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해온은 LA에서 도망쳐 왔다.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생각했다.“하…… 진짜 별론데.”거울 앞에 선 해온이 교복 치맛자락을 괜히 한 번 잡아당겼다.이모가 넉넉하게 맞춰 온 교복은 분명 새것이었다. 구김 하나 없이 반듯했고, 셔츠 깃도 빳빳했다. 그런데 막상 입고 서 있으니 꼭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교복도 싫고.처음 가는 학교도 싫고.다시 처음부터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것도 싫었다.해온이 미간을 찌푸렸다.“짜증나.”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고 방에 틀어박혀 있고 싶었다.침대에 드러누워 천장이나 보다가, 배고프면 냉장고를 뒤지고, 졸리면 자고. 누구도 말을 걸지 않고 아무도 자기를 쳐다보지 않는 하루.그게 훨씬 나았다.그런데 그것도 웃겼다.그렇게 한국에 오고 싶어서 난리를 쳤으면서.미들 스쿨 3년.하이 스쿨 2년.아버지의 해외 발령으로 가족 모두가 LA로 건너갔고, 해온은 거기서 생각보다 많은 걸 배웠다.영어.욕.그리고 사람을 믿지 않는 법.처음부터 끔찍했던 건 아니었다.처음 몇 달은 그냥 불편했다. 말이 빨라서 못 알아듣겠고, 알아들어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수업 시간에 이름이라도 불리면 심장이 먼저 철렁 내려앉았다.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불편한 것과 싫은 것이 구분되지 않기 시작했다.대놓고 무시하는 시선도 익숙해졌고,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 하루 종일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견딜 만했다.뒤에서 수군거리는 것도.혼자 밥을 먹는 것도.이유 없이 밀치고 건드리는 것도.그냥 참았다.처음에는 화도 났다.왜 나한테 이러는데.내가 뭘 했는데.그런 생각을 수십 번씩 했다.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그래서 나중에는 묻는 것도 그만뒀다.몇 년이나 그랬으니 맞는 것조차 새삼스럽지 않았다.오늘은 몇 대일까.어디를 맞으면 덜 아플까.집에 들어가기 전에 멍이 가라앉을까.그런 걸 먼저 생각할 정도였으니까.부모님에게 말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아버지는 늘 바빴고, 엄마는 낯선 나라
Last Updated : 2026-09-27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