تسجيل الدخول서 황후는 웃음을 머금은 채 금영을 바라보았다.“어린 나이에 이토록 분별이 있다니 참으로 기특하구나. 그러니 폐하께서 후궁의 수많은 비빈들을 두고도 오직 너 하나만 총애하시는 것이겠지.”서 황후의 곁에는 품계가 낮은 비빈들도 몇 명 자리하고 있었다.그들은 궁에서 살아남기 위해 늘 몸을 사리며 조심스럽게 처신해야 했다.예전의 서 황후라면 이런 낮은 품계의 비빈들에게까지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현비조차 누르기 어려웠고, 금영은 더더욱 뜻대로 할 수 없었다.그러니 결국 이런 낮은 품계의 비빈들을 상대로 황후로서의 위엄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서 황후의 말을 들은 비빈들의 시선이 일제히 금영에게로 향했다.바로 그때, 곁에 있던 여비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황후마마 말씀만 들으면, 마치 원 귀비마마께서 입궁하시기 전에는 폐하께서 후궁의 비빈들을 두루 총애하시기라도 했던 것 같사옵니다.”여비의 한마디에 서 황후의 말만 듣고 금영이 자신들의 총애를 빼앗았다며 괜한 원망을 품으려던 이들도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그러고 보니 그렇지. 원 귀비마마께서 입궁하시기 전에도 폐하께서는 후궁에 거의 발걸음하지 않으셨잖아.’황제가 후궁을 찾더라도 대부분 현비와 여비의 처소에 잠시 들르는 정도였다.그보다 품계가 낮은 이들 가운데서는 안빈이 그나마 몇 차례 더 총애를 받았을 뿐이었다.나머지 비빈들은 애초부터 있으나 마나 한 존재나 다름없었다.서 황후는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운 눈빛으로 여비를 바라보았다.한참 뒤에야 다시 웃음을 지으며 금영에게 물었다.“원 귀비는 어찌 아기 황자를 데려오지 않았느냐? 본궁에게도 한번 보여 주지 않고.”그러고는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그나저나 참 안타까운 일이야. 여비의 아이가 무사히 태어났더라면 이 아기 황자도…….”서 황후는 일부러 말을 끝맺지 않았다.대신 가엾다는 듯한 눈빛으로 여비를 바라보았다.“여비, 이제는 마음을 추스르도록 하게. 폐하께서 자네 처소에도 자주 들르시도록 애써야 하지 않겠나
물론 금영도 여비에게 나름의 속셈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세상에 아무 까닭 없이 남에게 잘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금영 자신만 해도 마찬가지였다.이토록 적극적으로 여비의 옛일을 파헤치는 것이 정말 오직 여비를 위로하고, 억울함을 풀어 주기 위해서뿐이겠는가.금영에게도 나름의 사심이 있었다.하지만 사람을 판단할 때는 속마음보다 행동을 보아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적어도 지금으로서는 금영과 여비의 사심이 누구를 해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세상에는 정말로 남을 해치는 자들이 있었다.심지어 아직 세상 빛조차 보지 못한 아이까지도 가차 없이 해칠 수 있는 자들이었다.여비는 한동안 마음을 가라앉힌 뒤에야 곁에 서 있던 복령을 바라보았다.그러고는 뜻밖에도 복령을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췄다.“지난 일은 본궁이 오해했다. 본궁이 사과하마.”복령은 화들짝 놀라 황급히 금영의 뒤로 반걸음 숨었다.불안한 눈으로 금영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불렀다.“마마?”그러고는 다시 여비를 바라보며 다급히 말했다.“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마마. 마마께서는 비마마이시고 노비는 그저 궁비일 뿐이옵니다. 오해가 풀렸으니 그것으로 충분하옵니다. 이렇게까지 하시면 노비가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그러나 여비는 담담히 말했다.“네 부친은 본궁의 일 때문에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었는데, 본궁은 오히려 너를 의심했다. 본궁의 잘못이니 인정하마.”말을 잇던 여비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은혜는 갚아야 하고, 원한 역시 반드시 갚아야지.”예전까지 여비는 그저 짐작만 하고 있었다.하지만 오늘 금영에게 들은 이야기는 그동안의 의심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주었다.그러자 여비도 더는 가만히 앉아 있기 어려운 모양이었다.그 모습을 본 금영은 여비가 충동적으로 무슨 일을 벌일까 걱정스러워졌다.그러고 보니 괜히 이렇게 서둘러 사실을 알려 준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까지 들었다.지금까지 밝혀진 것이라고 해 봐야 주회가 털어놓은 이야기뿐이었다.아직 확실
사실 금영은 그리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그저 요즘 들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었다.예전 금영은 자신이 너그러울수록 황제가 더 좋아하리라 생각했다.어느 사내가 얌전하고 사리를 아는 제 여인을 싫어하겠는가.더구나 이곳은 황궁이었다.후궁의 여인이 질투를 드러내는 것은 무엇보다 금기시되는 일이었다.너그러운 척하는 것쯤이야 금영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현숙한 여인을 연기하라면 서 황후나 현비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런데 요즘 들어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황제는 금영이 얌전히 현숙한 척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오히려 이렇게 질투하는 모습을 더 좋아했다.그렇다면 금영으로서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황제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야.말로는 너그러운 척하면서도 누가 봐도 잔뜩 토라진 금영의 말에, 황제는 그저 어쩔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짐이 언제 다른 이를 찾겠다고 했느냐?”그러고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덧붙였다.“고작 한마디에 질투하는 것이냐?”타박이라기보다는 금영의 마음을 떠보려는 말에 가까웠다.금영은 눈을 깜빡이더니 금세 다시 얌전한 얼굴로 돌아왔다.조금 전까지 질투심을 드러내던 모습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감쪽같았다.금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폐하께서 오해하셨사옵니다. 신첩이 어찌 질투를 하겠사옵니까?”황제는 그런 금영을 바라보다가 문득 속으로 생각했다.사람들은 흔히 황제의 마음은 바다처럼 깊어 헤아리기 어렵다고 했다.하지만 정작 황제인 자신이 보기에는 여인의 마음이야말로 황제의 마음보다 훨씬 더 종잡기 어려운 듯했다.황제에게 다른 궁비를 찾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하지만 오늘 금영이 밖으로 나선 것은 정말로 황제의 궁비를 만나기 위해서였다.궁을 나서기 전 황제에게 잠시 붙잡혀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그래서 금영이 협방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시각이 그리 이르지 않았다.여비는 마침 서 황후에게 문안을 드리러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금영이 들어서는 것을 보자 여비의 눈에 잠시
황제의 눈에서 지금처럼 부드러운 빛이 흐르는 것을 태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태자는 알고 있었다.자신의 부친은 황제였다.황제인 이상 자신의 모친인 서 황후 말고도 다른 여인을 곁에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하지만 하필 그 여인이 금영이었다.금영이 이미 황제의 여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태자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도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침 태자부 앞을 지나게 되었다.황제가 뜻을 내비치자 마차가 태자부 앞에서 멈춰 섰다.황제가 마차에서 내리는 것을 본 태자는 황급히 말에서 내려섰다.“아바마마.”황제는 태자를 바라보았다.표정은 그리 차갑지 않았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태자의 가슴을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태자야, 짐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 더는 짐을 곤란하게 만들지 말거라.”태자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아바마마께서는 대체 무슨 뜻으로 저 말씀을 하신 것인가. 내가 아직 금영에게 미련을 두고 있다면, 더는 아들로 여기지 않겠다는 뜻인가?’태자는 복잡한 눈빛으로 황제를 바라보다가 이내 무릎을 꿇었다.“아바마마, 모두 소자의 잘못이옵니다.”황제가 말했다.“비가 막 그쳐 땅이 젖어 있다. 여기서 무릎 꿇고 있지 말고 돌아가거라.”그 말을 끝으로 황제는 다시 마차에 올랐다.그리고 짧게 명했다.“회궁하라.”금영은 황제의 품에 기대어 조심스럽게 물었다.“폐하께서는 조금 전 태자 전하께 무슨 말씀을 하셨사옵니까?”황제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얼버무렸다.“별말 아니었다.”*태자는 무거운 걸음으로 태자부에 들어섰다.태자부 밖에서 금영과 황제를 마주하고 있을 때만 해도 그는 여전히 태자다운 온화하고 점잖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그렇다고 그 모습이 전부 꾸며 낸 것은 아니었다.예전의 태자는 겉과 속이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말투에서 행동 하나하나까지 태자 특유의 귀한 품위와 온화함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하지만 요즘의 그는 달라졌다.점점 본래의 자신과
황제는 지나가는 길에 손복안에게 한마디 명했다.“복안, 짐의 뜻으로 은 천 냥을 시주하라.”손복안은 곧바로 대답했다.“예, 폐하.”황제 일행이 떠난 뒤, 손복안은 일부러 뒤에 남아 붉은 도포의 도사에게 은표를 내밀었다.도사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뜻밖의 횡재가 이렇게 갑자기 굴러들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은 아홉 냥은 벌지 못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무려 천 냥이 생긴 것이다.도사가 얼떨떨한 얼굴로 은표를 받으려 하자, 손복안이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이 돈을 거저 받는 것은 아니네.”“정성을 다해 복을 빌게. 하늘의 모든 신불께서 폐하와 원 귀비마마의 금슬을 오래도록 지켜 주시도록 말이야.”손복안이 일부러 황제와 금영의 신분을 밝히려던 것은 아니었다.다만 황제가 은 천 냥을 내놓은 뜻이 너무나도 분명했다.다시는 저 도사가 함부로 입을 놀리며 엉뚱한 인연을 이어 주겠다고 나서지 못하게 하라는 뜻이었다.붉은 도포의 도사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누구라고?방금 다녀간 사람들이 대체 누구라고?손복안은 내관이라 겉보기에는 온화해 보여도 목소리에는 특유의 음색이 남아 있었다.그가 다시 한번 물었다.“알아들었는가?”숙취에 취해 있던 도사는 그 한마디에 술이 완전히 깨 버렸다.“아, 알아들었습니다.”손복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몇 마디 더 당부하려 했다.그런데 도사가 머뭇거리며 먼저 물었다.“그, 그런데 조금 전 그 젊은 공자는 누구였습니까?”손복안이 빙긋 웃었다.“태자 전하시네.”도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큰일이었다.태자와 원 귀비 사이에 얽힌 소문을 누가 모르겠는가.저잣거리에서는 벌써 몇 가지 이야기가 몰래 떠돌고 있었다.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서로 마음을 나눴지만, 원 귀비가 더 높은 자리를 탐해 황제를 택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태자가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사랑하던 여인을 황제에게 바쳤다는 소문도 있었다.심지어 황제가 태자의 사랑을 가로챘으니 천자의 위엄을 잃었다는 이야기까지 나돌
황제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금영아, 짐이 네 체면을 보아 이번 한 번만 그자를 용서해 주마.”금영은 웃으며 황제를 바라보았다.평소 그토록 차갑고 침착한 황제에게도 이처럼 유치한 면이 있으리라고는 정말 상상하기 어려웠다.오는 길 내내 움직였던 탓에 두 사람 모두 조금 지쳐 있었다.그래서 나란히 긴 의자에 기대 잠시 쉬기로 했다.금영은 얼마 잠들지도 못했는데, 다시금 뜨겁고 강렬한 기운에 온몸이 휩싸였다.마차 안에서는 불편해 미처 하지 못했던 일이 이제는 얼마든지 가능해진 것이다.금영도 굳이 밀어내지 않았다.그저 자신을 거친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배처럼 황제에게 내맡겼다.한바탕 비바람이 잦아든 뒤였다.금영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유난히 곱고 요염했다.한여름 막 피어난 작약꽃처럼, 모란만큼 화려하고 기품 있지는 않아도 그보다 한층 더 농염한 아름다움이 있었다.황제는 금영의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며 웃었다.“금영아, 예전에 월로사에서 짐의 눈앞을 피해 달아날 때에도 오늘 같은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느냐?”금영이 눈을 살며시 내리깔았다.‘당연히 생각했지. 폐하의 총애를 받는 비가 되려고 몇 번이고 일부러 마음을 흔들어 놓았으니까.’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입 밖에 내면 재미가 없었다.금영은 눈을 깜빡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신첩이 오늘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때 무엇 하러 그렇게 도망쳤겠사옵니까? 아무리 도망쳐 봐야 결국 폐하께 붙잡히고 말았는데요.”황제가 낮게 웃었다.예전 금영이 몇 번이고 달아났을 때만 해도 황제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이번에야말로 붙잡기만 하면 호되게 혼을 내고 절대로 쉽게 용서하지 않겠다고.그런데 이제 와 그때 일을 떠올려 보니, 쫓고 쫓기던 그 시간도 제법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았다.월로사는 금영과 황제에게 많은 추억이 깃든 곳이었다.하지만 밖에서 지키고 서 있던 위명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의 장소였다.그는 월로사에서 봉급을 깎였던 일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그것도 한 번이 아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