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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작가: 고능비
태윤은 롤스로이스에 올라타면서 분부했다.

“그 새로 산 차 잊지 말고 가져다 놔줘요.”

’그건 아내에게 보여주려고 산 건데....잠깐, 아내의 이름이 뭐였지?’

"참, 내 마누라 이름이 뭔지 알아요?"

"....사모님의 성은 하 씨이고, 이름은 예정이며 올해 스물다섯 살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큰 도련님 잘 기억하셔야겠습니다."

큰 도련님은 기억력이 아주 좋으시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해도 기억하지 못하신다.

특히 여자들은 매일 만나도 큰 도련님은 성이 뭔지도 모르신다.

"음, 기억할게요."

태윤은 무심히 응했다.

경호원은 큰 도련님의 말투로부터 다음에도 큰 도련님은 분명히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태윤은 예정에게 더는 관심을 두지 않고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였다.

관성 호텔은 발렌시아 아파트로부터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발렌시아 아파트 입구에서 내린 태윤은 혼자 평범한 차로 바꿔 타면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비록 신혼인 아내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자신이 산 집은 기억하고 있었다.

태윤은 곧 집 현관에 도착하였는데 왠지 눈에 익은 슬리퍼가 문 앞에 놓여 있었다.

‘이건 내 슬리퍼 아냐? 왜 문밖으로 나와 있는 거지?’

태윤은 눈빛이 차가워졌고 얼굴도 굳어져 버렸다. 태윤은 원래 할머니를 구해준 그 여자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늘 그녀를 칭찬하고 심지어는 그녀와 결혼까지 시키니....

그때 태윤은 바로 예정에게 호감을 잃었다.

태윤은 예정을 가식녀라 여겼다.

결국엔 할머니의 말을 듣고 예정과 결혼하기로 하였지만, 일단은 신분을 숨기고 예정이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고 나서, 그다음 예정과 진정한 부부가 되어 평생을 살지 말아야 할지 생각할 예정이었다.

‘만약 정말 속내가 깊어 사기치는 거라면, 그땐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감히 나 태윤에게 사기를 친다고? 어림도 없어!’

태윤은 열쇠를 꺼내 문을 열려고 하였는데 문이 안에서부터 잠겨있었다.

태윤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이게 누구 집인데?

집에서 살게 하였더니 오히려 집주인을 밖에다 놔둬?’

태윤은 화가 나서 발로 문을 쾅쾅 찼다.

동시에 예정에게 음성 전화도 걸었다.

태윤은 이번에는 예정의 이름을 저장하고 거기에 '마누라'라는 단어까지 추가하였다. 그러지 않으면 혹시 모르고 삭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태윤이 문을 발로 찰 때 예정은 잠에서 깼다.

’한밤중에 누가 문을 두드리고 있는 거야? 사람 좀 자게 하지....’

예정은 잠옷을 걸쳐 입고 짜증을 내면서 현관으로 나왔다.

휴대폰을 방에 두고 나온 예정은 태윤으로부터 걸려 온 음성 전화를 보지 못했다.

"누구세요? 한밤중에 잠도 안 자고 우리 집 문을 두드리고 그래요?"

예정은 화를 내며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예정은 태윤을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다가 비로소 반응을 보였다.

급히 웃는 얼굴로 쑥스러운 표정으로 태윤을 맞이했다.

"아, 태윤 씨...."

태윤은 예정이 음성전화를 받지 않아 지금 분노가 치민 상태였다. 그래서 예정을 상대도 하지 않고 굳은 얼굴로 곧장 집으로 들어갔다.

이게 바로 초고속 결혼의 후유증일 것이다.

예정은 고개를 내밀어 방금 태윤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이웃들을 깨우지는 않았나 확인하였다. 다행히도 깬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 앞에 놓인 슬리퍼를 본 예정은 그걸 주어들고 집안으로 들어가 다시 문을 잠갔다.

"내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늦은 새벽이어서....그때 태윤 씨가 집에 없길래 오늘 밤엔 집에 돌아오지 않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문도 잠갔고요...."

"집에 나 혼자라서 일부러 슬리퍼를 문 앞에 두었어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 집에 남자 신발이 있는 것을 보고 함부로 하지 못할 거예요.”

예정은 예전에 태권도를 배워 보통 양아치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지만 그래도 되도록 나쁜 일들은 면하려 했다.

태윤은 소파에 앉아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으로 예정을 노려보았다.

시월의 밤은 약간 추웠다. 태윤이 자신을 이렇게 노려보자 예정은 마치 겨울에 들어선것 같은 추위를 느꼈다.

"태윤 씨, 정말 미안해요."

예정은 태윤의 슬리퍼를 가져다 발 옆에 놓으면서 이렇게 사과했다.

’먼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하였으면 좋았을 텐데....’

예정은 내심 후회가 들었다.

한참 뒤에야 태윤은 차가운 어투로 말했다.

"날 별로 관여하지 말라고는 했는데, 아무래도 여긴 내 집이고....이렇게 날 문밖에다 둔게 정말 불쾌해."

"태윤씨,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해요! 다음에는 미리 전화해서 물어볼게요, 돌아오지 않으면 그때 다시 문을 잠글게요."

태윤은 잠시 뒤에 이렇게 말했다.

"출장 가게 되면 미리 알려줄게, 안 가면 매일 집으로 올 테니깐 그리 알고 있으면 돼. 난 일이 바빠서 심심한 전화 같은 걸 받을 시간이 별로 없어"

예정은 그의 말에 그저 응하고 답했다.

‘태윤이 뭐라고 하면 뭐인 거지 뭐....아무래도 여긴 태윤의 집이니깐’

'태윤 씨, 야식 드실래요?'

예정은 태윤이 일로 바빠 이제야 돌아왔으니 배가 고프겠다고 생각하며 호의로 물었다.

"난 원래 야식 같은 건 먹지 않아, 살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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