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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간의 계약 연애
14일간의 계약 연애
作者: 고독한포켓

​1화

last update 公開日: 2026-08-06 12:13:36

​"한소율 대리."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심하게 불리는 이름. 둔탁하게 울리는 남성의 음성은 낮고 명확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 태성그룹 사옥 18층 기획본부 TF팀장실. 유리창 너머로 석양이 지는 도심의 마천루가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고, 널찍한 원목 책상 뒤에는 차도현 팀장이 앉아 있었다.

​칼같이 떨어지는 슈트 핏, 조금의 흐트러짐도 허용하지 않는 또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상대를 단번에 압도하는 냉철한 눈빛. 그는 태성그룹 내에서 '걸어 다니는 성과급'이자 동시에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 AI'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네, 팀장님. 부르셨습니까?"

​소율은 품에 안고 있던 서류를 다잡으며 정갈하게 답했다. 그녀의 단정한 슬랙스 차림과 흐트러짐 없는 자세는 3년간 차도현의 완벽주의를 근거리에서 버텨낸 유일한 부하직원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도현은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깊고 그윽한 눈동자가 소율의 얼굴에 정면으로 닿았다. 보통의 직원들이라면 그 눈빛만으로도 절절매며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반성부터 했겠지만, 소율은 익숙하다는 듯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러나 단단해 보이는 표정 뒤로, 소율의 마음속에는 조용한 파문이 일고 있었다.

​3년이었다. 이 남자의 가장 근거리에서 그가 밤을 새워 만든 기안서를 검토하고, 그가 좋아하는 쓰디쓴 아메리카노의 취향을 맞추며, 그가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나누는 날 선 대화들을 백업해 온 시간이. 그리고 그 3년 동안, 소율이 단 한 번도 이 남자에게 티 내지 않고 차곡차곡 숨겨온 감정의 깊이가 딱 3년이었다.

​‘차도현을 향한 짝사랑.’

​그것은 소율에게 지극히 위험하고 사치스러운 감정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스스로 완벽한 가면을 썼다. 사사로운 감정 따위는 일절 품지 않는, 오직 능력과 성과로만 대화하는 완벽한 부하직원의 가면. 덕분에 도현은 소율을 기획본부 내에서 가장 신뢰하는 파트너로 꼽았고, 소율은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자리에 앉지."

​도현이 맞은편 의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소율은 조용히 걸어가 의자에 앉았다. 직감적으로 무언가 이례적인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퇴근 시간을 불과 10분 남겨둔 시점, 업무 보고가 아닌 개인 면담 형식의 호출이었기 때문이다.

​도현은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규칙적인 타격 음이 정적을 깨뜨렸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소율의 예상을 완전히 비껴갔다.

​"한 대리. 혹시 지금 만나는 사람 있습니까?"

​"예?"

​소율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평소 사생활에 대해서는 일절 묻지 않던 도현이었기에 더욱 뜻밖이었다. 소율의 눈동자가 흔들렸으나, 그녀는 이내 일정한 톤을 되찾았다.

​"없습니다. 업무에 지장을 줄 만한 개인적인 사정은 전혀 없습니다."

​"아니, 업무에 지장을 주는지가 궁금해서 물은 게 아닙니다. 말 그대로 연애 여부를 묻는 겁니다."

​"…솔로입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도현은 가만히 소율을 응시했다. 마치 가장 가치 있는 투자처를 물색하는 투자자의 눈빛이었다. 이내 그는 상체를 앞으로 살짝 기울이며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와 연애를 좀 해줘야겠습니다."

​"…예?"

​소율의 입에서 허망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도현의 얼굴을 살폈지만, 거기에는 농담의 기색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완벽하게 계산된 사업 제안을 할 때와 똑같은 표정이었다.

​"잘못 들으신 게 아닙니다. 정확히는 '연애를 하는 척'을 해달라는 뜻입니다. 기한은 오늘부터 딱 14일 동안."

​"팀장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설명이 필요하겠군요."

​도현은 서류 봉투 하나를 밀어냈다. 봉투 안에는 고급 호텔의 레스토랑 예약 내역과 몇 장의 인적 사항 서류가 들어있었다.

​"회장님—내 할머니께서 마침내 시한폭탄을 터뜨리셨습니다. 이번 주말부터 매일같이 정략혼 맞선 자리를 잡아두셨더군요. 내가 거절할 수 없도록 이사회 안건까지 들먹이면서 말입니다."

​태성그룹 이혜민 회장. 그룹의 실권자이자 도현의 할머니인 그녀가 도현의 정략결혼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은 바 있었다. 하지만 도현이 이렇게 몰려 있을 줄은 몰랐다.

​"저는 회장님의 뜻대로 오너가 간의 결탁으로 이뤄지는 정략혼에 응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거절하기엔 현재 추진 중인 신사업 건으로 이사회의 지지가 절실한 상황이죠. 그래서 회장님의 시선을 돌릴 확실한 명분이 필요합니다."

​도현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내가 이미 마음에 둔 여자가 있고, 그 여자와 심각하게 교제 중이라는 명분. 그렇다면 회장님도 강제로 맞선을 추진하진 못할 겁니다. 어설픈 배우를 고용했다간 5분 만에 회장님 정보망에 걸려 넘어갈 테고, 내 사생활과 성향을 잘 알면서도, 입이 무겁고, 사사로운 감정으로 일을 망치지 않을 사람이 필요합니다."

​도현은 손가락으로 소율을 가리켰다.

​"그게 바로 한소율 대리입니다."

​소율은 목구멍이 바짝 타들어 가는 느낌을 받았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일을 망치지 않을 사람.'

​도현의 그 평가가 가슴을 찌릿하게 파고들었다. 자신이 그를 3년 동안 짝사랑해 왔다는 사실을, 이 남자는 정말 꿈에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지극히 완벽하게 감정을 숨겨온 대가가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팀장님, 저는 팀장님의 부하직원입니다. 사적인 일로 직원을 동원하시는 건—"

​"물론 공짜로 해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도현이 소율의 말을 끊었다. 그는 서류 봉투 옆에 또 다른 기안서 한 장을 올려놓았다. 그 서류의 제목을 본 소율의 눈이 크게 그어져 열렸다.

​[태성그룹 유럽 지사(프랑스 파리) 신규 프로젝트 기획안 - 담당 팀장: 한소율]

​소율의 오랜 숙원이자 꿈. 입사 이래 그녀가 밤낮없이 준비해 왔던 유럽 지사 파견 및 프로젝트 총괄 기안서였다. 실력은 충분했으나, 기수와 나이 때문에 상부에서 번번이 승인을 미루고 있던 건이었다.

​"한 대리가 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공을 들여왔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사회 결의가 필요한 건이지만, 내 권한과 승인으로 이번 달 내에 파견 발령을 확정 지어 주겠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수고비 명목으로 별도의 보상금도 지급하죠."

​소율의 호흡이 가빠졌다. 이것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함정이었다.

​파리 지사 파견. 그것은 소율의 커리어에 있어 엄청난 도약이 될 기회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남자를 향한 헛된 짝사랑을 물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완전히 끊어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명분이기도 했다.

​'14일.'

​딱 보름도 되지 않는 시간이다. 이 14일 동안 그와 연인인 척 지내고 나면, 소율은 미련 없이 이 남자의 곁을 떠나 파리로 갈 수 있다. 3년간 숨겨왔던 내 마음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어쩌면 하늘이 준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소율은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이 떨림이 도현에게 들릴까 두려울 정도였다. 소율은 입술을 침으로 적신 뒤, 도현을 직시했다.

​"조건이 있습니다."

​도현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거절이 아닌 조건 제시. 도현의 입꼬리가 호의적으로 올라갔다.

​"말해봐요."

​"첫째, 철저하게 비즈니스 관계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회사 내에서는 기존과 동일하게 팀장과 부하직원으로 행동합니다. 둘째,  회장님이나 외부 시선이 있는 곳에서만 최소한의 연기를 합니다. 셋째… 계약이 끝나는 14일 차가 되는 날, 즉시 파리 지사 파견 발령을 발령해 주십시오."

​도현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합리적인 조건이군요."

​도현은 서랍에서 미리 준비해 둔 서류 두 장을 꺼냈다. 그 서류의 상단에는 정갈한 폰트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14일간의 계약 연애 합의서]

​"미리 작성해 두었습니다. 한 대리가 말한 조건도 추가하도록 하죠."

​도현은 펜을 들어 서류에 몇 가지 조항을 즉석에서 수정해 적었다. 그리고 그 계약서를 소율 쪽으로 밀어주었다. 소율은 계약서의 조항들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본 계약은 차도현(갑)과 한소율(을) 간의 14일간 위장 연애 관계를 규정한다.

​'을'은 '갑'의 정략혼 피하기 위한 연인 대행 업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갑'은 그 대가로 '을'의 유럽 지사 파견을 보장하고 성과급을 지급한다.

​[핵심 조항] 상호 간에 사사로운 감정 과입을 금지하며, 공사 구분을 엄격히 준수한다. 계약 기간 중 물리적·감정적 선을 넘지 않는다.

​계약 만료일(14일 차) 이후, 양사는 아무런 미련 없이 본래의 상하 관계 및 파견 절차를 진행한다.

​4번 조항, '사사로운 감정 과입 금지.'

​그 글자가 소율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 이 계약서를 직접 작성한 도현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만년필을 소율에게 건넸다.

​"서명하시죠, 한 대리."

​소율은 도현이 건넨 만년필을 받아 들었다. 그 만년필은 소율에게 지극히 익숙한 촉감을 선사했다. 3년 전, 소율이 TF팀에 정식 발령받던 날 도현이 팀원 전체에게 나눠주었던 저가형 브랜드 만년필이었다. 다른 팀원들은 진작에 버리거나 잃어버렸지만, 소율만큼은 3년 내내 필통 속에 소중히 품고 다니며 손때가 묻도록 써온 바로 그 만년필.

​도현은 당연하게도 자신이 3년 전에 준 펜이라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소율은 만년필을 꽉 쥐었다. 손가락 끝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한소율. 이걸로 끝내는 거야.'

​3년 동안 혼자 태우고, 혼자 아파했던 짝사랑. 이 14일 동안의 가짜 연애를 끝으로, 내 모든 미련을 이 계약서와 함께 태워버리자. 그리고 미련 없이 파리로 떠나는 거야.

​쓱, 쓱.

​정막을 가르는 펜촉 소리와 함께, 소율의 정갈한 서명이 계약서 하단에 새겨졌다.

​자신의 서명이 적힌 계약서를 확인한 도현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계약서 한 부를 챙겼다.

​"협조해 줘서 고맙습니다, 한 대리."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켓을 걸쳤다. 그리고 소율에게 계약서 사본을 건네며, 단호하고도 철저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기억해요, 한 대리. 계약서 4번 조항. 감정 과입은 금지입니다. 서로 감정 소모 없이, 딱 비즈니스답게 깔끔하게 끝냅시다."

​도현은 먼저 팀장실 문을 열고 나갔다.

​홀로 남겨진 팀장실. 유리창 너머로 완전히 어둠이 내린 서울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소율은 손에 쥔 계약서 사본과 오래된 만년필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감정 과입 금지….'

​그녀는 나지막하게 읊조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걱정 마세요, 도현 씨. 당신이 말 안 해도… 이미 내 마음은 부서질 대로 부서져서, 더 이상 과입될 감정도 없으니까요."

​14일간의 시한부 가짜 연애.

그 아슬아슬하고 잔인한 비즈니스의 첫 번째 톱니바퀴가, 그렇게 소리 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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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일간의 계약 연애   292화

    아침부터 바닷바람을 맞으며 뛰어다닌 피로도, 방파제에서 들었던 고백의 무게도 그 품 안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남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도현의 굳었던 표정이 풀리는 게 보여 웃음까지 났다."왜 웃어?""아까는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계셨으면서, 이름 한 번에 풀리시니까요.""한 번이 아니었어.""그럼 몇 번 더 불러 드려요?"소율이 귓가에 그의 이름을 낮게 불렀다. 도현은 그녀를 그대로 안아 일으켰다."도현 씨, 잠깐만요. 자료가...""테이블 위에 잘 있어.""불은요?""내가 끌게."도현은 한 팔로 소율을 받친 채 거실 조명을 껐다. 어두워진 방 안에서 그녀의 웃음과 그의 낮은 목소리가 가까이 섞였다.잠시 뒤 침실 문이 닫혔다.다음 날 월요일 오전 7시 5분, 관사 2층 복도.도현은 오전 6시 40분에 공용 세탁실을 건너 202호로 돌아간 뒤였다. 25분이 지나 201호 현관문이 열리고 소율이 밖으로 나왔다. 목에는 며칠 전 세탁기에서 겨우 건져 냈던 얇은 붉은 스카프가 둘러져 있었다.축제장에서 이틀 내내 바닷바람을 맞고 큰 소리로 직원들을 불렀더니, 아침부터 목이 따끔거렸다. 소율은 찬 바람을 막으려고 스카프를 한 번 더 여며 목을 감쌌다.마침 세탁실에서 나온 해나가 그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그녀의 눈이 소율의 얼굴에서 붉은 스카프로 천천히 내려갔다."한 차장님.""좋은 아침이에요, 윤 대리님.""목은 왜 가리셨어요?""어제 바닷바람을 오래 맞았더니 좀 따끔거려서요."소율이 목 앞을 만졌다. 해나는 대답보다 스카프 안쪽을 의심하는 눈이었다."흐응… 정말 바람 때문이에요?""그럼 뭐 때문이겠어요?"그때 202호 문이 열렸다. 도현이 복도로 나오다가 두 사람을 보고 발을 멈췄다. 해나의 눈이 곧장 그에게 향했다."차 과장님.""네, 윤 대리님.""두 분, 사람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거 기억하시죠? 눈에 보이는 흔적 같은 것도 만들면 곤란하다구요."소율이 무슨 뜻인지 알아채고 스카프를 잡은 손을 내렸다."

  • 14일간의 계약 연애   29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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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일간의 계약 연애   29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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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일간의 계약 연애   2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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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날 오후 3시 10분, 축제장 휴식 천막 뒤.소율은 사람들 눈에 닿지 않는 천막 안쪽으로 도현을 데려갔다. 바깥에서는 해나가 손님을 안내하는 소리와 조리대에서 기름 튀는 소리가 번갈아 들렸다."잠깐 숙이세요. 머리 벗겨 드릴게요."도현이 고개를 낮추자 소율이 탈 머리를 들어 올렸다. 안에 갇혔던 더운 공기가 확 빠져나왔다. 그의 앞머리가 이마에 젖어 붙어 있었다."어휴... 벌써 몇 바퀴를 도셨어요. 눈은 안 불편해요?""시야는 괜찮아. 다리가 생각보다 짧아서 걷는 게 불편하지."그는 소율이 건넨 물을 한참 마셨다. 소율은 깨끗한 수건을 펼쳐 그의 이마에 대 줬다. 탈을 벗은 남편이 평소보다 숨을 조금 빠르게 고르자, 아까 해나에게 한 바퀴만 더 돌게 하겠다고 했던 자신이 떠올랐다."이제 다른 직원이랑 교대해요. 오전부터 계속 계셨잖아요.""조금 쉬고. 메인 통로는 지금 사람들이 몰릴 때라, 내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보고 올게.""차 과장님, 제가 현장 책임자예요. 교대도 제가 정할 수 있어요."도현이 물병을 내리고 그녀를 봤다. 소율은 팔짱을 낀 채 버텼지만, 수건을 든 손은 계속 그의 이마를 닦고 있었다."그럼 한 차장님 지시대로 쉬지. 대신 보상은 있어야겠는데.""방금 쉬라고 했더니 무슨 보상이요?""오늘 온종일 한 번도 못 했잖아."그가 고개를 기울였다. 소율은 저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았다. 부스에서 웃음만 마주쳐도 다른 직원 시선이 신경 쓰였는데, 지금은 천막 하나 뒤에 남편이 가까이 서 있었다."여긴 축제장이에요.""알아. 그래서 사람 없을 때 말하는 거야."소율은 밖을 확인하고 남편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런데 탈의 둥근 몸통이 둘 사이에 끼어 팔을 뻗어도 그의 셔츠까지 닿지 않았다."...푸흡. 여기서 어떻게 해요?""방금까지는 가까웠는데."도현이 한 걸음 다가오자 문어 배가 소율의 앞에 먼저 닿았다. 소율은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잠깐, 잠깐만요. 다리 밟겠어요!""당신이 이걸 입혔잖아."

  • 14일간의 계약 연애   287화

    같은 날 오후 1시 15분, 해담지사 판매 부스.백세라가 온담 직원과 함께 부스로 들어왔다. 직원은 휴대전화 거치대를 들고 있었고, 세라는 판매대를 한 바퀴 둘러봤다."아침에 올린 영상 보고 온담 계정에도 문의가 들어왔어요. 여기서 잠깐 생중계해도 될까요? 상품하고 조리 과정만 비추겠습니다.""생산자분들께 먼저 여쭤볼게요. 화면에 나오실 분들 의견도 들어야 하고요."소율이 묻자 준호는 조리대를 정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옆의 생산자도 상품 설명은 직접 하겠다며 앞치마를 바로 맸다."우리 얼굴 나와도 돼요. 이 물건 만든 사람이 누군지 보여 줘야죠."온담 직원은 화면에 잡힐 사람과 범위를 확인하고 카메라를 고정했다. 부스 뒤쪽 생산자와 상품이 잘 보이는 각도였다.방송이 시작되자 준호가 갓 구운 문어전을 들어 보였다."어, 지금 찍는 거예요? 잠깐. 제가 팬부터 닦고...""이미 시작했어요, 대표님!"해나가 웃자 준호도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하하! 좋습니다. 지금 부치는 건 오늘 들어온 재료로 만들었습니다. 겉은 이렇게 익고, 안은... 아, 잠깐만요. 먹어 보시면 훨씬 빨리 알아요."직접 만든 사람의 말에 화면 밖에서도 웃음이 났다. 세라는 휴대전화에 올라오는 질문을 골라 생산자에게 넘겼다. 맛과 보관 방법을 물으면 생산자가 답하고, 살 수 있는 곳을 물으면 해나가 부스 위치를 가리켰다.도현은 탈을 쓴 채 화면 바깥에 서 있었다. 온담 직원이 문어도 들어오라고 손짓하자 그는 한 손으로 시식대를, 다른 손으로 상품을 가리켰다. 화면 속 문어가 장바구니를 들고 판매대 앞을 맴돌자 댓글에 웃음 표시가 쏟아졌다.세라가 소율에게 낮게 말했다."사람들이 문어 보러 들어왔다가 물건을 보고 있어요. 잘 쓰시네요, 운영 담당을.""본인이 제일 잘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사람들 지나가는 길을 아침부터 바꿔 놨거든요.""탈 안에서요?""네. 손짓만 해도 윤 대리님이 알아듣더라고요."해나가 바로 끼어들었다."처, 처음에는 못 알아들었어요!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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