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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291 - チャプター 300

328 チャプター

291화. 첫밤의 울음

아이는 자시가 되자 다시 울었다.낮 동안 잠든 시간이 거짓말이었던 듯 작은 얼굴이 붉어지고 두 주먹이 허공을 저었다. 젖을 먹이고 밑싸개를 갈아도 울음은 멎지 않았다. 산파와 유모가 번갈아 안았으나 품이 바뀔수록 목소리만 커졌다.보요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허리 아래가 무겁게 당기고 온몸의 뼈가 흩어진 듯 아팠다. 팔로 침상을 짚는 순간 진묵이 어깨를 눌렀다."누워.""아이가 웁니다.""내가 간다."그가 아이를 받았다. 낮에는 산파가 팔 모양을 잡아 주었으나 이번에는 혼자였다. 머리를 받치는 손이 지나치게 높고 등을 감싼 팔에는 힘이 너무 들어갔다."왕야, 팔을 조금 낮추세요."진묵이 팔을 내렸다. 아이의 뺨이 검은 중의에 닿자 울음이 한 박자 줄었다."등을 두드려 보세요. 살살."큰 손이 작은 등을 건드렸다. 첫 번째는 너무 가벼워 옷감만 스쳤고, 두 번째는 조심스러운 북소리처럼 둔하게 울렸다.딸꾹.아이 입에서 젖 냄새가 나는 트림이 나왔다. 곧 울음이 뚝 멎었다.진묵은 승전한 낯도 웃는 낯도 아니었다. 다만 눈썹 사이 깊은 주름이 조금 펴졌다."왜 울었지.""속이 답답했나 봅니다.""말을 해야 알지.""태어난 지 하루도 안 됐어요.""그래도 성질은 있군."아이가 다시 입을 삐죽이자 그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산파와 시비들이 고개를 숙인 채 웃음을 삼켰다.보요 곁에는 따뜻한 좁쌀미음과 대추물이 놓였다. 진묵은 아이를 한 팔로 안고 다른 손으로 미음을 떠 불었다. 입술에 대어 온도를 본 뒤 보요에게 내밀었다.산파가 아랫목의 달군 돌을 새 천으로 감싸 보요의 배 위에 얹었다. 아이가 젖을 빠는 동안마다 텅 빈 배 속이 다시 오므라드는 듯 아팠다. 보요가 숨을 삼키자 진묵의 숟가락이 허공에서 멎었다."어디가 아프지.""아이를 낳은 뒤에는 다 그렇답니다.""다 그렇다는 말 말고."보요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웃었다."조금 지나면 가라앉아요. 왕야께서 그렇게 노려보신다고 먼저 달아나지는 않습니다."진묵은 산파를 돌아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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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화. 따뜻할 온

사흘째 아침, 놋대야에 쑥잎이 떠올랐다.선왕비의 남쪽 혼수에 들었던 연꽃 대야였다. 따뜻한 물에 쑥을 우려 아이의 몸을 처음 씻기는 날이었다. 산파가 손목으로 물을 재고 아이 발부터 천천히 담갔다.진묵은 대야 곁에 쪼그려 앉았다. 아이가 발끝을 물에 대자 얼굴을 찡그렸다."뜨겁다.""미지근하옵니다.""우는데.""물이 낯설어 그러옵니다."산파가 아이 배에 물을 끼얹었다. 작은 몸이 움찔하고 주먹이 펴졌다. 진묵의 손가락 하나를 잡자 울음이 금세 줄었다.배꼽에 남은 마른 줄이 물에 닿지 않도록 산파가 손바닥으로 가렸다. 귀 뒤와 목 아래는 젖은 무명으로 살살 훔쳤다. 진묵은 그 손길을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그곳도 씻나.""젖이 흘러 고이기 쉬운 곳이옵니다.""아프게 문지르지 마라.""문지르지 않았사옵니다, 전하."산파의 목소리가 차츰 작아졌다. 보요는 입술을 깨물고 웃음을 참았다. 온이에게 고개를 숙인 진묵의 귀 끝이 아주 조금 붉었다.보요는 침상에 기대 앉아 푸른 발 너머로 보았다. 사흘 사이 얼굴의 붉은빛은 조금 가라앉았고, 감겨 있던 눈도 잠깐씩 열렸다. 눈동자는 아직 먹빛인지 갈색인지 가릴 수 없었다."이름을 지어야 합니다."상엄이 붉은 종이와 먹을 가져왔다. 출생 글을 왕부 족보와 경성 종친부에 올려야 했다.아이보다 먼저 지어 둔 이름은 스무 개가 넘었다. 상엄이 지난달부터 모아 둔 종이였다. 굳셀 강, 빛날 영, 귀할 진. 진묵은 첫 장부터 끝 장까지 한 번 훑더니 모두 뒤집어 놓았다."마음에 드는 글자가 없으십니까?""남들이 붙인 뜻은 필요 없다."진묵은 아이 손에 잡힌 손가락을 빼지 않은 채 물었다."무엇이 좋지.""왕야께서 정하세요.""황제는 고르지 말라 했고.""그래서 더 정하기 싫으십니까?"그의 눈이 보요에게 갔다. 아이의 젖은 발이 물 위에서 한 번 찼다. 작은 물방울이 진묵의 검은 옷깃과 뺨에 튀었다."온."한 글자가 떨어졌다.보요의 속눈썹이 들렸다."따뜻할 온입니까, 신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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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화. 북쪽의 여섯 글자

경성 편전의 붓이 여섯 글자 앞에서 멎었다.`왕비와 따님 무사.`북강에서 열사흘을 달려온 종이는 눈과 땀에 젖어 가장자리가 울었다. 소월백은 같은 줄을 세 번 읽고도 다음 장을 넘기지 않았다.상 아래에는 황후와 후궁으로 천거된 여인들의 초상 삼백여 장이 쌓여 있었다. 예부가 세 달 동안 고른 얼굴이었다. 붉은 옷, 푸른 옷, 웃는 낯과 다문 입술이 비단마다 가지런했다."폐하, 국혼의 날을 정하셔야 하옵니다."늙은 예관이 말했다.소월백은 북쪽 종이를 초상 위에 올렸다."선황과 선귀비의 상이 끝나지 않았다. 내년 봄 뒤에 다시 말하라.""나라의 대통이옵니다.""그래서 서두르지 않는다. 허씨 같은 집 하나를 다시 황궁에 들일 수는 없어. 여인의 얼굴보다 그 집에서 일한 하인과 소작인의 말을 먼저 들어라."예관은 반박하지 못했다. 초상 삼백여 장이 다시 궤에 들어갔다. 맨 위 여인의 화려한 봉황관이 뚜껑 아래로 사라졌다."그리고 혼담을 올린 집마다 지난 십 년 치 전장과 토지 문서를 함께 내게 하라.""황후를 고르는 일에 어찌 그런 것까지 보시려 하옵니까.""황후 한 사람만 궁에 드는 것이 아니니까. 그 뒤의 아비와 오라비, 그 집의 빚까지 함께 들어온다."편전이 조용해졌다. 허 승상이 딸 하나를 앞세워 조정 절반을 삼킨 일을 모르는 신하는 없었다. 소월백은 초상 궤의 자물쇠가 채워지는 소리를 들은 뒤에야 북강 종이를 다시 들었다.소월백은 북강 기별과 함께 온 작은 종이를 펼쳤다. 보요의 글씨였다.`아이 이름은 진온이라 지었습니다. 왕야께서 정하셨습니다.`그 아래에는 두 줄이 더 있었다.`눈썹은 왕야를 닮았고 입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밤마다 우는데, 왕야 품에서는 유난히 빨리 잠듭니다.`소월백은 마지막 줄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곁의 내관이 놀라 차를 엎을 뻔했다. 보요가 제게 보냈던 글에는 늘 창고와 길과 사람의 이름이 먼저였다. 이제 그 사이에 아이의 울음과 잠이 들었다. 그녀가 얻은 평안이 어떤 모양인지 여섯 글자보다 그 두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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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화. 한 달의 걸음

한 달 만에 보요의 발이 침소 문턱을 넘었다.진묵의 한 손은 팔꿈치에, 다른 손은 허리 뒤에 있었다. 겨우 회랑 열 걸음을 걷는 데 왕부 시비 여섯과 산파 둘이 뒤따랐다. 바람은 남쪽 창으로 맞던 것보다 차고 넓었다."다들 따라오지 않아도 됩니다.""따라와."진묵의 명에 시비들은 멎지 못했다. 보요가 그를 올려다보았다."왕야.""셋만."절반이 즉시 물러났다. 남은 셋은 웃음을 참으며 거리를 벌렸다.정당까지 가지 않고 회랑 끝 햇볕 드는 긴 의자에 앉았다. 눈은 지붕 그늘 아래만 남고 마당 한가운데에는 검은 흙이 드러났다. 대장간에서 새로 만든 작은 방울이 처마에 걸려 바람마다 낮게 울었다.열 걸음뿐인데도 보요의 등에는 엷은 땀이 났다. 무릎이 제 것이 아닌 듯 떨리고 아랫배가 묵직했다. 진묵은 그녀가 앉기도 전에 모피 방석을 한 장 더 받치고, 발밑에 데운 돌을 놓았다."숨이 찹니다.""돌아간다.""햇볕 한 줌만 더 쬐고요."보요의 말끝이 나긋해지자 그가 당장 들려던 팔을 거두었다. 대신 바람이 닿는 쪽에 몸을 세워 벽처럼 막았다. 시비 하나가 입가를 가리자 진묵이 눈을 들었다. 시비는 곧 방울만 바라보았다.온이는 상엄 품에 안겨 나왔다. 한 달 사이 뺨에 살이 오르고 눈을 뜨는 시간이 길어졌다. 진묵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본왕을 알아보는군.""검은 것만 보이는 걸 수도 있습니다."보요의 말에 진묵의 미간이 좁아졌다. 상엄은 아이를 누구에게 건넬지 잠깐 망설이다 보요에게 먼저 내밀었다. 진묵의 눈이 늙은 총관 손을 따라갔다."마마께서 한 달 만에 나오신 날이옵니다."상엄이 변명했다."안 물었다."그러면서도 그는 보요가 아이를 안는 동안 팔 아래에 손을 받쳤다. 온이의 무게까지 대신 들고 있는 셈이었다.정당 장부는 회랑으로 옮겨졌다. 허연교가 군량창에서 보낸 쌀 수량, 첫 장시에서 거둔 소금과 약초, 서른여섯 유족에게 돌아간 세곡이 적혔다. 보요는 한 장만 읽고 덮었다."더 보지 않으십니까."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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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화. 빈 사발의 쌀

두 달째 되는 날, 빈 검은 사발에 쌀이 담겼다.형이 황군 막사를 태운 죄도 함께 적으라며 사발을 엎었던 북강 병사의 동생이 군량창으로 왔다. 손에는 형의 낡은 군패와 검게 탄 천 조각이 들려 있었다.허연교는 저울 곁에서 자리만 내주었다. 허 도위는 서른여섯 무덤의 눈을 치우다 내려와 창고 문밖에 섰다. 다친 어깨는 굳었으나 왼팔을 높이 들지는 못했다.병사의 동생이 새 장부를 펼쳤다.첫 줄에는 황군 막사에 불을 지른 북강군 다섯 이름이 적혔다. 둘째 줄에는 성문을 열려다 북강군을 벤 황군 넷이 있었다. 승전도 역적도 쓰지 않고 누가 누구를 어디서 죽였는지만 남겼다.그는 형 이름을 찾았다. 손가락이 한 줄 위에서 오래 멎었다."누가 썼나.""제가 썼습니다."허연교가 답했다."네 아비 이름은."장부 마지막 장에는 허 승상의 군량 매각과 허 도위의 뒤늦은 자백, 허연교의 빈 수결까지 같은 먹으로 적혀 있었다."빠진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병사의 동생은 한참 장부를 읽었다. 허씨 남매는 재촉하지 않았다. 창고 안에서 쌀 포대 옮기는 소리만 났다.그는 한 장을 되짚어 형이 죽인 황군 병사의 이름도 찾았다. 낯선 이름 옆에는 늙은 어머니 하나와 여덟 살 아들이 남았다고 적혀 있었다. 사내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이 집에도 쌀이 갔나.""같은 날 갔습니다."허연교가 장부 아래 붙은 수결을 가리켰다. 사내는 제 형의 몫과 황군 유족의 몫이 같은 됫박으로 재어진 것을 오래 바라보았다."내가 다음 달부터 이 집 장작을 패지."허 도위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네 형 몫은 이미 네 집에 갔다. 빚이라 여기지 마라.""빚 갚는 것 아니다. 얼굴을 알아 두려는 거다."사내는 황군 병사의 이름을 한 번 소리 내어 읽었다. 처음 듣는 사람의 이름이 창고 서까래 아래에 남았다.그가 군패를 검은 사발 옆에 놓았다."형도 죄가 있다. 그래도 굶어 죽을 사람은 아니었어.""예."허 도위의 대답은 낮았다.병사의 동생은 쌀 한 줌을 사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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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화. 열두 집

온이가 뼈딸랑이를 세 번 흔드는 동안, 검은 칠함 하나가 왕부 안채로 들어왔다.금빛 봉니에는 중서성 인장이 찍혀 있었다. 그러나 칠함을 메고 온 파발은 황제의 말보다 먼저 사과부터 올렸다."폐하께서 왕비마마의 산후가 아직 여리다 들으셨습니다. 급히 답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거듭 이르셨습니다."진묵이 아이를 안은 채 물었다."폐하께서 그리 이르시고도 북강까지 함을 달리셨나."파발은 입을 다물었다. 보요가 웃음을 삼키며 칠함을 열었다.안에는 여인의 초상 대신 토지 글 열두 장이 포개져 있었다. 경성에서 국혼에 이름을 올린 집안들이 황후의 혼자금으로 내놓겠다는 재산이었다. 북강 남장시의 곡식 곳간, 서쪽 염정의 소금 창고, 세 부족 말들이 물을 먹는 개울, 겨울 나루의 세곡까지 가지런히 적혀 있었다.맨 위에는 소월백의 짧은 사신이 붙어 있었다.`얼굴은 안 봤다. 집부터 봐.`보요의 눈매가 가늘어졌다."오래 묵은 버릇은 용포를 입어도 그대로군요.""글이 짧군. 폐하께서도 군더더기는 버리신 모양이다."진묵은 온이가 잡아당기는 옷깃을 내주면서도 사신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보요가 토지 글 한 장을 그의 무릎 위에 펼쳤다."왕야께서도 보아 주세요.""네가 보면 된다.""눈이 쉬이 피로해져요. 함께 보아 주시면 안 될까요."그 나긋한 말끝에 진묵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곧 온이를 상엄에게 넘기고 보요 곁에 앉았다. 파발에게는 얼음처럼 굳었던 사내가 보요가 내민 종이 모서리부터 얌전히 눌렀다.첫 장은 이부상서 민씨가 내놓은 남장시 곡식 곳간이었다. 그곳은 지난겨울 북강과 황군 유족 서른여섯 집에 곡식을 나누려고 왕부가 비운 곳간이었다.둘째 장은 호부시랑 팽씨의 소금 창고였다. 보요가 기억하는 주인은 서륵 부족의 과부였다. 남편이 죽은 뒤에도 낙타 스물한 마리로 소금을 날라 제 손으로 세운 창고였다.셋째와 넷째 장에는 같은 나루가 서로 다른 이름으로 적혔다. 다섯째 집안은 북강 군마의 물길을, 여섯째 집안은 장시 저울의 절반을 혼자금이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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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화. 황후의 값

열두 장을 겹치자 한 곳간이 세 번 팔리고, 한 물길이 네 번 시집갔다.밤이 깊도록 왕부 서안에는 토지 글이 펼쳐져 있었다. 진묵은 붉은 먹으로 겹친 땅을 눌러 두었고, 보요는 북강 장시 장부에서 본래 주인의 이름을 찾아 곁에 놓았다.남장시 곳간은 유족들의 겨울 곡식이었다. 서쪽 염창은 서륵 부족 과부의 것이었다. 말 먹이는 개울은 세 부족이 전쟁을 멈추며 누구도 홀로 차지하지 않기로 맹세한 땅이었다. 열두 가문은 새 왕조의 황후 자리를 두고 다투는 척하면서, 어느 집 딸이 뽑히든 남의 것을 함께 나눠 갖도록 판을 짜 두었다."허씨가 비운 자리를 열둘이 나눠 앉으려는군."진묵이 붓을 놓았다.보요는 대꾸하지 않았다. 등잔 불빛이 두 겹으로 번져 보였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뜨자 진묵이 말없이 종이를 거두기 시작했다."왕야, 한 장만 더요.""끝이다.""이제 막 재미있어졌는데요.""네 얼굴은 재미없어 보인다."그가 손등으로 보요의 뺨을 짚었다. 서늘한 손마디가 달아오른 살결을 천천히 쓸었다. 먹향에 섞여 그의 옷에서 마른 솔 냄새가 났다. 보요는 그 손바닥에 뺨을 조금 더 기댔다."정말 한 장만요. 그 뒤에는 고분고분 누울게요."진묵의 눈빛이 낮아졌다."그 말을 함부로 쓰는군.""왕야께만 쓰는데도요?"짧은 숨이 그녀의 이마 위에서 멎었다. 진묵은 답 대신 보요의 어깨에 겉옷을 덮고 마지막 한 장을 내주었다. 제 손으로 베개까지 끌어다 허리 뒤에 받친 뒤였다.그 종이는 허씨가 몰락할 때 나라에 귀속된 밭이었다. 군량을 빼앗겨 굶은 집들에 봄 씨앗으로 나누기로 한 땅이, 병부상서 곽씨 딸의 혼자금이 되어 있었다.보요가 종이를 등잔에 비추었다. 두 겹으로 붙인 가장자리 안에서 먹빛이 어른거렸다."칼을 주세요.""내가 한다."진묵은 비녀 끝보다 얇은 소도를 꺼내 풀칠한 자리를 갈랐다. 사각. 종이 사이에서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쪽지가 떨어졌다. 아주 가는 글씨가 빼곡했다.`제 이름으로 팔린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북문을 열어 주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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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화. 붉은 혼례옷

눈발 속의 여인은 신랑보다 먼저 혼례옷을 다 해지고 말았다.붉은 치맛자락은 말린 진흙으로 무거웠고 금실로 수놓은 원앙 한 마리는 날개가 반쯤 뜯겨 있었다. 여인은 북문을 넘자마자 말에서 미끄러졌다. 수문장이 받쳐 들지 않았다면 돌바닥에 얼굴부터 부딪쳤을 터였다.그녀는 눈을 뜨자 물보다 먼저 물었다."삭왕비마마께서 글을 보셨습니까?"왕부 객당에는 진묵이 먼저 앉아 있었다. 칼은 풀지 않았고, 보요의 자리는 화로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두었다. 보요가 들어오자 일어나 팔을 내주었으나 붉은 옷의 여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성명을 고하라.""병부상서 곽윤의 장녀, 곽설란입니다."여인은 갈라진 입술로 또렷이 답했다. 스물두 살, 황후로 천거된 열두 여인 가운데 하나였다. 제 집안 종들의 눈을 속이려고 혼례 가마에 올라 경성 밖으로 나왔고, 역참에서는 먼저 혼인한 여인이 부군을 찾아간다고 둘러댔다. 닷새째부터 말을 탔으며 스무 날 동안 두 번 쓰러졌다고 했다.보요가 따뜻한 탕을 밀어 주었다."황후가 되기 싫어서 달아났습니까?"곽설란은 탕그릇을 들지 않았다."되고 싶습니다."진묵의 시선이 처음으로 그녀에게 닿았다. 곽설란은 두려워하면서도 고개를 들었다."천하의 여인에게 묻는다면 거짓 없이 답할 이는 드물 겁니다. 저는 황후가 되고 싶습니다. 다만 아무것도 모른 채 아버지의 인장 노릇을 하기는 싫습니다.""네 이름으로 팔린 것을 아느냐.""북강 소금길이라 들었습니다.""그 길은 네 아비 것이 아니다.""압니다. 그래서 왔습니다."곽설란이 젖은 소매 안에서 비단 한 폭을 꺼냈다. 붉은 혼례옷 안감에 바느질해 숨겨 온 것이었다. 실을 뜯자 열두 가문의 인장이 줄지어 드러났다.한 집의 딸이 황후가 되면 나머지 열한 집은 그 집을 받들고, 새 황후의 아버지는 병권과 조운과 염정을 열두 몫으로 가른다. 딸이 뽑히지 않은 집에도 관직 두 자리와 장시 한 곳을 준다. 누구도 홀로 패하지 않는 약조였다.보요는 비단을 끝까지 읽지 않았다. 첫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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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화. 열두 곳간의 열쇠

"숨지 말고 와. 네 황후는 네가 봐."보요가 쓴 사신을 읽고 곽설란의 입가가 처음으로 움직였다."폐하께 이리 쓰십니까?""싫어하던가?""소녀라면 심장이 멎을 듯합니다.""폐하는 그 정도로 안 멎어요."보요는 짤막하게 답하고 붓을 들었다. 소월백에게 보내는 사신 곁에는 중서성과 종정시에 올릴 정식 표문이 놓여 있었다. 열두 가문의 죄를 먼저 묻는 대신, 그들이 혼자금이라 내세운 물건을 북강 장시로 가져오라 청하는 글이었다.곡식 곳간을 바쳤다면 곳간 문을 여는 열쇠를, 소금길을 바쳤다면 그 길을 일군 사람들의 수결을, 말 먹이는 물길을 바쳤다면 세 부족의 허락을 가져와야 했다. 어느 하나라도 못 가져오면 제 것이 아닌 것을 황실에 바친 죄가 드러난다."경성에서 문초하면 말을 맞출 겁니다."보요가 말했다."여기로 불러 장사꾼들 앞에 세우면, 저들이 바친 곳간부터 문을 열지 못하겠지요."곽설란이 물었다."열두 집이 모두 북강까지 오겠습니까?""딸을 황후로 세우고 싶은 집은 옵니다."진묵은 탁자 끝에서 비단 약조를 읽고 있었다. 열두 집이 나눌 병권 가운데 북강군 몫까지 적혀 있었으나 그의 낯은 움직이지 않았다."병부상서가 내 군사를 혼자금으로 썼군.""폐하께서 빼앗아 주신다 하지 않았습니까?""누가 누구에게서 빼앗는지는 가르쳐 줘야겠지."그는 상엄을 불러 북강 세 부족의 우두머리와 장시 상인들에게 왕부 패를 보내라 명했다. 군사를 세워 열두 가문을 겁박하라는 말은 없었다. 다만 누구의 소금이고 누구의 물이며 어느 집이 겨울 곡식을 받았는지, 당사자가 제 입으로 말하게 했다.곽설란이 진묵을 흘끗 보았다. 전장에서 평생을 보낸 사내가 제 병권을 빼앗겠다는 글 앞에서도 칼부터 뽑지 않는 것이 뜻밖인 듯했다."전하께서는 노하지 않으십니까?""노할 일인가.""북강군을 열두 집이 나누려 했습니다.""종이에 가졌다고 쓰면 가질 수 있는 군사였으면 진작 잃었을 것이다."진묵은 비단을 접어 보요 앞에 놓았다."사람부터 잡지 마라. 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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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화. 붉은 답장

스물여드레 뒤, 열쇠보다 칼이 먼저 왔다.곽씨 집안의 푸른 깃발을 단 수레 여섯 대가 북강 장시 어귀를 막았다. 수레에서 내린 사내들은 황실 혼자금을 거두러 왔다며 남장시 곡식 곳간에 붉은 봉지를 붙였다. 병부상서의 집복을 입은 호위 서른은 창을 들고 있었고, 맨 앞의 관원은 중서성 글을 높이 내보였다."황후 간택에 쓰일 재물이니 잡인은 물러서라!"곳간지기 노인이 문 앞을 막았다."이 쌀은 죽은 군사들 집으로 갈 것이오.""어명이 먼저다."관원이 손짓하자 호위 둘이 노인을 끌어냈다. 그러나 곳간 문에 칼끝이 닿기 전, 검은 칼집 하나가 그 사이를 가로막았다.진묵은 갑주도 입지 않은 채 서 있었다. 그의 뒤에는 북강 군사 대신 쌀을 받으러 온 유족과 장사꾼들이 모여 있었다."읽어라."관원의 입술이 굳었다."무엇을 말씀이십니까.""어명이라 했으니 한 자도 빠뜨리지 말고 읽어."관원은 펼친 글을 더 높이 들었다. 황후로 정해진 곽씨 여인의 혼자금을 먼저 거두고, 북강 장시의 곡식과 소금 중 절반을 궁으로 올리라는 내용이었다.진묵이 끝까지 듣고 물었다."황후가 정해졌나.""곧 정해지실 것입니다.""그럼 어명이 아니군.""중서성의 붉은 인장이 보이지 않으십니까?""보인다. 그래서 네 목을 아직 붙여 둔 것이다."호위 하나가 창대를 고쳐 쥐었다. 진묵의 칼은 뽑히지 않았다. 검집 끝이 툭, 사내의 손목을 쳤다. 창이 눈 위에 떨어졌다. 짧은 소리 뒤로 서른 자루가 일제히 굳었다."칼을 거두고 무릎 꿇어라. 두 번은 말하지 않는다."사내들이 차례로 창을 놓았다. 관원만 글을 품에 감추려 했다. 북문 쪽에서 지켜보던 곽설란이 앞으로 나왔다."그 글을 제게 주십시오.""아가씨, 상서 어른께서 기다리십니다.""아버지께서는 제가 황후로 정해졌다 쓰셨습니까?"관원은 답하지 못했다.곽설란이 제 손으로 붉은 봉지를 뜯었다. 풀도 마르지 않은 종이 아래에서 겨울 곡식표가 드러났다. 병사의 동생이 두 달 전 빈 사발에 쌀을 담으며 남긴 수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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