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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제일 위험한 애

Author: 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7 02:03:04

입학할 학교는 이모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립 고등학교였다.

류세라가 다니는 학교이기도 했다.

“둘 다 도시락.”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던 해온과 세라 앞으로 이모가 도시락 가방 두 개를 내밀었다.

세라가 먼저 하나를 낚아챘다.

“내 거 뭐 들었어?”

“밥.”

“아니, 반찬.”

“열어 보면 알지.”

“또 김치랑 계란만 넣은 거 아니지?”

“싫으면 먹지 마.”

“아니, 누가 싫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세라는 도시락 가방을 소중하게 제 가방 안에 밀어 넣었다.

해온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뭐.”

“아무것도.”

“방금 웃었잖아.”

“착각이야.”

“윤해온, 한국 오더니 성격 더 더러워졌다?”

“원래 이랬어.”

“그래. 그건 인정.”

이모가 두 사람의 등을 차례로 밀었다.

“그만 떠들고 얼른 가. 해온이 첫날부터 지각시키면 너도 집 들어올 생각 하지 말고.”

“왜 나까지?”

“네가 데리고 간다며.”

“언제?”

“류세라.”

“아, 알았어!”

세라가 냅다 현관문을 열었다.

“가자.”

해온도 책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뒤따라 나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몇 걸음쯤 걸었을 때 해온이 멈췄다.

이상했다.

며칠 전 이모가 학교 가는 길이라며 직접 알려준 버스 정류장은 분명 반대편이었다.

그런데 세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정반대로 걷고 있었다.

“어디 가?”

앞서가던 세라가 고개만 돌렸다.

“그냥 좀 따라와.”

“버스는 저쪽인데.”

“알아.”

“근데 왜 이쪽으로 가?”

“오면 안다니까.”

“수상한데.”

“뭐가 수상해. 내가 널 팔아먹겠냐?”

해온이 세라를 위아래로 훑었다.

“가능성 있어 보여.”

“야.”

세라가 다시 돌아오더니 해온의 교복 소매를 낚아챘다.

“잔말 말고 와.”

“놔.”

“빨리 오든가.”

결국 끌려가듯 따라간 곳은 아파트 단지에서 조금 떨어진 길가였다.

특별할 것 없는 골목.

그런데 전봇대 옆에 꽤 눈에 띄는 물건 하나가 서 있었다.

해온이 눈을 가늘게 떴다.

검은색 바이크였다.

“…….”

세라는 아주 자연스럽게 교복 재킷 주머니에서 키홀더를 꺼냈다.

짤랑.

그리고 전봇대에 묶여 있던 체인의 자물쇠를 풀기 시작했다.

해온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Autobicycle?”

세라의 손이 딱 멈췄다.

고개가 천천히 돌아왔다.

“뭐래 또.”

“바이크?”

“그래. 바이크.”

“네 거야?”

“내가 남의 거 훔치고 있겠냐?”

“네가 하니까 그것도 가능해 보여서.”

“윤해온.”

“왜.”

“내가 영어로 혀 꼬아서 씨부리지 말라고 몇 번 말했냐.”

“몇 년 살다 왔는데 바로 고쳐지겠어?”

“한국말 잘하면서 꼭 저런 데서만 영어 써.”

“습관이야.”

“몰라, 몰라.”

세라가 체인을 대충 정리한 뒤 갑자기 해온 쪽으로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근데 너 이거 엄마한테 절대로 말하면 안 돼.”

해온이 바이크를 다시 봤다.

“이모 몰라?”

“알면 내가 지금 살아 있겠냐?”

“불법이야?”

“그런 거 아니거든?”

“그럼 왜 숨겨.”

“울 엄마가 이런 거 극혐하니까.”

세라가 바이크 손잡이를 툭툭 두드렸다.

“걸리면 바이크부터 다 부수고 그다음 나를 부술걸.”

해온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안 타면 되잖아.”

“싫어.”

“…….”

“이게 얼마나 편한데.”

“죽기도 편하겠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세라가 안장 아래에서 헬멧을 꺼내 해온에게 던졌다.

툭.

해온이 반사적으로 받아 들었다.

“뭐.”

“써.”

“싫어.”

“써.”

“나 이거 타본 적 없어.”

“오늘 타보면 되지.”

“안 타.”

“안 죽어.”

“그 말을 네가 하니까 더 불안해.”

“아, 진짜.”

결국 세라가 헬멧을 빼앗아 직접 해온의 머리에 푹 눌러씌웠다.

“야!”

“됐네.”

“머리 다 망가졌거든?”

“학교 가서 빗어.”

“류세라.”

“빨리 타.”

“싫다니까.”

“지각한다.”

그 한마디에 해온이 입을 다물었다.

전학 첫날부터 지각해서 교실에 들어가는 건 더 싫었다.

마지못해 바이크 뒤에 올라탔다.

세라가 앞에 앉으며 슬쩍 뒤를 돌아봤다.

“잘 잡아.”

“뭘.”

“나.”

“싫은데.”

“그럼 떨어지든가.”

우우웅.

시동이 걸렸다.

“간다.”

“잠깐.”

부아앙―!

“What the hell!”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나간 바이크에 해온이 본능적으로 세라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미친년아! 천천히 좀 가!”

“아, 귀 아파!”

“속도 줄이라고!”

“이것도 느린 거야!”

“지랄하지 마!”

세라의 웃음소리가 바람 사이로 흩어졌다.

해온은 이를 악물고 세라의 허리를 더 세게 붙잡았다.

첫 등교부터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아.”

학교에 도착해 반 배정표를 확인하던 세라가 갑자기 얼굴을 구겼다.

“왜.”

“아 오늘 뭐 씐 날인가..?”

“뭔데.”

세라가 종이에 적힌 해온의 이름과 반을 번갈아 보더니 혀를 찼다.

“왜 하필 차이헌네 반이야?”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해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차이헌?”

세라가 고개를 돌렸다.

“너 모르는구나.”

“오늘 처음 왔는데 어떻게 알아.”

“그것도 그러네.”

“누군데.”

세라가 잠깐 대답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곧 알게 될 거야.”

“뭘.”

“몰라도 돼. 최대한 모르고 지내.”

“뭔데 그래.”

“나중에 말해줄게.”

세라는 해온의 등을 한 번 툭 쳤다.

“점심에 데리러 올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애도 아니고.”

“너 길치잖아.”

“누가 그래.”

“어제 편의점 갔다가 반대편 동까지 갔던 사람이.”

“그건 아파트가 다 똑같이 생겨서 그런 거고.”

“그래, 그래.”

세라는 손을 흔들며 자기 반 쪽으로 사라졌다.

혼자 남은 해온이 다시 반 배정표를 올려다봤다.

차이헌.

그 이름이 왜인지 한 번 더 눈에 들어왔다.

그때는 몰랐다.

세라가 왜 그렇게 질색했는지.

한국 학교는 미국과는 정말 너무나도 달랐다.

하루 종일 같은 옷을 입고 다녀야 한다는 것도 답답한데 치마 길이부터 셔츠 단추까지 잔소리를 하는 선생이 있었다.

수업은 빽빽했다. 교칙도 답답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야간 자율 학습이라는 끔찍한 제도가 존재했다.

“열 시?”

아침에 세라에게 처음 들었을 때 해온은 진심으로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응.”

“밤 열 시?”

“응.”

“매일?”

“거의.”

“미쳤네.”

세라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만 으쓱했다.

다행인 점도 있었다.

이곳은 근처에서 꽤 이름 있는 사립학교였고, 외국에서 살다 돌아온 학생도 드물지 않았다.

덕분에 해온이 미국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신기한 동물 취급을 받는 일은 없었다.

그건 마음에 들었다.

해온은 낯가림이 심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람과 가까워지는 게 싫었다.

옆자리 아이가 몇 번 말을 걸었다.

“미국에서 왔다며?”

“응.”

“어디?”

“LA.”

“몇 년 있었어?”

“좀.”

“영어 엄청 잘하겠다.”

“그냥.”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해온이 더 이어갈 생각이 없어 보이자 상대도 금세 포기했다.

오히려 편했다.

수업 중간중간 주변에서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점심시간까지 누구에게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그리고 종이 울리자마자 뒷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윤해온.”

고개를 돌리자 세라가 도시락 가방을 흔들고 있었다.

“밥.”

해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길 왜 와?”

해온은 굳게 닫힌 철문을 바라봤다.

문 한가운데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빨간 글씨로 큼지막하게 쓰인 출입 금지 팻말

아무리 좋게 봐도 들어오라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열쇠를 꺼냈다.

“밥 먹으려고.”

“출입 금지라고 써 있는데.”

“한글 읽을 줄 아네.”

“장난하냐?”

철컥.

자물쇠가 풀렸다.

해온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세라를 봤다.

“너 이거 어디서 났어?”

“비밀.”

“걸리면 어떻게 되는데.”

“정학?”

“…….”

“안 걸리면 돼.”

세라는 태연하게 문을 밀었다.

“들어와.”

옥상에는 바람이 제법 세게 불었다.

세라는 익숙한 자리를 찾아 털썩 주저앉더니 바로 도시락을 열었다.

그리고 3초도 지나지 않아 얼굴이 굳었다.

“씨발.”

“왜.”

세라가 자기 도시락과 해온의 도시락을 번갈아 봤다.

“왜 너한테만 제육볶음이 있어?”

해온도 뚜껑을 열어봤다.

“있네.”

“나는?”

“김치.”

“역시 계모였어, 이 여사.”

“네 엄마잖아.”

“친엄마가 딸한테 이럴 수 있어?”

“이모한테 그대로 말해줄게.”

“야, 가족끼리 왜 그래.”

세라가 잽싸게 해온 도시락에서 제육볶음을 하나를 빼앗아 입에 넣었다.

“야.”

“맛있다.”

“네 거 먹어.”

“우리 사이에 네 거 내 거가 어디 있어.”

“방금 생겼어.”

해온이 도시락을 슬쩍 자기 쪽으로 당겼다.

그러다 아침에 들었던 이름이 생각났다.

“근데.”

“응?”

“차이헌이 누군데?”

세라의 젓가락이 멈췄다.

“걔?”

“아까부터 왜 그렇게 질색해.”

“성격 사이코 새끼니까.”

“그게 끝이야?”

“아니.”

세라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한마디로 존나 싸가지가 없어.”

“그건 알겠고.”

“싸움도 존나 잘해.”

“그래서?”

“그래서가 아니라니까.”

세라가 답답하다는 얼굴로 몸을 앞으로 숙였다.

“선배들도 차이헌은 잘 안 건드려. 두 학년 위도 걔 앞에서는 괜히 시비 안 건다고.”

“왜?”

“주먹 하나는 진짜 미쳤거든.”

“네가 봤어?”

“봤지.”

세라가 눈썹을 찌푸렸다.

“사람 패는 거 보면 정 떨어져.”

“그러면서 너도 잘 싸우잖아.”

“나는 정당방위.”

“누가 믿어.”

“아무튼.”

세라가 다시 말했다.

“성격도 개같아. 자기 거슬리면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간다는 소문도 있고. 선생도 제대로 못 건드려.”

“왜.”

“집안.”

“돈 많아?”

“그 정도가 아니라던데.”

세라가 목소리를 살짝 낮췄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집안이래. 그래서 사고 쳐도 웬만하면 다 묻힌다는 말도 있고.”

해온은 별다른 감흥 없이 밥알만 깨작거렸다.

“나랑 상관없네.”

“그래. 그 자세 그대로 유지해.”

“그럼 권태겸은?”

세라의 얼굴이 대번에 더 구겨졌다.

“아.”

“왜.”

“그 새끼가 더 싫어.”

“뭔데.”

“차이헌 친구.”

“친구인데 왜 걔가 더 싫어?”

“맨날 세상 사람 좋은거마냥 웃고 다니거든.”

해온이 인상을 찌푸렸다.

“웃는 게 죄야?”

“걔는 웃으면서 사람 빡치게 해.”

“좋은 애일 수도 있잖아.”

“절대 아니야.”

세라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세상 사람 좋은 척은 다 하는데 한 번 돌면 아무도 못 말려.”

“차이헌도?”

“걔라면 말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럼 말리면 되잖아.”

“차이헌이 그런 거 신경 쓸 인간으로 보여?”

“얼굴도 모르는데 어떻게 알아.”

“하여튼 둘 다 그냥 피해.”

세라가 젓가락을 해온 쪽으로 겨눴다.

“말 걸어도 대답하지 말고.”

“왜 나한테 말을 걸어.”

“혹시 모르니까.”

“알았어.”

“진짜?”

“응.”

“의외로 말을 잘 듣네.”

“귀찮은 일 싫어.”

그 말에 세라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아.”

그러다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주머니를 뒤졌다.

담배였다.

해온이 눈을 가늘게 떴다.

“끊었다며.”

“공식적으로는.”

“…….”

“이것도 엄마한테 비밀이다.”

“비밀이 몇 개야.”

“살다 보면 늘어.”

세라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다시 피우는 거 알면 진짜 머리털 다 뽑힐 수도 있어.”

“겁나면 끊어.”

“그게 말처럼 되냐.”

라이터 불이 작게 붙었다.

세라는 한 모금 빨더니 길게 연기를 내뱉었다.

“아무튼 차이헌이랑 권태겸.”

“응.”

“둘 다 엮이지 마.”

해온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아무 상관없는 이름들이었다.

“윤해온.”

야간 자율 학습을 앞두고 세라가 해온의 반 앞에 나타났다.

가방까지 메고 있었다.

“왜.”

“나 먼저 가봐야 돼.”

“어디.”

“클럽.”

해온이 눈을 가늘게 떴다.

“너 클럽에서도 일해?”

“대타.”

“이모 알아?”

“미쳤어?”

역시나.

세라는 핸드폰을 확인하다가 다시 해온을 봤다.

“근데 너 혼자 집 찾아갈 수 있겠어?”

“응.”

“진짜?”

“엊그제 너랑도 같은길 왔다 갔잖아.”

“그래도 너 길치잖아.”

“기억한다니까.”

“몇 번 버스 타는지 알아?”

해온이 번호를 말하자 세라가 그제야 조금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핸드폰 잘 받고.”

“I got this. Don't sweat it.”

세라가 즉시 정색했다.

“한국말.”

“내가 알아서 하니까 신경 꺼.”

“아, 진짜 싸가지.”

“갈 거면 가.”

“하여튼 전화하면 받아.”

“알았어.”

“길 모르겠으면 바로 전화하고.”

“알았다니까.”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고.”

해온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내가 초등학생이냐?”

“너 하는 꼴 보면 비슷해.”

“류세라.”

“알았어, 간다.”

세라가 몇 걸음 뛰어가다 다시 돌아섰다.

“윤해온!”

“또 뭐!”

“진짜 전화 받아!”

“가!”

그제야 세라가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다음 내리실 정류장은…….”

학교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탄 해온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 사이를 파고들어 간신히 창가 자리를 잡았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창문에 비친 제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LA에 있을 때부터 한 번씩 찾아오던 두통이었다.

며칠을 병원에 누워 고열에 시달린 채 계속 한국에 가고 싶다고 울었다.

당시에는 정말 죽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몸이 완전히 괜찮아진 건 아니었다.

해온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하아…….”

창문을 아주 조금 열었다.

차가운 밤바람이 틈새로 들어와 머리카락을 흩뜨렸다.

열 오른 머리가 조금 식는 기분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해온은 세라가 알려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큰길 대신 골목을 택했다.

세라와 함께 몇 번 지나갔던 길 같았다.

그런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이상했다.

어두웠다.

처음에는 가로등이 고장 났나 싶었다.

하나.

두 개.

세 개.

골목 안쪽으로 늘어선 가로등이 전부 꺼져 있었다.

“뭐야…….”

해온이 걸음을 늦췄다.

조금 가까이 다가가서야 이유를 알았다.

깨져 있었다.

가로등 유리들이 몽땅 박살 나 있었다.

바닥에는 잘게 부서진 유리 조각이 널려 있었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누군가 일부러 쭉 돌아다니며 부순 것처럼 보였다.

“왜 이래.”

아까까지 별생각 없던 골목이 갑자기 다르게 느껴졌다.

조용했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조차 희미했다.

해온은 무의식적으로 가방 끈을 꽉 쥐었다.

큰길로 갈걸.

괜히 지름길이라고 이쪽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그때였다.

♪♬――.

“아!”

적막을 찢고 핸드폰 벨소리가 터졌다.

놀란 해온이 가슴을 누르며 핸드폰을 꺼냈다.

액정에 떠 있는 이름은 류세라였다.

“진짜 사람 놀라게 하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응, 여보세요.”

― 어디야? 집 가고 있냐?

전화 너머로 음악 소리가 쿵쿵 울렸다.

“응. 거의 다 왔어.”

― 혼자지?

“그럼 누구랑 가.”

― 조심해서 가. 좀 멀어도 큰길로 돌아서 가고.

해온의 시선이 깨진 가로등에 머물렀다.

“응.”

― 우리 동네 은근 양아치들 많아. 골목으로 가지 말고. 알았지?

“알았어.”

― 뭔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 나도 이제 거의 마치니까 집 가서 보자.

“응.”

전화가 끊겼다.

쿵쾅거리던 음악 소리도 함께 사라졌다.

다시 적막.

해온은 화면이 꺼진 핸드폰을 잠시 바라보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괜히 세라 말을 들었어야 했나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돌아 큰길로 나가는 것도 귀찮았다.

집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다.

“금방인데 뭐.”

혼잣말을 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사각.

발밑에서 유리 조각이 밟혔다.

해온은 조금 더 빠르게 걸었다.

하나도 켜져 있지 않은 가로등.

좁은 골목.

낮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길인데 밤이 되니 전혀 다른 곳처럼 보였다.

가방 끈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

해온의 발이 우뚝 멈췄다.

“……!”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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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씨발. 권태겸 너는 네 바이크 놔두고 왜 자꾸 내 거 타려고 지랄이야?”아침부터 류세라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골목을 울렸다.권태겸은 아무렇지도 않게 세라의 바이크 뒤에 올라앉았다.“안 그래도 마음 아픈 사람한테 자꾸 상처 주지 마라.”“누가 자물쇠도 제대로 안 해놓고 세워두래?”“그날 잠깐이었거든?”“그 잠깐 사이에 없어졌잖아.”“그러니까 더 슬프다고.”태겸이 가슴을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세라의 표정이 더 구겨졌다.“내려.”“싫어.”“권태겸.”“학교 늦어.”“야!”해온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지난밤 이헌의 집에서 자고 바로 학교로 가는 길이었다.다행히 밤새 말려둔 교복도 어느 정도 말라 있었고, 네 사람 모두 씻고 갈아입고 나니 어제 운동장에서 난리를 쳤던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문제는 교통편이었다.“그럼 나는?”해온이 물었다.세라가 태겸을 밀어내려다 말고 돌아봤다.“넌 차이헌 거 타.”“뭐?”“어차피 차이헌 혼자 타잖아.”태겸이 냉큼 맞장구쳤다.“그렇지. 나랑 차이헌이랑 같이 타면 그림이 너무 더러워.”“누가 너랑 같이 탄대.”이헌이 짧게 잘랐다.“봐. 본인도 싫대.”태겸이 능청스럽게 웃었다.세라가 해온을 향해 턱짓했다.“그냥 타. 학교 늦겠다.”“…….”해온은 영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다.어젯밤까지 차이헌 집에서 자놓고 바이크 뒤에 타는 게 뭐 그렇게 다르냐 싶으면서도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게다가 머리도 조금 무거웠다.며칠째 찬바람을 맞아서 그런가.“괜찮겠어?”세라가 물었다.해온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응.”그 순간 머리 위로 헬멧이 푹 씌워졌다.“아.”앞이 잠깐 가려졌다.해온이 헬멧을 바로잡고 고개를 들자 이헌이 해온의 가방까지 받아 자기 앞으로 멨다.“내가 들 수 있는데.”“무겁잖아.”“안 무거워.”“어제 무겁다고 했잖아.”이헌은 대답 대신 바이크 쪽으로 향했다.멀찍이서 둘을 보고 있던 태겸이 입꼬리를 올렸다.“오오.

  • 내가 구한 문제아가 나를 살렸다   아무도 널 건드리지 못하게

    “아!!!!!!!!!!!!!!”“엄살 좀 그만 부려.”“야, 윤해온. 네 눈에는 이게 엄살로 보여?”권태겸이 얼굴을 찡그리며 팔을 뒤로 뺐다.해온이 그런 태겸의 팔목을 다시 잡아당겼다.“가만있어.”“아프다고.”“이딴 생채기 가지고 제일 시끄러워.”“생채기?”태겸이 억울하다는 얼굴로 세라를 돌아봤다.“류세라. 너도 봐봐. 얘 지금 사람 팔 떨어져 나가게 생겼는데 생채기래.”세라는 소파 반대편에 앉은 채 코웃음을 쳤다.“엄살 맞아.”“와. 둘이 진짜 가족 맞네.”“닥치고 치료나 받아.”“내 편이 한 명도 없냐?”태겸이 투덜거리면서도 다시 팔을 내밀었다.싸움이 끝난 뒤 네 사람은 곧장 차이헌의 집으로 왔다.정확히는 이헌과 태겸이 이 상태로 각자 집에 돌아가기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었다.교복에는 운동장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고 태겸의 팔과 얼굴에는 여기저기 상처가 남아 있었다.이헌은 상대적으로 멀쩡했지만 입술 한쪽이 살짝 터져 있었다.반면 세라와 해온은 옷에 먼지가 조금 묻은 것 말고는 멀쩡했다.그런데도 가장 열받은 사람은 세라였다.“백승모 그 새끼 진짜 미친 거 아니야?”소파에 앉아 있던 세라가 이를 갈았다.“지 애들 잔뜩 데리고 학교까지 찾아와놓고 지는 먼저 빠졌잖아.”태겸이 피식 웃었다.“원래 그런 새끼잖아.”“잡히기만 해봐.”“잡아서 뭐 하게?”태겸이 장난스럽게 물었다.세라가 눈을 희번덕 떴다.“경찰에 넘겨.”태겸이 잠깐 멈췄다가 웃음을 터뜨렸다.“푸하하! 웬일로 합법적이네?”“그럼 내가 뭐 쫓아가서 패기라도 할 줄 알았냐?”“조금?”“뒤질래?”“그 눈빛 보면 가능할 것도 같아서.”해온은 둘의 대화를 무시한 채 태겸의 팔에 깨끗한 거즈를 대고 붕대를 정리했다.“됐어.”“끝?”“응.”태겸이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봤다.“오.”“아프다며.”“갑자기 괜찮아졌어.”“그럼 아까는 엄살 맞네.”“…….”해온이 손을 내밀었다.“다음.”소파 끝에 앉아 있던 이헌이 해온을 바라봤다.“뭘.

  • 내가 구한 문제아가 나를 살렸다   내 옆자리 차이헌

    월요일 아침.교실에 들어선 윤해온은 제 자리 앞에서 그대로 멈췄다.“……뭐야.”분명 자기 자리가 맞았다.창가에서 두 번째 줄.책상 옆에는 며칠 전 자기가 붙여놓은 작은 스티커까지 그대로 있었다.문제는.그 옆자리였다.원래 해온의 짝이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 차이헌이 떡하니 엎드려 자고 있었다.해온은 가방을 멘 채 한동안 그 뒷머리를 내려다봤다.잘못 왔나 싶어 교실까지 한번 둘러봤다.아니었다.분명 자기 반이었다.“왜 자리가…….”혼잣말을 하자 엎드려 있던 이헌이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눈이 마주쳤다.“왔네.”“…….”해온이 미간을 좁혔다.“내 짝 어디 갔어?”“저기.”이헌이 턱으로 교실 반대편을 가리켰다.해온의 원래 짝이 저 멀리 권태겸 옆에 앉아 있었다.그 애 역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태겸과 이헌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해온이 다시 이헌을 쳐다봤다.“왜 자리가 바뀌었는데?”“내가 바꿨어.”“왜?”이헌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얼굴로 다시 책상에 팔을 괴었다.“잠자기 좋아 보여서.”“……뭐?”“창가고.”“그래서?”“조용하고.”“그래서 남의 자리를 네 마음대로 바꿨어?”“어.”해온은 할 말을 잃었다.“진짜 제멋대로네.”그러거나 말거나 이헌은 다시 팔에 얼굴을 묻었다.해온은 황당한 얼굴로 그를 보다가 결국 가방을 내려놓았다.“내 짝이 싫다고 하면?”“이미 물어봤어.”“뭐라는데.”“상관없대.”멀리 있던 원래 짝과 눈이 마주쳤다.그 애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진짜 상관없는 모양이었다.“…….”해온은 결국 자리에 앉았다.“아, 그래. 마음대로 해.”“응.”“대답 진짜 얄미워.”대꾸는 없었다.이미 다시 자는 것 같았다.해온은 한심하다는 듯 이헌을 흘겨보다 문제집을 꺼냈다.어제 하루 종일 놀았으니 밀린 문제라도 풀 생각이었다.몇 문제쯤 풀었을 때였다.“공주님~”멀리서 듣기만 해도 짜증 나는 목소리가 날아왔다.해온의 샤프가 멈췄다.모른 척했다.“윤해온 공주

  • 내가 구한 문제아가 나를 살렸다   눈 떠보니

    골이 깨질 것 같았다.“Ah, shit…….”해온은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겨우 몸을 일으켰다.머릿속에서 누가 북이라도 두드리는 것 같았다.쿵. 쿵. 쿵.조금만 움직여도 금방이라도 게워낼것같이 속이 울렁거렸다.“아…… 미치겠네.”어젯밤 분위기에 휩쓸려 자기 상태도 모르고 계속 마신 게 문제였다.해온은 눈을 감은 채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조금 진정된 것 같아 천천히 눈을 떴다.그리고.“……?”눈썹이 찌푸려졌다.낯설었다.벽도.커튼도.눈앞에 놓인 작은 협탁도.분명 자기 방이 아니었다.해온은 잠이 덜 깬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침대 하나.협탁 하나.벽에 걸린 검은색 후드.그게 끝이었다.“여기가 어디야…….”작게 중얼거리며 머리를 짚었다.마지막 기억을 더듬었다.어젯밤.세라한테 끌려 클럽에 갔다.권태겸과 차이헌을 만났다.웬 이상한 애들이 시비를 걸었다.차이헌 손에 풀어진 붕대를 다시 감아줬다.그리고…….“…….”그다음이 없다.해온의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졌다.“설마.”그때였다.사각.침대 반대편에서 무언가 움직였다.해온이 그대로 얼어붙었다.천천히 고개를 돌렸다.이불 끝으로 검은 머리카락이 보였다.“……류세라?”대답이 없다.해온은 조심스럽게 이불을 조금 걷었다.그리고.“……!”짧은머리칼.. 차이헌이었다.“뭐야!”놀란 해온이 뒤로 물러나다 침대 헤드에 등을 부딪쳤다.“아!”그 소리에 이헌도 눈을 떴다.잠이 덜 깬 듯 미간을 찌푸리며 상체를 천천히 일으켰다.헝클어진 머리.구겨진 티셔츠.평소 학교에서 보던 무표정한 얼굴보다 훨씬 흐트러져 있었다.해온은 그런 이헌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제 옷부터 확인했다.어젯밤 입고 나갔던 옷 그대로였다.가디건만 벗겨져 침대 옆 의자에 걸려 있었다.그제야 조금 안심이 됐다.“내가 왜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욱.”갑자기 속이 뒤집혔다.해온이 입을 틀어막았다.“잠깐.”이헌의 얼굴이 바로 굳었다.해온이 침대에서 내려

  • 내가 구한 문제아가 나를 살렸다   기억하고 있었네?

    하이볼을 두 잔째 비우고 있을 즈음이었다.“어, 류세라?”익숙한 목소리에 세라의 표정이 대번에 굳었다.“아…….”아까까지만 해도 팝콘을 집어 먹으며 기분 좋게 웃고 있던 얼굴이 순식간에 썩었다.해온도 고개를 돌렸다.“누군가 했더니.”권태겸이었다.그리고 그 뒤에는 차이헌이 서 있었다.해온의 손이 멈췄다.학교가 아닌 곳에서 보니까 느낌이 조금 달랐다.태겸은 검은 라이더 재킷을 걸친 채 여전히 사람 좋은 얼굴로 웃고 있었고, 이헌은 그 뒤에 무심하게 서 있었다.얼굴에 남아 있던 상처는 며칠 전보다 많이 옅어져 있었다.하지만 손에는 아직 붕대가 감겨 있었다.해온이 감아줬던 자리였다.“여기서 또 보네?”태겸이 아무렇지 않게 다가왔다.세라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가늘게 떴다.“또 뭐.”“또 뭐라니. 아는 사람 만나서 인사도 못 하냐?”“못 해.”“여전히 까칠하네.”“꺼져.”태겸은 그런 세라의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웃었다.그러다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해온과 눈이 마주쳤다.“전학생이라며? 전학생도 안녕.”해온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태겸이 씩 웃었다.“학교에서는 제대로 인사도 못 했잖아.”“……안녕.”짧은 대답.그걸 들은 세라가 해온 쪽을 돌아봤다.“굳이 인사까지 해줄 필요 없어.”태겸이 황당한 듯 웃었다.“내가 뭐 전염병이냐?”“비슷하지.”“너 아직도 화났냐?”세라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내가 왜 너한테 화나?”“그럼 왜 볼 때마다 찢어 죽일 것처럼 쳐다봐.”“네가 싫으니까.”“와. 상처받네.”“안 받아 보이거든.”둘이 투닥거리는 동안에도 이헌은 한마디가 없었다.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이쪽을 바라볼 뿐이었다.해온은 괜히 신경이 쓰였다.알아본 건가?학교 옥상에서도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래서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줄 알았다.어젯밤 상태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고.세라는 태겸 뒤쪽에 서 있는 이헌을 턱짓으로 가리켰다.“너도 니친구 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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