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A국에 도착한 슬비는 K국과 다른 차갑고 축축한 공기를 마시며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 박진우씨 맞으신가요? 저는 GS그룹의 박슬비라고 합니다. 제안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런데 만날수 있을까요?"
갑작스러운 전화에 진우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 GS? 내가 아는 그 GS 맞아? 그 큰 회사에서 나를 왜?'라는 생각을 하며 대답했다.
"피싱 아닌가요? 요즘도 이런 사기에 걸리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하며 거칠게 전화를 끊어 버렸다.
슬비는 황당한 표정으로 끊어진 전화를 한참 보다가 진우에게 메세지와 자신의 명함을 전송했다.
[당신이 아는 그 GS 맞습니다. 좋은 자리 제안을 위해 연락드렸으니 확인하고 연락주세요.]
10분 후 슬비의 전화가 다시 울렸다. 슬비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확인 다 하셨나요? 이런 꼼꼼함 나쁘지 않네요."
" 죄송합니다. 요즘 이런 이상한 전화가 많아서 오해를 했습니다. 저는 퇴근후 언제든 괜찮습니다."
자신의 실수를 바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진우의 모습에 슬비는 그에 대한 평가를 상향조절하였다.
"그럼 오늘 저녁 8시 마샬에서 만나봅시다."
진우와의 연락 후 지수에게 전화했다.
" 지수야 나 출장으로 A국에 왔어~ 나 너 너무 보고 싶어"
지수는 전날도 집에 온 도진이 잠자리를 원하는 듯한 행동이 신경쓰여 휴식을 취하지 못해 멍한 정신으로 받은 전화에서 반가운 친구 목소리가 들렸다.
" 슬비야 너 언제 온거야! 나도 너 너무 보고 싶어" 행복한 미소가 지수의 얼굴에 퍼졌다.
" 나 오늘 왔어 내일 시간 괜찮아? 바로 보고 싶은데 처리할 일이 있어"
"나는 좋아. 우와 내 친구 슬비가 왔다니. 나 너무 행복해"
방방 뛰는 듯한 지수의 목소리에 그녀의 평탄하지 않았던 결혼생활이 생각나서 눈물이 날것 같았지만 슬비는 목을 가다듬었다. "나도 너 볼수 있어서 행복해"
슬비와의 행복한 통화후 지수는 난임센터로 향했다.
"자궁 내막이 얇아서 착상이 힘든것 같네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니 착상을 도와주는 주사맞고 경과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주사를 맞아야 했다. 익숙해지지 않는 주사의 통증과 이번에는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지수의 가슴을 짖눌렀다.
수진은 빨간색의 몸매를 드러내는 원피스를 입고 도진의 회사를 찾아갔다.
익숙하게 도진의 전용 엘르베이터를 타고 25층의 도진의 사무실로 갔다. 한실장은 수진을 보고 "대표님 자리에 계십니다." 라고 말했다.
" 자기야 나 왔어~" 도진의 사무실에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당연하다는 듯 그의 무릎에 앉았다.
도진은 수진의 허리에 손을 감으로 서류에서 눈을 떼고 수진을 봐라봤다.
"남편을 별 말 안해?"
" 괜찮아 그 병신은 내가 당신 만나고 있는지도 몰라. 근데 나 그 집이 너무 싫어"
도진은 피식 웃으며 수진의 앞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하긴 그 집은 니가 살기에는 너무 작지. 서프라이즈 할려고 했는데 내가 늦었네"
도진은 아이에게 과자를 주듯 수진에서 서류를 넘겨주었다.
'포스트 빌리지' 거긴 도진의 집이 있는 곳이었다. 도진이 준비한 것은 같은 자신의 집과 같은 단지의 집문서였다.
"꺄악 너무 좋아. 역시 내가 사랑하는 남자야." 수진은 도진의 입술을 베어물며 말했다.
수진의 깊은 키스에 사무실의 공기는 끈적해지고 있었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한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모님 오셨습니다."
"없다고해. 여기가 놀이터인지 알아!" 도진은 분위기가 깨진것을 아쉬워하며 수진을 봤다.
'쳇 일부러 불렀는데 이러면 안 돼지 ' 수진은 혼자 생각하며 더욱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 때문이라면 괜찮아. 당신 와이프가 당신 사무실에 오는건 이상한게 아니잖아. 당신한테 화낸거 사과하러 온걸지도 몰라 "
도진은 그런가? 생각하며 다시 이야기했다.
"들어오라고해"
CB 그룹 대표실의 공기는 무겁다 못해 축축하게 가라앉아 있었다.강도진은 초조한 듯 집무실 안을 왔다 갔다 하며 손톱을 깨물었다. A국 물류센터 오보 사태는 해명 방송으로 수습했다고 생각했지만, 금융 시장의 서늘한 기류는 여전했다.바로 그때, 정지상 실장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대,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또 뭐야! 이번엔 무슨 일이야!”도진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정지상은 손에 쥔 서류를 달달 떨며 말을 이었다.“CB 뷰티의 단기 대출 만기건으로 시중은행 세 곳에서 일제히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최근 불거진 그룹 신용도 리스크와 해외 사업성 재평가를 이유로…… 이번 만기 연장(롤오버)을 원안대로 진행할 수 없답니다.”“뭐? 연장이 안 된다고? 300억을 당장 상환하라는 소리야?!”“아, 아닙니다! 당장 거부는 아니고…… ‘대출 만기 연장을 위한 전면 재심사’를 통보해 왔습니다. 관련 재무 서류 전체 재제출 및 담보 비율 조정, 그리고 신용도 보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만약 재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일부 원금 조기 상환까지 고려하겠다고……”“재심사? 미친놈들 아니야?! 평소처럼 서류 하나로 롤오버 해주던 것들이 이제 와서 무슨 재심사야!”도진이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다행히 당장 300억을 토해내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금융권이 CB의 목줄을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는 명백한 경고였다. 재심사라는 명목으로 금융권이 자금을 묶어버리면, CB 뷰티는 물론 본사의 현금 흐름까지 피가 말라붙을 게 뻔했다.하지만 도진의 비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현의 선물은 잠시 숨고르기를 하던 도진의 목줄을 다시 한번 옥죄었다.‘검은 태양’을 선주문했던 큰손들 역시, 처음에는 아스테리아의 블랙 다이아몬드 채굴 소식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소식에 '혹시 이번에 내 제품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가 번져나갔다.그리고 그들 나름의 정보망으로 뜬소문인 줄로만 알았던 이야기가 사실로 밝혀지면서, CB의 VVIP 전담팀에는 문의 전화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언제 제품을 받을 수 있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으나, 곧 납품이 시작된다니 다음 예약은 언제 가능하냐는 타진으로 퍼져나갔다.그 은밀한 소문들은 RV의 본거지, ‘더 문’의 ‘맨 케이브(Man Cave)’ 내부에서도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테일러는 맞춤 정장을 위해 VVIP 고객의 치수를 재며 넌지시 입을 열었다.“정말 아스테리아에서 블랙 다이아몬드가 채굴되었다더군요. 전 저희 대표님의 ‘요람’을 보기 전까지 그런 보석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줄 알았습니다.”“그러게 말이야. 내가 선주문을 제때 못 한 게 한이네.”“CB에서 곧 납품받게 되면 내년도 주문도 조만간 받지 않을까요?”“그렇겠지? 그렇다면 이번엔 꼭 주문해 봐야겠어.”“하하, 대표님, 미리 주문 성공을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또 들리는 말에는 아스테리아에서 제품 납품을 거부했다는 소문이 있더라고요. 에이, 설마 아니겠지요?”테일러의 슬쩍 던진 한마디에 고객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연락을 취했다.테일러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통화 중인 고객의
'검은태양'의 첫 선주문이 들어간 지 어느덧 3개월.오션블루와의 약속된 납품 기일은 이미 턱밑까지 차올랐으나, CB 그룹의 생산 공장에서는 이지수가 제시한 기준을 충족하는 단 한 피스의 완성품도 나오지 못했다. 수석 세공사 채준영을 비롯한 세공팀 전체가 밤을 새우며 매달렸지만, 기술력의 한계는 명확했다.그리고 마침내, 결단의 날이 찾아왔다.사라 킴은 박성재를 통해 오션블루의 공식 입장을 전격 통보해 왔다. 계약 불이행에 따른 페널티로, CB 그룹 소유 물류센터의 '무료 이용권'을 오션블루 측에 넘기라는 요구였다. 그리고 어디선가 정보가 흘러나갔는지, 언론과 증권가 찌라시에서는 이 문제를 악의적으로 과장하여 떠들어대기 시작했다.[속보: 오션블루, CB 그룹과의 계약 파기 전격 선언…… A국 핵심 물류센터 소유권 전격 박탈?]뉴스 자막과 찌라시가 자극적으로 도배되는 순간, CB 그룹 전체가 거대한 충격에 휩싸였다. 계약서 조항대로 기한 내 품질을 맞추지 못해 단순한 '물류센터 이용권'만 넘어가는 것뿐이었으나, 자극적인 소문을 접한 대중과 투자자들의 눈에는 CB 그룹이 물류센터라는 거대한 자산의 '소유권' 자체를 오션블루에 빼앗긴 것으로 보이기 딱 좋았다.“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A국 물류센터 소유권을 박탈당했다는 악성 찌라시가 퍼지자마자, 거래처와 각 매장에서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습니다!”“주가가 폭락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과 기관이 전량 매도를 던지기 시작했습니다!”“이사회에서도 당장 공식 해명과 진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비서실로 밀려드는 낭패한 보고들에 도진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한수혁의 말대로 수공예적 결함을 은폐하고 무작정 납품해 버리기에도 이미 늦은 결정이 되어버렸다. 도진이 자신의 뛰어난 사업 능력이라 믿고 쌓아 올렸던 모든
k국 수도 중심가에 위치한 최상급 쇼핑몰 내 플래그십 스토어 연회장.제이아우라와 호프(HOPE)의 팝업스토어 오프닝 현장은 입장을 기다리는 셀럽들과 해외 명품 바이어들, 그리고 수많은 취재진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A국에서의 폭발적인 성공과 온라인상의 뜨거운 입소문에 힘입어 정식 초대되어 성사된 행사였다.팝업스토어의 테마는 A국과 동일하게 기획되었으며, 젊은 층의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냈던 시그니처 타투 서비스까지 그대로 적용되었다. 거기에 더해 과거 CB 그룹 대표의 아내이자 ‘숨겨진 조력자’로만 알려졌던 이지수의 K국 공식 진출 소식까지 더해지며 업계 전체의 눈과 귀가 집중되고 있었다.기자단 앞으로 지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여기저기서 셔터 소리와 함께 플래시 세례가 터져 나왔다.“이지수 대표님! 이번 컬렉션은 평소 디자이너 Z의 스타일과 많이 다른데, 특별한 의도가 있으셨나요?”“이제 디자이너 Z라는 이름으로는 활동하지 않는 건가요?”“CB 그룹 강도진 대표와 한때 부부 사이였다는 루머가 있는데 사실입니까?”쏟아지는 무례하고 집요한 질문 속에서도, 단아하면서도 완벽한 핏의 슈트를 차려입은 지수의 눈빛에는 흔들림이나 주저함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단상 위로 차분하게 걸어 올라간 지수가 마이크 앞에 서자, 어수선하던장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제 사생활에 대한 질의응답은 진행하지 않겠습니다.”지수의 나직하지만 단호한 일침에 기자들이 침을 삼켰다. 지수는 좌중을 둘러본 뒤 우아한 손짓으로 곁에 서 있던 인물을 가리켰다.“그리고 이번 HOPE 컬렉션은 여기 계신 제이아우라의 수석 디자이너, 윤유진 님의 작품들입니다. 우리는 이번 작품에 ‘자유’라는 가장 숭고한 가치를 담아냈습니다.
작업실 안은 묵직한 정적과 정교한 세공 도구들의 나직한 마찰음만이 흘러가고 있었다.지수는 고급스러운 광택이 흐르는 최고급 실크 드레스 스커트 자락을 넓게 펼쳐놓은 채, 섬세하게 꼬인 차분한 빛깔의 은사(銀絲) 실을 바늘에 걸었다. 오빠 지현과 결혼할 하나뿐인 친구 슬비를 위해 드레스의 하이라이트를 직접 작업하는 순간이었다.드레스는 상체에서부터 유려하게 흘러내려 스커트 아랫단까지 은하수가 쏟아지는 듯 웅장하고 우아한 실루엣을 자랑하고 있었다. 지수는 지나친 보석의 남발로 시선이 피로해지지 않도록, 스커트 아랫단에 슬비가 가장 좋아하는 ‘장미’ 문양을 은사로 은은하고 품격 있게 수놓아 나갔다.차분한 은빛 장미 자수가 스커트 자락을 따라 고풍스럽게 피어났다. 그리고 그 자수 사이, 장미 꽃잎 끝에 이슬이 맺힌 듯한 몇몇 포인트 지점에만 0.05캐럿짜리 최상급 멜리 다이아몬드를 과하지 않게 절제하며 살짝 물리듯 박아 넣었다.조명을 받을 때마다 과한 눈부심 대신, 실크와 은사 자수의 고급스러운 결을 타고 은은한 기품이 흘러넘쳤다.“……대표님, 자수 레이스의 결을 따라 은사와 보석의 균형을 잡으신 감각이 정말 대단합니다. 보석만 가득했을 때보다 훨씬 단정하고 우아해요.”엘리제 브랜드의 수석 드레스 디자이너가 탄복하며 바라보자, 지수는 바늘을 멈추지 않은 채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슬비가 입을 세상에 단 하나뿐인 드레스니까요. 디테일이 너무 과하면 사람보다 옷이 먼저 보여요. 슬비가 가장 아름답게 돋보일 수 있도록, 절제된 화려함을 담고 싶었어요.”지수의 손끝이 지날 때마다 실크 드레스는 단순한 옷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으로 거듭나고 있었다.드레스 작업을 끝낸 지수는 곧바로 보석 세공대로 자리를 옮겼다. 눈에 루페(확대경)를 고정한 지수의 손에 들
지수는 정지상 팀장의 연락을 받은 뒤, 처음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하다 나중에는 아예 비서실 선에서 처리하도록 넘겨 버렸다. 하나뿐인 오빠 지현과 친한 친구 슬비의 결혼식 준비에 하이엔드 브랜드 ‘다크문’의 VVIP 의뢰까지 폭주하던 터라, 도진에게까지 신경을 쓸 시간적·감정적 여력이 전혀 없었던 탓이다.“대표님, 이지수 대표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현재 브랜드 런칭 및 해외 일정으로 스케줄이 빽빽하여 강 대표님을 따로 만날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합니다.”정지상 팀장의 보고에 강도진은 실소했다. 만나주지 않겠다? 감히 이지수가 자신을 거부해?“스케줄을 조정해서라도 시간을 빼라고 해! 내가 검은태양 납품 건 때문에 직접 만나겠다고 하지 않았나!”“이미 제이아우라 법무팀과 비서실을 통해 전달했습니다만, 공적인 서면 인터뷰 외의 개인적 면담은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단호합니다.”도진은 짓씹듯 욕설을 내뱉었다. 지수는 이제 도진이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까마득한 높이에 서 있었다. 분통이 터졌지만 당장 급한 불을 꺼야 했다. 오션블루와의 계약에는 CB 그룹의 향후 사운이 걸린 국내 물류사용권이 담보로 걸려 있었다. 납기 일자는 이제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결국 도진은 CB의 수석 세공사이자 디자이너인 채준영을 급히 호출했다. 도진은 준영에게 지수가 요구한 '검은태양'의 디자인 세공 수정안을 내밀었다.“준영 씨, 이 요구사항대로 세공을 완성해서 기한 내에 물량을 맞출 수 있겠습니까?”서류를 훑어보던 준영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시안 속 디테일은 인간의 손기술이라기보다 예술의 영역에 가까웠다. 한참을 서류만 노려보던 준영이 마침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불가능합니
도진과의 길게만 느껴졌던 새로운 계약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온 지수는 드레스룸에 들어서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복잡
"기쁘지... 않아?" 수진의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에 도진은 굳어있던 안면 근육을 억지로 끌어올렸다. 껍데기뿐인 미소가 그의 얼굴에 기괴하게 자리 잡았다. "당연히 기쁘지. 내일 병원 갔다가 아기용품부터 보러 가자. 전에 네가 갖고 싶다던 한정판 가방도 사줄게." 그의 다정한 음성에 수진은 안심한 듯 도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도진은 그녀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입안의 쓴 침을 삼켰다. 수진과 밀회를 즐기면서도 잠자리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때마다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피임을 챙겼던 자신이었다. '임
그토록 기다렸던 임신 소식이었지만, 지수와 도진에게 허락된 기쁨은 야속할 정도록 짧았다. 다음날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확신을 유보한 채 일주일 후에 다시 검사하자는 말만을 나겼다. 그 일주닝은 도진과 지수에게 평생보다 긴 지옥이었다. 손끝하나 대면 깨질 것 같은 불안 속에서 부부는 서로를 위로하며 버텼으나, 운명은 그들에게 자비롭지 않았다.일주일 후 다시 마주한 초음파 화면에는 생명의 고동 대신 기괴한 그림자만이 가득했다. " 포상기태 입니다." 의사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 임신유지 호르몬의 과다 분비로 태아를 제
슬비를 만나고 잠시 RV에서 현재까지 도진의 회사에 투자된 내역을 훝어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던 지수는 아랫쪽의 축축한 감각에 번쩍 눈을 떳다. 생리가 시작된 것이다. 이번에도 실패한 것이다. 임신이라는 희망이 이내 절망으로 뒤바뀌는 이 지독한 상실감은, 몇번을 겪어도 결코 익숙해지지 않았다.평소와 다르게 일찍 돌아온 도진은 지수를 찾으며 방문을 열었을때 무기력하게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어깨를 들썩이는 지수의 모습을 보았다. 이번 시술은 유난히 지수를 갉아먹었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된 지수를 보며, 힘들었을 순간 곁을 지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