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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작가: 복덩이
강나현이 비닐봉지를 들고 개조된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딱 붙는 요가 바지를 입은 여자를 본 경비원의 표정이 거의 넋이 나갔다.

강나현은 풀어헤친 긴 머리를 흩날리면서 경비원에게 인사를 건넨 후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

미리 반현민의 반을 알아본 그녀는 담임 선생님을 보자마자 웃으며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민이한테 왁스 병 캔디를 주러 왔어요. 듣자 하니 다른 친구들한테 인기가 많다면서요?”

담임 선생님이 강나현을 훑어보며 물었다.

“혹시 현민이한테 왁스 병 캔디를 준 게 당신이에요?”

강나현이 신난 얼굴로 말했다.

“네. 제 친구가 만든 건데 최고급 식용 왁스로...”

“당신이었군요. 당신 때문에 우리 아들이 질식할 뻔한 거 알아요?”

그녀의 뒤에 있던 누군가가 고함을 질렀다. 강나현이 돌아서자마자 찰진 소리와 함께 뺨 한 대를 얻어맞았는데 그 순간 눈앞이 다 캄캄해졌다.

“왜 때려요?”

“당신 때문에 우리 애가 죽을 뻔했다고요.”

남에게 얻어맞고 가만히 있을 강나현이 아니었다. 입가에 묻은 피를 핥더니 몇몇 학부모들에게 달려들어 몸싸움을 벌였다.

...

어린이집 하원 시간, 반우정은 데리러 온 강민아에게 강나현이 얻어맞던 광경을 아주 실감 나게 묘사했다.

강나현이 얻어맞는 걸 보고 반현민이 도와주려 하자 반우정이 반현민의 옷깃을 붙잡고 끌고 갔다고 했다.

얼굴이 퉁퉁 붓고 멍이 든 강나현은 반현민을 데리고 선생님에게 조퇴를 신청했다.

다른 어머니들도 강나현을 알아보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들이 무슨 욕을 하는지 반우정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험한 욕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반우정이 카시트에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익숙한 풍경을 바라봤다.

“엄마, 우리 집에 가는 거예요?”

아이의 반짝이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강민아가 대답했다.

“마지막이야.”

...

“사모님, 아가씨, 드디어 오셨군요.”

오소정은 강민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민아가 집을 나간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저택의 도우미들은 거의 버티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나랑 정이 짐을 정리하러 왔어요.”

오소정이 별생각 없이 말했다.

“강나현 씨가 집에 있어요.”

반우정의 손을 잡고 거실로 들어가자마자 욕설을 퍼붓는 강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런 아줌마들을 상대하고 싶지도 않아. 내가 정말로 마음먹고 싸웠다면 싹 다 뭉개버렸을 텐데. 으악, 아파. 살살 좀 해.”

강나현이 소파에 앉아 있었고 반하준이 면봉으로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반현민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형, 아파요?”

“난 튼튼해서 안 아파. 으악. 하준 씨, 너무 세게 누르지 마.”

강나현이 얼굴을 찡그리더니 반하준의 허벅지를 걷어차려고 발을 들었다. 반하준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만히 있어.”

그녀의 얼굴에 상처가 난 걸 본 반현민은 점점 죄책감이 들었다.

“다 내 잘못이에요. 나 때문에 현이 형이 다쳤어요.”

반현민이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반하준의 눈치를 살폈다.

예전에 강민아가 데었거나 과일을 깎다가 손을 베어 피가 많이 났을 때도 반하준은 걱정한 적이 없었고 직접 붕대로 감아준 적은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강나현이 다치자 바로 소매 단추를 풀고 직접 면봉을 들고 약을 발라주었다.

하여 반하준에게 있어서 강나현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때 강민아와 반우정이 들어왔다.

“흥.”

두 사람을 본 반현민이 화를 내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 말도 섞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강나현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옆에 앉은 반하준에게 바짝 붙었다.

“민아 언니, 드디어 왔구나.”

왠지 모르게 비아냥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반하준은 강민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나현이 옷이 더러워졌어. 드레스룸에 가서 안 입은 옷 몇 벌 가져와.”

그의 눈과 마음속에는 오직 강나현뿐이었다.

강민아는 반하준의 말을 무시하고 반우정의 손을 잡은 채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결혼식에서 그는 평생 강민아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땐 강민아도 그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반현민과 반우정이 태어난 후 그들은 각방을 썼다. 시어머니는 그녀에게 분수를 알아야 한다면서 아이들과 함께 먹고 자며 돌보라고 했다. 아이들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반하준에게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반하준에게 배즙을 가져다주다가 반하준이 이어폰을 낀 채 하는 말을 들었다.

“오래전부터 각방을 썼는데 걔가 코를 고는지 알 리가 있나.”

반하준의 이어폰에서 강나현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강민아는 조용히 배즙을 내려놓고 방을 나섰다.

“나한테 너무 매달려. 걔 가끔 짜증 나지 않아?”

그날 이후 그녀는 오로지 아이들을 키우는 데만 신경을 썼다.

...

강민아의 모습이 2층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강나현이 입을 열었다.

“민아 언니가 기분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은데 아직도 나 때문에 화가 안 풀렸나 봐.”

반하준이 약을 꼼꼼하게 발라주면서 말했다.

“신경 쓰지 마.”

그는 강민아가 반우정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면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돌아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강나현이 간 후에 또 비굴한 태도로 그에게 잘 보이려고 애쓸 것이다.

반현민이 옆에서 얼굴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다 정이 때문이에요. 정이가 날 말리지만 않았어도 현이 형을 지켜줬을 텐데.”

강나현이 반현민을 품에 안았다.

“우리 민이 아직 어리지만 내 눈에는 너도 네 아빠만큼 아주 멋진 남자야.”

반하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말에 반현민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반하준을 숭배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잠시 후 강민아와 반우정이 내려왔다. 강민아가 28인치 캐리어를 들고 있었고 반우정이 돕겠다고 캐리어 뒷바퀴를 들었다.

반우정이 타고난 힘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강민아는 자기 체중 이상의 물건을 들지 못하게 했다.

반우정이 어깨에 작은 책가방을 메고 있었고 다른 손에 곰돌이 인형을 안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강나현이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언니, 그 큰 캐리어를 들고 어디 가게?”

반하준의 시선이 캐리어에 향했다. 깊은 두 눈이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이건 또 무슨 수작이야?”

강민아가 숨을 헐떡이며 캐리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힘겹게 손에 낀 결혼반지를 빼내 반하준의 앞에 놓인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그의 가늘고 긴 손가락을 힐끗 보았다. 결혼 7년 동안 결혼반지를 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동안 강민아는 체중이 늘어 약지에 회복하기 어려운 흔적이 생기고 말았다.

반하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았고 뱉어내는 숨결마저 차갑기 그지없었다.

“강민아. 그만해, 이제.”

‘친정에 가질 않나, 반지를 빼질 않나. 유치해서 원.’

강민아의 시선이 반하준의 손목에 닿더니 이내 강나현의 손목을 힐끗거리다가 피식 웃었다.

“둘이 커플 시계까지 했네?”

반하준도 그제야 강나현의 손목을 쳐다봤다. 강나현이 그의 것과 똑같은 디자인의 여성용 시계를 차고 있었다.

“언니, 커플 시계이긴 하지만 우리한테는 의미가 달라. 이건 우정 시계야.”

강나현이 억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준 씨랑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사이인데 같은 시계 좀 차면 어때서?”

“아, 맞다.”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지 운동 가방에서 네모난 케이스를 꺼냈다.

“언니가 삐진 거 알고 하준 씨가 언니 선물을 고르라고 특별히 부탁했어. 언니, 선물 받고 생일 파티 때 일은 다 잊어버려.”

강나현이 케이스를 열어 강민아에게 보여줬다. 안에 품질이 별로인 네잎클로버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해맑은 표정을 짓더니 목에 걸고 있던 똑같은 목걸이를 일부러 보여줬다. 물론 그녀의 목걸이는 비싸고 정교한 진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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