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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271 - チャプター 280

328 チャプター

271화. 새 옥대

편전에서 돌아온 진묵은 새 옥대를 보요 무릎 위에 놓았다.경성 삭왕부의 침소에는 밤비 냄새가 배어 있었다. 창호 아래 빗물이 가늘게 흐르고, 오래 비운 방의 백단 궤에서는 마른 나무 향이 났다. 보요는 낮은 침상에 앉아 먹빛 띠를 펼쳤다.옛 옥인은 그대로였으나 띠는 새것이었다. 검은 비단 위에 북강 눈보라와 작은 살구꽃 하나가 은실로 놓였다. 누가 도안을 골랐는지는 묻지 않아도 되었다.보요는 먼저 그의 젖은 겉옷을 벗겼다. 쇠사슬에 갈린 손목은 닷새를 달린 뒤 다시 벌어져 무명에 피가 붙었다. 따뜻한 물로 적시자 검은 약초와 마른 피가 천천히 풀렸다. 진묵은 아픈 손보다 그녀의 부은 발목을 보고 있었다."발부터 올려.""왕야 손이 먼저입니다.""내 손은 안 부었다."그는 제 손목을 맡긴 채 다른 손으로 그녀 신을 벗겼다. 발목 아래에 접은 이불을 받치고 손가락으로 부은 자리를 가볍게 눌렀다. 보요가 숨을 들이켜자 누르던 힘이 즉시 느슨해졌다."허리를 드세요."진묵이 그녀 앞에 섰다. 제 손으로 매면 한숨이면 끝날 일을 굳이 맡기고 팔까지 벌렸다. 보요가 옥대를 허리에 두르고 매듭을 당기자 그가 말했다."무슨 말을 했지.""폐하와요?""둘만 남아서.""백옥 패를 돌려드렸습니다.""그뿐인가.""왕야께서는 세 걸음 밖에서 다 들으시지 않았습니까."진묵은 대답하지 않았다. 매듭이 끝났는데도 팔을 내리지 않고 그녀 얼굴만 내려다보았다. 빗소리 사이로 옷감 스치는 소리가 가까워졌다.보요가 웃음을 누르며 띠 끝을 한 번 더 당겼다."후궁이 몇백이라 하신 것은 들었습니다.""사실이다.""이제 막 즉위하신 분께 못 하는 말씀이 없으세요.""남의 아내에게 제 패나 맡겨 두는 황제보다는 낫지."보요의 손이 멎었다. 진묵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를 안아 침상 안쪽으로 옮겼다. 둥근 배가 눌리지 않도록 옆으로 앉힌 뒤, 목덜미 아래에 입술을 대었다."왕야, 옥대가 구겨집니다.""새로 받지.""나라 곳간을 그렇게 쓰시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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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화. 스물일곱 봉투

북쪽 시렁 셋째 궤에는 같은 봉투가 스물일곱 장 들어 있었다.경성으로 보내진 글은 어사대 상 위에 있었는데, 봉랍이 뜯기기 전의 봉투가 왕부 서재에도 한 벌씩 남아 있었다. 겉에는 보요의 글씨로 날짜와 받는 이가 적혔고, 뒤에는 진묵의 검은 매 인장이 아주 작게 눌렸다.보요는 첫 봉투를 뒤집었다.혼인 사흘째 보낸 글이었다. 삭왕은 새 왕비를 별당에 두고 얼굴도 보지 않는다고 적었다. 실제 별당은 꾸며진 채 비었고, 그녀는 그날도 그의 침상에서 아침을 맞았다.둘째 글에는 북강 곳간이 비었다 썼다. 그날 왕부는 남쪽 물길에서 빼낸 곡식을 다른 창고로 옮겨 두었다. 셋째에는 진묵이 술과 사냥에 빠졌다 했다. 그는 사냥길에서 윤태의 금군 줄을 잇고 있었다.열한째 봉투에는 왕부 동문 수비가 헐겁다고 적혔다. 실제 그날 밤 동문 군사는 서문으로 옮겨 허씨 쇠뇌 수레를 잡았다. 열아홉째에는 삭왕이 왕비의 조언을 듣지 않는다 썼다. 그 글을 쓰는 동안 진묵은 보요 무릎에 머리를 얹고 군량 장계를 읽고 있었다.봉투마다 겉으로 흘린 말과 안에서 바꾼 일이 나란히 떠올랐다. 보요가 혼자 골랐다고 믿은 거짓 아래에 진묵의 검은 인장이 스물일곱 번 숨어 있었다."모두 읽으셨군요.""응.""언제부터요.""처음부터."짧은 대답은 미안한 기색도 자랑도 없었다. 진묵은 궤 맨 아래에서 작은 장부를 꺼냈다. 글이 지나간 날, 그 글을 내보내도 된다고 명한 날짜, 봉랍을 다시 녹인 자의 수결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왜 막지 않으셨습니까.""네가 보낸 거짓이 내 진짜보다 쓸 만했으니까."편전의 어사들은 복사한 봉투를 보고도 쉽사리 붓을 놓지 않았다. 새 조정 첫날부터 왕비의 죄를 눈감으면 법이 서지 않는다는 말이 맞았다.젊은 어사가 보요에게 물었다."북강 성문과 군량을 황실에 알리려 한 뜻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부인하지 않겠습니다.""그로 인해 북강 군사가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그래서 죽지 않을 글만 보냈습니다."진묵이 장부를 어사 앞에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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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화. 칼을 쥔 손

탄핵이 끝난 뒤 상엄이 낡은 검집 하나를 가져왔다.선대 삭왕 진규가 쓰던 검집이었다. 가죽은 갈라지고 매의 눈을 새긴 구리 장식은 동루 문을 열던 날 빠진 채였다. 안쪽에는 오래 접은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진묵은 그것을 떼지 않았다. 화로 앞에 앉아 검집을 보요에게 건넸다."읽어."종이는 가죽에 붙어 가장자리가 말라 있었다. 보요가 따뜻한 김을 쐬고 비녀 끝으로 천천히 들었다. 선대 삭왕의 거친 글씨가 한 줄씩 나타났다.`동칠. 벽검. 월백.`마지막에는 아들에게 남긴 말이 있었다.`칼 쥔 네 손으로 글을 꺼내지 마라.`보요가 진묵을 보았다.검집 안쪽에는 오래 마른 피가 콩알만 하게 남아 있었다. 진묵이 열두 살이던 해, 부친이 북강으로 떠나기 전 손바닥을 베어 검을 쥐여 준 자국이었다. 상엄은 그날의 군막 밖에서 어린 세자가 같은 세 문장을 밤새 되뇌는 것을 들었다.동칠. 벽검. 월백.눈이 군막 끈을 덮고 새벽 북이 울릴 때까지, 아이는 뜻을 묻지 않았다. 이듬해 돌아온 것은 부친이 아니라 검과 반쯤 탄 군기였다."전부 알고 계셨습니까.""동쪽 일곱째 층계와 벽의 검까지. 안에 든 물건은 몰랐다.""왜 말씀하지 않으셨어요."진묵은 검집 끝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스무 해 전 열두 살 소년이 아버지의 피 묻은 손에서 받아 들었을 자리였다."아비가 세 번 말하게 했다. 칼 든 왕가가 먼저 꺼내면 황위를 탐한 반역이 되고, 글 읽는 사람이 찾아내면 죽은 자의 증언이 된다고."평소 두어 마디면 끝나던 목소리가 거기서 멎지 않았다."아버지는 황자를 살려 보냈고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 내가 그 글을 꺼내 왕좌를 갈아치우면 진가가 스무 해 기다린 모양이 된다. 찾으러 오는 자가 있어야 했다. 글을 읽고, 사람을 모으고, 내 칼을 멈출 줄 아는 자."보요의 손끝이 종이 위에서 떨렸다."처음부터 신첩이라 생각하셨습니까.""처음에는 얼굴만 봤지."너무 태연한 답에 그녀 속눈썹이 한 번 크게 떨렸다. 진묵의 입가가 아주 조금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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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화. 마지막 명

암위 열둘은 복면을 벗고 왕부 뜰에 섰다.류유의 관자놀이에는 형장에서 맞은 멍이 남았고, 류묘는 한쪽 소매를 짧게 잘라 팔의 상처를 감쌌다. 엿장수 류해는 턱에 붙은 엿가루를 이번에도 닦지 못했다. 남은 사람들도 키와 나이, 저는 다리와 굳은손이 모두 달랐다.보요는 그들 앞에 작은 궤 열둘을 놓았다.안에는 은전과 새 호패, 빼앗겼던 집문서가 들어 있었다. 새 황제가 내린 벼슬패도 몇 개 섞였다. 물길을 나라 조운으로 옮길 자, 궁의 어두운 길을 금군에 가르칠 자, 남쪽으로 돌아갈 자가 스스로 고르게 했다.궤 하나에는 은전 대신 작은 약방 문서가 들었다. 독침에 손을 다친 류술이 버드나무 우물 셋째 집을 이어받을 몫이었다. 다른 궤에는 청암나루의 낡은 배 한 척과 사공패가 들어 있었다. 주인을 잃은 길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에서 다친 집의 쌀을 먼저 책임지는 글이 붙었다.류유가 궤를 보지 않고 물었다."주군께서는 어디로 가십니까.""북강으로.""그럼 저희도—""안 돼."짧은 말에 소월백과 나누던 옛 말투가 잠깐 섞였다. 보요는 숨을 고르고 다시 단정하게 말했다."나를 따라 죽는 것이 마지막 충성이라 생각하지 마. 내가 만든 길은 이미 탔고, 너희 이름은 어사대와 금군 장부에 올랐어. 이제 그림자로 살 까닭이 없다."류묘가 복면을 손안에서 구겼다."그림자 밖에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보요가 대답하지 못했다. 스무 해 동안 잠기고, 빼앗고, 감추고, 살려 보내는 일만 가르쳤다. 평범한 날의 쓰임은 누구에게도 일러 준 적이 없었다.진묵이 회랑 기둥에 기대어 말했다."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 일은 그 뒤에 찾아."열두 얼굴이 한꺼번에 그를 보았다. 너무 당연한 말이라 누구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류해가 가장 먼저 웃었다."소인은 엿을 팔겠습니다. 엿장수가 천직인 듯하옵니다.""턱부터 닦아.""그것은 장사 표식이옵니다, 전하."뜰에 작은 웃음이 번졌다.류묘는 새 조운청의 강배를 맡겠다고 했다. 다시는 곡식배가 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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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화. 남쪽 혼수

상엄이 연 궤에서는 오래된 계수나무 향이 났다.선왕비가 남쪽에서 가져온 혼수였다. 금실 원앙을 놓은 이불, 푸른 물결이 수놓인 발, 쓰다 만 자개빗과 마른 향낭이 층층이 들어 있었다. 북강에 어울리지 않는 고운 물건들은 스무 해 동안 왕부 창고와 경성 별저를 오갔으나 한 번도 버려지지 않았다.자개빗 사이에는 검은 머리칼 두 올이 걸려 있었다. 향낭 안의 계수 꽃은 바스러져 손바닥에 노란 가루만 남았고, 푸른 발 한쪽에는 어린 손으로 당긴 듯 실이 길게 풀려 있었다. 진묵은 그 실을 본 순간 무심코 엄지마디를 문질렀다.상엄이 궤에서 작은 목각 말도 꺼냈다. 다리 하나가 짧고 등에 먹으로 `묵` 한 글자가 쓰인 장난감이었다. 진묵은 받지 않았고, 보요가 먼지만 닦아 원앙 이불 위에 놓았다.진묵은 문밖에 서서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보요가 원앙 이불을 들자 비단이 낡은 물처럼 흘렀다. 혼례 첫날 덮었던 금침과 같은 짝이었다. 한쪽 원앙의 눈만 검은 실이 덜 놓여 비어 있었다."선왕비마마께서 마치지 못하셨사옵니다."상엄이 말했다."북강의 겨울을 몹시 답답해하셨지요. 남쪽 창을 내 달라 하셨으나 바람이 세다는 이유로 막았습니다. 물도 늘 시비들이 데워 올렸고요."늙은 총관의 손이 궤 모서리를 쓸었다."그때는 그것이 모시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보요는 이불을 다시 넣지 않았다. 창가에 펼쳐 묵은 향이 빠지게 했다. 먹빛 그림자가 방바닥을 덮었다.진묵이 들어와 그녀 뒤에 섰다."폐하가 경성에 머물라 했다. 비어 있는 친왕부 하나와 중서성 자리도 준다더군.""왕야께요?""너한테."보요의 손이 미완성 원앙 눈 위에서 멎었다."거절하셨습니까.""네가 고를 일이다."그는 북강이 필요하다 말하지 않았다. 새 황제 곁에 그녀 머리가 있어야 한다고도, 아이는 따뜻한 남쪽에서 자라야 한다고도 하지 않았다. 궤와 열린 창, 경성과 북강 사이를 그대로 그녀 앞에 두었다.보요는 궤 맨 아래의 놋대야를 꺼냈다. 가장자리에 남쪽 연꽃이 새겨진 낡은 물그릇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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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화. 북문 밖

북문을 나서는 가마 앞에 국수 그릇이 놓였다.온 대인이 두 손으로 받쳐 온 것이었다. 맑은 닭국물에 가는 면을 말고 푸른 파와 달걀지단을 얹었다. 김이 아침 안개와 섞였다. 혼례 날 울음도 못 내던 온가 식구들은 이번에는 누구도 곡하지 않았다.보요가 첫 젓가락을 들자 아버지가 말했다."끊지 말고 먹어라."면은 손으로 뽑아 굵기가 조금씩 달랐다. 얇은 것은 혀 위에서 풀리고 굵은 것은 이 사이에 오래 남았다. 보요가 국물을 떠먹자 진묵은 제 그릇의 닭다리 살을 발라 그녀 그릇에 놓았다. 온가 사람들은 이제 그 손을 못 본 체하지 않고 작게 웃었다."다녀오겠습니다.""시집간 딸이 다녀오기는 어디를. 네 집으로 가는 게지."온 대인은 딸의 말이 끝나기 전에 국수 끝을 그릇 안으로 밀어 넣었다. 부러졌던 오른손은 아직 붓을 잡지 못했으나 젓가락은 천천히 움직였다.큰공자는 온가의 낡은 문패를 수레에 싣지 않았다. 경성에 남아 허씨에게 빼앗긴 집과 사람들의 문서를 되찾겠다고 했다. 둘째 오라비는 남쪽 조운으로 내려가 류묘와 곡식배를 살피기로 했다.방어멈이 마지막에 작은 비단함을 내놓았다.안에는 혼례 날 머리에서 뽑아 두었던 장신구가 있었다. 가는 금가지 끝마다 옥잎이 달려 걸으면 잘게 흔들리는 물건. 스무 해 전 아버지가 이름과 함께 준 것이었다."아가씨가 북강 가실 때 혼수 가장 밑에 넣었는데, 왕부에서는 한 번도 꺼내지 않으셨지요."보요가 손을 뻗자 진묵이 먼저 집었다. 그는 화려한 금가지를 한참 보고 그녀 머리에는 꽂지 않았다. 둥근 배와 긴 길을 헤아린 듯 비단함을 제 품에 넣었다."왕야께서 왜 가져가세요.""무거워.""그 작은 것이요?""네 짐은 다 무겁다."온 대인은 사위를 보다가 헛웃음을 삼켰다. 진묵은 모른 체 보요의 가마 발판을 직접 놓았다. 그녀가 오르자 한 손으로 팔꿈치를, 다른 손으로 허리 뒤를 받쳤다.황제는 북문에 나오지 않았다. 대신 흰 비단으로 싼 찬합 하나를 보냈다. 뚜껑을 열자 국숫집에서 팔던 조청 과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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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화. 세 매듭

세 기수는 같은 상에 앉지 않았다.북문 밖 역관의 큰방에 상을 셋 놓고, 오란 사내에게는 짠 양젖차를, 갈족 사내에게는 맑은 차를, 흑수 사내에게는 뜨거운 술을 내었다. 서로의 잔을 바꾸어 마시면 굴복으로 여기는 오래된 버릇이었다.진묵은 세 상 사이 맨바닥에 앉았다. 왕호가 돌아온 뒤에도 높은 자리를 쓰지 않았다. 보요는 등 뒤 낮은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세 부족의 매듭을 펼쳤다.오란의 푸른 끈에는 소금 결정이 붙었고, 갈족의 붉은 끈에서는 마른 약초 냄새가 났다. 흑수의 검은 끈에는 담비털 한 줌이 매였다. 세 끈 끝은 진묵이 묶은 흰 매듭 하나로 이어졌다."옛 황제는 삭왕의 약조를 역모라 하였습니다."오란 기수가 말했다."새 황제가 그 말을 거두지 않으면 우리 족장은 경계석을 뽑을 것입니다.""뽑아."진묵의 대답에 세 기수의 손이 칼로 갔다.보요가 그의 어깨를 손끝으로 눌렀다."왕야. 말씨를 고치세요."진묵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뽑아도 겨울은 온다. 소금 없는 말고기와 약 없는 아이, 비단 없는 혼례를 각자 견뎌라."거칠기는 그대로였으나 말은 길어졌다. 세 기수 중 가장 어린 자가 제 매듭을 내려다보았다. 흑수 족장의 막내아들이었다. 지난겨울 갈족 약초로 누이의 열을 내린 일을 알고 있었다.보요는 세 장의 얇은 나무패를 꺼냈다. 오란 패에는 갈족 약초 수레 열둘, 갈족 패에는 흑수 담비 가죽 서른 장, 흑수 패에는 오란 소금 스무 섬을 적었다."새 황제의 인장이 늦어도 장시는 열 수 있습니다. 서로의 물건을 이미 받았다는 수결을 먼저 나누세요. 한 부족이 매듭을 거두면 자기 물건이 아니라 다른 두 부족의 겨울값을 물게 됩니다."보요는 패 세 장을 서로 바꾸어 놓았다. 오란 사내 앞에는 자기 소금이 아니라 갈족 아이의 약값이, 갈족 앞에는 흑수 혼례의 가죽값이, 흑수 앞에는 오란 말떼가 먹을 소금값이 놓였다. 어느 손이 패를 뒤집어도 다른 부족의 얼굴이 먼저 보였다.역관 밖에는 세 기수가 끌고 온 말도 따로 묶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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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화. 붉은 봉투

파발의 말은 역관 문 앞에서 앞다리가 꺾였다.기수가 품에 안고 온 붉은 봉투에는 새 황제의 첫 국새가 찍혀 있었다. 봉랍은 아직 따뜻하고 말갈기에는 경성에서 묻은 비 냄새가 남았다. 그는 닷새 길을 이틀 반에 달려왔다.노강이 물을 먹이는 동안 보요가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긴 교지가 아니라 짧은 글 넉 줄이 있었다.세 부족의 겨울 장시를 나라의 장시로 받는다.첫해 세곡은 절반을 덜고, 서로 바꾼 물건은 경성 관원이 빼앗지 못한다.국경석을 넘은 군사는 어느 부족이든 장시에서 쫓아낸다.마지막 줄만 먹빛이 조금 달랐다.`삭왕비가 고쳐 보내도 좋다.`진묵의 눈매가 서늘해졌다."황제가 남의 아내를 잘 부리는군.""나라 글을 살피라는 뜻입니다.""중서성 자리를 거절하자 관도에서 부리는 거지."보요가 교지로 그의 가슴을 가볍게 밀었다."왕야께서도 신첩을 잘 부리시면서요.""나는 부군이다."세 부족 기수들이 말은 알아듣지 못한 척 각자 찻잔만 보았다. 가장 어린 흑수 사내의 입가가 잠깐 움직였다.보요는 마지막 한 줄만 덧붙였다. 장시에서 거둔 첫 세곡은 북강군과 황군 서른여섯 집에 똑같이 나눈다. 진묵은 글을 읽고 붓을 들었다.왕호를 되찾은 뒤 첫 수결이었다.검은 획이 끝나자 세 기수가 제 부족 매듭을 황지 가장자리에 묶었다. 푸른 소금, 붉은 약초, 검은 담비털이 금룡 아래 함께 매달렸다. 파발 기수는 물도 다 마시지 못한 채 그것을 다시 품에 넣었다."이번에는 천천히 가."진묵이 말했다."장시는 사흘 뒤이옵니다.""인장은 이미 왔다. 네 목숨보다 빠를 글은 없어."기수의 입술이 떨렸다. 그는 허리를 깊이 숙이고 그날 밤 역관에서 잠들었다.다음 날 관도에는 허 도위와 허연교의 수레가 합류했다. 허 도위의 왼팔은 나무판에 고정되어 있었고, 허연교는 진주 대신 약주머니를 허리에 찼다. 수레에는 혼수 궤가 아니라 북강으로 돌려보낼 금전과 곡식 문서가 실렸다.허 도위는 진묵 앞에 무릎 꿇으려다 상처가 당겨 비틀거렸다. 진묵이 목덜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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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화. 은방울

첫 역참의 방에는 침상이 하나뿐이었다.노강이 두 번째 방을 구하려 하자 진묵이 손을 휘휘 저었다. 상엄은 애초부터 묻지도 않고 가장 두꺼운 이불과 따뜻한 물만 들였다. 창밖에는 가을비가 가늘게 내렸고 젖은 말 냄새가 화로의 솔향과 섞였다.보요는 머리를 풀고 경대 앞에 앉았다. 진묵이 북문에서 가져온 비단함을 열었다. 이름과 같은 장신구를 꺼내더니 금가지 끝의 옥잎을 하나씩 살폈다.역참의 낡은 경대는 거울 가장자리가 흐려 얼굴이 물속처럼 비쳤다. 진묵은 작은 칼끝을 화로에 데워 금가지를 눌렀다. 굳은손이 너무 큰 탓에 옥잎 하나를 떼는 데 세 번이나 방향을 바꾸었다. 보요가 돕겠다고 손을 내밀 때마다 손등으로 조용히 밀어냈다.마침내 옥잎이 떨어졌다. 날카로운 금 끝에 그의 엄지에서 피 한 점이 났다. 보요가 손을 잡으려 하자 그는 그 피로 먹빛 끈의 매듭을 눌러 미끄러지지 않게 했다."머리에 꽂기에는 무겁습니다.""알아."그는 장신구에서 작은 옥잎 하나를 떼었다. 이어 보요 허리에 달린 삭왕부 패옥을 풀었다. 스무 해 함께 있던 사람을 만나러 저자에 나가던 아침, 그가 직접 채워 준 먹빛 끈과 은방울이었다.금빛 옥잎과 은방울을 한 끈에 묶자 서로 다른 두 물건이 걸음마다 함께 부딪쳤다.딸랑."북강 것과 네 것을 섞었군."보요가 허리에 찬 물건을 내려다보았다. 옥잎은 가늘게 흔들리고 은방울은 맑은 소리를 냈다."마음에 드십니까.""내가 만들었는데.""신첩 마음을 물었습니다."진묵의 손이 허리끈에 머물렀다. 늘 답을 다 아는 듯 여유롭던 눈이 이번에는 가만히 기다렸다.보요가 한 걸음 다가갔다. 은방울이 다시 울렸다. 그녀는 그의 새 옥대를 잡고 먼저 입술을 맞췄다.진묵은 움직이지 않았다.보요가 조금 떨어지자 그의 숨만 뜨겁게 입술 위에 닿았다."이것도 마음에 듭니다.""그뿐인가.""또 무엇을 듣고 싶으신데요.""네가 아는 것."빗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보요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왕조와 가문, 스무 해 벗과 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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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화. 먼저 오는 밤

보요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않았다.대신 진묵의 손바닥에서 은방울을 가져와 경대 위에 놓았다. 맑은 소리가 나무에 한 번 구르고 멎었다. 그녀는 제 손으로 이불을 걷고, 제 손으로 그의 옷깃을 풀었다.검은 겉옷이 침상 아래로 떨어졌다.진묵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전장에서 수천 기를 몰던 사내가 손 하나 둘 곳을 잊은 듯 보요의 얼굴만 보았다. 그녀가 먼저 목을 끌어안고 입술을 겹치자 그제야 억눌린 숨이 터졌다.처음의 멎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 순간에는 늘 그렇듯 그가 입맞춤의 깊이와 숨의 때를 가져갔다. 보요가 겨우 고개를 돌려 숨을 찾으면 관자놀이에 입술을 대고 기다렸고, 숨이 고르면 다시 턱을 들어 올렸다. 익숙하고 느긋한 손이었다. 다만 손가락 끝의 작은 떨림만은 감추지 못했다."하아······."입맞춤이 깊어졌다. 빗물과 조청의 단내, 오래 밴 침향이 뜨거운 숨 사이에서 뒤섞였다. 진묵의 손은 등허리를 감아 올리다가 둥근 배 가까이에서 길을 바꾸었다. 허리 뒤와 목덜미, 머리칼 속을 천천히 쓸었다.보요가 그의 아랫입술을 머금자 손끝의 여유가 한 번 무너졌다. 검은 머리칼이 손가락 사이에 감기고, 그녀 몸이 이불 위로 조심스럽게 눕혀졌다."사랑한다고 했습니다.""들었다.""그런데 왜 또 말하라 하세요.""스무 해 들을 몫이다.""혼인한 지는— 읏······."말이 끝나지 못했다. 입술이 목선 아래로 내려가고, 얇은 중의 매듭이 하나씩 느슨해졌다. 손이 지나간 자리는 찬 공기보다 늦게 뜨거워졌다.옥잎이 달린 패옥이 허리에서 풀려 이불 위에 놓였다. 은방울은 떨어졌으나 먹빛 끈에는 진묵의 피 한 점이 남았다. 보요의 손가락이 그 붉은 자리를 쓸자 그가 손목을 잡아 입술 안쪽에 천천히 눌렀다."다쳤잖아요.""네 물건 만들다 난 거다.""그러니 약을— 아······."엄지의 상처가 그녀 입술 가장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금속 맛보다 뜨거운 숨이 먼저 닿았다.보요가 손등으로 입을 가리자 진묵이 그 손을 걷어 냈다."삼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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