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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영웅의 귀환, 그리고 김치찌개 1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11 16:01:39

[System: 전투 모드 종료.]

[동기화율: 400% -> 0%]

[냉각 시스템 가동. 배기열 방출 중...]

​"후우..."

​헬멧을 벗자 땀에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EX급이고 나발이고, 긴장이 풀리니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꺼억- 잘 먹었다.]

​내 머릿속, 아니 뇌리에 직접 울리는 레비아탄의 트림 소리.

방금 전까지 군주급 괴수를 찢어발기던 그 광기 어린 맹수는 어디 가고, 배 부른 아저씨 같은 목소리만 남았다.

​[형님, 나 졸려. 잘래.]

"그래, 자라. 자."

​쿠웅-

​거대한 진동과 함께 지상 간이 격납고의 도킹 베이가 연결되었다.

곧이어 칙- 하는 소리와 함께 해치가 열렸다.

​"하태수 상병! 괜찮나!!"

​격납고 바닥으로 내려오자마자 사령관이 달려왔다. 평소의 그 냉철하던 양반이 군모가 삐뚤어진 줄도 모르고 허겁지겁 뛰어오는 꼴이라니.

그 뒤로 의무병들이 들것을 들고 대기 중이었고, 통제실 유리창 너머로 수십 명의 장성들이 넋을 놓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령관님. 저 멀쩡합니다. 그냥 좀... 피곤하네요."

"멀쩡하다니! 자네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아나? 부산 앞바다를 통째로 얼려버렸어! 저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사령관이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의 눈은 경악과 환희, 그리고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

​"지금 난리가 났네. 청와대부터 미 펜타곤까지 핫라인이 불이 났어. 당장 자네를 모셔오라고 난리야. 헬기 띄우고, 방송국 헬기까지 뜨고..."

"아..."

​머리가 지끈거렸다.

높으신 분들 오시면 거수경례하고, 악수하고, "이게 다 국가를 위해서입니다" 같은 가증스러운 인터뷰나 해야겠지.

지금 내 몰골을 봐라. 피라미드 짓다가 도망 나온 노예가 따로 없는데.

​"사령관님."

"말하게. 뭐든 들어주지. 훈장? 특진? 아니면 휴가?"

"집에 좀 보내주십쇼."

"...응?"

"밥을 안 먹고 나와서 배고픕니다. 가서 김치찌개나 먹고 잠 좀 자고 싶습니다."

​사령관이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인류를 구한 영웅의 소원치고는 너무 소박해서 어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게 제일 중요하지."

​그는 뒤에 있던 부관을 불렀다.

​"야전 앰뷸런스 대기시켜. 위장막 씌우고, 민간 차량 번호판 달아."

"예? 하지만 상부 지시는..."

"상부? 개나 주라지. 지금 우리 영웅님은 '극비 작전' 수행 후 요양 중이다. 신원 노출되면 암살 위협 있다고 보고해. 1급 보안 때려 박아."

"옛썰!"

​역시 사령관. 짬밥은 고스톱 쳐서 딴 게 아니다.

​"그리고... 저 놈은 어떡하지?"

​사령관의 시선이 뒤에 서 있는 레비아탄을 향했다.

20미터가 넘는 강철의 맹수. 지하의 메인 격납고 천장을 뚫고 나갔던 터라 다시 집어넣을 수도 없었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야, 일어나."

​나는 레비아탄의 정강이를 툭 찼다.

​우웅-

​거대한 기체의 눈(모노아이)이 붉게 깜빡였다.

​[아, 왜 깨워요. 형님.]

"너 너무 커. 못 데려가. 여기서 얌전히 대기해."

[싫은데? 나도 갈 건데? 형님 옆에 있어야 전기를 얻어먹지.]

"이게 미쳤나. 너 데리고 가면 우리 집 마당 무너져."

​[쳇. 융통성 없기는. 그럼 이건 어때?]

​지잉-

​갑자기 내 손목에 차고 있던 군용 스마트워치가 제멋대로 켜졌다.

화면이 노이즈로 지직거리더니, 픽셀로 이루어진 SD 캐릭터 같은 뱀 대가리가 뿅 하고 나타났다.

​[동기화 완료. 서브 프로세스 이식 성공.]

​[짜잔! 어때? 형님 스마트워치 해킹했어. 본체는 여기 두고, 내 의식만 여기로 옮겼지. 뭐, 이 정도는 껌이라고.]

​"...너 이거 반입 금지 물품인 건 아냐?"

[알빠노? 가자, 형님! 나도 김치찌개 구경 좀 하자!]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제 24시간 잔소리꾼을 손목에 차고 다니게 생겼다.

​"가시죠, 사령관님."

"허허... 자네 정말 못 말리는군."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대기 중이던 위장 앰뷸런스에 몸을 실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도, 꽃다발도 없었다.

하지만 그게 더 좋았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영웅 대접이 아니라, 하숙집 이모의 잔소리였으니까.

​*

​앰뷸런스가 부대 정문을 빠져나와 해안 도로를 달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낯설었다.

​"와... 이게 다 뭐야."

​부산 전체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눈이 온 게 아니다.

아까 내가 얼려버린 해수들과 바닷물이 미세한 얼음 결정이 되어 흩날리고 있는 거다.

한겨울의 크리스마스처럼, 가로수에도, 지붕에도, 전깃줄에도 하얀 성에가 끼어 있었다.

​"괴물이다, 괴물..."

​운전병이 백미러로 나를 힐끔거리며 중얼거렸다. 욕이 아니라 경외감 섞인 감탄이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창밖을 내다봤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나와서 빗자루로 얼음 가루를 쓸어내고 있었다.

​"아이고, 이게 무슨 난리고! 갑자기 한파가 닥쳤나!"

"김 씨! 저기 바다 봤나! 바다가 통째로 얼어뿟다 안 카나!"

"뉴스 봤나? 그 파란 긴가, 검은 긴가, 그 로보트가 한 방에 얼렸다 카드라!"

​익숙한 목소리들.

세탁소 성배 아저씨가 가게 앞 눈을 치우다 말고 허리를 펴며 껄껄 웃고 있었다.

그 옆에서 희선이가 빗자루를 기타처럼 잡고 락스타 흉내를 내고 있었다.

​"이야아압! 프로즌 라이트닝! 다 얼어 디짓뿌라!!"

"희선아! 먼지 난다! 쫌!"

​다들 무사하구나.

저 멀리 대피소 근처에서 넋을 잃고 하늘을 바라보던 사람들과 동네 이웃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제야 꽉 막혀있던 명치가 뚫리는 기분이었다.

​"여기 세워주세요."

"예? 집 앞까지 안 가셔도 됩니까?"

"동네 시끄러워져요. 걸어갈게요."

​앰뷸런스에서 내렸다.

차가운 공기가 폐부로 들어왔다. 비린내가 사라진, 깨끗하고 시린 겨울 냄새.

군화를 끄으며 골목길을 걸어 올라갔다.

몸은 천근만근인데 발걸음은 묘하게 가벼웠다.

​'이제 들어가서 씻고, 이불 덮고 한 20시간만 자야지.'

​그런 소박한 꿈을 꾸며 하숙집 대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

​짝-!!!!

​"악!"

​현관에 들어서기도 전에, 등짝에서 불이 났다.

EX급 반사 신경? 군주급 동체 시력?

다 소용없었다.

하숙집 최 여사님의 '등짝 스매싱'은 인과율을 무시하고 꽂히는 필중(必中)기였다.

​"이 문디 자슥아!!"

​최 여사님이 도깨비 같은 표정으로 서 계셨다. 한 손에는 국자가, 한 손에는 내 등짝을 후려친 손바닥이 들려 있었다.

​"니 지금 몇 시고! 어?! 새벽에 나간 놈이 해 다 떨어져서 기어오나!"

"아, 이모! 아파요! 나 환자라고!"

"환자 같은 소리 하네! 사지가 멀쩡해 가꼬는! 밥도 안 묵고 나갔으믄 일찍일찍 댕기야지, 어딜 그리 쏘다니노! 니 때문에 할매가 대문 밖에서 얼매나 기다린 줄 아나!"

​최 여사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내 등짝을 때린 그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눈가가 붉게 충혈되어 있다는 걸.

​뉴스를 봤겠지.

방벽이 뚫릴 뻔했고, 수많은 군인이 죽었다는 걸.

내가 그 지옥 속에 있었다는 걸 알기에, 살아서 돌아온 걸 확인하자마자 안도감이 분노로 터져 나온 거다.

​"죄송해요. 일이 좀 많았어요."

"시끄럽다! 핑계 대지 마라!"

"진짠데... 나 오늘 지구 구하고 왔는데."

"지구는 지구고 밥은 밥이지! 지구가 니 밥 멕여주나!"

​명언이다.

그래, 지구는 나한테 밥 안 준다. 밥 주는 건 최 여사님이지.

​[푸하하하! 야, 형님. 쫄았어? 쫄았네? 천하의 EX급이 아줌마 손바닥 한 방에 꼼짝 못 하네?]

​손목에서 레비아탄 놈이 낄낄거렸다.

나는 놈의 뇌파 연결을 잠시 끊어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퍼뜩 씻고 온나! 밥상 다 식는다!"

​최 여사님이 홱 돌아서서 부엌으로 들어가셨다.

그 투박한 뒷모습이, 오늘따라 왜 그리 듬직해 보이는지.

나는 군화를 벗으며 피식 웃었다.

​"네, 금방 씻고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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