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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자리 차이헌

Author: 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8 00:37:48

월요일 아침.

교실에 들어선 윤해온은 제 자리 앞에서 그대로 멈췄다.

“……뭐야.”

분명 자기 자리가 맞았다.

창가에서 두 번째 줄.

책상 옆에는 며칠 전 자기가 붙여놓은 작은 스티커까지 그대로 있었다.

문제는.

그 옆자리였다.

원래 해온의 짝이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 차이헌이 떡하니 엎드려 자고 있었다.

해온은 가방을 멘 채 한동안 그 뒷머리를 내려다봤다.

잘못 왔나 싶어 교실까지 한번 둘러봤다.

아니었다.

분명 자기 반이었다.

“왜 자리가…….”

혼잣말을 하자 엎드려 있던 이헌이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왔네.”

“…….”

해온이 미간을 좁혔다.

“내 짝 어디 갔어?”

“저기.”

이헌이 턱으로 교실 반대편을 가리켰다.

해온의 원래 짝이 저 멀리 권태겸 옆에 앉아 있었다.

그 애 역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태겸과 이헌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해온이 다시 이헌을 쳐다봤다.

“왜 자리가 바뀌었는데?”

“내가 바꿨어.”

“왜?”

이헌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얼굴로 다시 책상에 팔을 괴었다.

“잠자기 좋아 보여서.”

“……뭐?”

“창가고.”

“그래서?”

“조용하고.”

“그래서 남의 자리를 네 마음대로 바꿨어?”

“어.”

해온은 할 말을 잃었다.

“진짜 제멋대로네.”

그러거나 말거나 이헌은 다시 팔에 얼굴을 묻었다.

해온은 황당한 얼굴로 그를 보다가 결국 가방을 내려놓았다.

“내 짝이 싫다고 하면?”

“이미 물어봤어.”

“뭐라는데.”

“상관없대.”

멀리 있던 원래 짝과 눈이 마주쳤다.

그 애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

해온은 결국 자리에 앉았다.

“아, 그래. 마음대로 해.”

“응.”

“대답 진짜 얄미워.”

대꾸는 없었다.

이미 다시 자는 것 같았다.

해온은 한심하다는 듯 이헌을 흘겨보다 문제집을 꺼냈다.

어제 하루 종일 놀았으니 밀린 문제라도 풀 생각이었다.

몇 문제쯤 풀었을 때였다.

“공주님~”

멀리서 듣기만 해도 짜증 나는 목소리가 날아왔다.

해온의 샤프가 멈췄다.

모른 척했다.

“윤해온 공주님.”

“…….”

“공주니임.”

해온이 결국 고개를 들었다.

권태겸이 자기 책상에 걸터앉은 채 웃고 있었다.

“공주님이라고 좀 하지 마.”

“왜.”

“싫으니까.”

“잘 어울리는데.”

“뭐가.”

“성질 더럽고 까칠한 공주.”

해온의 눈이 가늘어졌다.

“칭찬이냐?”

“나름?”

“Fuck off.”

태겸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또 영어.”

“그럼 좀 가.”

“학교에서 아는 척하지 말라며.”

“그래.”

“그래서 아는 척하러 왔지.”

해온은 잠시 태겸을 바라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이 안 통해.”

“세라랑 똑같은 말 하네.”

“류세라 얘기하지 마.”

“왜?”

“걔 이름 들으면 너랑 싸우는 소리까지 자동 재생돼.”

태겸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에 옆에서 자던 이헌이 미간을 찌푸렸다.

“좀 시끄러워.”

태겸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야.”

“왜.”

“날 여기다 버려놓고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냐?”

“뭔 소리야.”

“네가 갑자기 자리 옮겼잖아.”

태겸이 해온을 한번 보고 다시 이헌을 봤다.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아침부터 굳이 여기까지 와서.”

이헌이 눈을 떴다.

“헛소리할 거면 꺼져.”

“왜. 찔려?”

“안 꺼져?”

태겸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 두 개를 입 근처에 갖다 댔다.

“옥상.”

이헌은 무시했다.

“가자.”

“싫어.”

“옥상.”

“안 가.”

“옥상, 옥상, 옥상.”

“권태겸.”

“옥상.”

해온이 문제집을 풀다 말고 둘을 쳐다봤다.

“초딩들이야?”

태겸이 바로 해온을 가리켰다.

“봐. 공주님도 네가 가래.”

“난 그런 말 안 했거든?”

“아무튼 가자.”

태겸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이헌이 귀찮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짜 말 많다.”

“내 매력이야.”

“좆 같은 매력이네.”

두 사람이 교실을 나갔다.

해온은 다시 문제집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용해져서 좋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조심스럽게 해온을 불렀다.

“저기, 윤해온.”

고개를 들자 반장이 서 있었다.

손에는 프린트 세 장이 들려 있었다.

“응?”

“이거 영어 과제인데…….”

반장이 프린트를 한 장씩 보여줬다.

“네 거랑 차이헌, 권태겸 거.”

“근데?”

“둘이 나갔잖아.”

반장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

“혹시 만나면 전해줄 수 있어?”

“응.”

해온은 별 고민 없이 프린트를 받아 들었다.

“고마워.”

반장은 안심한 얼굴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해온은 프린트 세 장을 내려다봤다.

맨 위.

윤해온.

그 아래.

차이헌.

권태겸.

“내가 왜 이것까지 배달해야 돼.”

투덜거리면서도 프린트를 접어 문제집 사이에 끼웠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쉬는 시간.

해온은 결국 옥상으로 올라갔다.

프린트도 전해줄 겸, 세라가 있는지도 볼 생각이었다.

계단 끝에 가까워지기도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씨발, 좀 꺼져!”

류세라였다.

해온이 옥상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왜 자꾸 따라다니는데?”

이어지는 태겸의 목소리.

“뭘 그렇게 튕기냐. 해온이 오기 전에는 나랑도 잘 놀았으면서.”

“내가 언제!”

“옥상에서도 보고, 밖에서도 보고.”

“그건 네가 존나 따라다닌 거잖아!”

“인연이지.”

“악연이다, 새끼야.”

해온이 문을 열었다.

“둘이 또 싸워?”

세라와 태겸이 동시에 돌아봤다.

세라는 난간 근처에 기대 있었고, 태겸은 그 옆에서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이헌이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윤해온.”

세라가 해온을 보자마자 손을 흔들었다.

“쟤 좀 어떻게 해봐.”

“내가 왜.”

태겸이 해온을 보고 반갑게 웃었다.

“공주님도 왔네.”

해온의 표정이 굳었다.

“공주님이라고 하지 말라고.”

“까칠한 공주님.”

“Cut the crap”

“뭐래?”

“욕.”

“그건 알겠다.”

해온은 태겸을 무시하고 주머니에서 프린트를 꺼냈다.

“이거.”

이헌 쪽으로 한 장.

태겸 쪽으로 한 장.

“영어 과제래.”

태겸이 받아 들며 감탄했다.

“이야, 직접 배달까지.”

“반장이 주래서 준 거야.”

“감동인데.”

“버릴까?”

“아닙니다.”

태겸이 얼른 프린트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해온도 자기 프린트를 대충 접어 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난간 근처에 쪼그려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게임이나 하려던 순간이었다.

쾅!

옥상 문이 거칠게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크…… 큰일 났어.”

한 남학생이 숨을 몰아쉬며 서 있었다.

교복 셔츠 어깨 한쪽이 붉게 젖어 있었고 얼굴에도 심하게 맞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세라의 표정이 단숨에 변했다.

“야.”

아까 태겸과 싸우던 장난기까지 싹 사라졌다.

세라가 학생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너 왜 이래?”

“밑에…….”

남학생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백승모가 왔어.”

세라의 얼굴이 굳었다.

“뭐?”

“애들까지 데리고…… 밑에서 우리 애들 잡고 있어.”

태겸의 웃음도 사라졌다.

이헌 역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세라는 바로 옥상 문 쪽으로 가려 했다.

그 순간 해온이 세라의 손목을 잡았다.

“어디 가.”

“내려가야지.”

“네가 내려가서 뭐 하게.”

“애가 저렇게 됐는데 가만히 있어?”

“그래도 네가 싸울 건 아니잖아.”

세라의 입이 닫혔다.

해온은 다친 학생을 바라봤다.

“얘부터 챙겨.”

그 말에 세라가 잠시 멈췄다.

성질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뛰어 내려가고 싶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를 악물고 남학생 쪽으로 돌아섰다.

“씨발…… 알았어.”

세라는 학생의 팔을 자기 어깨에 걸쳤다.

“보건실 갈 수 있어?”

“괜찮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얼굴 봐.”

태겸이 옥상 문을 열었다.

“세라.”

세라가 돌아봤다.

“넌 얘 데리고 보건실 가.”

“권태겸.”

“밑에는 우리가 볼게.”

“근데—”

“네가 끼면 더 복잡해져.”

세라의 눈이 매섭게 변했다.

“말을 꼭 그따위로 해야 돼?”

“지금 싸울 시간 없어.”

잠시 둘이 눈을 맞췄다.

결국 세라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다치기나 해봐.”

태겸이 다시 웃었다.

“걱정하냐?”

“뒤질래?”

“역시 아니구나.”

“권태겸.”

“간다.”

태겸이 먼저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이헌도 따라가려다가 해온 앞에서 잠시 멈췄다.

“넌 여기 있어.”

“왜.”

“내려오지 마.”

“내가 왜 내려가.”

“문 잠그고.”

“…….”

“끝나면 부를게.”

해온은 잠시 이헌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이헌은 그제야 계단을 내려갔다.

세라도 다친 학생을 부축한 채 뒤따랐다.

“윤해온.”

“왜.”

“진짜 내려오지 마.”

“알았다니까.”

세라는 못미더운 얼굴로 한번 쳐다보다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옥상에는 해온 혼자 남았다.

“…….”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끄럽게 떠들던 곳이 갑자기 텅 빈 것 같았다.

해온은 옥상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걸었다.

그리고 난간으로 다가갔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운동장 쪽이 소란스러웠다.

회색 계열 교복을 입은 다른 학교 학생들이 교문 근처에 몰려 있었다.

한빛고 학생들도 그 주변에 모여 있었다.

멀리서 봐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또 싸움이야?”

해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며칠 전 공연장에서 봤던 백승모.

그때도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설마 학교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다.

조금 뒤 태겸과 이헌이 운동장으로 나오는 게 보였다.

세라는 반대편 건물 쪽으로 다친 학생을 데리고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 저게 낫지.’

세라까지 저 사이에 뛰어들었다면 괜히 더 신경 쓰였을 것 같았다.

해온은 난간에 팔을 올렸다.

멀리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백승모로 보이는 남자가 앞쪽으로 나오는 건 보였다.

잠시 서로 말이 오갔다.

그리고.

주변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아…….”

해온이 얼굴을 찌푸렸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움직이자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도 힘들었다.

태겸과 이헌이 상대 학생들과 뒤엉켰다.

주변에 있던 한빛고 학생들도 끼어들었다.

밀치고. 붙잡고. 서로 언성이 높아졌다.

해온은 난간을 꽉 잡았다.

“무슨 고등학생들이 저렇게 싸워.”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살벌했다.

특히 차이헌.

이미 며칠 전 다친 손이 아직 다 낫지도 않았다.

자기가 어제 다시 붕대까지 감아줬는데.

“또 풀리겠네.”

왜 그런 생각이 먼저 드는지 모르겠다.

해온은 혀를 찼다.

‘내가 무슨 상관이야.’

그런데 시선은 계속 이헌을 따라가고 있었다.

잠시 뒤.

운동장 끝에 세라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보건실에 학생을 데려다주고 온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싸움판 안으로 뛰어들지는 않았다.

한참이나 이어질 것 같던 소란은 생각보다 빠르게 잦아들었다.

교문 밖에 있던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하나둘 물러나기 시작했다.

백승모도 끝까지 이쪽을 노려보다가 등을 돌렸다.

운동장에 남아 있던 한빛고 학생들도 천천히 흩어졌다.

해온은 그제야 쪼그려 앉아 있던 다리를 폈다.

“아..”

다제자리에서 발을 몇 번 구르며 혈액이 도는 걸 기다렸다.

그때 아래쪽에서 누군가 위를 올려다봤다.

태겸이었다.

해온과 눈이 마주치자 손으로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내려와도 된다는 뜻이었다.

해온이 난간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내려가도 돼?”

태겸이 이번에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서 있던 세라도 손을 흔들었다.

이헌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해온은 마지막으로 그쪽을 한번 바라봤다.

멀어서 표정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이헌이 한쪽 손목을 내려다보고 있는 건 보였다.

해온의 눈이 가늘어졌다.

“설마.”

어제 다시 감아준 붕대.

또 풀린 거 아니야?

해온은 한숨을 쉬었다.

“진짜 손 좀 아끼라니까.”

잠금장치를 풀고 옥상 문을 열었다.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자물쇠를 다시 걸어놓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층.

두 층.

계단을 내려갈수록 아래쪽의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리고 문득.

해온의 머릿속에 이상한 생각 하나가 스쳤다.

언제부터였지.

차이헌이 다치는 게,

이렇게 신경 쓰이기 시작한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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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일 아침.교실에 들어선 윤해온은 제 자리 앞에서 그대로 멈췄다.“……뭐야.”분명 자기 자리가 맞았다.창가에서 두 번째 줄.책상 옆에는 며칠 전 자기가 붙여놓은 작은 스티커까지 그대로 있었다.문제는.그 옆자리였다.원래 해온의 짝이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 차이헌이 떡하니 엎드려 자고 있었다.해온은 가방을 멘 채 한동안 그 뒷머리를 내려다봤다.잘못 왔나 싶어 교실까지 한번 둘러봤다.아니었다.분명 자기 반이었다.“왜 자리가…….”혼잣말을 하자 엎드려 있던 이헌이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눈이 마주쳤다.“왔네.”“…….”해온이 미간을 좁혔다.“내 짝 어디 갔어?”“저기.”이헌이 턱으로 교실 반대편을 가리켰다.해온의 원래 짝이 저 멀리 권태겸 옆에 앉아 있었다.그 애 역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태겸과 이헌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해온이 다시 이헌을 쳐다봤다.“왜 자리가 바뀌었는데?”“내가 바꿨어.”“왜?”이헌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얼굴로 다시 책상에 팔을 괴었다.“잠자기 좋아 보여서.”“……뭐?”“창가고.”“그래서?”“조용하고.”“그래서 남의 자리를 네 마음대로 바꿨어?”“어.”해온은 할 말을 잃었다.“진짜 제멋대로네.”그러거나 말거나 이헌은 다시 팔에 얼굴을 묻었다.해온은 황당한 얼굴로 그를 보다가 결국 가방을 내려놓았다.“내 짝이 싫다고 하면?”“이미 물어봤어.”“뭐라는데.”“상관없대.”멀리 있던 원래 짝과 눈이 마주쳤다.그 애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진짜 상관없는 모양이었다.“…….”해온은 결국 자리에 앉았다.“아, 그래. 마음대로 해.”“응.”“대답 진짜 얄미워.”대꾸는 없었다.이미 다시 자는 것 같았다.해온은 한심하다는 듯 이헌을 흘겨보다 문제집을 꺼냈다.어제 하루 종일 놀았으니 밀린 문제라도 풀 생각이었다.몇 문제쯤 풀었을 때였다.“공주님~”멀리서 듣기만 해도 짜증 나는 목소리가 날아왔다.해온의 샤프가 멈췄다.모른 척했다.“윤해온 공주

  • 내가 구한 문제아가 나를 살렸다   눈 떠보니

    골이 깨질 것 같았다.“Ah, shit…….”해온은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겨우 몸을 일으켰다.머릿속에서 누가 북이라도 두드리는 것 같았다.쿵. 쿵. 쿵.조금만 움직여도 금방이라도 게워낼것같이 속이 울렁거렸다.“아…… 미치겠네.”어젯밤 분위기에 휩쓸려 자기 상태도 모르고 계속 마신 게 문제였다.해온은 눈을 감은 채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조금 진정된 것 같아 천천히 눈을 떴다.그리고.“……?”눈썹이 찌푸려졌다.낯설었다.벽도.커튼도.눈앞에 놓인 작은 협탁도.분명 자기 방이 아니었다.해온은 잠이 덜 깬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침대 하나.협탁 하나.벽에 걸린 검은색 후드.그게 끝이었다.“여기가 어디야…….”작게 중얼거리며 머리를 짚었다.마지막 기억을 더듬었다.어젯밤.세라한테 끌려 클럽에 갔다.권태겸과 차이헌을 만났다.웬 이상한 애들이 시비를 걸었다.차이헌 손에 풀어진 붕대를 다시 감아줬다.그리고…….“…….”그다음이 없다.해온의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졌다.“설마.”그때였다.사각.침대 반대편에서 무언가 움직였다.해온이 그대로 얼어붙었다.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이불 끝으로 검은 머리카락이 보였다.“……류세라?”대답이 없다.해온은 조심스럽게 이불을 조금 걷었다.그리고.“……!”짧은머리칼.. 차이헌이었다.“뭐야!”놀란 해온이 뒤로 물러나다 침대 헤드에 등을 부딪쳤다.“아!”그 소리에 이헌도 눈을 떴다.잠이 덜 깬 듯 미간을 찌푸리며 상체를 천천히 일으켰다.헝클어진 머리.구겨진 티셔츠.평소 학교에서 보던 무표정한 얼굴보다 훨씬 흐트러져 있었다.해온은 그런 이헌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제 옷부터 확인했다.어젯밤 입고 나갔던 옷 그대로였다.가디건만 벗겨져 침대 옆 의자에 걸려 있었다.그제야 조금 안심이 됐다.“내가 왜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욱.”갑자기 속이 뒤집혔다.해온이 입을 틀어막았다.“잠깐.”이헌의 얼굴이 바로 굳었다.해온이 침대에서 내려

  • 내가 구한 문제아가 나를 살렸다   기억하고 있었네?

    하이볼을 두 잔째 비우고 있을 즈음이었다.“어, 류세라?”익숙한 목소리에 세라의 표정이 대번에 굳었다.“아…….”아까까지만 해도 팝콘을 집어 먹으며 기분 좋게 웃고 있던 얼굴이 순식간에 썩었다.해온도 고개를 돌렸다.“누군가 했더니.”권태겸이었다.그리고 그 뒤에는 차이헌이 서 있었다.해온의 손이 멈췄다.학교가 아닌 곳에서 보니까 느낌이 조금 달랐다.태겸은 검은 라이더 재킷을 걸친 채 여전히 사람 좋은 얼굴로 웃고 있었고, 이헌은 그 뒤에 무심하게 서 있었다.얼굴에 남아 있던 상처는 며칠 전보다 많이 옅어져 있었다.하지만 손에는 아직 붕대가 감겨 있었다.해온이 감아줬던 자리였다.“여기서 또 보네?”태겸이 아무렇지 않게 다가왔다.세라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가늘게 떴다.“또 뭐.”“또 뭐라니. 아는 사람 만나서 인사도 못 하냐?”“못 해.”“여전히 까칠하네.”“꺼져.”태겸은 그런 세라의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웃었다.그러다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해온과 눈이 마주쳤다.“전학생이라며? 전학생도 안녕.”해온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태겸이 씩 웃었다.“학교에서는 제대로 인사도 못 했잖아.”“……안녕.”짧은 대답.그걸 들은 세라가 해온 쪽을 돌아봤다.“굳이 인사까지 해줄 필요 없어.”태겸이 황당한 듯 웃었다.“내가 뭐 전염병이냐?”“비슷하지.”“너 아직도 화났냐?”세라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내가 왜 너한테 화나?”“그럼 왜 볼 때마다 찢어 죽일 것처럼 쳐다봐.”“네가 싫으니까.”“와. 상처받네.”“안 받아 보이거든.”둘이 투닥거리는 동안에도 이헌은 한마디가 없었다.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이쪽을 바라볼 뿐이었다.해온은 괜히 신경이 쓰였다.알아본 건가?학교 옥상에서도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래서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줄 알았다.어젯밤 상태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고.세라는 태겸 뒤쪽에 서 있는 이헌을 턱짓으로 가리켰다.“너도 니친구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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