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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작가: 수박빙수
오늘은 윤하경의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되는 날이었다.

3년 전부터 윤수철은 이날을 완전히 잊어버렸지만 주미나는 매년 이날을 기억하며 윤하경과 함께 산소를 찾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올해는 윤하경 자신조차도 그날을 잊고 있었다.

윤하경은 전화를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머릿속에는 엄마가 세상을 떠나던 마지막 순간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하경아, 오늘 오후에 같이 네 엄마 산소에 가자.”

주미나는 부드럽게 말했고 윤하경은 한참 고민하다가 마침내 대답했다.

“네, 어머님. 같이 가요.”

결국, 그녀는 주미나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시계를 보니 아직 아침 8시였다. 그녀는 이른 시간이지만 회사를 들러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어섰다.

회사의 상황은 최근 들어 그리 좋지 않았지만 온지우가 어제 자신이 지나쳤다는 걸 깨달았는지, 그의 집안에서 맡고 있던 사업 일부를 윤하경의 회사에 넘겼다.

온지우는 농담 반, 사과 반으로 메시지를 남겼다.

[하경아, 어제 일은 내가 잘못했어. 구지호가 울면서 부탁하길래 도와준 거야. 이번 건 내가 우리 아버지의 파트너들한테서 어렵게 따낸 거야. 나중에 내가 회사를 맡게 되면 광고나 기획은 전부 너한테 맡길게.]

메시지에 계약서 링크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우리 회사 직원이 곧 너희와 협의하러 갈 거야. 걱정 말고 편히 있어.]

윤하경은 메시지를 읽으며 약간 고개를 젖혔다. 온지우에게 화를 내는 것도 어쩐지 의미 없게 느껴져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온지우와 윤하경은 어릴 적부터 가까운 사이였다. 두 사람은 중학교 때부터 같은 학교를 다녔고 그녀가 구지호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온지우가 두 사람을 다시 이어보려는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윤하경은 사랑할 땐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만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온지우 역시 그녀의 성격을 잘 알았기에 오늘 이렇게 직접 사과하며 사업을 제안했을 것이다.

온지우가 준 사업은 당장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작은 힘이 되었지만 회사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임대료와 대출 상환일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고 윤하경은 손끝으로 콧등을 문지르더니 프로젝트를 성사하겠다고 결심하며 강현우와의 대화창을 열었다.

사실 그녀는 강현우의 연락처를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전날 밤의 메시지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고 화면에는 그녀가 보낸 마지막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어디 계세요?]

그 아래에는 강현우가 보낸 물음표와 함께 자신의 위치를 공유한 메시지가 있었고 이후로는 아무런 대화도 이어지지 않았다.

메시지를 보며 잠시 고민하던 윤하경은 천천히 문장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강 대표님, 혹시 시간 되시면 프로젝트 관련해 다시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제가 식사라도 대접하겠습니다.]

하지만 강현우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업무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냈고 오후가 될 때까지도 그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윤하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미나를 모시러 구지호의 집으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 구지호가 밤을 새운 듯 충혈된 눈으로 멍하니 거실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윤하경이 문을 들어서자 주미나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구지호를 불렀다.

“지호야, 하경이 왔어. 빨리 와서 사과해.”

구지호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하경아, 미안해. 나랑 윤하연은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앞으로 다시는 윤하연과 연락하지 않을게.”

윤하경은 그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주미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님, 이제 출발해요.”

그녀는 구지호의 사과를 철저히 무시했다. 주미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구지호를 보고 눈짓으로 문을 열어 주라고 하자 구지호는 얼른 차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오늘은 내가 운전할게. 하경아, 내가 오늘은 너를 위한 운전기사가 돼 줄게.”

윤하경은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주미나와 함께 차 뒷좌석에 올랐다.

윤하경 엄마의 산소는 도시 서쪽의 산자락에 있었다. 굽이굽이 이어진 길을 지나며 윤하경은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주미나는 가끔 말을 건네며 구지호의 장점을 이야기했지만 그녀는 별다른 반응 없이 간단히 대꾸하며 넘어갔다.

산소에 도착하자 윤하경은 주미나와 함께 앞에서 걷고 구지호는 묵묵히 뒤를 따랐다.

비가 내린 뒤라 길이 약간 미끄러웠다.

엄마의 사진이 새겨진 비석 앞에 선 윤하경은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윤하경은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환하게 웃으며 그녀와 이야기하던 엄마가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는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엄마가 마지막 순간 보였던 모습이 떠오르자, 윤하경의 눈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준비해 온 카네이션을 엄마의 산소 앞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리고 참았던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수아야, 벌써 네가 떠난 지 5년이 되었구나. 하경이는 정말 잘 자라고 있어. 아주 말도 잘 듣고 너처럼 예쁘게 컸어.”

윤하경의 엄마 이름은 신수아였다. 주미나는 가져온 공물을 신수아의 산소 앞에 정성껏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제 하경이는 우리 지호가 잘 보살필 거야. 만약 지호가 하경이를 조금이라도 힘들게 하면 내가 당장 그 녀석을 집에서 쫓아낼 거니까 안심해.”

구지호도 비석 앞으로 다가가 덧붙였다.

“어머니, 제가 하경이를 잘 보살피겠습니다. 믿어주세요.”

윤하경은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더 이상 구지호와의 관계를 이어갈 마음은 없었지만 엄마의 산소 앞에서 이를 말로 꺼내고 싶지도 않았다.

산소에서 내려오는 길에 윤하경의 휴대폰이 울렸다. 강현우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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