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엘라는 다음 날.정확히 오후에 찾아갔다.너무 일찍도.너무 늦게도 아니었다.복도 끝에 있는 시계를 한번 확인하고.단테의 방문 앞에 섰다.휴고는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정확하시군요.”엘라가 물었다.“무엇이요?”“오후에 오라고 하셨는데 정말 오후에 오셨습니다.”“아침에 오면 싫어하실 것 아닙니까?”“그렇겠지요.”“그럼 왜 아침에 옵니까?”휴고가 잠시 말이 없었다.너무 당연하게 말해서.반박할 게 없었다.엘라는 문을 바라봤다.“오늘 상태는 어떻습니까?”“어제보다는 조금 나으십니다.”“조금.”“네.”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조금 나은 겁니다.”휴고가 웃었다.“좋아지셨다고는 안 하십니까?”“조금 나으시다면서요.”“그렇습니다.”“그럼 그만큼만 알아야죠.”휴고의 눈빛이 아주 조금 달라졌다.그 역시.지난 몇 년 동안 배웠던 일이었다.하루 좋아졌다고.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노크하겠습니다.”“네.”똑.똑.잠시 뒤.안에서 단테의 목소리가 들렸다.“들어.”엘라의 눈이 커졌다.휴고도.둘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저한테 하신 말씀입니까?”엘라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휴고 역시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아마도요.”문 안에서.“다 들린다.”낮고 짜증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엘라는 바로 문 쪽을 바라봤다.“죄송합니다.”“들어오라니까.”엘라의 손이 문손잡이로 향했다.그러다.멈췄다.“대공 전하.”안쪽에서 긴 한숨.“또 뭐지.”“제가 들어가도 된다는 뜻이 맞습니까?”“…….”“정확하게 확인하려고요.”몇 초.침묵.그리고.“그래.”단테가 말했다.“들어와.”그제야.엘라는 손잡이를 잡았다.찰칵.문을 열었다.처음 보인 것은.어둠이었다.커튼이 절반 이상 닫혀 있었다.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은 하나뿐.벽난로에는 불이 피워져 있었지만.방 안 전체가 밝지는 않았다.엘라는 문턱 안쪽에서 멈췄다.그리고.그를 봤다.창가에 앉아 있는 남자.검은 머리카락.창백한 얼굴
엘라는 다음 날 아침.정말로 다시 그 문 앞에 섰다.휴고는 그녀를 보자 잠시 눈을 감았다.“오셨군요.”“네.”“정말로요.”엘라가 고개를 갸웃했다.“어제 말씀드렸잖아요.”“보통은.”휴고가 말했다.“전하께 거절당하고 나면 하루 정도는 마음을 정리하십니다.”“저는 정리할 게 없습니다.”“왜요?”“싫다고 하셨으니까 안 들어갔고.”“…….”“오늘 다시 물어보러 왔습니다.”휴고는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이상할 정도로 단순했다.억지로 밀고 들어가지도 않고.그렇다고 포기하지도 않는다.문을 닫았다고 떠나지도 않는다.“노크하겠습니다.”“네.”똑.똑.안쪽은 조용했다.휴고가 말했다.“전하.”잠시 뒤.낮은 목소리가 들렸다.“왜.”“펠리시아 공녀께서 오셨습니다.”“돌려보내.”엘라가 바로 말했다.“대공 전하.”문 너머에서 짧은 침묵.“또 왔나.”“네.”“왜.”“어제 오늘 다시 여쭤보겠다고 했습니다.”“그걸 꼭 지켜야 하나?”엘라는 잠시 생각했다.“안 지킬 이유가 없었습니다.”휴고가 입술을 꾹 눌렀다.엘라는 문을 바라봤다.“오늘은 제가 들어가도 됩니까?”단테의 대답은 빠르지 않았다.한참 뒤.“싫다.”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그리고.정말 돌아섰다.휴고의 눈이 커졌다.“공녀님?”엘라가 그를 바라봤다.“왜요?”“끝입니까?”“네.”“정말요?”“오늘은 싫다고 하셨잖아요.”휴고는 말문이 막혔다.엘라는 그대로 몇 걸음 걸었다.그러다.멈췄다.다시 돌아봤다.“아.”휴고가 안도한 얼굴이 됐다.뭔가 더 하려나 보다.엘라가 문을 향해 말했다.“대공 전하.”“…….”“내일도 다시 여쭤보겠습니다.”휴고의 표정이 묘해졌다.안쪽에서.단테가 낮게 말했다.“귀찮군.”엘라는 웃었다.“저도 이제 그 말씀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그리고.이번에는 정말 돌아갔다.⸻그날 오후.엘라는 북부 대공성의 교육 시설부터 살펴봤다.공식적인 파견 명목이.황실 교육 및 관리 체계 자
출발 전날.엘라는 짐을 싸다가 세 번째로 멈췄다.“이건 필요합니다.”시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엇이요?”“과자입니다.”“공녀님.”“네.”“저희는 지금 북부로 가는 겁니다.”“알고 있습니다.”“여행 기간이 보름 가까이 걸립니다.”“그래서 필요합니다.”시녀는 말문이 막혔다.엘라는 아주 진지했다.침대 위에는 옷보다 먹을 것이 더 많이 올라와 있었다.말린 과일.견과류.작은 비스킷.꿀에 절인 사과.그리고.테오도르가 보냈다는 레몬 쿠키 한 상자.시녀는 머리를 짚었다.“짐칸이 부족합니다.”엘라가 고개를 들었다.“마차가 몇 대입니까?”“네 대입니다.”“그런데요?”“공녀님 짐만 싣는 게 아니니까요.”“저는 필요한 것만 가져갑니다.”시녀의 시선이 침대 위를 훑었다.“이게요?”엘라도 따라봤다.잠시 침묵.“쿠키는 필요합니다.”“왜요?”“전하께서 주셨습니다.”“황태자 전하께서요?”“네.”“그럼 가져가야죠.”시녀의 태도가 바로 바뀌었다.엘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제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는 안 된다면서요.”“황태자 전하께서 주신 거라면 의미가 다릅니다.”“어떻게요?”“선물입니다.”“제가 산 과자도 제 마음을 위한 선물입니다.”시녀는 대답하지 않았다.엘라는 승리한 얼굴로 상자를 다시 가방 안쪽에 넣었다.그때.문이 열렸다.“아직도 짐 싸니?”펠리시아 공작이었다.엘라는 고개를 들었다.“거의 끝났습니다.”공작은 방 안을 보고 그대로 굳었다.“이게 거의 끝난 거냐?”“네.”“이건 이사 수준인데.”“보름입니다.”“가는 데만.”엘라가 잠시 멈췄다.“그렇네요.”“돌아오는 데도 보름.”“그렇네요.”“북부에 얼마나 있을지도 모른다.”엘라는 대답하지 않았다.그 사실은.생각보다 더 묵직했다.이번 파견에 정확한 종료 날짜는 없었다.한 달이 될 수도.두 달이 될 수도.그보다 길어질 수도 있었다.엘라가 북부에 있는 동안.단테의 상태를 확인하고.필요하다면 신성력 반응을 시험하고.
“공녀님.”“네.”“지금 웃으셨습니까?”엘라는 책상 위의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아닙니다.”맞은편에 앉아 있던 소년이 눈을 가늘게 떴다.“분명 웃으셨습니다.”“착각입니다.”“제가 틀렸다고요?”“네.”“왜요?”엘라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지금 본인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하신 겁니까?”소년의 입이 다물렸다.교실 뒤쪽에서 작은 웃음이 터졌다.아이들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엘라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서류를 봤다.“자.”그리고.손가락으로 한 문장을 가리켰다.“다시 보겠습니다.”소년의 얼굴이 울상이 됐다.“또요?”“네.”“세 번째입니다.”“알고 있습니다.”“이번에도 틀렸습니까?”“아니요.”소년의 눈이 커졌다.“그럼 왜 다시 봅니까?”“맞았다고 해서 이유까지 맞는 건 아닐 수 있으니까요.”“…….”“왜 이 답을 골랐는지 설명해보십시오.”소년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그리고.다시 문제를 읽기 시작했다.교실은 조용했다.하지만.긴장된 침묵은 아니었다.아이들은 저마다 문제를 풀었고.막히면 손을 들었다.누군가는 먼저 질문했다.누군가는 옆 사람과 의견을 비교했다.그리고.교실 앞.엘라는 예전처럼 직접 답부터 말하지 않았다.기다렸다.물었다.필요하면 힌트를 줬다.가끔은.“그건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이제 그 말을 하는 데.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몇 해가 흘렀다.황궁의 나무는 몇 번이나 꽃을 피웠고.눈도 여러 번 내렸다.아이들은 자랐다.그리고.엘라도 자랐다.어린 시절보다 훨씬 길어진 금빛 머리카락은 등 아래까지 내려왔다.검술 훈련 때문에 여전히 몸을 움직이기 편한 옷을 선호했고.황궁 수업이 있는 날이면 소매를 단정하게 걷어 올리는 버릇도 그대로였다.입이 빠른 것도.고집이 센 것도.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다만.예전보다 멈출 줄 알았다.자신이 아는 것과.모르는 것을 구분했고.상대가 원하는 도움과.자신이 주고 싶은 도움을 조금씩 구별할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특별한 것은 없었다.“세드릭!”“왜!”“제 빵입니다!”“한 입만 먹었잖아요!”“한 입이 너무 큽니다!”“빵은 원래 크게 먹는 겁니다!”“누가 그럽니까!”황실 예비교육반의 점심시간은 평소처럼 시끄러웠다.노아가 세드릭의 손에서 남은 빵을 빼앗았다.“그거 클라라 거야.”“알아.”“아는데 왜 먹어?”“맛있어 보여서.”클라라가 울상을 지었다.“제 딸기잼도 다 묻었는데요.”세드릭은 빵을 내려다봤다.딸기잼이 두껍게 발라져 있었다.잠시 고민하던 그가 말했다.“새 거 줄게.”“두 개요.”“왜 두 개야?”“제 건 딸기잼까지 있었습니다.”“잼이 빵 하나 값이야?”“저한테는 그렇습니다.”세드릭이 억울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공녀님.”엘라는 자기 접시에 있는 치킨 파이를 먹으며 말했다.“클라라 말이 맞습니다.”“왜요?”“남의 것을 먹었으니까요.”“한 입인데.”“한 입이 컸습니다.”세드릭이 테오도르를 바라봤다.“전하.”테오도르는 차를 마시며 고개를 저었다.“나한테 오지 마.”“아직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네가 무슨 말 할지 알아.”“황태자께서 이렇게 백성을 외면하시면 안 됩니다.”엘라가 씹던 걸 멈췄다.테오도르도.둘이 동시에 세드릭을 바라봤다.세드릭이 당황했다.“왜요?”엘라가 천천히 말했다.“그 말.”“네?”“어디서 배웠습니까?”세드릭이 그녀를 가리켰다.“공녀님이요.”이번에는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테오도르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다 퍼뜨리고 다니네.”엘라의 표정이 억울해졌다.“저는 그런 식으로 쓰라고 가르친 적 없습니다.”“말은 배운 사람이 쓰는 거지.”에런이 말했다.“맞습니다.”엘라는 에런을 바라봤다.“왜 바로 동의합니까?”“논리적으로 맞아서요.”“요즘 자신감이 너무 늘었습니다.”“공녀님 덕분입니다.”반박할 수 없었다.릴리안이 웃었다.노아도.클라라도.루카도.그렇게 한참을 웃었다.정말.평소와 똑같았다.그래서 엘라는 조금 이상
“안 됩니다.”엘라가 말했다.테오도르가 바로 인상을 썼다.“왜?”“제 겁니다.”“하나만.”“싫습니다.”“두 개나 있잖아.”“두 개 다 제 겁니다.”테오도르는 테이블 위의 접시를 바라봤다.작은 딸기 타르트 두 개.그리고.그 앞을 철벽처럼 지키고 있는 엘라.“너 아까 점심도 두 그릇 먹었잖아.”“점심과 간식은 다릅니다.”“뭐가?”“시간이 다릅니다.”“그게 무슨 논리야?”“정확합니다.”테오도르는 어이없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한입만.”“전하께도 있었습니다.”“먹었어.”“그럼 끝입니다.”“친구잖아.”엘라의 눈이 가늘어졌다.“친구라서 남의 타르트를 뺏어도 됩니까?”“나 황태자인데.”“더 안 됩니다.”“왜?”“황태자가 백성의 타르트를 빼앗으면 안 되잖아요.”“네가 백성이야?”“제국민입니다.”테오도르의 입이 다물렸다.잠시 뒤.그가 말했다.“너 진짜 말만 늘었다.”엘라는 뿌듯한 표정으로 타르트를 한입 베어 물었다.“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그 공부를 이런 데 쓰라고 한 건 아닐 텐데.”“배운 것은 활용해야 합니다.”테오도르는 결국 포기한 듯 소파에 등을 기대었다.그때.응접실 문이 열렸다.에드먼드 교수가 들어왔다.손에는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엘라가 입안의 타르트를 삼켰다.“교수님.”“두 분 다 계셨군요.”테오도르가 물었다.“무슨 일입니까?”교수는 두 사람 맞은편에 앉았다.그리고.서류 하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다음 달부터 교육반 일정이 조금 바뀝니다.”엘라의 손이 멈췄다.“왜요?”“일부 학생들이 황립 아카데미 예비과정으로 이동합니다.”“누가요?”교수는 명단을 펼쳤다.“세드릭.”첫 번째 이름.“에런.”두 번째.“릴리안.”세 번째.엘라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조금 사라졌다.“노아는요?”“기사단 견습 과정 비중을 늘릴 겁니다.”“그러면.”엘라는 잠시 계산했다.“지금처럼 다 같이 수업하지 않습니까?”“횟수가 줄어들겠지요.”“얼마나요?”“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