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약쟁이라니? 변성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이냐?”장공주의 심장도 쿵 하고 내려앉았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궁녀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변성에 약쟁이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변성을 순시하셨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돌아오지 않아 전조의 대신들 모두 발을 동동 구르며 인원을 급파하고 있다 합니다…”장공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정말이라면, 이는 나라가 뒤흔들릴 대형 참사였다.변성은 원래 북연에서 남제로 할양한 성이었고, 민심 또한 남제와 마음을 같이하지 않았다. 그곳 백성과 관료들이 남제 황제를 지켜줄 거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일이었다. 이번 약쟁이 사태는 분명 북연 쪽에서 사전에 꾸민 음모일 터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친 그물에 황제가 걸려들기만을 기다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제 군이 쉽게 입성할 수 있을 리 없었다.장공주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머릿속은 이미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임원표국과 서진의 일은 일단 뒤로 미루자 다짐하였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황제와 황후를 무사히 데려오는 일이었다.“소기야?” 태후가 몇 번이나 그녀를 불렀다.정신을 되찾은 장공주가 고개를 돌렸다. “어마마마,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태후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딸을 바라보았다. “소기야, 변성은 남제와는 딴판인 곳이란다. 백성들도 우리를 싫어한다고 들었다. 너만은 절대 무모한 짓 하지 마라. 알겠느냐?”“황상을 구하겠다는 뜻은 대신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너는 궁에 있는 게 낫다. 괜히 나서서 화를 입지 말고.”장공주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궁을 나섰다.태후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근심에 잠겼다.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계 상궁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태후마마, 공주마마께서는 분별 있으신 분이십니다.”태후는 고개를 저었다. “소기는 평소 말이 험해 보여도 사실 누구보다 황사을 아낀다. 어릴 적부터 황상을 친동생처럼 여기며 돌봤지. 그땐 다른
“장군님, 최근 며칠 사이에 갑작스럽게 수많은 약쟁이들이 출현해, 여러 변성들이 순식간에 함락되었습니다!”척후의 보고에 맹건은 등골이 서늘해졌다.약쟁이 사건은 이미 종결된 줄로만 알았는데, 어떻게 다시 나타날 수 있는가? 설마 동산국이 개입한 것인가?“폐하와 황후 마마의 소식은 들은 바 없느냐?” 맹건은 즉시 척후에게 물었다.“폐하와 황후 마마께서는 현재 약쟁이들의 포위 속에 계십니다. 각 성문이 폐쇄되어,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장막 안에 모인 장수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게 쏟아졌다.“맹 장군, 군을 파견하여 폐하와 황후 마마를 구해야 합니다!”“장군, 폐하께서는 호위들이 지키고 계시니 무사히 탈출하셨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우리는 북방을 수비하는 자들로서, 국경을 사수하는 것이 본분입니다!”“그렇습니다, 장군. 약쟁이들의 확산 속도를 감안하면 머지않아 북방까지 도달할 것입니다. 우선 순찰 병력을 증강하고, 약쟁이를 발견하면 즉시 사살하라 명하셔야 합니다!”척후가 다시 나서서 경고했다.“장군, 이번에 나타난 약쟁이들은 과거와는 다릅니다. 그들에 물리기만 해도 독에 감염되어, 정신을 잃고 미쳐 날뛴다고 합니다.”장수들의 얼굴이 점점 더 굳어졌다.“이건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심각합니다.”“약쟁이 하나만이라도 진영에 침입하면, 그 피해는 가늠할 수 없게 됩니다!”맹건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전 병력에 하달하라. 진영을 철통같이 지키고, 망루를 증설하여 감시를 강화하라. 약쟁이 접근은 절대 허용치 말라!”“명 받들겠습니다, 장군!”이어 맹건은 장수들과 회의를 이어갔다.“대영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하지만 폐하와 황후 마마의 안위 또한 등한시할 수 없다. 모두 의견을 내보아라.”장수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말이 엇갈렸다.“약쟁이들이 도시를 점령한 상황에서 무작정 돌입하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우선 내부 정보를 파악해야 합니다.”“하지만 폐하는 남제의 근간이십니다! 만에 하나라도 폐하께서 경각에 처하신다면,
원탁은 소막의 추궁을 부정하지 않았다.“그렇습니다. 지금 밖을 돌아다니는 약쟁이들은 모두 저희들이 만든 자들입니다.”소막은 서진을 바라보았다. 서진은 공손하게 다시 한 번 예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전부터 전하를 우러러보아 왔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전하를 위해 힘을 바칠 기회를 얻었습니다.”“잠깐, 둘 다 멈추시오.”소막이 서진의 말을 뚝 끊었다.서진은 무의식적으로 원탁을 바라보았다. 모든 판단과 행동이 그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 뚜렷했다.원탁은 태연하게 말했다.“전하, 또 궁금한 점이 있으십니까?”소막의 표정이 어둡게 일그러졌다.“원 선생, 내가 감옥에서 그토록 오래 썩고 있던 동안, 밖에서 줄곧 약쟁이들을 조율하고 있었던 겐가?”원탁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하… 역시 우둔하군. 이 상황에서도 아직 자신이 일찍 구해지지 않았다고 삐져 있다니?’“전하, 제 불찰입니다. 더 일찍 모셔오지 못해 송구합니다.”서진이 즉시 끼어들어, 원탁을 대신해 해명에 나섰다.“전하, 부디 원 공자께 책망을 돌리지 마옵소서. 약쟁이 일은 국가의 대사인 만큼, 공자께서도 처음엔 모든 걸 확신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원 공자께서는 폐하께 누를 끼치지 않으려 홀로 짐을 짊어지고 움직이신 것입니다. 이제 약쟁이의 독이 완전히 완성되었기에, 비로소 전하를 모셔나왔나이다. 부디 저희를 위해 대사를 주관해 주시길 바라는 바입니다.”소막은 잠시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다, 문득 물었다.“약쟁이의 독이라... 그 독은 이미 오래전 해독제가 개발된 것 아닌가?”과거 남제에서 약쟁이 사건이 터졌을 당시, 그 역시 일련의 사건을 낱낱이 보고받고 있었다.서진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전하께서 모르실 수밖에 없지요. 저희가 이번에 만들어낸 건, 완전히 새로운 약쟁이의 독입니다. 예전 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훨씬 더 흉포합니다. 전하께서도 감옥에서 그들을 직접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며칠만 더 지나면, 북부는 전부 저희 손아귀에 들어올 것입니다.”소막의 얼굴
거미줄이라 불리는 저 지하 구조물은 변화무쌍하여, 웬만큼 기관술에 능통하지 않으면 그 정묘한 구조를 이해하기조차 어려웠다.이를테면, 출입구의 개폐 방식이라든지, 내부에 적을 막는 기관진이 설치되어 있는지의 여부 같은 것이다.봉구안 일행이 파낸 ‘거미줄’은 무려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지하 밀실이었다.그녀는 진입 기구는 찾아냈지만, 출구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이곳은 당장의 외부 위협, 즉 약쟁이들을 피하기엔 충분했다.하지만 시급한 과제는 출구를 찾거나, 아니면 다음 구간의 거미줄로 통하는 연결 입구를 찾아내는 것이었다.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것은 기관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일이다.이 밀실의 방어용 기관들은 대부분 잔혹하고 파괴적이며, 잘못 손댔다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터였다.며칠 동안 땅굴을 기어 다니며 이리저리 도망치던 끝에, 드디어 이 밀실을 발견한 소무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감탄을 내뱉었다.“후우, 이제 기어 다닐 필요는 없겠네요. 허리를 쭉 펴고, 사람답게 사는 게 얼마나 좋은지!”소욱이 그를 스윽 훑어보며 말했다.“애초에 너는 땅굴 파는 일엔 손도 안 대지 않았더냐.”소무는 히죽 웃었다.“사형, 제 임무는 사형을 지키는 거잖아요!”그는 그렇게 말하며, 벽 쪽을 탐색 중인 봉구안을 힐끗 바라보았다.그녀는 손에 화절자를 들고 석벽 곳곳을 두드리며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소무는 소욱 옆으로 다가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사형, 사모님은 정말 침착하세요.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는 것 같아요.”소욱의 눈가에 가느다란 웃음이 스쳤다.그도 봉구안을 바라보며 무심한 듯 툭 내뱉었다.“그래도 내가 실종됐을 땐 꽤나 당황하더구나.”그는 은근히 모두가 알아주길 바랐다. 봉구안이 자신을 아끼고, 자신 때문에 평정심을 잃을 정도였다는 것을 말이다.하지만 소무는 그 앞부분에만 꽂혔다.“사형께서 실종된 적이 있어나요?”“콜록콜록…!” 소욱은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 “쓸데없는 소리
완부옥이 갑자기 남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자, 서왕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며칠 전 자신이 돌아가자고 했을 땐, 남강을 버릴 수 없다며 단호히 거절했던 그녀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그녀의 감정이 너무 격해진 탓이었을까. 서왕이 이유를 묻기도 전에, 완부옥의 양수가 터졌다.양수가 터졌다는 건, 곧 출산이 시작된다는 신호였다.완부옥 역시 이렇게 갑작스럽게 일이 터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처음 겪는 상황에 서왕은 순식간에 허둥지둥했다. 그는 곧 완부옥을 안아 들고 방 안으로 뛰어들며 외쳤다.“어서 산파를 불러와라!”마당에 있던 유화를 비롯한 호위들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 ‘드디어, 왕비가 해산하시는구나!’그들은 정신없이 달려가 산파를 불러왔다.산파가 도착하기 전까지 서왕은 방 안에서 완부옥 곁을 지켰다.서왕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미리 숙련된 하녀 몇 명을 준비시켜 두고 있었다. 그들은 즉시 뜨거운 물을 데우고, 가위와 천 등 필요한 물품들을 분주히 챙겼다.완부옥은 배를 부여잡고 극심한 고통에 신음소리를 냈다. 그녀는 서왕의 손을 꽉 잡고, 그 손을 입에 물고 악물었다.서왕은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괜찮아, 곧 산파가 도착할 거야… 괜찮을 거야…”그 말은 마치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주문 같았다.지금 완부옥의 모습은 서왕조차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얼굴은 일그러졌으며, 혈색조차 무섭도록 창백했다.그녀를… 잃고 싶지 않았다.여인이 아이를 낳는 고통은, 그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일 터였다.이미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상태였기에, 완부옥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그때였다. 찰싹!서왕의 뺨에 손바닥이 힘껏 날아들었다.그제야 그는 정신을 차렸다.핏줄이 도드라질 만큼 분노한 완부옥이 그를 향해 외쳤다.“궁으로 가십시오! 그리고 폐하께… 폐하께 말씀드려주세요! 자고가… 남제에 있다고! 사람을 보내 찾으라고요
“내통자가 있다고?!”남강왕은 그 말에 즉각 격한 반응을 보였다.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심성의 실력이 어떤지 남강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고왕까지 포함해서 말이다.내통자가 없었다면, 약쟁이단이 고왕의 존재를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또, 어떻게 고왕과 숙주를 분리하는 방법까지 알아낼 수 있었겠는가?“이 일은 반드시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남강왕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그런 배신자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고왕을 잃는다면 남강의 독장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잠시 후, 완부옥은 궁을 떠났다. 바깥에는 서왕이 기다리고 있었다.서왕의 눈빛에는 깊은 걱정이 담겨 있었다. 곧 출산을 앞둔 그녀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었다.“남제로 돌아가자.” 서왕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고통에 시달렸던 완부옥이었지만, 지금 그녀의 눈빛은 오히려 더욱 단단하고 맑게 빛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 제가 남강을 떠날 수는 없어요. 폐하께서 성문을 닫으라 명하셨으니, 어차피 나갈 수도 없고요.”서왕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남강을 외면하자는 게 아니다. 그저… 우리 아이부터 생각하자는 거지. 날짜를 계산하면 네 출산도 머지않았다. 무사히 아이부터 낳고, 그다음에 다시…”그러나 완부옥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 이 일은 이미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더 늦기 전에 막지 않으면 남강은 물론, 남제까지 위험해질 수 있어요. 아이는… 나중에 또 가질 수 있어요.”그녀의 눈빛엔 흔들림이 없었다.아이는 포기할 수 있었다. 저울의 다른 쪽엔 남강 전체가 걸려 있었으니까.서왕은 그녀의 선택을 이해하면서도, 입으로 직접 ‘아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답답하게 조여왔다.그토록 기다려온 아이였다. 그런데 왜 이토록 고난과 재앙 속에 있어야만 하는가.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자신이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그럴 수밖에 없겠지.”서왕은 조용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