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지수는 사무실 문 앞에서도 도진과 수진의 적나라한 대화를 듣고 있었다.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수진은 기다렸다는 듯 도진의 목에 팔을 감으며 지수를 반히 쳐다봤다. 도진은 그런 수진을 보며 한 번 씩 웃고는, 손으로 수진의 허리를 쓸며 차갑게 지수를 쳐다봤다
" 왜 왔어? 여기가 니가 오고 싶으면 오는 놀이터야?"
지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진이 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불렀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지수는 도진의 물음에 대답대신 들고 온 서류봉투를 책상 위에 툭 던져두고 차갑게 돌아서려했다. 그런 지수의 무심함에 오히려 도진이 당황했다. 당연히 질투하고 화를 내야할 상황에서 지수는 벌레를 본듯 무표정이었다. 알 수 불안감에 도진은 수진을 자신의 의자에 앉히고는 지수에게 다가가 손묵을 거칠게 낚아챘다.
"저건 뭐야?"
"내가 어떻게 알아? 당신이 가져 오라며, 아 당신이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가져오라고 했겠지"
지수의 말에 도진은 '나 보고싶으니 거짓말까지 하면서 온거야?'하는 생각에 그럼그렇지 하는 비웃음을 지으며 지수에게 말했다.
"거짓말할 필요 없어. 그렇게 내 관심이 필요하다면 애라도 데려오던가. 혹시 알아 그럼 내가 다시 예전처럼 이뻐해줄지"
도진의 비열한 말에 지수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지수는 도진과 수진을 차례로 본뒤 손목을 뿌리치며 사무실을 나왔다. 도진은 자신의 손길을 거부하고 나가는 지수의 뒷모습에 짜증과 불쾌감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뭐야 그럼 아이가 생기면 다시 저 여자한테 돌아가겠다는거야?'수진의 눈빛은 도진에 대한 원망과 지수에 대한 질투로 깊어졌다.
"도진아 지수씨가 내가 여기 있어서 화가 났나봐. 내가 설명하고 용서를 구할께." 말을 마친 수진은 급하게 지수를 따라 사무실을 나왔다.
조용한 복도에 지수의 발걸음 소리 뒤로 또각거리는 수진의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 잠깐 이야기 좀 해요" 지수를 부르는 하이톤의 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회색의 몸매를 드러내지 않으 원피스에 가볍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지수와 화려한 붉은색 원피에 굵은 웨이브의 긴머리를 한 수진이 마주한 모습을 본 직원들은 수근거리며 초라해 보이는 사모님 지수와 당당한 수진을 비교했다. 수진은 그 시선을 즐기며 승자의 미소를 지었지만 지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 난 할 말 없어. 강도진? 가지고 싶으면 너 가져 나는 강도진의 정자만 필요할 뿐이니까."
생각지도 못한 지수의 말에 수진은 넋이 나갔다. 강도진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닐거라 생각했던 지수의 자신감에 수진은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며 도진의 사무실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지수는 카페에서 케모마일을 마시며 조금전 일을 생각했다.
도진과 보란듯이 애정을 표현하던 수진, 그리고 끈적끈적한 사무실의 공기. 지수에 대한 배려 없던 도진의 모습. 지수의 마음에서 '남자 강도진'은 증발해 버렸다. 남은 것은 생길지도 모를 아이의 생물학적 부친이라는 껍데기뿐. 밖을 지나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에 지수의 입꼬리가 힘없이 올라갔다.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아이오아 함께할 새로운 시작은 희망이었으나, 그 시작을 위해 죽은 도진의 그림자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사실은 절망이었다. 그렇게 희망과 절망이 뒤썩인 기모한 열망이 지수의 내면을 다시금 잠식해 갔다.CB 그룹 자체 세공 총괄 팀과, 국내외에서 손꼽히는 유명 외주 세공소 세 곳으로 긴급히 보냈던 남미 에메랄드 원석의 교차 검증 결과와 가공 완료 실물이 드디어 하나씩 본사 대표이사 집무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A 바이어 측이 보내온 20% 수율 보고서를 보며 '그쪽 세공사들의 기술력이 부족하거나 원석 컷팅 레이아웃을 잘못 잡은 탓'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던 강도진의 마지막 희망은, 며칠에 걸쳐 쏟아져 들어온 감정서들과 실물 보석 상자 앞에서 사정없이 짓밟히고 말았다.도진은 핏발 선 눈으로 마른 침을 삼키며,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진 감정 보고서들을 하나씩 들춰보았다.[CB 내부 세공 총괄팀 1차 감정서: 원석 내부 미세 균열(Fissures) 및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던 내포물 분포 심각. 보석급 컷팅 진행 시 최종 수율 19.4% 판정.][해외 전문 세공소 B사 감정서: 에메랄드 원석 특유의 결정 결함으로 인한 가공 손실 극대화. 예상 수율 20.1% 수준.][국내 대표 보석가공소 C사 감정서: 평균 수율 18.7%. 세공 공정비 및 위험 부담 감안 시 상업적 가치 대폭 하락.]어느 세공소를 거쳐도 결과는 잔인할 정도로 일관되었다. 한결같이 20% 내외라는 처참한 수치만이 붉은 날인과 함께 감정서 하단에 박혀
시크릿룸을 채운 묵직한 중압감과 정적 속에서, 이지수는 차분한 걸음걸이로 전면 유리창 쪽에서 걸어 나와 마호가니 테이블 상석에 우아하게 앉았다.채권자들 역시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채 맞은편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비록 전파 차단과 갤러리 같은 인테리어에 잠시 위축되긴 했으나, 그들은 금융계의 뼈굵은 거물들이었다.외부에 비친 CB 그룹은 찰스의 폭로와 여론 악화로 리스크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 불안하긴 하지만, 여전히 남미 에메랄드 광산이라는 대형 호재를 쥐고 있는 거대 기업이었다. 아직 도진의 개인 자산이 바닥나 회사 비상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는 내부 파산 위기까지는 알지 못했기에, 채권자들은 자신들이 CB의 목줄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완벽한 '갑(甲)'의 위치에 있다고 믿으며 기고만장한 태도로 일제히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이지수 대표. 직설적으로 말하겠소. 우리가 오늘 여기 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CB 그룹의 채권을 넘겨 달라는 해외 투자자들의 연락이 쇄도했소.""맞습니다. CB 그룹이 아무리 흔들린다 한들 남미 에메랄드 광산이라는 거대한 자산을 쥐고 있는 기업이오. 거래를 선택할 권리는 전적으로 우리 채권단에게 있다는 뜻입니다."거만한 목소리들이 방 안을 울렸지만, 지수는 그들의 말에 단 한마디의 대꾸도 하지 않았다.지수는 그저 다기(茶器)를 집어 들고, 평소 즐기는 어린 찻잎으로 떫은맛이 적고 우아한 향이 일품인
정지상이 산산조각 난 태블릿 파편을 조용히 주워 담아 나간 뒤, 싸늘한 정적이 감도는 집무실에서 강도진은 핏발 선 눈으로 모니터 화면 속 자산 현황표를 멍하니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남미 에메랄드 광산 측에서 요구한 추가 자금을 보내기 위해 그룹 재무팀과 개인 자산 관리인에게 명의로 된 모든 계좌와 유휴 자산을 끌어모으라 지시한 결과가 스크린 위에 띄워지고 있었다.숫자를 하나씩 확인해 내려갈 때마다 도진의 안색에서는 핏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가 푸르스름한 흙빛으로 변해갔다."……이게 끝이라고? 내 개인 자산과 부모님 명의의 채권까지 다 합친 게 겨우 이것뿐이야?!"도진은 목을 죄어오는 듯한 답답함에 거친 손길로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 단추가 튕겨 나갔지만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남미 에메랄드 광산 지분을 매입하고 현지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들어간 비용도 천문학적이었지만,
찰스가 병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사죄한 회개 영상과, 그와 동시에 인터넷 전역에 터져 나온 강도진과의 최후 통화 음성 녹음 파일은 전국을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첫 번째 공개되었던 파일이 도진도 찰스의 표절을 사전에 알고 방조했다는 증거였다면, 이번에 공개된 파일은 찰스를 사지로 몰아넣은 도진의 가혹한 꼬리 자르기가 그대로 담긴 결정타였다. "죽으려면 혼자 죽어. 네가 다 뒤집어쓰고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라고!" 스피커 너머로 울려 퍼지는 강도진의 잔혹한 목소리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와 메인 뉴스 헤드라인을 순식간에 도배했고, 중립을 지키며 관망하던 대중의 민심은 완벽하게 뒤흔들렸다. [단독] '구치소 자살 시도' 찰스 CP, 병실 바닥 무릎 꿇고 사죄… "모든 죄는 내게, 하지만 강도진을 용서 못 해" [사회] 찰스 2차 통화 폭로… "죽으려면 혼자 죽어, 네가 다 뒤집어써" 강도진 폭언 정황
CB 그룹이 전 세계 언론에 사내 조사 결과와 함께 공개한 남미 광산의 1차 채굴 결과서는 시장을 크게 흔들었다. 영롱한 초록빛 원석 수십 킬로그램의 사진과 지질팀의 서명은 자극적이었다. 대중의 시선은 순식간에 찰스의 피투성이 이송 소동에서 희귀 에메랄드 노다지로 쏠렸고, 자사주 매입과 맞물려 주가는 10만 원 선에서 아슬아슬하게 고지전을 이어갔다.그러나 사내 조사 보고서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뒤, 패션 및 디자인계 내부의 분위기는 서늘하기만 했다. 수십 년간 수많은 명품 라인을 배출했던 총괄 디자이너가 구치소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고, 그 뒤에 대표의 표절 방조 음성이 얽혀 있다는 사실은 디자이너 커뮤니티와 명품업계 내부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CB가 발표한 '찰스 개인의 일탈'이라는 사내 조사 보고서를 보며 비웃음을 금치 못했다."어쩜 이런 깜찍한 생각을 했을까."지수의 사무실 맞은편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진우는 차분하게 커피를 마시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지수는 CB의 에메랄드 컬렉션 [Imperial Emerald: 왕좌의 빛] 정식 사전 예약 개시일에 맞춰, 법원에서 완전히
A국 중앙지방법원에서 직접 판결문을 확인하고 돌아온 제이아우라 대표실에는 정적과 함께 승자의 서늘한 여유가 감돌고 있었다.이지수는 앤티크 프레임 너머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판결문 원본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법정에서 강도진의 핏기 없는 얼굴과 이를 악물던 모습을 똑똑히 목격했지만, 지수의 표정에는 격정적인 환희 대신 당연한 이치를 확인했을 때의 담담함만이 서려 있었다."당연한 결과입니다."지수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소파 건너편에 앉아 있던 박성재 변호사와 법무팀 팀원들이 감격 어린 얼굴로 지수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이 당연한 결과를 법정에서 깔끔하게 입증해 주신 건 박성재 변호사님과 법무팀 여러분이죠. 그동안 CB의 치졸한 법적 공작을 막아내느라 다들 정말 애쓰셨습니다."지수는 책상 위 서류함에서 사전에 준비해 둔 봉투들을 꺼내 법무팀원들에게 일일이 건넸다. 그 안에는 당초 약속했던 성과금보다 훨씬 넉넉한 액수의 수표가 들어 있었다.
7일간 입원 치료를 마치고 영양제로 간신히 기력을 회복한 지수는 배아 이식을 끝내고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 도진에게서는 단 한통의 연락도 없었다.지숙 역시 먼저 손을 내밀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적막하고 차가운 공기가 감도는 거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지수의 귓가에 가정부의 은밀한 전화 통화 소리가 드려왔다."네 사모님 진짜라니까요. 그 여자가 일주일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분명 다른 남자가 생긴거에요.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사장님은 방치할수는 없는 거죠 . 네 ,맞아요 제가 어떻게 사모님께 거짓말을 할
도진과 전화를 마친 지수는 떨리는 숨을 몰아쉬며 휴대폰을 조작했다. 익숙한 번호가 아닌, 철저히 숨겨두었던 가른 번호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실장인 혹시 오늘 CB 그룹과 투자 회의가 잡혀 있나요? "라고 물었다. " 네 사장님. 오늘 오후에 미팅이예정되어 있습니다. 혹시 변동사랑이 있으신가요?지수의 입가에 서늘안 미소가 번졌다. 도진이 그토록 화를 내며 중요하도고 외쳤던 미팅은 역시나 지수의 RV인벤스먼트와의 미팅이었다. " 네 변동 사항이 있습니다. 미팅은 그대로 진행해 주세요. 대신 계약서에 싸인은 하지말고
전날 시어머니에게 수모를 당하고 돌아온 지수는 K국에 있는 오빠 이지현에게 연락을 했다. " 오빠~ 잘 지내? 너무 오랫만에 연락했지? 실은 나 부탁하고 싶은게 있어서 ...." 지금 K국은 아침 6시였다. 지현은 시차도 잊은 채 걸려온 동생의 목소리에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다정한 웃음을 지었다."우리 공주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 줘야지. 무슨 일인데. 말만해. 오빠가 다 처리해 줄께."여전히 자신을 아껴주는 오빠의 음성이 지수는 목이 메었지만, 간신히 감정을 억눌렀다. " 오빠 나 아이가 생기면 혼자서 회사를 운영하기
3일간 안정을 취한 지수는 외출준비를 서둘렀다.거울 앞에 선 지수의 차림새는 단조로웠다. 연한 하슬색 원피스에 검은색 C사의 핸드백이 전부였다. 초췌해진 얼굴은 화장으로도 가려지지 ㅇ낳았고 푸석해진 머릿결과 여전희 볼록하게 남아있는 복부는 지수를 실제보다 훨씬 지쳐보이게 했다.누가 이모습을 보고 스물여덟의 꽃다운 나이라 할까. K국의 공주님으로 불리던 지수는 이제 A국의 가정부보다 못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지수는 거울 속 낯선 여자를 뒤로 한채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집을 나섰다.그녀의 차는 도진이 3년전 결혼 기념으로 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