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가 구한 문제아가 나를 살렸다: Chapter 1 - Chapter 10

11 Chapters

도망쳐 온 전학생

윤해온은 LA에서 도망쳐 왔다.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하…… 진짜 별론데.”거울 앞에 선 해온이 교복 치맛자락을 괜히 한 번 잡아당겼다.이모가 넉넉하게 맞춰 온 교복은 분명 새것이었다. 구김 하나 없이 반듯했고, 셔츠 깃도 빳빳했다. 그런데 막상 입고 서 있으니 꼭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교복도 싫고.처음 가는 학교도 싫고.다시 처음부터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도 싫었다.해온이 미간을 찌푸렸다.“짜증나.”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고 방에 틀어박혀 있고 싶었다.침대에 드러누워 천장이나 보다가, 배고프면 냉장고를 뒤지고, 졸리면 자고. 누구도 말을 걸지 않고 아무도 자기를 쳐다보지 않는 하루.그게 훨씬 나았다.그런데 그것도 웃겼다.그렇게 한국에 오고 싶어서 난리를 쳤으면서.미들 스쿨 3년.하이 스쿨 2년.아버지의 해외 발령으로 가족 모두가 LA로 건너갔고, 해온은 거기서 생각보다 많은 걸 배웠다.영어.욕.그리고 사람을 믿지 않는 법.처음부터 끔찍했던 건 아니었다.처음 몇 달은 그냥 불편했다. 말이 빨라서 못 알아듣겠고, 알아들어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수업 시간에 이름이라도 불리면 심장이 먼저 철렁 내려앉았다.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불편한 것과 싫은 것이 구분되지 않기 시작했다.대놓고 무시하는 시선도 익숙해졌고,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 하루 종일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견딜 만했다.뒤에서 수군거리는 것도.혼자 밥을 먹는 것도.이유 없이 밀치고 건드리는 것도.그냥 참았다.처음에는 화도 났다.왜 나한테 이러는데.내가 뭘 했는데.그런 생각을 수십 번씩 했다.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그래서 나중에는 묻는 것도 그만뒀다.몇 년이나 그랬으니 맞는 것조차 새삼스럽지 않았다.오늘은 몇 대일까.어디를 맞으면 덜 아플까.집에 들어가기 전에 멍이 가라앉을까.그런 걸 먼저 생각할 정도였으니까.부모님에게 말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아버지는 늘 바빴고, 엄마는 낯선 나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

학교에서 제일 위험한 애

입학할 학교는 이모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립 고등학교였다.류세라가 다니는 학교이기도 했다.“둘 다 도시락.”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던 해온과 세라 앞으로 이모가 도시락 가방 두 개를 내밀었다.세라가 먼저 하나를 낚아챘다.“내 거 뭐 들었어?”“밥.”“아니, 반찬.”“열어 보면 알지.”“또 김치랑 계란만 넣은 거 아니지?”“싫으면 먹지 마.”“아니, 누가 싫대?”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세라는 도시락 가방을 소중하게 제 가방 안에 밀어 넣었다.해온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뭐.”“아무것도.”“방금 웃었잖아.”“착각이야.”“윤해온, 한국 오더니 성격 더 더러워졌다?”“원래 이랬어.”“그래. 그건 인정.”이모가 두 사람의 등을 차례로 밀었다.“그만 떠들고 얼른 가. 해온이 첫날부터 지각시키면 너도 집 들어올 생각 하지 말고.”“왜 나까지?”“네가 데리고 간다며.”“언제?”“류세라.”“아, 알았어!”세라가 냅다 현관문을 열었다.“가자.”해온도 책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뒤따라 나섰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몇 걸음쯤 걸었을 때 해온이 멈췄다.이상했다.며칠 전 이모가 학교 가는 길이라며 직접 알려준 버스 정류장은 분명 반대편이었다.그런데 세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정반대로 걷고 있었다.“어디 가?”앞서가던 세라가 고개만 돌렸다.“그냥 좀 따라와.”“버스는 저쪽인데.”“알아.”“근데 왜 이쪽으로 가?”“오면 안다니까.”“수상한데.”“뭐가 수상해. 내가 널 팔아먹겠냐?”해온이 세라를 위아래로 훑었다.“가능성 있어 보여.”“야.”세라가 다시 돌아오더니 해온의 교복 소매를 낚아챘다.“잔말 말고 와.”“놔.”“빨리 오든가.”결국 끌려가듯 따라간 곳은 아파트 단지에서 조금 떨어진 길가였다.특별할 것 없는 골목.그런데 전봇대 옆에 꽤 눈에 띄는 물건 하나가 서 있었다.해온이 눈을 가늘게 떴다.검은색 바이크였다.“…….”세라는 아주 자연스럽게 교복 재킷 주머니에서 키홀더를 꺼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

골목에서 주운 남자

윤해온은 비명을 삼켰다.“Ah, fuck!”무언가가 발목을 붙잡았다.순간 온몸이 싸늘하게 식었다. 빠르게 움직이던 발이 그대로 굳었다. 심장은 가슴을 뚫고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것 처럼 뛰었다.해온은 숨을 죽인 채 천천히 아래를 내려다봤다.사람 손이었다.희미한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손이 해온의 발목을 꽉 붙잡고 있었다.“뭐, 뭐야…….!!”본능적으로 발을 빼려던 순간 코끝으로 비릿한 냄새가 스쳤다.피 냄새였다.조금 전까지 무서워 죽을 것 같던 마음이 이상하게 가라앉았다. 해온은 발목을 조심스럽게 빼낸 뒤 쭈그리고 앉았다.“저기요.”대답이 없었다.핸드폰을 꺼내 화면 불빛을 비췄다.골목 벽 아래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교복을 입고 있었다. 해온과 같은 학교 교복이었다.머리카락과 얼굴 주변에는 피가 묻어 있었고 숨도 일정하지 않았다.해온이 급하게 몸을 숙였다.“Hey, you with me?”놀라면 영어부터 튀어나오는 건 아직 고쳐지지 않은 버릇이었다.“저기요. 정신 들어요?”대답이 없었다.해온은 입술을 깨물었다.그냥 두고 갈 수도 없었다.가방에서 깨끗한 천을 꺼내 상처 부위를 조심스럽게 눌렀다. 손끝이 떨렸다.바닥. 숨소리. 피 냄새.기분 나쁘게도 LA에서의 기억이 겹쳐졌다.해온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지금은 그때가 아니야.’휴대폰을 들었다.번호를 누르려다가 멈췄다.“아, 여긴 한국이지.”119를 누르려는 순간이었다.턱. 손목이 잡혔다.해온이 흠칫했다.피에 엉겨붙은 남자가 힘겹게 눈을 뜨고 있었다.“…… 안 돼.”목소리는 거의 숨에 가까웠다.해온이 인상을 찌푸렸다.“뭐라고요?”“…… 안 된다고....”그 말을 끝으로 남자의 눈이 다시 감겼다.해온은 황당해서 한동안 그 얼굴만 내려다봤다.“지금 병원을 안 가게 생겼어요?”대답 없음.“사람이 이 상태인데 병원을 왜 안 가.”역시 대답이 없었다.정상적인 선택은 119를 부르는 것이었다.그런데 마지막까지 손목을 붙잡고 병원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

어제 그 남자

다행히 여분의 교복이 한 벌 더 있었다.덕분에 어젯밤 빨아놓은 교복이 아직 덜 말랐어도 별문제는 없었다.해온은 옷걸이에 걸린 셔츠와 조끼를 바라보다가 절로 인상을 찌푸렸다.어제 이모 몰래 핏물을 빼느라 얼마나 문질렀던지 손바닥이 아직도 따끔거렸다.‘진짜 다음부터는 절대 안 도와줘.’세라가 그렇게 잔소리해댄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았다.길바닥에 누가 쓰러져 있든, 피를 흘리고 있든.다음에는 그냥 신고만 하고 지나가야지.절대로 직접 나서지 말아야지.그렇게 몇 번이나 다짐하며 가방을 어깨에 걸쳤다.그 순간 묵직한 무게가 어깨를 눌렀다.“아…….”해온이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책을 전부 들고 다녀야 하는 건가.미국에서는 이렇게까지 가방이 무겁지 않았던 것 같은데.“해온아! 다 했니?”거실에서 이모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해온은 금세 표정을 풀고 방문을 열었다.거실에서는 류세라가 현관 거울 앞에 붙어 서 있었다.한 손에는 작은 빗이 들려 있었고, 다른 손으로는 앞머리를 이리저리 만지는 중이었다.이모가 그런 세라를 보며 혀를 찼다.“아이고 아이돌 보다 네가 준비 더 오래 걸리겠다.”세라가 거울을 보며 눈을 흘겼다.“엄마. 앞머리 한 번 망하면 하루 종일 기분 잡치는 거 몰라?”“학교 공부하러 가지 머리 보여주러 가니?”“둘 다 하는 거지.”“류세라.”“왜.”이모가 세라의 등을 찰싹 때렸다.“아야!”“얼른 나가. 지각하겠다.”“진짜 엄마는 딸을 너무 막 다뤄.”“말이나 못 하면.”세라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그러면서도 이모가 들고 있던 도시락 가방 두 개는 재빨리 받아 들었다.“내 거 뭐 들었어?”“아침부터 반찬 타령하지 말고 가.”“왜 불안하게 대답을 피해.”“류세라.”“알았어, 알았다고.”세라가 운동화를 신으며 해온 쪽을 돌아봤다.“야, 가자.”해온은 이모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다녀오겠습니다.”“그래. 해온아, 학교 잘 다녀와.”이모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해온도 작게 웃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

토요일 밤의 초대

“겨우 이런 식으로 토요일 밤을 죽이고 있냐?”쾅.방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류세라의 목소리가 방 안을 뒤흔들었다.침대에 엎드려 있던 윤해온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커다란 헤드폰 너머로도 충분히 들릴 정도였다.“나갈 생각 없어.”“웃기지 마.”“진짜 없어.”“오늘 토요일이야.”“알아.”“내일 학교도 안 가.”“그것도 알아.”“근데 왜 처박혀 있는데?”해온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그 꼴을 내려다보던 세라의 표정이 서서히 구겨졌다.오늘따라 평소보다 한껏 꾸민 모습이었다.앞머리는 정성스럽게 손질되어 있었고, 눈매도 평소보다 조금 또렷했다. 귀에는 작은 링 귀걸이가 달랑거렸다.검은색 니트 위에는 짧은 데님 재킷을 걸쳤고, 아래에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체크 스커트를 입었다. 평소 교복 차림만 보다가 사복을 입은 세라를 보니 분위기가 확 달라 보였다.누가 봐도 집에서 뒹굴 생각으로 꾸민 차림은 아니었다.“야.”“…….”“윤해온.”“안 들려.”“헤드폰 끼고 대답하는 애가 안 들리긴 뭐가 안 들려!”세라가 침대로 성큼성큼 다가갔다.해온은 불길함을 느끼고 헤드폰을 더 꾹 눌러썼다.“나 오늘 안 나가.”“나간다.”“싫어.”“나가.”“너 혼자 가.”“혼자 가기 싫으니까 너 데려가는 거잖아.”“그게 내 알 바야?”세라의 눈썹이 꿈틀했다.“너 진짜 한국 오고 싸가지 더 없어졌다?”“원래 이랬어.”“그 대사 좀 그만 우려먹어.”해온은 슬쩍 돌아누웠다.“잘 거야.”그리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그러자 잠깐 조용해졌다.포기했나.해온이 눈을 감으려는 순간이었다.휙.이불이 통째로 벗겨졌다.“야!”“일어나!”“류세라!”“토요일 밤 열한 시도 아니고 이제 겨우 저녁인데 무슨 잠이야!”세라가 해온의 팔목을 붙잡아 억지로 일으켰다.해온은 침대에 반쯤 끌려 앉은 채 인상을 팍 썼다.“나가기 싫다고.”“한 번만 가봐. 재미없으면 바로 데리고 올게.”“그 말을 어떻게 믿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

기억하고 있었네?

하이볼을 두 잔째 비우고 있을 즈음이었다.“어, 류세라?”익숙한 목소리에 세라의 표정이 대번에 굳었다.“아…….”아까까지만 해도 팝콘을 집어 먹으며 기분 좋게 웃고 있던 얼굴이 순식간에 썩었다.해온도 고개를 돌렸다.“누군가 했더니.”권태겸이었다.그리고 그 뒤에는 차이헌이 서 있었다.해온의 손이 멈췄다.학교가 아닌 곳에서 보니까 느낌이 조금 달랐다.태겸은 검은 라이더 재킷을 걸친 채 여전히 사람 좋은 얼굴로 웃고 있었고, 이헌은 그 뒤에 무심하게 서 있었다.얼굴에 남아 있던 상처는 며칠 전보다 많이 옅어져 있었다.하지만 손에는 아직 붕대가 감겨 있었다.해온이 감아줬던 자리였다.“여기서 또 보네?”태겸이 아무렇지 않게 다가왔다.세라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가늘게 떴다.“또 뭐.”“또 뭐라니. 아는 사람 만나서 인사도 못 하냐?”“못 해.”“여전히 까칠하네.”“꺼져.”태겸은 그런 세라의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웃었다.그러다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해온과 눈이 마주쳤다.“전학생이라며? 전학생도 안녕.”해온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태겸이 씩 웃었다.“학교에서는 제대로 인사도 못 했잖아.”“……안녕.”짧은 대답.그걸 들은 세라가 해온 쪽을 돌아봤다.“굳이 인사까지 해줄 필요 없어.”태겸이 황당한 듯 웃었다.“내가 뭐 전염병이냐?”“비슷하지.”“너 아직도 화났냐?”세라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내가 왜 너한테 화나?”“그럼 왜 볼 때마다 찢어 죽일 것처럼 쳐다봐.”“네가 싫으니까.”“와. 상처받네.”“안 받아 보이거든.”둘이 투닥거리는 동안에도 이헌은 한마디가 없었다.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이쪽을 바라볼 뿐이었다.해온은 괜히 신경이 쓰였다.알아본 건가?학교 옥상에서도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래서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줄 알았다.어젯밤 상태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고.세라는 태겸 뒤쪽에 서 있는 이헌을 턱짓으로 가리켰다.“너도 니친구 데리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

눈 떠보니

골이 깨질 것 같았다.“Ah, shit…….”해온은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겨우 몸을 일으켰다.머릿속에서 누가 북이라도 두드리는 것 같았다.쿵. 쿵. 쿵.조금만 움직여도 금방이라도 게워낼것같이 속이 울렁거렸다.“아…… 미치겠네.”어젯밤 분위기에 휩쓸려 자기 상태도 모르고 계속 마신 게 문제였다.해온은 눈을 감은 채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조금 진정된 것 같아 천천히 눈을 떴다.그리고.“……?”눈썹이 찌푸려졌다.낯설었다.벽도.커튼도.눈앞에 놓인 작은 협탁도.분명 자기 방이 아니었다.해온은 잠이 덜 깬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침대 하나.협탁 하나.벽에 걸린 검은색 후드.그게 끝이었다.“여기가 어디야…….”작게 중얼거리며 머리를 짚었다.마지막 기억을 더듬었다.어젯밤.세라한테 끌려 클럽에 갔다.권태겸과 차이헌을 만났다.웬 이상한 애들이 시비를 걸었다.차이헌 손에 풀어진 붕대를 다시 감아줬다.그리고…….“…….”그다음이 없다.해온의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졌다.“설마.”그때였다.사각.침대 반대편에서 무언가 움직였다.해온이 그대로 얼어붙었다.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이불 끝으로 검은 머리카락이 보였다.“……류세라?”대답이 없다.해온은 조심스럽게 이불을 조금 걷었다.그리고.“……!”짧은머리칼.. 차이헌이었다.“뭐야!”놀란 해온이 뒤로 물러나다 침대 헤드에 등을 부딪쳤다.“아!”그 소리에 이헌도 눈을 떴다.잠이 덜 깬 듯 미간을 찌푸리며 상체를 천천히 일으켰다.헝클어진 머리.구겨진 티셔츠.평소 학교에서 보던 무표정한 얼굴보다 훨씬 흐트러져 있었다.해온은 그런 이헌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제 옷부터 확인했다.어젯밤 입고 나갔던 옷 그대로였다.가디건만 벗겨져 침대 옆 의자에 걸려 있었다.그제야 조금 안심이 됐다.“내가 왜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욱.”갑자기 속이 뒤집혔다.해온이 입을 틀어막았다.“잠깐.”이헌의 얼굴이 바로 굳었다.해온이 침대에서 내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

내 옆자리 차이헌

월요일 아침.교실에 들어선 윤해온은 제 자리 앞에서 그대로 멈췄다.“……뭐야.”분명 자기 자리가 맞았다.창가에서 두 번째 줄.책상 옆에는 며칠 전 자기가 붙여놓은 작은 스티커까지 그대로 있었다.문제는.그 옆자리였다.원래 해온의 짝이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 차이헌이 떡하니 엎드려 자고 있었다.해온은 가방을 멘 채 한동안 그 뒷머리를 내려다봤다.잘못 왔나 싶어 교실까지 한번 둘러봤다.아니었다.분명 자기 반이었다.“왜 자리가…….”혼잣말을 하자 엎드려 있던 이헌이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눈이 마주쳤다.“왔네.”“…….”해온이 미간을 좁혔다.“내 짝 어디 갔어?”“저기.”이헌이 턱으로 교실 반대편을 가리켰다.해온의 원래 짝이 저 멀리 권태겸 옆에 앉아 있었다.그 애 역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태겸과 이헌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해온이 다시 이헌을 쳐다봤다.“왜 자리가 바뀌었는데?”“내가 바꿨어.”“왜?”이헌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얼굴로 다시 책상에 팔을 괴었다.“잠자기 좋아 보여서.”“……뭐?”“창가고.”“그래서?”“조용하고.”“그래서 남의 자리를 네 마음대로 바꿨어?”“어.”해온은 할 말을 잃었다.“진짜 제멋대로네.”그러거나 말거나 이헌은 다시 팔에 얼굴을 묻었다.해온은 황당한 얼굴로 그를 보다가 결국 가방을 내려놓았다.“내 짝이 싫다고 하면?”“이미 물어봤어.”“뭐라는데.”“상관없대.”멀리 있던 원래 짝과 눈이 마주쳤다.그 애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진짜 상관없는 모양이었다.“…….”해온은 결국 자리에 앉았다.“아, 그래. 마음대로 해.”“응.”“대답 진짜 얄미워.”대꾸는 없었다.이미 다시 자는 것 같았다.해온은 한심하다는 듯 이헌을 흘겨보다 문제집을 꺼냈다.어제 하루 종일 놀았으니 밀린 문제라도 풀 생각이었다.몇 문제쯤 풀었을 때였다.“공주님~”멀리서 듣기만 해도 짜증 나는 목소리가 날아왔다.해온의 샤프가 멈췄다.모른 척했다.“윤해온 공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8
Read more

아무도 널 건드리지 못하게

“아!!!!!!!!!!!!!!”“엄살 좀 그만 부려.”“야, 윤해온. 네 눈에는 이게 엄살로 보여?”권태겸이 얼굴을 찡그리며 팔을 뒤로 뺐다.해온이 그런 태겸의 팔목을 다시 잡아당겼다.“가만있어.”“아프다고.”“이딴 생채기 가지고 제일 시끄러워.”“생채기?”태겸이 억울하다는 얼굴로 세라를 돌아봤다.“류세라. 너도 봐봐. 얘 지금 사람 팔 떨어져 나가게 생겼는데 생채기래.”세라는 소파 반대편에 앉은 채 코웃음을 쳤다.“엄살 맞아.”“와. 둘이 진짜 가족 맞네.”“닥치고 치료나 받아.”“내 편이 한 명도 없냐?”태겸이 투덜거리면서도 다시 팔을 내밀었다.싸움이 끝난 뒤 네 사람은 곧장 차이헌의 집으로 왔다.정확히는 이헌과 태겸이 이 상태로 각자 집에 돌아가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었다.교복에는 운동장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고 태겸의 팔과 얼굴에는 여기저기 상처가 남아 있었다.이헌은 상대적으로 멀쩡했지만 입술 한쪽이 살짝 터져 있었다.반면 세라와 해온은 옷에 먼지가 조금 묻은 것 말고는 멀쩡했다.그런데도 가장 열받은 사람은 세라였다.“백승모 그 새끼 진짜 미친 거 아니야?”소파에 앉아 있던 세라가 이를 갈았다.“지 애들 잔뜩 데리고 학교까지 찾아와놓고 지는 먼저 빠졌잖아.”태겸이 피식 웃었다.“원래 그런 새끼잖아.”“잡히기만 해봐.”“잡아서 뭐 하게?”태겸이 장난스럽게 물었다.세라가 눈을 희번덕 떴다.“경찰에 넘겨.”태겸이 잠깐 멈췄다가 웃음을 터뜨렸다.“푸하하! 웬일로 합법적이네?”“그럼 내가 뭐 쫓아가서 패기라도 할 줄 알았냐?”“조금?”“뒤질래?”“그 눈빛 보면 가능할 것도 같아서.”해온은 둘의 대화를 무시한 채 태겸의 팔에 깨끗한 거즈를 대고 붕대를 정리했다.“됐어.”“끝?”“응.”태겸이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봤다.“오.”“아프다며.”“갑자기 괜찮아졌어.”“그럼 아까는 엄살 맞네.”“…….”해온이 손을 내밀었다.“다음.”소파 끝에 앉아 있던 이헌이 해온을 바라봤다.“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8
Read more

너 걔 좋아해?

“아이, 씨발. 권태겸 너는 네 바이크 놔두고 왜 자꾸 내 거 타려고 지랄이야?”아침부터 류세라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골목을 울렸다.권태겸은 아무렇지도 않게 세라의 바이크 뒤에 올라앉았다.“안 그래도 마음 아픈 사람한테 자꾸 상처 주지 마라.”“누가 자물쇠도 제대로 안 해놓고 세워두래?”“그날 잠깐이었거든?”“그 잠깐 사이에 없어졌잖아.”“그러니까 더 슬프다고.”태겸이 가슴을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세라의 표정이 더 구겨졌다.“내려.”“싫어.”“권태겸.”“학교 늦어.”“야!”해온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지난밤 이헌의 집에서 자고 바로 학교로 가는 길이었다.다행히 밤새 말려둔 교복도 어느 정도 말라 있었고, 네 사람 모두 씻고 갈아입고 나니 어제 운동장에서 난리를 쳤던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문제는 교통편이었다.“그럼 나는?”해온이 물었다.세라가 태겸을 밀어내려다 말고 돌아봤다.“넌 차이헌 거 타.”“뭐?”“어차피 차이헌 혼자 타잖아.”태겸이 냉큼 맞장구쳤다.“그렇지. 나랑 차이헌이랑 같이 타면 그림이 너무 더러워.”“누가 너랑 같이 탄대.”이헌이 짧게 잘랐다.“봐. 본인도 싫대.”태겸이 능청스럽게 웃었다.세라가 해온을 향해 턱짓했다.“그냥 타. 학교 늦겠다.”“…….”해온은 영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다.어젯밤까지 차이헌 집에서 자놓고 바이크 뒤에 타는 게 뭐 그렇게 다르냐 싶으면서도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게다가 머리도 조금 무거웠다.며칠째 찬바람을 맞아서 그런가.“괜찮겠어?”세라가 물었다.해온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응.”그 순간 머리 위로 헬멧이 푹 씌워졌다.“아.”앞이 잠깐 가려졌다.해온이 헬멧을 바로잡고 고개를 들자 이헌이 해온의 가방까지 받아 자기 앞으로 멨다.“내가 들 수 있는데.”“무겁잖아.”“안 무거워.”“어제 무겁다고 했잖아.”이헌은 대답 대신 바이크 쪽으로 향했다.멀찍이서 둘을 보고 있던 태겸이 입꼬리를 올렸다.“오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8
Read more
PREV
12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