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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마기에 잠식된 대공: Chapter 11 - Chapter 20

63 Chapters

알려주지 않는 것도 답일까요

황궁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평소와 같은 아침이었다. 복도를 오가는 시종들. 정원에서 가지를 다듬는 정원사. 멀리서 들려오는 기사들의 훈련 소리.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아 보였다. 그런데도. 엘라는 느꼈다. 무언가 달랐다. “전하.” “응?” 테오도르가 책에서 고개를 들었다. “오늘 황제 폐하께서 안 오셨습니다.” “원래 아침 수업에는 안 오시잖아.” “하지만 복도를 지나가실 때 한 번쯤은 보십니다.” 테오도르가 잠시 생각했다. “그랬나?” “네.” 엘라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황제의 집무실이 있는 본궁 쪽.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창문 여러 개에 불이 켜져 있었다. 밤새 꺼지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기사님들도 많아졌습니다.” 테오도르도 그제야 창밖을 보았다. 평소보다 경비 인원이 많았다. 본궁과 동쪽 별궁 사이. 둘을 연결하는 회랑 곳곳에 황실 기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무슨 일 있나?” “모르겠습니다.” 엘라는 책상 위에 놓인 신성력 기록 수첩을 바라보았다. 지난 며칠 동안 검은 점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황궁의 분위기는 점점 무거워졌다. 북부에서 전령조가 온 뒤부터였다. “전하께서는 아무것도 못 들으셨습니까?” 테오도르가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 “조금.” “무엇을요?” “북부가 안 좋대.” 엘라가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요?” “거기까진 몰라.” “왜요?” “아버지가 지금은 그것만 알면 된다고 했어.” 엘라는 잠시 테오도르를 바라보았다. 예전의 테오도르라면 분명 화를 냈을 것이다. 왜 자신에게는 알려주지 않느냐고. 황태자인데 왜 모르고 있어야 하느냐고.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조금 답답해 보이긴 했다. 그렇다고 억지로 괜찮은 척하지도 않았다. “궁금하지 않습니까?” 엘라가 물었다. “궁금하지.” “그런데 더 안 물어보십니까?” “물어봤어.” “그런데요?” “지금보다 상황이 나빠지면 알려준대.” 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기다리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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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아도 해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공녀님이 싫습니다.” 교실이 조용해졌다. 엘라는 눈을 깜빡였다.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맞은편에 앉은 소녀는 분명히 말했다. “공녀님이 싫습니다.” 또렷했고. 꽤 진심이었다. 엘라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옆자리의 테오도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지금 뭐라고 했어?”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소녀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물러나지 않았다. “황태자 전하께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그래도 들었어.” “전하.” 엘라가 테오도르의 소매를 잡았다. “잠깐만요.” 테오도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엘라는 고개를 작게 저었다. 테오도르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소녀의 이름은 릴리안 로제르. 열 살. 황실 예비교육반에 새로 들어온 아이였다. 로제르 후작가의 막내딸. 연분홍 머리카락에 커다란 청록색 눈. 말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수업 준비를 완벽하게 했고. 시험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문제는 오늘 아침에 시작됐다. ⸻ “답을 베꼈습니다.” 엘라가 말했다. 릴리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아이들에게 짧은 과제가 하나씩 주어졌다. 제국의 다섯 개 영지 가운데 하나를 고른 뒤. 그곳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와 이유를 적는 것이었다. 정답은 없었다. 각자가 이유를 설명하면 되는 문제였다. 엘라는 과제를 걷으며 하나씩 읽었다. 세드릭은 서부의 도로 문제. 노아는 북부의 말 사육 환경. 에런은 남부 항구의 물류 문제. 그리고 릴리안. 그녀가 선택한 것은 동부였다. 동부의 가장 큰 문제는 광산 노동자의 안전이다. 붕괴 사고가 잦기 때문에 마력 탐지 장치를 추가해야 한다. 좋은 답이었다. 다만. 엘라는 그 문장을 어제 읽은 적이 있었다. 황실 교육청에서 참고 자료로 나누어준 논문. 한 관리가 동부 광산 문제를 분석하며 쓴 문장과 거의 똑같았다. 단어의 순서까지. “제가 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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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것과 내버려두는 것은 다릅니다

“오늘 수업은 취소됐습니다.” 에드먼드 교수의 말에 교실 안이 조용해졌다. 세드릭이 가장 먼저 물었다. “왜요?” “황궁 사정 때문입니다.” “무슨 일인데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아이들의 표정이 동시에 시무룩해졌다. 엘라는 교수의 얼굴을 바라봤다. 어제보다 더 피곤해 보였다. 눈 밑의 그늘도 짙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로 묻지 않았다. 교수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 지금은 기다리면 된다. 다만. “교수님.” “왜요?” “저희가 알아야 할 때가 오면 알려주십니까?” 에드먼드 교수의 시선이 엘라에게 향했다. 잠시 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엘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적어도 지금은. 아이들은 갑자기 생긴 자유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세드릭은 곧장 훈련장을 가자고 했고. 에런은 도서관을 원했다. 릴리안은 과제를 끝내고 싶어 했다. 노아는 마구간에 가야 한다고 했다. “다 따로 가면 되잖아.” 테오도르가 말했다. 세드릭이 그를 바라봤다. “같이 놀면 안 됩니까?” “뭘 하고 싶은데?” “검술 대련이요.” 에런의 얼굴이 바로 굳었다. “저는 싫습니다.” “그럼 구경해.” “그것도 싫습니다.” 세드릭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왜?” “재미없으니까.” “검술이 어떻게 재미없어?” “책 읽는 게 더 재밌어.” “그게 어떻게 재미있어?” 둘의 표정이 동시에 심각해졌다. 엘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하는 게 다를 수 있습니다.” 세드릭이 말했다. “그래도 다 같이 놀고 싶습니다.” 그 말에 에런도 조금 망설였다. “저도 같이 있는 건 싫지 않습니다.” “그럼 뭐 하지?” 릴리안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정원 미로는요?” 아이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황궁 서쪽 정원에는 낮은 생울타리로 만든 작은 미로가 있었다. 어른들에게는 별것 아니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복잡했다. 세드릭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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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면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전하.” 엘라는 테오도르의 손에 들린 종이를 바라봤다. “그건 무엇입니까?” 테오도르는 종이를 얼른 뒤집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걸 왜 숨기십니까?” “숨긴 거 아니야.” “지금 뒤집으셨습니다.” “그냥 손목 운동.” 엘라는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테오도르도 엘라를 바라봤다. 먼저 시선을 피한 건 테오도르였다. “왜 그렇게 봐.” “거짓말을 잘 못하십니다.” “너도 잘 못해.” “저는 지금 거짓말 안 했습니다.” “그게 더 얄미워.” 테오도르는 결국 종이를 다시 펼쳤다. 거기에는 익숙한 형식의 표가 그려져 있었다. 수면 시간. 식사량. 공부 집중도. 검술 훈련. 기분. 엘라의 눈이 조금 커졌다. “전하도 기록하십니까?” “응.” “왜요?” “아버지가 해보래.” “황제 폐하께서요?” “요즘 내가 피곤해 보인대.” 엘라는 테오도르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눈 밑에 아주 옅은 그늘. 평소보다 조금 무거운 눈꺼풀. “정말 피곤해 보이십니다.” “왜 이제 말해?” “오늘 처음 자세히 봤습니다.” “맨날 그렇게 사람 얼굴 보면서.” “전하는 너무 자주 봐서 오히려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테오도르가 잠시 멈췄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매일 보면 작은 변화는 놓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엘라는 자신의 신성력 기록 수첩을 꺼냈다. “저도 처음에는 검은 점만 기록했습니다.” “응.” “그런데 주변 상황도 같이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엘라는 수첩을 펼쳤다. 수면 부족 없음. 신성력 사용량 평소와 같음. 전령통 오염 근처에서만 검은 점 확인. 테오도르가 수첩을 들여다봤다. “그래서 뭘 알아냈어?” 엘라는 입을 열었다가 멈췄다. “아직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뭐야.” “대신.” 엘라는 한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검은 점이 나타난 날과 나타나지 않은 날을 같이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 전에는?” “그날 일만 기억했습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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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혀 있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세드릭은 화를 잘 냅니다.”엘라의 말에 세드릭이 눈을 크게 떴다.“제가요?”“네.”“언제요?”엘라는 손에 들고 있던 공책을 펼쳤다.“지난 일주일 동안 세 번입니다.”“세 번밖에 안 냈는데요?”“밖에?”노아가 옆에서 중얼거렸다.세드릭이 노아를 바라보았다.“너도 화내잖아.”“나는 세 번보다 적습니다.”“그걸 어떻게 알아?”노아는 자신의 기록장을 들어 보였다.“적었습니다.”세드릭의 얼굴이 굳었다.“다들 왜 이렇게 열심히 해.”에런이 진지하게 대답했다.“교수님이 한 달은 해보라고 하셨잖아.”“너는 원래 기록하는 걸 좋아하잖아.”“맞아.”너무 순순한 인정에 세드릭이 할 말을 잃었다.엘라는 다시 자신의 메모를 내려다봤다.오늘은 황실 예비교육반의 기록 수업 두 번째 주.에드먼드 교수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기록을 살펴보고, 그 안에서 반복되는 행동 하나를 찾아보라고 했다.엘라는 정식 학생은 아니었지만.보조 지도자로서 아이들의 기록을 함께 살피고 있었다.물론.보고 싶지 않다고 표시한 부분은 읽지 않았다.“다시 말하겠습니다.”엘라가 말했다.“세드릭은 화를 자주 냅니다.”“아까랑 똑같잖아요.”“아닙니다.”“뭐가 다른데요?”“아까는 잘 냅니다.”“…….”“지금은 자주 냅니다.”세드릭이 잠시 생각했다.“그게 더 나쁜 것 같은데요?”테오도르가 뒤에서 웃음을 터뜨렸다.“나도 그렇게 들려.”엘라는 두 사람을 무시했다.“화요일에는 검술 대련에서 졌을 때.”손가락 하나.“목요일에는 간식이 늦게 왔을 때.”두 번째.“어제는 에런이 책을 돌려주지 않았을 때.”세 번째.에런이 고개를 들었다.“그건 제가 반납일을 착각했습니다.”“알고 있습니다.”세드릭이 팔짱을 꼈다.“그러니까 제가 화를 잘 내는 게 맞잖아요.”“그럴 수도 있습니다.”엘라는 잠시 기록을 바라봤다.처음에는 확실하다고 생각했다.세 번이나 반복됐다.기록에도 남아 있었다.그렇다면 세드릭은 화를 잘 내는 사람이다.하지만.문득 이상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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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해주는 건 도움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엘라가 말했다. 그리고 바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탁. 에런이 자신의 공책을 얼른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엘라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왜요?” 에런은 조금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제가 해보겠습니다.”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절반도 못했잖아요.” “그래도 제가 할게요.” 엘라는 책상 위의 모래시계를 바라봤다. 남은 시간. 십 분. 황실 예비교육반의 오늘 과제는 간단했다. 지난 한 달 동안 했던 수업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하나를 골라. 그때 자신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발표문으로 정리하는 것. 그리고. 수업이 끝나기 전에 모두 앞에서 발표하기. 아이들은 아침부터 각자 준비하고 있었다. 세드릭은 이미 끝냈다. 노아도 거의 다 썼다. 릴리안은 문장을 두 번이나 고쳐가며 마지막 부분을 정리하고 있었다. 문제는 에런이었다. 첫 줄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또 지웠다. 벌써 한 시간이 지났는데. 종이에는 겨우 세 문장만 남아 있었다. 엘라는 조금 전부터 옆에서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기다렸다. 에런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정말 시간이 없었다. “에런.” “네.” “정말 이대로 괜찮습니까?” 소년의 손가락이 펜을 세게 쥐었다. “모르겠습니다.” “제가 정리해드릴 수 있습니다.” “싫습니다.” “내용은 에런이 말하고, 제가 문장만—” “싫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분명했다. 엘라는 입을 다물었다. 에런은 다시 종이를 바라봤다. 하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테오도르가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엘라가 대답했다. “발표문을 못 끝냈습니다.” “누가?” “에런이요.” 테오도르는 종이를 슬쩍 봤다. “진짜 얼마 안 썼네.” 에런의 얼굴이 붉어졌다. “전하.” 엘라가 낮게 말했다. “왜?” “그렇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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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나아졌다고 끝난 것은 아닙니다

“공녀님.” 엘라는 걸음을 멈췄다. 뒤에서 달려온 릴리안이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저…….” 릴리안은 주변을 한번 살폈다. 복도에는 시종 몇 명이 오가고 있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낮췄다. “잠깐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두 사람은 창가의 작은 의자로 이동했다. 릴리안은 손가락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평소보다 긴장한 모습이었다. 엘라는 재촉하지 않았다. “말하고 싶을 때 말씀하십시오.” 릴리안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오늘 황궁에 오십니다.” 엘라가 눈을 깜빡였다. “왜요?” “제가 지난번 과제를 다시 한 것을 아셨습니다.” “…….” “교수님께 면담을 요청하셨습니다.” 릴리안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리고 공녀님도 만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엘라는 잠시 멈췄다. “저를요?” “네.” “왜요?” 릴리안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엘라는 그 얼굴만 보고도 대충 알 것 같았다. 좋은 이유는 아닐 것이다. “화가 나셨습니까?” 릴리안이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답을 베꼈다는 사실보다.” “…….” “공녀님께서 제 과제를 다시 하게 한 것을 더 화내시는 것 같습니다.” 엘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왜요?” “제가 이미 좋은 답을 썼는데.” 릴리안은 어머니의 말을 떠올리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굳이 망신을 주고 다시 쓰게 했다고요.” 엘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저는 망신을 주려고 한 게 아닙니다.” “알아요.” “그리고 처음에 다른 아이들 앞에서 물어본 건 제가 사과했습니다.” “그것도 알아요.” “그럼.” 릴리안이 갑자기 엘라의 손을 잡았다. “공녀님.” “네.” “어머니께 제가 잘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시면 안 됩니까?” 엘라는 멈췄다. “무엇을요?” “제가 수업 잘 듣고 있고.” “…….” “요즘은 틀려도 다시 하고 있고.” “…….” “공녀님이 저를 좋게 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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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전하.”엘라는 테오도르를 바라보았다.“키가 크셨습니까?”테오도르가 책을 읽다 고개를 들었다.“갑자기?”“네.”엘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 테오도르 앞으로 걸어갔다.손바닥을 자신의 머리 위에 올리고.그대로 앞으로 가져갔다.테오도르의 이마 아래쯤.엘라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정말입니다.”“뭐가?”“전하가 저보다 커지셨습니다.”테오도르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원래 내가 컸어.”“아닙니다.”“맞아.”“지난달에는 거의 같았습니다.”“네가 잘못 기억하는 거야.”엘라는 단호하게 말했다.“기록이 있습니다.”테오도르의 얼굴이 굳었다.“키도 기록했어?”“지난달 건강검진 때 적었습니다.”“왜?”“기록하면 보이는 것이 생긴다고 배웠으니까요.”“그걸 거기까지 써먹어?”엘라는 가방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테오도르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진짜 있네.”엘라가 페이지를 펼쳤다.황태자 전하 — 엘라보다 약 반 마디 큼.그리고 오늘.엘라는 테오도르를 다시 재봤다.“이제 한 마디 정도 큽니다.”테오도르의 얼굴에 승리감이 떠올랐다.“봤지?”“무엇을요?”“내가 더 크다고.”“키가 조금 큰 게 그렇게 기쁩니까?”“당연하지.”테오도르는 어깨를 폈다.“이제 네가 나한테 꼬맹이라고 못 하겠네.”엘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저는 전하를 꼬맹이라고 부른 적 없습니다.”“눈으로 그랬어.”“눈으로 어떻게 부릅니까?”“그런 눈이 있어.”“이상한 말씀입니다.”두 사람이 또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교탁에서 책을 정리하던 에드먼드 교수가 한숨을 쉬었다.“두 분.”둘은 동시에 멈췄다.“오늘 수업이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테오도르가 말했다.“제국사.”엘라가 덧붙였다.“제4대 황제 통치기.”“그러면 황태자 전하의 키 이야기는 나중에 하십시오.”테오도르가 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중요한 건데.”“제국의 역사보다요?”“내 키니까.”에드먼드 교수는 대답하지 않았다.엘라는 웃음을 참으며 책을 펼쳤다.하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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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같은 자리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안 됩니다.”엘라가 말했다.테오도르가 바로 인상을 썼다.“왜?”“제 겁니다.”“하나만.”“싫습니다.”“두 개나 있잖아.”“두 개 다 제 겁니다.”테오도르는 테이블 위의 접시를 바라봤다.작은 딸기 타르트 두 개.그리고.그 앞을 철벽처럼 지키고 있는 엘라.“너 아까 점심도 두 그릇 먹었잖아.”“점심과 간식은 다릅니다.”“뭐가?”“시간이 다릅니다.”“그게 무슨 논리야?”“정확합니다.”테오도르는 어이없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한입만.”“전하께도 있었습니다.”“먹었어.”“그럼 끝입니다.”“친구잖아.”엘라의 눈이 가늘어졌다.“친구라서 남의 타르트를 뺏어도 됩니까?”“나 황태자인데.”“더 안 됩니다.”“왜?”“황태자가 백성의 타르트를 빼앗으면 안 되잖아요.”“네가 백성이야?”“제국민입니다.”테오도르의 입이 다물렸다.잠시 뒤.그가 말했다.“너 진짜 말만 늘었다.”엘라는 뿌듯한 표정으로 타르트를 한입 베어 물었다.“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그 공부를 이런 데 쓰라고 한 건 아닐 텐데.”“배운 것은 활용해야 합니다.”테오도르는 결국 포기한 듯 소파에 등을 기대었다.그때.응접실 문이 열렸다.에드먼드 교수가 들어왔다.손에는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엘라가 입안의 타르트를 삼켰다.“교수님.”“두 분 다 계셨군요.”테오도르가 물었다.“무슨 일입니까?”교수는 두 사람 맞은편에 앉았다.그리고.서류 하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다음 달부터 교육반 일정이 조금 바뀝니다.”엘라의 손이 멈췄다.“왜요?”“일부 학생들이 황립 아카데미 예비과정으로 이동합니다.”“누가요?”교수는 명단을 펼쳤다.“세드릭.”첫 번째 이름.“에런.”두 번째.“릴리안.”세 번째.엘라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조금 사라졌다.“노아는요?”“기사단 견습 과정 비중을 늘릴 겁니다.”“그러면.”엘라는 잠시 계산했다.“지금처럼 다 같이 수업하지 않습니까?”“횟수가 줄어들겠지요.”“얼마나요?”“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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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약속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특별한 것은 없었다.“세드릭!”“왜!”“제 빵입니다!”“한 입만 먹었잖아요!”“한 입이 너무 큽니다!”“빵은 원래 크게 먹는 겁니다!”“누가 그럽니까!”황실 예비교육반의 점심시간은 평소처럼 시끄러웠다.노아가 세드릭의 손에서 남은 빵을 빼앗았다.“그거 클라라 거야.”“알아.”“아는데 왜 먹어?”“맛있어 보여서.”클라라가 울상을 지었다.“제 딸기잼도 다 묻었는데요.”세드릭은 빵을 내려다봤다.딸기잼이 두껍게 발라져 있었다.잠시 고민하던 그가 말했다.“새 거 줄게.”“두 개요.”“왜 두 개야?”“제 건 딸기잼까지 있었습니다.”“잼이 빵 하나 값이야?”“저한테는 그렇습니다.”세드릭이 억울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공녀님.”엘라는 자기 접시에 있는 치킨 파이를 먹으며 말했다.“클라라 말이 맞습니다.”“왜요?”“남의 것을 먹었으니까요.”“한 입인데.”“한 입이 컸습니다.”세드릭이 테오도르를 바라봤다.“전하.”테오도르는 차를 마시며 고개를 저었다.“나한테 오지 마.”“아직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네가 무슨 말 할지 알아.”“황태자께서 이렇게 백성을 외면하시면 안 됩니다.”엘라가 씹던 걸 멈췄다.테오도르도.둘이 동시에 세드릭을 바라봤다.세드릭이 당황했다.“왜요?”엘라가 천천히 말했다.“그 말.”“네?”“어디서 배웠습니까?”세드릭이 그녀를 가리켰다.“공녀님이요.”이번에는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테오도르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다 퍼뜨리고 다니네.”엘라의 표정이 억울해졌다.“저는 그런 식으로 쓰라고 가르친 적 없습니다.”“말은 배운 사람이 쓰는 거지.”에런이 말했다.“맞습니다.”엘라는 에런을 바라봤다.“왜 바로 동의합니까?”“논리적으로 맞아서요.”“요즘 자신감이 너무 늘었습니다.”“공녀님 덕분입니다.”반박할 수 없었다.릴리안이 웃었다.노아도.클라라도.루카도.그렇게 한참을 웃었다.정말.평소와 똑같았다.그래서 엘라는 조금 이상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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