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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집착과 다짐

ผู้เขียน: 침서면
송아진은 신주현을 오래도록 좋아해 왔다.

그 마음은 깊고 집요해서 그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여자를 살리겠다고 신장 하나쯤 내주는 일조차 기꺼이 감당할 만큼이었다.

하지만 결혼 생활 2년은 그 마음을 산산이 부수었다.

사랑이라는 게, 좋아한다는 게 얼마나 얕고 허망한 건지 이제는 뼈저리게 알았다.

만약 그녀의 의심이 사실이라면 신주현 곁에 남아 있는 건 단순히 자신의 목숨뿐만이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목숨까지 저울에 올려두는 일이었다.

아직은 추측일 뿐이지만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송아진이 단호하게 ‘이혼’이라는 말을 꺼내자 고지훈의 얼굴에 드리워 있던 무거움이 조금 풀렸다.

“그래. 네가 드디어 가족을 찾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할게.”

송아진은 울음과 웃음이 뒤섞인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고지훈뿐이었다. 그는 비밀을 함부로 새지 않았고 송아진을 깎아내리거나 상처 준 적도 단 한 번 없었다.

그 순간, 화실 문이 벌컥 열렸다.

송아진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문가에 기대선 사람은 신주현이었고 그의 손에는 우유 팩이 들려 있었다. 대낮에 들이키는 우유조차 그의 손에선 술처럼 퇴폐적으로 보였다.

어릴 적부터 몸에 밴 건들거림은 여전했고 이제는 성숙한 남자의 기운까지 더해져 묘하게 위협적이었다.

신주현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비웃듯 말했다.

“왜 이렇게 딱 붙어 앉아 있어? 고지훈, 네 앞에 앉아 있는 건 남의 아내라는 걸 잊지 마.”

고지훈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송아진의 목덜미에 약을 발랐다.

“읏...”

찌릿한 통증이 스며들자 송아진이 신음을 흘렸고 그 소리가 신주현의 신경을 거칠게 긁었다.

얼굴이 굳은 채, 신주현은 차갑게 내뱉었다.

“의사인 줄 알았더니 경찰이었나 보네. 참견이 지나치네.”

고지훈은 담담했지만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남편이 지켜주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이 대신 지켜야지.”

순간 송아진은 긴장해 고개를 돌렸고 신주현을 자극할까 두려웠다.

그는 원래부터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었으니까.

“다른 사람?”

신주현은 말을 뱉으며 손에 든 우유 팩을 힘껏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리고 곧장 송아진 앞으로 다가와 그녀를 의자에서 번쩍 들어 올렸다.

송아진은 비틀거리며 그의 셔츠를 붙잡았고 올려다본 눈빛에는 서슬 퍼런 분노가 이글거렸다.

“자기야, 네 입으로 말해봐. 정말 다른 남자한테 기대고 싶은 거야?”

불쑥 들려온 ‘자기야’라는 호칭이 귀를 파고들었다. 결혼한 지 2년이 넘도록 들어본 적 없는 말.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신주현은 진심에서가 아니라 고지훈 앞에서 자신의 소유권을 드러내고 싶을 때만 그런 말을 꺼냈다.

송아진은 힘껏 밀쳐내며 싸늘하게 뱉었다.

“그만해. 네 연극에 끼어들 생각 없어.”

그러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고지훈에게 말했다.

“지훈 오빠, 팔 상처도 좀 봐줘.”

신주현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이를 악문 채 화실 문을 쾅 닫으며 나가버렸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송아진의 가슴은 씁쓸하게 뒤엉켜 무겁게 내려앉았다.

...

그날 저녁, 선셋 라운지.

신주현은 술에 잔뜩 취한 채 소파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앉아 셔츠 목깃을 느슨하게 잡아당겼다.

그리고 건너편에 앉아 있던 여자를 향해 무심히 손짓하자 여자는 기다렸다는 듯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를 내며 다가와 옆에 앉더니 곧장 그의 가슴팍에 몸을 파묻었다.

진한 향수 냄새가 훅 치고 들어오자 신주현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신 대표님, 지난번 조 의사 모임에서 뵀잖아요. 저를 아직 기억하시네요?”

신주현이 여자를 흘깃 보니 요염한 얼굴에는 이미 노골적인 의지가 가득했다.

“왜 내 몸에 기대? 나 유부남인 거 몰라?”

여자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억지웃음을 지었다.

“아이, 대표님도 참. 사모님이랑 사이 안 좋은 거 남들 다 아는 얘기잖아요? 그런 걸 신경 쓰실 거면 이런 데는 뭐 하러 오셨어요?”

‘내가 송아진을 안 좋아한다고? 그게 다들 아는 사실이라고?’

신주현은 순간 기분이 뒤틀렸다.

그는 나름 사람들 앞에서 체면을 지켜왔다고 생각했고 적어도 송아진은 부러움 받을 줄 알았다.

“비켜.”

신주현의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짜증이 묻어 있었다.

여자는 눈치껏 몸을 뗐다. 이때 옆에 있던 친구들이 휘파람을 불며 놀렸다.

“야, 신주현. 설마 그 말라깽이 눈치 보는 거냐? 즐기러 와서 뭐 하는 짓이야? 저 예쁜 여자를 왜 밀어내?”

‘말라깽이.’ 친구들이 송아진에게 붙인 별명이었다.

열여덟, 뼈만 남은 듯 마른 몸으로 그들 앞에 서 있던 작은 소녀. 그때마다 신주현은 어김없이 나서서 그녀를 감싸주고는 했다. 눈물이 맺힌 눈으로 고맙다며 올려다보던 그 시선 속에는, 아직 서툴지만 분명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눈빛은 더 이상 자신을 향하지 않았다.

신주현은 불쾌하게 여자를 노려보며 물었다.

“너, 립스틱 있냐?”

여자가 장난스럽게 자기 입술을 가리켰다.

“여기요?”

“장난하지 말고. 립스틱.”

흥이 깨진 여자는 결국 가방에서 립스틱을 꺼내 내밀었다. 신주현은 그걸 낚아채더니 옆에서 술을 마시던 친구 서이안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립스틱을 쥐여주며 낮게 말했다.

“발라. 그리고 내 목에다 키스 자국 남겨.”

서이안은 술이 확 깨는 표정을 지었다.

“야, 신주현. 너 진짜 미쳤냐? 남자가 남자한테 뽀뽀하라고?”

“시끄럽고 빨리 해.”

신주현은 시계를 흘끗 보며 으름장을 놨다.

“그럴 거면 옆에 청아 시켜. 여자가 하는 게 더 그럴듯하지.”

서이안은 눈치를 보며 툭 내뱉었지만 속으로는 이미 눈치를 챘다.

‘송아진한테 보여주려는 거구나. 질투하게 만들려고.’

“여자가 왜 필요해?”

신주현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잘라냈다.

서이안은 어이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송아진을 위해 순결 지키는 거냐? 꼴에 의리 있네.”

“할 거야? 말 거야?”

신주현은 차갑게 쏘아붙였다.

“한다, 해! 근데 제발 우리 미래 와이프한테 내가 너한테 뽀뽀했다는 개소리만 하지 마라!”

...

송아진이 전화를 받은 건 새벽 한 시였다.

학교 화실에서 늦게까지 작업하다 돌아와 막 샤워를 끝내고 침대에 누운 참이었다.

“여보세요, 혹시 신 대표님 부인 되시죠?”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요, 잘못 거셨어요.”

“잠깐만요! 신 대표님이 직접 이 번호로 전화하라고 하셨어요. 술이 많이 취하셔서 지금 선셋 라운지에 계시는데 와서 좀 데려가시랍니다.”

송아진은 단호하게 잘라냈다.

“그럼 여자 친구한테 전화하세요. 연락처 맨 위에 있을 겁니다. 이름은 송지연이요.”

그리고 곧장 전화를 끊었다. 예전 같았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달려갔을 것이다. 신주현이라면 자신을 다 던져도 아깝지 않다고 믿었던 날들이 분명 있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최근 신주현의 수상한 행동과 송지연의 병세 재발, 그리고 납치 사건까지 겹치면서 모든 퍼즐은 하나의 결론을 가리켰다.

그 둘이 손을 잡고 그녀의 마지막 신장을 노리고 있다는 것. 아니 어쩌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까지도 위험할 수 있다는 의심이었다.

더 곁에 머무른다면 목숨은 물론 미래마저 송두리째 잃게 될 터였다. 이미 2년의 결혼 생활은 그녀를 갉아먹었고 남은 선택은 떠나는 것뿐이었다. 이혼하고 외할머니에게 가는 것. 그러려면 지금 필요한 건 사랑이 아니라 냉정한 판단이었다.

송아진은 다시 전화가 올까 봐 휴대폰을 아예 꺼버렸다. 더 이상 신주현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았지만 눈은 좀처럼 감기지 않았다. 뒤척이던 중, 창밖 마당에 불이 켜졌고 신주현이 돌아왔다.

송아진은 잠옷 차림으로 3층 창가에 서서 내려다봤다. 차에서 비틀거리며 내리는 신주현, 그리고 옆에서 그의 팔을 붙들고 선 건 다름 아닌 송지연이었다.

하이힐을 신고도 그 큰 체구를 부축하며 걸어오는 모습은 누가 봐도 다정한 연인처럼 보였다.

송아진은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투석을 거부하다 응급실로 실려 간 몸이 이렇게 금세 멀쩡해져 하이힐을 신고 남자를 부축한다니.

사랑이란, 참 대단한 힘이었다.

송아진은 내려가 마침 송지연과 말을 섞으려던 참이었는데 때마침 그쪽이 먼저 스스로 걸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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