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가짜 성녀를 감시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Chapter 1 - Chapter 10

27 Chapters

1화. 강림식

4월 3일 정오. 백탑 대신전 앞뜰.카일 에벤하르트는 경비 줄 맨 끝에 서 있었다. 회색 망토, 허리에 검, 두 손은 등 뒤로. 앞뜰은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왕도 세렌 사람 절반이 온 것 같다고 옆에서 루카스가 말했다.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숫자를 셌다. 앞줄 귀족 의자 백이십 개. 그 뒤로 선 사람들. 담 위에 올라앉은 아이들. 강 건너 지붕 위에까지 사람이 있었다.“대장님, 저기 보세요. 저게 기적의 단이래요.”루카스가 턱으로 가리켰다. 앞뜰 한가운데 하얀 돌로 쌓은 단. 사람 키만 한 높이. 단 위에 금실 천이 깔려 있었다. 천 끝에 일곱 개의 촛대.“예순 년 만의 성녀 강림이래요. 남부에서 오셨대요. 산골에서 기도하다가 하늘에서 빛이 내려왔대요.”“누가 그래.”“다들요.”카일은 다들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열네 살 이후로.종이 울렸다. 일곱 번. 백탑 꼭대기 종. 소리가 강을 건너 왕성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앞뜰이 조용해졌다.대주교 마르쿠스 벨이 먼저 나왔다. 하얀 수염, 금실 사제복. 걸음이 느리고 부드러웠다. 단 앞에서 두 팔을 벌렸다.“세렌의 자녀들이여. 오늘 신께서 우리에게 다시 손을 내미셨습니다.”목소리가 낮고 따뜻했다. 앞줄 귀족 부인 몇이 벌써 손수건을 꺼냈다. 카일은 대주교 손을 봤다. 반지가 다섯 개. 그중 둘은 왕실 보물 목록에서 본 적 있는 모양이었다.‘기부금이 줄었다더니.’카일은 그 생각을 접었다. 오늘 임무는 경비였다. 사람이 넘어지지 않게, 소매치기가 없게, 귀족 의자 쪽으로 밀려들지 않게.†성녀가 나왔다.작았다. 카일이 처음 든 생각이 그거였다. 사제 둘 사이에서 걸어 나오는데, 사제들 어깨에도 닿지 않았다. 하얀 옷. 길고 넓은 소매. 갈색 머리를 하나로 땋아 등 뒤로 늘였다.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그리고 맨발이었다.카일은 그걸 봤다. 하얀 옷자락 아래로 맨발 두 개. 돌바닥 위를 걸었다. 4월 초. 돌은 아직 찼다. 발끝이 빨갰다.“맨발이시네.”루카스가 속삭였다.“신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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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수프를 남김

4월 4일 아침 여섯 시. 백탑 6층.카일은 다시 문 앞에 서 있었다. 교대하고 두 시간 자고 돌아왔다. 의자 위 빵은 그대로 있었다. 반 덩이. 밤새 굳어 있었다.문이 열렸다. 이번엔 성녀가 아니었다.“아! 회색이다!”열여섯쯤 된 여자아이가 문을 열고 나오다 카일을 보고 뒤로 물러났다. 흰 두건, 주근깨, 손에 세숫대야. 물이 출렁여 카일 장화에 튀었다.“죄송해요! 아니, 안 죄송해요, 왜 문 앞에 서 계세요, 깜짝 놀랐잖아요. 아저씨가 왕실에서 온 회색 아저씨예요? 사제님들이 그러던데요, 회색 망토 입은 무서운 사람 온다고.”“…호위 기사 카일 에벤하르트.”“에마예요. 수련 수녀요. 성녀님 시중들어요. 회색 아저씨는 아침 드셨어요? 안 드셨죠? 얼굴이 안 드신 얼굴이에요.”에마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세숫대야를 들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면서도 말했다. 「저 빵 성녀님이 준 거죠? 왜 안 드셨어요? 성녀님 서운하실 텐데.」 목소리가 계단을 따라 빙글빙글 내려갔다.카일은 의자 위 빵을 봤다.‘서운할 일이 아니다.’빵을 집어 망토 안주머니에 넣었다. 버리면 저 아이가 또 떠들 게 뻔했다.†성녀의 하루는 정해져 있었다. 대주교 비서 사제가 종이 한 장을 줬다.「여섯 시 기상. 일곱 시 아침 기도(본당). 여덟 시 아침 식사. 아홉 시~열두 시 축복(앞뜰 기적의 단, 신도 행렬). 열두 시 점심. 한 시~네 시 휴식 및 묵상. 네 시 저녁 기도. 여섯 시 저녁 식사. 일곱 시 이후 거처.」카일은 종이를 접어 넣었다. 호위 기사는 성녀가 탑 밖으로 나갈 때 세 걸음 뒤에서 따른다. 탑 안에서는 문 앞.일곱 시. 아침 기도.성녀가 문을 열고 나왔다. 하얀 옷, 땋은 머리. 맨발. 카일을 봤다. 아무 말 없이 계단으로 갔다. 카일이 세 걸음 뒤에서 따랐다.212칸. 성녀는 계단을 내려가며 한 번도 난간을 잡지 않았다. 맨발이 돌계단을 디딜 때 소리가 거의 없었다. 카일 장화 소리만 탑 안에 울렸다. 쿵, 쿵. 성녀가 한 번 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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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야간 외출

4월 5일 밤 열한 시. 백탑 6층.문이 열렸다. 소리 없이.카일은 복도 끝 창 옆 그림자 속에 서 있었다. 문 앞이 아니라. 저녁 교대 때 일부러 자리를 옮겼다. 문 앞에 서 있으면 저 사람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성녀가 나왔다. 하얀 옷이 아니었다. 갈색 잠옷 위에 낡은 회갈색 겉옷. 머리는 땋아서 겉옷 안에 넣었다. 두건을 썼다. 한 팔에 질그릇 단지를 안고, 어깨에 천 보따리를 메고. 맨발.성녀가 문 앞 빈 의자를 봤다.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복도 끝 창 쪽을 봤다. 카일은 숨을 멈췄다. 그림자가 깊었다. 성녀가 고개를 돌렸다. 계단으로 갔다.내려가는 소리가 거의 없었다. 맨발. 212칸. 카일은 장화를 벗었다. 끈이 아니라 버클이라 빨리 벗겨졌다. 장화를 손에 들고 양말 바람으로 따라 내려갔다. 돌계단이 찼다. 발바닥이 얼얼했다. 이 계단을 저 사람은 매일 맨발로 오르내렸다.1층. 성녀는 본당 쪽으로 가지 않았다. 부엌 뒤 쪽문. 쪽문을 열고 뒤뜰로. 달이 반쯤 떠 있었다. 뒤뜰은 버려진 밭이었다. 마른 풀, 쓰러진 울타리. 성녀는 밭을 가로질러 뒷담으로 갔다. 담 아래 덤불을 헤쳤다. 개구멍이 있었다. 어른 하나가 엎드려야 지나가는 크기.성녀가 단지를 먼저 밀어 넣었다. 보따리를 넣었다. 그리고 엎드려 기어 나갔다.카일은 담 앞에 섰다. 개구멍을 봤다. 자기 어깨를 봤다.‘안 들어간다.’카일은 장화를 다시 신었다. 담을 짚었다. 키보다 조금 높았다. 뛰어올라 담 위에 손을 걸고 넘었다. 망토가 담 위 가시덤불에 걸렸다. 찢어지는 소리. 카일은 이를 악물고 내려섰다.담 너머는 돌계단이었다. 언덕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는 좁고 미끄러운 돌계단. 옆으로 물길이 흘렀다. 하수. 냄새가 올라왔다. 성녀가 저 아래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단지를 안고, 한 손으로 벽을 짚고.카일은 거리를 두고 따랐다. 서른 걸음.†잿골이었다.강가 낮은 지붕들. 골목이 좁았다. 대장간 화로가 꺼진 지 얼마 안 됐는지 쇠 냄새와 숯 냄새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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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감시 대상과 접촉

4월 6일 오후 네 시. 백탑 본당 뒤 회랑.저녁 기도가 끝났다. 사제들이 줄지어 본당을 나갔다. 성녀는 맨 마지막이었다. 제단 앞에서 일어나 회랑으로 나왔다. 맨발이 회랑 돌바닥을 밟았다.카일이 회랑 기둥 옆에 서 있었다. 성녀가 지나갔다. 카일은 세 걸음 뒤를 따르지 않았다. 손을 뻗었다.성녀 손목을 잡았다.가늘었다. 카일 손가락이 한 바퀴 돌고도 남았다. 성녀가 멈췄다. 돌아보지 않았다. 손목을 빼지도 않았다.회랑에는 둘만 남았다. 사제들 발소리가 계단 위로 멀어졌다. 해가 기울어 회랑 기둥 그림자가 길게 누웠다.“어제 밤.”카일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잿골 대장장이 집. 아이 이름 바울. 버드나무 껍질, 찬물, 발.”성녀가 돌아봤다. 손목을 잡힌 채로. 고개를 한참 들어 카일을 올려다봤다.“다 보셨네요.”“다 봤습니다.”“처마 밑에서요. 망토 찢어진 채로.”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망토는 오늘 아침 기사단 재봉사에게 맡겼다. 지금 입은 건 예비 망토였다. 소매가 조금 짧았다.성녀가 잡힌 손목을 내려다봤다. 카일 손. 굳은살 박인 손바닥, 검 손잡이 자국.“보고하실 거예요?”목소리에 떨림이 없었다. 묻는 게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오늘 저녁 메뉴가 뭐냐고 묻듯이.카일은 그 목소리가 싫었다. 왜 싫은지 알았다. 다 포기한 사람 목소리였다. 열네 살 때 백탑 앞 줄 사흘째, 어머니가 카일 등에 업혀서 한 말. 「카일, 괜찮다. 엄마는 괜찮아.」 그 목소리였다.“왜 그럽니까.”카일이 물었다. 대답 대신.“뭘요?”“밤에. 잿골에. 맨발로. 남긴 수프 들고.”성녀가 카일을 봤다. 오래. 그리고 말했다.“바울이 아팠어요.”“잿골에 아픈 애는 매일 있습니다.”“그럼 매일 가야죠.”카일은 말이 막혔다.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성녀가 조금 찡그렸다. 카일이 손을 풀었다. 성녀 손목에 손가락 자국이 빨갛게 남았다.“…죄송합니다.”“괜찮아요.”성녀가 손목을 문질렀다. 소매를 내렸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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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기적 공연

4월 9일 오전 열 시. 백탑 앞뜰, 기적의 단.일주일에 한 번 기적 공연이 있었다. 대주교 비서 사제가 종이에 그렇게 적지는 않았다. 「주간 치유 축복」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사제들끼리는 공연이라고 불렀다. 카일은 그걸 부엌 뒤에서 담배 피우던 젊은 사제 둘에게서 들었다. 「오늘 공연 몇 명이야?」 「다섯. 절름발이 둘, 눈먼 사람 하나, 귀머거리 하나, 등 굽은 노인 하나.」 「대본은?」 「어제 다 외웠어. 은화 셋씩.」카일은 그 대화를 긴 기록에 적었다. 날짜, 시각, 사제 둘의 생김새.앞뜰은 강림식 날만큼은 아니어도 꽉 찼다. 기적을 보러 온 사람들. 앞줄 의자에 귀족 몇. 대주교가 단 옆 높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금실 사제복, 반지 다섯 개. 오늘은 여섯 개였다.단 앞에 줄이 섰다. 맨 앞 다섯 명. 사제 하나가 그 다섯을 단 계단 앞에 차례로 세웠다. 다섯 다 깨끗한 옷을 입고 있었다. 절름발이라는 남자 둘은 지팡이가 새로 깎은 거였다. 손잡이 나무가 반들거렸다.그 다섯 뒤로 진짜 줄이 이어졌다. 앞뜰 문 밖까지. 거기 선 사람들 옷은 깨끗하지 않았다.성녀가 단 위에 섰다. 오늘도 맨발. 의자가 없었다. 공연 날엔 서 있어야 한다고 비서 사제가 말했다. 「신의 딸이 앉아서 기적을 행할 수는 없습니다.」카일은 단 아래 세 걸음 뒤에 섰다.첫 번째 남자가 올라왔다. 절름발이. 새 지팡이를 짚고 한 칸씩. 단 위에서 무릎을 꿇었다. 성녀가 남자 머리에 손을 얹었다. 남자가 몸을 떨었다. 그리고 소리쳤다.“다리가! 다리가 뜨거워요!”남자가 지팡이를 던졌다. 일어났다. 걸었다. 단 위를 한 바퀴. 뛰었다. 앞뜰이 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박수. 누가 울었다.카일은 남자 무릎을 봤다. 뛸 때 굽혀지는 각도. 절름발이였던 적이 없는 무릎이었다.성녀는 손을 거두었다. 남자를 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두 번째. 눈먼 사람. 사제가 손을 잡아 올려 줬다. 성녀가 눈 위에 손을 얹었다. 남자가 「빛이… 빛이 보여요」 했다. 앞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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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금식

4월 10일. 금식 첫날.카일은 아침 여섯 시에 6층에 올라왔다. 문 앞 의자 위에 아무것도 없었다. 빵도 달걀도 사과도.일곱 시 아침 기도가 없었다. 성녀는 거처에서 기도한다고 비서 사제가 전했다. 여덟 시 식사가 없었다. 에마가 물 한 주전자를 들고 올라갔다. 빈 주전자를 들고 내려왔다.“물만이래요. 물만. 회색 아저씨, 사람이 물만 먹고 사흘 살 수 있어요?”“산다.”“아저씨도 해 봤어요?”“기사 훈련에 있다.”“그럼 성녀님은 기사예요?”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에마가 계단에 주저앉았다. 흰 두건이 비뚤어졌다.“성녀님이 어제 밤에 저한테 그러셨어요. 페터 할아버지 천 갈아 주러 가라고. 저 혼자요. 하수 계단으로. 저 무서워서 못 갔어요.”에마 목소리가 작아졌다. 이 아이 목소리가 작아지는 걸 카일은 처음 들었다.“천 갈아야 하는데. 사흘 동안 매일.”카일은 문을 봤다. 문 안은 조용했다. 맨발 소리도 없었다. 누워 있거나, 창가에 앉아 있거나.“…오늘 밤 내가 간다.”에마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회색 아저씨가요? 감시하는 사람이 성녀님 심부름을 해요?”“감시 대상이 거처를 못 나가니까. 대상이 하던 일을 확인하러 간다.”에마가 카일을 한참 봤다. 그러더니 일어나서 두건을 고쳐 썼다.“그거 이상한 말이에요. 근데 좋아요. 끓였다 식힌 물이랑 깨끗한 천이요. 천은 제가 줄게요. 성녀님이 어제 다 찢어 놨어요. 성녀님 침대보로.”†밤 열 시. 잿골.카일은 처음으로 정문으로 잿골에 내려갔다. 신전 뒷담 개구멍이 아니라 언덕 아래 큰길로. 회색 망토 대신 갈색 외투. 기사단에서 사복 순찰 때 입는 것. 손에 천 꾸러미와 물병.페터 영감 집은 우물가에 있었다. 한나에게 물어서 찾았다. 한나는 카일을 보자 대장간 망치를 든 채로 문 앞을 막아섰다.“누구슈.”“페터 영감 다리 천 갈러 왔습니다.”“누가 보냈수.”카일은 잠깐 생각했다.“…들꽃골 아가씨.”한나가 망치를 내렸다. 카일을 아래위로 훑었다. 갈색 외투, 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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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뒤뜰 약초밭

4월 14일 오후 한 시. 백탑 뒤뜰.휴식 및 묵상 시간이었다. 비서 사제 종이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성녀는 묵상 대신 삽을 들고 있었다.뒤뜰은 버려진 밭이었다. 카일이 3화 밤에 가로질렀던. 낮에 보니 더 엉망이었다. 마른 풀이 허리까지. 쓰러진 울타리. 깨진 물통. 한쪽 구석에 돌로 쌓은 작은 창고, 지붕이 반쯤 내려앉은. 버드나무 한 그루가 뒷담 옆에 서 있었다. 껍질이 여기저기 벗겨져 있었다. 성녀가 벗긴 자리.성녀가 마른 풀을 뽑고 있었다. 하얀 옷 위에 갈색 앞치마. 소매는 걷어 올렸다. 금식 뒤 이틀. 볼이 조금 홀쭉했다. 그래도 손은 빨랐다. 한 움큼씩 뽑아 옆에 쌓았다.카일은 울타리 옆에 서 있었다. 세 걸음 뒤.성녀가 삽을 땅에 꽂았다. 발로 밟았다. 맨발로. 삽 날이 반만 들어갔다. 땅이 단단했다. 몇 해 동안 아무도 갈지 않은 땅. 성녀가 다시 밟았다. 발바닥이 삽 위에서 미끄러졌다.카일이 걸어갔다.“주십시오.”성녀가 카일을 올려다봤다. 삽을 쥔 채로.“감시하는 사람이 삽질해요?”“감시 대상이 발을 다치면 보고서가 길어집니다. 저는 짧은 게 좋습니다.”성녀가 삽을 건넸다. 카일이 장화로 삽을 밟았다. 날이 끝까지 들어갔다. 흙을 뒤집었다. 검은 흙이 나왔다. 지렁이 한 마리.“거기서부터 저기까지요.”성녀가 손가락으로 선을 그었다. 버드나무에서 창고까지. 카일 걸음으로 스무 걸음.“전부입니까.”“전부요. 오늘은.”“…오늘은.”카일은 망토를 벗었다. 울타리에 걸었다. 검도 풀어 망토 옆에 세웠다. 소매를 걷었다. 삽질을 시작했다.†한 시간.카일 셔츠 등이 젖었다. 땅은 생각보다 더 단단했다. 돌이 많았다. 깨진 기와, 녹슨 못, 오래된 사기 그릇 조각. 성녀가 카일이 뒤집은 흙에서 그것들을 골라냈다. 맨손으로. 돌은 울타리 밑에, 쇠붙이는 따로, 사기 조각은 따로.“이 밭, 원래 약초밭이었어요.”성녀가 사기 조각을 털며 말했다.“오렌 사제님이 그러셨어요. 쉰 해 전에는 신전에 약초 사제가 있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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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보고서가 짧음

4월 20일 아침 일곱 시. 왕실 기사단 본관 3층. 단장실.그레타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의족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파이프. 책상 위에 봉투가 쌓여 있었다. 열여덟 개. 카일의 보고서. 4월 3일부터 어제까지.그레타가 봉투 하나를 집어 열었다. 읽었다. 1초. 내려놓았다. 다음 봉투. 1초. 다음.카일은 책상 앞에 서 있었다. 차렷. 회색 망토.그레타가 열여덟 개를 다 열었다.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 세 줄짜리 종이 열여덟 장. 그레타가 그것들을 한참 내려다봤다. 파이프 연기가 종이 위에 고였다.“에벤하르트.”“예.”“너 기사 된 지 몇 년이지.”“9년입니다.”“9년 동안 네 보고서는 늘 세 줄이었지.”“예.”“근데 늘 세 줄이 꽉 차 있었어. 「적 정찰병 셋, 북쪽 숲 경계, 화살 흔적 둘」. 이런 식으로. 세 줄 안에 열 가지를 쑤셔 넣었지. 내가 세 줄만 쓰라니까 글씨를 작게 써서.”그레타가 종이 한 장을 들어 카일 쪽으로 돌렸다.「특이 사항: 없음.」“이건 뭐야.”“특이 사항이 없었습니다.”그레타가 다른 종이를 들었다.「특이 사항: 없음.」또 다른 종이.「특이 사항: 없음. 호위 기사가 정리를 도움.」그레타가 그 종이를 오래 봤다.“호위 기사가 정리를 도움.”“예.”“무슨 정리.”“뒤뜰입니다.”“뒤뜰을 정리하는 데 왜 왕실 기사가 도와.”“감시 대상이 삽질을 했습니다. 발을 다칠 수 있었습니다. 다치면 보고서가 길어집니다.”그레타가 파이프를 입에서 뗐다. 카일을 봤다. 위아래로. 장화부터 머리까지.“너 손바닥에 물집 잡혔지.”카일은 손을 뒤로 감추지 않았다. 감추면 더 수상했다. 손바닥에 물집 세 개. 삽 손잡이 자국. 하나는 터져 있었다.그레타가 파이프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에벤하르트. 내가 입단 시험 때 한 말 기억하나.”“…기사가 보고서에 거짓말을 쓰는 순서입니다.”“읊어 봐.”“첫날은 한 줄을 뺀다. 둘째 날은 한 줄을 바꾼다. 셋째 날은 다 지어낸다. 넷째 날 목이 날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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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귀족 연회

4월 27일 저녁 여섯 시. 하르트 백작가.성녀 순회는 한 달에 두 번이었다. 귀족 집에 가서 축복하고 저녁을 먹는다. 비서 사제 종이에는 「귀족 가문 축복 순회」라고 적혀 있었다. 오렌 사제는 「헌금 걷으러 가는 날」이라고 불렀다.하르트 백작가는 왕도 북쪽 언덕에 있었다. 왕성 바로 아래. 정원에 분수가 셋. 현관에 대리석 계단 열두 칸. 하인이 스무 명쯤.성녀가 마차에서 내렸다. 하얀 옷. 오늘은 금실 띠를 둘렀다. 비서 사제가 매어 준. 그리고 신발. 하얀 비단 신. 대주교 명이었다. 「귀족 집 대리석에 맨발 자국을 남기면 안 된다.」성녀가 대리석 계단을 올랐다. 비단 신이 미끄러웠다. 성녀가 한 칸 오를 때마다 발끝에 힘을 줬다. 카일은 세 걸음 뒤에서 그걸 봤다. 맨발로는 하수 돌계단 이끼도 안 미끄러지던 사람이.연회장은 넓었다. 샹들리에 셋. 긴 탁자 둘. 귀족이 마흔 명쯤. 다들 성녀가 들어오자 일어섰다. 몇은 무릎을 굽혔다. 몇은 고개만 숙였다. 몇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성녀 신발을 봤다.하르트 백작이 나왔다. 쉰쯤. 배가 나왔고 웃음이 컸다.“성녀님! 영광입니다. 저희 집에 신의 빛을!”성녀가 손을 들었다. 소매 안에서 인광 가루. 손바닥 위에 빛이 피었다 꺼졌다. 귀족들이 박수를 쳤다. 성녀는 손을 내리고 소매를 털지 않았다. 카일은 연회장 대리석 바닥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은 걸 확인했다. 오늘은 소매 안쪽에 천을 덧대 온 모양이었다.†축복은 짧았다. 백작 부부, 아들 둘, 딸 하나. 성녀가 차례로 머리에 손을 얹었다.백작 딸 차례였다. 이졸데. 열일곱. 하얀 얼굴. 정말로 하얬다. 분을 두껍게 발라서. 입술은 빨갰다. 연지.성녀가 이졸데 머리에 손을 얹으려다 멈췄다.카일은 성녀 손을 봤다. 이졸데 머리 위에서 멈춘 손. 그리고 성녀 얼굴. 성녀가 이졸데 얼굴을 보고 있었다. 가까이. 코끝을 조금 움직였다. 냄새를 맡는.“손 좀 볼게요.”성녀가 말했다. 축복 대신.이졸데가 어리둥절해서 손을 내밀었다. 성녀가 이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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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감시자의 사정

5월 2일 밤 열한 시. 잿골.비가 왔다. 봄비가 아니었다. 굵고 찬 비.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해 밤이 되자 더 굵어졌다.성녀는 그날 밤도 나갔다. 비가 와도. 바울 동생 마리가 기침을 한다고 한나가 낮에 신전 담 너머로 소리쳐 알렸다. 성녀는 저녁 기도가 끝나자마자 보따리를 쌌다.카일은 담을 넘었다. 망토가 젖어 무거웠다. 가시에는 안 걸렸다. 지난번에 걸린 자리를 기억했다.하수 돌계단이 강이 되어 있었다. 빗물이 계단을 타고 콸콸 흘렀다. 성녀가 맨발로 그 물을 밟고 내려갔다. 한 손으로 벽을 짚고.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카일이 세 걸음 뒤가 아니라 바로 뒤에서 따랐다. 성녀가 미끄러지면 잡을 수 있는 거리.성녀는 미끄러지지 않았다. 한 번도.한나 집에서 두 시간. 마리는 다섯 살이었다. 기침이 깊었다. 성녀가 아이 등에 귀를 댔다. 오래. 그리고 한나에게 꿀물, 김 쐬기, 베개 높이기를 일렀다. 열은 없었다. 성녀가 그걸 확인하고 숨을 내쉬었다.“감기예요. 열병 아니에요. 사흘이면 나아요.”한나가 주저앉았다. 바닥에. 그리고 웃었다.“아가씨 오면 다 감기야.”“감기니까 감기라고 하는 거예요.”마리가 기침을 하다 눈을 떴다. 성녀를 보고 손을 뻗었다. 작은 손이 성녀 땋은 머리 끝을 잡았다. 성녀가 머리를 빼지 않고 아이 옆에 누웠다. 짚 요 위에. 젖은 겉옷 그대로. 아이 등을 토닥였다. 박자가 느렸다. 들꽃골 자장가 박자.카일은 문가에 서서 그걸 봤다. 한나가 카일 옆에 와서 섰다. 팔짱을 끼고.“기사 양반. 저 아가씨 하루에 몇 시간 자는지 알아요?”“…모릅니다.”“나도 몰라. 근데 여기서 자는 거 처음 봐.”한나가 성녀를 봤다. 아이 옆에서 눈을 감은. 토닥이는 손은 멈추지 않는.“깨우지 마요. 비 그칠 때까지.”카일은 깨우지 않았다. 반 시간 뒤 성녀가 스스로 일어났다. 아이가 잠든 걸 확인하고, 손가락에 감긴 머리카락을 하나씩 풀고. 일어나서 카일을 봤다. 잠깐 잔 얼굴로.“가요.”†새벽 한 시. 한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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