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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오렌의 장부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29 17:00:00

8월 27일 오후 다섯 시. 하수 돌계단, 뒷담 쇠창살 앞.

오렌이 그날도 담 그늘에 앉아 있었다. 의자, 지팡이, 무릎 위 화분. 보라색 꽃은 다 지고 씨앗 꼬투리가 맺혀 있었다.

카일은 창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지난 열흘 동안 세 번 왔다. 비번 날마다. 오렌은 세 번 다 그 자리에 있었다. 「늙은이가 바람 쐬는 거요.」

오늘은 오렌 발치에 빵 바구니가 하나 있었다. 신전 부엌 바구니. 둥근 빵이 여섯 덩이.

“기사 양반, 배고프오?”

오렌이 바구니를 들어 창살 사이로 밀었다. 창살 간격이 좁았다. 바구니가 걸렸다. 오렌이 빵을 하나씩 꺼내 창살 사이로 넘겼다. 카일이 받았다. 하나, 둘, 셋.

넷째 빵을 넘길 때 오렌이 낮게 말했다.

“바구니 바닥.”

카일은 빵을 받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다섯, 여섯. 그리고 빈 바구니를 창살 사이로 당겼다. 바구니가 걸렸다. 카일이 바구니를 기울였다. 바구니 바닥 천이 들렸다. 그 아래.

가죽 표지. 손바닥 두 개만 한 크기. 두께는 손가락 두 마디. 낡았다. 모서리가 닳았다. 표지에 금박으로 백탑 문장.

카일 손이 굳었다. 빵 냄새 아래에서 오래된 가죽 냄새가 올라왔다. 습기와 잉크와 손때.

“원본이오.”

오렌이 말했다. 하늘을 보며. 바람 쐬는 늙은이처럼.

“올해 것. 정월부터 지난달까지. 들꽃골 줄이 있는.”

카일이 바구니를 마저 당겼다. 창살에 걸린 바구니를 비틀어서. 장부가 바구니째 넘어왔다. 카일은 그걸 빵 여섯 덩이 밑에 다시 묻었다. 천으로 덮었다.

“…어떻게.”

“그저께 밤. 비서 사제가 술 마시는 밤. 쉰 해 동안 이 신전에서 장부를 옮겨 적은 늙은이가, 장부 금고 열쇠가 어디 걸려 있는지 모를 리 있겠소. 비서 사제는 술에 취하면 열쇠 꾸러미를 침대 머리맡 못에 거오. 스무 해 전에 들어온 녀석이오. 버릇이 안 바뀌었지.”

오렌이 지팡이로 땅을 짚었다. 달각.

“방에 들어가서, 열쇠 가지고, 2층 대주교 집무실 옆 서고 금고 열고, 장부 꺼내서, 금고 닫고, 열쇠 도로 걸고, 나왔소. 계단이 문제였지. 4층에서 2층, 2층에서 4층. 손이 떨려서 열쇠를 세 번 떨어뜨렸소.”

카일은 오렌을 봤다. 일흔둘. 등 굽은. 손이 떨리는. 그 손으로.

“걸리면.”

“걸리면 늙은이가 노망났다고 하겠지. 서고에서 잠꼬대하다 장부를 들고 나왔다고. 쉰 해 동안 장부 옮겨 적던 늙은이니까 꿈에서도 장부를 찾는다고.”

오렌이 웃었다. 이 빠진.

“그 핑계 대려고 쉰 해를 버틴 거요. 하하.”

오렌 웃음이 길지 않았다. 웃다가 기침을 했다. 콜록콜록. 카일이 창살 사이로 손을 넣으려 했다. 손이 안 들어갔다. 오렌이 손을 저었다.

“괜찮소. 늙은이 기침이오. 아가씨가 박하차를 끓여 주라고 에마한테 시켰다더군. 아가씨는 6층에 갇혀서도 남 기침 소리를 듣소.”

†

“확인하시오. 여기서.”

오렌이 말했다.

“늙은이 눈으로는 잘 안 보였소. 기사 양반 눈으로 확인하고 가시오. 확인 안 된 걸 들고 가는 사람 아니라면서.”

카일은 빵 밑에서 장부를 꺼냈다. 창살 앞에 쪼그려 앉은 채로. 펼쳤다.

글씨가 빽빽했다. 비서 사제 글씨. 날짜, 항목, 들어온 돈, 나간 돈. 한 장에 서른 줄쯤.

카일은 3월부터 넘겼다. 강림식 한 달 전.

「3월 2일. 남부 순회 사제 보고 — 들꽃골 약초꾼 딸. 데려옴. 경비 은화 열.」

「3월 5일. 인광 가루 — 기사단 납품 상인에게서 구입. 은화 넷. 장부상 「제단 장식」.」

카일은 그 줄에서 멈췄다. 인광 가루. 「제단 장식」. 대주교가 산 거였다. 성녀가 산 게 아니라.

다음 장.

「3월 20일. 들꽃골 — 약재 한 수레, 의원 한 명 파견. 매달. 예산 은화 서른.」

그 줄 위에 가로로 줄이 그어져 있었다. 한 줄. 깔끔하게. 줄 아래로 글씨가 다 보였다. 지운 게 아니라 그은.

그 옆 여백에 작게. 다른 잉크. 다른 날.

「보류. — M.」

M. 마르쿠스.

카일이 장을 넘겼다. 4월.

「4월 3일. 강림식. 헌금 — 금화 넷, 은화 이백십.」

「4월 4일. 들꽃골 약재·의원 — 은화 서른.」 줄. 「보류. — M.」

「4월 10일. 대주교 별장(남쪽 호숫가) — 석재 대금. 은화 백.」

5월.

「5월 4일. 들꽃골 약재·의원 — 은화 서른.」 줄. 「보류. — M.」

「5월 12일. 대주교 별장 — 목재 대금. 은화 백이십.」

6월.

「6월 2일~4일. 기적의 날(잿골 기도). 헌금 — 금화 여섯, 은화 삼백.」

「6월 4일. 들꽃골 약재·의원 — 은화 서른.」 줄. 「보류. — M.」

「6월 17일. 잿골 봉쇄 해제. 「성녀 기도로 열병 거둠」. 감사 헌금 — 금화 셋.」

「6월 20일. 대주교 별장 — 정원 공사. 은화 이백.」

7월.

「7월 7일. 하지 축제. 헌금 — 금화 아홉.」

「7월 8일. 들꽃골 약재·의원 — 은화 서른.」 줄. 「보류. — M.」

「7월 15일. 대주교 별장 — 대리석 계단 열두 칸. 금화 둘.」

카일은 장부를 덮었다.

창살 너머에서 바람이 불었다. 뒤뜰 박하 냄새. 반만 남은 이랑에서. 카일은 그 냄새를 맡으며 장부 표지의 금박 문장을 봤다. 백탑. 기적을 파는 탑.

손이 떨렸다. 처음으로. 대련에서 베였을 때도, 붉은 점을 봤을 때도 이렇게는 안 떨렸다.

넉 달. 매달 은화 서른. 매달 그어진 줄. 매달 「보류. — M.」 그리고 같은 달 별장. 석재, 목재, 정원, 대리석 계단 열두 칸.

들꽃골 스무 명. 마르타가 산 너머에서 버드나무 껍질을 지고 오는 동안. 성녀가 단 위에서 맨발로 서 있는 동안. 은화 서른이 「보류」되고, 금화 둘이 대리석 계단이 됐다.

“…확인했습니다.”

카일이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렇소.”

오렌이 말했다. 하늘을 보며.

“나는 쉰 해 동안 이걸 옮겨 적었소. 사본에. 줄 그은 건 안 옮겨 적지. 원칙이오. 그은 줄은 없는 줄. 그래서 내 사본엔 들꽃골이 처음부터 없소. 쉰 해 동안 나는 없는 줄을 옮겨 적은 거요.”

오렌이 지팡이를 쥔 손을 봤다. 떨리는 손.

“3년 전 눈이 나빠졌다고 손을 뗀 건 거짓말이오. 눈은 아직 괜찮소. 손이 떨려서. 지금 대주교가 들어온 뒤로 줄 그은 게 너무 많아서. 고아원 예산, 빈민 배급 예산, 그리고 들꽃골. 그걸 안 옮겨 적는 손이 떨려서.”

카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늙은이가 너무 오래 입을 다물었소.”

오렌이 말했다. 처음으로 카일을 봤다. 창살 너머로.

“쉰 해. 이제 그 입을 기사 양반한테 빌려주겠소. 가져가시오. 그리고 그 단장한테. 그리고 왕한테.”

†

카일은 장부를 빵 밑에 묻은 바구니를 들고 일어났다.

“사제님. 대주교가 장부가 없어진 걸 알면.”

“월말 정산은 사흘 뒤요. 그 전엔 안 열어 보오. 사흘 안에 베껴서 돌려주시오. 원본은 금고에 있어야 하오. 없어진 게 들키면 늙은이 핑계도 안 통하니까.”

“…사흘.”

“기사단에 글씨 잘 쓰는 서기가 있을 거 아니오. 아니면 그 덩치 큰 젊은이. 루카스.”

“루카스는 글씨를 못 씁니다.”

“그럼 기사 양반이 쓰시오. 세 줄씩 쓰던 그 작은 글씨로. 사흘 밤 새면 되오.”

오렌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화분을 들고. 씨앗 꼬투리가 흔들렸다.

“그리고 이거.”

오렌이 꼬투리 하나를 따서 창살 사이로 내밀었다.

“브루노 풀 씨앗이오. 열 내리는. 아가씨한테 줄 수는 없으니 기사 양반이 갖고 있다가, 나중에 아가씨가 밭을 다시 일구면 주시오.”

카일은 씨앗 꼬투리를 받았다. 망토 안주머니에 넣었다. 종이 두 장 옆에. 개구멍 쪽지, 마지막 보고서. 그리고 약초 가게 할머니 박하 사탕 봉지.

“…나중에.”

“나중이 올 거요. 늙은이가 담도 넘고 금고도 열었는데 나중쯤이야.”

오렌이 지팡이를 짚고 쪽문 쪽으로 걸어갔다. 달각, 달각. 반쯤 가다 돌아봤다.

“기사 양반. 아가씨가 오늘 아침 기도 때 나한테 물었소. 회색 망토 기사가 요즘 잘 먹고 다니냐고. 내가 모른다고 했지. 근데 오늘 보니 말랐구려. 빵 여섯 덩이 다 드시오. 장부 말고 빵도.”

쪽문이 닫혔다. 카일은 바구니를 내려다봤다. 장부 위에 빵 여섯. 그중 하나를 꺼내 한 입 베어 물었다. 신전 부엌 빵. 첫날 밤 의자 위에 놓였던 그 빵 맛이었다. 카일은 빵을 다 먹었다. 한 덩이를. 창살 앞에 쪼그려 앉아서. 하수 돌계단 꼭대기 경비병이 그걸 내려다봤다. 사복 남자가 신전 담 밑에서 빵을 먹는. 경비병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카일은 남은 다섯 덩이를 장부 위에 그대로 두고 일어났다. 장부를 덮는 데 빵만 한 게 없었다. 오렌이 쉰 해 동안 배운 일이었다.

†

밤. 기사단 숙소.

카일은 책상 위에 장부를 펼쳤다. 옆에 흰 종이 한 묶음. 펜. 잉크.

베끼기 시작했다. 3월부터. 한 줄 한 줄. 날짜, 항목, 금액. 그은 줄은 그은 대로. 「보류. — M.」은 그 글씨 그대로 흉내 내서.

새벽 세 시. 루카스가 문을 두드렸다. 꿀과자 대신 등불 기름 한 병을 들고.

“대장님 방에 불이 계속 켜져 있어서요. 기름 떨어지실까 봐.”

루카스가 책상 위를 봤다. 장부. 금박 문장.

“…이거 백탑 거예요?”

“그래.”

“훔치셨어요?”

“빌렸다. 사흘.”

루카스가 장부를 봤다. 카일을 봤다. 그리고 의자를 하나 끌어와 앉았다. 카일 옆에.

“저 글씨 못 써요.”

“알아.”

“근데 숫자는 읽어요. 대장님이 베끼시면 제가 맞나 볼게요. 숫자만.”

카일은 루카스를 봤다. 루카스가 장부 한 장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7월 15일. 대리석 계단 열두 칸. 금화 둘.」

“…대리석 계단이 금화 둘이에요? 우리 기사단 한 해 말 먹이 값이 금화 하나인데.”

“그래.”

루카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다른 줄을 짚었다. 그 위. 「7월 8일. 들꽃골 약재·의원 — 은화 서른.」 그어진 줄.

루카스가 그 줄을 오래 봤다.

“…이거 성녀님 고향이에요?”

“그래.”

루카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부를 카일 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한 번 문질렀다. 꿀과자 먹을 때 말고는 늘 웃던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리고 숫자를 읽기 시작했다. 카일이 베낀 줄 옆에서. 하나씩. 「3월 20일, 은화 서른, 맞아요.」 「4월 4일, 은화 서른, 맞아요.」 목소리가 낮았다. 루카스 목소리가 낮은 건 처음이었다.

새벽 다섯 시. 촛불이 다 탔다. 루카스가 가져온 기름을 등불에 부었다.

창 너머 백탑 6층. 촛불이 켜져 있었다. 새벽인데.

카일은 그걸 봤다. 그리고 다시 펜을 들었다.

『감시 보고서 — 8월 27일

대상: 백탑 장부 원본. 정월부터 7월까지.

특이 사항: 들꽃골 은화 서른 매달 「보류」. 같은 달 대리석 계단.』

(2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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