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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발길이 끊긴 신당

مؤلف: 지니
last update تاريخ النشر: 2026-10-03 21:27:11

돌계단은 정확히 백스물여덟 개였다.

서연은 계단을 하나씩 세며 산을 올랐다.

"스무 개…… 스물한 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밤은 이미 깊었다.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가늘게 흩날리던 눈이 어느새 제법 굵어져 있었다. 검은 구두 위로 하얀 눈이 쌓였고, 오래된 돌계단에도 얇은 눈이 내려앉았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아!……."

발끝이 미끄러졌다.

급히 옆의 나뭇가지를 붙잡았다.

손전등 불빛이 흔들릴 때마다 계단 양옆의 나무들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우수수 떨어졌다.

마치 누군가 숨어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예순둘…… 예순셋……."

서연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다시 계단을 올랐다.

도대체 자신이 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사람 하나 다니지 않는 깊은 산속에 있는 낡은 신당을 왜 찾아가고 있는지

오늘 하루만 해도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매번 같았다.

할머니 때문이었다.

한만월

세상에서 유일하게 끝까지 믿을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백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할머니는 임종을 사흘 앞두고 서연의 손목을 붙잡았다.

힘이라고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손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할 만큼 단단했다.

"서연아"

"응, 할머니"

"설봉산에 가거라"

서연은 눈물을 참으며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거기 서리당이라는 신당이 있어"

"신당?"

"문을 열고…… 불을 켜"

"할머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할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숨을 고르던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거울을 돌려줘"

"무슨 거울?"

"그곳에 있는 사람에게…… 그곳에서 살게 해달라고 부탁해"

서연은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무슨 소리야? 거기에 누가 있는데?"

할머니는 한참 동안 서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약속이야."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할머니는 그 말을 남긴 지 나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

서연은 처음에는 그 말을 노환 때문에 정신이 흐려진 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장례를 치르고 유품을 정리하던 날

서연은 할머니의 베개 밑에서 이상한 물건 하나를 발견했다.

낡은 보자기에 곱게 싸여 있던 청동거울

둥근 테두리에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뒷면에는 오래된 글씨가 남아 있었다.

*한 번만 더 믿어봐*

서연은 그 글씨를 한참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마지막 순간까지 무엇을 믿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날 이후 서연의 삶도 완전히 무너졌다.

회사에서는 믿었던 동료에게 누명을 씌워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책임을 떠안았고, 변명할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했다.

더 끔찍했던 것은 그보다 먼저 자신을 믿어주겠다던 사람이었다.

가장 믿었던 사람이 오히려 자신을 이용했다.

서연은 그날 깨달았다.

사람을 믿는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그리고 결국 자신에게 남은 곳이 아무 데도 없다는 것도

그날 밤 서연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거리를 한참 걸었다.

그러다 가방 속에 있던 할머니의 편지를 꺼냈다.

편지에는 주소도, 자세한 설명도 없었다.

단 한 줄뿐이었다.

사람을 믿기 어려운 날이 오거든 산 너머 낡은 신당을 찾아가렴

그래서 가게 되었다.

믿어서가 아니었다.

이제는 딱히 갈 곳이 없어서였다.

"백스물셋……."

서연은 마지막 몇 개의 계단을 남겨두고 멈췄다.

숨이 거칠게 떨렸다.

눈발이 얼굴에 닿았다.

차가운 눈이 녹아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계단을 밟았다.

눈앞에 낡은 당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바람을 오래 맞은 기와,금이 간 벽 무너질 듯 삐걱거리는 처마

그리고 오래되어 글자조차 희미해진 현판

서리당

서연은 손전등을 들어 현판을 비췄다.

이곳이었다.

할머니가 말한 곳

서연은 보자기에 싸인 청동거울을 꺼냈다.

그리고 낡은 문 앞에 섰다.

"정말…… 여기 맞아?"

아무 대답도 없었다.

눈이 조용히 쌓이는 소리만 들렸다.

서연은 손잡이를 잡았다.

끼이익

문이 열렸다.

놀랍게도 잠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아주 쉽게 열렸다.

문틈 사이로 짙은 어둠이 흘러나왔다.

서연은 침을 삼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한 발 내디뎠다.

그 순간

"나가."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서연의 몸이 굳었다.

어둠 속에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젊은 남자였다.

스물몇 살쯤 되어 보이는 얼굴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

검은 옷을 입은

그리고 이상할 만큼 차가운 눈동자는 금빛처럼 빛나 보였다.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남자의 그림자가 이상했다.

사람의 그림자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길었다.

그리고 그 뒤로 무언가가 움직였다.

꼬리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헛것을 본 것인가 눈을 비벼보았다.

그러자 그것은 사라졌다.

"지금 나가"

남자가 다시 말했다.

서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이 그치면 나갈게요."

"지금 나가"

"싫어요."

남자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뭐?"

"눈이 너무 많이 와요."

눈에 젖은 머리카락을 털어냈다.

"그리고 갈 데도 없어요."

남자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천 년 동안 이곳을 찾아온 인간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비명을 지르거나,도망치거나,무릎을 꿇고 빌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무서워하면서도 나가지 않았다.

남자의 시선이 서연의 손으로 내려갔다.

그녀가 들고 있는 낡은 보자기 그리고 그 안에 감춰진 청동거울

순간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이거 어디서 났지?"

서연은 거울을 꺼냈다.

"할머니 유품이에요."

"……할머니?"

"한만월이라는 분이에요."

남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주 잠깐이었다.

하지만 서연은 보았다.

"저는 한만월 할머니의 손녀예요."

서연은 청동거울을 두 손으로 내밀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걸 돌려주라고 했어요."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연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살게 해달라고 부탁하라고 했어요."

침묵이 흘렀다.

남자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손에 청동거울에 닿았다.

순간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거울 뒷면 그 글씨를 보는 순간

*한 번만 더 믿어봐*

천 년 전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천 년만

남자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

"봉이……."

서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봉이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거울을 자신의 옷 안쪽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차가운 얼굴로 서연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봐주지"

"네?"

"눈이 그치면 산을 내려가."

"하지만……."

"그리고 다시는 올라오지 마"

서연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오늘 밤만이라도 여기 있으면 안 돼요?"

"안 된다."

"저 정말 갈 데가 없어요."

"그건 네 사정이지."

"알아요."

서연은 고개를 숙였다.

"저도 제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오늘만큼은 혼자 있고 싶지 않아요."

남자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닦았다.

"죄송해요."

"……."

"할머니가 여기에 가라고 해서 왔는데, 막상 와보니까 무서워요."

서연은 억지로 웃었다.

"그런데 돌아갈 곳은 더 무서워요."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녀를 바라보던 그가 마침내 몸을 돌렸다.

"방 하나 비어 있다."

서연이 눈을 크게 떴다.

"네?"

"오늘 밤만이다."

"정말요?"

"내일 아침에 내려가"

서연의 얼굴에 처음으로 작은 안도감이 떠올랐다.

"감사합니다."

남자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한 가지."

"네?"

"내 물건에 손대지 마라."

"네"

"밤에는 뒤편으로 가지 마"

"알겠어요."

남자가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내가 인간처럼 보여도 함부로 믿지 마라"

서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당신은 사람이 아니에요?"

남자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나는 사람이 아니다."

그 순간

서연의 손에서 손전등이 미끄러졌다.

툭.

손전등이 바닥을 굴러갔다.

빛이 남자의 등 뒤를 비췄다.

그리고 이번에는 분명히 보였다.

어둠 속에서 은빛 꼬리 하나가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서연의 숨이 멎었다.

하나가 아니었다.

둘.

셋.

넷…….

아홉.

아홉 개의 꼬리가 그의 등 뒤에서 천천히 펼쳐졌다.

창밖에서 내리던 눈이 바람에 휘날리며 당집 안으로 흩날렸다.

서연은 꼬리를 바라보다가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도망쳐야 했다.

당연히 그래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그 꼬리들이 거대한 짐승의 꼬리라기보다,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기대지 못한 한 사람의 상처처럼 보였다.

"구미호……."

서연의 입술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이름이 뭐예요?"

"알 필요 없다."

"그래도 불러야 하잖아요."

"……."

남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서리."

서연은 그 이름을 마음속으로 한 번 되뇌었다.

서리.

차갑고 외로운 이름이었다.

---

그날 밤.

서연은 신당 한쪽에 마련된 작은 방을 정리했다.

방이라고 해봐야 오래된 이불과 작은 장롱 하나가 전부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적어도 눈은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었다.

서연이 이불을 펴고 있을 때 문밖에서 서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연"

"네?"

"이리 와."

서연이 문을 열고 나갔다.

서리는 작은 나무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서연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이게 뭐예요?"

"계약서"

"계약서요?"

"이곳에서 지내고 싶다면 서명해"

서연은 황당한 얼굴로 종이를 들었다.

낡은 종이 위에는 몇 가지 조항이 적혀 있었다.

첫째. 서리의 허락 없이 신당의 물건을 만지지 않는다.

둘째. 밤이 되면 신당 뒤편으로 가지 않는다.

셋째. 서리에게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조항.

서연의 눈이 멈췄다.

넷째. 서리와 서연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서연은 한동안 그 문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결국 웃음이 터졌다.

"이게 무슨 계약이에요?"

서리는 무표정했다.

"필요한 계약이다."

"왜요?"

"내가 사람을 마음에 품으면 신력이 약해진다."

서연의 웃음이 조금씩 사라졌다.

서리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게 금기다."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건 더더욱 싫어”

서연은 피식 웃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서리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사랑 같은 건 이제 지겨워요.”

그 말에는 농담이라고 하기엔 너무 깊은 상처가 묻어 있었다.

서리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계약서를 서연 쪽으로 밀었다.

“그렇다면 간단하겠네”

“뭐가요?”

“사랑하지 않으면 돼”

서연은 펜을 들었다.

그러자 서리가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사랑하지 않겠다는 약속만 지킨다면, 여기서 살아도 좋아.”

서연의 손끝이 잠시 멈췄다.

이상하게도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조금 편해졌다.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것만큼은 지금 꼭 필요한 말이었다.

“좋아요.”

서리가 눈을 들었다.

"뭘?"

"계약할게요."

"조건은 제대로 읽었나?"

"네."

서연은 마지막 조항을 다시 바라보았다.

서리와 서연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주 작게 웃었다.

"걱정 마세요."

펜 끝이 종이에 닿았다.

"저도 이제 누군가를 사랑할 생각은 없으니까."

서연은 망설임 없이 계약서에 이름을 적었다.

박서연.

그 순간이었다.

계약서 위에 떨어진 눈송이 하나가 희미한 빛을 내며 사라졌다.

서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정말 사람을 믿어도 되는 걸까”

천 년 동안 아무에게도 열리지 않았던 서리당에 한 사람이 받아들여졌다.

서리는 자신도 모르게 청동거울이 있는 가슴 쪽을 손으로 눌렀다.

거울 너머로 천 년 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한 번만 더 믿어봐.*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절대로 믿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이미 무언가가 시작되어 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아직 알지 못했다.

사랑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시작된 이 계약이,

결국 서로의 마음을 가장 깊이 흔들어놓게 될 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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