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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 연을 잇는 자

Penulis: moominkiller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8-23 21:22:48

밭을 관리하는 어른의 이름을 따라, 강무진이 남쪽 약밭에 그림자를 붙였다.

이레를 지켜본 뒤, 강무진이 왕부에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지난번 약방 골목에서 보였던 서두름이 다시 있었다.

"밭의 어른과, 절터의 어른이…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강무진은 두 얼굴을 다 보았다. 절터의 어른은 마르고 키가 컸고, 밭의 어른은 작고 다부졌다. 생김이 닮은 데가 하나도 없었다. 부자도, 형제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서로를 '연'이라 불렀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그 이름으로 부르고, 그 사람도 스스럼없이 그 이름에 답했다.

*

월령은 그 말을 오래 들었다.

성 밖 절터에서 향을 대던 '연 어른'과, 남쪽 약밭에서 붉은 잎을 챙기던 '밭 어른'이, 서로 다른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같은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한 얼굴이 아니었다. 두 얼굴이, 같은 이름을 나누어 쓰고 있었다.

"…'연'은, 이름이 아니었어요."

월령이 낮게 말했다.

"자리였어요."

*

강무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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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형장에서 본 얼굴을, 위지헌은 다 기억하지 못했다."비가 굵었다. 얼굴들이 다 젖어 뭉개져 있었다. 다만…"그가 잠깐 말을 멈췄다."한 사람이, 울지도 피하지도 않고 서 있었다. 다들 비를 피해 고개를 숙였는데, 그 하나만 고개를 들고 형장을 보고 있었다.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월령은 그 말을 마음에 눌러 두었다.우는 척도, 피하는 척도 하지 않고 형장을 지켜보던 하나. 그 얼굴이 누구인지, 위지헌도 아직 온전히 떠올리지 못했다. 두 생을 건너온 기억은, 굵은 비 속에서 자꾸 흐려졌다."천천히 떠올려 보세요."월령이 말했다."급할 것 없어요. 이번에는, 시간이 많으니까요."*비밀을 다 꺼내 놓은 뒤로,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달라졌다.월령은 더 이상, 무서운 밤에 혼자 숨을 삼키지 않았다. 위지헌은 더 이상, 아는 것을 모르는 척 물어 주지 않아도 되었다.낮에, 월령이 왕부 마당의 살구나무 아래에 섰다. 꽃이 진 자리에, 푸른 열매가 제법 굵어져 있었다."부군.""말해라.""전생에, 이 왕부에는 안 살아 보셨죠?""…없다.""그럼 이 집에서 봄을 세는 건, 부군도 저도 처음이네요."위지헌이 그녀를 보았다. 두 생을 산 두 사람에게, 처음인 봄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이상하게, 그의 가슴을 데웠다.*청아가 그 곁에서 살구를 올려다보며 재잘거렸다."아가씨, 이 살구 익으면 정과 만들어요. 왕야도 단 거 좋아하세요?""…글쎄. 부군, 단 거 좋아하세요?"위지헌은 잠깐 말을 골랐다."…모른다.""어머, 두 생을 사셨는데 단 걸 좋아하는지 아직 모르세요?"청아가 그렇게 말하고, 제 입을 손으로 막았다. 월령이 웃음을 터뜨렸다. 위지헌의 입가도, 오래 움직였다.두 번 산 봄에도 알지 못한 것이, 아직 많았다. 단 것을 좋아하는지 같은, 작고 사소한 것들이. 이번 봄에는 그런 것부터, 하나씩 알아 갈 참이었다.위지헌은 그 사소함이 좋았다. 두 생을 건너온 무거운 것들 사이로, 단 것을 좋아하는지 같은 가벼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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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80. 연을 잇는 자

    밭을 관리하는 어른의 이름을 따라, 강무진이 남쪽 약밭에 그림자를 붙였다.이레를 지켜본 뒤, 강무진이 왕부에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지난번 약방 골목에서 보였던 서두름이 다시 있었다."밭의 어른과, 절터의 어른이… 다른 사람이었습니다."강무진은 두 얼굴을 다 보았다. 절터의 어른은 마르고 키가 컸고, 밭의 어른은 작고 다부졌다. 생김이 닮은 데가 하나도 없었다. 부자도, 형제도 아니었다.그런데도 두 사람은, 서로를 '연'이라 불렀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그 이름으로 부르고, 그 사람도 스스럼없이 그 이름에 답했다.*월령은 그 말을 오래 들었다.성 밖 절터에서 향을 대던 '연 어른'과, 남쪽 약밭에서 붉은 잎을 챙기던 '밭 어른'이, 서로 다른 얼굴이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같은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한 얼굴이 아니었다. 두 얼굴이, 같은 이름을 나누어 쓰고 있었다."…'연'은, 이름이 아니었어요."월령이 낮게 말했다."자리였어요."*강무진이 밭에서 주운 한 가지를 내놓았다.붉은 실로 묶은 낡은 명부였다. 그 첫 장에, 작은 글자가 적혀 있었다.'연을 잇는다.'명부를 묶은 붉은 실은, 오래된 실이었다. 색이 바랜 자리가 있었고, 여러 번 손을 탄 자국이 있었다. 안의 이름들도, 한 사람이 적은 것이 아니었다. 오래된 먹으로 적힌 이름 위에, 새 먹으로 적힌 이름이 덧대어 있었다.이름을 물려주듯, 명부도 물려받았다. 앞의 연이 적다 물러나면, 뒤의 연이 그 명부를 이어 적었다. '연'은 사람과 함께 죽는 이름이 아니라, 명부와 함께 이어지는 이름이었다.연은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이어 가는 자리였다. 앞의 연이 물러나면, 뒤의 연이 그 자리를 이었다. 얼굴은 바뀌어도, 이름은 남았다. 그래서 잡아도 잡아도, '연'은 늘 다음 얼굴로 옮겨 갔다.월령이 지난겨울부터 쫓던 하나의 얼굴은, 처음부터 없었다.*"이 자리가, 언제부터 이어져 왔지."위지헌이 물었다.강무진은 답하지 못했다. 밭의 어른도, 절터의 어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79. 이름 하나

    봉지를 보낸 자를 따라가는 데에는, 강무진의 걸음이 다시 나섰다.봉지는 심가가 늘 쓰던 약방의 이름을 훔쳐 왔다. 그 이름을 훔치려면, 그 약방의 살림을 아는 사람이라야 했다. 심부름 아이의 이름과 얼굴까지 아는 사람.강무진은 그 약방을 드나든 자들을, 며칠 세었다.쫓는 것과 세는 것은 달랐다. 쫓으면 상대가 알아챘고, 세면 알아채지 못했다. 강무진은 약방 건너 국숫집에 다시 앉았다. 드는 자와 나는 자를, 하루하루 헤아렸다.지난겨울 심가 담 밖에서 하던 일과, 같은 일이었다. 그림자로 사는 자는 늘, 같은 자리에 오래 앉는 것으로 제 몫을 했다.*며칠 뒤, 강무진이 낮게 옮겨 왔다."그 약방에 봄부터 드나든 자가 하나 있습니다. 약재를 대는 사람인데, 남쪽 약밭에서 온다 합니다."남쪽 약밭. 독고가 곁가지가 부치는, 적련초가 나는 밭이었다.봉지는 그 약밭에서 온 자가, 약방의 이름을 훔쳐 심가로 보낸 것이었다. 밭과 심가 사이에, 그 자 하나가 서 있었다.그 자 하나를 잡으면, 어머니를 겨눈 길 하나는 끊겼다. 그러나 월령은 길 하나를 끊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 길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끝까지 거슬러 오르고 싶었다.월령은 그 이름을 장부에 적었다. '연' 아래, 남쪽 약밭에서 온 약재상 하나가 더해졌다.*"그자를 잡으랴."위지헌이 물었다.월령은 잠깐 생각했다.그자를 잡으면, 어머니를 겨눈 손 하나는 끊겼다. 그러나 그자는 밭에서 온 약재상일 뿐이었다. 석중처럼, 목이 매인 손일 것이었다. 잡아도, '연'의 얼굴은 여전히 벽 뒤에 있었다."잡되, 조용히 잡아요."월령이 말했다."그리고 그자가 밭에서 누구의 명을 받는지, 그것부터 물어요. 밭에서 심가로 온 길을 거슬러 오르면, 벽 뒤의 얼굴에 한 걸음 가까워져요."*강무진이 그 약재상을 조용히 확보했다.옥에 가두지 않았다. 석중처럼, 잡은 것도 놓은 것도 아닌 자리에 두었다.그자는 처음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제 목숨이 걸린 것이 아니라 제가 부린 명이 어디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19. 이름

    허도겸은 약속한 시각보다 이른 때에 왔다.아침 안개가 아직 대문 밖 버드나무 잎에 걸려 있을 때였다. 심가의 하인들은 물을 뿌린 마당을 쓸고 있었고, 부엌에서는 찹쌀을 씻는 소리가 낮게 났다. 심 부인의 약을 달이는 냄새가 서원당 쪽에서 천천히 흘러나왔다. 집은 깨어나고 있었으나, 아직 하루의 얼굴을 완전히 갖추지는 못했다.그 틈에 온 사람은 늘 급한 일을 품고 있다.허도겸은 정청이 아니라 서고 앞 작은 툇마루에서 월령을 보겠다고 했다. 둘째 숙부는 불쾌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으나, 호부 낭중의 말은 예법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18. 장부

    아이의 이름은 은호였다.은매가 처음 그 이름을 부를 때, 목소리는 거의 소리라기보다 숨에 가까웠다. 은호야. 그 두 글자가 입술 밖으로 나오자마자 은매는 다시 울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으나, 울지는 않았다. 동생이 깰까 봐 참는 울음이었다.은호는 작았다.일곱 살이라 들었지만, 마른 몸은 그보다 더 어려 보였다. 손목에는 회색 실이 묶여 있던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고, 기침을 참을 때마다 혀끝으로 이를 쳤다. 딱, 딱. 작은 소리는 방 안 사람들의 숨을 매번 붙잡았다.왕부 의원은 은호의 맥을 짚고 오래 말이 없었다.청아는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17. 온기

    회색 실은 따뜻한 물 위에 놓이자 조금씩 풀어졌다.청아는 작은 사기 대접에 손을 얹고 앉아 있었다. 물이 식지 않도록 대접 아래에 천을 두 겹 깔았고, 옆에는 깨끗한 마른 수건을 세 장이나 준비해 두었다. 평소 같으면 필요보다 많은 준비라며 스스로 민망해했을 아이가,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은매는 그 앞에서 숨만 쉬었다.실은 동생의 손목에 있던 것과 같았다. 어미가 낡은 속곳 자락을 꼬아 만들었다던 빛. 희지도 검지도 않은 회색. 약하게 한 번, 세게 한 번 묶는 버릇까지 같았다.하지만 손은 없었다.그 사실이 방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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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문으로 가는 역참길은 대연의 목처럼 길고 단단했다.경성에서 북쪽 변경까지 이어지는 길은 처음에는 넓고 평평했다. 황실의 마차와 호부의 군량 수레가 오가야 했으므로, 돌은 깊게 박혔고 길가에는 관목이 낮게 다듬어져 있었다. 그러나 하루만 더 올라가면 길은 곧 좁아졌다. 산기슭이 다가오고, 바람은 말의 갈기 사이로 칼끝처럼 스며들었다.그 길을 아는 사람들은 북문로라 불렀고, 장부를 쓰는 사람들은 병량 제삼로라 적었다.같은 길이었다.누구에게는 남편과 아들을 삼키는 길이었고, 누구에게는 창고의 숫자가 줄어드는 줄이었다.은매의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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