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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Author: 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7 03:47:14

골이 깨질 것 같았다.

“Ah, shit…….”

해온은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겨우 몸을 일으켰다.

머릿속에서 누가 북이라도 두드리는 것 같았다.

쿵. 쿵. 쿵.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이라도 게워낼것같이 속이 울렁거렸다.

“아…… 미치겠네.”

어젯밤 분위기에 휩쓸려 자기 상태도 모르고 계속 마신 게 문제였다.

해온은 눈을 감은 채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조금 진정된 것 같아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

눈썹이 찌푸려졌다.

낯설었다.

벽도.

커튼도.

눈앞에 놓인 작은 협탁도.

분명 자기 방이 아니었다.

해온은 잠이 덜 깬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침대 하나.

협탁 하나.

벽에 걸린 검은색 후드.

그게 끝이었다.

“여기가 어디야…….”

작게 중얼거리며 머리를 짚었다.

마지막 기억을 더듬었다.

어젯밤.

세라한테 끌려 클럽에 갔다.

권태겸과 차이헌을 만났다.

웬 이상한 애들이 시비를 걸었다.

차이헌 손에 풀어진 붕대를 다시 감아줬다.

그리고…….

“…….”

그다음이 없다.

해온의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설마.”

그때였다.

사각.

침대 반대편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해온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불 끝으로 검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류세라?”

대답이 없다.

해온은 조심스럽게 이불을 조금 걷었다.

그리고.

“……!”

짧은머리칼.. 차이헌이었다.

“뭐야!”

놀란 해온이 뒤로 물러나다 침대 헤드에 등을 부딪쳤다.

“아!”

그 소리에 이헌도 눈을 떴다.

잠이 덜 깬 듯 미간을 찌푸리며 상체를 천천히 일으켰다.

헝클어진 머리.

구겨진 티셔츠.

평소 학교에서 보던 무표정한 얼굴보다 훨씬 흐트러져 있었다.

해온은 그런 이헌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제 옷부터 확인했다.

어젯밤 입고 나갔던 옷 그대로였다.

가디건만 벗겨져 침대 옆 의자에 걸려 있었다.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됐다.

“내가 왜 …….”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욱.”

갑자기 속이 뒤집혔다.

해온이 입을 틀어막았다.

“잠깐.”

이헌의 얼굴이 바로 굳었다.

해온이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지만 발을 바닥에 디디는 순간 중심이 휘청했다.

“아…….”

이헌이 재빨리 팔을 잡았다.

“화장실.”

“어디…….”

“저쪽.”

해온은 제대로 걷지도 못한 채 이헌에게 거의 부축받다시피 욕실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자마자 세면대를 붙잡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우욱…….”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뒤에 서 있던 이헌이 잠시 어쩔 줄 모르는 듯하다가 등을 가볍게 두드려줬다.

해온이 손을 휘저었다.

“나가…….”

“괜찮아?”

“안 괜찮아.”

“…….”

“쪽팔리니까 나가.”

하지만 이헌은 나가지 않았다.

대신 욕실 밖으로 잠깐 사라졌다가 생수병과 수건을 들고 돌아왔다.

“이거.”

해온이 고개를 들었다.

“뭔데.”

“물.”

“보여.”

“…….”

“나 눈 있어.”

툴툴거리면서도 받아 들었다.

입을 한번 헹군 뒤 차가운 물로 얼굴까지 씻자 그나마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해온은 욕실 벽에 기대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이헌이 해온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많이 안 좋아?”

“아니 죽을꺼같아.."

목소리까지 축 처졌다.

눈가에는 아까 헛구역질 때문에 눈물이 조금 맺혀 있었다.

이헌이 그런 해온을 잠시 바라봤다.

“좀 누워 있어.”

“내가 왜 네 집에 있는지부터 설명해줘.”

“나중에.”

“지금.”

“일어날 수 있어?”

“대화 회피하지 마.”

“못 일어나잖아.”

“…….”

맞는 말이라 더 짜증났다.

해온이 벽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휘청.

결국 다시 이헌이 팔을 잡았다.

“놔. 걸을 수 있어.”

“지금?”

“……부축만 해”

이헌이 아무 말 없이 해온의 팔을 잡았다.

다시 침실로 돌아오자 이헌은 해온을 침대에 앉힌 뒤 베개를 등 뒤에 받쳐줬다.

“조금 더 자.”

“잠깐.”

해온이 이헌의 옷자락을 잡았다.

이헌이 내려다봤다.

“류세라는?”

“거실.”

“권태겸도?”

“어.”

“여기 다 있다고?”

“어.”

해온은 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렸다.

“아…….”

혼자 차이헌 집에 남아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럼 왜 나는 여기서 자고 있었는데.”

“네가 침대에서 안 내려가려고 해서.”

“내가?”

“어.”

“말도 안 돼.”

“류세라가 데려가려고 했는데 네가 베개 잡고 안 놨는데.”

해온의 표정이 굳었다.

“……거짓말.”

“아닌데.”

“내가 그랬다고?”

“어.”

“뭐라고 하면서?”

이헌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해온이 불안한 눈으로 바라봤다.

“뭐라고 했는데.”

“기억 안 나는 게 나을걸.”

“야.”

이헌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가는 것 같았다.

“차이헌.”

“자.”

“뭐라고 했냐고!”

하지만 이헌은 그대로 방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야!”

문이 닫혔다.

해온은 베개를 붙잡은 채 한동안 문을 노려봤다.

“진짜 재수 없어.”

방금 웃은 건가?

“아니겠지.”

해온은 다시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

해온이 다시 잠에서 깼을 때는 방 안이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아까와 달랐다.

해가 지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몇 시간을 잔 거야…….”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다행히 아침보다 훨씬 나았다.

깨질 것 같던 머리도 둔하게 욱신거리는 정도였고 속도 더는 뒤집힐 것 같지 않았다.

해온은 침대 헤드에 기대 앉아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때.

끼익.

방문이 열렸다.

차이헌이었다.

평범한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교복이 아닐 뿐인데 이상하게 낯설었다.

“일어났네.”

“응.”

“괜찮아?”

해온이 잠시 자기 상태를 확인했다.

“아까보다는.”

“그럼 나와.”

“왜.”

“밥 먹게.”

“밥?”

“애들이 시켰어.”

해온의 배가 그 말에 맞춰 작게 울렸다.

꼬르륵.

“…….”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이헌의 시선이 해온의 배로 내려갔다.

해온이 얼굴을 찌푸렸다.

“못 들은 걸로 해.”

“들었는데.”

“못 들었다고 해.”

“왜.”

“그냥.”

이헌이 문을 조금 더 열었다.

“나와.”

해온은 인상을 쓰면서도 침대에서 내려왔다.

딸린 욕실로 들어가니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칫솔이 하나 놓여 있었다.

해온은 칫솔을 집어 들다가 잠깐 멈췄다.

문밖에 있던 이헌이 말했다.

“새 거야.”

“그건 알아.”

“그럼 써.”

“…….”

진짜 말투 한번 싸가지 없네.

그런데 또 필요한 건 다 챙겨놨다.

해온은 괜히 입술을 삐죽거리며 칫솔 포장을 뜯었다.

세수를 마치고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곧바로 익숙한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해온이 걸음을 멈췄다.

“아.”

여기였다.

며칠 전.

골목에서 쓰러진 이헌을 데리고 와서 상처를 봐줬던 집.

어둠 속에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했던 탓에 아까 침실에서는 몰랐지만 거실을 보는 순간 바로 기억났다.

해온은 낮게 읊조렸다..

“진짜 여기였네.”

거실 한쪽에서는 세라와 태겸이 나란히 앉아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나란히 앉아 욕을 하고 있었다.

“야! 권태겸! 그걸 왜 거기로 가!”

“네가 못하는 걸 왜 나한테 뭐라는거야.”

“내가 너보다 딜량 높거든?”

“그래서 지금 지고 있잖아.”

“이 개새끼가.”

“야 기지배가 말 좀 예쁘게 해.”

“싫어!!!”

해온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봤다.

세라가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봤다.

“어. 일어났어?”

해온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왜.”

“어제 나한테 뭐 먹였어.”

세라의 표정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내가 뭘.”

“기억나거든.”

“뭐가.”

“막판에 자꾸 내 잔 채운 거.”

“아니거든?”

“류세라.”

“…….”

세라가 슬쩍 시선을 피했다.

해온은 소파 쪽으로 다가가 세라의 다리를 툭 찼다.

“아야!”

“나 오늘 죽는 줄 알았어.”

“그러게 적당히 마시지 그랬어”

“네가 줬잖아!”

“먹으라고 준다고 다 먹냐!?”

“네가 계속 괜찮다며!!!”

“쉿.”

세라가 손가락을 입술 앞에 세웠다.

“목소리 낮춰. 나도 지금 머리 울려.”

“쌤통이다.”

맞은편에 있던 태겸이 웃었다.

“까칠한 공주님 일어났네?”

해온이 바로 쏘아붙였다.

“공주님이라고 부르지 마.”

“왜. 잘 어울리는데.”

“싫어.”

“그래, 까칠한 공주님.”

“권태겸.”

“내 이름도 기억해주네?”

“시끄러워.”

태겸이 웃음을 터뜨렸다.

세라는 게임기를 내려놓고 테이블 앞으로 달려갔다.

“일단 먹자. 배고파 죽겠다.”

테이블 위에는 중국 음식 용기들이 한가득 놓여 있었다.

세라가 짬뽕 뚜껑을 여는 순간 매운 냄새가 확 퍼졌다.

해온이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뭐야.”

“짬뽕.”

“빨개.”

“짬뽕이니까.”

“저걸 먹는다고?”

“응.”

“왜?”

세라가 황당한 얼굴로 쳐다봤다.

“왜긴 왜야. 맛있으니까.”

해온도 일단 자리에 앉았다.

세라가 국물 한 숟가락을 떠서 해온 앞으로 내밀었다.

“먹어봐.”

“싫어.”

“속 풀린다니까.”

“안 먹어.”

“한입만.”

“싫다고.”

“진짜 맛있어.”

“색깔부터 위험해.”

“먹어보지도 않고 뭘 알아.”

“안 먹어도 알아.”

세라가 억지로 숟가락을 가까이 가져오자 해온이 상체를 뒤로 확 뺐다.

“매워!”

“아직 먹지도 않았잖아!”

“냄새가 맵다고!”

“유난 떨지 말고 한입만.”

“싫어!”

결국 세라가 끈질기게 권하는 바람에 해온은 못 이기는 척 국물을 아주 조금 맛봤다.

그리고 바로 얼굴이 굳었다.

“…….”

세라가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봤다.

“어때?”

해온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매워.”

“그 정도가?”

“매워!”

“이게 뭐가 맵냐.”

“혀 아파.”

해온이 물컵부터 집어 들었다.

태겸이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매운 거 못 먹나 보네.”

“웃지 마.”

“아니, 표정이 너무”

“죽을래?”

“응. 이제 적응된다.”

해온은 다시 물을 마셨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세라가 이번에는 짜장면 그릇을 해온 앞으로 밀었다.

“그럼 이거 먹어.”

“이건 안 매워?”

“안 매워.”

해온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진짜?”

“진짜라니까.”

태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안 매워.”

그제야 젓가락을 들었다.

그때 욕실 문이 열렸다.

이헌이 나왔다.

태겸이 바로 고개를 돌렸다.

“야, 차이헌. 너도 먹어.”

“됐어.”

“왜.”

“생각 없어.”

해온이 이헌을 바라봤다.

그러다 손에 감긴 붕대가 또 눈에 들어왔다.

어제 자기가 다시 감아준 그대로였다.

이헌은 그런 해온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자기 손을 한번 내려다봤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소파에 앉았다.

해온은 짜장면을 한입 먹다가 문득 물었다.

“근데.”

세 사람이 동시에 해온을 바라봤다.

“어제 어떻게 된 거야?”

세라가 젓가락질을 멈췄다.

“뭐가.”

“내가 왜 여기서 잤냐고.”

태겸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그걸 본 해온의 표정이 굳었다.

“뭐야.”

“아니.”

“웃지 마.”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 얼굴이 말하고 있잖아.”

세라가 피식 웃었다.

“너 어제 진짜 볼만했어.”

“내가 뭘 했는데.”

“기억 안 나?”

“안 나니까 묻잖아.”

“진짜 하나도?”

“응.”

세라와 태겸이 동시에 이헌을 쳐다봤다.

해온도 따라서 이헌을 봤다.

이헌은 무표정했다.

“왜 다 쟤를 봐?”

세라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웃음을 참는 얼굴이었다.

“뭔데!”

해온이 소리를 높이자 세라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아 몰라. 직접 생각해내.”

“류세라!”

“싫어. 말하면 니가 나 죽일 것 같아.”

“지금 말 안 해도 죽이고 싶은데?”

“그럼 더 안 하지.”

“야!”

태겸까지 옆에서 낄낄거렸다.

해온은 이를 갈며 둘을 노려봤다.

그리고 다시 이헌을 쳐다봤다.

“너는 알지?”

“어.”

“말해.”

“싫어.”

해온의 입이 벌어졌다.

“너까지 왜!”

이헌은 입꼬리를 아주 조금 올렸다.

정말 아주 조금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봤다.

웃었다. 차이헌이.

“…….”

해온이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상하게 그 얼굴이 평소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진짜 다 재수 없어.”

해온은 결국 짜장면이나 먹기로 했다.

해가 거의 넘어갈 때쯤 집에서 전화가 왔다.

세라가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얼굴이 굳었다.

“엄마다.”

해온이 바로 말했다.

“받아.”

“잠깐 마음의 준비 좀.”

“빨리 받아.”

세라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전화를 받았다.

“어 엄마!! 나 해온이랑 친구네집에서 ...악!! 지금 가!”

세라가 휴대폰을 귀에서 떨어뜨렸다.

통화를 끝내자마자 가방부터 챙겼다.

“가자.”

“뭐래?”

“당장 들어오래.”

“화났어?”

“존나.”

“왜?”

“어제 외박했잖아.”

“아.”

해온도 그제야 상황을 깨달았다.

“이모한테 뭐라고 했는데?”

“친구 집에서 잔다고 했지.”

“누구 친구.”

“그걸 왜 지금 물어!”

세라는 급하게 재킷을 걸쳤다.

해온도 전날 세라가 골라준 가디건과 숄더백을 챙겼다.

현관으로 향하자 태겸이 소파에서 손을 흔들었다.

“내일 학교에서 보자, 공주님.”

해온이 운동화를 신다가 뒤를 돌아봤다.

“학교에서 아는 척하기만 해봐.”

“왜?”

“귀찮으니까.”

“난 할 건데?”

태겸이 웃었다.

“농담이야.”

세라가 현관문을 열며 소리쳤다.

“넌 진짜 학교에서 우리 아는 척하면 죽는다.”

“왜 둘이 똑같은 말을 해?”

“닥쳐!”

태겸의 웃음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해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밖으로 나갔다.

“잘 가.”

뒤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해온이 발을 멈췄다.

차이헌이었다.

해온은 잠깐 돌아봤다.

“응.”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내일 봐.”

문이 닫혔다.

세라의 바이크 뒤에 올라탄 해온은 익숙하게 헬멧을 눌러썼다.

세라도 앞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야.”

“왜.”

“근데 진짜 어제 나 뭐 했어?”

세라의 어깨가 들썩였다.

“말 안 해.”

“류세라.”

“평생 모르는 게 나을걸?”

“야!”

세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꽉 잡아!”

“잠깐, 말부터 해!”

부우웅―!

바이크가 그대로 앞으로 튀어나갔다.

“류세라아아아!”

해온의 목소리가 밤거리에 길게 퍼졌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화를 내면서도 머릿속 한쪽에는 자꾸만 차이헌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젯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조용히 살겠다는 계획은,

아무래도 벌써부터 꼬이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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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구한 문제아가 나를 살렸다   아무도 널 건드리지 못하게

    “아!!!!!!!!!!!!!!”“엄살 좀 그만 부려.”“야, 윤해온. 네 눈에는 이게 엄살로 보여?”권태겸이 얼굴을 찡그리며 팔을 뒤로 뺐다.해온이 그런 태겸의 팔목을 다시 잡아당겼다.“가만있어.”“아프다고.”“이딴 생채기 가지고 제일 시끄러워.”“생채기?”태겸이 억울하다는 얼굴로 세라를 돌아봤다.“류세라. 너도 봐봐. 얘 지금 사람 팔 떨어져 나가게 생겼는데 생채기래.”세라는 소파 반대편에 앉은 채 코웃음을 쳤다.“엄살 맞아.”“와. 둘이 진짜 가족 맞네.”“닥치고 치료나 받아.”“내 편이 한 명도 없냐?”태겸이 투덜거리면서도 다시 팔을 내밀었다.싸움이 끝난 뒤 네 사람은 곧장 차이헌의 집으로 왔다.정확히는 이헌과 태겸이 이 상태로 각자 집에 돌아가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었다.교복에는 운동장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고 태겸의 팔과 얼굴에는 여기저기 상처가 남아 있었다.이헌은 상대적으로 멀쩡했지만 입술 한쪽이 살짝 터져 있었다.반면 세라와 해온은 옷에 먼지가 조금 묻은 것 말고는 멀쩡했다.그런데도 가장 열받은 사람은 세라였다.“백승모 그 새끼 진짜 미친 거 아니야?”소파에 앉아 있던 세라가 이를 갈았다.“지 애들 잔뜩 데리고 학교까지 찾아와놓고 지는 먼저 빠졌잖아.”태겸이 피식 웃었다.“원래 그런 새끼잖아.”“잡히기만 해봐.”“잡아서 뭐 하게?”태겸이 장난스럽게 물었다.세라가 눈을 희번덕 떴다.“경찰에 넘겨.”태겸이 잠깐 멈췄다가 웃음을 터뜨렸다.“푸하하! 웬일로 합법적이네?”“그럼 내가 뭐 쫓아가서 패기라도 할 줄 알았냐?”“조금?”“뒤질래?”“그 눈빛 보면 가능할 것도 같아서.”해온은 둘의 대화를 무시한 채 태겸의 팔에 깨끗한 거즈를 대고 붕대를 정리했다.“됐어.”“끝?”“응.”태겸이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봤다.“오.”“아프다며.”“갑자기 괜찮아졌어.”“그럼 아까는 엄살 맞네.”“…….”해온이 손을 내밀었다.“다음.”소파 끝에 앉아 있던 이헌이 해온을 바라봤다.“뭘.

  • 내가 구한 문제아가 나를 살렸다   내 옆자리 차이헌

    월요일 아침.교실에 들어선 윤해온은 제 자리 앞에서 그대로 멈췄다.“……뭐야.”분명 자기 자리가 맞았다.창가에서 두 번째 줄.책상 옆에는 며칠 전 자기가 붙여놓은 작은 스티커까지 그대로 있었다.문제는.그 옆자리였다.원래 해온의 짝이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 차이헌이 떡하니 엎드려 자고 있었다.해온은 가방을 멘 채 한동안 그 뒷머리를 내려다봤다.잘못 왔나 싶어 교실까지 한번 둘러봤다.아니었다.분명 자기 반이었다.“왜 자리가…….”혼잣말을 하자 엎드려 있던 이헌이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눈이 마주쳤다.“왔네.”“…….”해온이 미간을 좁혔다.“내 짝 어디 갔어?”“저기.”이헌이 턱으로 교실 반대편을 가리켰다.해온의 원래 짝이 저 멀리 권태겸 옆에 앉아 있었다.그 애 역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태겸과 이헌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해온이 다시 이헌을 쳐다봤다.“왜 자리가 바뀌었는데?”“내가 바꿨어.”“왜?”이헌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얼굴로 다시 책상에 팔을 괴었다.“잠자기 좋아 보여서.”“……뭐?”“창가고.”“그래서?”“조용하고.”“그래서 남의 자리를 네 마음대로 바꿨어?”“어.”해온은 할 말을 잃었다.“진짜 제멋대로네.”그러거나 말거나 이헌은 다시 팔에 얼굴을 묻었다.해온은 황당한 얼굴로 그를 보다가 결국 가방을 내려놓았다.“내 짝이 싫다고 하면?”“이미 물어봤어.”“뭐라는데.”“상관없대.”멀리 있던 원래 짝과 눈이 마주쳤다.그 애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진짜 상관없는 모양이었다.“…….”해온은 결국 자리에 앉았다.“아, 그래. 마음대로 해.”“응.”“대답 진짜 얄미워.”대꾸는 없었다.이미 다시 자는 것 같았다.해온은 한심하다는 듯 이헌을 흘겨보다 문제집을 꺼냈다.어제 하루 종일 놀았으니 밀린 문제라도 풀 생각이었다.몇 문제쯤 풀었을 때였다.“공주님~”멀리서 듣기만 해도 짜증 나는 목소리가 날아왔다.해온의 샤프가 멈췄다.모른 척했다.“윤해온 공주

  • 내가 구한 문제아가 나를 살렸다   눈 떠보니

    골이 깨질 것 같았다.“Ah, shit…….”해온은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겨우 몸을 일으켰다.머릿속에서 누가 북이라도 두드리는 것 같았다.쿵. 쿵. 쿵.조금만 움직여도 금방이라도 게워낼것같이 속이 울렁거렸다.“아…… 미치겠네.”어젯밤 분위기에 휩쓸려 자기 상태도 모르고 계속 마신 게 문제였다.해온은 눈을 감은 채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조금 진정된 것 같아 천천히 눈을 떴다.그리고.“……?”눈썹이 찌푸려졌다.낯설었다.벽도.커튼도.눈앞에 놓인 작은 협탁도.분명 자기 방이 아니었다.해온은 잠이 덜 깬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침대 하나.협탁 하나.벽에 걸린 검은색 후드.그게 끝이었다.“여기가 어디야…….”작게 중얼거리며 머리를 짚었다.마지막 기억을 더듬었다.어젯밤.세라한테 끌려 클럽에 갔다.권태겸과 차이헌을 만났다.웬 이상한 애들이 시비를 걸었다.차이헌 손에 풀어진 붕대를 다시 감아줬다.그리고…….“…….”그다음이 없다.해온의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졌다.“설마.”그때였다.사각.침대 반대편에서 무언가 움직였다.해온이 그대로 얼어붙었다.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이불 끝으로 검은 머리카락이 보였다.“……류세라?”대답이 없다.해온은 조심스럽게 이불을 조금 걷었다.그리고.“……!”짧은머리칼.. 차이헌이었다.“뭐야!”놀란 해온이 뒤로 물러나다 침대 헤드에 등을 부딪쳤다.“아!”그 소리에 이헌도 눈을 떴다.잠이 덜 깬 듯 미간을 찌푸리며 상체를 천천히 일으켰다.헝클어진 머리.구겨진 티셔츠.평소 학교에서 보던 무표정한 얼굴보다 훨씬 흐트러져 있었다.해온은 그런 이헌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제 옷부터 확인했다.어젯밤 입고 나갔던 옷 그대로였다.가디건만 벗겨져 침대 옆 의자에 걸려 있었다.그제야 조금 안심이 됐다.“내가 왜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욱.”갑자기 속이 뒤집혔다.해온이 입을 틀어막았다.“잠깐.”이헌의 얼굴이 바로 굳었다.해온이 침대에서 내려

  • 내가 구한 문제아가 나를 살렸다   기억하고 있었네?

    하이볼을 두 잔째 비우고 있을 즈음이었다.“어, 류세라?”익숙한 목소리에 세라의 표정이 대번에 굳었다.“아…….”아까까지만 해도 팝콘을 집어 먹으며 기분 좋게 웃고 있던 얼굴이 순식간에 썩었다.해온도 고개를 돌렸다.“누군가 했더니.”권태겸이었다.그리고 그 뒤에는 차이헌이 서 있었다.해온의 손이 멈췄다.학교가 아닌 곳에서 보니까 느낌이 조금 달랐다.태겸은 검은 라이더 재킷을 걸친 채 여전히 사람 좋은 얼굴로 웃고 있었고, 이헌은 그 뒤에 무심하게 서 있었다.얼굴에 남아 있던 상처는 며칠 전보다 많이 옅어져 있었다.하지만 손에는 아직 붕대가 감겨 있었다.해온이 감아줬던 자리였다.“여기서 또 보네?”태겸이 아무렇지 않게 다가왔다.세라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가늘게 떴다.“또 뭐.”“또 뭐라니. 아는 사람 만나서 인사도 못 하냐?”“못 해.”“여전히 까칠하네.”“꺼져.”태겸은 그런 세라의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웃었다.그러다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해온과 눈이 마주쳤다.“전학생이라며? 전학생도 안녕.”해온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태겸이 씩 웃었다.“학교에서는 제대로 인사도 못 했잖아.”“……안녕.”짧은 대답.그걸 들은 세라가 해온 쪽을 돌아봤다.“굳이 인사까지 해줄 필요 없어.”태겸이 황당한 듯 웃었다.“내가 뭐 전염병이냐?”“비슷하지.”“너 아직도 화났냐?”세라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내가 왜 너한테 화나?”“그럼 왜 볼 때마다 찢어 죽일 것처럼 쳐다봐.”“네가 싫으니까.”“와. 상처받네.”“안 받아 보이거든.”둘이 투닥거리는 동안에도 이헌은 한마디가 없었다.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이쪽을 바라볼 뿐이었다.해온은 괜히 신경이 쓰였다.알아본 건가?학교 옥상에서도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래서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줄 알았다.어젯밤 상태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고.세라는 태겸 뒤쪽에 서 있는 이헌을 턱짓으로 가리켰다.“너도 니친구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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