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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의 모든 챕터: 챕터 31 - 챕터 40

122 챕터

철향鐵響 三十一

어머니를 망가지게 만든 것은 결국 나다. 그런 나를 지우지 못해 어머니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숙부님을 증오했다. 결국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을 보고 모든 걸 쏟아내어버린 어머니는 그대로 허물어지듯 이승을 등졌다. 현덕은 메마른 나뭇가지 같은 어머니가 서리 내린 쇳덩이같이 될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안고 있었다. 제 죄를 속죄하듯 꽉 붙잡고 있었다. 자신을 품고 있었던 기간까지 스물여덟 해를 그리 원망하고 사셨을 어머니께 해드릴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남지 않아서, 이렇게 될 때까지 무지했던 죄가 너무 커서 짓눌리듯 안겨 있었다. 눈을 뜨고 있음에도, 눈에 맺히는 형상이 분명히 있음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에게서 항상 나던 말리화의 희부연 향이 얼어붙고 진득한 시취가 코를 찌르며 눌러붙었다. 차가움이 지겨워진 손은 뜨거움을 갈구하며 스스로 열을 내기 시작했다. 더이상의 촉감을 거부했다. 그때 가느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이 죽기 전 마지막까지 열려있는 것이 귀라고 하였던가. 낮고 고결한 거문고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모든 감각이 사라진 뒤에도 소리만은 계속해서 머리를 일깨웠다.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소리가 끊임없이 이승으로 의식을 이끌었다. 지극히 순수하게 아름답기만 한 소리를 하나하나 반박하고 싶었다. 진창이 된 나의 속으로 끌어내리고 싶었다. 그렇게 끊어질듯 말듯한 소리에 안달내다 어느 순간 음악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내가 뭘 하고 있었지? 다른 중요한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순간 어머니의 머리가 내 어깨로 떨어졌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편히 쉬시길 빌며 어머니에게 집중했다. 떠나시기 전에 부러 모질게 구신 거라는 걸 안다. 어머니와 함께 했던 열다섯 해는 찬란하고 따스했습니다. 이렇게 궁을 떠나자마자 제일 먼저 찾아올 정도로요. 제가 두 분의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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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三十二

“어머니께서는 안에 계시지만, 더이상 존재하지는 않으시네.” 사내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곧 표정을 풀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몸 앞에 두고 있었던 거문고를 옆에 기둥처럼 세워 붙잡고서 절을 했다. 사내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거문고가 이제사 제대로 보였다. 그리고 숙여진 고개가 햇빛을 담뿍 받아 암갈색으로 빛났다. 이연과는 확연히 다른 사내다. 키도 육 척이 되지 않는다. “지율知聿이 현덕 마마님을 뵙습니다.” 어머니를 아는 자이다. 내가 누구인지 어림짐작하기 어렵지 않았겠지. 다만 그가 부르는 나의 이름이 너무 감미로워서 다시금 아찔해졌다. 잠시 눈을 감았다. 다 몸이 너무 허해진 탓이다. “인사를 올리자마자 이런 말씀 올리기 저어되오나. 부디 스승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니 어머니께서 여기서 어찌 지내셨는지에 대해 직접 들은 것이 없다. 장문인께서 언질을 해주신 건 악화된 건강상태가 전부였다. 그러나 내가 뭐라고 사승관계를 끊겠는가. “들어오게. 침상에 누워계시네.” 지율이 자리에서 일어나 거문고를 들고 천천히 다가왔다. 현덕은 문밖으로 나서며 기탁에게 일렀다. “우린 나가있도록 하지. 그럼 원하는만큼 있게. 이야기는 추후 듣도록 하지.” 지율은 현덕의 앞에 옆모습을 보여주는 자세로 서서 말소리를 들었다. 묘하다. 피부만큼 흰 안대 위의 짧고 굵은 갈색 눈썹이 눈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시선을 맞추게 된다. “감사합니다. 제가 장문인의 전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현덕의 눈이 지율의 안대에 잠시 머물렀으나 지레짐작할 필요는 없다 여겼다. 할 수 있으니 하겠다고 했겠지. “그래. 그리하게.” 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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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三十三

황녀 자호란이 열다섯이 되어 계례를 치르자 기탁의 귀동 임무도 끝이 났다. 그리고는 바로 금군에 임명되고 이연에게 배속되었다. 갓 다섯 살이 된 작디 작은 황자님이었다. 공부도 내팽개치고 매일같이 현덕에게로 달려가 저주를 달래었다. 은령이 여러 번 대신 혼날 뻔 하였으나 그때마다 이연이 자지러지게 울며 가로막는 바람에 국사는 결국 회초리를 꺾어버렸다. 현덕은 어릴적부터 침상에 누워서 사서삼경을 배웠고, 그것을 이연에게 읊어줌으로써 다시 새겼다. 이연은 그저 좋다며 따라하였다. 국사는 그거라도 하여 다행이라 넘겼다. 그렇게 평화롭다면 평화롭고 무료하다면 무료한 날들이었다. 그러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다. 동궁의 현덕과 이연의 궁 사이에는 이연의 태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연은 길을 돌아가지 않고 그 사이에 난 개구멍으로 다녔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개구멍으로 은령이 먼저 들어가고 이연이 들어간다. 그동안 보초를 서던 기탁이 마지막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기탁이 들어갔을 때 그곳엔 희게 질린 은령만 서있었다. 그날 개구멍을 몇 번을 들락거렸는지 모르겠다. 결국 이연을 찾지 못하고 현덕의 궁으로 향했다. 이미 이연이 와 있었다. 어쩌다 이연을 발견한 자호란 마마께서 데려다주었다고 하였다. 황제와 현덕 그리고 자호란 마마만이 궁 안의 진법을 무시하고 모든 곳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다. 목련궁 응접실 문을 열고서 바로 후원의 마굿간으로 가는 식이다. 기탁이 자호란을 모실 때 자주 겪은 일이었다. 호위보다 더 유용한 자기보호법이다. 이연은 현덕의 앞에서는 평상시와 똑같이 굴었다. 그래서 다시 이연의 궁으로 돌아갈 때까지 은령과 기탁도 여느 날과 똑같이 굴었다. 다만 돌아가는 길은 달랐다. 현덕의 궁에서 이어지는 쪽문을 통해 이연의 태실을 거쳐 개구멍으로 이연의 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길을 따라 빙 둘러 돌아왔다. 그 길을 걸어가는 동안 이연의 걸음걸이가 점점 무너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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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三十四

얼음장같은 차가운 말에 은령의 정신이 돌아왔다. 이제 괜찮다고, 기탁의 손을 물리고 바로 섰다. 은령은 고요한 눈으로 그 자리에 있는 자들을 하나하나 눈에 새기기 시작했다. 현비의 뒤에 선 환관과 금군을, 문 뒤에 몸을 숙이고 있을 궁녀 둘도. 고작 일곱 살인 은령도 범상한 아이는 아니었다. 자신이 머리가 좋지 않다는 것은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체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꼭 기억해야하는 것만 뼈에 새기듯 기억하려 노력했다. 지금 여기 있는 모든 이의 얼굴을 외운다. 그것만 생각했다. “어마마마. 소자가 이 세상에 존재해도 되는 것입니까? 작년에 왜 물에 빠져 죽지 못했을까요? 선비님께서는 제가 황궁의 죄악이기에 물에 던지신 걸까요? 이 황실 안에 제가 있을 곳이 없고 생부 역시도 저를 원하지 않는다면, 전 어디로 가야하나요?” 현비는 결국 아들의 얼굴 위로 몸을 숙였다. 그리고 턱을 잡아 눈이 마주치게 한 뒤 짓씹듯 말을 내뱉었다. “정말 지긋지긋해서…. 엉뚱한데서 집요하십니다. 그래. 그 자식을 닮아서 그래.” 그때 황제의 우렁찬 목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내가 원해서, 내가 너를 원했다! 이연아.” 정무복을 벗지도 못하고 달려온 황제가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현비가 일어나 인사를 하려 하였으나, 황제는 현비를 스치고 지나가 이연을 끌어안았다. 조그마한 몸이 거대한 황제의 품 안에 담뿍 들어갔다. “처음엔 은린족의 피가 필요했다. 그러나 네가 태어났을 때, 너라서 좋았다. 이연아. 넌 내가 원해서 태어난 내 아들이다. 내가 꿈에 그리던 아들의 모습 그 자체였어.” “아바……. 폐하.” 작은 목소리가 커다란 품 안에서 흘러나왔다. 꺼져가는 목소리가 황제의 가슴을 더 짓이겼다. 어린 아이가 이리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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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三十五

예상치 못한 말에 황제는 이연의 손을 놓고 허허 웃었다. “허. 흠흠. 음 그러냐. 그런 말은 어디서 들었느냐?” 직접 소문 낸 일이다. 이연의 아비는 제 역할을 다 했다. 앞으로의 일은 자신이 책임져야 했다. 현비 태중의 아이가 그의 아이가 아닌 황제의 아이가 되려면, 지금 궁에 남아있는 그 남자에게는 다른 역할을 줘야했다. 유산의 가능성이 있는한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그를 없앨 수는 없다. 그래서 엄인(생식 능력이 상실된 남자)에 남총이라는 소문을 내었다. “동궁에 속한 숙수와 환관이 떠드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근래 폐하의 식사량이 늘었다고 하니, 후궁에는 연회루에 폐하의 남총이 산다는 소문이 돈다고 하였습니다.” 황실의 식사를 담당하는 소주방은 후궁과 동궁의 경계에 길게 펼쳐져있다. 후궁은 지내고 있는 비들도 여럿이고, 대비 마마와 황녀들도 있으며 그에 속한 궁인들이 많기에 후궁 숙수들은 바빴다. 동궁에는 현덕과 이연뿐이었기에 황제의 식사도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동궁 숙수들이 준비했다. 그리고 그건 동궁에 있는 이연의 태실에서 주로 숙식하는 그 남자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연회루는 그가 그림을 그리는 곳이었기에 그림자가 항상 어른거렸다. 잘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궁인들이 그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곳이 그곳이었다. 그래서 소문을 내었다. 소문은 충분히 잘 퍼지고 있다. 다만 그걸 아이의 입을 통해 확인하니 소름이 돋았다. “흠흠. 그래. 그래서 그리 물어봤구나. 잘하였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너무……. 저와 결이 비슷하시고 또…….” “또?” “아름다우셨습니다. 꼭 옛이야기에 나오는 귀신을 속이고 신을 현혹하는 미남자가 이러할까 싶었습니다.” “그래. 그렇지. 그래서 좋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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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三十六

-깡! 강현은 궁에서 이 시간에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에 눈을 떴다. ‘쇳덩이끼리 부딪히는 소리.’ 당연하다는듯 옷을 다 챙겨입고 검은 머리맡에 둔 채 누워있었다. 그대로 검을 허리에 패용하며 방에서 달려나갔다. 잠깐 귀를 기울여 민하의 숨소리를 찾는다. 지난 사흘간 명확히 새겨둔 잠든 소리다. 조용히 목련궁을 빠져나와 아까 들은 쇳소리의 위치를 가늠했다. 한 번 더 들려왔으면 좋겠는데, 반복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는 위험한 소리다. 들려온 곳은 아마 후궁과 동궁 사이의 경계다. 빠르게 가로지르기 위해 지붕을 타고 넘어간다. 기와를 밟는 소리가 나지 않게 발을 가볍게 하여 달리는데, 달빛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지붕이 거슬린다. 이거 금군의 옷은 금색으로 줘야하는 거 아닌가? 빛나는 지붕 위에서 검은 옷은 오히려 튀어보일 것 같다. 황궁의 북쪽을 온통 차지하는 후궁의 가장 동쪽 끝으로 왔다. 후궁과 동궁 사이는 한채의 길고 거대한 건물이 두 궁을 관통하여 자리잡고 있다. 후궁쪽 앞에 흰옷을 입은 한 사내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웅크리고 있었다. 끙끙 앓는 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 상태가 좋지 않다. 괜찮을리 없어 보이니 괜찮냐고 묻지는 않는다. “어디 다치셨습니까? 일어나실 수 있겠습니까?” 강현은 그 앞에 가볍게 착지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아까 들은 것과 같은 쇳소리가 들리려면 최소 두 명은 있어야한다. 무기를 든 사람이 근처에 있을 확률이 높다. 어두운 밤눈이 원망스럽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파악하기 힘들다. “누구지?” 강현은 검을 뽑으며 그의 앞에 앉는다. 이쪽이 습격을 받은 자이던 공격을 한 쪽이던 갑자기 나타난 이를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떳떳한 강현은 정체를 숨길 이유가 없다. “강현. 금군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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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三十七

여기는 거대한 주방이다. 반대편에 다음 공간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이 있는 벽이 보이고, 거기까지 가는 중간중간 아궁이가 있는 벽돌 기둥들이 있다. 기둥들은 모두 굴뚝으로 벽에 붙어있는 것이 아니여서 조금 신기했으나 이해는 쉬웠다. 벽은 창문을 제외하면 모두 선반으로 식재료가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굴뚝마다 커다란 무쇠솥이며, 정체 모를 조리도구들이 걸려있다. 그 중 눈에 띄는 한 굴뚝이 있다. 벽돌 사이사이에 피가 고여 번들거리고, 냄비와 국자는 다 떨어져 바닥에 고인 핏물 위에서 허우적댄다. 피웅덩이 가운데에 누워있는 남자는 두 눈이 한 번의 칼질로 베어졌고, 오른 어깨에서 가슴까지 깊게 잘려있다. 좋은 솜씨다. 눈의 자상을 보자마자 강현은 손에 쥔 사람을 구석으로 밀어던지고, 한겸을 찾았다. 다행히 문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후딱 안으로 잡아 끈 다음에 문을 걸어잠궜다. 이 중에 범인이 없다면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저기 반대편의 문 뿐이다. “아 이런, 황 숙수….”, “아시는 분입니까?” 깅현은 납검을 하고 시신으로 다가가 좀 더 자세히 살펴봤다. 당연하게도 심장은 전혀 뛰지 않는다. “두 분은 문 옆에 계십시오. 누가 열려고 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뜨고 있는 눈으로 잠금장치부터 찬찬히 확인한 한겸이 강현의 질문에 답했다. “동궁 숙수입니다. 제가 이연 마마님의 스승이기에 그의 음식을 꽤 자주 먹었습니다. 지금 지소 공주께서 임신 중으로 궁에 온 김에 먹고 싶었던 밀사빙蜜沙氷을 청했고, 폐하께서 얼음을 허하셨기에 지금 받으러 오던 중이었습니다. 날이 더워져 조금이라도 덜 녹은 상태로 주고 싶어 야참으로 청했는데….” 강현은 두리번거리며 얼음을 찾았다. 시신 옆 탁자에 갈린 얼음이 반쯤 녹아 물이 된 나무사발이 있고 그 옆에 아이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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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三十八

곱게 간 얼음에 싱싱한 산딸기가 보기 좋게 쌓여있고 꿀내음이 확 풍긴다. 한겸의 뻔뻔한 얼굴이 떠오르면 그릇을 뒤집어 쏟아버릴까 싶다가도 숙수의 간절한 눈빛을 떠올리며 참았다. 작약궁은 소주방 바로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궁으로 입구에는 두 명의 금군이 지키고 있었다. “한겸 공의 부탁으로 밀사빙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이 별 의심없이 들여보내주자, 강현 자신의 불분명한 신분을 설명하는 시간보다 이걸 만드는 시간이 더 짧았을 거라는 걸 확실히 알게됐다. 금군 후보임을 증명할 시간과 작약궁과 상관없는 자가 굳이 방문하게 된 이유를 설명할 시간이 줄었다. 들어서며 뒤에 있는 금군에게 일렀다. “한겸 공께서 꽤 다치셨습니다. 궁의께서 어서 가보셔야할 거 같습니다.” “거짓말.” 그래. 너무 쉽다 했다. 마당 가운데 치맛자락을 붙잡고 서있는 여인이 있다. 크지 않다. 자그마하지만 당차다. 까만 머리와 동그란 까만 눈동자가 강아지 같은 여인이다. “한겸은 날 걱정시키지 않아.” 아, 그런 뜻인가. 가까이 다가온 여인이 강현의 눈을 빤히 바라본다. “심장이 두 개시군요. 지소 공주님을 뵙습니다. 운남성 강가 사남 현이라고 합니다. 한겸 공께서 전하시길 팔팔하니 걱정말라 하셨습니다. 다만 얼굴에 흔적이 좀 남았으니 궁의를 보내달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 의견으로는 이왕이면 빨리 궁의를 보내셔야 할 거 같습니다. 눈을 조금 다치셨습니다. 그리고 괴한을 붙잡아야 하니 금군도 보내셔야 합니다.” 강현은 고개 숙여 인사를 하며 말을 쏟아냈다. “여봐라! 너 궁의를 깨워. 넌 작약궁 금군 다 끌어모으고! 넌 안내해!” 다급히 사람들에게 지시를 하고 강현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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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三十九

강현은 말소리를 들으며 마당에 서서 기다렸다. 그리고 계속 사룰 공주의 기척을 찾았다. 도라가 나오자마자 가까이 붙어 말을 걸었다. “사룰 공주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으셨다며 일찍 침소에 드셨는데?” “침소는?” “저기 이 층.” 도라가 동쪽에 있는 건물을 가리킨다. 보통 후궁과 동궁의 건물들은 가운데 정원을 두고 북쪽은 공적 공간, 서쪽은 궁인들의 거처와 작은 주방, 동쪽은 궁의 주인인 황족의 거처로 되어있다. 민하도 그렇지만, 사룰 공주도 황실의 일원이 될 자로 대우 받고 있다. “가자.” “야, 네가 왜? 그리고 민하 아가씨는?” 강현은 잠시 서서 목련궁을 향해 하늘 너머로 바라보았다. 후궁의 서쪽을 차지하는 연회루 바로 옆의 목련궁과 동쪽끝에 있는 작약궁은 꽤 떨어져있다. “곤하게 주무시는군. 꽤나 아기같은 수면시간을 갖고 계시던데?” 도라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본다. “여기서 아가씨 숨소리가 들려?” “응.” 강현은 왼쪽의 건물로 향하며 건성으로 답했다. 사실 아무리 강현이라도 이정도 먼 거리의 숨소리까지는 들리지 않는다. 목련궁에서 소란한 소리는 들리지 않기에 무탈하다 유추할 뿐이다. “이거 꽤나 변태적인데?” “응. 그러니까 네 심장 소리나 좀 어떻게 해. 시끄러워 죽겠으니까.” 도라가 꺄르륵거리며 멈춰서서 두 뺨을 감싸고 몸을 베베 꼰다. 강현은 꿋꿋이 무시하며 나아갔다. 그 옆으로 제인이 긴 다리를 뻗어 성큼 다가왔다. “그래서 사룰 공주의 소리도 안들린다는거지?”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여기 사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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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四十

이연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돌아올 줄 몰랐던 은령이 피투성이가 되어 자신의 침상에 누워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은령의 사고방식은 보통의 사람과는 조금 달랐다. 감정을 느끼는 기저가 조금씩 어긋나있었다.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것에 기뻐하지 않았고, 보통 사람이 즐겁다 느끼는 것에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연은 알고 있었다. 은령은 마음이 아주 여리다는 걸. 거북 등껍질같은 외피 안에 쉽게 상처받는 마음이 있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건 습관같은 방어막이었다. 화도 잘 내지 않았다. 겁이 많아 보이니까. 울지 않았다. 지는 거니까. 그래서 훨훨 날려보냈다. 은령이 살아가기에 이 궁은 너무 음험하고 무서운 곳이었다. 아니 은령과 똑같은 곳이다. 화려함 속에 수많은 치부를 어설프게 덮고는 없는 척 아닌 척 살아가야 하는 곳이다. 그렇게 살지 않길 바라며 따스한 형님과 함께 놓아주었다. “일어나.” 피에 젖은 은령의 머리카락을 소매로 슥슥 문질렀다. 차가운 말투와 달리 손길은 다정하다. “빨리 가봐야지. 안그럼 의심을 살 거야.” 깨끗한 옷은 준비해뒀다. 아니 여기 이미 많다. 은령이 여기서 입던 옷들을 아직 다 치우지 않았다. “마마……. 숙수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요.” 피에 절은 머리칼이 도저히 닦일 기미가 보이지 않아 대야에 물을 부었다. 깨끗한 수건을 적셔 얼굴부터 닦는다. 은령이 여기서 지내는 내내 이연에게 해 준 일이고, 이연과 은령은 같이 씻는 날도 많았다. 그리고 이 년 전까지 둘은 같이 잠들었다. 은령은 자연스럽게 얼굴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무어라 했기에?” 이연의 손길은 꼼꼼하다. 많은 일들을 아랫사람을 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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