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미친년이 감히 나한테 이런 짓을 해?!”매운 고추물이 눈에 들어가자마자 그대로 전투력을 상실한 서도현은 두 손으로 눈을 감싸 쥐고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댔다.남설아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몸을 돌려 도망쳤다.바깥은 길게 이어진 복도였고 저기만 빠져나가면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건 너무 아름다운 상상이었다.서도현은 금세 따라붙었고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채며 뒤로 힘껏 당겼다.“이 싸가지 없는 년이, 오냐오냐 봐주니까 기어오르네. 오늘 제대로 안 당하면 계속 나 무시할 거지?!”“내 말 잘 들으라고. 내가 원하는 거 당장 내놓지 않으면 넌 진짜 끝장이야!”서도현은 말로만으로는 화가 안 풀리는지 남설아의 뺨을 거세게 두 번이나 후려쳤다.눈앞이 하얘진 남설아는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콩밥 더 먹고 싶어서 환장했구나?”“네가 오늘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서도현은 갑자기 낄낄 웃기 시작했다.원래 남설아는 이번 일도 배서준이 자신을 겁주려고 일부러 벌인 일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 남자의 눈빛을 보니 정말 자신을 죽일 기세였다.‘좋아.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네. 배서준, 서도현. 이제는 사람을 끌어들여 죽이는 법까지 배운 모양이지?’남설아는 생명의 위협을 뼛속 깊이 느끼며 바로 표정을 바꿨다.살짝 미소를 지으며 서도현을 바라본 것이다.“나 죽인다고 무슨 이득 될 거 있어? 네가 필요한 건 돈 아니야? 260억? 그까짓 건 아무것도 아니잖아. 나 지금 배서준이랑 아직 혼인관계인 거 몰라? 내가 죽으면 그 주식이랑 재산은 전부 배서준 거야. 하지만 내가 살아 있으면? 그걸 너한테 줄 수도 있어, 어때?”서도현은 그런 말 따윈 믿을 생각도 없는지 바로 또 한 대 뺨을 갈기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또 말장난하면 진짜 확 죽여버린다?”“진짜야. 돈이야 다시 벌면 되지만 지금 내 목숨이 네 손에 달려 있는데 내가 감히 거짓말을 하겠어?”남설아는 필사적으로 그
‘정말 철저하게 계획한 거였네.’남설아는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나 진짜 얌전히 있을게. 말 잘 들을게.”말은 순하게 했지만 머릿속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복도만 벗어나면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이 건물 자체를 벗어나야 진짜 살아나갈 수 있었다.서도현은 수표와 열쇠를 챙기고 나서 갑자기 표정을 바꾸더니 남설아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그러고는 복도 한가운데서 갑자기 그녀의 옷을 거칠게 찢기 시작했다.“뭐 하는 거야?!”남설아는 공포에 질려 몸부림치며 소리치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서도현을 쳐다봤다. ‘제정신인 건가?’서도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 한번 뺨을 세게 갈겼다.“이 미친년아, 진짜 내가 멍청한 줄 알았냐?”“너 같은 년한테 속을 줄 알아? 오늘은 일단 실컷 즐길 거니까 다 끝나고 나서 공증이든 뭐든 하러 가자!”서도현은 한 손으로 남설아의 두 손목을 움켜잡았고 다른 손으로는 허리띠를 풀며 당장이라도 끔찍한 짓을 벌이려는 기세였다.이성적인 접근이 통하지 않자 남설아는 완전히 미친 듯 발악하며 격렬하게 몸부림쳤다.뒤이어 그녀는 타이밍을 재더니 무릎을 치켜들어 힘껏 찼다.“으아악!!”“남설아! 이 미친년! 감히 날 걷어차?!”서도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치 삶은 새우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몸을 웅크렸고 그대로 움직이지 못한 채 끙끙댔다.남설아는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몸을 굴리며 일어선 뒤 그대로 기어가다시피 문 쪽으로 달렸다.이번이 유일한 기회였다. 다시 잡히면 그땐 정말 끝이었다.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직 앞으로만 내달렸다. 숨이 막혀도, 다리가 후들거려도 멈출 수 없었다.“거기 서! 남설아, 이 미친년아! 감히 도망쳐?! 잡기만 하면 바로 죽여버릴 거야!”서도현이 뒤에서 악을 썼지만 조금 전 당한 타격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안타깝게도 두 사람의 체력 차는 너무 컸다.남설아가 거의 문에 도달해 탈
‘우민 씨’라는 이 한마디에 송우민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뭔가 다정하게 들리네. 죽다 살아나는 순간에도 이런 말이 나올 줄이야. 이 여자, 정말 보통이 아니네.’송우민은 말없이 남설아를 번쩍 안아 들었다.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서도현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데려가.”“네!”곁에 있던 전기태가 곧장 앞으로 나서더니 서도현의 뒷덜미를 낚아채 그대로 차에 실어버렸다.그제야 서도현도 자신이 건드린 상대가 어떤 사람들인지 깨달은 듯 얼굴이 확 굳어지더니 다급하게 외쳤다.“안, 안 돼! 나한테 손대지 마! 내 매형이 배서준이야!”“네 매형이 배서준이면 뭐? 그래서 넌 더 죽어야지.”전기태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주먹을 날렸다.송우민과 함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았다.배서준이야말로 그들의 가장 큰 원수이자 송우민이 모든 걸 잃게 만든 장본인이었다.병원, 병실.다시 눈을 떴을 때 남설아는 온몸이 쑤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목덜미를 더듬어 확인했다. 살아있는 느낌이었다.그녀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혼잣말처럼 웃었다.“휴, 다행이다. 아직 살아 있네.”“그래도 멘탈은 괜찮은가 보네?”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 있던 송우민은 남설아가 깨어난 뒤의 반응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남설아는 처음의 두려움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놓였다.그가 아니었으면 자신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곧 남설아가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강연찬이 허둥지둥 뛰어 들어와 그녀의 양 어깨를 붙잡고 얼굴을 들여다봤다.“괜찮아? 어디 다친 데 없어? 어디가 아파?”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남설아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대답했다.“괜찮아... 나 정말 괜찮아.”강연찬의 다급한 모습에 송우민은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알 수 없는 짜증이 피어오르며 콧소리가 절로 나왔다.“여기 나도 있는데?”그 한마디에 강연찬의 얼굴빛이 확 변했다.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남설아 앞에
“동문이야.”강연찬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남설아를 바라봤다.원래는 이런저런 경고와 당부를 하려고 마음먹었지만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자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설아야, 어디 아프진 않아?”그는 애틋하게 그녀의 뺨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어쩔 수 없이, 또 한 번 마음이 무너졌다.“배씨 가문은 너한텐 너무 위험해. 제발 이혼해. 네가 원하면 뭐든지 내가 도와줄게.지금 난 그저 네가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이야, 알겠지?”“싫어.”남설아는 망설임 없이 단칼에 거절했다.그러고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은행에 전화를 걸었다.수표 효력을 취소하고 금고 열쇠 분실 신고까지 해버린 것이다.그건 겨우겨우 손에 넣은 중요한 것들이었기에 절대 그런 쓰레기한테 넘겨줄 수는 없었다.그땐 시간만 벌려고 그랬을 뿐 지금은 몸을 추스르고 정신도 돌아왔으니 더는 잃을 이유가 없었다.남설아의 이런 대처를 보며 강연찬은 자기가 너무 성급했다고 느꼈다.그리고 확실히 깨달았다.남설아의 마음속에는 이제 배서준이라는 존재는 완전히 지워졌다는 것을.그녀가 지금 마음속으로 바라는 건 오직 ‘되찾는 것’뿐이라는 것을.“선배, 내가 원하는 건 내가 직접 되찾을 거야. 다른 사람 손 빌릴 필요 없어.”“걱정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난 내 힘으로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사람이야. 난 나를 지킬 수 있어.”남설아는 전화를 끊고 진지한 눈빛으로 강연찬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녀는 배서준의 집에서 5년 동안 ‘새장 속의 새’로 살았다.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삶은 이제 지긋지긋했다.다시는 누구에게도 휘둘리고 싶지 않았고 심지어 누군가의 호의에도 기대고 싶지 않았다.“설아야, 난 그냥 널 돕고 싶었을 뿐이야.”남설아의 말에 강연찬은 적잖이 상처를 받았다.자신의 도움이 그녀에겐 오히려 짐처럼 느껴졌다는 사실이 씁쓸했다.그의 그런 표정을 보며 남설아는 괜히 미안해졌고 마음 한켠이 아릿해졌다.하여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선배, 날
지금 배서준은 비록 서유라 곁에 있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이었다.원래는 전날 밤 남설아를 따로 불러서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는데 뜻밖에도 서유라가 또다시 발작을 일으켰고 어쩔 수 없이 밤새 곁을 지켜야만 했다.남설아가 얼마나 기다렸을지 알 수 없지만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이전 같았으면 배서준은 그저 아무렇지 않게 넘겼겠지만 이번만큼은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괜히 미안하고 뭔가 잘못한 기분까지 들었다.“서준아, 오늘 회사 가지 마. 나 혼자 집에 있으면 너무 무서워...”서유라는 눈물까지 머금고 배서준의 소매를 붙잡았다.그녀는 아주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다.지금 배서준의 마음이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것.굳이 묻지 않아도 알았다. 그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분명 남설아라는 걸.이런 현실이 그녀의 마음을 더더욱 뒤틀리게 만들었다.오랜 시간 공들여 겨우 붙잡은 배서준인데 고작 며칠 만에 다른 여자에게 빼앗길 수는 없었다.절대 그런 일은 용납할 수 없었다.배서준은 그녀의 손을 떼어내고 조용히 일어나더니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말투는 최대한 부드럽게 유지했다.“지금 전환 프로젝트가 중요한 시기야. 빠질 수 없어. 몸 안 좋으면 집에서 좀 쉬어.퇴근하고 바로 올게. 알았지?”“싫어. 서준아, 나도 같이 갈래. 나 혼자 있긴 무서워...”서유라는 다시 한번 그의 소매를 꼭 붙들었다.예전의 배서준이라면 그녀의 이런 의존이 귀엽게 느껴졌겠지만 오늘따라 그녀가 무척 유치하게 느껴졌다.불편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배서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를 데리고 회사로 향했다.“남설아 보고 프로젝트 경과 보고하라고 해.”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배서준이 단호하게 지시했다.천기준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리며 서 있었고 얼굴에는 난감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안 들려?”배서준은 그가 미동도 하지 않자 표정이 금세 굳어졌다.착각인진 모르겠으나 요즘 들어 배건 그룹 안에서조차 자신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듯한 기분
한원준이 사무실에서 나올 때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기술팀 자리로 돌아온 그는 물 한 모금을 힘없이 마시더니 푸념하듯 말했다.“대표님 오늘 도대체 왜 그러신 거야? 이 기획안, 전에는 엄청 잘됐다고 하시더니 오늘은 아주 쓰레기 취급이야. 한 시간 넘게 혼나고 나왔어. 내가 무슨 천벌 받을 짓 했나?”“오늘 팀장님이 안 와서 다행이죠. 안 그랬으면 그 화살 전부 팀장님한테 꽂혔을걸요?”따뜻이 다가온 오민지가 견과류 한 봉지를 건네며 싱긋 웃었다.그 말을 들은 한원준은 당장 기분이 묘해졌다. 오민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다가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민지 씨, 진짜 사람 맞아? 방금 입에서 나온 말, 스스로 돌이켜는 봤어? 팀장님 목숨은 소중하고 내 목숨은 안 귀해?”“근데 우리 팀장님 요즘 왜 자꾸 결근하시는 걸까요? 오늘도 또 휴가래요. 혹시 대표님한테 맞아서 침대에서 못 일어나는 거 아니에요?”오민지의 소리에 한원준은 하마터면 견과류를 뿜을 뻔했다. 그는 당장 그녀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는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민지 씨, 입에 자물쇠 하나 달아 좀!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말을 해? 우리야 그냥 회사원일 뿐인데 대표님이랑 사모님의 애증 관계를 우리가 함부로 입에 올려도 되는 줄 알아? 죽고 싶어?”“일해, 일!”한원준은 주변의 수군거리는 시선을 손으로 내쫓듯 휘젓고는 다시 일에 집중했다.한편 남설아는 다쳤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고통을 꾹 참고 다시 코딩을 이어가고 있었다.송우민이 도착했을 때, 남설아는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은 그를 묘하게 자극했고 또 부럽게 만들었다.그도 원래는 남설아처럼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며 빛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모든 걸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여기서 이렇게 여유롭게 일이나 하고 있고 좋겠다?”송우민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남설아를 바라봤다.비꼬는 말투지만 남설아는 그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를 보자마자
“서도현?”그 이름만 들어도 분노가 치밀었다. 남설아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이를 갈듯 말했다.“그 망할 자식만 생각하면 열이 확 받아. 그놈 때문에 지금 이렇게 침대에 누워서 죽을 만큼 아픈 거 아니야. 민아, 네가 꼭 누나 복수해줘야 해, 알겠지?”“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송우민은 이를 악문 그녀의 표정을 보며 왠지 모르게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남설아는 당장이라도 그 자식 목을 쳐버리고 싶었지만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가서 아주 그냥 피떡 될 때까지 두들겨 패. 피범벅 되게. 그리고 해변가 별장 문 앞에 던져놔.”“패기만 하면 돼?”송우민은 의외라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의외로 착하네?”남설아는 그 말투가 자기를 놀리는 거라는 걸 단박에 알아챘다.“말투 왜 이렇게 여자 같냐? 철딱서니 없이. 먼저 물어본 건 너잖아. 내가 답하니까 또 태도 바꾸냐?”“이 정도로 큰일 도와주는데 뭘로 보답할 건데?”송우민은 더 이상 장난 섞인 태도는 보이지 않고 진지하게 물었다.‘이 인간, 역시 쉽게는 안 넘어가네. 그냥 도와줄 리가 없지.’남설아는 이를 갈며 송우민을 노려봤다.“말해. 뭘 원해?”“배건 그룹 최근 5년간 핵심 사업 자료 전부.”그는 망설임 없이 조건을 내걸었다.대단한 요구인 줄 알았는데 그 정도면 오히려 다행이었다.“지금 당장은 없지만 몸만 회복되면 바로 넘겨줄게. 어때?”남설아는 웃는 얼굴로 단번에 받아들였다.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는 순간 송우민은 얼굴 표정이 확 바뀌더니 성큼 다가와 그녀의 턱을 움켜잡고 비웃듯 말했다.“내가 서도현인 줄 알아? 시간 끌기 같은 거, 감히 나한테 써?”‘이 사람 혹시 여우가 사람으로 변한 거 아닐까? 눈썹 진하고 인상 좋아 보였는데... 은근히 뒤끝 있다니까!’남설아는 속으로 분통이 터졌다.“근데 진짜 지금은 가진 게 없단 말이야.”“3년 전 인터넷 경진대회. 그쪽이 우승자였지?”송우민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다 알아.
송우민은 강연찬의 매서운 눈빛을 마주하자 본능적으로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지금까지는 늘 신사적인 인상만 남아 있었는데 이런 야성적인 기운은 처음 느껴졌다.하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은 송우민은 아무렇지 않은 듯 강연찬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걱정 마. 난 남의 아내한테 관심 없어.”배건 그룹 며느리가 아니었으면 처음부터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사람이다.강연찬은 복잡한 눈빛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선배 왔구나. 밥은?”병실에서 남설아는 침대에 누운 채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눈만 감으면 온몸이 욱신거리고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유일한 위안은 강연찬의 도시락이었다.그녀의 먹을 것만 밝히는 모습에 강연찬은 부드럽게 웃으며 도시락을 테이블에 놓았다.“넌 참, 오직 먹을 생각뿐이지? 다 네가 좋아하는 거로 해왔어. 옥수수 수프도 끓였고.”“선배는 진짜 너무 좋아! 나 선배 사랑해!”“나중에 돈 많이 벌면 선배 내가 책임질게.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매일 밥만 해줘. 그럼 돼.”남설아는 신난 얼굴로 젓가락을 집어 들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그런 천진한 모습에 잠시 말을 망설이던 강연찬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송우민, 그 사람 너 보러 온 거야? 두 사람... 친한 거야?”“친하진 않아. 전에 나 납치했던 사람이야. 나중엔 살기 위해 서로 손잡은 거고.”남설아는 담담하게 말하고 나서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근데 왜 다들 그 사람 얘기만 나오면 그렇게 꺼리더라? 그냥 애 같기만 하구만.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거야?”주변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그를 모두 두려워하는 게 느껴졌다.그 말에 강연찬은 조급해졌다.“너 제발 그 사람 얼굴만 보고 착한 척하는 거에 속지 마. 겉보기엔 순둥이처럼 생겼지만 속은 냉혈한이야. 완전 미친놈이라고!”“미친놈이든 바보든 날 도와주면 내 친구야.”남설아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진지한 눈빛으로 강연찬을 바라봤다.“그 사람은 내 목숨 구해준 은인이야. 그 사람 없
차 안으로 돌아온 서유라는 여전히 드레스를 고른 기쁨에 들떠 있었다.“서준아, 우리 이번 파티에서 가장 눈에 띄는 커플이 되지 않을까?”그녀는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그럴 거야.”배서준이 대답했지만, 말투에는 영혼이 없었다.“다행이네.”서유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네가 이렇게 같이 와줘서 정말 좋아.”그녀는 배서준의 어깨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배서준은 말없이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계속 남설아의 모습이 떠올랐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파티 당일,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행사장은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고 분위기 또한 고급스럽고 활기찼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에서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단정하면서도 기품 있는 자태를 뽐냈고 강연찬은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여유롭고 세련된 분위기를 풍겼다.두 사람은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시선을 끌었고 자연스럽게 주목받는 존재가 되었다.“남 대표님, 강 대표님, 파티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서 회장 부부가 반갑게 맞이했다.“서 회장님, 사모님, 축하드립니다.”남설아가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남 대표님께서 참석해 주시다니 저희가 정말 영광이에요.”서 회장의 부인인 차혜미가 남설아의 손을 잡으며 따뜻하게 말했다.“별말씀을요, 사모님.”남설아가 정중하게 답했다.“이분이 바로 강 대표님이시죠?”서기찬이 강연찬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 회장님.”남설아가 소개했다.“저의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좋은 친구인 강연찬 대표님이에요.”“강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서기찬이 손을 내밀었다.“반갑습니다, 서 회장님.”강연찬은 예의를 갖춰 악수했다.“두 분 안으로 들어가시죠. 자리를 미리 준비해두었어요.”서기찬이 손짓했다.“감사합니다.”남설아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세 사람은 함께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조금 떨어진 곳에 배서준과 서유라도 행사장
배서준은 서유라가 들뜬 모습으로 웃고 있는 걸 보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괜히 불편하고 답답했다.그는 말없이 남성복 코너로 가서 대충 눈에 들어오는 정장을 집어 들었다.“손님, 정말 안목이 좋으시네요. 이건 저희 매장에서 가장 최근에 들어온 신상이에요. 이탈리아산 원단으로 수제 재단된 제품이라 고객님 체형에 정말 잘 어울리실 거예요.”점원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배서준은 아무 말 없이 검은색 정장을 들고 탈의실로 들어갔다.정장을 갈아입고 거울을 바라본 그는 문득 거울 속 자기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저 사람이 정말 내가 맞아?’한때 야망으로 가득하고 세상을 거머쥘 듯 당당했던 배서준은 이제는 서유라의 기대와 기준에 맞춰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보였다.“서준아, 다 입었어?”서유라가 탈의실 밖에서 재촉했다.“응.”배서준은 문을 열고 나왔다.“와, 서준아, 너 이 정장 입으니까 진짜 멋있다.”서유라는 마치 영화 속 배우를 보는 듯 눈에 감탄이 가득했다.“진짜 영화배우 같아.”배서준은 가볍게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유라가 이런 말들을 듣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이걸로 할게.”배서준은 피곤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때, 매장 입구 쪽에서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남설아와 강연찬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눈이 마주친 순간,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배서준의 시선은 남설아에게 고정되었고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남설아는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드레스는 그녀의 몸매를 자연스럽게 살려주었고 살짝 올려 묶은 머리 사이로 드러난 목선과 쇄골은 고급스러움을 더했다.그녀는 마치 한 송이 활짝 핀 제비꽃 같았다. 요란하지 않지만, 눈에 띄는 아름다움이었다.배서준의 가슴이 순간 쿵 하고 내려앉았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예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그녀의 당당함과 여유는 서유라가 따라올 수 없는 것이었다.“강 대표님과 설아 씨도 드레스 고르러
“그날 같이 가자.”“응.”강연찬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배서준 역시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파티의 초대장을 받았다.그는 원래 서유라와 함께 참석해 둘의 관계와 입지를 보여줄 생각이었다.“유라야, 서 회장 부부가 비즈니스 파티를 연대. 우리 둘 다 초대했어.”배서준은 초대장을 들고 서유라에게 말했다.“같이 갈래?”“당연히 가야지.”서유라는 웃으며 말했다.“이런 기회에 좋은 인맥도 많이 만들 수 있잖아.”“그래.”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같이 가자.”“응.”서유라가 고개를 끄덕였다.“서준아. 넌 정말 다정해.”서유라는 배서준의 품에 기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배서준은 남설아도 그 파티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 복잡한 감정이 피어올랐다.“뭐? 남설아도 간다고?”배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이 답했다.“서 회장 부부가 남 대표님도 초대했답니다.”배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표정이 어두워졌다.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남설아가 강연찬과 함께 파티에 나타나는 모습을 상상하자 괜히 기분이 불편해졌다.“서준아, 무슨 일 있어?”서유라는 그의 이상한 기색을 눈치채고 물었다.“아니야.”배서준은 고개를 저었다.“그냥, 남설아가 올 줄은 몰랐어.”“오면 어때.”서유라가 말했다.“우리가 남설아를 무서워할 이유는 없잖아.”“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야.”배서준이 대답했다.“그냥...”그는 어떻게 얘기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저 가슴이 무척 답답했다.“됐어, 너무 신경 쓰지 마.”서유라가 달래듯 말했다.“우리 둘이 함께 가서 보여주자. 우리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그래, 그게 좋겠다.”배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유라야, 네가 있어서 정말 든든해.”서유라는 배서준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서준아, 이런 자리에는 내가 같이 가야지.”그녀는 부드럽게 말하며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네 연인이니까 함께 이겨내야 할 책임이 있어.
배서준이 회사로 돌아왔을 때, 그를 반긴 것은 직원들의 열렬한 환영이 아니라 책상 위에 산처럼 쌓인 서류들과 불안으로 가득 찬 얼굴들이었다.그는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회사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내가 없는 동안 내가 지시한 대로 진행됐어?”배서준이 천기준에게 물었다.“네, 대표님.”천기준은 서둘러 대답했다.“지시에 따라 주가 일부는 안정시켰고 마케팅도 강화했습니다. 하지만...”“하지만 뭐?”배서준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하지만 남 대표님 쪽의 공세가 너무 강해서... 우리가 제대로 대응을 못 하고 있습니다.”천기준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배서준은 말없이 책상 앞으로가 높게 쌓인 서류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뭔가를 하지 않으면 배건 그룹은 정말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 그를 짓눌렀다.“각 부서의 팀장들에게 10분 후에 회의실로 모이라고 전해.”배서준이 말했다.“네, 대표님.”천기준은 얼른 대답하고는 회의 소집을 위해 나갔다.배서준은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지금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어떻게든 회사를 다시 일으켜야 했다.10분 후, 회의실은 이미 각 부서의 팀장들로 가득 차 있었다.배서준은 회의실 중앙에 앉아 익숙한 얼굴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을 숨겼다.그 순간, 서유라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쳤다.“서준아, 나는 널 믿어. 넌 반드시 배건 그룹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 거야.”“고마워, 유라야.”배서준은 서유라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네가 곁에 있어 줘서 난 두렵지 않아.”한편, 남설아의 회사는 강연찬과 송우민의 지원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그녀의 기업은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었고 그에 따라 많은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 인정받으며 여러 초청도 받게 되었다.이날, 남설아는 서 회장 부부가 주최하는 상류층 비즈니스 파티 초대장을 받았다.서 회장 부부는 재계의 거물로, 남설아의 회사와도 협력 관계에
“그럼 됐어.”서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누나, 나한테 시킬 일 있으면 뭐든 말해.”“응.”서유라가 말했다.“당분간은 여기 남아서 나 잘 챙기고 배서준도 잘 감시해. 남설아랑 접촉 못 하게 해야 해.”“알겠어. 걱정하지 마.”서도현은 단호하게 말했다.한편, 배서준은 회사로 복귀하자마자 긴급회의를 소집했다.“여러분, 최근 우리 회사의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회의실 중간 자리에 앉은 배서준은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우리는 지금 즉시 대응책을 세워서 상황을 돌려놔야 합니다.”“배 대표님, 계획이 있으신가요?”한 주주가 물었다.“이미 여러 가지 대응 방안을 준비해 두었습니다.”배서준이 말했다.“첫째, 주가를 안정시켜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둘째, 마케팅을 강화해서 잃어버린 시장 점유율을 되찾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내부 정비를 통해 운영 효율을 높이겠습니다.”“말씀은 좋은데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실행하실 건가요?”또 다른 주주가 질문했다.“제가 직접 나서서 추진하겠습니다.”배서준이 단호하게 말했다.“최대한 빨리 세부 계획을 수립해서 여러분께 공유하고 논의하겠습니다.”“저희는 배 대표님을 믿을 것입니다.”한 주주가 말했다.“하지만 이전 행동들로 인해 실망한 것도 사실입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맞습니다, 배 대표님.”또 다른 주주도 덧붙였다.“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회사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합니다.”“여러분, 제가 실망하게 한 점은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배서준은 진지하게 말했다.“하지만 저를 다시 한번 믿어 주십시오. 반드시 배건 그룹을 이 위기에서 구해내겠습니다.”“기대합니다.”한 주주가 말했다.“대표님, 잘 지켜보겠습니다.”회의가 끝난 후, 배서준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그는 통유리창 앞에 서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잠겼다.잠시 후, 그는 휴대폰을 꺼내 서유라에게 전화를 걸었다.“유라야, 괜찮아? 나 회사 도착했
서유라는 분노에 차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바닥에 내던졌다. 태블릿의 화면이 산산조각이 났다.정교하게 화장한 얼굴이 일그러졌고 눈빛에는 분노와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그녀는 서도현에게 먼저 나가보라고 한 뒤, 혼자 남아 배서준을 상대하기로 했다.혼자 방에 남은 서유라는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했다.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흐린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남설아, 너무 자만하지 마. 내가 너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며칠 뒤, 서유라는 대의를 위해 배서준에게 회사를 돌아가라고 설득했다.“서준아, 이제 돌아가.”서유라는 침대에 누운 채 창백한 얼굴로 힘없이 말했다.“회사가 더 중요해. 언제까지 내 곁에만 있을 수는 없잖아.”“하지만 네 몸 상태가...”배서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난 괜찮아.”서유라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정말이야. 나 혼자서도 잘 챙길 수 있어.”“아니야, 네 곁에 있어야 마음이 놓여.”배서준이 고집을 부렸다.“서준아, 내 말 좀 들어봐.”서유라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네가 날 걱정해주는 마음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 회사 상황이 너무 안 좋아. 당신이 여기에 계속 있는 건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야.”“그래도...”“돌아가.”서유라는 그의 말을 끊었다.“지금은 너만이 배건 그룹을 지킬 수 있어.”“유라야...”배서준은 감동한 듯 서유라를 바라보았다.“넌 정말 사려 깊은 사람이야.”“나는 네 여자니까 당연히 너를 위해 생각해야지.”서유라는 다정하게 말했다.“어서 돌아가. 내가 걱정하지 않게 해줘.”“그래.”배서준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회사 일은 내가 책임질게. 넌 꼭 건강 잘 챙겨야 해.”“응, 걱정하지 마.”서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너도 무리하지 말고 몸조심해.”“그래.”배서준은 그녀의 이마에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회사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 올게.”“응, 기다릴게.”서유라는 잠시 오묘한 웃음을 지었다.배서준은 서유라를 데리고 함께 회사로
그는 줄곧 자신과 남설아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 생각해왔지만 지금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강연찬이 회복되자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특히 남설아는 그동안 불안했던 마음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한편, 멀리 리조트에 머무르고 있던 서유라는 무척 불안하고 초조했다.서도현은 자신이 보낸 사람들이 전부 체포되어 한 명도 빠짐없이 구속되었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했다. 남설아가 다치지 않은 것도 모자라 다친 사람마저 회복되었으니 그동안 벌인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되고 만 것이다.“뭐라고? 강연찬이 회복했다고?”서유라의 목소리는 고막을 찢을 듯 날카로웠다.“그 사람들이 엄청 대단하다고 하지 않았어? 어떻게 여자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남설아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잖아. 그런데도 그 여자 하나 못 건드려서 이 지경이 된 거야? 돈을 그렇게 많이 받고는 뭐 하겠다는 거야? 적은 돈이 아니었잖아.”서도현은 배서준의 감시를 피해 몰래 리조트 안으로 숨어들어와 서유라와 만났다.그의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누나, 나도 최선을 다했어. 그놈들이 이런 일 하나도 제대로 못 할 만큼 이렇게 쓸모없을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래도 다행인 건 그놈들이 입이 무지하게 무겁다는 거야. 지금껏 한마디도 안 했어. 나도 계속 지켜볼 거니까 우리한테 불똥이 튀게 두진 않을 거야.”“쓸모없는 놈들! 전부 다 쓸모없어!”서유라는 온몸을 떨며 분노했다. 그녀는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어 바닥에 힘껏 내던졌다.“이제 어떡해? 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혹시 이 일을 남설아한테 말하면 어쩌려고? 남설아가 알게 되면, 나는...”“누나, 진정해봐.”서도현은 급히 달래며 말했다.“강연찬이 회복됐다고 해도 우리가 한 짓이라는 증거는 없어. 게다가 그 킬러들은 내가 따로 구한 사람들이라서 우리랑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없어.”“그래도...”서유라는 여전히 불안했다.“남설아 그 여자는 워낙 교묘해서 무슨 단서라도 찾아내게 되면 우리는 순식간에
“알겠어.” 송우민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희가 그렇게 말한다면 따를게.”“우민아, 고마워.” 남설아가 말했다.“네가 얼마나 복수를 원하고 있는지 알아. 하지만 우리는 냉정해야 해. 감정에 휘둘리면 안 돼.”“응, 알아.” 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너희 계획에 최선을 다해 도울게.”“좋아.”남설아가 미소 지었다.“우린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세 사람은 구체적인 세부 사항을 더 논의한 후,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다.연회가 끝난 후, 남설아는 사무실로 돌아와 밀린 서류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때 강연찬이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들고 들어왔다.“설아야, 우유 좀 마시고 일찍 쉬어.”강연찬이 우유를 건네며 말했다.“요즘 너무 무리하고 있어. 몸을 챙겨야지.”“응, 고마워, 오빠.”남설아가 우유를 받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오빠도 일찍 쉬어.”“난 안 피곤해.” 강연찬이 말했다.“너 일 마칠 때까지 같이 있어 줄게.”“괜찮아, 오빠. 몸도 아직 완벽히 회복된 건 아니잖아. 푹 쉬는 게 좋아.”남설아가 말했다.“이 서류들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그래도 옆에 있어 줄게.”강연찬이 말했다.“너도 너무 늦지 않게 마무리하고 쉬어.”“응, 알겠어.”강연찬이 나간 뒤에도 남설아는 계속해서 일을 처리했다.그녀는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다. 더 강해져야만 배서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나은이를 위해 복수할 수 있었다.깊은 밤이 되어서야 남설아는 마침내 모든 서류를 정리했다.그녀는 기지개를 켜면서 창가로 가서 불빛이 번쩍이는 도시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나은아, 보고 있어?”남설아는 혼잣말처럼 속삭였다.“엄마가 반드시 복수할 거야. 기다려줘.”다음 날, 남설아는 이른 아침부터 회사에 출근했다.그녀는 회사의 핵심 팀을 소집해 다음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여러분, 우리 그동안 좋은 성과를 거뒀지만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남설아가 말했다.“배건 그룹은 지금 위기에 처해 있지만
“선배...”남설아는 강연찬을 바라보며 가슴 깊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송우민은 두 사람 사이의 다정한 분위기에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기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허전했다.연회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던 중, 남설아가 잔을 들어 모두와 함께 축하의 건배를 하려는 찰나 강연찬이 재빨리 손을 내밀어 그녀를 막았다.“설아야, 요즘 너무 무리했잖아. 술은 좀 줄여.”강연찬의 목소리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남설아는 그의 따뜻한 눈빛을 마주하며 마음이 포근해졌다.하여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대신 주스를 들었다.“알겠어. 선배 말 들을게.”남설아는 웃으며 말했다.그 광경을 본 송우민은 잔을 들고 조용히 다가왔다.“남설아, 내가 한 잔 올릴게.”송우민은 잔을 들며 말했다.“이번 성공, 정말 축하해.”남설아는 주스를 들고 잔을 맞댔다.“고마워, 우민아.”남설아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네 도움이 없었으면 이렇게 빠르게 결과를 얻진 못했을 거야.”“우린 친구잖아. 서로 도와야지.”송우민은 웃으며 말했다.“근데 정말 대단하다. 네가 이렇게 멋진 사람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우민아, 너무 띄우지 마.”남설아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웃었다.“운이 좋았을 뿐이야.”“그건 아니지.”송우민은 단호히 말했다.“너의 실력, 결단력, 배짱, 모두 내가 본 사람들 중 최고야.”“그 얘기는 그만하고...”남설아는 말을 돌리며 미소 지었다.“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보자.”“좋아.”송우민이 고개를 끄덕였다.“남설아, 내 생각엔 지금이 기회야. 우리가 배건 그룹을 한 방에 무너뜨리고 배서준한테 확실하게 복수해야 해!”그의 눈빛에는 분노와 집념이 가득했다.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배서준을 단죄하고 싶은 듯했다.그러나 강연찬은 조용히 눈살을 찌푸렸다.“난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왜?”송우민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배건 그룹은 거의 끝장난 상태잖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