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Chapter 31 - Chapter 40

123 Chapters

31화. 정말 좋은가 봐요

혜주는 응접 공간에 서 있는 태헌을 보았다.“원래 누구를 저렇게 챙기는 사람은 아닌데.”“저를요?”“계속 보고 있잖아요.”해원도 태헌을 바라봤다.명우의 말을 듣고 있던 태헌과 눈이 마주쳤다.이번에도 그가 먼저 보고 있었다.혜주가 가볍게 웃었다.“동생 생긴 게 정말 좋은가 봐요.”해원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혜주는 태헌의 시선을 정확히 보았다.그가 자신을 계속 찾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렸다.그런데 그 시선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동생뿐이었다.“네.”해원이 먼저 태헌에게서 눈을 돌렸다.“그런가 봐요.”태헌의 시선이 자신에게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해원은 처음으로 그것을 기쁘게 받을 수 없었다.수경이 돌아오면서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났다.해원은 다시 자리에 앉았지만 디저트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태헌의 시선이 몇 번 더 해원에게 닿았다.전처럼 피하지는 않았다.그렇다고 오래 마주 보지도 않았다.혜주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동생 생긴 게 정말 좋은가 봐요.해원은 이번에는 태헌의 시선을 오래 받지 않았다.오찬이 끝나고 모두가 입구로 이동했다.직원이 신 회장에게 코트를 건넸다. 혜주는 아버지의 목도리를 정리해 준 뒤 수경에게 인사했다.“관장님, 결혼식 날 뵐게요.”“그래요. 오늘 와 줘서 고마워요.”“제가 더 즐거웠어요.”혜주가 해원 쪽으로 돌아섰다.“해원 씨도 그날 봬요.”“네. 조심히 가세요.”끝까지 평범하고 다정한 인사였다.해원이 불편해할 만한 말도, 태헌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행동도 없었다.혜주는 아무것도 차지하려 하지 않았다.그런데도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그녀를 태헌의 곁에 세웠다.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동안 신 회장이 명우에게 말했다.“자네 혼사 끝나면 우리 애들 이야기도 한번 해야지.”명우가 웃었다.“그래. 조만간 이야기 한 번 하지.”해원은 태헌을 보지 않았다.혜주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익숙한 이야기를 또 들은 사람처럼 엘리베이터 층수만 확인했다.태헌은 아무 말도 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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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그럼 저는요?

“혜주 씨와 결혼하실 겁니까?”“아니.”태헌은 망설이지 않았다.해원이 숨을 들이마실 틈도 없을 만큼 빠른 대답이었다.“혜주와 결혼할 생각 없어.”가슴을 누르고 있던 것이 조금 풀렸다.해원은 그제야 자신이 어떤 대답을 기다렸는지 알았다. 태헌이 아니라고 말해 주기를 바랐다. 오늘 오찬에서부터 줄곧 그 말만 기다렸다.안도한 자신이 부끄러웠다.누구와 결혼할지는 태헌의 일이었다. 빚을 갚기 위해 1년을 내준 계약자가 그의 미래까지 간섭할 수는 없었다.그런데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태헌이 문을 조금 더 열었다.“들어와.”해원은 잠시 망설이다 문턱을 넘었다.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검은 휴대전화의 호출도 없었고, 태헌이 오라고 명령한 것도 아니었다. 해원은 자신이 묻고 싶은 것을 위해 이 방에 들어왔다.태헌이 해원을 돌아봤다.“그걸 물어보려고 온 거야?”“네.”“왜?”해원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질투했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면 오늘 느낀 것이 전부 사실이 될 것 같았다.혜주가 태헌의 옆에 앉아 있던 모습.두 사람의 혼담을 당연한 미래처럼 말하던 목소리.그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태헌까지.“오늘 신 회장님께서 두 분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들었어.”“회장님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나도 긍정하지 않았어.”“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태헌의 눈이 가늘어졌다.해원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혜주 씨도 알고 있습니까?”“내가 진행할 생각 없다는 건 알아.”“결혼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신 적은요?”잠깐의 침묵 뒤에 대답이 돌아왔다.“없어.”“왜요?”“진행할 생각이 없으니까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어.”태헌다운 대답이었다.자신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자신의 침묵을 수락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믿는다.하지만 오늘 해원이 본 자리는 달랐다.“말씀하지 않으셔서 모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태헌은 반박하지 않았다.“신 회장님도, 회장님도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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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보내고 싶지않아

그제야 태헌이 질문의 뜻을 이해한 듯 눈을 가늘게 떴다.“혜주와 결혼하지 않는다는 말로 부족해?”부족하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태헌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지 않겠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한 것도 욕심이었다. 그 빈자리에 자신이 무엇인지 묻는 것은 그보다 더 큰 욕심이었다.그래도 해원은 거짓말하지 않았다.“네.”태헌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욕심이 많아졌네.”해원의 얼굴이 뜨거워졌다.“죄송합니다.”“사과하라는 말 아니야.”태헌이 한 걸음 가까이 왔다.“너는 내 거잖아.”해원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듣고 싶었던 말이었다.그 한마디면 충분했던 때도 있었다. 태헌이 자신을 소유물로 인정해 주지 않았던 밤에는, 다시 그의 것이 되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지금도 그 말이 싫지 않았다.가슴을 조이던 것이 잠깐 풀렸다.하지만 오늘 태헌의 옆에 앉아 있던 혜주를 떠올리자, 그 말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자리가 다시 선명해졌다.“그건 계약서에도 적혀 있습니다.”태헌의 표정이 굳었다.“계약서에 없는 답을 달라는 거야?”해원은 입술을 다물었다.말로 확인하고 나니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요구하는지 더 분명해졌다.태헌의 소유물이 되겠다고 계약한 것은 자신이었다. 빚이 사라지는 대가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계약서 어디에도 마음을 달라는 조항은 없었다.“네.”그래도 대답은 바뀌지 않았다.태헌이 낮게 물었다.“뭘로 있고 싶은데.”“모르겠습니다.”“그런데 답은 달라고?”“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해원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말을 이었다.“하지만 지금 제가 무엇인지는 알고 싶습니다.”“내 거라고 했잖아.”“낮에는 동생입니다.”태헌의 눈빛이 달라졌다.“가족들 앞에서는 오빠의 동생이고, 이 방에서는 주인님의 소유물입니다.”“둘 다 사실이잖아.”“네.”해원은 망설이지 않았다.“주인님의 것인 게 싫다는 뜻도 아닙니다.”그 말만은 오해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명령을 기다리는 것도, 그 명령에 따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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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지금은 명령해 주세요

지금은 명령해 주세요“부탁이야.”해원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태헌은 기다렸다.방금 전까지라면 그 침묵부터 불편했을 것이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하는지,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먼저 바빠졌을 테고.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대답은 알고 있었다.싫지 않았다.오히려 너무 쉽게 고개를 끄덕일 것 같아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해원은 입술을 한번 다물었다가 열었다.“그런 부탁은 조금 반칙 아닙니까?”“뭐가.”“계약이 끝나면 저보고 정하라고 하셨잖아요.”“응.”“그런데 벌써 대답을 받고 싶어 하시니까요.”태헌이 해원을 봤다.“대답하라고 안 했는데.”“그렇게 들렸습니다.”“그럼 안 해도 돼.”너무 쉽게 물러났다.해원은 오히려 할 말을 잃었다.재촉하지도 않았다. 지금 말하라고 하지도 않았다.조금 전 부탁이라고 말한 순간부터 정말 그 답은 해원의 것이 된 모양이었다.“안 있겠다는 뜻은 아닙니다.”태헌의 표정이 아주 조금 달라졌다.해원은 바로 알아봤다.“그렇게 보지 마십시오.”“어떻게.”“벌써 대답 다 들은 사람처럼요.”“아닌데.”“맞습니다.”태헌이 웃었다.해원은 괜히 그 얼굴을 오래 보지 못하고 시선을 내렸다.“계약이 끝난 뒤에도 저를 원하시면…….”거기서 말이 한번 끊겼다.그때도 이 집에 올까.그때도 태헌을 주인님이라고 부를까.지금처럼 이 남자가 자신을 보고 있을까.모르겠다.해원은 아직 오지도 않은 날까지 대신 결정하고 싶지 않았다.“그때 다시 물어보세요.”태헌은 바로 대답했다.“원할 거야.”해원이 고개를 들었다.“자신하시네요.”“응.”“제가 변할 수도 있잖습니까.”“그래도.”해원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그것도 그때 확인하겠습니다.”“그래.”정말 그걸로 끝이었다.태헌은 더 묻지 않았다.몇 달 뒤의 자신에게 대답을 미뤘는데, 이상하게 마음은 전보다 가벼웠다.해원은 방 안을 한번 봤다.조금 전까지는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대답을 듣기 전에는.그런데 이제는.한 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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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오늘 밤은 이걸로 됐다

블라우스가 앞으로 벌어졌다.태헌이 어깨에서 천을 밀어 내렸다. 옷이 팔 중간에 걸리자 손목을 잠깐 놓아 완전히 벗겨냈다.속옷 끈이 손가락에 걸렸다.태헌은 브래지어를 풀지 않고 어깨뼈 위에서 천천히 밀어 내렸다.컵이 헐거워지며 가슴이 드러났다.분홍빛 유두가 이미 서 있었다.태헌이 손바닥으로 한쪽 가슴을 감쌌다.손 안에 가득 찼다.엄지로 유두를 쓸어 올리자 해원의 허리가 뒤로 밀려 태헌의 몸에 붙었다.치마 옆 지퍼가 내려갔다.짧은 금속음.허리선을 따라 들어온 손이 치마를 아래로 밀었다. 천이 엉덩이와 허벅지를 스치며 발목에 쌓였다.남은 건 팬티뿐이었다.손가락 하나가 옆선을 걸어 천을 끌어내렸다.팬티마저 다리 아래로 떨어졌다.해원은 거울을 봤다.벗은 자신.그 뒤에 옷을 입은 채 선 태헌.등 뒤로 모인 손과 붉어진 가슴. 허벅지 사이에는 이미 윤기가 번져 있었다.태헌이 손목을 놓았다.해원의 팔이 몸 옆으로 떨어졌다.아무것도 자신을 붙들고 있지 않았다.“손대지 마.”해원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태헌의 입술이 목덜미에 붙었다.이가 살을 스치고 혀가 그 자리를 적셨다. 한 손이 가슴을 다시 움켜쥐었다. 유두가 손가락 사이에 잡혔다.다른 손은 허리를 따라 내려가 아랫배를 눌렀다.해원의 몸이 뒤로 기대졌다.손바닥이 치골을 덮었다.중지와 검지가 그 아래로 미끄러져 젖은 결을 벌렸다. 열과 물기가 손끝에 바로 묻었다.해원은 태헌의 어깨를 붙잡고 싶은 걸 참았다.손가락이 허벅지 옆에서 한번 말렸다.태헌의 손이 허벅지 안쪽을 타고 올라왔다. 부드럽고 뜨거운 살을 벌리며 엄지가 위쪽 클리를 찾아 눌렀다.해원이 숨을 삼켰다.손끝이 더 깊은 곳을 건드렸다.입구를 한 바퀴 돌고, 물기를 밀어 넣듯 한 마디가 들어왔다.해원의 허리가 들렸다.거울 속 얼굴은 벌써 처음과 달랐다.벌어진 입술. 흐트러진 눈.태헌의 손 안에서 가슴이 흔들렸다.손가락이 더 깊이 들어왔다.굽힌 손끝이 안쪽을 긁자 짧고 끈적한 물소리가 났다. 해원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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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결혼식 다음날

며칠 뒤 저녁이었다.수경은 식사를 시작한 지 십 분도 안 돼 휴대전화를 세 번이나 들여다봤다.해원이 맞은편에서 물었다.“또 뭐 왔어?”“답례품 업체. 이 사람들은 왜 꼭 밥 먹을 때 연락하는지 모르겠어.”“엄마가 오늘 안 보내도 된다며.”“그러다 까먹지.”“나한테 보내. 내가 볼게.”수경이 기다렸다는 듯 휴대전화를 밀었다.“역시 딸이 최고다.”“방금 전까지 나보고 그만 일하라고 한 사람 누구였지?”“그거랑 이건 다르지.”해원이 피식 웃으며 화면을 확인했다.명우가 그 모습을 보다가 말했다.“결혼식 끝나면 두 사람 다 심심해서 어떡하려고 그래.”“난 하나도 안 심심할 거예요.”수경이 바로 대꾸했다.“한 달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잘 거야.”해원은 화면에서 눈도 떼지 않았다.“엄마가 사흘 버티면 인정해 줄게.”“너는 누구 편이야?”“현실 편.”명우가 웃었다.태헌은 말없이 국을 뜨고 있었다.해원이 답례품 업체에 몇 글자를 입력하고 휴대전화를 돌려줬다.그때 태헌이 수저를 내려놓았다.“아버지.”명우가 고개를 들었다.“왜.”“혜주 얘기, 이제 그만하시죠.”수경의 손이 휴대전화 위에서 멎었다.해원도 고개를 들었다.명우가 물었다.“신 회장이 한 얘기?”“예.”“그걸 왜 나한테 그래. 먼저 꺼낸 건 신 회장인데.”“아버지도 아예 생각이 없으셨던 건 아니잖습니까.”명우는 부정하지 않았다.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잔을 내려놓았다.“결혼할 생각 없다는 거냐?”“예.”태헌이 덧붙였다.“혜주하고는 없습니다.”해원은 태헌을 봤다.태헌은 이쪽을 보지 않았다.“그럼 왜 지금까지 말을 안 했어?”“제가 늦었습니다.”“혜주는 알고 있고?”“저한테 그럴 생각 없는 건 압니다.”“근데 신 회장은 모르고.”“예.”명우가 혀를 찼다.“그러니까 사람 일은 말을 해야 안다니까. 네가 가만히 있으니까 저쪽에선 가능성 있다고 생각한 거 아니야.”“맞습니다.”변명은 없었다.해원은 젓가락을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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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좀 아팠습니다.

맞은편에서 커피잔이 접시에 닿았다.소리가 크지는 않았다.해원은 그쪽을 봤다.태헌이 잔에서 손을 떼고 있었다.수경은 그대로 말을 이었다.“바로?”“응.”“하루 이틀 더 있다 가도 되잖아.”해원은 빵칼을 내려놨다.“……그래도 이제 가야지.”“왜. 여기 불편했어?”“아니.”너무 빨리 나왔다.해원이 덧붙였다.“그런 건 아니야.”수경은 얼굴을 한번 살피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네 집이 편하긴 하겠지.”해원은 커피를 마셨다.태헌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짐은 많아?”“별로 없어. 처음부터 필요한 것만 가져왔어.”그 말에는 태헌이 고개를 들었다.둘의 눈이 한번 마주쳤다.“태헌아.”수경이 불렀다.“네.”“그날 해원이 짐 좀 옮겨줄 수 있어?”해원이 바로 끼어들었다.“엄마. 진짜 별로 없다니까.”“별로 없어도 있기는 있잖아.”“차 한 번이면 끝나.”“그러니까 오빠 차 쓰면 되겠네.”해원은 수경을 봤다가 태헌에게 눈을 돌렸다.태헌이 말했다.“내가 할게.”“진짜 괜찮아.”“알아.”“그런데?”“내가 한다고.”해원이 결국 웃었다.“알겠어.”그리고 일부러 조금 가볍게 덧붙였다.“부탁할게, 오빠.”태헌이 해원을 봤다.“그래.”수경이 웃었다.“봐. 오빠 생기니까 좋잖아.”해원의 웃음이 어색하게 남았다.수경은 잼을 바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엄마는 네가 여기 있는 동안 태헌이랑 친해져서 그게 제일 좋았어.”“왜?”“앞으로 엄마 없어도 서로 챙길 사람 생긴 거잖아.”수경은 빵 한쪽을 접시에 내려놓았다.“가족이 하나 더 생긴 거니까.”해원은 대답하지 못했다.태헌도 조용했다.“왜 또 그래?”“아니.”해원은 겨우 웃었다.“그냥.”한 박자 뒤에야 말이 나왔다.“응. 좋지.”수경은 그걸로 됐다는 듯 웃었다.명우가 결혼식 당일 차량 이야기를 꺼냈고, 수경의 관심은 금세 그쪽으로 넘어갔다.해원도 일정표를 들여다보며 말 몇 마디를 보탰다.평소 같은 아침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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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내가 갈게

며칠 뒤였다. 태헌이 동관 이층으로 올라오다 걸음을 늦췄다. 해원의 방문 앞에 상자가 놓여 있었다. 하나도 아니고 세 개. 옆에는 아직 접지도 않은 새 상자까지 벽에 기대어 있었다. 열린 방문 안에서 테이프 뜯는 소리가 났다. 태헌이 문 앞에 섰다. “뭐 해.” 바닥에 앉아 있던 해원이 고개를 들었다. 책이며 화장품이며 자잘한 물건들이 사방에 늘어져 있었다. 해원은 들고 있던 테이프를 내려놓았다. “정리하고 있습니다.” “왜.” 해원이 그를 빤히 봤다. “정리를 왜 하겠습니까.” 태헌의 눈이 다시 상자 쪽으로 갔다. “벌써?” “벌써라뇨.” “결혼식 아직 남았잖아.” “그날 한꺼번에 싸려고요?” 태헌은 말없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상자 하나가 발에 걸렸다. “이거 보기 싫네.” “상자가요?” “응.” 해원이 웃었다. “그럼 안 보시면 됩니다.” “그건 더 싫고.” 이번에는 해원이 고개까지 들었다. “오늘 싫은 게 많으시네요.” “응.” 너무 당연하게 대답해서 웃음이 날 뻔했다. 태헌은 해원 앞에 쪼그려 앉았다. 상자 안에는 책 몇 권과 서류철, 잘 쓰지 않는 파우치가 들어 있었다. “진짜 이것밖에 안 가져왔어?” “아직 더 있습니다.” “아니. 여기 들어올 때.” 해원이 방 안을 한번 둘러봤다. “처음부터 필요한 것만 가져왔습니다.” 태헌의 얼굴이 굳었다. 해원이 괜히 덧붙였다. “결혼식까지만 있을 생각이었으니까요.” “그 말도 싫어.” 이번에는 해원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럼 제가 뭐라고 해야 합니까.” “모르겠어.” 태헌이 상자를 발끝으로 밀었다. 해원이 바로 끌어왔다. “왜 자꾸 미십니까.” “치워.” “지금 치우고 있잖습니까.” “내 눈앞에서.” 해원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를 봤다. “주인님.” “왜.” “제가 짐 싸는 게 싫으신 겁니까, 상자가 싫으신 겁니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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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오겠다고 했잖아

해원은 거실 한가운데 놓인 상자를 밀어 벽 쪽에 붙였다.결혼식이 끝나고 돌아오면 바로 생활할 수 있도록 오후부터 집에 와 있었다.창문을 열어 묵은 공기를 빼고, 침구를 갈고, 먼저 보내둔 짐도 몇 개 풀었다.저택에 있는 동안 거의 쓰지 못했던 컵까지 씻어 선반에 올려두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개인 휴대전화였다.[앞이야.]해원은 손에 묻은 물을 닦았다.현관으로 가다가 한번 멈췄다.비밀번호는 알려줬다.그냥 들어오라고 해도 됐다.그래도 해원은 직접 문을 열었다.태헌이 서 있었다.평소보다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맨 채였다.“비밀번호 알려드렸는데요.”“연락하라며.”“잘하셨습니다.”해원이 문을 더 열었다.“들어오세요.”태헌이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왔다.집 안을 한번 훑어봤다.해원이 뒤에서 문을 닫았다.“정말 오셨네요.”태헌이 돌아봤다.“오겠다고 했잖아.”해원이 웃었다.“그렇긴 합니다.”태헌은 거실 쪽으로 몇 걸음 더 들어갔다.크지 않은 집이었다.한쪽 테이블에는 노트북과 서류가 놓여 있었고, 소파 등받이에는 접지 않은 담요가 걸쳐져 있었다.벽에는 아직 뜯지 않은 상자 두 개.태헌은 그것들을 하나씩 구경했다.“여기서 일해?”“집에서는요.”“맨날?”“대부분.”테이블 위 머그잔에 태헌이 손을 뻗자 해원이 말했다.“그건 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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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내일 여기 보여?

태헌의 손은 허리에 그대로 있었다.“왜.”해원은 그 얼굴을 봤다.넥타이가 반쯤 풀려 있었다.자기가 그렇게 만들었다.웃음이 났다.“아무것도 아닙니다.”“그런 얼굴 아닌데.”“무슨 얼굴인데요.”“좋아하는 얼굴.”해원이 다시 넥타이를 잡았다.“그걸 굳이 말씀하셔야 합니까?”“맞잖아.”해원은 대답하지 않고 다시 입술을 맞췄다.태헌이 웃는 기척이 입술 사이에서 났다.두 번째 키스는 오래 가지 않았다.태헌이 해원의 허리를 감은 채 일어섰다.해원도 같이 일어났다.등 뒤로 소파가 멀어졌다.태헌의 손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해원은 한 걸음 밀렸다가 다시 붙었다.입술이 떨어졌을 때 낮게 불렀다.“주인님.”태헌의 눈빛이 달라졌다.해원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태헌이 뺨을 한번 쓸었다.“또 불러봐.”해원이 그 손목을 잡았다.“주인님.”이번에는 태헌이 먼저 입을 맞췄다.해원의 손이 셔츠 앞섶을 움켜쥐었다.둘은 붙어 있는 채로 천천히 거실을 벗어났다.반쯤 열린 침실 문 앞에서 태헌이 걸음을 멈췄다.“들어가도 돼?”해원은 침실 안을 한번 봤다.혼자 쓰던 침대.정리해 둔 옷.아직 풀지 않은 작은 상자.그리고 태헌.“네.”해원이 먼저 문을 열었다.해원이 먼저 침실로 들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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