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레비아탄의 오른손 장갑판 전체가 내 빙정의 통제를 받아, 고주파 진동검의 주파수와 정확히 '반대되는 위상'의 미세 진동을 일으켰다. 이른바 플렉소 일렉트릭을 응용한 카운터 파동.파지지직!!검과 손바닥이 부딪치는 순간, 쇳소리가 아니라 마치 고무공이 튕겨 나가는 듯한 둔탁한 파열음이 울렸다. 발뭉의 고주파 진동이 완벽하게 상쇄되며, 오히려 그 반발력이 놈의 팔 관절을 타고 역류해 들어갔다."큭...! 기체 자세 제어!"발뭉이 비틀거리며 스러스터를 뿜어 뒤로 물러섰다.놈의 오른팔이 과부하로 인해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최유리의 데이터 속에는 '맨손으로 고주파 검을 튕겨내는 장갑판' 따위의 계산식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어유, 솜방망이네. 형님, 그냥 한 대 쥐어박자니까.]"기다려 봐. 저쪽 콧대가 아직 덜 꺾였잖아."내 예상대로, 최유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의 자존심이 패배를 용납하지 못하는 듯했다."에너지 실드 전개! 숄더 캐논, 최대 출력으로 차징!"위이잉-!발뭉의 어깨 장갑이 열리며 두 문(門)의 플라즈마 캐논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의 기체가 눈부신 파란색 마력의 빛으로 휩싸이며 거대한 에너지를 응축하기 시작했다. 한 방 제대로 맞으면 연병장 벽면이 통째로 날아갈 정도의 무식한 화력이었다.하지만 내 눈에는, 그저 교과서에 적힌 대로 순서를 밟아가는 답답한 수싸움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실전의 괴수들은 캐논이 충전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너무 뻔하잖아, 소위님."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단전의 냉기를 레비아탄의 오른손 끝으로 쭈욱 끌어올렸다.슈우우웅- 콰아아앙!!발뭉의 어깨에서 두 줄기의 굵직한 플라즈마 빔이 굉음을 내며 뿜어져 나왔다. 공기를 태우는 열기가 콕핏 안쪽까지 스며들 정도의 일격.나는 피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오른손을 들어 올려, 날아오는 광선의 궤적 한가운데를 향해 손바닥을 쫙 펼쳤다.쩌저저적-!!순간, 레비아탄의 손바닥을 중심으로 연병장 안의 수분이 급
"반갑습니다. 하태수 준위입니다. 그쪽이 저 새하얀 장난감 주인이군요."내 나른한 대답에, 최유리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장난감이라는 단어가 그녀의 엘리트 적인 자존심을 단단히 긁은 모양이었다.그녀가 턱을 살짝 치켜들며, 내 등 뒤에 서 있는 레비아탄을 곁눈질했다."장난감이라뇨. 발뭉은 삼천 그룹의 최신 마력 공학이 집약된 결정체입니다. 오히려 제 눈에는... 하 준위님의 저 기체가 당장 폐기장으로 가야 할 구형 고철로 보입니다만.""야야! 최 소위! 말조심해라!"옆에서 기겁한 철수가 최유리의 팔을 잡아당겼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눈을 똑바로 쏘아보았다."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하와이에서 군주를 잡고, 며칠 전 서울에서도 맹활약하셨다고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파일럿의 변칙적인 '이능력'에 의존한 결과물 아닙니까? 정규 군사 교육도 받지 않은 민간인 출신이, 저렇게 안정성 떨어지는 구형 껍데기를 몰고 다닌다는 건 현대 전술의 수치입니다."따박따박 쏘아붙이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자신감과 오만함이 절반씩 섞여 있었다.명문 사관학교에서 수천 시간의 시뮬레이션을 거치며 오직 '데이터'와 '통제된 스펙'만을 진리로 믿고 자란 범생이의 시선. 그 시선에서 나라는 존재는, 근본도 없이 운 좋게 강력한 장비를 얻어걸린 양아치쯤으로 보이는 게 당연했다.나는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채 픽 웃었다."그래서요. 수치스러운 고철 덩어리한테 뭘 원하시는데요, 최 소위님.""실전 데이터입니다. 제 발뭉의 스펙이 저 구형 기체를 상대로 얼마나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지, 모의 대련을 통해 증명하고 싶습니다."최유리가 장갑을 낀 손으로 발뭉을 가리키며 당당하게 선언했다."만약 제가 이긴다면, 하 준위님이 가진 그 비합리적인 특권들... 독립적인 작전권이나 보급 우선순위 등을 정규군인 저희 발뭉 부대 쪽으로 일부 양도해 주셨으면 합니다."이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리람.나는 황당하다는 듯 옆에 선 신수지를 쳐다보았다.
띠링-.나른한 봄햇살이 거실 유리창을 넘어오던 오후.소파에 길게 누워 귤을 까먹고 있던 내 바지 주머니에서, 경쾌한 알림음이 짧게 울렸다. 온수 매트의 열기에 취해 반쯤 감겨 있던 눈을 비비며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입금 알림: 아크 부대 특수 작전 대금 및 위약금 정산][입금자: (주)화이트 타이거 길드][금액: 34,500,000,000원]"......오호라."화면에 찍힌 0의 개수를 세어보던 나는 절로 실소를 터뜨렸다.삼백사십오억.서울 한강 둔치에서 내 벼락 한 방에 오줌을 지렸던 최무진 이사, 놈이 아주 영혼까지 끌어모아 계좌를 털어 넣은 모양이었다. 아마 화이트 타이거 길드의 올해 순이익 절반은 족히 날아갔으리라."이 맛에 특근 뛰는 거지.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선 금융 치료만 한 게 없어."도망친 죗값을 돈으로 토해낸 그 깍쟁이 놈들의 창백해진 얼굴을 상상하니, 입안의 귤이 유난히 더 달게 느껴졌다. 이 돈이면 하숙집 옥상에 그릴을 새로 하나 놓고, 이모님 주방 싱크대도 최고급으로 싹 다 갈아엎을 수 있겠다.내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을 때였다.위이잉- 위잉-!이번에는 군용 통신망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에 뜬 발신자는 아크 부대의 사령관님. 휴가 중에 울리는 직장 상사의 전화만큼 불길한 건 없지만, 방금 전 거액의 입금을 확인한 터라 너그러운 마음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예, 하 준위입니다. 사령관님, 방금 부대 쪽으로 입금 꽂힌 거 보셨습니까? 제 수당 떼먹지 말고 칼같이 통장에 넣어주십쇼."-[하하! 하 준위, 자네 덕분에 우리 부대 예산이 아주 차고 넘치네! 헌데 수당은 수당이고, 지금 당장 부대 지하 연병장으로 좀 출근을 해줘야겠어.]"저 오늘 비번인데요. 또 어디 앞바다에 미꾸라지 새끼들이라도 튀어나왔습니까?"-[아니, 괴수가 쳐들어온 건 아니고. 삼천 그룹에서 이번에 새로 뽑아낸 양산형 기체 테스트가 있네. 신수지 소장이 자네의 레비아탄이랑 모의
단 5분.수천 마리의 스틸 사하긴 떼가 흔적도 없이 정리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그뿐이었다.치이이익-.강변을 뒤덮었던 뽀얀 수증기와 먼지구름이 걷히고, 얼어붙은 한강 둔치 위에는 오직 창백한 냉기를 뿜어내는 나의 흑기사, 레비아탄만이 우뚝 서 있었다.[형님. 주변 반경 10킬로미터 이내 생체 반응 제로. 마력 파장 소멸. 아주 깔끔하게 밀어버렸어.]"수고했다. 출력 원래대로 낮춰."나는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상황은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이 난장판을 수습하고 밀린 계산서를 청구하는 일뿐.쿠웅, 쿠웅.레비아탄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마포대교 진입로 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방탄 장갑차 옆에 주저앉아, 얼이 빠진 표정으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최무진이 있었다.놈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명품 슈트는 진흙탕에 구른 듯 엉망이었고, 포마드로 깔끔하게 넘겼던 머리는 산발이 되어 이마에 들러붙어 있었다. 가장 압권인 것은 놈의 바짓가랑이 안쪽이 눈에 띄게 젖어 있다는 점이었다.진짜 쌌네, 저거.쿵-!레비아탄이 놈의 코앞에 거대한 발을 내려놓았다. 20미터 높이의 거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뇌전의 스파크가 놈의 정수리를 짓눌렀다.치이익-. 외부 스피커가 다시 켜졌다.[어이. 서울 깍쟁이.]"히, 히익...!"내 무심한 기계음이 울려 퍼지자, 최무진이 발작을 일으키며 엉덩방아를 찧은 채 뒤로 물러섰다.[입이 있으면 대답을 해야지. 랭킹 1위 길드 간부라는 양반이 벌레 몇 마리 나왔다고 시민들 버리고 빤스런을 치냐? 니들 주특기인 언론 플레이는 어디 가고 흙바닥에 주저앉아서 오줌이나 지리고 있노.]"그, 그게... 내, 내 화염이 도저히 통하질 않아서... 전략적인 후퇴를..."[전략적 후퇴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니가 싸지른 똥, 부산에서 올라온 내가 다 치웠다. 봤지?]최무진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의 동공에는 짐승 앞의 초식동물 같은 원초적인 공포가 서려
파아아앗-!!차가운 강바람이 휘몰아치는 여의도 둔치 위로, 짙은 보랏빛 섬광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레비아탄의 양팔에서 길게 뽑혀 나온 것은 단순한 전기의 다발이 아니었다. 베링해협에서 캐온 극소용돌이의 마석이 뿜어내는 '초고압 진공'의 칼바람. 그 칼바람의 궤적을 따라 테라와트급의 플라즈마 뇌전이 얽혀들며, 마치 공간 자체를 찢어발기는 듯한 거대한 두 가닥의 뇌전 채찍이 완성되어 있었다."키리리릭...!""키에에엑!"강변을 새까맣게 뒤덮고 있던 스틸 사하긴 떼가 일제히 기괴한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동족인 대장 개체가 단 한 방에 증발하는 것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저 바다 밑바닥의 배후가 불어넣은 살육의 본능은 놈들에게서 도망칠 의지마저 앗아간 모양이었다.놈들이 양팔의 강철 작살을 치켜든 채, 시커먼 파도처럼 나를 향해 밀려들기 시작했다."물량 하나는 기가 막히게 뽑아냈네. 징그러운 미꾸라지 새끼들."나는 콧방귀를 뀌며 조종간을 가볍게 쥔 양손의 손목을 바깥쪽으로 스냅을 주어 튕겼다. 나와 신경망이 완벽하게 동기화된 레비아탄의 양팔이 그 미세한 움직임을 증폭시켜 거대한 궤적을 그려냈다.콰아아앙-!!허공을 가른 폭풍 뇌전의 채찍이, 몰려드는 사하긴 떼의 선두를 가로로 쓸고 지나갔다.마법 저항력이 극한에 달했다는 놈들의 시커먼 강철 비늘?그딴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채찍의 겉을 감싸고 있는 진공의 압력이 놈들의 비늘을 종잇장처럼 우그러뜨리며 방어력을 0으로 만들면, 곧바로 뒤따라 들어가는 초고열의 플라즈마가 놈들의 살육과 뼈대 자체를 순식간에 기화시켜버렸다.퍼퍼퍼펑!!선두에 서 있던 수백 마리의 사하긴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시뻘건 핏물과 잿가루가 되어 공중으로 흩어졌다. 채찍이 휩쓸고 지나간 아스팔트 바닥은 마치 거대한 레이저 커터로 도려낸 듯 쩍쩍 갈라지며 시뻘건 용암을 토해냈다.[크하하하! 형님! 이 밸브 진짜 미쳤어! 관절에 무리가 하나도 안 온다고! 예전 같았으면 이 정도 출력 뽑을 때 프레
콕핏의 관성 제어 시스템이 풀가동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장 전체가 뒤로 쏠리는 듯한 엄청난 중력가속도(G-force)가 전신을 짓눌렀다.시야에 비친 부산항 앞바다가 순식간에 점으로 사라지고, 한반도의 굵직한 산맥들이 흐릿한 선처럼 뒤로 밀려 나갔다. 빙정이 뿜어내는 절대영도의 냉기가 기체의 과열을 실시간으로 식혀주지 않았다면, 비행 마찰열만으로도 장갑판이 녹아내렸을 속도였다.부산에서 서울까지. 일반 수송기로도 한참이 걸리는 거리를, 저항 제로의 진공 터널을 뚫고 질주하는 흑기사는 단 몇 분 만에 주파해버렸다."목표 지점 확인. 강하한다."[서울 한강 여의도 둔치]"크아아악!! 살려줘!!""후퇴해라! 장비 버려! 일단 살고 봐야 할 거 아냐!"서울의 심장부 한강 둔치는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다.콘크리트 제방을 넘어온 수천 마리의 스틸 사하긴 떼가 날카로운 강철 작살로 공원의 조형물들을 부수고, 벚나무들을 꺾어 던지며 무차별적인 학살을 자행하고 있었다.그 난장판의 한가운데, 마포대교 진입로 근처에서 화이트 타이거의 최무진 이사는 호위병들을 고기 방패로 세워둔 채 헐레벌떡 방탄 SUV 차량의 문손잡이를 당기고 있었다."이, 이 병신들아! 빨리 안 열어?! 내가 여기서 죽으면 화이트 타이거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된다고!"언론 앞에서 폼을 잡던 그의 명품 슈트는 진흙과 강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고, 거만했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콧물까지 흘리고 있었다.키에에엑-!그때, 사하긴 무리를 이끌던 덩치 큰 대장 개체 하나가 다리 교각을 박차고 뛰어올라 최무진의 차를 향해 작살을 내리꽂았다."히, 히익!! 헬 플레어...!"최무진이 다급하게 시뻘건 화염구를 쏘아 올렸지만, 놈은 콧방귀를 뀌며 입에서 고압의 물줄기를 뿜어내 불꽃을 단숨에 꺼버렸다. 날카로운 강철 작살이 최무진의 머리통을 으깨기 위해 뻗어 내려오는 절체절명의 순간.그의 머리 위, 잿빛으로 탁한 서울의 하늘이 일순간 쩍- 하고 두 갈래로 갈라졌다.파아아아아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