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 문을 열자, 상수는 난간에 기대어 탁 트인 도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오의 햇살이 그의 날렵한 콧날과 턱선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혜연이 다가오는 구두 소리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왔네요. 생각보다 빨리.”“착각하지 마세요. 상수 씨가 오라 가라 한다고 오는 사람 아니니까. 할 말이 있어서 온 거예요.”혜연은 상수와 서너 걸음 이상의 거리를 둔 채 멈춰 섰다. "어제 일은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소영이 안 마주치고 조용히 넘어갔네요."상수가 여유를 부리려 하자, 혜연이 날카롭게 말을 잘랐다.“여유 부릴 상황 아니에요, 상수 씨. 나 어제 소영이 보면서 무슨 생각 했는지 알아요?그 애, 이제 겨우 상수 씨라는 악몽에서 깨어나서 잘 살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그 애 몰래 향수를 만들고, 숨바꼭질이나 하고 있고! 이게 친구로서 할 짓인가 싶어서 잠 한 숨 못 잤다고요.”혜연의 눈빛이 매섭게 타올랐다. 상수의 표정에서 부드러운 미소가 서서히 걷히고, 무미건조한 비즈니스맨의 얼굴이 드러났다.“난 상수 씨가 좋으라고 이러는 거 아니에요. 소영이가 다시 상수 씨 같은 인간 때문에 기분 잡치는 꼴 보고 싶지 않아서, 내 친구 일상이 망가지는 게 싫어서 이러는 거라고요. 그러니까 조심해요. 나랑 엮이는 상황 자체를 즐기지 말고, 소영이 눈에 절대 띄지 않게 그림자처럼 있다가 이 프로젝트 끝나면 연기처럼 사라지라고요. 알겠어요?”상수는 한참 동안 혜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너무 깊고 집요해서 혜연은 순간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상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혜연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혜연은 물러서고 싶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발을 붙들고 버텼다. 상수는 그녀의 귓가에 낮게 읊조렸다.“소영이 생각하는 그 대단한 우정,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혜연 씨, 너무 과민반응 아닙니까? 나도 소영이 다시 만나서 구질구질하게 굴 생각 추호도 없어요. 우린 그냥 비즈니스 파트너일 뿐인데, 혜연 씨가 이렇게
Last Updated : 2026-07-1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