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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같은 대문 안에서는

Author: 아람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8 09:07:08

“무천이 다시는 혼인을 구실로 붙잡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무겸이 답했다.

서문백은 예령을 보았다가 다시 그에게 눈을 돌렸다.

“그래서 자네 아내로 만들겠다는 건가?”

“아버지. 제가 먼저 청했습니다.”

예령이 말을 받았다.

서문백의 얼굴이 굳었다.

“네가?”

“예.”

“언제부터 이런 이야기를 했느냐?”

예령은 대답을 골랐다. 무천과의 혼담을 거두기도 전에 그의 형을 찾아갔다고 하면, 아버지는 자신이 얼마나 몰려 있었는지부터 물으실 것이다.

그 짧은 침묵에 서문백이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공자는 오늘 돌아가게. 내 딸과 먼저 이야기해야겠네.”

무겸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두 분이 나누실 말씀은 기다리겠습니다. 다만 제 대답을 아직 드리지 못했습니다.”

“무슨 대답이 더 남았나?”

“제가 어떤 생각으로 이 혼인을 받아들였는지 말씀드려야 합니다.”

서문백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겸은 곧게 앉은 채 말을 이었다.

“제가 동의한 일입니다. 청한 이유를 예령에게만 묻고 끝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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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13화. 염창

    수레는 밤새 북으로 올라갔다.길이 아닌 길이었다. 마른 개울 바닥을 따라가다 능선을 넘고, 다시 골짜기로 내려섰다. 눈이 얼어붙어 바퀴 자국이 남지 않는 자리만 골라 가는 길이었다. 한두 번 다녀 본 자들의 걸음이 아니었다.무겸이 데려온 군사 백 명은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뒤를 밟았다. 횃불은 하나도 켜지 않았다. 맨 앞에서 위량이 길을 살피고, 맨 뒤에서 장호가 눈 위에 남은 자국을 지웠다.말 위에서 예령은 손끝의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눈보라는 아니었지만 바람이 칼 같았다. 졸음이 쏟아졌다가 추위에 깨기를 되풀이했다.그때마다 등 뒤의 팔은 그 자리에 있었다. 밤새 한 번도 느슨해지지 않았다.새벽녘, 수레가 멈춘 곳은 골짜기 끝의 낡은 초소 앞이었다.“저건 봉수대였던 자리요.”위량이 엎드린 채 말했다.“전쟁 때는 변경 소식을 황도까지 올리던 곳이오. 전쟁이 끝난 뒤로 불을 올리지 않으니, 지키는 자도 없다고 들었는데.”지키는 자가 없다던 초소 앞에는 창을 든 사내 여섯이 서 있었다.문이 열리자 안쪽에서 희끄무레한 것이 드러났다. 산처럼 쌓인 소금 자루였다.예령은 숨을 삼켰다.창고 하나를 채울 양이 아니었다. 변경 수비군 전체가 한 해를 쓰고도 남을 양이었다.“관의 염창[(鹽倉)나라에서 소금을 거두어 쟁여 두는 창고]이오.”무겸의 목소리가 낮았다.“변경의 군이 쓰는 소금은 관에서 내려보내 저런 창고에 쟁여 두오. 저 창고가 비면 겨울을 못 나오.”“그 창고의 소금이 지금 밖으로 나가고 있군요.”“그렇소.”예령은 머릿속으로 자루를 셌다. 한 수레에 스무 자루, 여섯 대면 백스물. 황도 시세로 치면 은자 이백 냥이 넘었다. 이 짓을 겨울마다 했다면 액수는 헤아릴 필요도 없었다.수레에서 자루를 내리는 것이 아니었다. 초소 안에서 자루를 꺼내 수레에 싣고 있었다. 짐꾼 열둘이 오가며 자루를 날랐다. 그중 하나가 곽삼이었다.예령은 그 등을 눈으로 좇았다. 자루를 지고 초소를 나설 때마다 곽삼은 한 번씩 능선 쪽을 올려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12화. 모르는 얼굴

    마당에 있던 모든 눈이 예령에게 쏠렸다.곽삼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쏟아진 소금 위로 그의 발이 그대로였고, 벌어진 입은 다음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예령은 아주 짧은 순간에 셈을 끝냈다.지금 저 사람을 안다고 말하면, 황기문은 잡아떼면 그만이었다. 북방에서 사람을 사서 부리는 일은 흔했다. 증거도 문서도 없었다. 대신 오늘 밤 곽삼은 이 창고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아직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나머지 둘도 함께.예령은 곽삼을 정면으로 보았다. 그리고 낯선 사람을 보듯 눈을 깜박였다.“사람을 잘못 보셨습니다.”곽삼의 얼굴이 굳었다. 예령은 그대로 시선을 거두었다. 처음 보는 짐꾼에게서 눈을 떼듯이.황기문이 옆에서 웃었다. 그러나 눈은 예령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아는 얼굴입니까?”“글쎄요. 저희 상단 사람이었다면 저렇게 등이 굽지는 않았을 겁니다.”예령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황기문이 그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웃음을 풀었다.“하긴, 짐 지는 자들 얼굴이야 다 그렇지요.”그가 손짓하자 사내들이 다시 자루를 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곽삼은 한참 동안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다가, 뒤에 선 감독의 손짓에 떠밀려 쏟아진 소금을 쓸어 담았다.예령은 돌아섰다. 정문까지 스무남짓 걸음이었다.그 걸음을 걷는 동안, 등 뒤에서 소금을 쓸어 담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한 번만 돌아보면 될 것 같았다. 예령은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장호가 반걸음 뒤에서 낮게 말했다.“곽삼입니다.”“압니다.”“……예.”장호는 더 말하지 않았다.문이 열리고 닫혔다.언덕을 내려오자 무겸이 바위 그늘에서 걸어 나왔다. 그 뒤로 군사 백이 소리 없이 일어섰다. 예령의 얼굴을 본 무겸의 눈빛이 달라졌다.“무슨 일이 있었소.”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반 시진을 문밖에서 헤아리며 서 있던 사람의 목소리였다.“……찾았습니다.”예령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곽삼이었습니다. 수레를 제일 잘 다루던 사람입니다. 지난가을에는 등이 곧았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11화. 소금은 다루지 않습니다

    창고 마당은 밖에서 본 것보다 넓었다.짐을 지고 오가는 자가 스물은 넘었고, 한쪽에서는 수레에 덮개를 씌우는 중이었다. 모두 예령을 한 번씩 보았다가 서둘러 눈을 돌렸다. 손님이 드나드는 창고의 공기가 아니었다.“서씨 상단의 부인께서 이 먼 데까지 오셨습니까.”황기문이 마당까지 나와 그녀를 맞았다. 황도의 서씨 상단 회관에서 보았을 때와 같은 차림이었다. 비단 겉옷에 패옥을 늘어뜨리고, 서른 중반의 얼굴에 웃음을 얹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만은 웃지 않았다.“북방 거래처를 돌아보는 길입니다. 태성상단 창고가 있다 하여 인사나 드리려고요.”황기문이 과장스럽게 손을 저었다.“인사라니, 과분합니다. 관문에서 저희 사람이 실수를 저질렀다 들었습니다. 사람을 잘못 쓴 제 불찰이지요.”황기문이 차를 내밀었다. 예령은 잔을 받되 입에 대지 않았다.“북방 물이 입에 맞지 않으십니까.”“남의 집에서 차를 마시면, 셈이 흐려지더군요.”황기문이 소리 내어 웃었다. 마당 한쪽에서 짐을 나르던 자들이 그 웃음에 곁눈질을 했다.마당을 가로지르며 예령은 발밑부터 보았다. 다져진 흙에 희끗한 알갱이가 박혀 있었다. 소금이었다.그 위로 난 수레바퀴 자국은 곡식 수레보다 좁고 깊었다. 무거운 것을 조금씩, 자주 실어 나른 바퀴였다.뒤채에서는 편자 박는 쇳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창고 한 채가 부릴 말보다 훨씬 많은 수였다.창고는 셋이었다. 문이 열린 것은 하나뿐, 나머지 둘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그 안에서 사람 소리가 났다.“창고를 좀 보여 주시겠습니까. 북방 곡식 시세를 보고 가려고요.”“오늘은 곤란합니다. 짐을 옮기는 날이라서요.”짐을 옮기는 날이라면 창고 문이 열려 있어야 했다. 자물쇠가 걸린 쪽은 오늘 아무것도 들이지도, 내지도 않는다는 뜻이었다. 예령은 그 말을 삼켰다.“그리고 진가상회로 가신다 하셨지요. 헛걸음이실 겁니다. 그쪽은 며칠 전에 저희와 문서를 맞췄습니다.”“그럼 제가 가서 확인하면 되겠군요. 상인은 남의 입보다 제 눈을 믿으니까요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10화. 언덕 위의 창고

    그 밤, 예령은 잠들지 못했다. 천막 밖으로 나가자 화롯불 앞에 무겸이 앉아 있었다. 무릎에 칼을 올려놓고 날을 고르는 중이었다. 잠든 병사들 사이에서 그 혼자 깨어 있었다.“무섭지 않소?”무겸이 물었다.“무섭습니다.”예령은 숨기지 않았다. 무겸이 칼을 내려놓고 그녀를 보았다.“그럼 되었소. 무섭지 않다는 자가 더 위험하오.”“장군께서도 무서우셨던 적이 있습니까.”“매번.”무겸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골짜기에 들어설 때마다 무서웠소. 무섭지 않았던 날은 삼 년 전 그날뿐이었지. 그날은 아무 생각이 없었으니까.”예령은 화로의 불을 보았다. 그 골짜기에서 그는 다리를 잃을 뻔했다.그가 화로 옆자리를 눈짓했다. 예령은 잠시 망설이다 앉았다. 불빛이 두 사람 사이에서 조용히 흔들렸다. 멀리 초소 쪽에서 보초의 발소리가 규칙적으로 오갔다.무겸이 겉옷을 벗어 그녀의 무릎에 덮어 주었다.“공자님은요?”“불 곁이라 춥지 않소.”“그럼 제가 불 곁에 앉겠습니다. 겉옷은 도로 가져가시지요.”무겸이 잠깐 말이 없었다.“……그대가 잠들면 가져가겠소.”예령은 대꾸하지 못했다. 잠들 때까지는 돌려받지 않겠다는 말이었다.한동안 둘 다 말이 없었다. 화로 안에서 숯이 삭는 소리만 났다.“내일 그자가 문을 열지 않으면 어찌합니까.”“열 거요. 저쪽도 그대가 무엇을 아는지 알고 싶을 테니.”“그럼 저도 알고 싶은 것을 묻겠습니다.”무겸이 그녀를 보았다. 말리려다 그만두는 얼굴이었다.예령이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하늘이 이미 희어져 있었다.그리고 뺨 아래가 단단했다.예령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무겸의 어깨였다. 겉옷은 도로 가져가지 않은 채 무릎에 덮여 있었고, 화로에는 밤새 누군가 넣어 준 숯이 붉었다.무겸은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었다. 굳어 있는 한쪽 어깨가, 밤새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깨우시지 그러셨습니까.”“깨울 까닭이 없었소.”예령은 무릎의 겉옷을 접어 그에게 돌려주었다. 그가 받아 드는 동안, 두 사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09화. 소금에 튼 손

    부상자를 싣고 수레 바퀴를 손보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그래도 무겸은 행렬을 세워 두지 않았다. 닷새를 아끼려고 고른 길이었으니, 반나절도 그냥 흘릴 수 없었다.포로 열하나는 손을 묶어 빈 수레에 태웠다. 행렬은 그날 오후에 다시 북으로 움직였다.심문은 저녁 야영지에서 이뤄졌다. 포로들은 수레를 둥글게 세운 안쪽, 천막 하나에 몰아넣고 병사 넷이 지켰다.무겸이 먼저 물었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매듭을 찬 사내는 이름조차 대지 않았고, 나머지도 입을 맞춘 듯 같은 말만 했다. 지나가던 도적이라고.“고문할까요.”곽진이 물었다. 무겸은 고개를 저었다.“입을 열 자였으면 벌써 열었다. 저자는 제 목숨보다 무서운 것이 있는 자다.”해가 다 지도록 천막의 횃불은 꺼지지 않았다.“부인께서는 먼저 쉬시오.”천막 앞을 지나던 예령에게 무겸이 말했다. 예령은 대답 대신 병사들이 솥을 걸어 둔 화덕 쪽으로 걸음을 돌렸다.“국이 남았습니까?”“예? 아, 예. 한 솥 남았습니다만…….”취사병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국을 떴다.“포로에게 주실 겁니까?”“열한 그릇은 아니고, 한 그릇만요.”예령은 천막 앞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횃불 아래 포로들의 얼굴이 하나씩 드러났다.그녀가 보는 것은 얼굴이 아니었다. 손이었다.곡식을 만지는 손과 소금을 만지는 손은 다르다. 곡식 먼지는 손등을 거칠게만 하지만, 소금은 살갗을 파고들어 허옇게 튼 자국을 남긴다. 아버지를 따라 창고를 돌던 시절에 배운 것이었다.열한 쌍의 손 가운데 여섯이 같았다. 손등이 허옇게 트고, 손톱 밑이 갈라져 있었다. 소금기에 오래 절인 손이었다.관문에서 잡힌 병졸의 팔뚝에서 본 것과 같은 자국이었다. 관문 창고의 소금 자루를 꺼내 쓰던 손과, 이 골짜기에서 곡식 수레를 덮친 손이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예령은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무겸이 뒤따랐다.그녀는 열한 명을 지나 끝자리에 앉은 사내 앞에 멈췄다. 고갯길에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던 젊은 자였다. 아직 스물이나 되었을

  • 이번 생은 그의 형을 선택했다   108화. 고갯길

    동이 트기 전, 무겸은 군사 삼백을 셋으로 나눴다.백은 위량을 따라 어둠 속에서 서쪽 능선을 타고 올라갔다. 또 백은 반대쪽 동쪽 능선으로. 남은 백만 길 위에 남았다. 수레와 함께 고갯길로 들어갈 인원이었다.“두 갈래는 골짜기 안쪽까지 올라가 능선 꼭대기에 엎드려라.”무겸이 낮게 말했다.“놈들은 중턱에 자리를 잡고 길만 내려다볼 것이다. 너희는 그보다 위에 있다가, 뿔피리가 울리면 등 뒤에서 덮쳐라.”병사들이 흩어졌다. 예령은 수레 행렬 가운데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앞쪽에는 짚단과 돌을 채운 빈 수레 여섯 대가 덮개를 덮은 채 서 있었다. 진짜 곡식 수레는 뒤쪽, 병사들 사이에 끼워 두었다.“부인께서는 여기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마십시오.”장호가 말했다. 예령은 고개를 끄덕였다.출발 직전, 무겸이 수레 곁으로 말을 몰아 왔다.“싸움이 시작되면 수레 사이로 몸을 낮추시오. 오늘은 내가 불러도 오지 마시오.”“혼례날에는 오라 하셨는데요.”“그날은 마당이었고, 오늘은 골짜기요.”해가 능선 위로 반쯤 올라올 무렵, 행렬이 고갯길로 들어섰다.골짜기는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새소리가 없었다. 예령의 등줄기로 서늘한 것이 지나갔다. 그 순간이었다.“막아라!”앞쪽에서 고함이 터졌다. 능선 위에서 바위 두 개가 굴러떨어졌다. 뒤이어 화살이 쏟아졌다. 빈 수레의 덮개가 찢어지며 짚단이 흩어졌다.“곡식이 없다!”능선 위에서 누군가 외쳤다. 당황한 목소리였다. 바로 그 소리가 신호가 되었다.화살 하나가 예령의 머리 위를 지나 수레 덮개에 박혔다. 장호가 그녀를 수레 사이로 밀어 넣으며 팔을 들었다. 소매가 찢어지고 붉은 것이 번졌다.“장호!”“스친 겁니다. 고개 숙이십시오.”그 순간, 무겸의 손이 올라갔다. 뿔피리가 길게 울렸다.골짜기 양쪽 능선 위쪽에서 함성이 터졌다. 밤새 올라가 숨어 있던 이백이 위에서 아래로 쏟아져 내려왔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활을 겨누던 자들이 뒤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그리고 무겸이 말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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