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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늘

Autor: moominkiller
last update Fecha de publicación: 2026-05-23 23:58:07

이번에는.

내 손을 놓지 마라.

위지헌의 말은 한참 동안 측백나무 잎 사이에 머물렀다.

봄빛은 잘게 부서져 내려왔고, 먼 연회장의 웃음소리는 얇은 비단 몇 겹 너머에서 들리는 것처럼 흐렸다.

월령은 대답을 고르지 못했다.

놓지 않겠다고 말할 수는 있었다.

다시는 다른 손을 잡지 않겠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

심가를 살리겠다고,

당신을 이용하겠다고,

당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반드시 알아내겠다고.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는,

당신을 믿고 싶다고도 말할 수 있었다.

모두 참이었다.

그래서 어느 하나도 먼저 꺼낼 수 없었다.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주인을 바꾼다.

어느 날의 월령은 그 사실을 너무 늦게 배웠다.

다정한 말은 사랑이 되었고,

사랑은 약점이 되었으며,

약점은 죄가 되었다.

위지헌은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가 진정 바란 것이 대답뿐이었다면,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월령의 입술보다 먼저 그녀의 숨을 보았다.

가늘어진 목선,

소매 안으로 접히는 손끝,

속눈썹 아래 젖은 눈동자가 늦게 숨는 순간.

그 모든 것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캐묻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더 조심스러웠다.

"답은 지금 내지 마라."

그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

"두고 보아도 늦지 않다."

월령은 눈을 들었다.

다른 이가 했다면 미루는 말이었을 것이다.

위명서가 했다면, 다시 생각할 틈을 주는 척 손목을 감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위지헌의 말에는 끈이 없었다.

그는 대답을 끌어당기지 않았다.

다만 대답이 월령의 입술에서 너무 이르게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

너무 이른 것은,

대개 빼앗긴다.

"왕야."

월령은 아주 낮게 불렀다.

소저가 왕족에게 올리는 예법으로는 조금 가까운 호칭이었다.

그 사실을 입 밖으로 내고서야 깨달았다.

하지만 위지헌은 바로잡지 않았다.

그저 한쪽 눈매가 아주 미세하게 깊어졌다.

그 작은 변화 하나가 월령의 숨을 더 낮게 만들었다.

"남쪽 담의 사내는."

그녀가 묻자, 위지헌의 시선이 돌아왔다.

"창고에는 없다."

그 말은 죽었다는 뜻도,

달아났다는 뜻도 아니었다.

위지헌의 말은 늘 문턱에 놓였다.

듣는 사람이 건너야 하는 쪽은 남겨 두었다.

월령은 천천히 그 뜻을 짚었다.

사내가 심가 창고에 그대로 있었다면 오늘 밤을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은매를 우물가로 보낼 수 있는 손이라면, 묶인 사내 하나를 죽이는 데 망설이지 않는다.

그가 창고 안에서 죽으면 심가는 황궁의 사람을 죽인 집이 된다.

증거는 물증이 아니라 죄가 되고,

심도윤의 충성은 군권을 감춘 칼로 읽힐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사라지면 이야기는 닫히지 않는다.

심가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살필 것이다.

한씨와 서윤은 같은 편이 아직 같은 편인지 밤새 계산할 것이다.

궁 쪽은 제 손이 닿기 전에 누가 먼저 움직였는지 찾을 것이다.

죽음은 사건을 닫는다.

부재는 사람을 움직인다.

위지헌은 죽음 대신 부재를 택했다.

심가를 살리는 수였다.

동시에 심도윤에게서 증인을 빼앗는 수이기도 했다.

"제 아버지를 속이셨습니다."

그 말은 월령이 했다기보다,

그 안의 어린 딸이 했다.

위지헌은 피하지 않았다.

"그래."

짧은 인정.

변명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월령은 더 불편했다.

이 남자는 그녀를 구한다.

그러나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심가를 지킨다.

그러나 심가의 장군에게도 전부를 말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위지헌은 결코 선한 남자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손을 희다고 말하지 않는 남자였다.

그 차이는 작지 않았다.

위명서는 모든 피를 질서라 불렀다.

그러면 피는 명분이 되었고, 명분이 된 피는 아무도 씻지 않았다.

위지헌은 달랐다.

그는 더러운 일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선이라 꾸미지도 않았다.

월령의 손끝이 소매 안에서 다시 접히자, 위지헌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는 그녀가 겁먹었는지,

분노했는지,

혹은 스스로를 탓하고 있는지 먼저 보았다.

"군법으로 보면 어렵지 않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이번에는 칼끝처럼 곧장 찌르지 않았다.

"붙잡은 자가 심가의 창고에서 죽으면, 그 죽음은 심가의 죄가 되지."

"예."

"살아 사라지면."

위지헌의 시선이 그녀의 눈높이로 조금 내려왔다.

"그자를 찾는 이들이 먼저 서로를 본다."

월령은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바둑판으로 놓아 보자."

그가 아주 희미하게 말을 낮췄다.

"잡은 돌을 바로 거두면 그 수는 끝난다. 패로 남기면, 상대가 다음 손을 내야 하지."

월령의 눈꺼풀이 느리게 내려갔다.

죽은 증인은 판을 닫는다.

사라진 증인은 사람을 움직인다.

심가의 죄를 비워 두고,

저들이 서로의 손을 보게 한다.

"그러니까..."

월령의 목소리는 여전히 작고 부드러웠다.

"왕야께서는 그 사내를 살리신 것이 아니라, 죽지 못하게 두신 거군요. 심가의 죄가 되지 않도록요."

위지헌의 눈빛이 아주 잠깐 멎었다.

다른 사람에게라면 그 침묵은 물러서라는 뜻이었다.

그는 대개 감송향조차 닿지 않을 만큼 사람을 멀찍이 세워 두는 왕이었다.

그런데 월령 앞에서만,

그 거리는 자꾸 무너졌다.

위지헌이 반 걸음 가까워졌다.

식은 차와 젖은 나무 같은 향이 살구꽃의 끝을 낮게 붙잡았다.

"정말?"

월령의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다.

"확실한가."

그는 추궁하지 않았다.

이미 답을 알면서도, 그녀가 제 손으로 놓은 수를 한 번 더 보게 하는 물음이었다.

그런데도 월령은 숨을 조금 늦게 삼켰다.

위지헌이 아주 낮게 덧붙였다.

"으응?"

월령은 자신이 무슨 말을 알아들은 줄도 몰랐다.

그러나 위지헌은 보았다.

피 냄새 나는 창고의 일을,

군법과 바둑판의 수로 옮겨 이해하는 속도.

열여섯의 가는 어깨 위에 놓인,

너무 오래 버틴 사람의 눈.

그것은 영민함을 넘어섰다.

경외에 가까운 것이 위지헌의 침묵 깊은 곳에서 아주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월령은 그 침묵을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다.

역시 차갑구나.

이 사람은 사람을 살리는 말도 이렇게 냉정하게 하는구나.

오만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오만에 심장이 흔들렸다.

마른 가지가 눌리는 소리가 났다.

월령은 이번에도 한 박자 늦었다.

위지헌은 늦지 않았다.

그의 손이 월령의 손목에 닿았다.

잡아당기는 힘은 크지 않았다.

그런데도 월령은 측백나무 그림자 안쪽으로 반 발 물러나 있었다.

위지헌은 한 걸음 앞으로 섰다.

검은 장포가 월령의 옆얼굴을 가렸다.

가려졌으나 갇히지는 않았다.

빠져나갈 틈은 남아 있었다.

다만 그 틈을 지나려면 그의 팔과 장포 사이의 좁은 그늘을 통과해야 했다.

그 생각만으로 월령의 숨이 낮아졌다.

위지헌의 손끝이 맥 위에 놓였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조금 숙였다.

숨을 줄이라는 뜻이었다.

월령은 입술을 다물었다.

심장이 그 손끝에 들킬까 봐,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월령 언니?"

서윤의 목소리였다.

달고 조심스러웠다.

걱정이라는 옷을 입고 있었으나, 옷자락 끝에는 불안이 묻어 있었다.

심서윤은 위지헌을 보고 놀란 듯 예를 올렸다.

놀란 척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놀랐고,

실제로 두려웠을 것이다.

다만 서윤은 두려움을 보이는 법까지 배운 아이였다.

눈가의 물기,

살짝 굳은 입술,

너무 늦지 않게 숙이는 고개.

그 모든 것이 그 아이의 갑옷이었다.

"섭정왕 전하를 뵙습니다."

위지헌은 길게 묻지 않았다.

그는 서윤의 얼굴보다 발끝을 보았다.

걱정하러 온 사람의 걸음이라기에는 흙을 밟은 힘이 달랐다.

찾는 사람의 발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발이었다.

"걸음이 무겁군."

서윤의 얼굴이 아주 조금 굳었다.

비난은 아니었다.

그래서 반박할 수 없었다.

"큰언니께서 보이지 않으셔서..."

서윤은 고개를 낮췄다.

"어머니께서 걱정하실까 하여 찾아보던 길이었습니다."

"걱정은 길을 밝히지."

위지헌의 목소리는 공손했다.

"그늘을 데려오지는 않는다."

서윤의 입술이 희미하게 벌어졌다가 닫혔다.

월령은 장포 그림자 안에서 서윤을 보았다.

저 아이는 악해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늘 뒤였기 때문에 움직인다.

유씨가 살아 있으면 한씨는 안채의 주인이 될 수 없고,

월령이 있으면 서윤은 심가의 중심에 설 수 없다.

고운 사촌 동생이라는 이름은 달콤하지만,

중심에서 밀려난 사람에게는 오래 쓰다.

그러나 이해와 용서는 다르다.

서윤은 살아남기 위해 남의 숨을 끊는 쪽을 택했다.

그 아이의 손은 아직 작았다.

아직 완전히 단단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작은 손은 제 손에 들린 것이 칼인지 꽃가지인지 모른 채 휘두를 수 있으므로.

위지헌은 더 몰아붙이지 않았다.

"돌아가라."

짧았다.

"심가의 큰아가씨는 곧 돌아갈 것이다."

그는 월령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그 작은 절제가 월령을 한 번 더 가렸다.

서윤은 잠시 망설였다.

더 물어야 할지,

물러나야 할지 계산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섭정왕 앞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서윤은 결국 예를 올리고 돌아섰다.

그녀의 치맛자락이 나무 그림자 밖으로 사라진 뒤에도 월령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혼자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은 어렵지 않았다.

섭정왕을 몰래 만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스스로 판 위에 피를 떨어뜨린 셈이 되었을 것이다.

위명서가 그 피를 어떻게 쓸지는 뻔했다.

월령은 굴욕을 삼키고 인정했다.

그녀는 아는 것이 많다.

하지만 순서는 서툴다.

"가르쳐 주십시오."

이 말만은 직접 해야 했다.

그런데 말끝이 생각보다 낮게 젖었다.

스스로도 알아차릴 만큼.

차라리 명령처럼 나왔으면 덜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위지헌의 시선이 한순간 그녀의 입술에 닿았다가,

곧 눈으로 돌아왔다.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지는 동안 월령은 자신의 자존심이 천천히 벗겨지는 것을 느꼈다.

이상하게도 수치만 남지는 않았다.

배울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 빈자리에 들어왔다.

"서윤에게 먼저 가라."

뜻밖의 말이었다.

월령은 눈을 들었다.

"제가요?"

"네가."

"사과를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말은 네가 고르면 된다."

위지헌의 시선은 여전히 차가웠다.

"문은 열리게만 해라."

처음에는 모욕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곧 뜻이 열렸다.

의심받는 자는 숨는다.

용서받았다고 믿는 자는 다시 손을 뻗는다.

압박하면 서윤은 깊이 숨어들고,

안심시키면 제 손으로 문을 연다.

"약해지라는 뜻은 아니다."

그가 덧붙였다.

"네가 다치지 않을 만큼만 보여라."

월령은 그를 보았다.

"나머지는."

위지헌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가 가린다."

말은 간단했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그는 월령을 약하게 만들 생각이 없었다.

대신 그녀가 상처를 미끼로 써야 한다면,

그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자신의 그늘로 덮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그 안쪽의 조심스러움을 알아차렸을까.

월령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아는 위지헌은 늘 서늘했다.

황궁의 붉은 담 안에서 마주쳤을 때도,

연회장의 높은 자리에서 잔을 들지 않고 앉아 있을 때도,

그는 누구에게나 먼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자신에게만 다른 결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월령은 아직 헤아리지 못했다.

그저 이 차가운 남자가 사람을 위하는 방식도 차갑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위지헌이 몸을 돌렸다.

월령의 손끝이 저도 모르게 움직였다.

그의 소매 끝을 붙잡으려던 손이었다.

아주 작고 어리석은 움직임.

그러나 위지헌은 놓치지 않았다.

그가 돌아보자 월령은 급히 손을 거두었다.

잡으려던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말은 너무 뻔한 거짓이었다.

위지헌의 눈가에 아주 희미한 변화가 스쳤다.

다음 순간,

그가 거두어지는 월령의 손을 붙잡았다.

확 끌어당기는 힘은 짧았다.

그러나 피할 틈은 없었다.

월령은 한 걸음도 채 되지 않는 거리 안으로 들어갔고,

검은 장포의 그늘이 다시 그녀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위지헌은 고개를 낮췄다.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을 듯 가까운 곳에서 흘렀다.

"다음에는 먼저 잡아도 좋다."

월령의 숨이 그대로 멈췄다.

"너에게 허락한다."

그 말이 무엇을 허락하는지,

무엇을 경고하는지 알 수 없었다.

도움.

거래.

손.

혹은 그보다 더 위험한 무언가.

위지헌은 더 말하지 않고 서재 후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월령은 알았다.

이 남자는 뒤돌아보지 않아도 보고 있다.

자신이 넘어지는지,

숨을 고르는지,

끝내 그 자리에 서 있는지.

후문 밖에는 왕부의 호위장 강무진과 근시 윤백이 서 있었다.

둘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낮췄다.

너무 자연스러워 오히려 수상한 무심함이었다.

월령이 걸어 나올 길목에 떨어져 있던 마른 가지 하나를 윤백이 잽싸게 치웠다.

강무진은 서재 쪽에서 따라붙는 시선을 한 걸음으로 막았다.

명령은 없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윤백은 월령에게 물잔을 내밀었다가,

물이 아직 뜨거운 것을 깨닫고 제 손등에 먼저 대 보았다.

곧장 잔을 바꿔 들고,

세상에서 가장 중대한 군무를 마친 사람처럼 엄숙하게 물러섰다.

위지헌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윤백은 빈손을 등 뒤로 감췄다.

강무진은 바닥의 돌무늬를 평생의 숙적처럼 바라보았다.

월령은 그 과한 침묵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섭정왕의 명령은 말로만 내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왕부의 사람들은 그가 보려는 곳과,

가리려는 곳과,

누구의 발밑에서 마른 가지 하나까지 치워야 하는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다정함보다 먼저 정치처럼 보였다.

위지헌은 왜 자신을 이토록 가까운 그늘에 두는가.

심가 때문인가.

위명서 때문인가.

아니면 자신이 아직 보지 못한 더 깊은 암투 때문인가.

답을 모르는 일은,

아는 적보다 더 무서웠다.

서원당으로 돌아오는 길에 청아가 거의 울 듯한 얼굴로 달려왔다.

"아가씨."

목소리가 떨렸다.

"지하 창고가 비었습니다."

월령은 걸음을 멈췄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답니다. 밧줄만 남았고요."

안에서 잠긴 문.

사라진 사람.

남은 밧줄.

심가 안의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할 것이다.

궁 쪽은 자신들의 손이 먼저 닿았는지 확인하려 들 것이다.

한씨와 서윤은 밤새 잠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위명서는.

그 빈 방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려 할 것이다.

그때 월령의 소매 안쪽에서 무언가가 손끝에 닿았다.

작고 얇은 종이였다.

언제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다.

아까 그의 손이 소매를 덮었던 순간일 수도 있고,

손목을 놓던 순간일 수도 있었다.

월령은 그것을 펼쳤다.

글자는 없었다.

접힌 종이 사이에서 말린 살구꽃잎 하나가 톡 떨어졌다.

월령은 한참 그 꽃잎을 바라보았다.

위지헌.

그는 사라진 사내도,

빈 창고도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마지막 어둠 끝에서 맡았던 향 하나를 소매 안에 남겼다.

아니.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월령은 거기까지 생각하다 멈췄다.

아니야.

그럴 리 없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을 그렇게 보았겠는가.

그 차갑고 높은 사람이.

다른 누구에게도 말 한마디 허투루 내주지 않는 사람이.

월령은 종이를 접어 소매 안 깊숙이 넣었다.

손목의 열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그 열이 이상하게 두려웠다.

그리고 더 이상하게도.

놓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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Último capítu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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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이 오기 전의 집은 가장 솔직했다.낮에는 예법이 사람을 세우고, 밤에는 두려움이 사람을 눕힌다. 그러나 새벽 직전의 어둠에는 누구도 완전히 서 있지도 눕지도 못한다. 닫힌 문 안쪽에서는 잠든 척하는 숨이 얇아지고, 깨어 있는 등불은 심지를 낮춘 채 오래 버틴다.월령은 서원당 곁 작은 서실에 앉아 있었다.등불은 낮췄고, 탁자 위에는 서윤의 오래된 글과 허도겸이 보낸 등초, 문상궁의 먹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종이와 먹과 사람의 손. 전부 말이 없는데도, 방 안은 너무 많은 말로 가득 찬 듯했다.그녀는 위조된 글의 마지막 획을 다시 보았다.받겠다.그 끝이 유난히 무거웠다.서윤은 끝을 그렇게 누르지 않는다. 서윤의 글은 끝에 이르면 오히려 가벼워졌다. 칭찬을 기다리는 아이의 손은 마지막에서 긴장이 풀린다. 그러나 이 글은 마지막에서 힘이 들어갔다.누군가 결말을 꼭 눌러 닫은 것이다.마치 도망갈 문을 막듯이."잠을 자지 않았군."문밖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월령은 숨을 멈추었다가, 곧 자신을 꾸짖듯 천천히 내쉬었다.위지헌이었다.그가 문턱을 넘지 않은 채 서 있었다. 먹색 대창포 자락에는 새벽 안개가 아주 희미하게 묻어 있었고, 젖은 돌을 밟고 온 듯 신 끝이 어두웠다. 감송향이 서실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월령은 일어나 예를 갖췄다."왕야.""앉아 있어라."말은 낮았지만 딱딱하지 않았다.그는 곧 자신이 너무 짧게 말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덧붙였다."네가 일어서면 종이가 날린다."월령은 잠시 멈췄다.그 말이 명령인지 배려인지 구별하지 못했다.위지헌은 문턱을 넘었다.그는 탁자 가까이 오지 않았다. 가까이 오면 그녀가 숨을 더 조심할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감송향은 이미 가까웠다. 월령은 그 향을 의식하지 않으려 했지만, 의식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먹을 보았느냐.""예.""무슨 생각을 했지."월령은 종이를 내려다보았다."자녕궁의 종이, 서윤의 글씨, 문상궁의 먹. 세 가지가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5. 선

    밤은 쉽게 깊어지지 않았다.심가의 안채에는 등불이 오래 남았다. 서원당 처마 아래 작은 등이 하나 켜져 있었고, 약방 쪽에도 낮은 불빛이 흔들렸다. 하인들은 평소보다 발소리를 낮췄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집 전체가 숨을 작게 쉬는 사람처럼 조심스러웠다.월령은 목갑 속 먹을 다시 닫았다.문상궁이 두고 간 먹과 같은 냄새.그 말 하나만으로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는다.궁의 물건은 여러 손을 지난다. 문상궁이 들고 왔다고 해서 문상궁이 썼다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 태후의 뜻이라 해도 태후가 직접 먹을 갈았을 리 없고, 위명서가 필요로 했다고 해서 그가 손끝에 먹을 묻혔을 리 없다.궁의 명은 대개 남의 손끝에 묻어 왔다.손끝은 씻기 쉽고, 명은 더 쉽게 사라졌다."언니."서윤이 아주 낮게 불렀다.월령은 고개를 돌렸다.서윤은 아직 붓함 곁에 앉아 있었다. 오래된 종이들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에 아이의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얇게 놓여 있었다. 서윤은 그것들을 다시 접지 못했다."제가 예전에 언니 글씨를 따라 쓴 걸, 아는 사람이 있었을까요.""있었겠지."월령은 거짓말하지 않았다.서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래서 월령은 말을 낮췄다."하녀가 보았을 수도 있고, 숙모께서 보셨을 수도 있고, 글씨를 가르치던 사람이 기억했을 수도 있어.""그럼 제가...""아니야."월령은 서윤의 말을 부드럽게 막았다."네가 누군가에게 칼을 준 것이 아니야. 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그것을 칼로 갈았을 뿐이야."서윤은 그 말을 오래 들었다.이해한 얼굴은 아니었다.하지만 조금 덜 무너진 얼굴이었다.월령은 더 묻지 않았다.그때 청아가 조심스럽게 낮은 상 위에 찻잔을 올렸다."차는 아니고 보리물입니다.""왜 그렇게 작게 말하니.""궁에서 차가 나오면 늘 일이 생겨서요."청아는 아주 진지했다."소인은 당분간 차를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은호가 작은 이불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보리도 볶으면 검습니다."청아가 눈을 크게 떴다."그런 말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4. 먹

    서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말을 잃은 아이의 얼굴은 이상하게 어려 보였다. 조금 전까지 찹쌀떡 접시를 들고 어른스러운 말을 고르던 입술은 이제 색을 잃었고, 속눈썹 아래 눈동자는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몰라 흔들렸다.방 안에는 눌어붙은 죽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다.창을 열었는데도 냄새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불에 닿은 곡식의 냄새는 사람의 옷자락보다 오래 방 안에 머문다. 궁에서 온 글 한 줄도 그랬다. 읽히고 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숨 쉬는 곳마다 얇게 달라붙었다.심월령은 기윤이 전한 말을 다시 떠올렸다.심월령은 황실의 은혜를 달게 받겠다.그 글씨가 서윤의 손과 닮았다고 했다.닮았다.같다고 못 박지 않으면서도, 다르다고도 놓아주지 않았다. 칼보다 얇은 말이었다.서윤의 손끝이 떨렸다."저는 쓰지 않았어요."목소리가 작았다."언니, 저는 정말...""알아."월령은 너무 빨리 대답하지 않으려 했다. 급한 믿음은 때로 믿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그녀는 서윤의 손을 보았다. 찹쌀가루가 아직 손톱 가장자리에 희게 끼어 있었다. 궁의 종이를 만진 손이라기보다, 부엌에서 반죽을 조금 망친 아이의 손이었다."네가 쓰지 않은 것 알아."서윤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그런데 왜 제 글씨와 닮았을까요."그 물음에는 두려움보다 더 깊은 부끄러움이 있었다.월령은 그 부끄러움을 알아보았다.서윤은 늘 남의 마음에 드는 법을 먼저 배웠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말투, 어른들이 기특하다 여기는 자세, 태후가 눈길을 줄 만한 글씨. 자기 이름을 쓰기 전에 남의 눈이 좋아하는 선을 익힌 아이였다."혹시."서윤은 입술을 깨물었다."제가 예전에 언니 글씨를 따라 쓴 적이 있어요."방 안이 조용해졌다.청아는 놀라 숨을 삼켰고, 은매는 은호의 어깨를 조금 더 감쌌다. 기윤은 문가에서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으나, 그 침묵도 들은 사람의 침묵이었다.월령은 서윤을 재촉하지 않았다."어릴 때요. 큰어머니께서 언니 글씨가 곱다 하셨고, 아버지

  •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23. 사흘

    심월령.그 이름이 자녕궁 안에 떨어진 순간, 향로의 연기마저 잠시 길을 잃은 듯했다.궁녀들은 고개를 숙인 채 숨을 낮췄고, 내관은 두루마리를 든 손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붉은 비단 끝에 매달린 금실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창밖으로 들어오던 봄빛은 바닥의 옥돌 위에서 차갑게 식어, 사람의 얼굴마다 다른 그늘을 얹었다.독고 태후는 웃지 않았다.웃지 않는 얼굴이 더 온화해 보일 때가 있다. 그녀는 그런 얼굴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마치 이 모든 일이 누구의 목숨을 조르는 덫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마땅히 놓아야 할 비단끈이라는 듯했다.월령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손끝은 소매 안에서 차가웠으나 떨리지는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랬다. 너무 큰 파도가 오면 사람은 먼저 젖는 대신 굳는다. 숨도, 눈물도, 두려움도 한 박자 늦게 온다.문밖에서 위지헌의 그림자가 길게 들어왔다.감송향이 자녕궁의 단 향을 조용히 밀어냈다. 마른 흙과 오래된 나무, 차갑게 말린 약재의 향. 그 향은 소리 없이 다가왔으나, 자녕궁 안의 누구도 모른 척하지 못했다."그 교서를 멈추십시오."위지헌의 목소리는 낮았다.낮은데도 먼 기둥까지 닿았다.태후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이미 읽혔습니다, 섭정왕.""읽힌 것과 행해지는 것은 다릅니다."위지헌은 문턱을 넘었다.궁녀 하나가 본능적으로 물러났고, 내관 둘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도 못한 채 길을 비켰다. 그는 누구에게도 소리치지 않았다. 칼을 뽑지도 않았다. 다만 걸어 들어왔다. 그 한 걸음마다 자녕궁의 공기가 뒤로 밀렸다.태후의 눈빛이 아주 작게 깊어졌다."황제의 어보가 찍힌 교서입니다.""그러므로 더더욱 예를 갖춰야 합니다."위지헌은 두루마리를 보지 않았다.그의 시선은 태후에게 있었다. 황제의 숙부이자 섭정왕인 자가 태후를 향해 예를 잃지 않는 거리. 그러나 그 예의 아래에는 누구도 밟을 수 없는 선이 있었다."심가 여식은 지금 예부와 호부의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궁중 내지 유출과 군량 장부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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