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6화

Author: 수박빙수
소지연은 가볍게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뭐 어때? 안 되면 말지. 우리한테 고객이 그 사람 하나뿐이 아니잖아. 천천히 하면 돼.”

윤하경은 한숨을 내쉬며 뒷좌석에 몸을 깊숙이 기대었다. 겉으로는 언제나 강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가끔 모든 게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이후, 그녀는 자신을 철옹성처럼 단단히 감싸며 살아왔다. 조금이라도 약해 보이면 누군가 틈을 타 자신을 짓밟아 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전투태세를 갖춘 닭처럼,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고 평소라면 윤수철은 벌써 잠들어 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 윤수철은 소파에 단정히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윤하경은 그를 못 본 척 지나치려 했지만 그의 목소리가 발걸음을 붙잡았다.

“어디 갔다 온 거야? 왜 이렇게 늦었어?”

윤하경은 돌아서며 쏘아붙였다.

“갑자기 왜 저한테 관심을 가지세요?”

엄마가 살아있던 시절, 윤수철은 괜찮은 아버지였지만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계모와 윤하연이 이 집에 들어오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부녀 관계는 하루가 다르게 악화하였고 지금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윤수철은 잠시 말문이 막힌 듯했지만 평소와 달리 화를 내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

“하경아, 여기 앉아봐. 할 얘기가 있어.”

그의 부드러운 말투는 오랜만이라 더 의심스러웠지만 무슨 말을 꺼낼지 궁금해 얌전히 소파에 앉았다.

윤수철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본론을 꺼냈다.

“하경아, 우리 가문이 여기까지 오는데 쉽지 않았어. 그런데 말이다... 네 엄마가 남긴 물건 좀 나한테 줄 수 없겠니?”

그 말에 윤하경의 얼굴이 단단히 굳어졌다.

“그건 절대 안 돼요.”

그녀는 단호하게 외쳤다.

“그건 엄마가 저에게 남긴 유일한 유산이에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드릴 수 없어요!”

엄마가 남긴 건 열쇠 하나였다. 하지만 그 열쇠는 그녀가 스물네 살이 되기 전까지 열지 말라는 유언과 함께, 엄마의 가장 소중한 물건을 보관한 상자의 열쇠였고 윤하경은 이제 스물세 살이었다.

윤수철이 열쇠를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녀는 분노했다. 윤수철은 윤하경이 미성년자였던 시절, 법적 후견인으로서 문서와 재산을 쥐고 있었고 이제 와서 그 열쇠를 요구하는 속내가 너무나 뻔히 보였다.

“안 된다고 했으니 그만하세요.”

그녀의 단호한 태도에 윤수철의 표정이 굳어졌고 잠시 침묵하던 그는 다른 제안을 꺼냈다.

“그럼 구지호와 빨리 결혼해. 두 집안의 관계를 확실하게 만들어. 그럼 이 얘기는 없던 걸로 할게.”

그 말에 윤하경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아빠, 지금 제정신이세요? 구지호가 윤하연이랑 무슨 짓을 했는지 뻔히 알면서 저보고 그 사람과 결혼하라고요? 아빠는 세상 모든 사람이 아빠처럼 남이 버린 걸 주워 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짝!

윤수철은 윤하경의 뺨을 때렸고 고요한 공간에 울림은 더 크게 퍼졌다.

윤하경은 뺨의 뜨거운 통증을 느끼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눈물이 차올랐지만 절대 울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높이 들었다.

그 순간, 병원에서 윤하연을 돌보던 계모 임수연이 집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속으로 기뻐하며 겉으로는 놀란 척 말했다.

“여보, 왜 그래요? 무슨 일이든 대화로 해결해야죠. 애를 때리다니요!”

윤수철은 순간 후회하는 듯 보였지만 여전히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네 아빠야.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윤하경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대답했다.

“아빠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차라리 거지를 아빠로 두는 게 더 나았을 거예요.”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다행히 2년 전, 윤하연에게 방을 빼앗긴 후 자신만의 집을 마련해 두었다.

리모델링한 작고 아늑한 집이었지만 윤하경 혼자 살기에는 충분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얼음찜질로 부은 뺨을 진정시키고 침대에 누웠다.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고는 직원들을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 윤하경은 소지연에게 내일 회사에 조금 늦게 가겠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겨우 잠들었다.

하지만 아침 일찍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깼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구지호의 엄마, 주미나였다. 주미나는 윤하경의 엄마와 절친한 친구 사이였고 윤하경과 구지호가 가까워진 것도 두 어머니의 관계 덕분이었다.

어릴 적부터 두 사람은 늘 함께 어울렸고 남들 보기에도 사이가 각별했다. 심지어 윤하경은 주미나를 자신의 어머니처럼 모시기까지 했다. 엄마를 제외하고 그녀에게 이렇게 따뜻하게 대해준 어른은 주미나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구지호가 아무리 엉망진창인 짓을 했어도, 주미나의 전화를 받지 않는 건 윤하경으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윤하경은 망설이다가 끊기기 직전에 받았다.

“여보세요, 어머님.”

항상 “엄마”라고 부르던 주미나를 처음으로 “어머님”이라고 부르자, 주미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경아, 지호랑 하연이가 한 짓은 정말 잘못됐어. 우리도 다 알고 있어. 너무 화내지 마. 지호가 하연이랑은 별일 없었다고 하던데 그냥 넘어가 주면 안 되겠어? 오늘은 중요한 날이잖아. 이런 일로 기분 상하지 말고 난 네가 우리 며느리로 남아줬으면 좋겠어.”

주미나의 말을 듣고서야 윤하경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생각났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839화

    “이리 와.”강현우의 목소리는 담담했다.윤하경은 걸음을 멈추고 잠시 하석호를 바라보다가 결국 강현우 옆에 조용히 앉았다.그러자 하석호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고 그도 곧 강현우와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강 대표님...”“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강현우가 먼저 말을 끊었다. 그는 원래부터 거침없는 스타일이라, 온화한 하석호와 나란히 앉아 있으니 두 사람의 분위기 차이가 확연했다.강현우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하석호를 무심히 쳐다봤다.“하 대표님이 원하는 일, 내가 못 해줄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비즈니스라는 게, 손해 보면서 할 이유는 없겠죠. 내가 물러나길 바란다면 나를 만족시킬 만한 조건을 내놔야 하는 거 아닌가요?”강현우의 목소리는 느긋하지만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묵직한 힘이 실려 있었다.하석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어느새 완전히 비즈니스 모드로 돌입했다.“강 대표님께서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손해를 끼칠 생각 없습니다. 다만 지금은 두 회사가 경쟁 관계니까, 굳이 맞붙기보단 협력하는 게 서로에게 더 이익 아닙니까? 결국 경쟁은 누군가 반드시 지게 마련이지만 그게 저일 수도 있고...”하석호가 미소를 머금은 채, 강현우를 바라보며 술잔을 채워 내밀었다.“혹은 강 대표님일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가 손을 잡는다면 얘기가 달라지죠. 그땐 우리 둘 다 이기는 겁니다.”하석호의 눈빛은 확신으로 가득했다. 강현우는 그 말을 듣고 날카로운 입꼬리를 살짝 올렸고 한층 더 여유로운 표정으로 대꾸했다.“하 대표님이 착각하신 것 같은데요. 제가 한 번 싸운다고 하면 질 일이 없죠.”그는 짧게 하석호를 바라보며 두 사람 모두 업계 거물임에도 분위기만큼은 강현우 쪽이 훨씬 압도적이었다.강현우는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며 손끝으로 유리잔을 천천히 굴리더니 낮게 웃었다.“제가 질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건, 의미 없을 것 같은데요.”하석호는 그 말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고 자신도 모르게 윤하경을 힐끗 바라봤다.윤하경은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838화

    윤하경이 말을 끝내자, 강현우가 슬쩍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왠지 모르게, 방금 전과는 달리 그의 눈빛이 한층 차가워진 것만 같았고 윤하경은 자신이 무슨 말을 잘못한 건지 몰라 괜히 어깨를 한 번 움츠렸다.하지만 강현우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고개를 숙여 조용히 숟가락을 들어 죽을 한 입 떠먹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한 얼굴이었다.“시간은 네가 정해.”윤하경은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진짜요?”“아니면 방금 한 말 취소할까?”윤하경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아니에요. 지금 바로 하석호한테 전화할게요.”그렇게 말하며 휴대폰을 들고 식탁에서 일어나 한쪽으로 가 하석호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받는 하석호의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여보세요, 하경아.”윤하경이 조용히 물었다.“내가 문자 보낸 거 봤어?”하석호는 한숨을 내쉬고서 말했다.“미안, 어제 밤새 한숨도 못 자서 잠깐 눈 붙이느라 못 봤어. 무슨 일이야?”요즘 하석호는 경성 프로젝트 때문에 매일 정신없이 바빴다.특히 어제 오후에는 경성 프로젝트 총괄한테 전화가 왔는데 그쪽에서 강한 그룹이 경쟁 조건을 더 높였다고 알려왔다. 이는 하석호에게는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윤하경도 그가 왜 이렇게 지쳐 있는지 짐작하고 있어 곧장 본론으로 말했다.“현우 씨가 만나주겠대.”“정말이야?”윤하경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상대방이 보지 못할 걸 깨닫고 바로 말을 이었다.“응, 진짜야. 언제 시간 돼?”하석호는 반쯤 누워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켰다.“오늘 점심 어때?”“좋아. 그럼 네가 장소 정해서 문자로 보내줘.”전화를 끊은 윤하경은 다시 식탁으로 돌아갔고 강현우는 여전히 천천히 식사를 하고 있었다.식사하는 모습조차 항상 단정하고 여유로웠다. 마치 식탁에서도 늘 품위를 지키는 사람 같았다.윤하경이 밝은 표정으로 다가가자, 강현우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냅킨으로 입가를 한 번 닦았다.“너무 좋아하는 거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837화

    윤하경이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강현우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눈을 뜨자마자, 잠시 어리둥절한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어젯밤의 기억이 파도처럼 몰려왔다.강현우와 함께 밤을 보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렇게 격렬했던 건 처음이었다.윤하경은 아무리 두꺼운 얼굴이라 해도 어제만큼은 도저히 부끄러움을 참을 수 없어 결국 이를 악물고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일어나.”갑자기 침대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어젯밤 자신의 행동이 전부 약 때문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윤하경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이불 안에서 아직 덜 깬 척을 하기로 했다.어차피 이불을 젖히면 바로 강현우의 장난기 어린 시선과 마주칠 게 뻔했으니까, 윤하경은 일어나기는커녕 더 깊게 이불 속에 파묻혀 버렸다.하지만 바로 누군가가 이불을 확 들어 올렸다. 윤하경은 놀라서 눈꺼풀이 살짝 떨렸지만 끝까지 눈을 뜨지 않고 계속 자는 척을 했다.그런데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묵직한 기운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이내 따뜻한 숨결과 익숙한 차가운 향기가 동시에 밀려와, 그의 입술이 자신의 입술을 덮었다.깜짝 놀란 윤하경은 그제야 눈을 번쩍 떴다.강현우가 그녀 위에 몸을 기대고서 낮게 웃었지만 그는 좀처럼 입술을 떼려 하지 않았다.윤하경이 숨이 막힐 것 같은 순간까지도 그는 여전히 그녀의 입술을 놓지 않았다.겨우 입술이 떨어졌을 때쯤, 강현우는 몸을 완전히 일으키지 않고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윤하경을 내려다봤다.긴 손가락이 윤하경의 이마와 눈가를 부드럽게 쓸었고 평소에는 차갑기만 하던 그의 목소리도 아침만큼은 한결 부드럽게 들렸다.“왜, 이제 그만 연기할 거야?”윤하경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저, 연기한 거 아니에요...”하지만 그 말에는 자신감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강현우는 다시 한번 가볍게 웃었고 손을 들어 윤하경의 엉덩이를 살짝 쳤다.“일어나. 안 일어나면 내가 직접 깨워줄 수도 있어.”이 말을 하면서 강현우의 시선은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836화

    샤워기에서 흩뿌려지는 물줄기가 욕실 안을 가득 채웠고 윤하경은 고개를 젖힌 채, 물안개 속에 자신을 묻으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심장은 점점 더 빠르게 뛰었고 머릿속에는 자꾸만 부끄럽고 아찔한 장면들이 떠올랐다.옷을 갈아입고 욕실을 나섰을 때, 강현우는 이미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에 서 있었다. 그는 한 손에 와인잔을 들고 있었고 방 안에는 오직 침대 머리맡의 주황빛 스탠드만이 은은하게 켜져 있었으며 키가 큰 강현우의 실루엣이 조용히 빛을 받아 더 도드라져 보였다.윤하경은 욕실 앞에서 잠깐 멈춰 섰다가, 맨발로 폭신한 카펫 위를 조심스럽게 걸어 그에게로 다가갔다. 강현우 앞에 서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조금 어두운 조명 아래서 윤하경의 눈동자는 더 깊고 신비로워 보였고 말없이 바라보기만 해도 상대방의 마음을 흔드는 느낌이었다.강현우는 고개를 숙여 윤하경을 내려다봤고 마치 그녀가 어떻게 반응할지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윤하경은 잠시 숨을 고르고 손을 들어 강현우의 넥타이를 풀기 시작했다.강현우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장난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윤하경의 머리 위를 가볍게 쓰다듬다가, 그녀의 턱을 잡아 살짝 끌어당겼다.강현우는 와인잔의 술을 단숨에 비우고 조금 전까지는 차갑던 와인이 그의 입술에서 따뜻해졌다.곧 그의 입술이 윤하경의 입술을 덮쳤다. 윤하경은 잠시 피하려 했지만 곧 강현우가 입안으로 와인을 천천히 넘겨줬다. 와인의 달콤한 향과 알코올의 뜨거움이 그녀의 목을 타고 내려갔고 그런데도 강현우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오히려 키스는 점점 더 뜨거워졌고 윤하경은 이내 몸이 뜨거워지고 아찔해졌다. 순간적으로 이 와인에 뭔가가 들어있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이미 숨도 가빠지고 있었다.윤하경은 강현우의 팔을 잡고 겨우 말을 꺼냈다.“술에 뭐 넣었어요?”강현우는 흐릿한 조명 아래, 윤하경의 점점 흐려지는 시선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오늘은 좀, 더 재미있게 놀아볼까?”약효가 빠르게 퍼지면서 윤하경의 정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835화

    강현우는 윤하경이 그렇게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지금처럼 얌전하고 순한 윤하경은 괜히 놀리고 싶어져 강현우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러더니 그는 불쑥 윤하경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더니 고개를 돌려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뭘 원하는지, 네가 더 잘 알잖아.”강현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윤하경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둘이 함께한 시간이 짧지 않았고 그런 일도 셀 수 없이 겪었다. 하지만 윤하경이 먼저 다가간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오늘따라 강현우는 윤하경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고 싶은 눈치였고 윤하경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정말로 하석호 도와주실 거예요?”윤하경은 조심스럽게 강현우를 올려다봤고 확실하게 대답을 듣고 싶었다.사실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이미 하석호와의 약속을 해버린 뒤였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자신이 거부한다고 해도 강현우는 어떻게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만들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차라리 이렇게 되는 김에 먼저 마음을 정리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그런데 강현우는 그 말에 금세 표정이 어두워졌고 갑자기 손으로 윤하경의 턱을 움켜쥐고 낮게 말했다.“하석호가 그렇게 너한테 중요한 사람이야?”윤하경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저한테 중요한 사람이에요.”강현우의 눈빛에는 잠깐 날카로운 기운이 스쳤다. 그동안 보여줬던 다정함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윤하경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윤하경은 지금만큼은 꼭 하석호를 도와주고 싶었다.강현우는 한동안 윤하경을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하며 쓴웃음을 지었다.“그렇게 중요하면 네가 좀 각오를 해야겠네.”그러더니 다시 가까이 다가와, 윤하경의 귀에 얼굴을 바짝 붙였다.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강현우의 낮고 묘한 목소리에, 윤하경도 얼굴이 붉어졌다.“내가 뭘 원하는지, 네가 모르진 않을 텐데.”윤하경은 말문이 막혀 얼굴이 붉어졌다.“저, 그게...”그녀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강현우를 쳐

  •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제834화

    윤하경은 악몽에 시달리다 갑자기 잠에서 깼다.“현우 씨, 제발... 저, 저 죽이지 마세요!”강현우가 막 윤하경을 안으려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방 안의 희미한 불빛 아래, 강현우의 눈빛이 순간 차갑게 가라앉았고 그는 이를 악물고 윤하경을 깊고 복잡한 눈길로 바라봤다.강현우의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였는지, 윤하경은 그대로 꿈에서 깨어 눈을 떴다.눈을 뜨자마자 마주친 건, 강현우가 어두운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모습을 보자 윤하경은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그때 강현우가 비웃듯 말했다.“뭐야, 그렇게 무서워?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윤하경은 그제야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막 깨어난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번졌다.“현우 씨. 언제 오셨어요?”강현우는 위에서 내려다보며 말했다.“네가 ‘날 죽이지 말라’고 부를 때쯤?”윤하경은 순간 당황해서 물었다.“저... 아까 잠꼬대했나요?”사실 윤하경은 방금 꿈에서 밧줄에 매달린 사람이 이명한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고 그 앞에는 강현우가 차갑고 무서운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리 애원해도 강현우는 끝까지 자신을 풀어주지 않았다. 그 두려움이 너무 생생해서 눈을 떴을 때도 그대로 강현우가 보이니 덜컥 겁이 났다.강현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냉랭하게 말했다.“네가 한번 생각해 봐.”윤하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머쓱하게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입술을 꾹 깨물고 조심스럽게 강현우를 바라봤다.“저... 오늘 연락드렸는데 혹시 못 보셨어요?”강현우는 이를 악물고 한숨을 내쉰 뒤 소파에 느긋하게 앉았다.“오늘 좀 바빴어. 근데 네가 이렇게 나한테 연락하는 일 잘 없잖아. 무슨 일인데?”윤하경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부탁드릴 게 있어서요.”강현우는 조금도 놀라지 않은 얼굴로 다리를 꼬고 앉아 팔 한쪽을 소파에 기대고 한 손은 무릎 위에 올린 채 느긋하게 손가락을 두드렸다.“그래, 말해 봐.”윤하경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했다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