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신이 전신의 경지까지 이르기까지, 정말 쉽지 않았다. 옥패를 얻기 위해 그가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들, 아무도 모를 것이다. 겨우 강자들과 나란히 어깨를 하게 되었는데, 모든 것이 흑풍 존주의 일격에 물거품이 되었다. 앞에는 염구준, 뒤에는 흑풍 존주, 김웅신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옥패를 내놓으면 시신은 훼손하지 않으마.”흑풍 존주는 손가락을 까딱해 부하에게 염구준을 막아서게 한 다음, 김웅신 앞으로 다가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경고했다.“사람 번거롭게 하지 말고 알아서 좀 협조해.”하지만 말을 고분고분 들을 김웅신이 아니었다.“옥패가 가지고 싶다면 바다에 들어가서 찾아봐라!”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품고 있던 옥패를 성 밖, 먼 바다를 향해 힘껏 던졌다.슝! 빛이 번쩍하며 허공을 갈랐다.이것은 김웅신의 마지막 생명력이었다. 녹색 옥패는 마치 낙하하는 유성처럼 꼬리에 불꽃을 물고 순식간에 수천 미터 멀리 날아갔다. 그렇게 거의 30분, 날아가던 옥패의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며 파도 속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김씨 가문 성으로부터 거의 10키로 떨어진 뒤였다.“열풍!”흑풍 존주가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낮게 외쳤다.“가서 옥패 찾아와. 조류에 휩쓸릴 수도 있으니까, 어서!”그 즉시, 암호명 열풍이라 불린 사사가 염구준 앞에서 모습을 감추며 옥패가 날아간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이 순간을 꽤 오래 기다렸겠네.”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염구준이 담담한 목소리로 흑풍 존주에게 말했다.“김웅신이 가지고 있던 옥패, 나에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야. 김웅신이 중상을 입은 마당에 수하까지 보내고, 네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흑풍 존주, 죽음이 두렵지 않나?”아무리 흑풍 존주라도 죽음은 두려웠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사람일지라도 인간인 이상 약점은 존재했다. 그리고 상대가 높은 곳에 있을수록 그 약점은 더 명확 해졌다. 흑풍 존주는 염구준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가족이었다! 이것이 그
염구준이 바로 그 유명한 전신전의 전주이자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초절정 고수였다니! 게다가 들어보니 은씨 가문하고도 뭔가 있는 것 같았다!김웅신은 그제야 자신의 의형제인 반보천인이 염구준을 만나러 간다더니, 갑자기 청홍방의 부하들을 데리고 종적을 감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은씨 가문의 반보천인조차 염구준의 상대가 안 되었던 것이다!“네가 어떻게 은씨 가문을?”흑풍 존주도 은둔 가문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은씨 가문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염구준도 그들과 접촉이 있었을 거란 생각은 못했었다. 그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설마 그쪽이랑도 싸웠어? 그런데 어떻게 살아있을 수가 있지?”은씨 가문이 염구준을 봐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흑풍 존주는 믿기 싫었지만, 어쩌면 염구준이 그들보다 더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씨 가문은 염구준을 안 죽인 것이 아니라, 못 죽인 것이다!“쓸데없는 얘기는 여기까지 하지.”흑풍 존주의 정체가 밝혀진 이상 염구준도 더 이상 주저할 것이 없었다. 그는 이 말과 동시에 신형을 흐트러뜨리며 흑풍 존주를 향해 맹렬한 주먹을 날렸다. 파바바박! 보이는 것은 일격이었지만, 실제로는 눈으로 따라갈 수 없는 20번에 가까운 공격이 가해졌다. 이것은 고씨 가문의 포복용권이라 불리는 권법이었다!“염구준….”물론 흑풍 존주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열풍이 옥패를 찾아오기 전까진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는 온몸에 전의를 끌어 올리며 염구준의 공격에 맞섰다.퍽, 퍽, 퍼버벅!눈 깜빡할 사이, 두 사람의 주먹이 연달아 부딪히며 주변 공기가 거세게 요동쳤다. 공중엔 마치 소형 폭탄들이 연달아 터지는 것처럼 폭발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 여파로 김씨 성의 담벼락들이 덜그럭거리며 흔들리며 폭풍우가 휩쓸린 듯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렇게 잠시, 두 사람은 50번에 넘는 공격을 서로 주고받은 다음 각자의 자리로 물러섰다. 하지만 멀쩡한 염구준과 달리 흑풍 존주는 허리와 복부에 다섯번
“존주님!”그리고 마침 해수면 위로 잠수함이 떠오르는 순간, 번쩍하고 검은 신형이 그 위로 안착하는 것이 보였다.“무사히 옥패를 찾았습니다!”그 정체는 바로 다름아닌 열풍이었다!잠수함 입구에 서 있는 그의 손에 익숙한 물체가 보였다. 좀 전에 김웅신이 바다를 향해 힘껏 던졌던 바로 그 옥패였다. 열풍의 외침이 들려오는 동시에 해수면에 있던 잠수함이 순식간에 수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반중력 장치, 수직 상승!“전략 삼급 공해 잠수함이라니, 네가 어떻게 이런 것까지?”염구준이 흑풍 존주를 차갑게 노려보며 위협을 담아 말했다.“전 세계에서 이 잠수함을 보유한 나라는 용하국과 성조국뿐일 텐데… 흑풍 존주, 네가 감히 성조국과 결탁을 하다니!”“성조국과 결탁한 것이 뭐 어때서?” 흑풍 존주가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염구준, 난 널 이길 수 없지만, 그렇다고 날 쉽게 죽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열풍!”어느새 성 위로 전략 삼급 공해 잠수함… 아니 비행기가 완전한 모습으로 떠올랐다. 열풍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망설임없이 허공을 갈라 흑풍 존주 앞으로 안착했다.“존주님!”열풍은 두 손으로 옥패를 흑풍 존주에게 건넨 다음, 몸을 돌려 염구준을 향해 전툰 태세를 취했다. 동시에 흑풍 존주의 몸엔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센 기운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옥패… 드디어 옥패를 손에 넣었다!”흑풍 존주는 옥패를 소중히 어루만진 다음,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염구준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염구준, 네가 아무리 대단한 실력을 가졌을지라도 수년간 내가 계획한 일은 망칠 수 없을 것이야! 열풍은 이미 전신 중기, 전신 정점과 큰 차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네가 반보천인이라 할지라도, 일초에 죽일 수는 없을 터! 넌 결국 날 잡지 못할 것이다!”말을 마치는 동시에 흑풍 존주는 열풍만 남겨둔 채, 땅을 박차고 쏜살같이 하늘을 날아 비행선에 올라탔다.교토삼굴, 교활한 토끼가
쾅! 선광이 허공을 갈랐다!엄청난 돌풍과 강력한 광선이 공중을 가르며 그대로 비행선을 강타했다. 약 20키로 밖에서도 충격여파로 주변이 떨렸다. 세계 최고라 불릴 수 있는 최첨단 기술과 무학이 충돌하는 순간이었다.비행선의 금속 외벽이 함몰되며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이 보였다. 붕괴된 비행선이 바다를 향해 빠른 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이뤄낸 결과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놀라웠다. 사람의 공격으로 천문학적 투자가 들어간 기체가 제대로 힘도 못 쓰고 무너졌다.흑풍 존주도 중상을 입고 비행선과 함께 바다로 추락했다.“흑충 존주….”하지만 염구준은 곧바로 그를 추격하지 않고 천천히 뻗었던 주먹을 내렸다.흑풍 존주의 기척이 갑자기 허공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좀 전의 일격으로 큰 부상을 입은 건 분명했지만, 염구준은 흑풍 존주가 겨우 이정도로 죽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비행선이 바다로 추락하는 동시에 흑풍 존주의 기척도 없어졌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한가지뿐이었다.‘천기석!’전에 도천연이 들키지 않고 염씨 가문을 습격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 천기석 때문이었다. 상황을 미루어 볼 때, 흑풍 존주는 김웅신으로부터 옥패를 빼앗아올 계획을 세웠을 때부터 최악을 대비했다고 볼 수 있었다.철저한 계략에 염구준은 다시 한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천기석으로 기척을 가렸다면, 확실히 나라도 추적은 힘들겠네.”염구준은 아쉬웠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흑풍 존주를 추적하는 것을 일단 포기했다. 대신 한쪽 바닥에 쓰러진 채 죽어가는 김웅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아무리 도망쳐 봤자, 내 철조망에 걸린 새. 아무리 꽁꽁 숨는다고 한들, 결국 나한테 잡힐 신세… 김웅신, 당신은 흑풍 존주의 배경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나?”김웅신의 안색은 이미 붉게 변하다 못해 보라색을 띄고 있었다. 옥패를 바다 쪽으로 던지면서 가지고 있던 모든 진기를 다 소모해 회광반조의 단계에 접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상
만에 하나 은둔세가 중 하나라도 세상에 모습을 들어낸다면, 오대강국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흑풍 존주를 상대할 생각이라면, 반드시 그 여덟 옥패를 모두 얻어야 할 것이다.”김웅신은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을 느끼며 힘겹게 품에서 손바닥만 한 작은 석판을 꺼냈다. 그리고는 힘 빠진 목소리로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염구준을 향해 말했다.“처음 옥패를 찾았을 때, 이 석판에 박혀 있었다. 난 수년간 이 부서진 석판의 비밀을 풀기 위해 노력했지만, 흑풍 조직의 표식만 알아봤을뿐, 다른 단서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니, 변한다는 말이 사실인가 봐. 마지막으로 이 석판을 너에게 주마. 대신… 김씨 가문의 무고한 식솔들의 목숨만은 살려다오! 부탁… 한다….”이 말을 마지막으로 김웅신은 모든 생명력을 소진한 듯 몸을 늘어뜨렸다. 곧이어 그의 근육들이 뻣뻣해지며 피부색이 회색 빛을 띄었다. 그렇게 한시대를 풍미하던 별이 지었다.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변한다는 말에 김웅신도 해당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염구준은 잠시 침묵한 뒤, 손을 휘저어 무형의 기운을 일으켰다. 김웅신의 손에 부서진 석판이 그의 손으로 안착했다. 염구준은 잠시 조각 안에 새겨진 단풍잎 그림을 쳐다보다가 자켓 주머니로 집어넣었다. 약 20분 뒤….“염 선생님!”멀리서 고해와 왕종서가 수백명의 금오분타 제자들을 대동하고 달려왔다. 그런데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김웅신의 시체와 멀리 추락한 비행선을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게….”손쓸 겨를도 없이 모든 상황이 끝나버렸다.“김웅신이 이미 죽은 마당에 굳이 또 목 벨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염구준이 사람들을 등진 채, 싸늘하게 굳은 김웅신의 시신을 바라보며 말했다.“오늘부터 김씨 가문은 완전히 멸문했어요. 생존자들은 해외로 모두 출국시키고 다시는 용하국으로 돌아올 수 없게 조치를 취해주세요.”말을 마친 그는 고해와 왕종서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무심히 자리를 떠났다. 김씨 가문의 멸망…
정말 놀랍게도 이 모든 성과는 염구준 단 한사람이 일주일만에 이루어 낸 것이었다. 앨리스는 과거 손씨 그룹과 협력관계를 맺기로 마음먹은 과거의 자신을 칭찬했다. 만약 그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흐지부지 지나갔더라면, 엘 가문은 김씨 가문처럼 처참한 결말을 맞이했을지도 몰랐다.“염 선생님, 참 마음이 넓은 것 같아요.”여비서가 좀 전에 받은 이메일을 보며 앨리스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저희 정보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염 선생님께서 남은 김씨 가문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 해외로 추방 보냈대요.”강하고 단호하지만, 그 와중에 선함을 잃지 않다니… 염구준은 정말 놀라운 남자였다!복잡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결심한 듯, 주먹을 꽉 쥐더니 입을 열었다.“아버지께 오늘 당장 손씨 그룹과 전속 계약을 체결하라고 알려줘. 앞으로 우리 회사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대리점은 전세계에 손씨 그룹뿐일 거야. 그리고 손씨 그룹과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그게 무엇이든 손익을 따지지 말고 최대한 지원하라고 해. 그렇게라도 해서 최대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어.”진지한 앨리스의 태도에 여비서도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다 문득 뭔가 떠오른 듯,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저희 정보원들한테 새로 들어온 소식이 있어요. 흑풍 존주가 염구준 선생님과 싸우다가 도주했는데, 지금 생사가 불분명하대요. 만약 살아 돌아왔는데, 저희와 염구준 선생님의 편의를 봐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보복이라도 한다면….”흑풍 존주를 떠올린 앨리스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녀는 생각에 잠긴 듯,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쪽으로 다가갔다. 앨리스는 염구준을 떠올리며 눈빛이 아득해졌다. 엘 가문이 염구준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흑풍 존주가 알게 된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뻔했다.그래도 염구준과 싸우다가 도망친 것이라면 죽지 않았더라도 최소 큰 부상은 입었을 터, 당분간 큰 소란은 피우지 못할 것 같았다. 아마 지금쯤 어딘가에서 부상을 치료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컸
“존주님….”도천연은 말을 다 마치지 못했지만, 흑풍 존주의 무관심한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가 돌아가길 원하지 않는데 강요할 수는 없었다. 대신 도천연은 직접 가문에 돌아가 상황을 설명하기로 결심했다. 가문의 도움 없이 염구준을 제거할 방법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흘 후, 용하국 서북, 붉게 물든 단풍입이 나부끼는 산골짜기 사이로 적색 장포를 입은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존주님께서 예전에 있었던 그 일 때문에 가문으로 돌아가길 거부하고 계십니다.”도천연이 적색 장포를 입은 남자 뒤에서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하지만 가문을 향한 존주님의 충성심만큼은 의심하지 말아 주십시오. 지금 방방곳곳 옥패를 찾아 헤매는 것도 모두 가문 때문입니다.”‘가문으로 돌아오길 원치 않지만, 마음은 변치않았다라…’적색 장포를 입은 남자가 도천연을 향해 몸을 돌리며 냉소를 지었다.“그렇단 말이지?”시큰둥한 그의 반응에 도천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남자의 별호는 적풍상인, 이미 30년 전에 반보천인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었다. 또한 과거, 흑풍 존주에게 있었던 그 일을 옆에서 목격한 인물이기도 했다.그 사건은 흑풍 존주가 아직 한참 청춘이었을 때 일어났다. 그에겐 미래를 약속한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가문 어른들의 반대로 무정하게 헤어지게 되었다. 여자는 이 계기로 목숨을 잃었고 흑풍 존주는 분노해 옥패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가문을 떠났다. 그렇게 30여년이 지나도록 다시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가문보다 사사로운 정을 더 중요시 여긴 녀석이, 충성?”적풍상인이 한심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도천연을 향해 말했다.“굳이 그 녀석을 위해 변명할 필요 없다. 가문에서도 별로 그 녀석을 달갑게 여기고 있지 않으니. 하지만 한가지만 기억하거라! 밖에서 무슨 일을 저지르든 상관치 않겠지만, 항상 가문의 임무가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옥패의 행방을 알게된다면 미루지 말고 즉시 내게 보고하거라!”역시나 가문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옥패였
“당신 방금 흑풍의 능력이 안된다고?” 잠깐의 침묵 끝에 적풍상인은 어떤 중점을 찾은 것처럼 도천연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네 뜻은 흑풍이 그 염구준이라는 사람과 싸워서 졌다고?” 도천연은 안색이 변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존주와 염구준이 앞뒤로 두 번이나 싸웠는데 존주가 모두 중상을 입고 실패했어. 특히 두 번째는 상처가 오장육부까지 스며들어 치유된다 하더라도 후유증이 남을 거야. 염구준, 보통 실력이 아니야!” 그의 말을 들은 적풍상인은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이씨 가문의 자제로서 존주의 실력은 30년 전에 이미 무성의 경지에 이르렀다. 지금은 전신지상까지 도달해 반보천인 외에는 아무도 그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데 속세에 반보천인이 나타났다고? 말도 안 돼.) “반보천인이라면 얕잡아 보아서는 안 돼.” 잠깐 생각하더니 적풍상인은 냉담하게 말했다. “옥패의 일은 본좌가 직접 해결할 테니…… 도천연, 본좌가 지금 수련이 난관에 부딪쳐서 돌파하려면 폐관을 해야 해. 그러니까 폐관하기 전에 네가 알아서 가문의 후배들한테 시켜.” (가문의 후배들이라…….) 도천연은 잠깐 생각하더니 눈빛이 밝아졌다. (이씨 가문에 숨겨진 인재가 많아 후배들 중에서도 훌륭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니 염구준에게 엿 먹이려면 식은 죽 먹기였다. 지금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이씨 가문의 가장 젊고 특별한 자제인 이장공이었다.) 도천연이 은둔이 가로 돌아갈 때 염구준은 청해로 돌아갔다. 이번 봉황국에 가서 한 주일 정도 있다가 다시 만난 염구준과 손가을은 오래간만에 서로 꼭 껴안았다. 그리고 염구준은 침대 머리맡에 있는 옷에서 블랙카드를 꺼내 손가을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가을아, 이거 가져.” (이건…….) “봉황국 제호 카지노의 전 재산이야. 많진 않아, 1조 정도 돼.” 염구준은 일어나 웃을 입고 김웅신이 옥패를 발견했을 때 안에 박혀 있던 금이 간 청석판을 꺼내 몇 눈 보더니 낮은 소리로
스스로 조소하던 로사는 카트 아래에서 가운을 꺼내 몸을 감쌌다.상대방이 이런 취향이 아닌데 계속 이러고 있으면 오히려 반감만 생긴다.솔직히 처음으로 당당하게 남자를 유혹하려 하는데 단번에 거절당해서 매우 부끄러웠다.한참이 지나도 말을 하지 않자 염구준이 소녀의 생각을 추측했다.“내가 대신 복수해줘? 탈출시켜줘, 아니면 무공을 알려줘?”“전부 다요!”로사는 그가 전부 맞힐 줄은 상상도 못했다.염구준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이 미리 쓴 원고를 던지며 말했다.“거기에 적힌 대로 하면 무공을 터득할 수 있어. 나머지는 너를 도와줄 의무가 없어.”그가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소녀가 정말 무공을 배우기에 적합한 인재이기 때문이었다.로사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강요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그럼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요?”“말해.”마침 염구준도 시간이 있기에 로사의 말을 들어주고 나중에 복수하는 것을 포기시킬 생각이었다.그러면서 음식을 먹는 것을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로사는 일단 생각을 정리하고 조리 있게 말하기 시작했다.“난 고아예요. 아주 어릴 때 고아원에 들어갔었죠. 그곳은 낙원일 줄 알았는데 원장이 나를 신비한 조직에 팔아버렸어요. 나랑 함께 그곳에 간 아이들은 혹독하고 잔인한 훈련을 받으면서 피비린내 진동하는 살인 도구로 살았어요.”“그러다 반 년 전에 내가 조직의 두목을 죽이고 도망쳤어요. 그곳을 이가 갈리도록 원망해요. 선배님은 실력이 강한 무술인이란 걸 처음 봤을 때부터 알았어요. 나를 가엽게 여기고 옆에 하인으로 있게 해주면 안 돼요?”예상하지 못한 말에 염구준은 흠칫 놀라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사정이 딱하긴 해. 그렇다고 난 도와주지 않아.”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로사는 용하인이 아니기에 더더욱 도와줄 이유가 없었다.그리고 곁에 하인을 두면 귀찮은 일만 생기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무공 수련법 한 장을 준 것도 의리를 다한 셈이었다.“그래도 나를 구
염구준은 육신이 극한에 도달한 이후로 공격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너… 악!”촤아악!바다의 유령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비수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순식간에 뒷목에 서늘한 것이 스치는 것을 느끼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버렸다.나머지 여섯 명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피바다에 고꾸라졌다.“내가 준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자신을 탓해.”염구준은 검을 한바퀴 돌려 피를 털어버리고 검갑에 집어넣었다.그 동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깔끔했다.“다… 당신 사람을 죽였어.”먼 발치에서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본 선장은 너무 놀라 주저앉았다.로사는 그나마 무덤덤하고 나머지 선원들도 많이 놀랐는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솔직히 일곱 명의 무술인이 어떻게 죽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은혜도 모르는 놈들 죽어 마땅하지 않아요?”염구준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이런 악당들이 죽으면 아무도 자신들을 해치지 않아서 기뻐해야 할 마당에 선장은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보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그… 그래도 사람이잖아요.”이제 보니 선장은 그동안 잔인하게 고래를 잡았으면서 사람에게 관대했다.만약 염구준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로사는 비참하게 당했을 거고, 선장 일행은 비참하게 죽었을 것이다.그때 독수리가 기회를 잡고 맞장구를 쳤다.“저 사람들은 당신을 노리고 왔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우리가 억울하게 당한 거라고요. 당장 우리 선박에서 내려요!”“…”독수리의 말에 선원들은 경악하며 쳐다보았다.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정말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촤아악!염구준이 인상을 찌푸리며 날카로운 검기를 내리치자 다들 너무 무서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안 돼요. 아직 아이란 말이에요.”분위기가 살벌해지자 로사가 반쯤 드러난 가슴을 감싸고 독수리의 앞을 막았다.구자검의 검기는 소녀의 옆을 스쳐 바다 표면에 물보라를 일으켰다.염구준은 공격하지 않고 협박투로 말했다.“또 나한테
드디어 구명보트를 탄 일행이 선장의 도움으로 선박으로 올라왔다.모두 여덟 명으로 그동안 먹지를 못했는지 몸은 수척해지고 탈수 증상이 있었다.“주방에서 음식들 갖고 와. 그리고 링겔을 놔줘.”선장은 일행은 관찰한 후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그런데 음식은 그분한테 줘야 하는데요.”염구준을 무서워하는 선원 한 명이 작은 소리로 일깨워주었다.그러자 선장이 엄숙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일단 이 사람들 주고, 다시 만들어서 보내면 돼.”만약 염구준이 있었다면 일행을 전부 알아보았을 것이다.두 시간의 응급처치를 거쳐서 여덟 명은 드디어 혈색이 돌아왔다.아직 몸이 많이 허약하지만 그래도 목숨을 부지해서 참 다행이었다.“큰일은 없으니까 한동안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선장은 웃으면서 선원들에게 안으로 모셔서 쉬게 하라 일렀다.모두 마음이 어진 어부들이라 바다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보고도 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지금이야!”바로 그때, 돌변상황이 발생했다.구조된 일행 중에서 누군가 소리치자 여덟 명이 동시에 기운을 끌어올려 선원들을 공격했다.평범한 선원들은 저항하지도 못하고 단번에 제압당하고 말았다.“악!”로사는 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 종사지경에도 도달하지 못한 무술인의 목을 베었다.그런데 방금 공격으로 이미 기진맥진했다.“대장, 여자가 있어.”“가만히 있어. 내가 상대할게.”그들은 동료가 죽은 것도 개의치 않고 모두 로사의 몸매만 쳐다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쿵!대장이라는 무술인이 기운을 폭발시키더니 갑자기 덮쳐서 로사를 제압했다.“발버둥쳐. 반항해 봐. 그럴수록 더 흥분되니까. 하하하.”이렇게 혈기왕성한 모습이라니, 방금 전에 죽을 것처럼 시들시들하던 인간 같지 않았다.그 장면을 본 선장은 가슴이 칼로 에이는 것 같았다.지금까지 어부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런 악당들을 만났다.“너희들 뭐하는 짓이야? 방금 우리가 너희를 살렸어.”선장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들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았다.“우리를 구했다고?
“맞아.”염구준은 소녀의 몸에서 악한 기운을 느꼈지만 덤덤하게 말했다.기운만 보아도 사람 몇 명을 살해한 것 같았다.“날 잡으러 왔어요?”로사는 비수를 꽉 쥐고 또 물었다.“아니야. 길이나 안내해.”염구준이 그 사이 소녀를 관찰한 결과, 무술을 배우기에 좋은 재목이었지만 아쉽게도 인도할 스승이 없었다.두 사람은 오늘 처음 만났으니 더는 소녀의 일에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휴, 무례하게 대해서 죄송해요.”그제야 로사는 비수를 넣으며 사과했다.소녀는 앞장서 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방금 싸우려는 자세만 봐도 건장한 남자를 상대하는 것은 문제없어 보였다.선장 침실에 도착하자 로사는 이불을 바꾸고는 한마디만 하고 떠났다.“쉬세요. 음식이 되면 여기로 가져다 줄게요.”“그래. 볼일 봐.”쿵!염구준은 문을 닫고 침대에 쓰러져서 잠들었다.이런 포근함을 오랜만에 느끼는 것 같았다.그리고 머릿속에 그동안 발생했던 일들을 정리했다.황계웅에게서 옥패의 단서를 발견하고, 유동심연에 도착했을 때 나머지 세력이 따라온 덕에 비슷한 정보를 얻었다는 것을 알아냈다.이 정보는 어쩌면 같은 사람이 흘렸을 수도 있다.그리고 심해에서 봤던 가짜 옥패는 흑풍의 표식을 남긴 것을 보아 틀림없이 그놈의 짓이다.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상황은 이랬을 것이다.몇 년 전에 흑풍이 심해에서 진짜 옥패를 찾았는데 위험한 곳이란 걸 알고 적을 죽이려고 함정을 판 것이다.마침 강적을 만난 그는 시기가 되자 일부러 고대 옥패의 단서를 남겨 죽이려고 했는데, 계획과 다르게 적의 육신이 극한 경지에 도달하게 만들었다.…이런 생각을 하다가 염구준은 잠에 빠졌다.밖에 날씨가 화창하고 바람도 적게 불어 항행하기 딱 좋았다.이번은 선장이 직접 나서서 전속으로 달리고 있었다.지금 그는 빨리 부두에 도착하여 염구준의 돈을 받는 즉시 선박에서 내보낼 생각이었다.어쩐지 그는 사람이 아니라 핵폭탄 같았다.조종석에서 할 일이 없는 몇몇 선원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잡
그의 재력이라면 대형 수영장을 만들어 향유고래를 키울 수도 있지만 바다가 고래의 고향이라 그러지 않았다.“선장, 고래가 엄청난데 잡지 않아요?”갑판에서 몸이 건장한 흑인 선원이 불만을 토로했다.눈앞에서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것이 전부 돈이니 그럴만했다.“독수리, 주둥이 닥쳐!”선장은 아직도 누군가 향유고래에 미련을 두자 버럭 화를 냈다.염구준이 어디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발산하는 기운은 보는 사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독수리가 염구준을 힐끗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나머지 선원들도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선장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저기, 아직 볼일이 남았어요?”선장은 염구준이 조용히 앉아 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여기서 가까운 부두로 데려다줘요.”염구준은 끝없는 바다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이곳은 바닷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일단 상륙한 후에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그게…”선장은 난처한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어려우면 말씀하세요. 그렇다고 폭행을 휘두르면서 강요하지 않으니까.”염구준은 선장의 태도가 이상한 걸 눈치채고 분명하게 말했다.선박은 어부들 것이니 강제로 빼앗지 않을 것이다.그의 말에 선장은 솔직하게 말했다.“우리는 고래를 잡아서 생계를 유지해요. 이제 나와서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손해가 엄청납니다.”그들은 염구준이 무섭지만 돈을 벌지 못해 가족들이 굶는 것이 더 무서웠다.“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아요. 얼마를 원하세요? 육지에 도착하면 내가 줄게요.”염구준에게 있어 돈으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100만 달러.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선장은 믿지 않는지 거액의 가격을 부르면서 떠보았다.듣기에 높은 가격이지만 따져보면 수리비용, 연료, 인건비 등등 모두 제외하면 얼마 남지 않으니 합리적인 가격이었다.“이걸로 담보할게요. 어차피 당신네 선박에 있으니까 도망치지 않아요.”염구준은 상대방이 걱정하는 걸 알아차리고 딸에게 선물하려고 주은 주먹
이튿날, 미지의 바다에서 향유고래 한 마리가 헤엄치고, 등에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그 사람은 바로 염구준이었다.사방에 온통 푸른 바다라 지금 어느 곳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지금은 고래가 바닷가로 데려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고래야, 잘 부탁한다.”“우웅!”둘은 서로의 말을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수시로 교류했다.염구준이 눈을 감고 운기조식하다가 배고프면 심해의 눈물로 에너지를 보충했다.신기한 것은 한 방울만 먹어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뿌우우우웅!그때 멀리서 선박 소리가 들렸다. 염구준은 눈을 번쩍 뜨고 소리를 질렀다.“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목소리에 기운을 담았더니 쩌렁쩌렁한 소리를 지를 때마다 수면이 음파에 진동하는 것 같았다.어디선가 나타난 선박에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슥!그런데 선박에 다가간 순간, 상대방이 고래를 잡는 쇠고랑을 발사하는 것이었다.염구준은 재빨리 검기로 밧줄을 잘라버렸다.선박은 그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향유고래를 잡으러 온 것이었다.생각하지 않아도 고래의 용연향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스스슥!선박에 있는 사람들은 고장난 줄 알고 이번에 작살을 던졌지만 역시 염구준에게 잘려서 바다 밑으로 들어갔다.상대방과 가까워지자, 염구준은 그들의 선박에 번쩍 뛰어올라 엄숙하게 경고했다.“멈춰. 아니면 무력으로 대응할 거야.”선원들은 대부분 기운이 없는 평범한 어부였다.그들은 염구준이 먼 곳에서부터 뛰어올라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여기서는 고래를 잡는 걸 허락해요.”한참 뒤, 선장은 국제 감독기관에서 온 줄 알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이 고래는 내 친구예요. 어떻게 할지 잘 알겠죠?”염구준은 선장을 노려보며 차갑게 되물었다.“알았어요. 이 사람 말을 못 들었어? 당장 작살을 내려놔!”선장은 상대방이 보통이 아니란 걸 눈치챘는지 바로 선원들에게 지시했다.그러자 당황한 선원들은 정신을 차리고 지시대로 작살을 내려놓았다.염구
감히 그의 전우나 다름없는 고래를 잡아먹으려고 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만약 향유고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심해 밑에서 죽었을 것이다.“염 선생님, 안 돼요!”당황한 노신기 일행이 다급히 나서서 말렸지만 염구준은 듣지 않았다.그는 요트를 타고 서해충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러 공격했다.“당장 토해!”염구준은 두 손으로 검을 들고 번쩍 뛰더니 위에서 서해충을 자르려고 했다.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고래를 살려낼 것이다.“하악!”뿔난 서해충이 나지막하게 울부짖더니 커다란 입을 벌이고 염구준을 통째로 삼키고는 물속으로 들어갔다.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모두 경악하고 말았다.심지어 천기문의 고위층들도 진정할 수 없었다.“염 선생님!”“안 되겠어. 모든 음성탐지기를 던져!”노신기는 당황한 마음에 맞서 싸우려고 명을 내렸다.유동심연의 사방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이번에 오면서 대량의 음성탐지기를 챙겼었다.그러나 워낙 위력이 강한 무기라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염 선생님, 제발 잘 버텨줘요.’촤아악!이제 막 음성탐지기를 내려놓고 가동하려고 할 때 눈앞에서 거센 물보라가 솟구치는 것이었다.해저 지진으로 거센 파도가 밀려오면서 일으킨 쓰나미였다.“다들 선실로 들어가!”위급한 상황에서 노신기는 어쩔 수 없이 먼저 가문을 지켜야 했다.선박 세 척은 쓰나미에 밀려 먼 곳까지 흘러갔다.한편, 바다 밑은 난리도 아니었다.서해충 체내에 들어간 염구준은 선사 시대의 바다 생물과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그가 공격할 때마다 서해충은 심한 고통을 느꼈는지 커다란 몸집을 꿈틀거렸다.실은 서해충이 삼킨 것이 아니라 그것이 도망칠까 봐 염구준이 스스로 잡혀 먹힌 것이었다.한참 공격하면서 돌진했더니 드디어 향유고래가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구자검법! 검일참공!”그는 기운을 폭증시켜 강력한 살술로 서해충의 몸에 길이가 10미터되는 상처를 냈다.잘린 부위에서 바닷물이 역류하여 들어올 때, 염구
동물의 감각은 때론 인간보다 훨씬 뛰어났다.특히 바다에서 자란 생물이라면, 웬만한 레이더보다도 훨씬 빨리 감지할 수 있었다.쿠쿵!혹시라도 싸울 수 있기 때문에 다들 몸에서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아래쪽에서 뭔가 빠르게 올라오고 있어.”염구준은 날카로운 눈으로 바다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아직 수면까지 오지도 않았는데, 그 그림자는 이미 성체 향유고래와 맞먹는 크기였다.‘설마, 진짜 서해충이 있는 건가?’“목표가 공격 범위에 진입했습니다. 모든 작살 준비 완료했습니다.”대원들은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 3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내에 모든 준비를 마쳤다.“쏴!”노신기는 참을성 없이 바로 명령을 내렸다.‘망했다!’염구준은 말리려고 했지만 결국 말리지 못했다.물속의 거대한 생물체는 어선보다도 커서 자칫하다간 오히려 배가 끌려갈 수도 있었다.슥! 슥! 슥!고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세 척의 어선에서 수십 발의 대형 작살이 물밑의 검은 그림자를 향해 발사되었다.타겟의 몸집이 컸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살이 정확하게 꽂힐 수 있었다.“끌어 올려!”노신기는 고래 잡이를 할 때 쓰던 방식을 운용하며 숙련하게 명령을 내렸으나 기계를 최대치로 올려도 타겟을 끌어오리지 못했다.이에 조타실에서 다급하게 소식을 전했다.“큰일입니다. 어선이 저것에 의해 유동심연 쪽 소용돌이로 끌려가고 있어요!”배는 엄청난 속도로 끌려갔다. 배 자체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속도였다.“밧줄을 끊어!”염구준은 노신기의 무전기를 낚아채고 지휘권을 넘겨받았다.“속도가 너무 빠른 탓에 꽉 감겨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조타실에서 절박한 답변이 돌아왔다.현대식 어선은 전부 인공지능 시스템이라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우웅!염구준은 결국 검기를 날렸고, 날카로운 검광이 연달아 번쩍이며, 단숨에 밧줄들을 잘라냈다.이에 배가 거대한 관성에 휘청이며 흔들렸고, 균
오늘 만약 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빨리 항행하라고 하세요. 뭔가 이상합니다.”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말에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네, 말하고 오겠습니다!”그러나 눈치가 생긴 사람들은 염구준의 뜻을 알지 못해도 그대로만 하면 된다는 걸 알고 있어 곧바로 달려갔다.그들은 염구준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염구준은 흡족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면을 바라보며 물었다.“스텔라성의 성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으십니까?”이번에 스텔라성의 성주는 두 개의 판을 짰는데, 하나는 겉면으로 보이는 부성주 베르였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숨어있던 노대영이었다. 다른 걸 다 따지고 나서 판을 짠 것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계획이었다.그랬기에 염구준은 그를 중시했다.노신기와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서로를 바라본 뒤, 늙은 아타가 입을 열었다. “성주의 이름은 노세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의 소유자로, 진 적이 없습니다.”“하지만 지난 20년간, 외부에서는 그의 모습을 본 이가 없습니다. 폐관 중이라는 소문도 있고, 이미 사망했다는 이야기도 돌고 있지요.”“그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라, 저희도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이야기를 들은 염구준은, 오히려 흥분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흐음, 전부 사실이라면 꽤 괜찮은 상대가 되겠군요.”방금, 막 육체의 극한을 돌파한 염구준은 적당한 시험 상대가 필요했다.‘대단해.’주변 고위 간부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염구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다만 약간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스텔라성 성주 같은 괴물은, 대부분 기겁하며 피하려 하는데, 정면 승부를 기대한다니까 말이다.“그나저나 염 선생님, 전에 올라오실 때, 인원이 적던데, 혹시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노신기는 다른 걸 얘기하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아, 이거 아십니까?”그의 손에는 투명한 비닐에 담긴 작은 물방울이 들려 있었는데, 외부에는 진기가 감돌았다.‘어라?’조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