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릭스가 벽에서 뽑아낸 검을 틀었다. 날이 발렌의 목덜미를 스치자, 그가 레일라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발렌.”“폐, 폐하……!”발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감히 짐의 정인을 붙들어 몸을 수색하려 했느냐?”“소, 송구하옵니다! 신은 다만 어의실 주변을 배회하는 자를……!”“그것이 네 혓바닥을 놀릴 이유가 된다 생각하느냐?”“살려주시옵소서! 국법에 따라 비상 경계령을 수행 중이었을 뿐입니다!”“짐의 말이 곧 국법이며, 내 정인의 발걸음이 곧 법도다.”칼릭스가 발렌의 이마를 장검 끝으로 지그시 짓눌렀다.“누가 네게 그따위 권한을 주었지? 헤센의 잔당이냐, 아니면 토옥의 황태후냐?”“아니옵니다! 오직 황실의 안위를 위해 충성을 다했을 뿐입니다!”“소매에 손을 대겠다고 했느냐. 다음에는 네 팔이 먼저 잘릴 것이다.”발렌이 이마를 바닥에 댔다. 레일라는 목덜미에서 흐른 피를 보았다. 황제가 자신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지만, 망각초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안도까지 외면할 수는 없었다.“내 정인이 약을 찾으면 어의에게 전해라. 네 판단으로 붙들지 말고.”칼릭스가 레일라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제 품 안으로 거칠게 끌어당겼다.“가자, 레일라. 이런 버러지들과 섞여 있을 곳이 아니다.”“……예, 폐하.”레일라는 숨을 죽인 채 칼릭스의 이끌림에 발걸음을 옮겼다.***깊은 밤, 황제의 침전.무거운 황금문이 닫히자, 칼릭스는 레일라를 침대 위로 조심스레 앉혔다.“손이 얼음장 같구나. 왜 이리 차가운 것이냐?”칼릭스가 레일라의 두 손을 제 손으로 감싸 쥐며 입김을 불어넣었다.“침전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람이 차서 그렇습니다.”“발렌 때문에 아직 놀란 것이냐?”“……폐하.”“왜 짐에게 알리지 않고 홀로 어의실로 향했지?”“그것은…….”“짐의 두통 때문에 탕약을 구하러 갔던 것이 아니더냐?”“……예?”레일라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칼릭스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레일라의 뺨을 쓸어내렸다.“어의
Zuletzt aktualisiert : 2026-11-01 Mehr le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