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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서린화
금영은 입술 끝을 아주 조금 올렸다. 웃는 듯도, 웃지 않는 듯도 한 얼굴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어버지께서 저를 벌하시는 이유가, 오늘 제가 사사로이 태자 전하와 만남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하셨지요?”

그러자 배명월은 잠시 표정이 굳으며 난처한 기색을 내비쳤다.

영안후가 냉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겠느냐?”

금영이 영안후를 똑바로 마주보며 굉장히 평온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까는 저에게 설명의 기회를 주시지 않아서 미처 말씀을 못드렸습니다만… 제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까닭은, 오늘 제가 약속 장소로 나간 것은 사실이나… 태자 전하가 나오시지 않아서, 결국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영안후의 눈빛이 흔들렸다.

“태자와 함께 있지 않았다고? 어디서 내게 거짓을 고하느냐! 오늘 시종들이 태자와 영안후부의 마차가 함께 행궁을 떠나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고 했는데!”

금영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안 그대로 오늘 집으로 돌아오던 도중 명월과 태자전와 마주쳤습니다. 아주 즐겁게 눈싸움을 하고 있더군요. 거기서 명월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오늘 두 사람이 함께 금풍대에 다녀왔다고 말입니다.”

그 말을 마치고 금영은 고개를 들어 영안후와 송정희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가 어떤 판단을 할지 보고 싶었다. 같은 일이라도 저지른 이가 달라진다면 영안후가 과연 공평하게 가법을 이행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에게만 가혹한 것인지를 말이다.

영안후는 얼굴이 굳어진 채로 배명월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언니 말이 사실이냐?”

방금 전까지 온화하던 송정희의 얼굴에도 초조함이 스쳤다. 그녀는 배명월을 향해 은근히 눈짓했다. 그러자 배명월이 놀란 얼굴로 서둘러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태자 전하께서 극진히 권하셔서 감히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금영은 작게 웃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태자를 졸라 금풍대로 갔다며 탓하지 말라고 하더니,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오니, 오히려 반대를 주장하는 모습이 우스웠기 때문이다.

영안후는 막 들었던 찻잔을 다시 탁자 위에 세게 내려놓았다.

“보아하니, 사실이로군.”

탁하는 소리가 울리자 배명월은 움찔하며 몸을 웅크렸다. 방금 전의 밝은 기색은 사라지고, 두려움만 남은 얼굴이었다.

금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버지, 제 체면을 봐서라도 이번만은 이 아이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처럼 이 아이에게 가법을 쓰진 말아 주십시오...”

영안후의 얼굴이 굳어졌다. 두 사람 모두 그의 딸이었고, 이 자리에서 노골적인 편애를 드러내기에는 체면이 서지 않았다.

그는 배명월을 향해 냉정하게 말했다.

“잘못을 인정했으니, 벌은 받아야겠지.”

영안후가 손을 내젓자, 금영의 뒤에 서 있던 여 시종 둘이 앞으로 나섰다.

배명월은 금영을 한 번 쳐다본 뒤, 송정희를 바라보았는데 눈빛이 몹시 애처로웠다.

그때 송정희가 급히 나섰다.

“후작님, 그리하시면 안 됩니다.”

금영은 송정희를 바라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아까 자신을 벌할 때는 아무 말도 안 하더니, 이제 와서는 안 된다는 주장하고 있었다.

영안후는 송저의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

“내가 말했을 터. 누구의 청도 소용없다.”

“명월은 금영처럼 어려서부터 엄한 가르침을 받은 아이가 아닙니다. 밖에서 고생을 많이 했으니, 성정이 조금 무른 것도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잘못이 있다면, 아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저희 탓이 더 크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영안후의 표정이 흔들렸고, 곧 얼굴에 미안함이 스쳤다. 그러나 올곳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금영의 눈빛이 느껴지자 차마 눈을 마주볼 수 없었다.

좀 전에 했던 단호한 말들이 다시 화살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 기분이었다. 이제 와서 벌을 주지 않는 것은 체면이 너무 서지 않았다.

영안후는 낮은 목소리로 선언했다.

“가법은 면하겠다. 허나 벌은 필요하다. 명월은 여경(女经: 여성 규범서)을 세 번 베껴라.”

금영은 눈썹을 살짝 내렸다. 예상했던 일이 정말 일어났다. 같은 잘못이라도 자신은 가법에 의한 처벌이었고, 배명월은 겨우 필사였다.

자신이 저지르면 가문에 먹칠을 하는 것이고, 배명월이 저지르면 정상 참작될 수 있었다.

그제야 금영은 깨달았다. 영안후부의 규범은 공정하지 않으며, 자신에게만 엄격했던 것이다.

회귀 전에 설림에서 발생했던 사건이 자신이 아니라 배명월이었다면, 이들이 가문의 명예를 들먹이며 죽음으로 몰아세우는 일도 없을 터였다.

결국 가문의 명예가 아니라 그녀 자체가 문제였던 것이다. 모든 것이 서녀로 태어나 적녀로 살아온 것에 대한 대가였다.

배명월이 없었을 때는 그녀가 필요했을지도 몰라도, 적녀가 돌아온 이상 걸림돌이 되어 버렸다.

처음부터 배명월에게 갔어야 할 신분과 자리, 이들은 배금명이 조용히 모든 것을 돌려주고 사라지길 바라고 있던 것이다. 금영은 이 사실을 새삼 다시 실감하게 되었다.

한편, 배명월은 눈가에 물기를 머금은 채 세상 불쌍한 얼굴로 송정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송정희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제 되었다. 날도 차니, 가서 따뜻한 국이나 먹자꾸나.”

배명월이 고개를 끄덕이며 송정희를 따라 나섰다. 그런데 문턱을 넘기 직전, 송정희가 금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금영아, 네 동생은 너와 다르다. 앞으로 많이 살펴주거라.”

“알겠습니다.”

금영은 고개를 숙이며 조금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대답했다.

영안후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덧붙였다.

“태자를 만나지 못했더라도, 설림에 나간 것은 사실이다. 너 또한 여경을 세 번 베껴라.”

“예.”

금영은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나가자마자, 그녀는 비틀거리며 안채의 침상에 바로 몸을 던졌다.

이때, 여 시종 해수가 급히 다가왔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차를 데워 두었으니, 얼른 가져오라 이르겠습니다.”

그렇게 해수가 나가자고, 곧바로 다른 여 시종 연아가 들어왔다.

연아가 조심스레 찻잔을 내밀었다.

“아가씨.”

침상에 기대 눈을 감고 있던 금영이 천천히 눈을 떴다. 연아는 얼굴에 눈물을 머금은 채, 조심스럽게 서 있었다. 금영은 찻잔을 받지 않고 빤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갑자기 연아가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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