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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or: 서린화
금영은 고개를 숙인 채 다급히 말하는 연아를 바라봤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제가 정말 큰 죄를 지었습니다. 설림에서 길을 잃는 바람에 아가씨를 찾지 못했고, 그 때문에 아가씨께서 혼자 돌아오시게 만들었습니다. 그대로 무사히 돌아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아니었다면, 정말 전 만번을 죽어도 모자랐을 겁니다…”

연아의 말은 몹시 떨리고 빨랐다. 마치 마음속에서 이미 여러 번 되뇌어 온 말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듯했다. 오늘 금영은 의도적으로 설림 밖에서 기다리던 마부와 연아를 피해 홀로 돌아왔다.

배영 곁에는 늘 여 시종 둘이 따랐다. 한명은 오래전부터 곁을 지켜 온 해수였고, 한명은 이제 막 배치된 연아였다.

원래 오늘은 연아가 금영을 따라 설림에 나섰다가, 겉옷을 가지러 가는 길에 서로 엇갈리게 된다. 게다가 황후가 하사했던 강주 또한 연아가 가져온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연아가 미약을 섞었다는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일로 인해 그녀는 약에 취한 채 산적들과 맞닥뜨려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비록 회귀를 한 덕에 그 뒤에 벌어진 불상사와 미약 사태가 조용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의심되는 인물을 계속 곁에 둘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명분이 필요했지만, 일을 크게 만들어 겨우 수습한 상황을 만천하에 드러내면 자신을 해치려 했던 자들에게 약점을 쥐어 주는 꼴이 될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그저 들키지만 않았을 뿐, 실제로 그들의 의도대로 그녀는 순결을 잃은 상태였다. 금영은 어리석지 않았다. 다른 수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한 후, 손목에 차고 있던 옥팔찌를 풀어 연아의 손에 직접 끼워 주었다.

연아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눈을 크게 떴다.

“아… 아가씨, 이건….”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벌은커녕 상을 받다니, 연아의 얼굴에는 불안이 가득했다.

금영은 속마음을 숨긴 채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만일 연아가 정말로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자신을 해치려 했던 것이라면, 무사히 돌아온 데다가 상까지 받았으니 결코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금영은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준 것이니 받거라. 이제 물러가도 된다.”

연아가 물러난 뒤, 해수가 안으로 들어왔다.

금영은 해수를 찬찬히 바라보다가 문득 물었다.

“해수, 네가 내 곁을 지킨지 얼마나 되었지?”

“세 해쯤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해수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금영은 고개만 끄덕이고 더 말하지 않았다.

연아는 잘못은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해수는 어떤 지 생각해보았다. 회귀 전, 이 사건이 있은 뒤로 그녀는 곧바로 큰오라비의 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금영 공연히 의심만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믿지 못한 다면,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한 번 죽음을 겪은 이상, 그녀는 더 이상 순진할 수만 없었다.

그녀는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만 물러가도 된다. 혼자 있고 싶다.”

안 그래도 초조함을 느끼고 있던 해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물러났다.

금영은 침상에 몸을 눕히고 천천히 기력을 회복하며,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새겼다. 귀신이었을 때는 잠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사람으로 돌아와서 마음이 번잡했으나, 몸이 꽤나 피곤한지 잠이 쏟아졌다.

그렇게 밤은 깊어 졌다.

황제는 작산행궁 주전(主殿: 중심이 되는 건각)에서 홀로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눈을 감자 낮에 붉은 치마를 입고 있던 여인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잠시 뒤, 위명이 안으로 들어왔고 황제가 눈을 무심히 뜨면서 물었다.

“찾아온 사람 없었느냐?”

위명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없습니다.”

황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의아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위명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보통 여인은 황제의 총애를 받으면 곧바로 스스로 나서기 마련인데, 그 여인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자취를 감췄다.

“폐하, 사람을 시켜 찾아보라고 할까요?”

위명이 묻자 황제는 낮게 답했다.

“그럴 필요 없다.”

하지만 위명이 물러나려 하자, 황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무부(内务府: 궁중의 재정과 인사를 맡는 관청)에 일러라. 만일 누군가 찾아오거든, 적당히 명분을 내려주라고.”

황제는 담담히 말했다. 그도 차마 여인의 순결을 가져가고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감정 없이 맺은 관계에 이 이상의 마음을 쓰고 싶지도 않았다.

금영은 황제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만일 알았다면, 서둘러 자리를 떠난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다시금 확신했을 것이다.

황제는 잠자리를 가졌던 여인에게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하지만 그 여인이 황실에서 정한 태자비였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이런 조치는 기대할 수 없었을 가능성이 더 컸다.

이튿날 아침, 금영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을 때였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요란하게 열린 탓에, 금영은 화들짝 깼다.

곧이어 밖에서 해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째 공자님, 아가씨께서는 아직 주무시고 계십니다. 지금 들어오시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녀가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을쯤엔, 영안후부의 둘째 공자인 배경천이 이미 방 안까지 들어온 상태였다.

“금영, 네가 이렇게까지 변할 줄은 몰랐다!”

배경천의 질책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막 잠에서 깬 금영은 흩어진 머리칼을 늘어뜨린 채, 아직 잠기가 남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불렀다.

“둘째 오라버니?”

배경천은 차갑게 말했다.

“나를 오라버니라 부르지 마라. 나는 너 같은 여동생을 둔 적 없다. 명월이가 그렇게도 싫더냐?”

이제야 금영은 완전히 상황을 파악했다. 어제 있었던 일로 배명월이 벌로 필사를 하게 되었으니, 두둔하려 온 것이 분명했다.

금영은 시선을 곧게 세우고 냉정하게 말했다.

“영안후부는 예법과 규범을 중히 여깁니다. 오라버니께서 제 침실에 함부로 들어오신 것은 매우 부적절합니다. 아버지께서 이 광경을 보셨다면, 또다시 가법을 말씀하셨을 겁니다.”

금영은 배경천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배경천은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

“삼 년 만에 만났는데, 말이 참으로 날카로워졌구나.”

금영도 비웃듯 말했다.

“삼 년 만에 다시 보니, 오라버니 역시 많이 달라지셨군요.”

삼 년 전, 그녀가 부친을 대신해 회양으로 떠나던 날, 배경천은 눈시울을 붉히며 배웅을 했었다.

그런데 재회하고 나서 첫마디가 배명월을 위한 꾸짖음이라니, 금영은 자기도 모르게 눈가가 붉어졌다.

회귀 전에 죽음으로 몰렸을 때, 둘째 오라버니는 곁에 없었었다.

금영은 애써 눈물을 삼키며 차갑게 말했다.

“오라버니께서 구설수를 피하고 싶으시다면, 우선 제 침실에서 나가 주십시오. 먼저 옷부터 갈아입은 뒤에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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Último capítulo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34화

    황제는 현비를 바라보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대는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군.”현비는 웃으며 금영에게 예를 올렸다.“금영 동생, 이번에는 정말 동생 덕을 봤네.”현비는 더 이상 원비라 부르지 않았다.대신 한층 친근한 금영 동생이라는 호칭을 꺼냈고, 먼저 허리를 숙여 예까지 갖췄다.현비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하지만 적어도 금영 앞에서 스스로 한발 낮출 줄 아는 이 여유만큼은 서 황후가 백 년을 배워도 흉내 내지 못할 것이었다.금영은 얼른 몇 걸음 앞으로 나가 현비의 팔을 받쳐 주었다.그러고는 웃으며 말했다.“현비마마, 어찌 이리까지 예를 차리십니까? 더구나 이 일은 본궁도 감히 제 공이라 할 수 없습니다.”금영이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만월연의 일은 애초부터 현비마마와 아무런 관련이 없지 않았습니까. 괜한 일에 휘말리신 셈인데…… 본궁을 탓하지 않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찌 감히 인사까지 받겠습니까?”맑고 순진한 눈빛에는 진심이 가득해 보였다.누가 보아도 해칠 것 하나 없는 어린 아씨처럼 보일 정도였다.하지만 금영은 속으로 모든 것을 똑똑히 계산하고 있었다.현비가 이렇게 나설 때와 물러날 때를 잘 알수록 황제는 그녀를 더욱 좋게 볼 수밖에 없었다.지금 황제가 현비에게 남녀 간의 정을 얼마나 품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적어도 지금 황제의 마음은 온통 금영에게 향해 있었다.하지만 남녀 간의 정을 빼고 보더라도, 현비는 오랫동안 후궁을 흐트러짐 없이 다스려 왔고 욕심을 드러내며 다투지도 않았다.황제로서는 그런 현비를 어느 정도 좋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그러니 이런 자리에서 금영이 총애를 믿고 교만하게 굴며 정말 현비의 감사를 받아 버릴 수는 없었다.그랬다가는 오히려 자신의 격만 떨어뜨리는 꼴이었다.금영이 다시 웃으며 말했다.“현비마마, 어서 앉아서 말씀 나누시지요.”현비는 황제를 바라보았다.황제가 편안한 어조로 말했다.“금영이 앉으라 하니 그대도 앉게.”언뜻 들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33화

    그래서 황제는 금영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 주고 싶었다.한참을 빙글빙글 돈 탓에 금영은 제법 어지러웠다.황제가 그녀를 내려놓는 순간, 금영의 몸이 살짝 휘청거렸다.황제가 얼른 손을 뻗어 붙잡아 주자, 금영은 그 힘에 기대 그대로 천천히 눈밭에 몸을 눕혔다.막 눈이 내린 뒤라 쌓인 눈은 보드랍고 깨끗했다.금영은 그렇게 누운 채 머리 위로 펼쳐진 매화나무를 올려다보았다.조금 전보다도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그런데 잠시 후, 황제마저 자신의 곁에 나란히 눕는 것이 아닌가.“금영아.”황제가 나직이 불렀다.금영이 고개를 돌렸다.“폐하, 신첩을 부르셨사옵니까? 무슨 분부라도 있으시옵니까?”황제에게 무슨 분부가 있을 리 없었다.그저 그 이름을 입에 담고 있노라면 자신이 황제가 아닌 것만 같았다.그저 좋아하는 여인과 함께 있는 평범한 사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금영아.”황제가 다시 한번 불렀다.이번에는 금영도 가만히 대답했다.“네.”황제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금영은 문득……굳이 무슨 말을 더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마음 한구석에 아주 옅고도 따스한 기쁨이 번져 들었다.한 줄기 바람이 스쳐 갔다.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매화 한 송이가 사뿐히 금영의 미간 위에 내려앉았다.끝없이 황량하던 마음속 설원에도 마치 매화 한 송이가 내려앉은 듯했다.황제는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세월이 다할 때까지 금영과 함께 매화나무 아래에 누워 있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자신은 추위에 강해도 금영은 아니었으니까.황제가 먼저 몸을 일으킨 뒤 금영에게 손을 내밀었다.“가자. 이제 돌아가야겠다.”금영은 고개를 끄덕였다.황제는 금영의 손을 잡은 채 소녕전으로 향했다.아직 전각에 도착하기도 전인데 금영의 얼굴은 추위에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마치 두 뺨에 분을 옅게 물들인 듯 고운 빛이 돌았다.황제는 그런 금영을 보고 걸음을 조금 더 재촉했다.소녕전에 도착하자 금영은 뜰 안에 몇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32화

    손복안은 위명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본래 그는 누구에게나 능숙하게 처신하는 사람이었다.황제의 총애를 받는 측근이라고 으스대는 법도 없었고, 남과 얼굴을 붉히며 다투는 일은 더더욱 드물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위명과 함께 있기만 하면 제 수명이 줄어드는 기분이었다.위명이 봉급 몇 푼 깎이는 게 대수인가?손복안은 이 사내 때문에 제 목숨이 깎여 나가는 것 같았다.손복안이 싸늘하게 웃었다.“제가 앞길을 막는다고 생각하신다면 가 보십시오.”그 말과 함께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아 버렸다.이 눈치 없는 인간이 황제와 원비마마의 흥을 깨 놓았다가, 나중에 황제가 자신에게 일을 제대로 못 했다고 책임을 물을까 걱정되지 않았다면 애초에 붙잡지도 않았을 것이다.괜히 위명 때문에 덩달아 화를 입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그사이 금영은 이미 매화 가지를 꺾어 손에 넣었다.결국 위명은 황제에게 잘 보일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어찌 보면 운이 좋았던 셈이었다.조금 전 정말 앞으로 나섰다면 앞으로는 궁문 앞에서 동냥이나 해야 했을지도 몰랐다.손복안은 처음부터 끝까지 곁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해수를 바라보았다.“얘야, 내가 좋은 말 하나 해 주마.”해수가 공손하게 답했다.“복안 내관님, 가르침을 내려 주시지요.”손복안은 그 말을 듣자 속이 절로 풀리는 듯했다.역시 해수는 원비마마를 닮아 영리했다.손복안이 말했다.“나중에 지아비를 고를 일이 있거든 말이다. 팔다리만 튼튼하고 머리는 텅 빈 사내는 절대 고르지 말거라. 자식에게까지 영향을 줄 수 있으니……”말끝에 손복안은 제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아비가 어리석으면 자식도 줄줄이 어리석은 법이지.”위명도 아주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이쯤 되니 손복안이 자신을 돌려 까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그는 손복안을 힐끗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복안은 내가 아직 아비가 될 수 있다는 게 부러운 모양이군.’그래도 손복안의 체면을 조금은 생각해 주어 그 말까지 입 밖으로 꺼내지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31화

    태후가 정세를 꿰뚫어 보는 솜씨만 놓고 보아도 서 황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손 상궁은 태후의 머리를 계속 눌러 드리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마마, 너무 근심하지 마시옵소서. 어찌 되었든 오늘 폐하께서 마마의 체면을 보아 황후마마께 황실 연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지 않사옵니까.”태후가 담담하게 말했다.“황제께서 어디 내 체면을 봐주신 것이겠느냐?”“내 체면을 꺾었다가 내가 돌아서서 그토록 아끼는 사람을 괴롭히기라도 할까 염려한 것이지.”태후는 모든 것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수강궁을 나오자 황제는 금영의 손을 잡았다.손끝에 닿는 온기가 생각보다 차가웠다.황제가 곧바로 물었다.“어마마마께서 너를 곤란하게 하셨느냐?”금영은 고개를 저었다.“그렇지는 않았사옵니다.”예전에는 태후도 대놓고 금영을 곤란하게 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황제가 금영을 몹시 아낀다는 것을 알아차린 뒤부터는 노골적으로 괴롭히지 않았다.기껏해야 없는 사람처럼 대하는 정도였다.이번에도 적어도 겉으로는 꽤 화목했다.그런데 금영은 이상하게도 태후가 황제를 대하는 모습에서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마치 예전 송정희가 자신을 대하던 모습과 닮아 있었다.어린 시절 송정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에서 금영을 박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언제나 웃는 얼굴로 바라봐 주기도 했다.예전의 금영은 이해하지 못했다.비록 송정희와 자신 사이에 진짜 혈연은 없었다 해도 오랜 세월 모녀로 지냈으니 정이라는 게 조금은 남아 있을 줄 알았다.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사람이 변해 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그러나 나중에야 깨달았다.사실 송정희와 자신이 멀어진 것은 배명월이 돌아온 뒤부터가 아니었다.처음부터 둘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벽 하나가 놓여 있었다.금영은 문득 떠오른 그 근거 없는 생각을 애써 눌러 버렸다.그리고 황제를 바라보며 물었다.“폐하, 이쪽은 소녕전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지 않사옵니까? 신첩을 어디로 데려가시는 것이옵니까?”황제가 웃으며 금영을 바라보았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30화

    금영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태후가 오늘 자신을 수강궁으로 부른 가장 큰 이유는 결국 황제에게 서 황후의 근신을 풀어 달라고 하기 위해서였다.이제 태후가 직접 그 말을 꺼냈으니 금영도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태후의 안색은 여전히 창백했다.한 손은 계속 머리를 짚은 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손 상궁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폐하, 요 며칠 태후마마의 두통이 또 심해지셨사옵니다.”태후가 나직이 꾸짖었다.“됐다. 황제께 그런 것까지 말씀드리지 말거라. 정무로도 이미 지치셨는데, 이 늙은 몸 하나 때문에 또 마음 쓰실 게 무엇이냐.”황제가 싸늘하게 말했다.“황후는 황실 연회에 참석해도 좋습니다. 다만 연회가 끝나면 다시 돌아가 근신하며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게 하겠습니다.”이 정도가 황제가 한발 물러서서 내놓은 최선이었다.말을 마친 황제가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자에게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아 있으니, 먼저 원비를 데리고 물러가겠사옵니다.”금영도 떠나기 전 태후에게 예를 갖추는 것을 잊지 않았다.“태후마마, 그럼 신첩은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황제와 금영이 떠나고 나자 손 상궁이 태후를 바라보며 물었다.“마마, 아직도 머리가 많이 아프시옵니까?”태후가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아프다. 어디 그리 금세 낫겠느냐? 좀 눌러 다오.”손 상궁은 곧 태후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눌러 주기 시작했다.태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잠시 후 네가 직접 서봉전에 가서 이 소식을 전하거라. 그리고 황후에게 다시는 쓸데없는 일을 벌이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라. 또 사고를 치면 그때는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고.”잠시 뒤 태후의 목소리에 못마땅함이 짙게 배었다.“어찌 그리도 어리석은지. 황후로 입궁해 그 자리를 지킨 세월이 얼마인데, 이미 손에 쥔 것을 지킬 생각은 하지 않고 어린 계집 하나를 상대로 질투나 하고 있으니.”서 황후를 이야기하는 태후의 말투에는 답답함과 한심함이 그대로 묻어났다.손 상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황후마마께서도 폐하를

  •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제829화

    태후는 그 말을 듣고 흡족한 눈으로 금영을 바라보았다.“역시 선대 영안후가 직접 가르친 사람답구나. 참으로 영민해.”금영이 겸손히 답했다.“과찬이시옵니다, 태후마마.”태후는 손 상궁을 바라보며 분부했다.“내가 원비와 아기 황자에게 주려고 마련해 둔 선물을 가져오너라.”손 상궁은 두 가지 물건을 받쳐 들고 와 웃으며 말했다.“태후마마께서는 진작부터 아기 황자께 드릴 선물을 마련해 두셨사옵니다. 다만 원비마마께서 수강궁에 자주 발걸음하지 않으시다 보니, 노비들도 그만 소녕전으로 보내 드리는 것을 잊고 말았사옵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금영은 손 상궁이 자신에게 수강궁으로 문안하러 오지 않았던 일을 에둘러 지적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금영은 곧바로 대답했다.“신첩은 태후마마께서 몸이 편찮으신 데다 소란스러운 것을 꺼리시어 조용히 요양하고 싶어 하신다고 들었사옵니다. 그래서 감히 함부로 찾아뵙지 못했사옵니다.”“신첩이 잘못 알고 있었던 모양이옵니다.”금영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덧붙였다.“태후마마께서 신첩을 시끄럽다 여기지 않으신다면, 앞으로는 자주 찾아뵙고 곁을 지켜 드리겠사옵니다.”그때 갑자기 밖에서 내관의 외침이 들려왔다.“황제 폐하 납시오!”금영이 고개를 돌렸다.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황제가 성큼성큼 전각 안으로 들어섰다.걸음걸이만 보아도 꽤 서둘러 온 것이 분명했다.“어마마마.”황제가 먼저 인사를 올렸다.태후가 황제를 힐끗 바라보았다.“지금은 문안을 올릴 시각도 아닌데,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황제가 대답하기도 전에 태후가 웃으며 짓궂게 물었다.“설마 금영을 데리러 오신 겁니까?”“내가 그저 불러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이지, 잡아먹기라도 하겠습니까? 무엇이 그리 급하십니까?”황제가 태연하게 답했다.“소자가 어마마마를 뵙고 싶어 찾아온 것이옵니다.”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어마마마께서는 오늘 어찌 원비를 부르실 생각을 하셨사옵니까?”태후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황제께서 황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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