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4화

Author: 청풍야운
채은은 걸음을 멈추고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지만, 다희의 손을 잡지는 않았다.

그 순간, 다희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러자 곁에 있던 진성이 낮은 목소리로 다희를 대신해 말을 꺼냈다.

“할아버지께서 우리의 일을 아셨어. 오늘 저녁에 같이 식사하러 오라고 하시더라.”

“네 핸드폰이 꺼져 있어서 내가 직접 데리러 온 거야.”

“아... 네.”

채은은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정말 꺼져 있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핸드폰만 충전하고 금방 갈게요.”

이 말은, 진성과 다희와 함께 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진성이 약간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기다렸다가 같이...”

채은이 웃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

“괜찮아요. 혼자 갈게요.”

진성이 침묵하자, 채은은 다희를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리고 내일 아침 9시에 시간이 된다면, 우리... 가정법원 가서 이혼 신청해요.”

진성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물었다.

“왜 그렇게 서두르는 거지?”

채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좀 급해서요.”

진성은 채은의 단호한 태도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얼굴이 살짝 어두워진 그는 다희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몇 걸음 내딛던 찰나, 다희가 진성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더니 다시 뒤돌아섰다. 그녀는 채은에게 다가오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채은 씨, 정말 감사해요.”

채은이 약간 당황하며 물었다.

“뭐가요?”

다희는 멀리서 기다리고 있는 진성을 한 번 바라본 뒤, 귓가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말투에는 추억에 잠긴 듯한 부드러움이 서려 있었다.

“예전에 저와 진성 씨가 어쩔 수 없이 헤어졌을 때, 다시는 함께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채은 씨가 저 사람을 정말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 채은 씨가 진성 씨를 놓아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을 거예요.”

채은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다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틀렸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또렷했다.

“제가 저 사람과 이혼하는 건 다희 씨를 위해서가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 관대한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제가 저 사람과 이혼하려는 이유는 간단해요. 더 이상 저 사람을 좋아하고 싶지도, 좋아하지도 않을 거기 때문이죠.”

채은은 3년 동안 ‘부진성의 아내’ 자리를 잘 지키기 위해 애썼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지난 3년 동안 로또라도 사 모았다면, 대박은 아니어도 소소한 당첨은 됐을 텐데...’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부진성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어.’

이혼을 결심한 순간부터, 채은은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했다.

진성을 위해 한 큰 노력들은 결국 다른 여자를 그의 곁으로 데려오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채은은 그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다희는 잠시 얼어붙은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채은이는 한 번 생각하더니, 시선을 내리며 차갑게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든, 이제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저녁 식사 시간은 8시 30분이었다.

채은이 아파트에 도착한 시간은 7시를 조금 넘긴 때였는데, 부씨 가문에서 나왔기 때문인지, 마음이 모처럼 가벼웠다.

그녀는 샤워하며 핸드폰을 충전했음에도 아직 여유가 있었다. 곧이어 오랜만에 자신이 좋아하는 장밋빛 원피스를 꺼냈고, 안경 대신 콘택트렌즈를 끼고, 가볍게 화장도 했다.

이런 일은 채은이 부씨 가문에 있을 때 거의 하지 않던 일이었다.

갓 결혼했을 때, 채은은 화장하고 꾸미곤 했지만, 시부모님은 그녀를 ‘요물’이라며 싫어했다. 물론 진성 역시 그녀에게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지 않은가.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마친 채은은 택시를 타고 부씨 가문의 대저택으로 향했다.

“작은 사모님, 이쪽으로 오세요.”

집사는 채은을 보더니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정중한 태도로 그녀를 저녁 식사 자리로 안내했다.

집사가 여전히 자신을 ‘작은 사모님’이라 부르는 것을 보니, 채은은 부경석이 아직 이혼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연 채은이 식사 자리로 들어섰을 때, 진성뿐만 아니라 다희도 함께 있었다.

부경석은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분위기는 상당히 무거웠다.

하지만 채은이 모습을 드러내자, 부경석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졌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반겼다.

“어서 와라. 정말 오랜만에 함께 식사하는구나.”

진성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채은에게 멈추자, 그는 순간적으로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안경을 벗은 채은이 길고 가늘게 올라간 아름다운 눈매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눈동자에는 은은한 빛이 흘렀고, 장밋빛 원피스와 어우러져 도도하고 매혹적인 모습이었다.

그야말로 진성이 알고 있던, 순종적이고 온순하던 채은과는 전혀 달랐다.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제30화

    채은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창 쪽으로 몸을 살짝 움직였다. 계속해서 채은의 행동을 주시하던 건하는 그녀의 작은 움직임을 눈치챘고, 미소를 머금은 채 살며시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채은이 낯선 사람에게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익히 알았던 그는 곧 이해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도 대표님, 보떼로 가시나요?”운전기사는 백미러로 단정하고 단아한 옷차림의 채은이 건하와 자연스레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고는 은근히 공손한 어투로 말했다.보떼는 건하가 손님을 접대할 때 이용하는 단골 호텔로, 그의 전용 룸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곳이었다. 건하는 잠시 생각하더니 채은을 향해 물었다.“채은 씨, 추천해 주실 만한 곳이 있나요?” 채은은 잠시 멈칫하다가 답했다.“대표님께서 자주 가는 곳으로 가시죠. 예전에 도와주신 일도 있고, 오늘은 하린이도 저를 많이 도와줬으니, 제가 감사의 뜻으로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요.” 채은은 분명히 건하에게 신세를 졌다. 비록 건하의 도움이 그의 여동생을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채은은 하린의 치료를 돕기로 결심한 이상,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건하도 채은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고, 운전기사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게 할게요. 기사님, 출발하시죠.”보떼는 N시의 초호화 호텔로, 최고급 소비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수천만 원이 넘는 식사비는 물론이며, 출입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부유층이나 명망 높은 인사들이었으니 말이다. 검은색 카이엔이 보떼 입구에 천천히 멈춰 섰다. N시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건하의 카이엔은 검소한 차량으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연속된 숫자 7이 새겨진 번호판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했다. 입구에 서 있던 직원이 재빠르게 달려와 차 문을 열었고, 곧이어 로비 매니저도 허겁지겁 달려왔다.“도... 도 대표님,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방은 이미 준비되어 있는데, 이번에도 하린 아가씨와 두 분이신가요?” 건하는 차에서 내리며 채은을 흘깃 보았다. 채은은 스스로 차 문을 열고 내리고

  •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제29화

    채은은 입술을 깨물며 거절하려 했으나, 하린이 먼 곳을 향해 기쁘게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오빠!” 채은이 고개를 들자, 한 남자가 차 문을 열고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깔끔한 맞춤 정장 차림의 건하는 평소의 부드러운 인상과 달리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겼고, 깊고 어두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채은은 왠지 모르게 머리끝이 저릿해졌지만, 건하의 시선을 견디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건하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이렇게 또 뵙네요.” 한편, 교무처에서 나온 부윤아는 손에 들고 있던 처분서를 구기며 이를 악물었고, 빠르게 학교 커뮤니티의 게시글을 훑으며 불쾌감과 억울함에 치를 떨었다. ‘서채은이 진짜 그 심리학과 선배라니!’ ‘감히 우리를 속여?!’윤아는 채은이 정말 심리학과의 전설적인 선배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이를 숨기고 있던 그녀의 행동에 분노가 치밀었다.‘그동안 잘도 숨겼겠다? 일부러 숨긴 게 분명해!’‘천박한 X, 오빠랑 이혼하고 벨루스 가든의 집을 차지한 것도 모자라서, 곳곳에서 나한테 맞서면서 치욕을 안겨주고 있어! 이 처분서를 좀 보라고!!’‘우리한테 순종하던 서채은과 비교하면 정말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아!’‘어림없지!’‘오빠한테 이 모든 걸 말해야겠어!”윤아는 복수의 결심을 굳히며 캠퍼스를 나서다가, 멀지 않은 곳에서 채은과 건하의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윤아의 표정은 놀라움에서 분노로 번져갔다. ‘서채은 저 X... 벌써 새로운 남자를 만난 거야?!’윤아는 채은 일행 쪽으로 다가가 보려 했으나 거리가 꽤 멀어, 남자의 얼굴은 똑똑히 보지 못했다. ‘어라? 실루엣이 낯설지 않은데?’윤아는 고민할 겨를도 없이 핸드폰을 꺼내 들고 채은 쪽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연신 사진을 찍은 윤아는 만족스럽다는 듯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생각했다.‘오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어!’‘이걸 오빠한테 보여주면 서채은을 완전히 끝장낼 수 있을 거야! 집도,

  •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제28화

    마치 채은의 감정을 알아차린 듯, 진도윤 교수가 그녀의 어깨를 다정히 두드리며 말했다.“돌아왔으니 됐어. 정말 잘했어.”고개를 들어 격려와 너그러움이 담긴 진도윤 교수의 눈길을 마주한 채은은 코끝이 찡해졌다. 진도윤 교수는 손을 거두며 주변의 흥분한 학생들과 충격에 빠진 윤아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채은이는 확실히 내 학생이 맞네. 당시 심리학과가 채은이를 위해 무기한 휴학 허가서를 발급해 준 이유도, 이런 천재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채은이는 재학 중 최단기간에 전공 학점을 이수했고, 경찰, 정신병원, 심리 상담 센터 등과 협력해 심리학 분야에 수많은 실질적 기여를 했어.”“채은이가 졸업까지 남은 건 아주 작은 걸음일 뿐인데, 우리 심리학과의 천재가 심리 상담 센터의 상담사를 맡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 진도윤 교수의 말투에는 채은에 대한 자부심과 확신이 가득했다.이 말을 들은 학생들은 모두 채은을 향해 강렬한 호기심과 존경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진도윤 교수는 말을 끝낸 뒤, 단호한 표정으로 윤아를 쳐다보며 말했다.“그렇지 않아도 커뮤니티에서 학교 선생님을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보고 오던 참이야. 학생으로서 공부와 탐구에 집중하지는 못할망정, 사적인 감정으로 복수하거나 질투로 남을 헐뜯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네.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은 학교 규정에 따라 처리할 테니, 모두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도록!” 진도윤 교수는 이 말을 마친 후, 채은에게 한 번 더 격려하는 눈빛을 보내고는 자리를 떠났다. 학생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윤아에게 쏠렸다.조금 전 식당에서 자신이 그 글을 썼다고 인정한 윤아는 진도윤 교수의 발언이 자신을 겨냥한 것임을 깨달았다. ‘나... 나한테 하신 말씀일 거야.’‘서채은이 정말 그 심리학과의 전설로 불리던 선배님이었다니!’학생들의 시선을 알아차린 윤아는 얼굴이 창백해졌다가 금세 새빨개졌고, 이내 황급히 자리를 떠나버렸다. 해프닝이 끝난 뒤, 학생들은 채은을

  •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제27화

    여학생의 눈에는 별빛이 가득했는데, 흥분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채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아요, 교수님들께서도 제가 졸업하기를 기다리실 줄은 몰랐네요.”채은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특히 심리학과 학생들은 더욱이 그랬다. 심리학과라면 누구나 알 법한 학생, 뛰어난 성적과 독보적인 업무 능력으로 심리학과의 천재라 불렸던 그녀가 바로 서채은이었다!졸업을 앞둔 채 뜻밖의 사고로 인해 자퇴를 결심하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한 채은을 위해, 지도 교수들과 학과장은 긴급회의를 열었다. 그 결과, 학교 측에 특별 요청을 올려 전례 없는 ‘무기한 휴학 허가서’가 발급되었다!학과 전체가 채은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선언과도 같은 것이었다.그 모든 기억이 떠오르자, 채은의 눈에 따뜻한 감정이 스쳐 갔다. 현장에 있던 학생들은 점점 더 흥분하며 채은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 선배님이라고? 세상에, 그 선배님의 논문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대박이었어!” “서채은 선생님이 정말 그 전설적인 선배님이라면, 단순히 대학 내 심리 상담사가 아니라, 전문 심리 상담사로도 충분한 자격이 있는 거잖아! 경찰과 협력해서 여러 사건을 해결했다는 소문도 있던데?” “와... 내 여신님이 우리 선생님이 되었다니. 교수님께서 보여주셨던 그 시험지를 보면서 꼭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서채은 선생님이었어!” 점점 긍정적으로 변하는 분위기에 사람들은 채은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순간, 갑자기 윤아가 이를 갈며 통통한 여학생을 향해 소리쳤다. “말도 안 돼! 대체 뭘 보고 떠들어 대는 거야? 서채은이 그 전설 속의 선배님이라는 증거 있어? 그냥 거짓말로 넘어가려는 걸지도 모른다고!” 윤아는 절대 믿을 수 없었다.‘서채은이 무슨 전설적인 인물이라는 거야? 지나가던 개가 웃겠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으면, 왜 우리 집안에서 몇 년 동안 참기만 했겠어?!’통통한 얼굴의 여학생이 억울한

  •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제26화

    하린이 고개를 돌리자, 놀란 척하며 자신을 쳐다보는 윤아의 모습이 보였다. “커뮤니티에 다 나왔잖아. 서채은은 고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이고, 부정한 수단으로 우리 학교 심리 상담 센터의 상담사가 된 거라고! 우리보다 학력도 낮은 사람과 어울리다니, 창피하지 않아?” 윤아는 채은을 향해 거만한 태도로 쏘아붙였다. 하린은 화가 치밀어 올라 바로 반박하려고 했지만, 그 전에 채은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하린을 뒤로하고 윤아의 앞으로 나섰다. 채은이 평온한 눈빛으로 윤아를 바라보며 담담히 물었다.“커뮤니티에 올라온 거, 네가 한 짓이지?” “내가 했으면 어쩔 건데?”윤아는 사실을 들킨 것에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 당당한 태도로 비웃기 시작했다.“다 사실이잖아.” 윤아는 하린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채은이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고등학교 졸업장만 있다는 것도 맞는 말이니 자신은 떳떳하다는 태도였다. 바로 이때, 하린이 차가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그 게시글이 뜨거운 화제가 된 건 알고 있지? 아, 허위 사실 유포나 명예훼손이 심각한 경우에는 범죄로 처벌될 수 있는 것도 알고 있으려나?” 하린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경고의 뜻이 서려 있었기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며 분위기가 점점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허, 명예훼손?”윤아가 냉소를 터뜨리며 비웃었다. “고졸이라는 게 명예훼손인 거야, 아니면 부정한 수단이 명예훼손인 거야?” “정말 본인 실력으로 우리 대학교의 심리 상담사가 된 거라면, 증명해서 보이면 되잖아!”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대학 심리 상담 센터의 상담사가 될 수 있단 말인가!게다가 채은이 정식으로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채은이 어떤 증거로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지 의아해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 순간, 채은의 단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나는 실력으로 채용된 게 맞아.”사람들이 깜짝 놀

  •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제25화

    ‘커뮤니티?’채은은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하린은 곧장 핸드폰을 열어 화제의 중심인 게시글을 보여주었다.“이거예요. 누군가 언니의 학력이 고졸에 불과한 데다가, 부정한 수단을 이용해 대학 내 심리 상담사 자리를 얻은 거라고 의문을 제기했어요.”하린은 입술을 깨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채은을 바라보았다.채은은 게시글을 흘깃 본 뒤, 오늘 사무실에서 느꼈던 이상한 시선들을 떠올렸다.‘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옆에 서 있던 하린은 채은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더 초조하고 불안한 듯 말했다.“언니, 이미 많은 사람이 이 게시글을 봤어요. 게다가... 심한 말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언니는 학교에서 버티기 힘들 거예요.” 하린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지만, 채은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그녀를 위로했다.“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 그저 게시글일 뿐이잖아? 별거 아니야.” “지금 중요한 건 점심부터 먹어야 한다는 거야.” 채은은 이 게시글이 분명 부윤아와 관련 있을 거라 짐작했지만,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여태 겪은 폭풍우에 비하면 이런 비방은 전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한 듯했다.채은의 시선은 차분했고, 미소에는 여유로움이 배어 있었다. 게시글에 담긴 악의적인 말들은 채은에게 전혀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채은의 이런 태도에 마음이 놓인 하린도 미소를 지었다.두 사람은 식당으로 향해 줄을 서려 했다.하지만 두 사람이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하린은 본래부터 도씨 가문의 아가씨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고, 채은 역시 학교에 발을 들이자마자 뜨거운 화젯거리가 된 ‘미녀 심리 상담사’였다.여기에 커뮤니티 사건까지 더해지자,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다. “저기 봐, 서채은이랑 도하린 아니야? 왜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거지?” “그러게, 두 사람이 왜 같이 식당에 와서 밥을 먹는 걸까?” “뭐야? 대체 무슨 사이지?”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고, 게시물을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