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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명! 흑막을 훈련시켜라》
《특명! 흑막을 훈련시켜라》
Author: 유월

이번 특명은 흑막입니다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4 08:07:52

“싫습니다.”

엘라 에스텔은 단호하게 말했다.

너무 단호해서 황제의 집무실 안에 있던 대신 셋이 동시에 숨을 삼켰다.

황제는 천천히 눈을 들었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폐하께서 저를 부르셨잖아요.”

“그래서?”

“좋은 일일 리가 없죠.”

“…….”

정곡이었다.

황제는 손에 들고 있던 문서를 슬며시 내려놓았다.

엘라는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팔짱을 꼈다. 황제 앞에서 다리를 꼬고 앉는 귀족 영애는 제국을 전부 뒤져도 그녀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엘라의 자세를 지적하지 못했다.

엘라 에스텔.

에스텔 공작가의 둘째이자, 황실이 해결하지 못하는 모든 문제를 처리하는 특명 담당자.

그리고 제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았던 황자 셋을 사람으로 만들어 낸 장본인.

그녀가 손을 댄 뒤로 황태자는 더 이상 대신들에게 잉크병을 던지지 않았고, 제2황자는 술에 취해 기사단 숙소 지붕을 뜯지 않았으며, 제3황자는 황궁 연회장 한가운데 소환진을 그리지 않게 되었다.

기적이었다.

황궁 사람들은 그렇게 말했다.

황자들은 절대 동의하지 않았지만.

“이번엔 정말 별일 아닐 수도 있지 않으냐.”

황제가 태연하게 말했다.

엘라는 눈을 가늘게 떴다.

“지난번에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나?”

“그래 놓고 제3황자를 마탑에서 끌고 나오라고 하셨죠.”

“덕분에 잘 해결되지 않았느냐.”

“마탑의 서쪽 벽이 무너졌습니다.”

“벽은 다시 세우면 된다.”

“제 머리카락도 탔고요.”

“다시 자랐지.”

엘라가 입을 다물었다.

반박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황제에게 할 말이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엘라는 가장 중요한 결론만 입에 담았다.

“아무튼 싫습니다.”

“이번에도 아직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 안 하셔도 됩니다.”

엘라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는 오늘부터 휴가입니다.”

“누가 허락했지?”

“제가요.”

“짐은?”

“이미 쌌습니다.”

“어디로 갈 생각이지?”

“남부요.”

엘라의 얼굴에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따뜻한 햇볕.

잔잔한 바다.

차가운 과일주스.

그리고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 조용한 별장.

엘라는 지난 석 달 동안 그것만 바라보며 버텼다.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을 겁니다.”

“한 달이나?”

“가능하면 두 달.”

“누워서 뭘 하지?”

“아무것도 안 한다니까요.”

엘라가 한심하다는 듯 황제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는 의외로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황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엘라는 그런 황제를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녀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세 가지였다.

푹신한 침대.

달콤한 디저트.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하루.

문제는 세상이 좀처럼 그녀의 취향을 존중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번 일만 끝내면 휴가를 주마.”

황제가 말했다.

엘라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폐하.”

“왜 그러지?”

“저 그 말 세 번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황태자를 교육하기 전이었다.

두 번째는 제2황자가 서부 기사단을 끌고 가출했을 때였다.

세 번째는 제3황자가 마탑을 점령하겠다고 선언했을 때였다.

그리고 엘라는 지금도 황궁에 있었다.

“이번엔 진짜다.”

“사기꾼들도 그렇게 말합니다.”

“황제에게 사기꾼이라니.”

“상습범이시잖아요.”

대신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황제는 잠시 엘라를 노려보다가 피식 웃었다.

“네 아비가 너를 참 잘 키웠구나.”

“그 말은 취소해 주세요.”

엘라는 진심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아버지인 에스텔 공작은 아주 훌륭한 사람이었다.

제국 최고의 검사.

전쟁 영웅.

영지민들에게 존경받는 귀족.

하지만 자식 교육 방식만큼은 정상이 아니었다.

엘라가 여섯 살이던 해.

아버지는 체력이 약하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산 정상에 그녀를 두고 내려갔다.

일곱 살에는 검을 피하는 법을 가르치겠다며 훈련용 목검을 던졌고, 여덟 살에는 말을 타는 법을 알려 주겠다며 안장에 묶었다.

그 결과 엘라는 아주 건강하게 자랐다.

조금 과하게.

사람이 말을 듣지 않으면 일단 몸부터 굴려야 한다는 잘못된 신념까지 함께.

‘그래도 효과는 있었지.’

황자 셋도 처음에는 말로 설득하려고 했다.

아주 잠깐.

그러나 말로 안 되면 뛰게 했다.

뛰고도 안 되면 산을 오르게 했다.

그래도 안 되면 검을 들고 따라갔다.

결과적으로 셋 모두 훌륭한 황자로 거듭났으니 틀린 교육은 아니었다.

물론 황자들의 의견은 달랐다.

“어쨌든 저는 갑니다.”

엘라가 드레스 자락을 털며 일어났다.

“남부행 마차가 두 시간 뒤에 출발하거든요.”

“이미 네 짐은 북부행 마차에 실었다.”

엘라의 움직임이 멈췄다.

“……뭐라고요?”

“네 시녀들이 아주 협조적이더군.”

“제 시녀들을 매수하셨어요?”

“매수라니. 황제의 명령이었다.”

“그게 매수보다 더 나쁘잖아요.”

엘라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황제는 아무렇지 않게 차를 마셨다.

그 태연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마 어딘가가 욱신거렸다.

“북부라니요.”

“말 그대로다.”

“어느 북부요?”

“제국에 북부가 두 곳이더냐.”

엘라의 표정이 굳었다.

제국의 북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땅.

사나운 마수들이 나타나고, 일 년의 절반 이상 폭설이 내리는 곳.

그리고.

단테 아르젠트 대공이 다스리는 영지.

“설마.”

엘라가 황제를 바라봤다.

“제가 생각하는 그 사람은 아니겠죠.”

황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책상 서랍에서 검은색 서류철 하나를 꺼냈다.

표지에는 황실 문장과 함께 붉은 밀랍인이 찍혀 있었다.

극비.

엘라는 서류철을 보자마자 다시 소파에 주저앉았다.

“안 볼래요.”

“봐라.”

“싫어요.”

“명령이다.”

“명령 거부하겠습니다.”

“그럼 반역인가?”

“휴가입니다.”

황제는 한숨을 쉬며 직접 서류철을 펼쳤다.

첫 장에는 한 남자의 초상화가 붙어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

날카로운 눈매.

차갑게 다문 입술.

정교하게 깎아 놓은 것처럼 뚜렷한 얼굴선.

엘라는 무심코 몸을 앞으로 숙였다.

‘잠깐.’

생각보다.

아니.

상당히 잘생겼다.

초상화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질 만큼 차가운 인상이었지만, 그 냉랭함마저 묘하게 엘라의 취향이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손끝이 초상화 속 남자의 뺨 위를 슥 지나갔다.

“…….”

황제가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봤다.

엘라는 뒤늦게 손을 뗐다.

“먼지가 묻었네요.”

“방금 인쇄한 문서다.”

“종이에 먼지는 언제든 묻을 수 있습니다.”

“그래.”

황제의 눈빛에 묘한 웃음기가 스쳤다.

엘라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뭘 했는데요?”

“아직은 아무것도.”

“그럼 왜 제가 가야 하죠?”

“아직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장난 같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황제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그가 서류철에서 얇은 양피지 한 장을 꺼냈다.

오래된 종이였다.

가장자리는 검게 그을려 있었고, 중앙에는 황금빛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엘라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신탁.”

“어젯밤 내려왔다.”

황실에 신탁이 내려오는 일은 드물었다.

대부분의 황제는 평생 한 번도 신탁을 받지 못한 채 죽었다.

하지만 한번 내려온 신탁은 반드시 현실이 되었다.

황제는 낮은 목소리로 문장을 읽었다.

“북방의 은빛 늑대가 황도를 삼키리라.”

엘라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굳었다.

“그가 인간의 마음을 잃는 날.”

황금빛 문자가 희미하게 빛났다.

“제국의 겨울이 시작되리라.”

순간.

엘라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불타는 황궁.

무너지는 성벽.

피로 물든 광장.

시체로 가득한 황도.

그리고 그 중심에 선 남자.

검은 머리카락이 피에 젖어 있었다.

남자는 검 끝을 아래로 내린 채 무너진 황궁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가운 은빛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분노도.

슬픔도.

후회도.

전부 얼어붙은 것처럼.

그의 발밑에는 황실의 문장이 새겨진 망토가 떨어져 있었다.

엘라는 그 미래를 알고 있었다.

한 번도 아니었다.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이나 보았다.

형태는 조금씩 달랐지만 결말은 언제나 같았다.

단테 아르젠트가 검을 들었고.

제국은 멸망했다.

“엘라.”

황제의 목소리에 시야가 돌아왔다.

엘라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손바닥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보았느냐.”

“……네.”

“같은 미래인가?”

엘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만으로 충분했다.

황제는 신탁을 다시 내려놓았다.

“단테 아르젠트는 현재 북부를 안정적으로 다스리고 있다. 전쟁에서도 공을 세웠고, 반역의 움직임도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황도를 무너뜨리겠죠.”

“그렇게 보이는군.”

“그래서요?”

엘라는 황제를 똑바로 바라봤다.

“죽이라고요?”

집무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대신들은 감히 고개도 들지 못했다.

황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럼요?”

“죽이기에는 아직 죄가 없지.”

엘라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황제는 냉정한 사람이었다.

필요하다면 사람 하나의 목숨쯤 가볍게 버릴 수 있는 자였다.

그런 황제가 미래의 반역자를 살려 두겠다고 말했다.

“신탁은 그가 인간의 마음을 잃는 날 제국의 겨울이 시작된다고 했다.”

황제의 손가락이 책상 위를 두드렸다.

“그렇다면 마음을 잃지 않게 하면 된다.”

“…….”

“네가 가라.”

엘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황제를 바라봤다.

황제는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북부대공을 사람답게 만들어라.”

한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엘라는 황제의 말을 머릿속으로 천천히 되짚었다.

북부대공을.

사람답게.

만들어라.

“폐하.”

“말해라.”

“미치셨어요?”

대신 한 명이 작게 헛기침을 하다 기침으로 넘어갔다.

황제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황자 셋도 했지 않느냐.”

“황자들은 적어도 제 말을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엘라는 입을 다물었다.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첫째는 그녀가 건넨 교육 계획서를 찢었다.

둘째는 결투를 신청했다.

셋째는 엘라의 침실에 개구리 쉰 마리를 풀었다.

그 후에야 엘라는 말보다 빠른 방법을 선택했다.

“그래도 그분들은 황자였어요.”

“대공도 사람이긴 하다.”

“확신하세요?”

“초상화만 보고 만지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엘라가 눈을 피했다.

“그건 먼지 때문이었다니까요.”

황제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서류 한 장을 더 내밀었다.

황명서였다.

엘라 에스텔을 북부대공의 특별 보좌관으로 임명하며, 대공가의 생활 방식과 대인 관계 및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지도하고 교정한다.

아주 그럴듯한 문장 아래에 한 줄이 더 적혀 있었다.

대공은 반드시 황도 파괴 의사를 철회할 것.

“아직 파괴하겠다고 말한 적도 없잖아요.”

엘라가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미래를 대비하는 거다.”

“그건 교육이 아니라 억지 아닌가요?”

“네가 잘하는 일이잖아.”

“폐하가 저를 뭘로 보고 계시는 거죠?”

황제는 대답 대신 종을 울렸다.

집무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세 명의 남자가 차례로 들어왔다.

엘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긴 왜 오셨어요?”

황태자는 완벽한 미소를 지었다.

“스승님을 배웅하러 왔습니다.”

“누가 간다고 했죠?”

제2황자가 시선을 피했다.

“이미 짐도 실었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누가 알려 줬어요?”

제3황자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눈도 못 마주치면서요?”

엘라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세 황자가 동시에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움직임은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일치했다.

엘라는 눈썹을 들었다.

“왜 뒤로 가세요?”

“습관입니다.”

황태자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스승님이 일어나시면 일단 거리를 확보하라고 배웠습니다.”

“제가 그렇게 무서웠어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엘라는 어이가 없었다.

자신은 그저 말을 듣지 않을 때 조금 뛰게 했고, 조금 굴렸으며, 아주 가끔 목검을 들었을 뿐이었다.

“대공 전하께서도 금방 좋아지실 겁니다.”

제2황자가 말했다.

다만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제3황자는 두 손을 모은 채 중얼거렸다.

“이번 희생자는 대공님이군요.”

엘라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뭐라고요?”

“대공님도 힘내시라고 했습니다.”

“분명 희생자라고 했는데.”

“잘못 들으셨습니다.”

“제 귀가 얼마나 좋은지 알면서.”

엘라가 한 발 다가가자 제3황자가 황태자 뒤로 숨었다.

황태자가 다급히 말을 돌렸다.

“스승님.”

“왜요?”

“북부대공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그 말에 엘라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

“어떤 의미로요?”

“전장에서 그를 본 적이 있습니다.”

황태자는 잠시 말을 고르듯 침묵했다.

“누구도 곁에 두지 않습니다. 아군조차 믿지 않고, 도움이 필요해도 요청하지 않습니다. 적이 아니라 세상 전체와 싸우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엘라는 초상화 속 남자를 떠올렸다.

차가운 눈.

굳게 다문 입술.

그리고 무너진 황궁 한가운데 홀로 서 있던 미래의 모습.

‘세상 전체와 싸우는 사람.’

어쩌면 그 말이 가장 정확할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더 조심하십시오.”

황태자가 말했다.

“스승님의 방식이 그에게도 통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 방식이 어때서요?”

“…….”

“말해 봐요.”

황태자는 눈을 피했다.

제2황자가 창밖을 바라봤고, 제3황자는 입을 다물었다.

엘라는 세 사람을 차례로 노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다들 너무 예민해요.”

그녀는 황명서를 집어 들었다.

“가면 되잖아요. 가서 사람 하나 고치고 오면 되는 거죠?”

황제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결정했느냐?”

“아뇨.”

엘라가 황명서를 반으로 접었다.

“제 휴가를 되찾으러 가는 겁니다.”

“같은 말 아닌가?”

“전혀 다릅니다.”

엘라는 몸을 돌려 집무실 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기 직전, 황제가 물었다.

“그럼 북부에 도착하면 무엇부터 할 생각이지?”

엘라가 멈춰 섰다.

뭘 먼저 해야 할까.

대공의 생활 습관 확인.

인간관계 점검.

충성심 조사.

미래가 바뀔 가능성 탐색.

머릿속에 수십 가지 계획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

날카로운 눈매.

초상화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했던 얼굴.

엘라는 무심코 손가락을 움찔했다.

그리고 아주 태연하게 대답했다.

“직접 보고 결정할게요.”

황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뭘 말이냐?”

엘라는 문을 열며 말했다.

“초상화가 얼마나 비슷한지요.”

문이 닫혔다.

잠시 후.

황제가 낮게 웃었다.

“저 아이를 보낸 것이 정말 옳은 선택일까요?”

대신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황제는 엘라가 나간 문을 바라봤다.

“모르지.”

“그럼 어째서…….”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니까.”

황제의 시선이 책상 위에 놓인 단테의 초상화로 향했다.

“단테 아르젠트가 엘라 에스텔을 만나고도 지금과 같은 사람으로 남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날 오후.

남부로 떠날 예정이었던 엘라의 마차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따뜻한 바다 대신 눈보라가 기다리는 곳.

평화로운 휴가 대신 미래의 흑막이 기다리는 곳.

엘라는 마차 창문에 머리를 기대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가기 싫다.”

무릎 위에는 단테의 초상화가 놓여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초상화에 머물렀다.

잠시 후.

엘라의 손가락이 다시 그의 뺨을 톡 건드렸다.

“그래도 얼굴은 마음에 드네.”

그녀는 아직 몰랐다.

그 얼굴을 직접 본 순간.

지금까지 세운 모든 교육 계획이 아주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흑막을 갱생시키러 가는 것인지.

아니면 흑막에게 빠지러 가는 것인지.

머지않아 구분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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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아아앙―!또 한 번.성 전체가 흔들렸다.창문이 덜컹거리고.복도 천장의 먼지가 후두둑 떨어졌다.엘라와 단테의 표정이 동시에 바뀌었다.“동부 창고라고 했지.”단테가 몸을 돌렸다.“네.”엘라도 바로 뒤를 따랐다.그 순간.단테가 멈췄다.엘라도 덩달아 걸음을 멈췄다.“…왜요?”단테가 그녀를 바라봤다.조금 전.복도에서 했던 약속.다음부터는 같이해요.조사도.위험한 것도.같이.잠시 침묵.그리고.단테가 말했다.“…같이 간다.”엘라의 눈이 조금 커졌다.“네.”입꼬리가 올라갔다.“좋아요.”그 한마디면 충분했다.⸻대공성 동부.창고 쪽으로 갈수록 연기 냄새가 짙어졌다.기사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물!”“동쪽부터 막아!”“의약품 창고는 아직 불이 안 붙었습니다!”“사람부터 빼!”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첫 번째 폭발이 일어난 곳은.조금 전 엘라와 단테, 테오도르가 조사했던 바로 그 창고였다.“…완전히 노렸네.”엘라가 낮게 중얼거렸다.단테는 대답 대신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휴고.”“예, 전하!”“인원부터 확인.”“이미 하고 있습니다.”“사망자는.”“현재까지 없습니다.”단테의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아주 조금 풀렸다.하지만.휴고의 다음 말에 다시 굳었다.“다만 창고 관리인 한 명이 보이지 않습니다.”엘라가 고개를 들었다.“…관리인?”“회의에 있던 그 사람?”“예.”아까.창백한 얼굴로.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던 남자.엘라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도망친 걸까요.”단테가 낮게 말했다.“아니면.”“…”“잡혀 갔거나.”둘의 시선이 마주쳤다.같은 생각이었다.아직.누구도 범인으로 확정하면 안 된다.⸻“전하!”한 기사가 다급히 달려왔다.“뭐지.”“이상한 게 있습니다.”단테와 엘라가 동시에 그를 바라봤다.“폭발 지점 안쪽에서.”기사가 숨을 골랐다.“마법진이 발견됐습니다.”“…마법진?”엘라의 표정이 굳었다.단테가 곧바로 말했다.“안내해.”⸻창

  • 《특명! 흑막을 훈련시켜라》   숨기는 사람은 티가 납니다

    "...황실 사람이에요."엘라의 말이 떨어진 순간.창고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단테의 시선이 그녀의 손바닥 위에 놓인 은색 장식으로 향했다.작은 원형 문장.중앙에는 날개를 펼친 매와 세 개의 별.테오도르도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바라봤다.황실 직속 비밀 정보부.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조직.황제의 눈.황제의 귀.그리고 필요하다면.황제의 칼까지 되는 자들.단테가 낮게 물었다."...확실한가."엘라는 고개를 끄덕이려다 멈췄다.그리고 은색 장식을 다시 살폈다."...문양 자체는 확실해요.""그런데."테오도르가 그녀의 말을 받았다."이걸 떨어뜨린 사람이 정보부 소속이라는 증거는 아닙니다."단테의 눈빛이 그에게 향했다."무슨 뜻이지."테오도르는 손을 내밀었다.엘라가 장식을 건넸다.그는 손가락 끝으로 표면을 천천히 훑었다."정보부의 인장은.""...""신분 그 자체입니다.""...""임무 중 이렇게 눈에 띄는 형태로 들고 다니지 않습니다."엘라가 눈썹을 찌푸렸다."맞아."그녀 역시 기억났다.정보부 사람들이 쓰는 신분 장식은 대부분 옷 안쪽에 숨겼다.심지어 위급한 상황에서는 흔적이 남지 않도록 부술 수 있게 만들어졌다.그런데 이것은.너무 멀쩡했다.너무 정확했고.너무 쉽게 발견됐다."...일부러?"엘라가 중얼거렸다.테오도르가 고개를 끄덕였다."가능성이 높습니다."단테의 표정이 싸늘해졌다."...황실을 의심하게 만들기 위해.""혹은."테오도르가 덧붙였다."정말 황실 내부 사람이 보내 놓고, 우리가 미끼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죠.""..."엘라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아.""...""벌써 귀찮아."두 남자가 동시에 그녀를 바라봤다.엘라는 진심이었다."이런 거 싫어요.""상대가 누군지 딱 나오고.""...""가서 잡고.""...""끝."그녀는 손바닥을 탁 마주쳤다."얼마나 좋아요."테오도르가 헛웃음을 흘렸다."스승님.""네.""정치와 음모는 원래 그렇게

  • 《특명! 흑막을 훈련시켜라》   숨기는 사람은 티가 납니다

    엘라는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아침 식당에 들어섰다.“좋은 아침입니다!”기사들이 자연스럽게 인사를 받아 줬다.“좋은 아침입니다, 공녀님!”“오늘은 안 늦으셨네요.”“전하께서 먼저 찾으시기 전에 오셨군요.”“…”엘라의 걸음이 잠깐 멈췄다.“마지막 말 한 사람.”기사들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엘라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 명 한 명 훑어봤다.“못 들은 척하겠습니다.”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 모습을 보던 휴고가 웃음을 참으며 의자를 빼 주었다.“차 준비해 드리겠습니다.”“감사합니다.”엘라는 자연스럽게 단테의 옆자리에 앉았다.며칠 전까지만 해도.단테 옆자리에 앉는 것만으로 식당 전체가 얼어붙었다.지금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오히려.엘라의 자리가 정해진 것처럼 비어 있었다.그 사실을.엘라는 조금 늦게 깨달렸다.‘…언제부터.’자연스러워졌지.그녀는 슬쩍 옆을 봤다.단테는 평소처럼 식사를 하고 있었다.검은 머리카락.무표정한 얼굴.아침인데도 지나치게 완벽하게 갖춰 입은 제복.그리고.여전히 잘생겼다.‘집중.’엘라는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지금은 얼굴 감상할 때가 아니었다.머릿속에는 어제 본 문장이 계속 떠돌고 있었다.미래를 바꾸지 마라.흑막은 반드시 태어나야 한다.누가.왜.단테가 흑막이 되기를 원하는가.그리고.어떻게 엘라가 미래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생각할수록 이상했다.“엘라.”“…”“엘라.”“…”“공녀님.”“…네?”엘라가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단테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세 번 불렀다.”“…그래요?”“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지.”“…아무것도요.”단테의 눈이 가늘어졌다.“…거짓말.”엘라는 빵을 하나 집었다.“빵 생각.”“빵을 들기 전부터 멍하니 있었는데.”“…그럼 잼.”“접시에도 없었다.”“…”엘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요즘.이 남자 눈치가 너무 빨라졌다.‘교육을 너무 잘했나.’엘라는 잼을 듬뿍 발라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별일 아

  • 《특명! 흑막을 훈련시켜라》   흑막 중간 평가를 시작합니다

    “…스승님.”테오도르는 검은 종이를 바라봤다.미래를 바꾸지 마라.그리고.흑막은 반드시 태어나야 한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선명했던 붉은 글씨가 서서히 흐려지고 있었다.마치.처음부터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던 것처럼.테오도르는 즉시 책상 위에 놓인 종이와 펜을 집었다.사각.사각.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문장.글씨의 모양.등장한 순서.그리고.종이를 만졌을 때 느껴졌던 이상한 냉기까지.모두.“전하.”문밖에서 수행원의 목소리가 들렸다.“괜찮으십니까?”테오도르는 검을 내려다봤다.“…괜찮다.”“방금 소리가.”“아무것도 아니다.”그는 천천히 창문을 닫았다.철컥.하지만.아무것도 아닐 리 없었다.누군가 자신의 방에 들어왔다.아니.더 정확히 말하면.누군가 자신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황태자가 묵는 방에.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북부 내부 사람인가.’아니면.‘처음부터 나를 따라온 건가.’테오도르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상대는.엘라가 미래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테오도르는 검은 종이를 천천히 접었다.‘스승님께.’말해야 한다.당장.그렇게 생각한 순간.손이 멈췄다.엘라라면 어떻게 할까.분명.위험하다고 말려도 뛰어들 것이다.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하겠다며.그리고 지금.단테를 지키려는 데 누구보다 진심이었다.‘아니.’그래서 더더욱.조심해야 한다.테오도르는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내일.”그가 낮게 중얼거렸다.“확인부터 한다.”누가.어떻게.이 종이를 넣었는지.그 전에.괜한 불안만 만들어서는 안 됐다.⸻같은 밤.엘라는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천장을 바라봤다.한 번.옆으로 돌아누웠다.두 번.다시 반대편.세 번.“…아.”결국.벌떡.일어났다.“잠 안 와.”오늘 있었던 일들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중간 평가.테오도르의 질문.단테의 대답.그리고.신탁.북부대공 단테 아르젠트로 인해 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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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는 것 같은데.”단테는 심각했다.아주 심각했다.전쟁을 앞두고 작전 회의를 할 때보다.마수 수백 마리가 성벽으로 몰려왔을 때보다.어쩌면.황제에게 반역 혐의를 받았을 때보다도.지금이 더 심각했다.‘좋아한다.’테오도르가 던진 단어 하나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엘라를?자신이?단테는 미간을 좁혔다.‘말이 안 된다.’처음 만났을 때부터 귀찮았다.허락도 없이 북부에 찾아왔고.자신을 교육하겠다고 선언했고.밥을 먹으라고 쫓아다니고.기사들의 이름을 외우게 하고.차를 마시게 하고.문제를 내면서.“하나, 둘, 넷, 다섯.”따위의 말도 안 되는 숫자를 셌다.그리고.시도 때도 없이 가까이 왔다.뺨을 만지고.이마를 찌르고.손을 잡고.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잘생겼다고 했다.“…”단테는 생각을 멈췄다.이상했다.싫었던 기억을 떠올리려고 했는데.왜.전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지.“전하?”“…”바로 앞에서 목소리가 들렸다.단테가 고개를 들었다.엘라였다.“…왜.”“그건 제가 물어볼 말인데요.”엘라가 고개를 갸웃했다.“아까부터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내가?”“네.”“…”단테는 즉시 시선을 돌렸다.엘라의 눈이 가늘어졌다.“수상한데.”“아니다.”“뭔가 숨기고 있죠?”“없다.”“전하.”엘라가 검지를 세웠다.“문제.”단테의 표정이 굳었다.“지금 무슨 생각했어요?”“…”“5초.”“…”“하나.”단테는 그녀를 바라봤다.“둘.”“…”엘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넷.”그리고.단테가 말했다.“너.”“…”엘라가 멈췄다.“…네?”“네 생각.”“…”“했다.”엘라의 입이 조금 벌어졌다.단테도 말하고 나서야 깨달았다.‘왜.’‘그걸 솔직하게 말했지.’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엘라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제 생각을.”“…”“왜요?”단테는 대답하지 않았다.대답할 수 없었다.자신도 그 이유를 알아내는 중이었으니까.그 순간.짝짝짝.박수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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