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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단장에게 전부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8 17:00:00

8월 18일 밤 열 시. 왕실 기사단 본관 3층. 단장실.

카일은 다시 단장실 문 앞에 섰다. 이번엔 상자가 없었다. 손에 아무것도 없었다.

두드렸다.

“들어와.”

그레타는 창가에 서 있었다. 창이 닫혀 있었다. 빗장까지. 7월 5일 밤 이후로 그레타는 단장실 창을 열지 않았다. 여름인데. 단장실 안이 파이프 연기로 뿌옜다.

“앉아.”

카일은 앉지 않았다. 9년 동안 단장실에서 앉은 적이 없었다.

“앉으라니까. 오늘은 길 거 같으니까.”

카일이 의자에 앉았다. 처음으로. 책상 앞 나무 의자. 삐걱거렸다.

그레타가 책상 뒤에 앉았다. 의족을 책상 위에 올리지 않았다. 바닥에 두었다. 파이프도 내려놓았다.

“말해.”

카일은 그레타를 봤다.

“…무엇을.”

“전부. 상자에 안 쓴 거.”

카일은 말이 없었다.

“스물두 장에 안 쓴 게 있어. 5월 2일 장, 「나는」 다음 빈칸. 그거 말고도 많지. 네가 확인한 것만 쓰는 놈이라 확인 못 한 건 다 빼놨어. 네 머릿속에만 있는 거. 그거 말해.”

그레타가 손깍지를 꼈다. 책상 위에.

“나도 이제 증거를 모으러 다닌다. 남부, 잿골, 시 의회. 근데 네 머릿속을 모르고는 어디를 파야 할지 몰라. 다 말해. 시간 많다. 오늘 밤 새워도 돼.”

†

카일은 오래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작했다. 처음부터.

“열네 살.”

그레타 눈이 조금 움직였다.

“잿골에 살았습니다. 강 쪽으로 세 골목. 어머니하고 둘이. 어머니는 무두질 공방에서 가죽 씻는 일을 했습니다. 손이 늘 갈라져 있었습니다. 겨울에 피가 났습니다.”

카일 목소리가 덤덤했다.

“그해 겨울 열병이 돌았습니다. 올여름 잿골에 돈 그 열. 붉은 점, 오한, 땀 안 나는. 어머니가 걸렸습니다. 의원은 안 왔습니다. 잿골엔 의원이 안 옵니다. 지금도.”

그레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게.

“백탑 앞에 줄을 섰습니다. 그때 대주교가 매주 단 위에서 아픈 사람 머리에 손을 얹었습니다. 기적. 어머니를 업고 사흘. 어머니가 마지막 은화를 헌금함에 넣었습니다. 줄 서기 전에. 의원 부를 돈이었습니다.”

“사흘째 저녁. 열 명 남았을 때.”

카일이 거기서 멈췄다. 처마 밑에서 성녀에게 말하다 멈춘 그 자리에서. 그레타가 기다렸다. 재촉하지 않았다.

“…어머니 이마가 차가워졌습니다.”

단장실이 조용했다. 파이프 연기가 천장에 고였다.

“그래서 기사가 됐습니다. 칼로 벨 수 있는 것만 베려고. 열은 못 벱니다. 기적도 못 벱니다. 칼로 벨 수 있는 건 적이고, 도적이고, 거짓말하는 놈입니다. 그래서 단장님이 신전 감시를 맡기셨을 때 거절 안 했습니다. 거짓말하는 놈을 잡으러 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잡았나.”

카일이 그레타를 봤다.

“잡았습니다. 첫날. 인광 가루.”

그레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지 않았다. 금고 안 스물두 장에 이미 있는 얘기였다.

“그리고.”

“그리고.”

카일은 말을 고르다가 고르지 않았다.

“그 사람이 맨발이었습니다. 발이 빨갰습니다. 찬 돌 때문에. 저는 그걸 봤습니다. 수천 명 중에 그걸 본 게 저 하나였습니다. 그날 밤 그 사람이 빵을 내밀었습니다. 「배고프세요?」 저는 안 받았습니다. 의자 위에 두고 갔습니다. 아침에 망토에 넣었습니다. 버리면 에마가 떠들 게 뻔해서.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버리기 싫었습니다.”

그레타가 손깍지를 풀었다.

카일은 이어서 말했다. 수프. 소매. 잿골. 바울. 버드나무 껍질. 「리아예요.」 회랑. 손목. 「보고하실 거예요?」 「확인했습니다.」

개구멍 쪽지. 페터 영감. 고름. 「이건 가짜예요. 저건 진짜 상처고요.」 금식. 치즈. 처음 웃음. 뒤뜰. 삽. 들꽃골. 「약은 갑니까.」 「확인했습니까.」 처마. 비. 손등. 「그럼 잘 오셨어요. 저 가짜예요. 잡으셨어요.」

카일은 다 말했다. 상자에 쓴 것도, 안 쓴 것도. 확인한 것도, 확인 못 한 것도.

중간에 그레타가 한 번 일어나 창가 물병에서 물을 따라 카일 앞에 놓았다. 카일은 그 물을 마시지 않았다. 말하느라. 새벽 두 시쯤 그레타가 다시 일어나 물을 새로 따랐다. 카일은 그제야 마셨다. 목이 갈라져 있었다. 9년 치 말을 하룻밤에 하는 목이었다.

대련에서 시녀를 성녀로 잘못 본 것. 손바닥에 쑥. 「닷새요. 제 말로는.」 붉은 점을 본 밤. 「나도 갑니다. 감시니까.」 장작. 봉쇄. 담. 깍지 낀 손 위에 맨발. 오렌을 업은 루카스. 212칸. 등 뒤의 노래. 망토 끝을 쥔 손. 의자. 발. 편지. 소리 없이 우는 사람. 새끼손가락 옆 한 마디. 「안 괜찮습니다.」 꿀과자 반쪽.

마지막 밤. 빈 보고서. 「지금 써요.」 「대상: 가짜 성녀. 특이 사항: 진짜 사람.」 손. 「다시 와요.」 회색 실.

카일이 손목을 들었다. 회색 실 매듭.

“이건 그 사람이 묶었습니다. 들꽃골에선 먼 길 가는 사람한테 묶는다고. 풀리기 전에 돌아오라고.”

그리고 망루. 등불. 두 번. 촛불 두 번. 세 번. 세 번.

카일은 말을 마쳤다.

창밖이 밝아지고 있었다. 새벽이었다.

†

그레타가 오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파이프를 집었다. 담배를 채웠다. 불을 붙이지 않았다. 그냥 들고 있었다.

“에벤하르트.”

“예.”

“너 9년 동안 나한테 한 말 다 합쳐도 오늘 밤 한 말보다 적다.”

“…예.”

“알아?”

“압니다.”

그레타가 파이프를 내려놓았다. 일어났다. 의족. 딱. 창가로 갔다. 빗장을 풀었다. 창을 열었다. 새벽바람이 들어왔다. 연기가 빠져나갔다.

그레타가 창밖을 봤다. 강 건너 백탑. 6층 창. 아직 깜깜했다.

“감정은 증거가 아니다.”

그레타가 말했다. 창을 보며.

“오늘 네가 한 말. 다 진짜인 거 안다. 근데 법정에서 이건 「감시 기사가 감시 대상에게 마음을 줬다」 한 줄이다. 대주교 쪽에서 그 한 줄로 네 스물두 장을 다 태운다.”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레타가 돌아섰다.

“장부를 가져와.”

카일이 그레타를 봤다.

“대주교 금고 원본. 들꽃골 줄이 적혔다가 지워진. 그게 있으면 네 마음 따위는 아무도 안 물어본다. 장부는 마음이 없으니까.”

“…오렌 사제가 방법을 안다고 했습니다. 비서 사제가 일주일에 한 번 술을 마십니다.”

그레타 눈썹이 올라갔다.

“일흔두 살 늙은이한테 대주교 금고를 털라고?”

“제가 시킨 게 아닙니다. 그분이 먼저.”

그레타가 웃었다. 소리 없이. 어깨만 흔들렸다.

“그 신전엔 제정신인 사람이 늙은이 하나, 수련 수녀 하나, 가짜 성녀 하나뿐이군.”

†

그레타가 책상으로 돌아왔다. 의자에 앉지 않고. 카일 의자 옆으로 왔다.

카일이 일어나려 했다. 그레타가 손으로 어깨를 눌렀다. 앉으라고.

그리고 그 손으로 카일 어깨를 툭 쳤다. 한 번.

9년 동안 그레타가 카일 몸에 손을 댄 건 처음이었다. 입단식 때 기사 서임 칼등으로 어깨를 친 것 말고는.

“잘했다.”

그레타가 말했다. 짧게.

카일은 그 말을 듣고 움직이지 않았다. 의자에 앉은 채로. 어깨에 그레타 손이 닿았던 자리가 뜨거웠다.

“감시를 잘했다는 게 아니다. 감시는 엉망이었어. 보고서는 거짓말투성이고 감시 대상이랑 담을 넘고 다니고. 기사단 역사상 최악의 감시 기사다.”

“…예.”

“근데 열네 살 녀석이 하고 싶었던 거. 그거 잘했다.”

카일은 고개를 숙였다. 손목을 봤다. 회색 실. 손등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하나.

그레타가 못 본 척했다. 창가로 돌아갔다. 한참 창밖만 봤다. 그러다 혼잣말로 말했다. 카일 쪽은 보지 않고.

“내 다리도 그해 겨울이었다. 북쪽 경계. 동상. 의원이 사흘 만에 왔지. 사흘이 늦어서 무릎 아래를 잘랐다.”

카일이 고개를 들었다. 9년 동안 그레타 다리 얘기는 아무도 몰랐다. 기사단에선 전투에서 잃었다는 소문만 돌았다.

“그때 내가 배운 거. 사흘은 길다. 기다리게 하는 놈들이 있으면, 칼로 안 되면 종이로라도 베야 한다.”

그레타가 창틀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딱, 딱. 의족 소리와 같은 박자. 카일은 그 박자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 사람도 사흘을 기다렸다. 북쪽 눈 속에서. 그리고 기다리게 한 놈들을 원망하는 대신 기사단장이 되어 아무도 사흘을 기다리지 않게 하려고 했다. 그래서 보고서는 세 줄. 길면 늦으니까.

†

아침 여섯 시. 그레타가 의족을 끌고 단장실을 나섰다.

“어디 가십니까.”

카일이 물었다. 눈가를 손등으로 닦은 뒤.

“폐하 집무실.”

“…이 시간에요?”

“폐하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신다. 열여섯 살 때부터. 내가 호위했으니 알지.”

그레타가 문을 열었다. 복도.

“폐하께 미리 말씀드려 놓을 거다. 아직 증거는 없지만, 증거가 오고 있다고. 그리고 그 증거가 오면 폐하께서 직접 보셔야 한다고. 신전 법정 말고.”

“…폐하께서 들으시겠습니까.”

“폐하는 하지 축제 날 다리 위에서 그 아가씨 손을 봤다. 빛이 나는 손. 그리고 얼굴을 봤지. 나한테 물으시더군. 「저 아이 얼굴이 왜 저렇게 슬프냐」고.”

카일이 그레타를 봤다.

“폐하는 말수가 적으셔. 근데 보는 건 다 보신다. 너처럼.”

그레타가 복도로 나갔다. 의족 소리. 딱, 딱. 계단으로. 왕의 집무실은 본관 반대편 탑. 계단이 많았다. 의족으로는 오래 걸렸다.

카일은 단장실에 혼자 남았다. 열린 창. 새벽바람.

강 건너 백탑 6층 창에 불이 켜졌다. 새벽 여섯 시. 성녀가 일어난 시간.

카일은 창가로 갔다. 단장실 창. 그레타 책상 옆에 등불이 하나 있었다. 카일이 그걸 들었다. 덮개를 닫았다. 열었다.

한 번.

6층 촛불이 꺼졌다. 켜졌다.

한 번.

카일은 단장실 등불을 제자리에 놓았다. 그레타가 알면 뭐라고 할지 생각했다. 아마 아무 말 안 할 것이다. 파이프를 물고 어깨만 흔들 것이다.

†

오후. 서쪽 성벽.

루카스가 망루로 올라왔다. 숨을 헐떡이며. 꿀과자 봉투 없이.

“대장님! 단장님이 폐하 만나셨대요! 새벽에! 경비병들이 다 봤대요. 단장님이 의족 끌고 폐하 탑 계단 백 칸 넘게 올라가셨대요. 쉬지도 않고. 폐하 시종이 「기사단장님 무릎이」 했더니 단장님이 「무릎은 하나밖에 없다, 남은 하나 아껴 쓰는 중이다」 하셨대요.”

카일은 강 건너를 보며 들었다.

“그리고 한 시간 있다 나오셨대요. 나오시면서 웃고 계셨대요. 혼자서. 시종들이 무서웠대요.”

루카스가 카일을 봤다.

“대장님. 뭔가 일어나요?”

“…일어나고 있다.”

“좋은 거예요?”

카일은 손목의 회색 실을 봤다.

“모른다. 근데 혼자 하는 거 아니다.”

루카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저도 껴 주시는 거예요?”

“너는 처음부터 껴 있었다.”

“언제부터요?”

“지렁이.”

루카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망루가 울렸다.

『감시 보고서 — 8월 18일

대상: 기사단장.

특이 사항: 전부 말함. 단장님이 어깨를 침.』

(2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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