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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의 모든 챕터: 챕터 21 - 챕터 30

122 챕터

철향鐵響 二十一

 지독히도 싱그러운 봄이다. 보이지 않는 바람의 색이 읽히고, 농밀한 꽃향기가 들리며, 사락이며 흔들리는 마음의 소리가 보인다. 강원은 인정했다. 눈앞의 이연은 신이 오늘을 기록하기 위해 만든 기록체다. 신록 그 자체다. 이 자가 황제가 되면 제국은 봄이 된다. 그 속에는 겨우내 억눌렸던 생명력의 요란한 기지개가 있다. 제국은 번창할 것이다. 현 황제가 이루어 놓은 광대한 영토 위에 부가 쌓이고, 문화가 꽃핀다. 이연의 미美가 제국의 미래가 된다. 제국의 미래가 입을 열었다. 동면을 깨뜨리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이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강 공자. 원하는 걸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구체적인 사항을 알려주십시오. 오랜 시간 열어두지는 못합니다. 이것은 황궁의 안전을 위한 일입니다.” 들어준다는데 망설일 이유는 없다. 강원은 지체없이 국사에게 청하려 했던 것 그대로 요청한다. “술시 동안 열어주십시오. 시연은 일주향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만, 이왕이면 하늘이 가장 깨끗한 시간을 고르고 싶습니다. 태자궁 서궁 위 반경 오십 자 정도만 열어주십시오.” 생각에 잠긴 이연의 얼굴을 감상하기도 잠시, 흔쾌히 답을 준다. “어렵지 않군요. 굳이 국사께 청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신호를 주십시오. 그때 열어드리겠습니다.” “아니요. 이연 마마. 탄신 연회를 즐기기 바쁘실텐데,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물을 여는 과정이라고 해두죠.” 아, 아직 열다섯이다. 큰 키와 다소 고압적인 언행에 깜빡 속았다. 눈을 반짝이며 미소 짓는 모습에서 설렘이 전달되어진다. 강원은 보는 이의 심장까지 조종하려드는 황자에게서 살짝 떨어지기로 한다. “황제 폐하께 허락을 얻을 것입니다. 그때 열어주시면 됩니다.”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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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二十二

태자가 탐이 나 여기까지 왔지만, 막상 보고나니 그리 탐나지 않았다. 지나치게 아름답고 강건하다. 치마폭에 감싸쥐고 재미 좀 볼랬더니, 글러먹었다. 반대겠지. 누가 황후가 될지 모르겠지만, 매일같이 이연의 얼굴을 뜯어먹느라 넋이 빠져 있을 것이다. 저 종마같은 몸을 봐라. 밤일을 하기 시작하면, 더 정신 못차릴 것이다. 후궁까지 들이게 되면, 투기에 빠져 친정 살림 거덜이나 내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저정도면 알맞다. 약관은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적당히 진중하고 풋내도 난다. 얼굴은 제법 곱상하고 표정도 나긋하니 어느 손녀에게 붙여주어도 좋아하리라. 오드게렐은 강원을 보며 탐을 내기 시작했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건 성에 차지 않는다. “제가 많이 어려 대작을 해드릴 수 없어 아쉽습니다. 따라드리기만 해도 되겠습니까?” 강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오드게렐의 탁자 옆으로 발소리 없이 걸어와 몸을 낮추며 허락부터 구했다. 오드게렐이 고개를 끄덕이자 술잔을 채운 뒤 머리를 한껏 낮추며 잔받침에 올린 잔을 내민다. 오드게렐은 눈을 반짝이며 잔을 받아쥐었다. 아주 굴신한 자세를 취하면서도 전혀 떨지 않는다. 그리고 어째선지 비굴해보이지도 않는다. 이건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다. 보기보다 경험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그래. 나이가 어찌되지?” “열여덟이옵니다.” 강원은 탁자 곁에 반듯이 서서 양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고개를 살짝 들었다. 길고 검은 속눈썹 사이로 보이는 까만 눈이 온순한듯 하면서도 이지적이다. “에이, 그정도면 마셔도 되지 않겠느냐. 어른들이 가르쳐주는 자리에선 상관 없는 나이다. 나도 한 잔 주거라.” 곤평도 빈 잔을 내밀었다. 강원은 술병을 양손으로 잘 받쳐들고 잔이 적당히 찰 때까지 술을 따른다. 그 물줄기가 고르고, 물거품은 일어나지 않는다. 잔을 든 이가 당황하지 않도록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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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二十三

강원은 활을 가슴께까지 들어올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민한 금군들이 활과 석궁을 들어 강원을 겨낭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방향이 틀어지면 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강원을 바라보느라 그런 금군의 모습을 눈치채지 못했다. 강원은 금군보다 중요한 지소 공주를 잠깐 바라보았다. 부마이신 한겸 공이 지소 공주의 귀를 두 손으로 덮고 있는 것이 보인다. 지소 공주의 곁을 지날 때 심장 소리가 둘 임을 들었다. 복중에 태가 있어 놀라면 위험하니 조심하시라 미리 알려드렸다. 황가의 일원 모두에게 귀마개를 드렸지만, 조심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조심하는 것이 좋다. 모두 알려준대로 대비한 것을 보고 흡족해하며 화살 끝의 솜뭉치에 불을 붙였다. 여유부릴 시간은 없다. 활시위를 최대한 당겨 태자궁 서궁 지붕을 향해 쏘아올렸다. 작은 불덩이가 지붕 위에 고이 앉았다. 사람들은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태양이라기에는 너무 보잘 것 없지 않은가? 자세히 바라보니 타닥타닥 지붕 위에 가느다란 불의 뱀이 기어간다. 강원은 됐다는듯 활을 내려보였다. 금군들은 그 모습을 확인하고 시위를 내렸다. 능청스럽게 기어가던 뱀이 어딘가에 막혀 화가 나는듯 지글지글 끓어오르더니 못참겠다는듯 하늘로 솟아올랐다. “피우우우우우웅!” 명적 소리보다 날카롭고 매의 울음소리보다 큰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잠시 사라진다. 사람들이 느닷없는 정적에 의문을 가지는 순간 하늘에 태양보다 크고 아름다운 빛의 꽃이 핀다. “콰아아앙!!!” 큰소리에 놀랄 법도 한데 눈을 가득 채우는 노란 빛의 소란함에 사람들은 넋이 나갔다. 만개한 국화꽃처럼 수백장, 아니 수천 장의 꽃잎이 펼쳐진다. 안쪽에서부터 계속 계속 꽃잎이 솟아난다. 찰나의 순간이건만 사람들은 영겁을 느낀다. 불꽃의 태양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검은 하늘이 열기 품은 희붐한 연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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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二十四

강원은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이연의 앞으로 와 인사를 하였다. “어떠셨나이까.” “앉게.” 이연 뒤에 있던 금군 중 하나가 의자를 가져와 이연과 마주보는 자리에 두었다. 강현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의자에 앉았다. 앞에 있는 탁자 아래에는 수많은 선물이 쌓여있다. 탁자 위는 비워져있다. 강원은 이 위에 올려둘 물건은 없다. 대신 말을 쌓아 올릴 것이다. “그전에 이것이 어찌 여에게 주는 선물인가?” 강원은 이연의 투정어린 질문이 꽤 마음에 들었다. 여러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는 질문이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어왔다면 실망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다. 새로운 개념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날 며칠을 써도 모자랄 것이다. 그저 이름 하나 알고자 한 것이라면 무의미한 질문이다. 금세 까먹을 거니까. 어떻게 쓰겠냐고 물었다면 조금 나은 질문이다. 그러나 역시 여기서 풀 것은 아니다. 그때 그때마다 다른 활용이 있을 것이고, 여러 가능성을 타진해야한다. 황제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신하로 만들었다. 본래 강원은 제국의 관리가 아니다. 그저 무수한 백성 중 한 명일 뿐이다. 말 한마디로 곁에 두고 써먹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들었다. 그리고 나를 아래에 둠으로써 황제의 권위가 올라갔다. 사실 부마를 꺼내든 이유도 가장 빠르게 얻을 수 있는 관직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없는 관직. 황제의 입에서 신하라는 말이 나왔을 때 다른 방도를 찾아볼까도 잠시 고민했지만, 부마만큼 견제받지 않는 관직도 없다. 이제 합당하게 황실의 예산을 써서 일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터무니없는 소원을 내뱉어 황제의 권위를 추락시킨다면, 그 아래에 있는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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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二十五

후궁의 가장 북쪽에는 황궁의 폭을 모두 활용하는 너른 후원이 숨어있다. 그 앞 가운데에 다른 궁들보다 유독 높이 솟아오른 건물이 있다. 온통 황금빛 지붕을 얹은 궁에서 홀로 희게 빛나는 지붕이다. 벽은 푸른 벽돌로 지어졌으며 기둥은 은을 발라 화려하게 빛난다. 적국이 가로막고 있어 고향에 가보지 못하는 사비나 공주를 위해 대설산의 설화궁을 본떠 지어진 궁이다. 여타 다른 궁과 달리 오층의 탑으로 지어졌으며 사시사철 깨끗한 눈이 내린듯 정갈하고 서늘하다. 황후가 된 사비나는 딸인 주희에게 이 궁을 물려주고 모란궁으로 옮겼다. 아직 어림에도 어머니를 닮아 냉정하고 다소 독선적인 주희는 거뜬히 이 궁을 다스렸다. 매령을 가장 따스하고 황궁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남쪽 방에 모셔두고, 궁의와 궁녀들을 그 바로 옆방에 배정했다. 다른 궁이 황가와 궁인들의 거처를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두는 것과 반대로 했다. 관습보다 손님의 심리를 고려한 실리적인 판단이다. “여는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잠시 궁을 비울 것입니다. 그러나 연락을 주시면 바로 달려올테니 안심하세요.” 그리고 주희는 매령의 호위를 맡게 된 바트와 툴가에게 궁을 안내하라며 배속된 금군에게 명해 물렸다. 그들이 사라지자 바로 매령에게 일렀다. “저들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제게 속한 금군을 매령님께 더 붙여드릴 것입니다. 불편하시겠습니까?” 매령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얼마가 더 붙든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강현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었는지 방금 깨달은 참이다. 그래서 오히려 다 상관 없어졌다. 이곳의 주인인 주희의 마음이라도 흡족하면 된다. 매령을 보필할 궁녀와 금군에게 매령의 청이 있으면 신속히 알리라 명하고는 주희는 궁을 떠났다. 매령은 작지만 단단한 주희의 뒷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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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二十六

결국 눈물이 차올라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처음 불꽃을 본 날 이렇게 강현의 눈동자에 비친 불꽃을 빤히 바라봤었다. 귀가 예민한 강현은 불꽃이 터지는 소리에 돌팔매를 맞은 개구리처럼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바닥에 대자로 뻗은 모습으로 눈도 감지 못하고 누워있었다. 매령은 깜짝 놀라 강현이 괜찮은지 살폈고, 그러는 와중에 강현의 검고 큰 눈동자에서 반짝반짝 펼쳐지는 불꽃을 보게되었다. 아름다웠다. 원래도 알고 있었다. 강현의 눈은 빠져들 수 밖에 없을 정도로 크고 아름답다. 그 안에서 열정적인 불꽃이 타오르니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매령님 괜찮으십니까? 주희 마마님을 모셔 올까요?” 궁녀가 양손으로 내 손을 잡고서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고개를 돌리며 조심스레 손을 빼 낸 다음 소매자락으로 눈물을 걷어냈다. ”눈이 부셨나봅니다. 아름답지요? 저와 같이 온 강 공자의 작품이랍니다.”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요? 정말요?” 궁녀는 자신이 낸 큰소리에 깜짝 놀라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매령은 괜찮다고 고개를 살짝 저어보였다. “놀랄만 합니다. 저도 처음 보았을 때 많이 놀랐었거든요.” 매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상차림 앞에 앉았다. 잠깐이라도 눈물을 쏟아냈기 때문인가.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한참을 누워있다 정신이 든 현이 원의 멱살을 잡고 형이 기어코 날 죽이려고 환장했냐며 대드는 모습과 이정도로 큰 소리가 날 줄은 몰랐다고 귀를 후벼파던 원이 떠올랐다. 피식 웃고는 국수를 한젓가락 집어 입 안에 넣었다. 그렇게 따지는 현의 뒤통수에 피떡이 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급히 옷을 찢어 동여메주었던 기억이 떠오르자 웃은 게 조금 미안해졌다. 이미 지난 일이고, 지금은 말끔하게 아문 걸 아는데도 그랬다. 그 후 한 달동안 현의 머리를 직접 감겨 줬다는 것이 생각나자 갑자기 심장이 울렁거렸다.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당연히 해야하는 것이라 여겼다. 아파 죽겠다며 대충 감고 말려는 현이 마뜩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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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二十七

“훌륭하네. 호위는 입이 무거워야하지.” 강현은 가느다랗고 서늘한 민하의 손가락이 뒷머리를 흩트리고 어깨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가만히 있었다. 호위대상이 위험에 처하지 않는 한 먼저 손대지 않는다. 민하의 손은 앞으로 와서 강현의 가슴팍을 더듬고 배를 쓰다듬었다. “단단해. 제법 잘 팔리겠어.” 손은 계속 내려가 허리춤을 조금 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강현은 어금니만 강하게 물 뿐 자세는 그대로 유지했다. 여긴 주인이나 용병이나 변태들 뿐이다. “좋네. 남자는 특히나 여기가 좋아야 가격을 잘 받지. 이왕이면 세워줬으면 좋겠는데, 나로는 안 되나봐. 네 소꿉친구 정도는 되어야 하나보지?” 계속되는 손장난에 강현은 민하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민하는 원래도 까맣지만, 빛을 잃고 한껏 어두워진 눈동자와 마주하였다. 아득한 경고의 눈빛이다. 민하는 겁먹기는 커녕 눈빛을 반짝이며 웃어보였다. “그래도 신음소리 하나 안내는 건 너무한데.” 민하는 조금씩 단단해지기 시작한 음경에서 손을 빼고, 허리끈을 조여주었다. 그리고는 탁자 뒤로 가서 의자에 앉아 깍지 낀 손 위에 턱을 올리고 강현을 바라보았다. “사실 우린 금군은 누가 되든 상관이 없어. 내가 태자비가 되기 위해 왔을 뿐이니까. 도라는 꽤 비싸. 금군같은 가난한 명예직에 목 멜 필요 없지. 권력욕도 없고. 그래서 네가 금군이 되고 싶다면, 나와 도라는 얼마든지 도와줄 용의가 있어.” 이제까지 봐온 미소 중 가장 상큼한 미소를 짓는다. 강현은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해낼 수 있다. “솔직히 말할게. 아까워. 금군보다 우리 아버지 상단으로 들어오면 돈은 훨씬 많이 벌 거야.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있다면 찾아줄 수도 있어. 태자비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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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二十八

생각에 잠긴 강현의 귀에 민하의 혼잣말 같은 웅얼거림이 흘러들어왔다. 가만히 뒀더니 말이 점점 험해진다. “더러운 얘길 잘도 하네.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너, 금군이 될 거라며? 궁을 지키기 위해 궁의 더러운 모든 걸 참고 견디며 삼켜야하는 존재. 이거 역시 시험이야.” 하긴 지금 들은 걸 어디가서 떠들어봤자, 믿지도 않을 거다. 매령을 태자비로 만들기 위한 지저분한 모함정도로 여기겠지. 민하와 시선을 마주한다. 저렇게 부드러운 인상으로 표독스러운 말만 하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그럼 너는. 넌 어느 정도 급이지?” “꺄하하하. 나같은 돈버러지 상년은 폐급이지. 지금 사람을 급으로 나누는 거 보면 모르겠어? 우린 세상을 돈으로 봐. 인간 이하의 것들이지. 아, 그래도 황궁에 들어와 황족이 될지도 모르는데 폐급은 너무한가? 중급 중의 하 정도로 하지. 그래도 머리는 좋거든. 내가 낳을 애들이 나보다 머리가 좋을지 버금갈지 그저그럴지 궁금하긴 해. 뭐하면 너부터 안아봐도 좋고.” 아버지가 명한 더러운 짓을 여자측에서 당당히 요구할 줄은 몰랐다. 강현은 민하를 향한 시선을 거두고 천장을 잠시 바라봤다. 그래. 잔상처럼 남은 저 감람색 눈동자는 말과는 달리 욕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말뿐이다. 고개를 내리며 혀를 찼다. “이연 마마께서 불렀다고 주장하면서 너무 형편없이 구는 거 아닌가? 그렇군. 너랑 있었던 일을 취사선택하여 보고하는 것도 시험일 수 있겠어.” “흐응. 생긴 거만큼이나 생각하는 것도 제법 귀엽네. 지금까지만 봐선 중급 중에 상품이야. 가장 수요가 많고 가격도 잘 받는 편이지. 하품 열을 살 바엔 중품 하나를 사는 것이 같은 값을 치르더라도 훨씬 이득이니까.” 도롱거리는 물방울 소리 같이 작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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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二十九

“간택이라. 무탄茂坦이 별 쓸데없는 짓을 다 하는구나.” 현덕은 십일 년만에 마주한 어머니의 파리한 모습을 담담히 눈에 담았다. 어머니가 떠날 땐 내가 이리 앙상한 모습이었는데, 이제 반대가 되었다. 현덕은 저주가 풀리자마자 급격히 체격이 불어 때아닌 성장통마저 겪었었다. 어머니는 선대 황후가 아들의 처로 신중히 고른 여인이었다. 아름답고 영민했으며 여인치고 크고 탄탄한 몸이 돋보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병색이 완연하다. 아무리 유배를 온 것이라고 하나, 화산은 그리 박한 곳이 아니다. 험한 산이지만 날씨는 매섭지 않고, 맑은 도기가 흘러넘치는 곳이다. 낙양과 가까워 오는 길이 그리 힘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이리 몸이 상하신 것은 마음의 병일 것이다. “어마마마께서 좀처럼 드시지 않으신다고 장문인께서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내가 죽으면 편할 것을. 말코놈이 네가 왔다고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는군.” “어마마마!” “됐다. 궁 얘기나 더 해보거라. 아무래도 태자비로 들이고 싶은 년이 어지간히 바탕이 없나 보구나.” 현덕은 입을 꾹 다물었다. 차마 이연의 귀동이라고는 말을 못하겠다. 선황은 태자비를 들이자마자 자신의 귀동이었던 궁녀를 바로 첩으로 들였다. 후비는 황위에 오른 후에 들이기 마련인데, 자신의 첫사랑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그렇게 모든게 어긋나버렸다. 태자비보다 궁녀가 두 달 먼저 아들을 낳아버렸다. 그 두 달 차이로 선황후의 아들은 이황자가 되어 태자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그것이 현덕의 친부이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이연의 귀동이었던 은령을 유력 가문의 양녀로 넣어 간택에 참가하게 하였다. 본래 간택은 구의 풍습이 아니다. 저 동쪽의 려와 그 옆의 섬나라 화和에서 행해지는 제도이다. 구에서는 황제가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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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향鐵響 三十

어지럼증이 일었다. 이연에게 그릇된 애욕을 느끼기 전부터 현덕은 자신이 남색가임을 알고 있었다. 나만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너른 궁 안에서 나만 이질적인 존재라 여겼다. 숙부도 아버지도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이 속을 울렁거리게 하면서도 그동안 묵혀왔던 이유 모를 죄악감이 덜어지는 듯했다. 난 잘못된 것이 아닌 그저 이런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숙부께서 미리 말씀해주셨으면 고민을 덜 했을까? 황제의 위치에서 쉽게 하기 힘든 얘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연과는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다. 그래서 궁을 떠났다. 보답받지 못하는 애정은 칼날이 되어 이연을 찌를 수 있다. 현덕은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을 살려 준 이연이다. 여인을 애호하는 이연에게 그 이상의 애정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어마마마. 전 이연을 사랑합니다.” “그래. 차라리 그게 나아. 나에겐 차라리 그게 낫다.” “어마마마?” “네 아비는 우리가 스물넷이 될 때까지 나를 품지 않았다. 처음엔 태자가 먼저 후사를 봐야 서열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지. 난 네 아버지를 사랑했어. 그래서 기다렸다. 그러나 태자는 무슨 문제인지 여인을 임신시키지 못했고, 어느 날 네 아버지가 나를 안아주더구나. 짐승 흘레붙듯 그렇게 간단히 일을 치렀어. 처음이라 그랬겠지. 언젠가 애틋하게 품어주겠지. 그래서 참고 기다렸다. 그런데 널 가지자마자 만족한다는듯 물러서더구나.”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모두들 자신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궁금해하지만,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알기는 거부한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으로 태어났다고 믿고 싶어지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잠시 돌아 온 무탄과 네 아비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지. 서로 아이를 낳아 맺어주자고. 자기들은 이번 생에 맺어질 수 없으니, 그렇게 하자고. 아주 둘이서 애틋해서 난리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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