원형은 억지로 강소희의 손목을 끌다시피 하여 식당 안으로 향했다.주원형 역시 입맛이 싹 달아난 상태였지만, 회사 임직원들과 소속 연예인들 앞에서 강소희의 옆자리가 여전히 자신의 몫임을 각인시키기 위해서라도 피할 수 없는 자리였다.“대표님, 나 진짜 지금 제정신 아니에요.”강소희는 숟가락을 힘없이 잡은 채 입술을 바짝 깨물었다. 정갈하게 차려진 식판 위 음식에는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 그녀의 서늘하게 식어버린 얼굴을 바라보는 주원형의 식도 너머로 공기가 유난히 시리게 얹혔다.“나라고 속이 편하겠어? 하지만 네 이미지를 생각해. 지금 구석에 숨어서 쭈그러져 있어 봐라. 당장 사람들이 너더러 뭐라고 수군대겠어?”그 말이 설득력이 있었는지, 강소희의 경직되어 있던 얼굴에 순식간에 화사한 미소가 걸렸다.“어머, 그러네. 신하늘한테 밀려서 차준호한테 차인 시시한 여자가 나라니. 어우,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천 개의 얼굴을 가진 여자답게, 강소희는 생글생글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국에 밥을 말았다.물론 복스럽게 음식을 넘길 위인은 아니었으나, 표정만큼은 화장품 CF를 촬영할 때처럼 생기와 여유가 넘쳐흘렀다.차준호가 이토록 파격적으로 신하늘의 손을 잡아줄 줄이야. 작년 말부터 치밀하게 세워두었던 김희주와의 연대와 계획이 산산이 부서졌음을 직감했다.대한민국의 모든 시선은 이제 떠오르는 태양인 신하늘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차준호가 던진 속보는 단순한 열애설 이상의 거대한 정치적·상업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어떻게 차준호는 이렇게 사람 뒤통수를 후려치는지.”주원형은 혀를 차며 제육볶음을 크게 한술 떠 입에 넣었다.“원래 차준호
이아준은 통화 도중,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신하늘과 도국과의 옛 기억 속에 깊게 잠겼다.화려한 마천루가 즐비한 강남의 이면, 세종동 서쪽 끝자락에는 시간이 멈춘 듯한 빈민가가 있었다. 그곳에 위치한 ‘하늘 보육원’은 세 사람의 유년이 뿌리내린 곳이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고 나이도 제각각이었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유일한 세계이자 가족이었다.이아준은 태어나자마자 차가운 보육원 앞마당에 버려진 신세였다. 그러나 운명은 잔인하고도 변덕스러웠다. 뒤늦게 그가 국내 최고 재벌가인 L그룹의 잃어버린 혈통임이 드러났고, 하루아침에
[1월 1일, 재벌가 차준호와 톱여배우 강소희! 둘만의 밀월여행이었나· 강원도에서 추락 사고!][CC그룹 후계자 차준호·한류스타 강소희! 과연 현재 상태는?][사고 직후 불거진 비밀 연애 의혹· 관계자들은 어떤 입장을···][과연 차준호와 강소희 사고에 관한 진실은 무엇인가!]새해의 태양이 채 떠오르기도 전, 대한민국은 단 하나의 소식으로 들끓었다. 차준호는 강소희를 자신의 세단에 태운 채 1월 1일 새벽 강원도 산길을 달리던 중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십여 미터 아래 낭떠러지로 추락했다.단순한 교통사고인지, 범죄와 연관된
‘이 나쁜 자식!’지난 3년간 내게 보인 그 모든 다정함은 한낱 유희였을까? 차준호에 대한 배신감에 속이 문드러져 욕지거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나는 부서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자존심을 끌어모아, 끝까지 평정심을 유지하며 도도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갔다.“대표님은 그동안 절 어찌 보셨는데요?”나는 유리창 너머로 썰물처럼 번지는 화려한 야경을 사납게 응시하며, 심장에 박힐 날 선 말을 뱉어냈다.“네 주변에 남자가 들끓어 보였거든.”뻔질나게 전화를 걸어오는 남사친 둘을 두고 한 오해였을까. 설령 그렇다 해도, 그동안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의 정적을 깨우는 밤 11시 반 무렵.창밖으로는 하얀 눈꽃이 송이송이 흩날리며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키고 있었지만, 강남 C 호텔 25층 로열 스위트룸 내부는 숨 막힐 듯 팽팽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조도를 최대한 낮춘 짙은 어둠 속에서 나는 차준호라는 거대한 포식자에게 온전히 잠식당한 채, 밤을 녹여내는 은밀하고도 위태로운 시간을 보냈다.내 몸의 지도를 그보다 더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는 존재는 세상에 없었다. 귓가를 어지럽히는 그의 뜨겁고도 습한 숨결이 예민한 목덜미를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