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Side B.
“......”
“......”
숨 막혀 돌아가시겠네.
그렇게 넓지도 않은 차 안에서 긴 침묵이 몇 분째 이어지고 있으니, 히터로 따뜻해진 공기에 마저 폐부를 찌를 것 같은 서늘함이 느껴졌다.
물론 그가 화를 내도 할 말이 없는 짓을 저지르긴 했다. 설마 내 인형 뽑기 실력이 그렇게 형편없을 줄은 꿈에도 몰랐고 결국 내지르고만 소리에 그렇게 많은 인파가 모여들 줄은 몰랐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그 자리에서 한별의 이름을 당당하게 불러 버리고 말았으니. 거기 있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 진 아무리 나라도 짐작을 못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뭐야, 뭐야 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았고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나는 비명을 질르며 황급히 한별의 팔을 잡아끌고 뽑기방 빠져나왔다. 그때 들었던 팬들의 들뜬 목소리가 아직도 뇌리에 생생히 울리고 있었다.
“두 분 파이팅!”
“비밀로 해드릴게요!”
“걱정 마세요!”
정말 눈물 나게 고맙다, 우리 윙즈들. 고맙긴 한데 그것 때문에 언니가 매우 곤란하게 되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게 느껴질 때쯤. 결국 난 이 숨 막히는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미안... 너무 빡치고 신나서 그만......”
그렇지만, 그거 너무 귀여웠단 말이야.
뽑기 방에서 한별의 인형을 발견하자마자 그대로 시선을 뺏겼고 어떻게든 갖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인형이 주인을 닮은 건지, 제 건 한방에 뽑았음에도 김한별은 몇 번이나 시도해도 제 손에 들어올 생각을 안 해주니.
그래서 뽑았을 땐 너무 기뻐서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고, 그 타이밍에 김한별이 눈에 들어오니 더 기분이 들떠 버려서......
분명 욕하겠지. 쌍욕을 들어도 할 말이 없었고 이번 만은 무슨 소리를 들어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마음을 굳게 먹고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리는 팔을 꽉 붙잡은 채 한별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생각 외로 그가 내게 건넨 말은 평온한 표정만큼이나 평화로웠다.
“목은 괜찮냐?”
“어?”
“목 안 아프냐고.”
“아... 어... 괜찮아......”
“후......”
한별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컵 홀더에 꽂혀 있던 물병을 건네주며 말했다.
“목 나가면 어떡하려고 그렇게 소리를 질러?”
뭐지? 이 상황은?
온갖 쌍욕을 들을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막상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니 어안이 벙벙했다. 쟤 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거야?’
내 목 나갔을까 봐?
잔뜩 쫄아 있던 눈동자가 저절로 물병을 쥔 손을 향했다. 그러니까, 이 소란으로 인한 분노보다 날 걱정하는 마음이 앞선다는 거 아니야.
갑자기 입꼬리가 마구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 내 표정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상황에 적절한 표정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조금 유하게 풀려 있던 한별의 표정이 순식간에 팍 일그러졌고, 그 표정 변화를 눈치채자마자 제게 내민 손을 거둬버릴까, 재빨리 물병과 함께 한별의 손을 붙잡아 버렸다.
“... 뭐하냐?”
“히히... 그냥.”
참으려 해도 실실 튀어나오는 웃음이 제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지만, 기분이 너무 좋은 탓에 나도 나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손도 어쩜 이렇게 예쁘지, 이대로 계속 잡고 있고 싶다.
하지만 데이트까지 나와서 계속 차 안에서만 시간을 보낼 수는 없지. 마음이 놓이기 시작하니 슬슬 인형 뽑기의 여파가 몰려오기 시작하기도 했고.
나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한별의 손을 놓고 다시 고개를 정면으로 돌려 안전벨트를 매며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배고프다! 밥 먹자. 밥!”
“그래, 뭐... 생각해 둔 거라도 있어?”
“으음......”
생각해 둔 곳이라. 꼭 데리고 가고 싶었던 곳이 있긴 한데.
나는 바로 휴대폰에 저장해두었던 음식점 사진을 한별에게 보여 주며 물었다.
“여기 갈래?”
한별은 딱히 생각해 온 곳이 없었는지 흔쾌히 그러자며 차에 시동을 걸었고.
몇 분 뒤. 아까 분의 쌍욕까지 꽉꽉 눌러 담은 듯한 따가운 시선이 이미 다 증발된 줄 알았던 양심을 아프게 찔러오기 시작했다.
아니... 그래도 나름 여기 정도면 가격도 괜찮고, 비밀로 만나서 밥 먹기엔 나쁘지 않은 곳인데!
변명거리가 새록새록 떠올랐으나 나는 애써 그의 시선을 외면한 채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
“... 야.”
“응?”“너 진짜 기사 나고 싶어서 작정했어?”
프라이빗 룸의 문이 닫히자마자 한별의 짜증 가득한 목소리가 와다다 날아왔고 나는 자리에 앉기 무섭게 얼굴에 둘둘 감고 있던 목도리를 벗어 던지고는 나름 준비해 놓았던 변명을 구구절절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니, 나름 프라이빗 룸도 있고... 얼굴도 다 가렸으니까 괜찮지 않아?”
“괜찮긴 개뿔!! 니네 그룹 성지인데 너 알아보는 팬이 한 명도 없겠냐?!”
“그, 그래서 프라이빗 룸 잡았잖아! 왜 화내!”
“어휴, 이... 어후......”
될 대로 되란 식으로 막 내뱉었더니 말문이 막힌 건지 한별은 다 삭히지 못한 화를 얼버무리다 끝내 긴 한숨을 내쉬곤 내 얼굴이 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니, 뭐... 물론 여기가 화이트 스완 팬들의 성지라 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건 사실이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아까도 봤잖아, 생각보다 우리 팬들 입 무거워! 어디 떠벌리거나 그러진......”
“팬들은 그렇겠지. 기자들은?”
“서... 설마 그 사람들 중에 기자가 있을라고......”
“넌 뇌가 단순해서 좋겠다, 아주.”
“아, 아무튼!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하자! 여기 음식 맛있어!”
오늘따라 여러 번 정곡을 찔리는 양심이 고통을 호소하며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자고 내 입을 재촉하였고 이런 상황을 매우 자주 겪어왔던 나는 이 서늘하고 날 선 분위기를 한 번에 풀어버릴 수 있는 방법 또한 수없이 꿰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빠르고 효과 좋은 방법은.
“술... 마실래?”
밑져야 본전이라고. 일단 말부터 던져 보았고, 한별 역시 타는 속을 빨리 진정시키고 싶었는지.
“시켜.”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
“저기......”
“왜! 뭐!”
“아니야... 마셔... 맘껏 마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시선은 어쩔 수 없이 한별 옆에 쌓여가는 술병들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잘 마시네... 딱히 술이 센 것 같지는 않지만.
기왕이면 같이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풀어가 보려 했는데, 안주도 아직 안 나왔음에도 들입다 소맥을 말아버리는 한별의 기세에 눌려 정작 나는 술 냄새조차 제대로 맡아보지 못한 채 뒤늦게 나온 안주만 깔짝깔짝 주워 먹었다.
저러다 꽐라 될 거 같은데, 쟤.
일단 차 키는 쟤 주머니에 있었고. 쟤네 숙소가 어디더라? 여차하면 호연 오빠한테 연락을 해야겠는데.
혹시 모르니 근처 호텔을 알아볼까, 그런 불순한 생각이 불쑥 올라오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술 취해서 제대로 의사 표현도 못 하는 사람이랑 뭘 해.
아무리 취했다 한들 웬만한 성인 남자보다 체격이 좋은 편인 김한별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오늘은 그와 좀 더 가까워지고 싶었을 뿐, 당장 그와 다시 그렇고 그런 짓을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물론 하고 싶지.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한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내가 진짜 원하는 것 그것 뿐 만이 아니라......
한참을 그에 대한 마음을 되뇌며 고뇌에 잠겨 있을 때.
“야.”
“어? 어.”
한참을 술만 들이켜던 한별이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넌... 진짜... 이상한 인간이야......”
“응, 알아. 너~무 잘 알아.”
이미 너 말고도 나한테 그런 소리 한 사람이 한 트럭이 넘을걸.
드디어 취했나 보구나. 얘 주량은 대충 소주 다섯 병 정도인가 보네. 어느새 붉게 달아올라 있는 살짝 꼬인 혀가 마냥 귀엽게만 느껴져, 나는 실실 웃으며 배배 꼬인 푸념과 비난들을 잠자코 다 들어줄 요량으로 편한 자세를 취하려 꼬고 있던 다리를 풀었던 그때였다.
“근데......”
“으븝!”
언제 이렇게나 가까이 왔는지, 돌연 콧속에 확 밀려 들어오는 술 냄새에 놀라 고개를 들려했더니, 갑자기 큰 손이 볼을 감싸더니 내 고개를 들어 올렸고, 알코올로 인해 잔뜩 풀린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뭐지? 이건 무슨 상황이야?
“하... 한별......?”
“얼굴은 참... 내 취향인데......”
한별은 내 볼을 만지작거리더니 내 심장이 뒤집어질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웅얼거렸다.
저건, 그러니까......
“혹시, 나... 예뻐?”
“응, 존나 예뻐.”
씨발.
해사하게 웃으며 내뱉은 말이 심장에 날아와 꽂히더니 눈앞을 순식간에 핑크빛으로 물들여버렸다.
내가, 내가 예쁘다고. 네 취향이라고.
그렇게 까칠하게 굴었으면서 속으로는 앙큼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거지?
이성의 끈은 아직 거뜬했다. 취기에 진심을 말한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짜증만 냈던 게 미안해서 술기운을 빌려 빈말 한 번 던져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평소의 그를 생각 해본다면, 이 인간이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제대로 인지도 못 하는 상황인 건 변함이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한별의 볼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곤 나지막이 그에게 물었다.
“키스... 해도 돼?”
이 정도의 용기는, 내봐도 괜찮지 않을까? 나도 네 진심이 뭔지 알고 싶은 건 똑같단 말이야.
적어도 나와 맞닿은 네 눈동자 또한 나처럼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는지 정도는 확인하고 싶었다.
욕망으로 달궈진 달콤한 체액을 받고 싶어, 잔뜩 들뜬 혀가 질척하게 얽혔다. 츕, 츄읍 외설스러운 소리가 귓속을 간질이고, 힘이 들어가지도 않는 발은 쾌감에 벌벌 떨리는 몸을 눕힐 공간을 찾아 서로를 몰아붙이듯 빠르게 방 안으로 들어왔다.“흐우... 응, 읏”촉촉이 젖은 목소리가 꽉 막힌 입술 사이로 애달프게 흘러나왔다.곧 내 손과 그의 뒤도 이렇게 젖겠지. 그땐 또 얼마나 달콤한 소리로 나를 재촉할까. 행복한 상상을 펼치며 손끝에 힘을 준 백희가 천천히 입술을 뗐을 땐, 어느새 두 사람은 침대 위에 몸을 겹친 채 누워 있었다.백희는 서서히 고개를 들고 제 아래에 깔린 한별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평생 주인의 사랑과 숭배만 받고 자란 행복한 집 고양이처럼 도도하고 요염하던 눈동자가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저가 감당하기 힘든 쾌감을 떠올리며 겁을 먹은 채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게 너무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백희는 장미꽃잎처럼 예쁘게 달아오른 손가락으로 한별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물이 맺혀 있던 눈가에 살짝 입을 맞췄다.이제 어떻게 분위기를 타면 좋을까, 찰나의 고민이 스치는 찰나. 살짝 물기를 머금은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구름 위로 둥실둥실 날아가 있던 그녀의 정신을 잡아챘다.“야.”“어?”“넌 뭐 딜도... 뭐 이런 건 안 써?”“이 와중에 그런 게 궁금해?”“이럴 때 아니면 언제 궁금해 하는데.”그건 그렇네.
그렇게 소동은 다소 어이없게 마무리되었다.다행히 미래는 다친 곳 하나 없이 무사히 구출되었고 수면 유도제를 좀 많이 먹은 것 외엔 걱정할 만한 이상 소견도 없다 하니 일단 한시름 놓을 수는 있었지만, 사건의 스케일이 스케일이었던 지라 미디어가 시끄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고 이래저래 수습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진 탓에 결국 예정되어 있던 쇼케이스는 취소되고야 말았다.“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그 뒤로 미래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내내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다녔다.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해 보겠다 했는데, 결국 일만 키운 꼴이 되었으니. 하지만 이제 와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백희는 저를 볼 때마다 울상이 되는 미래에게 항상 똑같은 말로 그녀를 달래주곤 했다.“안 다쳐서 다행이다.”그렇게 생각하는 건 백희뿐만이 아니었다. 뉴스 댓글들은 미래를 걱정하고 응원하는 팬들의 목소리로 가득했고 소속사엔 미래에게 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가 담긴 선물들이 잔뜩 몰리고 있었고 SNS에도 미래가 무사한 것에 대해 감사하며 미래에게 해를 가하려 한 청한을 욕하는 글로 성황이었다.그걸 보며 미래는 참 많이 울었다. 저를 이렇게나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줄 몰랐다면서.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한별은 끅끅대고 있는 그녀에게 무심한 듯 걱정이 한껏 서린 목소리로 마지막 충고를 해주었다.“지는 별 뒤만 쫓다가 지기엔 네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너무 아깝지 않아?”그 말대로, 이제 정점에서 내려와야 하는 스타의 뒤만
오랜만에 청한을 마주한 한별은 청한의 생각 이상의 몰골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약 때문인지 아니면 그놈의 약 때문에 궁핍해진 생활 탓인지 그는 눈 밑이 푹 꺼질 정도로 살이 빠져 있었고, 집에서 내내 뭘 하고 산 건지 다크서클은 눈 전체로 번져 있었다. 게다가 허리 또한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한 나무처럼 굽은 것이, 마치 말라 비틀어진 생선처럼 볼품없이 변한 그의 모습은 한때 알타이르의 비주얼 멤버 중 하나였던 그 조청한의 모습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반면, 청한의 눈에 들어온 한별의 얼굴은 순간 짜증을 참기 힘들 정도로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잡티 하나 없이 반질반질한 하얀 얼굴, 어렸을 때 품고 있던 예민함과 불안을 세월의 힘으로 녹여낸 덕택에 더 성숙하고 깊어진 눈동자, 분명 엄청난 돈을 들여가며 관리했을 예쁜 라인의 몸, 그 몸을 감싸고 있는, 한때 자신도 어렵지 않게 걸치고 다녔을 값비싼 메이커의 옷.여전히 빛나고 있구나, 넌.새삼 이렇게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꼬여있던 속이 더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그럼에도 청한은 웃으며 말했다.“오랜만이네?”저 빛을 단숨에 꺼트릴 무기가 제 손에 있단 생각을 하면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으므로.그 기분 나쁜 웃음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았던 한별은 빨리 이 불편한 대화를 끝내기 위해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와 통화 했을 때와 별반 다를 거 없이.“유미래 어디 있어?”“만나자마자 그 소리냐? 뭐... 방 안에 얌전히 있겠지.”“뭐?”&
대표실을 박차고 나온 미래는 곧바로 조청한의 연락처를 찾아 수소문했고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그의 연락처를 알아내고 잴 것도 없이 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렇게 그를 만났다.한때 알타이르의 인기 멤버 중 하나였지만, 속속히 팬들의 실망을 사다가 끝에는 본인의 몸과 커리어를 망가뜨려, 지금은 동료였던 연예인들의 사생활이나 캐고 다니는 꼴사나운 퇴물을.“너한테 연락이 올 줄은 몰랐는데.”“......”“내 연락처는 어떻게 알았어?”“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미래는 그와 오래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말을 섞는 것만으로도 불쾌한 기운이 온몸을 기어다니는 것만 같았고, 그 불쾌함에 잠식되고 싶지 않았던 미래는 다소 급하게 본론을 뱉어버렸다.“줘요, 사진.”“뭐?”“그때 사진 찍은 거 당신이잖아요. 초상권 침해로 신고하기 전에 빨리 내놔요.”“참나... 너 진짜 세상물정 모르는구나? 너 같으면 뭐 얻는 것도 없이 그런 대박 건을 순순히 지워주겠냐?”“돈은! 내가 어떻게든 마련해서 원하는 만큼 줄 테니까!”“돈이야 렉카나 인터넷 기자들한테 넘기면 원하는 만큼 받을 수 있는데 굳이 너한테 찔끔찔끔 뜯어내야겠냐? 감질나게.”“......”할 말이 없었다.그의 말을 부정하고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더 좋을 거라고 설득하고 회유할 말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봤지만, 미래에겐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들을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내뱉는 노련함이 없었다. 상대에게 만만히 보이지 않기 위해선 반드시 감춰야만 하는 불안을 겉으로 표출하지 않는 방법 또한 몰랐고.하지만 퇴물이라고 해도, 청한은 미래보다 이 바닥에서 지겹도록 굴러봤고 때문에 저 정도로 사회 경험이 없는 신생 스타의 불안 정도는 곁눈질로 훑어도 전부 간파할 수 있었다.불행하게도 칼자루는 이미 그의 손에 쥐어진 지 오래였다.“돈은 됐고, 나랑 데이트나 한번 할래?”“네?” “아, 오해할까 봐 말하는 건데, 잠자리가 아니고 데이트다? 괜히 꼬롬한 일 만들어서 역으로 약점 잡힐 일은 만들
“하아......”대표실 안은 연신 튀어나오는 여러 사람들의 한숨으로 인해 공기가 무거웠다. 그 공기에 유독 짓눌려져 있는 사람은 당연 미래였다. 숨소리 하나 제대로 내지 못한 채 내내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은 마치 형을 선고받기 전의 죄인과도 같았다.한참 끓어오르던 화를 애써 내리누른 대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 이거 어떻게 할 거야? 회사 안에 기자들이 얼마나 많이 드나드는지 몰라?! 어디서든 입 조심하라고 내가 얼마나!!”“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그리고, 하......”날카로운 한숨과 함께 대표의 시선이 붕대와 방수 커버가 둘둘 말려 있는 미라의 다리를 향했고, 그 걱정과 분노가 한 데 섞인 부담스러운 시선을 느낀 미라는 슬쩍 시선을 사선으로 피해버린 뒤 허허 영혼 없는 너털웃음을 흘렸다.“병원에서는 뭐라니?”“한 삼 주는 이거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아... 그럼 스케쥴 다 취소해야겠네.”대표는 당장 연락을 돌려야 하는 프로그램들 생각에 지끈거리기 시작한 머리를 부여잡았고 미래의 어깨는 더욱 축 처지기 시작했으며 미라는 이 불편한 공기에 좀이 쑤셔 괜히 애꿎은 고개만 이리저리 꺾어댔다. 그리고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백희와 한별은.“많이 아파?”“어? 아니... 뭐......”미라를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백희는 시종일관 미라의 다리를 보며 울상이었고, 한별 역시 걱정 어린 눈빛으로 미라를 바라보고 있었다.그게 정말 고맙기는 하다만, 동시에 불안하기도 했다. 저 걱정은 곧 이 사태를 초래한 상대에 대한 분노로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미래야.”아니나 다를까, 미래를 부르는 백희의 목소리는 평소와는 달리 매우 싸늘했다. 미래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백희와 눈을 마주했고, 백희는 착잡함과 약간의 화가 섞인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네가 널 그렇게 서운하게 했니?”“......”“그게 이런 사태를 만들어야 했을 정도로 서운했어?”“야, 주백희......”
“티저 영상 떴다!!”숙소 내에 우렁찬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멤버들이 마치 바닥에 떨어진 두쫀쿠를 본 개미 떼마냥 거실에 미리 세팅해 둔 노트북 앞으로 일제히 몰려들었다.“니들이 언제부터 나한테 관심이 이리 많았냐?”“누가 언니 본대? 레이라 얼굴 보려는 거지.”“캬~ 저 턱선 봐라. 언니 따위랑 엮기엔 레이라가 너무 아깝지 않냐?”“야! 의리로라도 내가 더 아깝다고 해주면 어디가 덧나?!”“얼씨구. 우리한테 언제부터 그딴 의리가 있었다고.”“아 좀 다 닥쳐! 소리 안 들리잖아!”겨우 일 분 좀 넘는 영상 보는데 뭐 이리들 소란인지. 혼자 멀찍이 떨어져 휴대폰으로 티저 영상을 확인한 미라는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퀄리티로 나온 티저를 보며 작은 감탄사를 연발하다 별생각 없이 확인한 댓글 창에 눈에 띄는 글 하나를 발견하고 멈칫했다.“언니.”“응?”“언니 혹시 뮤비 촬영하는 데 유미래 데려갔어?”“데려가긴 무슨. 미래가 내 애냐? 뭐... 오긴 왔었는데 그게 왜?”“아......”미라는 댓글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고개를 얕게 주억거리며 평소처럼 무심한 말투도 대꾸했다.“아무것도 아니야.”그 말에 의문을 느낀 것도 잠시. 평소와 다를 거 없는 무뚝뚝하고 심드렁한 표정을 확인한 백희는 살
*한바탕 소란스러운 고백을 듣고 멍한 정신으로 숙소에 돌아온 한별은 심란함에 밤새 뒤척이다 결국 맥주 한 캔을 까고야 말았다. 내일 바쁜 일정을 소화하려면 음주는 최대한 자중해야 한단 걸 알고는 있었지만,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나머지 내일 컨디션 걱정보단 지금 당장 취해서 빨리 잠들고 싶단 마음만 앞서 있었다.하
Side W.한별이 이 색다른 자위에 맛 들린 계기는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장난질인지 누군가 제 노트북에 깔아 놓은 게동 무더기를 발견하고 오만상을 찌푸리던 것도 잠시. 기왕 깔아둔 거 한 번 보기나 할까? 하는 미친 생각이 들었고. 정신없이 보다 보니 더한 미친 생각이 일기 시작했다.&l
*알타이르.화이트 스완의 데뷔 동기이자 우리 못지않게 빠른 성공을 거둔 남자 아이돌 그룹. 같은 시기에 데뷔한 데다 우연하게도 둘 다 그룹명이 새와 관련되어 있어서인지 이모저모로 서로 엮어가며 마케팅을 하는 편이었고 팬들 사이에서도 한 번씩 서로의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알게 모르게 끈끈하게 엮인. 한마디로 줄이자면 실질적 접점은 많이 없었을지언
“응, 아앗...!”“좀만, 힘 좀 빼봐. 손가락 저려.”“그게, 읏... 마음대로... 되는게......”놓치면 큰일이라도 날까, 겁을 잔뜩 집어먹은 채 얇은 실크 소매 꽉 붙들고 있는 손이 애처로웠다. 이러다 의상이 찢어지거나 늘어나기라도 하면 큰일인데. 문득 이 상황과 맞지 않는 합리적인 걱정이 올라왔지만, 나는 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