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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필 무렵, 나는 이미 떠났다
꽃이 필 무렵, 나는 이미 떠났다
作者: 천외선인

제1화

作者: 천외선인
[유진 씨, 이혼 합의서는 꼼꼼히 확인해 보세요. 서명하고 한 달이 지나면 두 분의 혼인 관계는 완전히 종료됩니다.]

심유진은 욕실에 서서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변호사의 말을 조용히 들었다.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전화를 끊고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른쪽 뺨에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선명한 흉터가 남아 있었다.

심유진은 그 흉터를 볼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곤 했다.

그때 휴대폰에서 딸이 보낸 가족사진 알림음이 울렸다.

심유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사진을 확인했다.

사진 속 박진성의 잘생긴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결혼한 뒤 심유진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소였다.

그리고 심유진이 정성껏 키워온 딸 박수정은 신이 나서 어깨를 들썩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우스운 건, 이른바 가족사진이라는 사진 속 아내의 자리가 심유진이 아니라 박진성의 첫사랑인 강희연의 차지였다는 것이었다.

이 사진은 박수정이 일부러 심유진을 비웃고 조롱하려고 만든 것이었다.

석 달 전 강희연이 이혼하고 돌아온 이후, 심유진은 마치 이방인처럼 변해 버렸다.

이제 부녀의 눈에 심유진은 그저 불필요한 존재일 뿐이었다.

오늘은 두 사람의 결혼 8주년 기념일이자 심유진의 생일이었다.

그런데 박진성은 반찬이 입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크게 화를 내더니, 심유진 혼자 집에 남겨둔 채 딸을 데리고 나가 버렸다.

강희연의 SNS를 보고서야 심유진은 부녀가 강희연을 만나러 갔고, 세 사람이 함께 해양 공원에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이어 올라온 십여 개의 짧은 영상 중 마지막 영상이 심유진이 숨도 쉬지 못하게 만들었다.

평소 타인과의 신체 접촉을 극도로 싫어하던 박진성이 강희연을 업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녀의 입가에 묻은 생크림을 검지로 닦아낸 뒤, 그대로 자신의 입에 넣는 모습까지 담겨 있었다.

그 순간, 심유진은 얼음굴 속에 빠진 듯한 기분이었다.

심유진은 이 가족을 위해 매일같이 고생하며 애써 왔건만, 결국 남 좋은 일만 시켜 준 꼴이었다.

자신의 처지가 정말 가엾고 처참했다.

심유진은 힘없이 의자에 앉아서, 눈앞에 놓인 거의 다 녹아버린 딸기 케이크를 바라보았다.

심유진의 마음도 함께 서서히 가라앉았다.

시간은 흘러 새벽 3시가 되었다.

갑자기 집 안에 불이 켜지더니, 박진성이 딸을 데리고 돌아왔다.

심유진을 보자, 두 사람의 눈빛 깊은 곳에 혐오의 기색이 살짝 스쳤다.

박진성은 넥타이를 풀어서 심유진에게 내던졌다.

“내가 생강 못 먹는 거 뻔히 알면서 음식에 그렇게 많이 넣어? 다음부터는 좀 기억해.”

그러고는 마치 큰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작은 선물 봉투 하나를 심유진에게 던졌다.

“이건 생일 선물이야.”

심유진은 그 봉투를 보자마자 쓴웃음이 나왔다.

그것은 별로 값도 나가지 않는 사은품으로, 꿀벌 모양의 귀걸이 한 쌍이었다.

비싼 정품인 스완 크리스털 목걸이는 이미 강희연의 SNS에 올라와 있었다.

심유진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자, 박진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화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일하는데, 너는 집에서 편하게 놀고먹기만 하잖아.”

“내 짐을 덜어주지는 못할망정 나한테 얼굴까지 찌푸리는 거야?”

“네가 이렇게 꾸미지도 않고 여자로서의 매력도 없는 모습으로 변할 줄 알았으면, 절대 너랑 결혼 안 했어!”

“오늘 밤은 마당에서 자. 네 잘못을 깨닫기 전까지는 용서할 생각 없으니까!”

이 말을 남기고 박진성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박수정은 심유진을 쓰레기 보듯 바라보더니, 이미 다 녹아버린 딸기 케이크를 그녀의 머리에 내리꽂으며 자랑하듯 말했다.

“나 오늘 희연 이모랑 해양 공원에서 정말 재밌게 놀았어!”

“당신은 그냥 우리 집 가사도우미일 뿐이야. 얼른 아빠랑 이혼하고 나가.”

“난 희연 이모가 우리 엄마가 됐으면 좋겠어! 당신 같은 못난이는 필요 없어!”

어릴 때부터 정성껏 보살펴 온 딸이 자신에게 이토록 악독한 말을 내뱉는 모습을 보자, 심유진의 가슴은 철저히 무너져 내렸다.

마치 자신이 쓰레기라도 된 것 같았다.

자신이 이런 배은망덕한 아이를 키웠다니!

예전의 박수정은 정말 사랑스럽고 순수한 아이였다.

엄마인 심유진을 누구보다 좋아했다.

하지만 석 달 전 강희연이 이혼하고 돌아온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 여자와 몇 번 만난 뒤부터 딸의 태도는 완전히 돌변했다.

심유진은 강희연이 분명 딸 앞에서 무슨 말을 해서 모녀 사이를 이간질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남의 말 따위는 상관없었다.

하지만 심유진을 가장 아프게 한 건 따로 있었다.

자신이 수년 동안 쏟아부은 사랑과 정성이 강희연과 고작 석 달 함께한 시간보다도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심유진의 마음은 더욱 비참해져만 갔다.

자신이 마치 불쌍한 벌레처럼 느껴졌다.

딸은 엄마를 혐오하고, 남편 박진성도 심유진에게 점점 냉담해지면서 싫증을 냈다.

심지어 딸이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마저 묵인하고 있었다.

심유진은 무표정하게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머리에 묻은 생크림을 씻어냈다.

심유진의 마음은 완전히 죽어 버렸다.

이 부녀에게 더 이상 어떤 기대도 하지 않기로 했다.

세면대 아래에서 서류를 꺼내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며칠 전 두 사람은 강희연 문제로 크게 다퉜고, 박진성은 이혼 합의서를 심유진에게 내던졌다.

심유진이 자신과 딸을 깊이 사랑하고 있기에 절대 이혼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 박진성은, 심유진을 온갖 방법으로 모욕하고 즐기고 있었다.

심유진은 위태로운 결혼을 붙잡기 위해 모든 억울함을 삼켜야 했다. 무릎을 꿇은 채 박진성에게 용서를 구했었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차갑고 쉽게 변할 수 있는지를.

자신이 아무리 양보하고 타협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놓아주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이든 딸이든, 전부 다 포기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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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이 필 무렵, 나는 이미 떠났다   제23화

    그날 이후, 박진성은 더 이상 찾아와서 방해하지 않았다.대신 조용히 곁을 지키는 쪽을 택했다.박진성은 심유진이 자신을 다시 받아들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저 천천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심유진도 박진성 부녀가 바로 맞은편에 산다는 사실에 점차 적응해 갔다.박수정은 예전처럼 가끔 집에 놀러 오기도 하고, 함께 밥을 먹기도 했다.박수정은 준호와도 아주 잘 지냈고, 별다른 다툼도 없었다.게다가 박수정은 이전보다 훨씬 철이 들어서, 준호를 챙겨 주고 양보할 줄도 알았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변화였다.하지만 심유진이 그 아이에게 베푸는 정성은 여전히 한정적이었다.예전처럼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지는 않았다.지금의 심유진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아이는 준호였다.박수정은 한때 자신이 죽기를 바라며 저주를 퍼붓던 아이였다.비록 다른 사람이 부추겨서 그런 말을 했다고 해도, 친엄마에게 그런 모진 말로 상처를 준 사실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박수정도 엄마가 자신과 준호를 대할 때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준호에게 더 잘해 줬다.마음은 서운했지만, 그래도 질투하지는 않았다.자신이 예전에 잘못해서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이제는 엄마가 천천히 용서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소경훈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심유진은 가끔 소경훈을 떠올렸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도 잊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인연은 있었지만, 연분은 없었던 것이다.애초에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었다.설령 함께하게 된다고 해도, 결국은 예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될지도 몰랐다.마치 심유진과 박진성처럼 맞지 않는 사람과 억지로 함께한다면, 끝에 가서 고통받은 것은 결국 자신일 것이다.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자신이 소경훈과 결혼한 상태라는 점이었다.만약 정말로 어쩔 수 없이 이곳을 떠나야 한다면, 이혼하려고 해도 여러 가지로 복잡해질 터였다.심유진은 길게 한숨을 쉬었지만, 깊게 생각하지

  • 꽃이 필 무렵, 나는 이미 떠났다   제22화

    지금의 박진성은 조심스럽기 짝이 없었다.심유진이 여전히 자신을 외면할까 봐, 큰 기대를 걸지 못했다.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이것은 심유진이 곁을 떠난 뒤에야 박진성이 깨달은 이치였다.예전에 박진성이 심유진에게 가했던 모든 벌과 괴롭힘은, 이제 전부 자신에게로 되돌아왔다.심유진이 떠난 뒤, 박진성은 점점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박진성이 이 도시를 선택해 일부러 심유진의 곁에 남은 것 자체가, 한 번도 심유진을 포기한 적 없다는 뜻이었다.다만 자신이 심유진에게 준 상처가 너무 깊어서, 심유진이 자신을 용서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박진성은 심유진에게 몇 번이고 사과하고 싶었다.심유진이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벌하든, 용서만 해준다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심유진은 박진성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박진성을 볼 때마다 못 본 척하거나,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대했다.박진성은 사과하고 싶었고, 참회하고 싶었다.하지만 박진성이 심유진에게 저지른 일들에 비하면, 그 어떤 말도 너무나 창백하고 무력하게 느껴졌다.심유진은 말을 망설이는 박진성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나 이제 당신을 미워하지 않아.”박진성의 몸이 굳어졌다.심유진이 그런 말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잠시 당황했다.설마 자신을 용서한 걸까?하지만 그 기쁨도 몇 초를 넘기지 못했다. 이어지는 말이 박진성을 끝없는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당신은 나한테 그저 상관없는 사람일 뿐이야. 그러니 당신에게 큰 감정 같은 게 있을 리 없지. 예전 일도 벌써 다 잊었고, 지난 일에 계속 얽매여 있지도 않아.”한때 심유진은 박진성을 사랑해서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하지만 거듭된 고통과, 몇 번이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경험 끝에 심유진의 마음은 조금씩 죽어 갔다.심유진은 한 사람을 완전히 꿰뚫어 보게 되었고, 자신의 사랑이 그 앞에서는 그저 한 줌

  • 꽃이 필 무렵, 나는 이미 떠났다   제21화

    준호를 무사히 입양한 뒤로 심유진의 삶은 더욱 행복해지고 충만해졌다.이전보다 마음도 한결 나아졌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소경훈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보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회의가 끝나지 않은 걸까?’준호도 가끔 소경훈의 안부를 물었다.그럴 때마다 심유진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난처했다.두 사람은 침대 옆에 나란히 앉아 창밖에 흩날리는 눈송이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의 생각은 저 멀리, 같은 사람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사실 심유진도 소경훈에게 먼저 전화하거나 문자를 보내고 싶었지만,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소경훈은 자신의 상사이긴 했지만, 회사에서 두 사람이 직접적으로 얼굴을 볼 일은 많지 않았다.게다가 준호 일은 그저 도와준 것뿐이었고, 그렇게 큰 희생까지 치렀는데 다른 일로 또 소경훈에게 폐를 끼치기도 미안했다.하물며 특별히 중요한 일도 없었다.소경훈에게서도 전화나 문자 한 통 없이, 계속해서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였다.심유진은 마음을 다잡고 스스로에게 거듭 말했다.‘대표님이 한 건 전부 준호를 위한 일이야.’‘나한테 특별한 감정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야.’‘괜히 기대는 하지 말자.’준호는 바이올린 수업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이제 유치원에도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벌써 그럴 나이가 된 것이다.학원 앞에서 다른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함께 오가는 모습을 자주 보았지만, 자신에게는 엄마만 있을 뿐 아빠가 없다는 사실에 속으로는 서운하기도 했다.하지만 그런 마음을 심유진에게 내비친 적은 없었다.그런 사소한 일로 엄마가 난처해지고 마음 아파하지 않기를 바랐다.소경훈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정말 감감무소식이었다.심유진은 궁금했지만, 회사 사람들을 통해 소경훈에 대한 소식을 조금씩 들을 수 있었다.소경훈은 그동안 계속 해외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평온한 생활은 차질 없이 이어졌다. 심유진은 이런 삶이 좋았고 만족스러웠다.다만 옥에 티가 있다면, 박진성이 딸을 데리고 와서 바로 맞은편 동에 산다는 것이었

  • 꽃이 필 무렵, 나는 이미 떠났다   제20화

    소경훈이 갑자기 자신에게 자주 만나서 식사하자고 하는 것이 심유진은 조금 의외였다.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지난번 두 사람의 만남이 특별한 결론 없이 끝난 뒤로는 한동안 연락이 뜸했기 때문이다.심유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아니,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심유진 같은 여자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이혼한 데다 얼굴에 흉터까지 있고, 게다가 자신의 아이도 아닌 아이를 입양하려고 하는데.거부감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식사를 마친 뒤, 준호는 한 손으로는 심유진의 손을, 다른 한 손으로는 소경훈의 손을 잡고 무척이나 신나 했다.심유진은 입가에 미소를 띠고 얼굴 가득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심유진도 몰랐다. 이런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어쨌든 지금 이 순간만큼은 충분했다.어떤 일이 있어도 심유진은 준호를 포기할 수 없었다.아이는 자신이 의지하는 곳이자, 앞으로 살아갈 힘이 되어 주는 존재였다.사실 조금 전 고깃집에 갔을 때, 심유진은 박진성 부녀를 보았다.하지만 일부러 못 본 척했다.이미 할 말은 다 했는데, 두 사람은 여전히 이곳에 눌러앉아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어떻게 매달리든, 심유진의 태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을 것이다.이제 겨우 과거와 이별하고 새로운 미래를 시작했는데, 지난 일이 지금의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돌아오는 길에 소경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봤어요? 혼자 준호를 키우는 건 문제는 없겠지만, 아이가 계속 아빠 없이 자랄 수도 없잖아요.” “아이가 자라는 데는 아빠의 존재도 중요하니까요.”심유진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제 상황도 아시잖아요. 이혼녀에 얼굴에 흉터도 있어요. 준호까지 입양하려고 하는데 누가 쉽게 받아들이겠어요? 조건도 복잡하고 걸리는 게 너무 많잖아요.”소경훈은 심유진을 잠시 바라보더니 조용히 물었다.“내가 받아들

  • 꽃이 필 무렵, 나는 이미 떠났다   제19화

    박진성은 딸을 데리고 떠나지 않았다. 대신 이곳에 남아서 심유진의 일상을 멀리서 지켜보기로 했다.박진성은 감히 인사조차 건네지 못했다.가까이 가면 더 미움을 살 것만 같아서, 멀리서 몰래 심유진의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자신을 볼 때마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내고, 몸서리칠 만큼 자신을 혐오하는 심유진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박진성은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자신이 한 짓이 심유진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기에, 그렇게 밝던 여자가 자신을 악몽처럼 여기게 된 것일까?박진성은 비로소 깨달았다.심유진은 이곳에 온 뒤로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더 우아해지고 더 매력적이었으며,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밤이 깊어질 때마다, 박진성은 이렇게나 좋은 아내를 자신의 손으로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가슴을 후벼파는 듯이 아팠다.박진성은 필사적으로 심유진을 붙잡고 싶었지만, 동시에 잘 알고 있었다.자신을 그토록 사랑하던 여자는 이미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박수정은 제법 얌전해졌다.어린아이는 옆에서 조금만 이끌어 주면 옳고 그름을 쉽게 분별할 수 있었다.자신의 엄마가 다른 아이를 그렇게나 사랑스럽게 보살피는 모습을 보자, 박수정은 질투가 났지만 아빠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엄마가 용서하기 전까지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사실 박수정은 가끔 궁금했다.‘엄마는 왜 아빠를 용서해 주지 않는 걸까?’박진성은 복잡한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박진성은 딸을 데리고 근처의 고깃집에 갔다.자리에 앉아 천천히 딸에게 고기를 구워 주며, 심유진과 함께했던 지난 시절을 이야기해 주었다.박수정은 아직 어려서 사랑이 무엇인지, 사람 사이의 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하지만 부녀가 했던 행동이 엄마의 마음을 완전히 무너뜨렸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그리고 엄마는 못난이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박수정은 문득 어릴 적 일들이 떠올랐다.엄마가 자신을 정성껏 돌봐 주던 모습이

  • 꽃이 필 무렵, 나는 이미 떠났다   제18화

    박진성 부녀가 다시 찾아온 것은 심유진으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지난번과 달리, 두 사람에게서 기세등등하거나 강압적인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특히 박진성의 눈빛은 확실히 부드러워져 있었다.하지만 그럼에도 심유진은 두 사람을 대할 때 여전히 혐오감부터 앞섰다.박수정이 심유진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엄마.”심유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박수정을 한 번 바라본 뒤, 준호의 손을 잡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그 모습을 본 박진성은 급히 심유진을 불러 세웠다.“잠깐, 우리한테 시간 조금만 줘. 몇 분이면 돼. 부탁할게.”박진성이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은 심유진으로서는 의외였다.하지만 심유진이 그 악몽 같던 집으로 다시 돌아갈 리는 없었다.심유진의 마음은 이미 하루하루 반복된 고통 속에서 완전히 죽어 버렸다.박진성이 어떤 약속을 하든, 심유진은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부녀에게서 멀어진 뒤에야 비로소 심유진의 삶은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딱 3분이야.”박진성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용기를 내어 심유진을 바라보았다.“지난번에 널 찾아왔을 때 내 태도가 잘못됐어. 심한 말도 많이 했고.” “이제 나도 수정이도 우리가 뭘 잘못했는지 깨달았어. 그리고 이 집에는 네가 꼭 필요하다는 것도.”심유진은 비웃듯 입꼬리를 비틀었다.“왜? 집에 또 가사도우미가 필요해졌어?”박진성은 급히 고개를 저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아니야. 난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내가 너무 몹쓸 놈이었어. 그래서 너한테 계속 상처만 준 거야.”“이번 일을 겪으면서 정신을 차렸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너야.” “강희연과는 완전히 연락을 끊었고, 딸도 잘못을 고치도록 교육했어. 이제 절대 예전처럼 너한테 말하지 않을 거야.”“우리 예전의 정을 생각해서 한 번만 더 기회를 줘.”심유진은 눈앞의 박진성을 바라보며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마치 아주 오래 전, 두 사람이 처음 함께하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그때의 박진성은 집안이 가난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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