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가 움직이자 예령은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무겸은 아직 정문 앞에 서 있었다. 예령은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휘장을 놓았다.“어디 불편하세요?”연화가 묻자 고개를 저었다.다음에 만나서 다시 듣겠다는 말이 떠올랐다.무천과의 혼담은 끝났다. 이제 무겸과 맺은 약조를 어떻게 아버지께 말씀드릴지 정해야 했다.집에 도착하자 의원이 기다리고 있었다.상처에 약을 바르고 죽을 먹은 뒤 침상에 눕자 잠이 쏟아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방 안에 등불이 켜져 있었다.서문백이 침상 곁에 앉아 있었다.“곡식은요?”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묻자 아버지가 이불을 여며 주었다.“찾은 것부터 수량을 맞추고 있다. 혼담을 거둔 문서도 받아 두었고.”“영수증은…….”“그건 아직 확인 중이다. 소식이 오면 네게도 알려 주마.”예령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버지가 살아 계셨고, 자신은 제 방에 누워 있었다. 그제야 안심이 되어 다시 눈을 감았다.이틀 뒤, 예령은 연화에게 후부로 사람을 보내 달라고 했다.“큰공자님께 내일 차를 대접하고 싶다고 전해 줘.”“상단주님께도 말씀드릴까요?”“내가 말씀드릴게.”약조를 언제까지 둘만의 이야기로 남겨 둘 수는 없었다.그날 저녁 예령은 아버지에게 무겸을 청했다고 알렸다. 서문백은 잠시 딸을 보더니, 자신도 집에 있겠다고 했다.왜 부르는지 묻지 않으셔서 오히려 마음이 쓰였다.이튿날, 연화가 머리를 빗겨 주는 동안에도 예령은 아버지의 표정을 떠올렸다.“이 비녀로 할까요?”예령은 거울 속으로 눈을 돌렸다.“옆에 있는 것으로.”작은 진주가 달린 은비녀였다.연화가 검은 머리를 반쯤 올려 꽂았다.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던 갸름한 얼굴과 흰 목덜미가 드러났다.예령은 본래 고운 얼굴이었다. 길고 맑은 눈매에 오뚝한 코, 선이 또렷한 입술까지, 단장하지 않아도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미인이었다.오늘은 입술에 엷게 붉은 빛을 얹고 살구색 비단 치마를 입었다. 며칠간의 피로가 가신 얼굴에 생기가 돌아, 연화도 비녀를 꽂은 뒤 잠깐 손을
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8 Leer má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