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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승천 계획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31 17:00:00

9월 15일 오전 열한 시. 왕도 남쪽 시장, 빵집 처마 밑.

에마가 장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감자, 양파, 빵. 그리고 얼굴이 하얬다.

카일이 처마 밑으로 들어서자 에마가 바구니를 내밀었다. 말없이. 이 아이가 말없이 무엇을 내미는 건 처음이었다.

카일이 바구니 바닥 천을 들췄다. 쪽지. 접힌. 두 장.

한 장은 에마 글씨였다. 동글동글하고 큰. 그런데 글씨가 떨려 있었다. 군데군데 잉크가 번져 있었다. 물방울이 떨어진 자리.

「회색 아저씨.

어젯밤 대주교님 집무실 앞 복도를 닦고 있었어요. 걸레질. 벌 받아서요. 네모 턱 아저씨한테 말대꾸해서.

문이 조금 열려 있었어요. 대주교님이랑 네모 턱 아저씨랑 비서 사제님이 얘기했어요.

내년 봄 축성 축제 때요. 4월 3일. 강림식 1년 되는 날. 그날 성녀님이 탑 꼭대기에 올라가서 「승천」한대요.

승천이 뭔지 저 몰라서 계속 들었어요.

대주교님이 그랬어요. 성녀님이 탑 꼭대기 난간 앞에서 기도하면, 빛이 나면서, 성녀님이 하늘로 올라간대요. 앞뜰 사람들이 다 본대요. 성녀가 하늘로 돌아갔다고. 신의 딸이 신한테 돌아갔다고.

네모 턱 아저씨가 물었어요. 「진짜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대주교님이 그랬어요. 「연기와 인광 가루를 크게 피운다. 사람들 눈이 빛에 가려질 때, 난간 뒤에서.」

그다음 말은 작아서 못 들었어요.

근데 네모 턱 아저씨가 그랬어요. 「탑이 일곱 층입니다. 떨어지면.」

대주교님이 그랬어요. 「그러니 승천이지.」

비서 사제님이 그랬어요. 「성녀 자리가 비면 다음 성녀를 남쪽에서 또 찾으면 됩니다. 이번 아이는 말을 너무 안 듣습니다. 장부도 이상하게 한 번 없어졌고요.」

저 걸레 떨어뜨릴 뻔했어요.

회색 아저씨 이거 어떡해요. 성녀님한테 말했어요. 성녀님이 아무 말도 안 하셨어요. 그냥 이 쪽지에 한 줄 쓰라고 하셨어요. 아저씨한테 보내라고.」

카일은 두 번째 쪽지를 펼쳤다.

성녀 글씨. 삐뚤빼뚤. 그런데 여섯 달 전보다 반듯했다. 한 줄.

「괜찮아요.」

†

카일은 그 두 장을 들고 서 있었다.

빵집 처마. 9월 볕. 시장 소음. 생선 장수 외침, 수레바퀴 소리, 아이 울음.

아무것도 안 들렸다.

‘탑이 일곱 층입니다. 떨어지면.’

‘그러니 승천이지.’

카일 손이 쪽지를 구겼다. 의도하지 않았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에마 쪽지가 구겨지면서 번진 잉크가 더 번졌다.

‘괜찮아요.’

그 한 줄은 구겨지지 않았다. 다른 손에 있었다. 카일은 그 손을 펴서 봤다. 「괜찮아요.」 다섯 글자. 꾹꾹 눌러 쓴. 종이 뒷면까지 자국이 날 만큼.

안 괜찮을 때 하는 말.

카일은 그걸 알았다. 여섯 달 동안 배웠다. 성녀가 「괜찮아요」라고 할 때마다 무엇이 안 괜찮았는지. 금식 사흘째 문틈에서. 계단 꺾이는 자리에서 무릎이 꺾이기 직전에. 회랑에서 손목에 손가락 자국이 남았을 때. 대주교 집무실 앞에서.

지금 성녀는 탑 꼭대기에서 떨어진다는 걸 알고 「괜찮아요」라고 썼다.

“…회색 아저씨.”

에마가 카일 소매를 잡았다. 작게.

“얼굴이 무서워요.”

카일은 에마를 내려다봤다. 에마 눈이 빨갰다. 밤새 운 얼굴. 열여섯.

카일은 숨을 쉬었다. 크게. 시장 냄새. 생선, 빵, 흙.

“…에마.”

“네.”

“잘했다.”

에마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한 방울. 그리고 쏟아졌다. 에마가 장바구니를 안고 울었다. 소리 내서. 빵집 처마 밑에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쳐다봤다.

카일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손을 들었다 내렸다. 그리고 다시 들어서 에마 두건 위에 얹었다. 툭. 그레타가 카일 어깨를 친 것처럼.

에마가 더 크게 울었다.

†

“성녀님은요.”

에마가 다 울고 나서 말했다. 코를 훌쩍이며. 앞치마로 얼굴을 닦고.

“제가 말하니까 한참 창밖만 보셨어요. 왕성 쪽. 그리고 저보고 박하차 끓여 오라고 하셨어요. 오렌 사제님 기침 때문에. 그다음에 이 쪽지 쓰시고. 그다음에 뒤뜰 반쪽 남은 데 가서 박하 물 주셨어요. 네모 턱 아저씨가 보는 데서.”

카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저녁에 저한테 그러셨어요. 에마야, 너 내년 봄에 수련 끝나지. 그럼 남쪽 들꽃골에 가 볼래. 우리 엄마 혼자라서. 약초 배우면 좋을 거야.”

에마가 다시 울려고 했다. 참았다.

“그거 성녀님이 자기 없을 때 얘기하는 거예요. 저 알아요. 저 바보 아니에요.”

카일은 에마를 봤다. 그리고 바구니 바닥에 손을 넣었다. 천을 들췄다. 쪽지 두 장을 다시 넣지 않고 자기 망토 안주머니에 넣었다. 종이들 옆에. 개구멍 쪽지, 마지막 보고서, 박하 사탕 봉지, 씨앗 꼬투리.

그리고 박하 사탕 봉지를 꺼냈다. 약초 가게 할머니가 준. 3주 동안 넣고 다닌.

바구니 바닥에 넣었다. 천으로 덮었다.

“이거 성녀님 드려.”

“…이게 뭐예요?”

“꿀 섞은 박하 사탕. 남쪽 시장 셋째 골목 노란 문. 봄에 성녀님이 보고 한참 서 있다가 안 사고 간 거.”

에마가 바구니를 봤다. 카일을 봤다.

“답장은요?”

카일은 펜을 찾지 않았다. 에마 몽당 연필도 받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말로 전해. 내가 하는 말 그대로.”

“네.”

“안 괜찮습니다.”

에마가 눈을 깜빡였다.

“…그게 다예요?”

“그게 다다.”

†

오후 세 시. 단장실.

그레타가 쪽지 두 장을 책상 위에 펼쳤다. 에마 것을 먼저 읽었다. 천천히. 번진 자리마다 손가락을 멈추며. 그다음 성녀 것. 「괜찮아요.」 1초. 그리고 다시 1초.

그레타가 파이프를 내려놓았다.

“일곱 달.”

“…예?”

“4월 3일까지 일곱 달이다. 대주교가 우리한테 일곱 달을 줬어. 모르고.”

카일은 그레타를 봤다. 그레타 얼굴이 굳어 있었다. 웃음기 하나 없이. 그런데 눈이 빛났다. 북쪽 경계에서 적 정찰병 흔적을 찾았을 때 그레타 눈이 그랬다고 늙은 기사들이 말했다.

“이건 증거가 아니다. 열여섯 살 수련 수녀가 걸레질하다 엿들은 말. 법정에선 한 줄로 날아가. 근데 이건 날짜다. 놈들이 언제 움직일지 알려 주는 날짜.”

그레타가 손가락으로 에마 쪽지의 「4월 3일」을 짚었다.

“그날 앞뜰에 수천 명이 모인다. 폐하가 오시게 만들면 폐하도 계신다. 그날 증거를 다 들고 폐하 앞에 서면, 대주교는 도망갈 데가 없어. 자기가 판 무대 위에서.”

“…일곱 달 동안 그 사람은 탑 안에 있습니다.”

카일 목소리가 낮았다.

“보르크가 문 앞에서 잡니다. 대주교는 장부가 한 번 없어진 걸 압니다. 비서 사제가 말했습니다. 「이번 아이는 말을 너무 안 듣는다.」 일곱 달 동안 그 사람한테 무슨 일이 생겨도 저는 강 건너 성벽에서 촛불만 봅니다.”

그레타가 카일을 봤다. 오래.

“에벤하르트. 무슨 생각 하는지 안다.”

카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 마라.”

“…아직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지 말라는 거다. 지금 담 넘다 걸리면 일곱 달이 다 날아가. 네 스물두 장도, 장부 서른여섯 장도, 마흔세 장도. 놈들이 「왕실 기사가 성녀를 납치하려 했다」고 하면 끝이야.”

카일은 차렷 자세로 서 있었다. 그레타가 그 자세를 봤다. 9년 동안 본. 대답 대신 차렷으로 버티는.

그레타가 한숨을 쉬었다. 길게.

“…걸리지 마라.”

카일이 그레타를 봤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걸리지 말라고만 했다. 그건 기사단장이 부하한테 늘 하는 말이다.”

그레타가 파이프를 다시 물었다. 불을 붙이지 않고.

“그리고 루카스 데려가지 마. 그 녀석은 담 넘을 때 소리를 낸다.”

카일은 경례했다. 문을 나서기 전에 그레타가 덧붙였다. 파이프를 문 채로.

“그리고 갔다 오면 나한테 세 줄로 보고해. 어떻게 넘었는지만. 나머지는 안 들어도 된다.”

카일은 문을 닫고 복도에 섰다. 문 너머에서 그레타가 혼잣말을 했다. 「세 줄 넘으면 내가 잠을 못 자.」 카일은 그 말을 듣고 복도에서 잠깐 서 있었다. 9년 동안 그레타가 왜 세 줄만 읽는지 처음 알았다. 길면 마음이 쓰이니까. 마음이 쓰이면 잠을 못 자니까. 기사단 마흔 명 보고서를 다 마음 쓰며 읽으면 그레타는 하루도 못 잔다. 그런데 그레타는 카일 스물두 장을 다 읽었다.

†

밤. 기사단 숙소.

카일은 잠을 자지 않았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쪽지 두 장을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 에마 것, 성녀 것.

창 너머 백탑. 일곱 층. 하얀.

카일은 그 탑을 봤다. 꼭대기. 7층 위 지붕. 종탑. 그 아래 난간. 강림식 날 종이 울리던 곳. 카일은 거기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6층까지만. 212칸까지만.

7층부터 꼭대기까지 몇 칸인지 몰랐다.

‘확인할 것.’

카일은 그 생각을 했다. 습관처럼. 그리고 그 생각이 무서웠다. 성녀가 떨어질 자리를 확인할 것.

카일은 일어났다. 창가로 갔다. 6층 촛불이 켜져 있었다. 해가 진 지 한참. 자정이 가까웠다.

등불은 숙소 방에 없었다. 망루까지는 왕성 서쪽 끝. 이 시간에 가면 근무 중인 경비가 묻는다.

카일은 책상 위 촛대를 들었다. 창가에 놓았다. 손으로 가렸다. 뗐다.

한 번.

강 건너. 6층 촛불. 기사단 숙소 창 하나. 숙소엔 창이 백 개도 넘었다. 그중 하나의 촛불. 보일 리 없었다.

6층 촛불이 꺼졌다.

켜졌다.

카일은 촛대를 쥔 채로 서 있었다. 손바닥이 뜨거웠다. 촛불에 너무 가까이 대서. 성녀가 데었다던 그 손바닥처럼.

‘석 달 반 동안 봤어요. 여기서. 기사님 방.’

성녀는 알았다. 카일 방 창이 어딘지. 처음부터.

카일은 다시 가렸다 뗐다. 두 번째. 세 번째.

6층 촛불이 따라 했다. 두 번째. 세 번째.

그다음 카일은 멈췄다. 6층 촛불도 멈췄다. 켜진 채로.

카일은 오래 그 촛불을 봤다. 그리고 담을 봤다. 백탑 뒷담. 달빛 아래 하얀 줄. 낮은 자리에 돌을 더 쌓은. 개구멍에 쇠창살을 박은.

그리고 하수 돌계단 꼭대기. 신전 경비 둘. 횃불.

보르크는 6층 문 앞 의자에서 잔다. 밤새.

카일은 그것들을 하나씩 셌다. 머릿속으로. 지난 두 달 동안 루카스와 오렌과 에마가 날라 온 것들. 경비 교대 시간. 보르크가 자는 시간. 뒷담에서 경비가 안 보이는 자리. 쇠창살 없는 담. 석공이 돌을 더 쌓지 않은 자리.

한 군데 있었다.

뒤뜰 창고 뒤. 지붕이 반쯤 내려앉은 돌 창고. 창고 벽이 뒷담에 붙어 있었다. 담보다 창고 지붕이 조금 낮았다. 석공들이 창고는 신경 쓰지 않았다. 창고였으니까.

카일은 촛대를 내려놓았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혀 있었다.

‘내일 밤.’

카일은 그렇게 정했다. 정하고 나서 손목을 봤다. 회색 실 매듭. 「풀리기 전에 돌아오라고.」

풀리지 않았다. 두 달이 지났는데.

『감시 보고서 — 9월 15일

대상: 쪽지 두 장. 「승천」. 그리고 「괜찮아요」.

특이 사항: 안 괜찮음.』

(2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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