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오늘만 제 아내인 척 부탁합니다.” 재혁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닿자 주연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내인 척. 그 말이 이상했다. 자신은 원래 이 남자의 아내였다. 그런데 남편의 친구들 앞에서 남편의 아내인 척을 해야 한다니. 웃어야 할지, 당황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사이 재혁의 친구들은 이미 의자를 끌어다 두 사람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제수씨, 갑자기 합석해서 죄송합니다.” 한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근데 이 자식이 동창 모임도 거의 안 나오거든요.” 옆 친구가 바로 말을 받았다. “맞아요. 결혼했다고는 하는데 아내 얼굴은 제대로 보여준 적도 없어서 우리끼리는 진짜 결혼한 거 맞냐고 했어요.” 주연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요?” “그럼요.” 친구 하나가 재혁을 가리켰다. “얘 원래 대학 때부터 이랬어요. 무슨 비밀이 그렇게 많은지.” 재혁이 한숨을 쉬었다. “너희는 오랜만에 만나서 할 이야기가 그것뿐이냐?” “오랜만이니까 더 해야지.” 친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던 주연도 차츰 그들의 편안한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재혁과 친구들은 서로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서로의 대학 시절 실수를 끄집어내고, 누가 더 공부를 못했는지, 누가 시험 기간에 가장 먼저 잠들었는지로 티격태격했다. 주연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자신이 모르는 재혁의 시간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한 친구가 칵테일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근데 제수씨.” “네?” “재혁이 대학 때 진짜 대단했던 거 아세요?” 주연의 눈이 반짝였다. “어땠는데요?” 재혁이 곧바로 끼어들었다. “쓸데없는 이야기 하지 마.” 친구가 웃었다. “왜? 좋은 이야기인데.” 다른 친구도 말을 보탰다. “우리 동기들 중에서는
조금 더 주연의 과거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왜 미국으로 떠났는지. 어쩌면 결혼 이야기도 꺼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재혁이 물었다. “그런데 주연 씨.” “네.” “처음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게 된 건…” 바로 그때였다. 바 입구 쪽에서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젊은 남자 서너 명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재혁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이쪽을 바라보다 걸음을 멈췄다. “어?” 잠시 후 눈이 크게 떠졌다. “야.” 옆 친구의 어깨를 툭 쳤다. “저기 최재혁 아니냐?” 재혁이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의 표정에도 놀라움이 스쳤다. 대학 동창들이었다. “와!” 그들이 웃으며 다가왔다. “최재혁 대표님!” “야, 이게 얼마 만이냐?” “너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동창 모임도 맨날 안 나오고.” 재혁도 자리에서 일어나 웃었다. “오랜만이다.” 친구 하나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잘 지냈냐?” “그럭저럭.” “그럭저럭은 무슨. 뉴스에서 맨날 잘나가더만.” 그러다 친구들의 시선이 동시에 주연에게 향했다. 주연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조금 당황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한 친구의 눈이 커졌다. 그는 재혁과 주연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갑자기 웃었다. “잠깐.” 그리고 재혁을 향해 말했다. “설마?” 재혁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이었다. “제수씨?” 주연의 눈이 크게 떠졌다. “네?” 친구들은 이미 흥분했다. “야, 맞네!” "우리가 너 몰래 도둑결혼을 했다는 소문만 돌았지, 정작 제수씨 얼굴을 단 한 번도 못 봐서 다들 진짜 결혼한 거 맞냐고 의심했었거든. 오늘 이렇게 직접 보니 왜 그동안 꼭꼭 숨겨뒀는지 단번에 알겠네! 하하하!" "맞아, 제수씨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재혁의 차는 종로의 익숙한 길을 벗어나 청담동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착 한 곳은 민성과도 가끔 들르곤 했던, 청담동의 한적하고 고급스러운 프라이빗 칵테일 바였다. 가게 안은 은은한 조명과 함께 감미로운 재즈 음악이 낮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에 나란히 앉은 재혁은 주연에게 자연스럽게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싶었다. 낮은 조명. 잔잔하게 흐르는 재즈 음악. 긴 바 테이블 뒤에는 수많은 술병들이 은은한 조명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차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직원이 재혁을 알아보고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대표님.” “그러네요.” 두 사람은 조금 안쪽의 조용한 자리로 안내받았다. 재혁이 메뉴판을 주연에게 건넸다. “칵테일 괜찮습니까?” “네.” 주연은 메뉴를 한참 들여다보다 웃었다. “이름이 너무 어려운데요.” “그럼 제가 골라드릴까요?” “오늘은 계속 재혁 씨가 골라주시네요.” “싫습니까?” 주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리고 부드럽게 웃었다. “좋아요.” 재혁은 가볍고 달콤한 칵테일 하나와 자신의 잔을 주문했다. 잠시 후 두 사람 앞에 잔이 놓였다. 주연은 한 모금 맛보더니 눈을 반짝였다. “맛있어요.” “다행이네요.” “재혁 씨는 어떻게 이런 것도 잘 알아요?” “민성이 덕분입니다.” “역시.” 두 사람은 동시에 웃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조금 전 미선이 차려준 음식 이야기부터 시작해 행복나무 아이들 이야기로 넘어갔다. “민우 요즘 정말 열심히 공부해요.” 주연이 말했다. “재혁 씨가 공부 열심히 하면 나중에 회사 구경시켜준다고 했잖아요.” “기억하고 있습니까?” “민우가 매번 이야기해요.” 재혁이 웃었다. “그럼 약속은 꼭 지켜야겠네요.” “아
지난밤, 자신을 밀어내던 주연의 낯선 눈빛과 당혹스러웠던 표정이 재혁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녀가 자신을 밀어낸 진짜 이유를 알고 싶었지만, 재혁은 섣불리 다그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강제로 캐묻기보다, 그녀가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모든 진실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편안한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먼저였다. 재혁은 휴대전화를 들어 주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주연은 지난밤의 갑작스러운 스킨십과 도망치듯 자리를 떴던 일 때문에 목소리가 살짝 떨렸고, 어색한 기류가 감돌았다. 하지만 재혁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일부러 장난기 섞인 가벼운 농담을 건네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었다. 재혁이 차를 몰고 향한 곳은 지난번에 두 사람이 함께 갔던 허름하지만 정겨운 김치찌개 집이었다. 핸들을 쥐고 운전하는 재혁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곳의 주인인 미선에게 이번에는 당당하게 주연을 자신의 사람으로 소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심 기뻤기 때문이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미선은 두 사람을 알아보고 반색하며 환하게 웃었다 “어머! 지난번에 재혁이랑 같이 왔던 아가씨네!” “주연씨라고 했죠?” 미선은 손에 들고 있던 행주를 내려놓고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왔다. 주연도 반갑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지난번 김치찌개가 너무 맛있어서 다시 왔어요.” 미선은 재혁과 주연을 번갈아 바라보다 입가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잠시 후 식탁 위에는 정갈한 한식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치찌개. 노릇하게 구운 고등어. 윤기가 도는 잡채. 상큼한 샐러드와 작은 밑반찬까지. 주연은 눈을 크게 떴다. “너무 맛있어 보여요!” 주연이 미선을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를 바라보는 미선은 재혁이 왜 아가씨에게 저렇게 따뜻한 눈빛인지 알 수 있었다. “사
경환이 탄 검은 세단이 조용한 도로를 따라 본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뒷좌석에 앉은 이경환은 눈을 감은 채 머리를 깊숙이 시트에 기대고 있었다. 차 안은 조용했다. 운전기사는 아무 말 없이 앞만 보고 있었고, 창밖으로는 서울의 불빛이 길게 흘러갔다. 경환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아들 민성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차갑고 무심한 표정. 그리고 자신에게 던졌던 한마디. “아버지가 제 일에 관심을 가지실 줄 몰랐습니다.” 경환의 미간이 깊게 좁아졌다. 민성. 자신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존재였다. 사업은 마음먹은 대로 키울 수 있었다. 돈이 필요하면 벌면 됐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면 됐다. 하지만 아들만큼은 달랐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민성의 어머니는 사랑해서 만난 여자가 아니었다. 민성은 그가 과거 직접 관리하던 유흥업소에서 만난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 끝에 생긴 아이였다. 돈을 노린 민성 엄마의 치밀한 계획 속에 덜컥 들어선 생명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낳은 직후 곧바로 경환에게 찾아왔고, 거액의 돈을 챙겨서는 아이를 버려둔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렸다. 갓난쟁이였던 민성을 품에 안았을 때, 경환은 어떻게 아기를 어르고 달래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경환 자신 역시 차가운 부모의 그늘 아래서 그렇게 자랐기에, 아들에게 건넬 수 있는 아버지의 역할이란 세상에 돈을 쥐어주는 것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아들이 원하는 것은 웬만하면 모두 사주었다. 경환은 그것이 아들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경환이 탄 차가 차가 커다란 교차로를 지나갔다. 경환은 천천히 눈을 떴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어두운 거리를 바라보며 오래전 자신의 삶을 떠올렸다. 사채업을 하다 보면 세상에서 만나지 못할 사람이 없었다. 돈이 급하다며 울고불고 매달리는 사람. 빌린 돈을 갚지
늦은 저녁. 지혜에게 거절당한 민성은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던 그의 걸음이 멈췄다. 낯선 남자의 구두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낯설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가까이하지 않았기에 낯설어진 사람의 것이었다. 민성은 거실로 들어갔다. 소파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아버지. 이경환이었다. 민성의 표정이 굳었다. “오셨습니까.” 부자 사이의 인사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건조했다. 이경환은 아들을 바라보다 한쪽 팔에 감긴 깁스를 발견하자 얼굴을 굳혔다. “사고가 났다면서.” 민성은 아무렇지 않게 재킷을 벗었다. “누구에게 들으셨습니까?” “그게 중요해?” 이경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교통사고가 나서 며칠이나 병원에 있었다면서 왜 나한테 연락 한 번 안 해?” 민성이 피식 웃었다. “아버지가 제 일에 관심을 가지실 줄 몰랐습니다.” 이경환의 얼굴이 굳었다.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틀린 말입니까?” “민성아.” “아버지는 제가 어디서 뭘 하든 별로 관심 없으셨잖습니까.” 민성의 말투는 오히려 차분했다. 그래서 더 차갑게 들렸다. 이경환은 아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래도 내가 네 아버지야.” 그 말에 민성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셨습니까?” 짧은 한마디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수십 년 동안 쌓인 서운함이 들어 있었다. 이경환의 얼굴이 굳었다. 민성은 더 이상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듯 소파에 앉았다. “사고는 제 부주의였습니다.” “이제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경환은 그런 아들이 못마땅한 듯 바라보다 혀를 찼다. “됐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이경환이 말했다. “너도 이제 그만 정신 차려.” 민성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무슨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