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안 합니다. 제가 지시한 약이 아니니까요.”차서우는 사직서 옆에 놓인 경위서를 밀어놓았다. 마지막 줄에는 그녀가 투약을 잘못 지시해 아이가 숨졌다고 적혀 있었다.전화기 너머에서 강시혁이 웃었다.“네 이름으로 끝내주겠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선생님이 집도한 수술이죠. 원본부터 대조해요.”“차 선생. 여기 말고 널 받아줄 병원이 있을 것 같아?”해림대학병원 이사장의 아들. 서우보다 먼저 그 수술실을 나갔던 의사. 그가 남긴 것은 아이의 사망 원인을 확인할 자료가 아니라, 서우 혼자 책임을 지라는 종이였다.서우는 자기 이름이 인쇄된 자리를 펜으로 짚었다.“그건 제가 알아볼게요.”통화를 끊었다. 손이 떨려 전화기를 한 번에 내려놓지 못했다.새벽 2시 14분. 서하공화국 해림대학병원. 퇴근하라는 통보를 받고도 당직실에 남은 건, 자신이 작성한 경과를 다시 읽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화면에는 이미 접근이 제한됐다는 문구가 떠 있었다. 소아심장 수술을 배우고 환자를 보던 자리에서 하루 만에 쫓겨날 참이었다.보름 전 숨진 아이는 다섯 살이었다. 수술 뒤 출혈이 멎지 않았고, 나중에는 뇌출혈까지 확인됐다. 서우가 발견한 것은 투약 시각과 사용량이 맞지 않는 기록이었다. 누구의 잘못으로 아이가 죽었는지 밝히려면 원본이 필요했다.그걸 요구한 다음 날부터 자신이 범인이 됐다.서우는 알고 있는 경과를 봉투에 넣었다. 수술실에서 아이의 입술색이 바뀌던 순간을 다시 떠올렸다. 그때 놓친 것을 밝히려면, 강시혁이 내민 경위서에는 서명할 수 없었다.봉투를 서랍에 넣고 가운을 걸쳤다. 함께 일하는 친구 윤아에게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 물으려던 순간, 당직실 불이 꺼졌다.문밖에서 발소리가 멎었다.“누구세요?”대답 대신 문이 열렸다. 회색 우비를 입은 남자가 출입카드를 주머니에 넣었다. 뒤따라 들어온 사람은 서우의 휴대전화부터 집었다.“내려놔요.”서우가 손을 뻗자 남자의 재킷이 벌어졌다. 안쪽에 권총이 있었다.문을 향해 벌렸던 입이 다물렸다.
Última atualização : 2026-10-23 Ler ma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