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맨스 / AGAPE : 우리는 그랬다 / 7. 배우 이 도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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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배우 이 도 진.

작가: 양무무
last update 게시일: 2026-07-17 16:10:38

⁠⁠

“… 제 도장은요?”

자리에 앉으며 묻자, 대표님은 어색하게 웃으며 어색하고 과장된 웃음을 흘렸다.

“아하하…! 그게 말이지!”

“저 마지막 스케줄 끝난 지, 이제 2주 됐고… 잡다한 거 마무리하면… 이제 겨우 쉴 타이밍 생긴 거예요.”

“알지 알아. 그 점은 정말 미안해. 하지만 너를 첫 모델로 해서 서로 윈윈한 브랜드잖아. 아무리 이 바닥이라고 한들 나름의 의리는 지켜야지. 그쪽 브랜드에서 너를 그렇게 원해.”

생글생글 웃는 대표의 모습을 보니, 애초에 나의 말을 들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후…….”

눈치를 살피던 대표가 슬쩍 서류를 내밀며 브랜드 대표와 했던 이야기를 상세하게 꺼내며 서로 나쁜 것이 없다며 다시 한번 설득하는 것에 나 역시 나쁠 것은 없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말이 더 길어질 게 뻔했다.

“대표님.”

그 틈을 타, 시나리오들도 몇 개 건네던 대표가 더욱 생글생글 웃으며 왜 그러냐며 물었다.

“저 대표님이랑 8살 때부터 지금까지 문제없이 지냈잖아요.”

“응? 그, 그랬지?”

대표님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 사고 친 적도 없고, 쓸데없는 스캔들이나 소문 난 적도 없어요. 펑크 낸 적도 없고 웬만해선 대표님 말… 다 들었어요.”

“그랬지! 너처럼 자기 관리 철저한 애, 못 찾을 거야! 그 부분은 나도 복 받은 거라 생각해~! … 그런데 갑자기 왜?”

“… 저랑 한 약속… 잊지 않으셨죠?”

나의 물음에 이번엔 생글생글 웃던 얼굴이 완전히 굳어졌다.

“잊… 지는 않았는데…?”

“그러면 됐어요. 먼저 가볼게요.”

“자, 잠시! 도진아!”

또 말이 길어질까 도망치듯 회사를 나와, 지하로 내려왔다. 내가 올 것이라 예상한 건지 차를 대기시켜 놓은 영웅이가 다른 직원과 이야기하다 내게 손짓했다. 자연스레 차 안으로 들어오자, 자연스레 시동을 걸던 영웅이가 내 눈치를 슬쩍 살폈다.

“백화점으로 갈까?”

“무슨 속셈?”

“속셈이라니…. 내가 또 네 카드로 이것저것 긁을까 봐?! 네가 좋아하는 향수 입고됐다고 연락이 왔어.”

***

<서은율>

오랜만에 기분 전환으로 본 옛 영화는 재밌었다. 왜 유치하다는 평판이 점령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내게는 재밌었고 감동적이었다.

내가 유치한 인간이라 그런 걸까?

이왕 삘 받은 김에 한 편 더 보기 리모컨 버튼을 이리저리 누르다 시선이 멈춘 영화는 거의 10년 전에 굉장히 화제가 됐던 영화였다.

~  그래서? 내게 반했어? 뭐… 그럴 수밖에 없겠네.

한참 변성기가 진행 중인 목소리가 화면에서 나왔다..도진이가 처음으로 찍은 로맨스 영화였다.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이도진은 사실 연예계에 적합한 성격이 아니다. 깔끔떠는 성격에 혼잡한 걸 싫어하고 규칙적인 것을 좋아한다. 불필요한 스킨십을 싫어하고 무모한 행동을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배역이 그렇다면 하기는 한다만….

짬을 먹을수록 배역을 가릴 수 있게 되니, 문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한번 지적이 나왔을때 회심으로 발표한 ‘어릴 때부터 이런 일을 하다 생긴 지병’이라는 입장문으로 상황을 역전시켰지만.

하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성인이 된 이후로 멜로나 로코 장르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유일무이한 로맨스 영화는 이도진의 인생에서 두고두고 회자하는 영화였다. 당시에도 처음으로 멜로를 찍는다는 것에 촬영, 개봉부터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순간까지 가십에 올랐고, 상대 배우와는 사귀느니 마느니 말도 많았다.

~  너, 나 좋아하잖아.

당시, 도진이와 사이도 좋지 않았고, 실패한 짝사랑에 도저히 볼 수 없었던 영화였다. 이제야 본 이 비운의 영화 속 도진이는 굉장히 앳된 얼굴이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한 얼굴, 변성기로 인해 조금 거친 미성의 목소리, 어울리지 않는 능글맞은 표정과 목소리.

역시 연기 잘하는구나.

하기야, 잘하니까 이 바닥에서 아직 먹히는 거겠지. 반면, 누구를 딱히 좋아해 본 적도 없는 녀석이 저렇게 절절하게 사랑하는 연기를 할 수 있는 건지, 정말 웃음만 나왔다.

물론 경험으로만 연기를 한다면 모든 배역을 연기할 수 없을 테지만….

~  제발… 나를 사랑해 줘.

개봉 당시, 예고편만 보고 그 상대 배우가 너무 부러워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그 옆에서 나를 달래주던 것은 도진이가 아닌 홍시혁이었다.

그 사실이 떠오르자, 마음은 더욱 착잡했다.

~  나의 곁에 있겠다고 해.

~  나를 사랑한다고 했잖아…! 그 녀석에게 가지 마… 제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도진이의 모습에 괜히 울컥했다. TV 속 도진이는 누구보다 절절하게 사랑하고 있었다. 마음이 동요되어 집중하는 순간 TV는 제멋대로 꺼졌다. 고개를 홱 돌리자, 그 절절한 사랑을 하던 도진이가 뚱한 표정으로 리모컨을 내렸다.

“왜 그런 걸 보고 있어?”

“하길래.”

나의 말에 언제까지 저런 걸 방송할 거냐고 구시렁거리더니, 테이블 위로 종이봉투를 올렸다.

그것은 안 봐도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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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말도 없이 어디 다녀왔어?”⁠가뜩이나 머리가 지끈지끈 울리는데,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내게 다그치는 도진이의 모습을 보니 혼이 나갈 것만 같았다.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괜한 사람에게 풀게 됐다.⁠“걱정 마. 내가 이 집에서 나가도 아무도 네 가족인 거 몰라!”“그런 뜻이 아니라….”“지금, 아무 말도 못 해! 머리 아파! 쉬고 싶어!”⁠앞을 가로막는 도진이를 거칠게 밀치고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침대로 몸을 던졌다. 얼굴을 이불에 파묻으니, 헛웃음이 났다. 아마 어린 시절 서은율이 보면 기절할지도 모른다.어떻게든 도진이와 말 한마디 더하기 위해 새우잠을 자던 서은율은 어디 갔나?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제발 그만두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다.⁠‘나에게 곡 주기로 한 거, 약속 지켜야지.’⁠그리고 홍시혁에게 곡을 준다는 약속도 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홍시혁은 대체 무슨 생각이람?진심인지 장난인지 여전히 구분할 수가 없다. 홍시혁의 목소리가 떠오르자, 머리가 또다시 지끈지끈 울렸다.⁠그래, 이 녀석은 정말로 변함이 없다. 단순해 보이고 기분이 고스란히 다 드러나는 주제에 막상 속내를 알기는 힘들었다.원래 연예계에 종사하는 놈들은 다 이런 건가?아니면 내 주위의 놈들이 이런 걸까?⁠‘약속해! 네 이름 걸고 해!’‘알았어. 알았다니까. 괜찮은 게 나오면… 그때….’‘앗싸!!!’⁠하지만 마지막이 좋지 않다고 한들, 함께 있었던 시간이 즐겁지 않은 게 되는 건 아니다.빌어먹게도,내 인생에서 이도진을 제외하고는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었다.⁠⁠⁠***⁠⁠⁠⁠“… 광고?”“그게… 대표님이… 그… 나를 노려봐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는데….”⁠⁠소파베드에 머리를 젖힌 채 바라보자, 영웅이가 새파랗게 질려 시선을 피했다.⁠“내가 분명 활동 쉰다고 말했는데.”“아니, 뭐… 그렇긴 한데, 뭐! 그렇다고 너 평생 놀고먹을 생각이야?! 아래에서 치고 오는 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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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떴다.그래,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정확했다.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나갈 채비를 했다. 거울을 보며 잘생긴 얼굴에 취하기도 전에 동생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 얼굴은 이미 익숙했기에 머리를 매만지며 새카만 휴대폰 화면을 빤히 바라봤다.⁠“어디 가는데?”“몰라도 돼.”⁠내 대답이 퍽 수상했는지, 노려보는 눈초리가 한결 진해졌다. 하지만 더 이상 사고 치지 않겠다고 약속한지라,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을 채 듣기도 전에 ‘반짝’이며 전화가 울리는 것에 다급히 나가자, 뒤에서는 인사 대신 험한 욕이 나오고 있었다.그건 지금 내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6년?정말로 우연을 빙자한 만남 때, 그토록 보고 싶던 동창은 자신의 눈을 겨우 바라보며 심호흡하고 있었다.그때도, 지금도.⁠“변했네.”“… 뭐가?”“아! 네가 변한 게 아니라 이도진이 변한 건가?”⁠일부러 그 속을 후벼 팠다. 역시 제대로 먹힌 건지 씁쓸하게 웃는 얼굴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다. 6년 만에 본 동창은 머리가 짧아졌고, 아마 일에 찌든 삶을 지내고 있던지 퀭해 보이기도 했고 어딘가 아파 보이기도 했다.⁠그 개자식은, 돈을 그렇게 벌면서 뭐 하고 있는 건가?⁠“… 짧은 머리, 잘 어울리네.”“너도.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나의 말에 결국 짜증이 났는지, 눈썹이 움찔하는 것에 조금 기뻤다.⁠“그리고 조금… 단정해지고 어른스러워졌네.”⁠겨우 한 마디 한 마디 꾹꾹 누르며 뱉는 목소리는 감추려고 해도 떨림이 묻어 있었다. 게다가 여전히 시선은 뜨거운 커피잔에 고정되어 있다.그것이 기쁘지 않다.⁠“율아, 너 왜 노래 안 해?”⁠그래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기다리고 있었는데.”“아….”“어떻게든 성공해 보이겠다고, 노래하고 있을 거라고 그렇게 말했잖아.”⁠뜨거운 커피잔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옛일을 꺼내 또박또박 말하자,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아주 미세하게.좋았는지 나빴는지조차 알

  • AGAPE : 우리는 그랬다   4. 이도진과 서은율.

    ⁠⁠ ⁠ 이도진, 서은율….성도 호적도 피도 다르지만, 같은 집에서 사는 ‘가족’ 같은 거다. 기억도 안 나는 어릴 적 엄마는 여느 날 평소와 달리 한없이 행복하게 웃었다. 그런 엄마에게 ‘기쁜 일이 생겼어?’ 물은 내게 엄마는 ‘은율이에게 새아빠가 생겼어.’라고 말을 하며 데리고 간 곳에는 원래 살던 낡은 집과는 다르게 처음 보는 커다란 집, 그리고 그만큼 커다란 아저씨… 아니, 나의 새아빠.⁠아빠의 옆에서 무표정으로 나와 엄마를 바라보던 도진이는 나보다 두 살 더 어렸지만, 그 뚱한 표정이 잘생겨서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처음 생긴 좋은 집, 커다란 아빠, 잘생긴 동생에 나는 들떴었다.⁠‘도진아!’⁠대답은 없었다.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졸졸졸 따라다녔다. 그런 내가 귀찮았던 도진은 결국 참지 못하고 나를 밀쳤는데, 하필이면 계단이라 나는 우당탕 소리를 내며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 그 와중에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내 눈에 보인 것은 나를 보고 새파랗게 질려 놀란 이도진의 얼굴이었다.⁠나는 그 와중에 ‘쟤도 저런 표정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어찌 됐든 그날 이후, 내게 미안한 건지 조금은 마음을 열었는지 이도진의 그 바운더리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특히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그 작은 손으로 나를 꽉 잡기도 했다.⁠‘아이고, 같은 학년이 되어버렸네.’⁠생일이 빠른 도진이와 여러 가지 형편으로 시기를 놓쳐 1년 늦게 학교에 가게 된 나는, 같은 학년으로 같은 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와 은율이가 가족인 것을 몰랐다. 그것은 반도 다르고 굳이 말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쯤 엄마가 도진이만 데리고 한참 돌아다녔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아빠, 엄마랑 도진이는 어디 간 거야?’‘하하! 이제 곧 볼 거야.’⁠안 그래도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TV를 틀자, 그 네모난 곳에서는 도진이가 나왔다. 그것이 몹시 신기해 한참 쳐다보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을 기점으로 이도

  • AGAPE : 우리는 그랬다   3.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

    ⁠⁠목소리를 뱉기 위해 애쓰는 와중에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의 뺨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주며 그 날카로운 눈매를 크게 휘어 웃었다.그 모습은 여전히 강아지 같았다.⁠“나는 진짜 보고 싶었는데.”⁠그 말에 몸이 바짝 굳었다.문득 떠오른 생각은 ‘애초에 우리가 이렇게 살갑게 인사를 할 사이가 맞나?’ 였다.몸이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둘째 치고, 지금 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 건지 자각조차 할 수 없었다.나를 보며 웃는 저 얼굴은 진짜인가?⁠“왜, 나보니까 엿같아?”“… 그런 거….”“나는 너 보니까, 진짜 좋은데.”⁠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이건 확실했다.⁠“진심인데.”⁠속에서 역한 기운이 올라와 장기를 뒤흔들었다.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나 진짜로….”“그, 그만.”“…… 율아.”“아, 알았으니까. 그, 그만….”“언제는 내 목소리가 좋다며.”⁠그래.사실 지금도 듣기엔 좋다.하지만 아직은 듣는 것까지가 한계였다.⁠⁠***⁠⁠뒤늦게 나타난 영웅이 덕분에 상황은 어찌저찌 수습됐지만,여전히 속은 뒤틀리고 머리를 어지러웠으며 심장은 쿵쾅쿵쾅 뛰었다.⁠“누나!”⁠영웅이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집 앞이었다. 두 눈에는 못마땅한 표정을 한 도진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 표정을 보며 애써 외면한 채 방으로 들어와 한참을 심호흡하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벗은 웃옷에서 종이가 떨어졌다. 종이를 확인하자 알 수 없는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숫자가 춤을 추듯 일렁거렸고, 다리에는 힘이 풀렸다.사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웃으며 인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은 했다.⁠그렇지 않은가?시간도 오래 지났고, 마지막에 싸우기는 했지만 내게는 덧없이 소중한 첫 친구였다. 당연히 웃으면서 인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나와, 밥 먹어.”⁠혼자만의 굴에 들어가기 직전, 나의 정신을 깨운 것은 도진이의 목소리였다. 멍한 표정으로, 주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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